임유진은 두 손으로 강지혁의 목을 감싼 채 눈앞에 있는 남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이건 혁이의 얼굴이다.“혁아, 그거 알아? 나 오늘... 너무 즐거웠어...”그녀의 말에 강지혁이 미간을 찌푸렸다.“즐거웠어?”“응... 즐거웠어... 사람들이랑 같이 춤추며 놀다 보니까 전부 다 잊어버릴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말은 이렇게 했지만 정작 잊고 싶었던 게 무엇이었던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다만 지금 확실한 건 이렇게 혁이를 끌어안고 있으면 안심이 되고 오랜만에 다시 안정을 되찾은 듯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지영이가 그러는데... 아까 스테이지에서 춤췄던 남자들이 요즘 가장 핫하대... 지영이는 머리를 흰색으로 염색한 남자가 제일 멋있다고 하는데... 나는 흑발이 제일 좋았어... 그리고 나도 옷 뺏을 수 있었는데... 지영이만 뺏었어... 그런데 내가 그거 갖고 싶다고 하면 지영이가 주겠대 헤헤...”임유진이 말을 뱉으면 뱉을수록 고이준은 차 안의 공기가 점점 더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지금은 차라리 술에 취해 기절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이 이상 더 얘기해버리면 강지혁이 정말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노릇이니까.“그래? 너는 그 흑발이 제일 좋았어?”강지혁의 차가운 목소리가 차 안에서 울려 퍼졌다.고이준은 이 순간 아까 다섯 명 중 가장 중앙에 서 있던 흑발 남자가 불쌍해지기 시작했다.“응.”임유진은 단호하게 고개까지 끄덕였다.“하지만...”하지만 임유진의 다음 말로 고이준은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나는 역시... 우리 혁이가 제일 좋아.”강지혁의 차가웠던 눈이 그 말 한마디에 다시 부드럽게 변했다.우리 혁이...전에는 이런 식으로 마치 진짜 가족이라도 된 듯이 다정하게 불러줬었다.그녀의 손은 강지혁의 목에서 서서히 위로 올라가더니 그의 머리를 이리저리 매만졌다.“우리 혁이처럼 검은 머리가 좋아... 제일 예뻐...”강지혁은 그녀의 손이 움직이는 대로 머리가 헝클어지든 말든 그저
두 사람이 좁은 원룸 방에서 살았을 때도 강지혁은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그리고 그때 임유진은...“응, 당연하지!”임유진은 술에 취해 있는 상태이면서도 그때와 똑같은 대답을 했다.지금의 그녀는 술에 취한 상태라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기라도 한 걸까? 그때 임유진은 강지혁의 누나였고 강지혁은 그녀의 혁이었다.“그럼 착하게 굴면 내 누나도 해줄 거야?”누나가 되어 옆에 있어 준다면 강지혁은 그녀에게 사랑을 제외한 모든 걸 줄 수 있다.임유진의 꿈도 이루어 줄 수 있고 그녀를 낮잡아 봤던 사람들이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할 정도의 자리까지 올려줄 수 있다.자신의 옆에 있어만 준다면...아마 강지혁은 임유진이 곁에 있어야만 그 괴로움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나는 계속 네 누나였잖아... 혁아, 걱정하지 마. 내가... 내가 널 지켜줄게... 꼭 지켜줄 거야...”임유진의 눈이 점점 감기는가 싶더니 이내 목소리도 점점 작아지고 결국에는 침대에 뻗어버렸다.강지혁은 그런 그녀의 자세를 바로 해주고 이불을 덮어준 다음 헝클어진 머리도 정리해주었다.“정말 날 지켜주고 싶은 거라면 내 곁에만 있어. 그래야만 내가 안 아파...”그는 말을 하면서 그녀의 손을 자신의 심장 쪽으로 가져갔다.전에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기만 하면 더 이상 감정에 휘둘릴 일 없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올 줄 알았다.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녀가 떠난 순간부터 하루하루가 괴로워 미칠 것만 같았다.지금도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녀를 자신의 시야 속에 두고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 볼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백신은 인사불성이 된 한지영을 보며 이대로 집에 보내는 것이 아닌 일단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기로 했다.적어도 어느 정도 제정신으로 돌아온 뒤에 집으로 보내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으니까.그리고 아직도 품속에 꼭 껴안은 저 셔츠부터 어떻게 해야만 했다.백연신은 그녀의 손에 들린 셔츠를 보며 혀를 찼다. 자신의 옷은 이토록 소중히 다룬 적
