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어? 병은 잘 보였어? 의사가 뭐래?”강지혁이 물었다.“그럭저럭 괜찮대.”임유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그 두통은 나중에 내가 또다시 머리 아프다고 하면 네가 대신 의사 선생님 소개해줄래?”강지혁의 두 눈이 살짝 반짝였다.“그래.”“그나저나 너 언제부터 케이크 만드는 데 관심 가졌어? 이걸 배운 계기가 뭐야? 얼마나 배웠어?”임유진은 물으면서 고개 숙여 강지혁이 데코한 케이크를 자세히 관찰했다.문외한인 그녀가 볼 때 나름 데코가 괜찮았다. 빵집에서 파는 케이크랑 거의 비슷했다.“강지혁 씨는 습득 능력이 매우 빨라요. 한 번만 가르치면 바로 요령을 장악해요.”옆에 있던 제빵사가 칭찬을 남발했다.“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먼저 나가보세요.”강지혁이 제빵사에게 말했다.제빵사는 머리를 끄덕이고 주방을 떠났다.문득 커다란 주방에 임유진과 강지혁 두 사람만 남았다.“누나는? 오늘 병원 간 것 말고 또 다른 일은 없었어?”강지혁이 담담하게 물었다.분명 다 알면서, 그녀가 왜 병원에 갔는지 다 알면서, 게다가 병원에서 강현수와 마주친 것도 다 알면서 기어코 그녀 입에서 모든 얘기를 듣고 싶었다.거만일까 자존심 때문일까? 또 혹은... 그녀가 어떠한 일도 숨김없이 그에게 토로하길 바라는 마음일까?임유진은 살짝 불편한 기색이 스쳤지만 곧바로 웃어넘겼다.“딱히 특별한 일은 없었어. 아 참, 너 왜 집에서 케이크 만들어? 지금 이 시간대는 회사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그녀는 화제를 돌렸다.“누나가 말했잖아. 생일에 케이크 갖고 싶다며. 미리 배워둬야지.”그의 긴 속눈썹이 살짝 떨리면서 그 안에 드리워진 짙은 눈빛을 전부 가렸다.임유진은 두 눈을 깜빡거렸다.“그러니까 지금... 내 생일 때 직접 케이크를 만들어주려고?”“마음에 들어?”강지혁이 물었다.“나도 오늘 막 배우기 시작했어. 누나 생일 땐 제대로 된 케이크를 만들어야겠는데.”임유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 건 알고 있지만 직접 케이
그는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웃었다.그 미소는 마치 눈 녹은 봄날의 산처럼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그래, 유진아. 난 널 믿어.”강지혁이 넌지시 대답했다.그는 태생이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누군가를 진정 믿어본 적이 없다.다만 지금 이 여자가 하는 말은 전부 믿고 싶다. 그녀는 배신하지 않을 테니까. 그의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 테니까!그렇다면 유진의 말을 믿으면 된다. 강현수와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다고 믿으면 된다! 그 또한 아빠의 길을 반복하지 않을 거로 믿으면 된다!강지혁은 몸을 살짝 기울이고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임유진의 부드러운 키스와는 달리 그의 키스는 매우 거칠었다. 그녀의 스윗함을 전부 앗아갈 것처럼 거칠기 그지없었다.그렇게 거칠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너무 부드러웠다.이 부드러운 느낌은 오직 그녀에게만 선사한다!키스를 마친 후 임유진은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왜? 더 하고 싶어?”강지혁이 씩 웃었다.순간 임유진의 볼이 더 빨개졌다.