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임유진이 감개무량하게 말했다.“앞으로도 그런 오해는 없을 거야. 애타게 찾던 사람을 드디어 만났으니 잘된 일이야.”이젠 강현수도 그렇게 울진 않겠지! 그녀의 머릿속에 문득 그날 밤 강현수가 그녀 앞에서 울던 모습이 떠올랐다.웬일인지 가슴 한쪽이 답답하고 머리가 이따금 아파 났다.임유진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왜 그래?”강지혁이 황급히 물었다.“아니, 그냥... 갑자기 머리가 아파서.”그녀가 대답했다.강지혁은 사색이 된 그녀를 보더니 미간을 구겼다.“안색이 너무 안 좋아. 근처 모텔에 가서 조금만 쉴래?”이 근처엔 제대로 된 호텔은커녕 작은 모텔들만 몇 개 보였다.“괜찮아.”임유진이 대답했다. 두통도 잠시일 뿐 이렇게 얘기 나누는 사이에 통증이 금세 사라졌다.“이젠 안 아프네. 가서 외할머니 옆에 더 있고 싶어.”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혁아, 나 여기서 3일 있어야 해. 외할머니 발인하신 후에 S 시로 돌아갈 테니 넌 일단 먼저 돌아가.”“내가 항상 옆에 있어 준다고 했잖아. 그새 잊었어?”강지혁이 말했다.“하지만 사흘이면 회사에 처리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일 거야.”임유진이 말했다.“난 혼자 여기 있어도 괜찮아. 어차피... 앉아서 외할머니 지켜볼 뿐이니.”외할머니의 빈소를 지키면서 그녀는 자신이 꼭 아웃사이더처럼 느껴졌다. 할머니께 문상 온 손님들에게 인사하는 것 외엔 아무런 대화가 없었으니까.오히려 배여진은 사람들에게 떠받들려 자신을 향한 아부를 즐기고 있었다.임유진은 당연히 알고 있다. 이런 변화는 전부 강현수 때문이란 것을.“누나가 여기 며칠 있든 난 항상 누나 옆을 지켜줄 거야.”강지혁이 말했다.“누나 혼자 여기 두고 가면 내가 마음이 안 놓여.”“괜찮아. 이젠 삼촌들도 네 신분을 알아서 감히 예전처럼 나한테 막 대하지 못해.”임유진은 이 점에 대해 아주 확신한다.감히 강지혁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몇 안 되는데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이때 누군가가 임유진이 들어오는 걸 보더니 곧장 말했다.“예전에는 너희 집안에서 유진이가 제일 잘 나갈 줄 알았는데 어릴 때 그 씩씩하던 아이가 지금은 되레 제일 초라한 꼴이 됐네. 여진이야말로 노씨 일가의 자랑 아니겠어.”이 사람은 임유진을 비하하며 배여진을 추켜세웠다. 배여진은 원래 이런 말을 듣기 좋아했다. 어쨌거나 어릴 때부터 두 사람은 생김새도 비슷하고 나이대도 비슷해 다들 두 사람을 비교했다.임유진은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에 입학했지만 배여진은 그녀에 비해 성과가 미약하여 사람들이 늘 깔보았다.그리하여 배여진은 임유진 앞에서 더 기세등등해질 수 있는 게 소원이었다. 다만 그건 임유진의 남자친구가 강지혁이란 걸 알기 전까지 일이다.이제 강지혁의 정체를 알게 되니 배여진은 그저 입을 나불거리는 저 친척을 쥐어패고 싶은 심정이다. 그녀는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 친척은 아직 아부가 모자란 줄로 알고 계속 입을 떠벌렸다.“너희 외할머니 병도 다 유진이 때문에 화병 나서 그런 거야. 집안에 감방 다녀온 사람이 생겼으니 화 안 나게 생겼어? 여진이 네가 장해서 다행이야. 어릴 때 강현수 도련님을 구해드려서 이렇게 몇 년 만에 찾아오셨잖니. 우리 여진이는 앞으로 돈 걱정 없이 평생 누리면서 살겠네.”배여진은 안색이 돌변하여 곁눈질로 임유진을 흘겨봤다. 친척들의 말에 임유진이 뭔가 생각난 건 아닌지 걱정됐다.다만 그녀의 눈빛이 강지혁에게 닿고 말았다. 짙은 눈동자는 마치 그녀를 비난하듯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자신은 단지 사칭한 사람이란 것을 바로 들켜버린 것만 같았다.“됐어요, 그만 얘기해요.”배여진이 그 친척에게 말했다.“외할머니 병이 유진이 때문이라니요? 할머니는 아직 발인도 안 하셨는데 이렇게 말하는 거 너무 지나친 것 같네요!”말을 마친 배여진은 얼른 임유진 곁으로 다가와 그녀를 위로했다.“유진아, 너무 신경 쓰지 마. 저 사람들 함부로 말한 것 때문에 우리 둘 사이에 금이 가면 안 되지.”배여진에게 질책당한 친척은 어리둥절