백연신은 한지영을 안방 소파에 내려놓고 말했다.“이따 숙취해소제 마시고 나서 다시 집에 데려다줄게.”“싫어. 안 갈 거예요. 나 집 말고 아까 그 클럽으로 데려다 줘요... 나는 잘생긴 남자가 보고 싶다고요!”그녀의 말은 백연신을 도발한 거나 다름없었다.“잘생긴 남자?! 한지영, 내가 지금 이성적으로 얘기할 때 적당히 하지? 나한테 오늘 일해야 한다고 거짓말까지 하고 감히 그런 클럽을 가? 내가 요즘 많이 풀어줬지. 그래서 이러는 거지, 응?”한지영은 그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술에 취해있는 상태라고는 하나 사리 분별은 되는 것 같았다.“나... 거기 있는지는 어떻게 알았어요? 연신 씨한테 거기 간다고 얘기한 적 없는 것 같은데...”한지영은 볼을 부풀리며 혼자 중얼거렸다.“어떻게 알았냐고? 그걸 몰라서 물어?!”신나서 사진까지 올려놓은 것도 모자라 위치까지 태그했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이건 와서 잡아가라는 것과 다를 것 없지 않은가?“됐고, 그 셔츠나 내놔.”백연신은 아까부터 눈에 거슬렸던 셔츠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싫어요!”한지영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오히려 셔츠를 더 꽉 끌어안았다.“이건 내가 끅... 내가 얼마나 힘들게 뺏은 건데!”저딴 셔츠를 뺏기까지 했다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그딴 건 왜 뺏어?”“그야... 기념으로요. 걔들이 얼마나 잘생겼는지 알아요?”“그래?”백연신은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며 두 손을 소파에 올려놓은 채 한지영을 자신의 품속에 가뒀다.“얼마나 잘생겼는데?”“그게... 아무튼, 되게 잘생겼어요... 몸도 좋고... 매력적이고...”한지영은 술에 취해 그 잘생긴 얼굴들을 형용할 단어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고 말도 점점 꼬였다.백연신은 자신의 얼굴을 그녀의 얼굴 가까이 가져가며 물었다.“그럼 걔들이 좋아, 내가 좋아?”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로 물어보는 그의 얼굴은 단순히 섹시한 걸 넘어서 위험하기까지 했다.만약 한지영이 이래도 그 남자들이 더 좋다고 하면 백연
하지만 이 유치한 방법이 먹힌 건지 곧 죽어도 놓지 않을 것 같던 그녀의 손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나빴어... 어떻게 이거 하나 못 가지게 해요?”그녀의 눈에는 서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내가 더 좋다며? 그런데 다른 남자 셔츠가 왜 필요해?”그는 한지영이 술에 취한 걸 잊어버린 건지 도리를 따지기 시작했다.“걔들은 춤도 추고 노래도 하는데 연신 씨는 그런 거 못 하잖아요...”백연신은 기가 막혀 바로 반론했다.“내가 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그럼 내 앞에서 춰봐요. 아까 걔들처럼 옷도 벗으면서요.”한지영은 굳이 마지막 말까지 덧붙였고 백연신은 그런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내게 네 앞에서 춤을 추면 앞으로 다른 남자 안 볼 거야? 맹세할 수 있어?”“네, 맹세해요!”한지영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좋아. 그 말 꼭 기억해. 만약 어겼다가는...”그의 목소리가 잠시 멈추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물론 어기게 내버려 두지도 않을 거지만.”그는 그 말을 끝으로 한지영의 앞에서 서서히 옷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백연신은 일전 해외 클럽에서 봤던 것처럼 서서히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춤을 추는 건 쉽다. 오늘 그 남자들보다 더 잘 출 자신도 있고 이 여자의 눈이 자신에게 머무를 수 있다면 몇 번도 더 춰줄 수 있다.한지영이라는 여자는 잡혀줄 것 같으면서도 좀처럼 잡혀주지 않는다. 입으로는 항상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틈만 나면 바로 다른 남자를 눈에 담아 버리는 여자니까.백연신은 그녀의 시선이 다른 남자에게 머무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녀의 모든 신경이 자신에게만 향했으면 좋겠고 다른 남자를 볼 틈도 없이 자신만 사랑해줬으면 좋겠다.옷이 한 벌 한 벌 벗겨지기 시작하고 한지영은 다른 남자의 셔츠는 어느새 옆으로 치워버린 채 황홀한 눈빛으로 눈앞의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예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한지영은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그대로 백연신을 덮쳐버리듯 달려들