그녀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너... 전에도 케이크 데코레이션 배운 적 있어? 엄청 숙련된 솜씨던데.”그는 한눈에 그녀의 속내를 알아챘지만 묻는 말에 고분고분하게 대답했다.“아니, 오늘 금방 배웠는데 꽤 재밌더라고.”“...”강지혁은 천재다. 인정을 안 할 수가 없다. 비즈니스에 대한 안목이 예리하고 결단력이 있을뿐더러 이젠 케이크까지 잘 만든다.“사실 데코 그렇게 어렵지 않아. 금방 배워.”강지혁이 대답했다.금방 배운다고? 임유진은 살짝 의아했다. 강지혁은 생크림을 조금 짜서 간단한 플라워를 만든 게 아니라 장미꽃을 만들었다고!“내가 가르쳐줄게. 한번 해봐.”그가 제안했다.임유진도 은근 도전하고 싶었다. 마침 또 주방에 케이크를 만들 재료가 다 있으니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강지혁은 그녀 앞에서 아주 천천히 케이크 데코레이션을 했다. 동작마다 일부러 속도를 늦춰 그녀가 자세히 관찰하고 배울 수 있게 도와줬다.사실 과정
강지혁은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앙증맞은 손을 꼭 잡았다. 실로 대비되는 손 크기였다.그의 손은 손가락 길이며, 모양이며, 관절과 손톱까지 완벽 그 자체였다.다만 그녀의 손은 관절마다 고르지 않고 두 군데는 유난히 돌출되어 있었는데 한때 무리하게 육체노동을 한 사람처럼 피부도 거칠고 또 찬찬히 들여다보면 흉터도 있었다...이런 손이 강지혁의 손에 쥐어져 있으니 더 못생겨 보였다.“왜 이렇게 내 손 잡고 있어...”임유진은 입술을 꼭 깨물고 손을 빼내려 했다.하지만 강지혁이 못 그러게 가로막았다.“앞으로 네 이 두 손으로 할 수 없는 일은 내가 다 도와줄게.”그녀는 흠칫 놀라더니 미안함이 섞인 그의 표정을 읽고 그제야 이해하며 가볍게 웃었다.“내 손이 못생긴 게 네 탓도 아닌데 뭘 그렇게 미안해해?”강지혁은 복잡한 눈빛으로 미소 짓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임유진은 지금 강지혁이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고 일부러 웃고 있으니까.‘네 탓도 아닌데’라는 말은 칼날처럼 그의 심장을 마구 난도질했다.그녀가 애초에 그런 일을 겪은 것은 강지혁과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강지혁이 암묵적으로 허락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손도 다치지 않고 완벽하게 보존했을 텐데.이 죄책감은 평생 어깨에 짊어지고 가야 할 듯싶다!“최고의 의사를 찾아서 이 손 반드시 철저하게 치료할 거야.”강지혁이 맹세했다.“그래.”임유진은 대답하면서도 손이 완치될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강지혁이 더 이상 죄책감을 받지 말길 바랄 뿐이다.게다가 그녀는 앞서 치료도 받고 약도 복용하여 출소 때보다 손 상태가 훨씬 좋아졌다. 이젠 너무 아프지도 않다.강지혁은 고개 숙여 그녀의 손가락에 키스했다. 변형된 관절마다 또 혹은 흉터가 생긴 곳마다 뜨거운 입맞춤을 남겼다.잔잔한 키스는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였다.임유진은 눈앞의 남자를 지그시 바라봤다. 평생 지금처럼 강지혁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그건 임유진의 인생 최고의 행복이겠지....“뭐라고?!”진세령은 못 믿겠다는
