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윤이는 탁유미가 선물을 준비하는 걸 보며 호기심에 물었고 그때 그녀가 7월 22일이 임유진의 생일이라고 알려줬다.윤이는 아마 그 뒤로 계속 임유진의 생일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 같다.하지만 생각해보면 탁유미와 탁유미 엄마를 제외하고 임유진만큼 윤이를 잘 대해줬던 사람이 또 없었으니 윤이가 그녀에게 애정을 보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나도 이모한테 선물 주고 싶어요."아이의 진지한 표정에 탁유미가 눈을 깜빡였다.그녀는 임유진이 윤이를 도와준 일들이 떠올랐다. 임유진이 아니었으면 윤이는 이렇게 빨리 회복도 못 했을 것이고 좋은 치료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백화점 안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선물을 고르는 데 시간이 걸리고 얼굴이 노출될 위험도 커지게 된다.이경빈은 아직 S 시에 있고 그가 만약 윤이를 보기라도 한다면...탁유미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몇 년도 지난 일이지만 그 남자의 얼굴을 떠올리면 그때의 고통이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때 가장 사랑했던 남자가 남기고 간 흉터가 말이다."엄마!"윤이는 고개를 쳐들고 간절히 원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지간히 선물을 고르고 싶은가 보다.탁유미는 잠깐 망설이나 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대신 빨리 골라야 해.""네!"탁유미는 아들의 손을 잡고 백화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오랜만에 보는 명품 브랜드를 보며 조금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이경빈의 여자였을 때 그녀는 그에게서 셀 수도 없이 많은 브랜드 옷과 가방을 선물 받았다.탁유미가 원하는 거면 이경빈은 주저하지 않고 사다 주었다. 그때의 그녀는 이게 사랑인 줄 알았다.하지만 물질로 쌓아 올린 감정은 사랑이 될 수 없었고 거기에 진심은 조금도 담겨있지 않았다.그리고 그녀가 이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윤이는 탁유미의 손을 잡고 3층 여성 브랜드 매장으로 향했다.사실 아이는 사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유리 구두였다. 얼마 전 공원에서 산
이경빈이다!그는 슈트 차림에 예전처럼 머리를 깔끔하게 위로 올렸고 잘생긴 얼굴은 단지 옆모습만으로도 탁유미의 심장을 아프게 했다.그는 마치 세월을 혼자 비껴간 사람처럼 여전히 가슴 떨리게 잘생겼다. 하지만 그에 반해 탁유미는 만신창이가 되었고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그때 그녀의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듯 이경빈이 그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탁유미는 홱 하고 고개를 돌리더니 이내 아들을 안고 비상계단 쪽으로 뛰어갔다."손님, 손님?"매장 직원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탁유미를 향해 외쳤다.에스컬레이터에 타고 있던 이경빈은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누군가가 황급히 도망가는 걸 본 후 얼굴이 급속도로 굳어졌다.그러고는 미친 듯이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 그녀가 달려간 곳으로 뛰어갔다. 한편, 이경빈 뒤에 있던 일행들은 평소 침착하고 여유롭기로 유명한 자신들의 대표가 갑자기 이성을 잃은 듯 뛰어가는 걸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이경빈의 경호원 두 명도 잠시 황당해하고 있다가 곧바로 이경빈을 따라갔다.이경빈는 지금 눈에 뵈는 게 없었고 오직 여자의 뒷모습만 눈에 아른거렸다.그 여자다! 그 여자가 틀림없다!분명히 칙칙한 옷을 입고 머리는 대충 위에 포니테일로 묶은, 그의 기억 속 여자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지만 달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여자라고! 그리고 아까부터 거세게 뛰기 시작한 이 심장도 그녀가 맞다고 외치고 있는 듯했다.탁유미!몇 년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그 이름. 그녀의 눈물이, 그녀의 마지막 말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올랐다.탁유미는 감옥에 들어간 거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겠지만, 절대 아니었다.