“네, 네, 알겠습니다.”도우미는 숙취해소제만 남겨두고 헐레벌떡 방을 나갔다.안방에는 또다시 두 사람만 남았다.“한지영, 얼른 일어나.”“싫어요!”한지영은 술에 취했어도 이 세글자만은 또렷하게 뱉었다.“자, 착하지. 얼른 숙취해소제부터 마셔.”백연신이 마치 아이 다루듯 부드럽게 말하는 걸 부하직원이 봤으면 아마 경악을 할 것이다.그는 한지영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이렇게 다정해 본 적이 없다.“나 어떡해요... 점점 더 연신 씨가 좋아지는 것 같아요...”술에 취해 내뱉는 소리가 분명했지만 그런 그녀의 말에도 백연신의 심장은 거세게 뛰어버리고 말았다.“그렇게 날 좋아하면서 그딴 건 왜 보러 간 거야? 게다가 다른 남자 옷까지 뺏고.”“그거야... 유진이 스트레스 풀어주려고 간 거죠, 헤헤... 물론 걔들이 잘생기긴 했지만...”한지영은 트림을 한번 시원하게 하더니 양손으로 백연신의 얼굴을 감쌌다.“그건 그냥 감상만 하는 거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연신 씨예요... 나는 연신 씨가 정말 정말 너무 좋아요...”그녀는 말과 함께 마치 느끼한 아저씨처럼 백연신의 볼 곳곳에 뽀뽀해댔다.백연신은 그런 그녀의 행동을 밀어내기는커녕 뽀뽀 세례를 가만히 받고만 있었다.지독한 술 냄새가 코를 찔러왔지만, 그 상대가 한지영이라서 오히려 향기롭기도 했다.한지영은 좋아한다고 얘기할 때마다 그에게 입을 맞췄다.“한지영, 나한테 사랑한다고 해 봐.”이렇게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야만 이 불안한 마음이 조금은 가실 것 같았다.한지영은 그 말에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마주치더니 백연신의 마음이 두근거릴 만큼 환하게 웃었다.“나는 연신 씨를 사랑해요.”백연신은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머리를 잡아 거칠게 입을 맞춰왔다.그녀가 계속 이렇게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자신만을!이번 생은 꼼짝없이 한지영이라는 여자에게 감겨버렸지만 이 지독한 사랑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다음 날 아침.한지영은 알람 소리에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어제 술을 너무 마신 탓에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러다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크게 외쳤다.“유진이는요? 나 어제 유진이랑 같이 갔었는데?”그 말에 백연신은 간신히 눌렀던 화가 또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유진 씨랑 같이 있었던 건 기억이 나나 보지? 어제 나한테 꼭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바쁘다며, 그런데 그딴 곳을 가?”한지영은 잘못한 건 아는지 이불 속에 얼굴을 반쯤 파묻었다.“유진이가 요즘 스트레스받는 것 같아 데리고 간 거예요. 그리고 나 일 한 건 맞거든요? 다 마치고 오후쯤에 유진이한테 갔죠.”“그래? 그럼 왜 그렇게 신이 나서 옷까지 뺏었을까? 평소 내 옷은 눈길도 안 주더니, 애먼 남자 옷은 그렇게 꼭 쥐고 안 놔?”화를 내는 건 분명했지만 그녀의 머리를 마사지해주는 그의 손은 여전히 부드러웠다.“그, 그건... 그것도 유진이 주려고 했죠!”한지영은 임유진 핑계를 대며 이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다. 그리고 어제 술김에 임유진이 원한다면 주겠다 하기도 했으니 딱히 거짓말한 것도 아니다.“그러고 보니 그 셔츠는 어디 있어요?”한지영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버렸어.”백연신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한지영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아쉬움 가득한 얼굴을 했다.“그걸 버리면 어떡해요. 그거 인터넷에 팔면 10만 원은 받을 수 있었다고요!”그렇다. 그녀는 지금 돈이 아까운 것뿐이다.“됐어, 그 돈 내가 줄게.”“그게 같아요? 돈도 내가 직접 벌어야 좋은 거라고요!”한지영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그의 손에 자신의 머리를 맡겼다.“연신 씨 조금만 더 세게 해봐요. 응, 거기. 거기 좀 더 주물러봐요.”백연신은 미안해하며 납작 엎드려도 모자랄 판에 당당하게 명령까지 하는 그녀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그럼 어제 유진이 먼저 데려다주고 여기로 온 거예요? 유진이도 많이 취했죠?”“많이 취하긴 했는데 유진 씨 데려다준 건 내가 아니라 강지혁이야.”그 말에 한지영이 눈