“누구야? 누가 날 매장해?”진세령이 분노를 터트렸다.하지만 매니저의 입에서 상대의 이름을 듣는 순간 낯빛이 창백해졌다.강지혁!그녀를 매장하려는 사람은 강지혁이란다!연예계에 전혀 관심 없는 강지혁이, 그 어떤 연예인도 겨냥한 적 없는 강지혁이 지금 처음 손대고 있다!이유라면... 진세령은 문득 전시회장에서 있은 일이 떠올랐다. 그녀는 일부러 자세를 낮추고 임유진에게 사과하며 용서를 빌었는데 단호하게 거절당했다.이어서 강지혁이 이렇게 말했다.“용서하기 싫으면 하지 마.”그때 진세령도 나중에 강지혁이 뭔가 수단을 쓸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아예 연예계에서 매장할 줄은 몰랐다.그래도 한때 그의 처제가 될 뻔한 사이인데!강지혁이 아무리 진애령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고 해도 외부인들이 볼 땐 강씨 일가와 진씨 일가는 나름대로 가까운 사이였다.강지혁이 그녀를 연예계에서 매장한 일이 퍼지기라도 하면 진세령은 앞으로 대중들 앞에 얼굴을 내밀 수도 없고 상류층에서도 웃음거리로 전락할 것이다!강지혁이... 임유진을 위해 이 정도로 몰아붙인단 말인가?!진세령의 두 눈에 분노가 가득 찼지만 급선무는 이 일을 해결하는 것이다.그녀는 서둘러 집에 돌아가 부모님께 말씀드렸다.진기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아무 말이 없었고 윤수경은 딸아이가 괴롭힘을 당하자 그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강지혁 이 자식이 해도 해도 너무하네. 우리 집안의 상가도 허물더니 이젠 네 진로까지 망치려고 들어?”윤수경은 말할수록 더 화가 나 아예 가방을 챙기고 강지혁을 찾아가 따져 물을 기세였다.진세령은 그런 엄마를 얼른 말렸다. 엄마는 욱한 성질이라 진정 그녀의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은 아빠뿐이다.“강지혁은 지금 한창 임유진에게 빠져있어요. 내가 한때 유진이를 저격한 것 때문에, 그리고 걔가 감방에 있을 때도 몇 번 좀 괴롭혔거든요. 그런 것들 때문에 임유진 대신 화풀이하는 거라고요.”진세령이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사실 나도 유진이한테 사과하고 싶었다고요. 심지어
옆에 있던 윤수경과 진세령 두 모녀는 이 말을 듣더니 화들짝 놀랐다.성남의 땅은 위치가 좋아 뜨거운 감자나 다름없다. 애초에 진씨 일가에서 거금을 들여 겨우 사놓은 땅이고 요 몇 년간 집값이 오르며 현 시세가 수천억에 달한다!수천억을 이대로 임유진에게 준다고?!그럴 순 없지!윤수경이 막 미쳐 날뛰려 할 때 상대가 뭐라 대답했는지 진기태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두 모녀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강 대표 정말 더 고려할 마음 없어?”설마... 강지혁이 거절한 거야?!윤수경과 진세령은 충격에 휩싸였다.한참 후 진기태는 통화를 마치고 축 처진 채 동정 어린 눈길로 딸아이를 바라봤다.씨는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 틀린 말 하나 없다.한때 모두에게 유린당하던 임유진이 어쩌다가 S 시에서 제일 막강한 뒷배를 차지하게 된 걸까?“연예계 떠나서 진씨 일가에 돌아와 발전해. 네 언니가 돌아갔으니 가업을 당연히 네가 물려받아야 해.”진기태가 말했다.진세령도 가업을 물려받아야 하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서른 살 이후의 계획이지, 지금은 일단 연예계에서 각종 상을 휩쓸고 으리으리하게 은퇴하여 가문의 기업으로 돌아와 그룹 총수가 될 생각이다. 그땐 만인의 전설로 불릴 테니까.그녀는 이러한 목표를 세우고 알차게 계획대로 살아가고 있다.그런데 지금 연예계에서 매장당하고 가문의 기업을 물려받으라니, 성질부터 완전히 다르잖아!그때 가서 진세령은 그저 남들 눈에 웃음거리로 전락할 뿐이다!“강지혁이 왜 거절해요? 그 땅은 현재 가격이 2천억 원이란 걸 모른대요?”진세령이 물었다.“모를 리가 있겠어. 그저...”진기태가 뜸 들였다.“그때 네가 유진의 앞날을 망쳤으니 지금 유진이를 대신해서 네 사업을 망치는 거래!”진세령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강지혁은 미쳐도 제대로 미쳤다!...임유진이 다시 윤이 식당에 갔을 때 탁유미 엄마랑 윤이가 안 보였다.“언니 어머님은 윤이 데리고 근처 공원에 가셨어요?”“아니요.”탁유미는 말하려다가