그와 그녀는 절대 이대로 끝이 날 수가 없는 사이이고 그녀가 빚진 건 모두 찾아와야만 했다.하지만 출소 후 탁유미는 마치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사라져버렸고 사람을 풀어도 봤지만, 여전히 아무런 수확도 없었다.그런데 S 시에 있었다니!이경빈이 1층으로 내려왔을 때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엄마?"윤이는 택시에 올라탄 후에야 탁유미를 불렀다. 이모 선물을 고르고 있을 때 엄마가 왜 갑자기 자신을 안아 들고 허겁지겁 뛰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해 택시로 향하는 길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아까는 엄마가 보고 싶지 않은 사람과 마주치는 바람 그만 윤이 생각도 안 하고 뛰어버렸네. 이모 선물은 엄마랑 다음에 와서 살까?" 탁유미의 말에 윤이는 착하게도 고개를 끄덕여주었다."엄마가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에요?"그 말에 탁유미의 코가 시큰해졌다. 윤이가 지금보다 더 어릴 때 자신의 아빠에 관해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럴 때면 그녀는 항상 아이에게 아빠는 하늘에 있다고 대답했다.윤이가 언제 하늘에 있다는 의미를 알아챌지 그녀는 모른다. 하지만 아까 아빠가 불과 몇십 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는 걸 말하면 안 된다는 사실만은 똑똑하게 알고 있다.너희 아빠는 너의 존재를 반가워하지도 않고 네가 있는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 어린아이에게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엄마, 왜 울어요?"자그마한 손이 탁유미의 얼굴을 매만지며 그녀를 위로했다.탁유미는 그제야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엄마, 울지 마세요. 윤이 말도 잘 듣고 빨리 말도 배우고 앞으로 공부도 열심히 할게요."윤이는 그녀가 자신 때문에 속상해하는 거라고 생각했다.아직 듣지 못하던 시절 탁유미는 항상 그를 껴안고 울었고 외할머니와 얘기를 나눴다. 입술 모양으로밖에 추측할 수 없었지만 아마 아이의 귀가 안 들린다는 것 때문에 속상한 듯 보였다.그러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부터 탁유미는 슬퍼하는 일이 적어졌고 매일매일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윤이는 엄마가 슬퍼하는 게 싫었기에 열심히 말을 배워서 엄마를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또래 애들보다 빨리 철이 든 듯한 아이를 보며 탁유미는 마음이 아팠다."응, 엄마 이제 안 울게. 그리고 엄마는 앞으로도 계속 윤이 옆에 있을 거야."그녀는 평생을 윤이 옆에 있고 싶었지만, 자꾸만
임유진은 지금 병원 앞에 서 있다. 그녀는 아직도 이 선택이 맞는지 감이 서지 않았다.정말 잃어버린 기억이라면 되찾고 나서는 어떻게 되는 거지? 강현수와는 어떤 사이가 되는 거며 강지혁은 또다시 불안해하는 걸까?정말 기억을 찾는 게 맞을까? 아니면 영원히 묻어두는 게 더 좋으려나?또 혹은 앞으로 강현수와 일정한 거리만 유지한다면 이 두통도 자연스럽게 괜찮아지는 건 아닐까?"유진 씨!"그때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임유진은 어느새 안은영 의사 진료실 앞에 도착했고 방금 그녀의 이름을 불렀던 사람은 바로 어제 안은영 선생님 옆에 있던 간호사였다."안 선생님께서 오늘 급하게 볼일이 있으시다고 출근을 못 했어요. 여기까지 헛걸음하게 해서 죄송해요."간호사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급한 사정이라 그런지 유진 씨에게 미처 얘기도 못 했다고 하더라고요."그 순간 임유진은 왠지 홀가분해진 느낌이 들었다.안은영 의사가 없다는 건 적어도 오늘은 최면 치료를 안 해도 되는 것이고 기억을 되찾을 걱정 역시 안 해도 된다는 것이다.‘뭐? 걱정?’그녀는 지금 기억을 되찾는 걸 두려워하는 건가?기억을 되찾고 나면 모든 일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더 혼란스러워 질까 봐?그녀는 마음속 깊이 이 기억은 되찾지 않는 게 좋겠다고 이미 여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임유진은 고개를 숙인 채 다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그리고 막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팔을 잡고 비상계단으로 데려갔다.이곳은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지 않는 곳으로 주위가 고요한 것이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했다."강현수 씨?!"임유진은 어이없고 놀란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비상계단 쪽에는 오직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밖에 없었고 강현수는 그녀에게 표정을 들키기 싫은 듯 빛을 등진 채 서 있었다."여기는 왜 왔어요? 최면은 왜 하려고 하는데요?"강현수의 다급한 외침에는 절박함이 서려 있었다.모든 걸 다 알고 있는 듯한 그의 말에 임