“그럼 우리가 어젯밤, 같이 있었다는 것도... 세상에...”한지영은 고통스러운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가뜩이나 보수적인 집안인데 그런 집안의 딸이 남자를 먼저 덮치고 밤을 보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마어마한 잔소리를 들을 게 뻔했다.“나랑 같이 있는 게 창피해?”괴롭게 신음하는 그녀를 보며 백연신은 괜스레 기분이 좋지 않아 물었다.“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한지영은 서둘러 해명했다.“우리 엄마 아빠는 정말 보수적이라는 사람이란 말이에요. 우리가 함께 밤을 보냈다는 걸 알면 뒷목 잡고 쓰러질까 봐 그래요.”백연신은 그녀의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부모님께는 술 취한 너를 호텔 방에서 재워뒀다고 했어.”한지영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일단 옷부터 갈아입어. 해장국 끓이라고 해뒀으니까 그거 먹으면 속도 괜찮아 질 거야.”어젯밤 결국 그녀에게 숙취해소제는 먹이지 못했다.“알았어요.”백연신은 침대에서 내려가 그녀에게 새 옷을 건네주더니 자기도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한지영은 옷을 갈아입는 그의 행동을 눈도 깜빡하지 않고 바라보았다.고작 옷을 입는 것뿐인데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아무리 취해도 기억을 잃는 게 아닌데... 한지영은 어젯밤 그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게 한스러울 따름이었다.“왜 그렇게 봐?”옷을 다 갈아입은 백연신이 그녀의 시선을 눈치채고 물어보자 한지영은 아쉬운 듯 시선을 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백연신이 가져다준 옷을 입으려고 들어보니 그건 명품이었고 가격은 그녀의 1년 수입보다 높았다.그녀는 잠깐 멈칫하다가 남자친구가 주는 것이니 그냥 당연하게 받기로 했다.한지영은 씻은 후 백연신과 함께 아래로 내려가 아침을 먹은 후 숙취해소제도 마셨다.그것 또한 마시기 싫다고 억지를 부리는 걸 백연신이 어르고 달래 힘겹게 다 마셨다.백연신은 한지영을 디자인 스튜디오까지 데려다주고 그녀가 내릴 때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다음은 없어. 다시는 그딴 곳 갈 생각하지 마. 알았어?”“알았어요.
[응, 괜찮아. 어제는 연신 씨네 집에서 잤어.]한지영은 술에 취해 백연신을 덮쳤다는 얘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아까 아침밥 먹을 때 백연신이 진지하게 얘기를 꺼냈었다.“너 이제 초범 아니야. 이러고도 나 책임 안 지겠다고 하면 진짜 죽을 줄 알아.”원래 이런 말은 여자가 하는 게 맞지만 이 두 사람 관계에서만큼은 백연신이 말하는 게 더 잘 어울리기도 했다.“책임 질 거지?”백연신이 그녀를 노려보며 물었다.“어... 그래야죠.”한지영은 뜨거운 그의 시선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아까 아침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한지영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분명히 달콤한 말은 아니지만 어쩐지 가슴 한편이 붕 뜨는 기분이었다.그녀는 임유진과 대화를 마친 후 일을 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임유진 역시 휴대폰을 집어넣고 일에 집중했다. 하지만 사건을 훑어보던 손이 얼마 안가 멈추고 그녀는 고민에 빠졌다.어젯밤 강지혁은 왜 그곳에 간 걸까? 게다가 그 장소는 또 어떻게 알고?그리고 누나 제안은 이미 거절했는데 왜 또 눈앞에 나타나는 걸까?헤어졌는데 분명히 헤어진 게 맞는데 이건 그녀가 상상했던 이별과는 매우 달랐다.깔끔하게 서로를 지우고 연락도 안 하며 다시는 못 볼 줄 알았지만, 그는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아니야. 생각하지 마, 임유진!’임유진은 고개를 세게 흔들며 지금은 강지혁이 아닌 일에 집중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다그쳤다.어느새 오후가 되고 차 변호사는 임유진을 사무실로 불러와 말했다.“유진 씨는 다시 곽동현 씨를 만나 그날 곽동현 씨가 얘기해줬던 의심스러운 부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사인까지 받아오세요. 증인이 직접 얘기했다는 증명이 필요합니다. 경찰 쪽은 얘기해 본 결과 재수사는 아직 어렵지만 이 사건을 담당했던 분에게 의문점을 제기하니 개인적으로 알아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이죠.”정말 희망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경찰 쪽에서 새로운 증거를 입수하게 되면 재수사도 분명히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