사실 요 며칠 그녀도 마음을 정했다. 만약 이경빈과 계속 더 얽히고설킬 운명이라면, 그가 반드시 찾아온다면, 그땐 그냥 이경빈이 실컷 복수하게 내버려 둘 셈이다.“하지만...”임유진이 더 말하려 했으나 탁유미가 그녀의 손을 가볍게 잡아당겼다.“유진 씨가 나 위해주는 거 알아요. 유진 씨라는 친구가 있어서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다만... 나랑 이경빈 사이의 일은 결국 해결해야만 해요.”탁유미는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유진 씨, 딱 하나 부탁할 게 있어요.”그녀의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에 임유진은 심장이 움찔거렸다.“만약... 경빈이가 정말 나를 찾아온다면 아마 한동안 엄마랑 윤이 보러 못 갈 거예요. 그땐 유진 씨가 나 대신 두 사람 보살펴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늙은이와 어린이니 옆에서 돌봐줘야 하거든요.”탁유미가 말했다.그녀는 이미 전 재산을 엄마에게 남겨뒀지만... 여전히 걱정됐다.그해 이경빈의 관계로 그녀의 친구들은 전부 그녀와 선을 그었다. 이젠 진심으로 믿고 의지할 데가 임유진밖에 없다.임유진이 얼른 대답했다.“내가 잘 보살필게요.”애초에 일자리를 구할 때 탁유미는 그녀가 감방에 다녀온 걸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바로 식당에서 출근하게 했다. 탁유미는 그녀를 절망 속에서 건져준 은인이다.그러니 인제 와서 은혜에 보답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게다가 탁유미의 엄마와 윤이도 다들 그녀를 너무 좋아한다. 특히 윤이는 그녀를 볼 때마다 찰떡처럼 붙어있고 그녀도 이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다.탁유미는 드디어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고마워요, 유진 씨.”“하지만 언니, 정말 위기에 처했을 땐 혼자 감당하려고 하지 말고 날 찾아와도 돼요.”임유진이 말했다.“알아요. 만약... 정말 못 버티겠다 싶으면 꼭 유진 씨 찾을게요.”탁유미는 이렇게 대답했지만 속으론 전혀 다르게 생각했다.‘만약 그 언젠가 내가 정말 이경빈의 복수를 감당하지 못할 날이 다가온다면 아마 유진 씨도 도와줄 수 없을 거예요.’임유진의 뒤에 강지혁이 있
하지만 정작 그녀가 가장 도움이 필요할 때 이 남자는 이런 식으로 말했다.“이번 생에 가장 후회되는 일이 바로 널 내 여자친구로 만든 거야.”얼마나 우습고 황당한 말인가? 이보다 아이러니할 순 없다!평생을 기약하던 맹세는 한차례 사고가 준 타격을 버텨내지 못했고 소위 말하는 유일하게 인정했다는 마음가짐은 그리 쉽게 딴 여자로 대체되었으니!한때 익숙했던 그 목소리가 지금은 이토록 낯설게 느껴졌다.임유진은 몸을 돌려 바로 뒤에 서 있는 소민준을 쳐다봤다. 여전히 명품으로 전신을 치장하여 패셔너블하고 꼭 마치 플레이보이 같았다.진세령이 왜 그와 함께한 지 알 것도 같았다. 겉모양은 번지르르하니까.“우리 사이에 더 나눌 얘기가 있었어? 내가 왜 그런 시간 낭비를 해야 하지?”임유진이 되물었다.“몇 분이면 돼. 너에게 몇 가지 할 말이 있어서 그래.”