임유진의 침묵에 강현수는 이제 확신이 들었다."정말 뭔가를 잊어버린 거야? 그리고 그게 나와 관련 있는 일이고?"임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네요. 나는 그저 최면을 통해 다른 증세를 치료하려고 온 것뿐이에요. 강현수 씨도 알다시피 난 3년 동안 감옥에 있었고 불안증세가 조금 있어요."강현수는 그녀를 꿰뚫어 보듯 눈을 마주치고 물었다."당신이 불안증세가 있다고?"임유진은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답했다."네."강현수는 잘생긴 얼굴을 그녀의 얼굴 가까이 가져다 댔다."다시 한번 물어볼게. 그때 전시회에서 내 손 잡고 했던 말 뭐였어? 왜 날 구해준 그 아이와 똑같은 말을 했냐고!""그때도 말했지만 별다른 뜻은 없었어요. 그저 헛소리일 뿐이라고요."임유진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대꾸했다."하, 헛소리라고?"강현수가 코웃음을 쳤다."그때 너는 내 손을 잡고 절대 이 손 놓지 않을 거라고, 반드시 날 데리고 올라갈 테니 이 손 꽉 잡으라고 했어! 헛소리를 어떻게 해야 이런 말이 나와? 그리고 날 어디로 데려가려고 했던 건데?"그의 질문들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그녀의 심장을 찔렀고 임유진은 가슴이 답답해 나며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강현수는 서서히 그녀와의 거기를 좁혔고 임유진의 등은 어느새 벽에 부딪혔다.그녀는 본능적으로 손을 올려 그를 밀치려고 했지만, 강현수에 이해 두 손 모두 벽에 포박되었다."강현수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이거 안 놔요?!"임유진이 아무리 저항해 봤자 남자의 힘은 당해낼 수가 없었다."임유진, 날 구해준 걸 인정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강현수가 울부짖었다.천하의 강현수가, 평생 사람 위에 군림했던 남자가 지금은 한 여자 때문에 애원하고 있었다.임유진은 발버둥 치는 걸 멈추고 고개를 들어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거리가 좁혀진 덕에 드디어 그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눈가가 빨갛게 부어오른 그는 지금 죄인을 보듯 그녀를 노려보았다.하지만 그 눈빛 속에는 억울함도
임유진은 숨을 깊게 들이쉰 후 더는 몸부림치지 않고 되레 차분해졌다.“강현수 씨를 구해준 사람은 여진 언니 아닌가요? 이 점은 현수 씨가 직접 조사했겠는데 되레 나한테 이렇게 묻는 게 웃기지 않아요?”그녀는 강현수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순간 강현수의 낯빛이 창백해졌다.“강현수 씨 추측이 너무 황당하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여진 언니가 이 자리에서 방금 현수 씨가 한 질문을 들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요?”강현수는 충혈된 두 눈으로 임유진을 빤히 쳐다봤다. 그가 조사한 바로 모든 단서가 배여진을 지목하고 있다.그녀야말로 강현수가 찾는 사람이라고 모든 단서가 알려주고 있다.하지만 왜? 강현수는 여전히 눈앞의 이 여자말로 어릴 때 그 소녀 같은 걸까? 외모 때문에? 아니면 그녀가 가끔 내비치는 그런 눈빛 때문에?뭇사람들에게 짓밟혀도 여전히 남아있는 오만함과 정의에 대한 동경과 추구... 그런 모습들이 너무 닮아있었다!“너 정말... 아니야?”간단한 물음이지만 그의 입에서 내뱉기가 너무 어려웠다.“나 아니에요.”임유진이 대답했다.강현수는 불쑥 가볍게 웃었다.“그러게. 너 아니지. 너 아니야...”단지 이 팩트가 마치 그를 얼음물에 잠가놓은 것처럼 뼛속까지 춥게 했다.대체 왜? ‘나 아니에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왜 이렇게 괴로운 걸까? 마치 심장을 도려내는 것처럼 죽도록 아팠다.강현수는 죽을힘을 다해 이성의 끈을 잡고 그녀의 손목을 놓아주었다.꽉 잡았던 열 손가락에 서서히 힘을 풀자 임유진도 그제야 구속에서 벗어나 황급히 비상구 쪽으로 걸어갔다.강현수는 온몸에 힘이 쫙 풀려서 초췌한 몰골로 벽에 기대 쓴웃음을 지었다.결국 그녀가 아니었다. 이 모든 건 강현수가 제멋대로 추측한 일이다.어릴 때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배여진이다.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지 않은가?!...임유진은 황급히 병원을 나섰지만 마음은 줄곧 침울했다.그녀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강현수에게 자신이 그 소녀가 아니라고 말했을 때 실은 그 꿈에 대한 진실도 인제 그