소민준이 초조하게 말했다. 이 기회를 놓칠까 봐 안절부절못하며 계속 말을 이었다.“유진아, 그해 일은 내가 잘못했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네 손을 놓아버렸어.”임유진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민준아, 이런 말이라면 전혀 할 필요 없어. 난 듣고 싶지 않거든.”소민준은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이것만은 꼭 알아줘. 널 해쳐서 억울하게 감방에 갇히게 한 사람은 허재명이야. 세령이는 억울해. 걔는 그저 네가 친언니를 죽인 줄 알고 그렇게 괴롭힌 거야. 세령이 미워하지 마. 걔 잘못 아니야.”임유진은 소민준의 이 말이 너무 웃길 따름이었다.그녀를 감방에 갇히게 한 건 허재명이 맞다. 하지만 자신은 억울하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를 때 진세령은 그녀에게 무슨 짓을 벌였던가?열 손톱을 뽑고 손가락 관절을 전부 부러트렸는데 이 고통을 대체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감방에서 그녀를 학대했던 사람들도 후에 알고 보니 그중 적잖은 사람이 진씨 일가에서 뒷돈을 받고 악행을 저질렀다.진 씨네 가족에게 진애령의 목숨만 목숨이고 다른 사람 목숨은 개 취급도 못 받는다는 말인가?임유진은 가끔 이런 생각까지
“모질다고?”임유진이 그의 말을 가로챘다.“고작 이 정도인데 모질어? 진짜 모질게 구는 게 어떤 건지 한 번 보여줘?!”그녀가 감방에서 겪은 비인간적인 괴롭힘은 삶을 포기하고 싶게 만들었다. 소민준은 아마 그녀가 겪은 고통의 10분의 1도 못 겪어봤을 것이다.“세령이가 망해야 속이 시원하겠어?”소민준이 씩씩거렸다.“걔도 그땐 날 망쳤어. 안 그래? 내 이 두 손도 운이 좋았으니 망정이지, 지금 아무 물건도 못 들었을 수도 있다고.”임유진이 맹비난을 해댔다.소민준은 숨이 턱 막혀 그녀의 두 손을 물끄러미 쳐다봤다.사실 그도 이 몇 해 동안 머릿속에 가끔 그해 그 장면이 떠올라 마음이 복잡해질 때가 많다.임유진이 누명을 뒤집어쓴 걸 알게 된 이후로 더 괴로웠다. 만약 그때 임유진이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지 않았더라면 그와 그녀는 계속 함께할 수 있었을 텐데.다만 곧장 이런 생각을 접었다.소민준에게 있어 진세령이야말로 최상의 선택이다. 그녀는 소민준에게도, 그의 집안에도 완벽한 선택이다.“유진아, 넌 이젠 강지혁 씨가 있는데 왜 굳이 세령이를 죽음으로 몰아붙여?”소민준의 말투가 조금 유순해졌다.임유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증오에 섞인 두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죽음으로 몰아붙인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얘기하는 거야? 진세령은 지금 단지 연예계에서 매장당할 뿐 여전히 진씨 일가의 둘째 딸이야. 가족도 있고 너라는 약혼자도 있어서 진가네와 소가네 두 집안이 든든한 뒷배가 되어준다고.”“진짜 죽음으로 몰아붙이는 건 가족도 잃고 연인도 잃고 너희 두 집안이 철저하게 무너지는 거야. 만신창이가 되어서 도움을 구할 데도 없이 죽지 못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절망이라고.”임유진이 말을 내뱉을 때마다 소민준의 안색이 점점 더 창백해졌다.“어때? 진짜 죽음으로 밀어 부쳐볼까?”임유진의 물음에 소민준은 한마디 말도 못 했다.그녀는 차를 타고 자리를 떠났다. 소민준은 몸을 휘청거리며 방금 그녀가 말한 죽음으로 몰아붙이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