“왔어? 병은 잘 보였어? 의사가 뭐래?”강지혁이 물었다.“그럭저럭 괜찮대.”임유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그 두통은 나중에 내가 또다시 머리 아프다고 하면 네가 대신 의사 선생님 소개해줄래?”강지혁의 두 눈이 살짝 반짝였다.“그래.”“그나저나 너 언제부터 케이크 만드는 데 관심 가졌어? 이걸 배운 계기가 뭐야? 얼마나 배웠어?”임유진은 물으면서 고개 숙여 강지혁이 데코한 케이크를 자세히 관찰했다.문외한인 그녀가 볼 때 나름 데코가 괜찮았다. 빵집에서 파는 케이크랑 거의 비슷했다.“강지혁 씨는 습득 능력이 매우 빨라요. 한 번만 가르치면 바로 요령을 장악해요.”옆에 있던 제빵사가 칭찬을 남발했다.“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먼저 나가보세요.”강지혁이 제빵사에게 말했다.제빵사는 머리를 끄덕이고 주방을 떠났다.문득 커다란 주방에 임유진과 강지혁 두 사람만 남았다.“누나는? 오늘 병원 간 것 말고 또 다른 일은 없었어?”강지혁이 담담하게 물었다.분명 다 알면서, 그녀가 왜 병원에 갔는지 다 알면서, 게다가 병원에서 강현수와 마주친 것도 다 알면서 기어코 그녀 입에서 모든 얘기를 듣고 싶었다.거만일까 자존심 때문일까? 또 혹은... 그녀가 어떠한 일도 숨김없이 그에게 토로하길 바라는 마음일까?임유진은 살짝 불편한 기색이 스쳤지만 곧바로 웃어넘겼다.“딱히 특별한 일은 없었어. 아 참, 너 왜 집에서 케이크 만들어? 지금 이 시간대는 회사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그녀는 화제를 돌렸다.“누나가 말했잖아. 생일에 케이크 갖고 싶다며. 미리 배워둬야지.”그의 긴 속눈썹이 살짝 떨리면서 그 안에 드리워진 짙은 눈빛을 전부 가렸다.임유진은 두 눈을 깜빡거렸다.“그러니까 지금... 내 생일 때 직접 케이크를 만들어주려고?”“마음에 들어?”강지혁이 물었다.“나도 오늘 막 배우기 시작했어. 누나 생일 땐 제대로 된 케이크를 만들어야겠는데.”임유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 건 알고 있지만 직접 케이
그는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웃었다.그 미소는 마치 눈 녹은 봄날의 산처럼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그래, 유진아. 난 널 믿어.”강지혁이 넌지시 대답했다.그는 태생이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누군가를 진정 믿어본 적이 없다.다만 지금 이 여자가 하는 말은 전부 믿고 싶다. 그녀는 배신하지 않을 테니까. 그의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 테니까!그렇다면 유진의 말을 믿으면 된다. 강현수와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다고 믿으면 된다! 그 또한 아빠의 길을 반복하지 않을 거로 믿으면 된다!강지혁은 몸을 살짝 기울이고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임유진의 부드러운 키스와는 달리 그의 키스는 매우 거칠었다. 그녀의 스윗함을 전부 앗아갈 것처럼 거칠기 그지없었다.그렇게 거칠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너무 부드러웠다.이 부드러운 느낌은 오직 그녀에게만 선사한다!키스를 마친 후 임유진은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왜? 더 하고 싶어?”강지혁이 씩 웃었다.순간 임유진의 볼이 더 빨개졌다.그녀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너... 전에도 케이크 데코레이션 배운 적 있어? 엄청 숙련된 솜씨던데.”그는 한눈에 그녀의 속내를 알아챘지만 묻는 말에 고분고분하게 대답했다.“아니, 오늘 금방 배웠는데 꽤 재밌더라고.”“...”강지혁은 천재다. 인정을 안 할 수가 없다. 비즈니스에 대한 안목이 예리하고 결단력이 있을뿐더러 이젠 케이크까지 잘 만든다.“사실 데코 그렇게 어렵지 않아. 금방 배워.”강지혁이 대답했다.금방 배운다고? 임유진은 살짝 의아했다. 강지혁은 생크림을 조금 짜서 간단한 플라워를 만든 게 아니라 장미꽃을 만들었다고!“내가 가르쳐줄게. 한번 해봐.”그가 제안했다.임유진도 은근 도전하고 싶었다. 마침 또 주방에 케이크를 만들 재료가 다 있으니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강지혁은 그녀 앞에서 아주 천천히 케이크 데코레이션을 했다. 동작마다 일부러 속도를 늦춰 그녀가 자세히 관찰하고 배울 수 있게 도와줬다.사실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