임유진은 멍하니 강지혁을 쳐다보다가 한참 후에야 대답했다.“그럼 내가 그 많은 일을 겪은 것도... 다 널 만나고 사랑하기 위해서인 것 같아. 이런 우여곡절을 겪지 않았다면 너랑도 아무런 접점이 없었겠지.”그녀가 감옥에 가지만 않았어도 소민준과 결혼하고 계속 변호사로 지냈을 것이다. 그리고 결혼 뒤에 여전히 소씨 일가에 스며들지 못했을 테고.혹은 소민준의 부모님이 한사코 그녀를 반대해 결국 그와 결혼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다만 어찌 됐든 그녀는 그 깊은 밤에 초라한 몰골로 강지혁을 만나고 그를 집에 데려올 일은 없다.두 사람은 두 개의 평행선처럼 서로 접점 없이 스쳐 지나갔겠지.강지혁의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 그는 임유진을 가볍게 안고 그녀의 목깃에 얼굴을 깊이 파묻으며 그녀의 체취를 맡았다.“맞아, 누나도... 나 만나려고 그랬을 거야.”하지만 그녀는 아직 모른다. 자신이 겪은 고통 중에 일부분은 강지혁이 줬다는 것을. 애초에 강지혁이 그녀에게 일말의 동정이라도 있었다면, 일말의 선심이라도 베풀었다면 그녀의 운명은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그 3년간의 옥살이는 더더욱 없었을 테고.그녀를 안은 강지혁의 두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너 왜 그래? 추워?”임유진이 물었다.“응, 조금 춥네.”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내가 가서 담요 가져올게. 너 걸쳐.”밤바람은 차갑기 마련이다. 풍습대로 빈소를 지킬 때 방 문을 닫지 말아야 해서 찬 바람이 틈 사이로 스며들었다.임유진이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는데 강지혁이 두 손으로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담요는 됐고 누나가 좀 안아줘.”애교 섞인 나긋한 목소리였다.임유진은 문득 이런 강지혁이 위로를 얻으려는 어린아이 같았다.그녀는 두 손 들어 다정하게 강지혁을 안아줬다.“혁아, 이러면 안 추워?”제스처처럼 부드러운 그녀의 목소리가 심금을 울렸다.강지혁은 그녀의 겨드랑이 사이에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응, 안 추워.”오직 그녀만이 그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다.한때 강지혁은
강현수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속으로 되뇌었다.‘나 지금 뭐 하는 거지? 이제 다 해결됐잖아. 배여진이 바로 내가 찾던 사람이잖아!’애초에 그를 구한 사람은 배여진이다. 그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배여진은 이 몇 해 동안 썩 잘 지내지 못했다. 강현수가 할 일은 배여진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여 그때 당시 그를 살려준 생명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다만 강현수의 마음은 배여진을 찾은 이후로 오히려 무언가를 잃은 것처럼 텅 비어버렸다.“현수 씨, 뭐 봐요?”배여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현수는 고개 돌려 이리로 다가오는 배여진을 쳐다보더니 앞으로 걸어갔다.“아니야, 아무것도. 오늘은 이만 갈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해.”“벌써 가게요?”배여진은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밤이 너무 늦었어요. 여기서 하룻밤 자고 내일 돌아가요. 여기 빈방도 있어서 바로 쉬면 돼요.”“아니야, 내일 회사에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도 있어서 이젠 돌아가야 해.”강현수가 대답했다.그가 이렇게 말한 이상 배여진도 더는 뭐라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마지못해 동의하며 강현수와 함께 차 세운 곳으로 걸어갔다.“현수 씨... 전남편이 전에 작성한 이혼합의서에 사인 안 하겠다고 번복해요. 20억을 더 줘야 사인한대요.”배여진이 말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혼했다고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법적으로 아직 이혼하지 않았다.“그 사람과의 결혼생활이 정말 고통스럽다면 내가 도와줄게. 이혼에 관한 일은 걱정하지 마. 며칠 뒤에 재판이 열리면 분명 이혼에 동의할 테니까.”강현수가 담담하게 말했다.배여진은 확답을 얻은 듯 경배에 찬 눈길로 강현수를 쳐다봤다. 이 남자는 세상 모든 난제를 다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오직 이 남자만이 그녀 마음속의 왕자였다!애초에 본인 인생은 흐지부지하게 흘려보낼 거라 여겼는데 뜻밖에도 연예계 황태자께서 눈앞에 나타났다.배여진은 평상시에 인터넷에서 강현수에 관한 가십거리 뉴스를 많이 봐왔는데 그와
배여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그럼 만약 내가 현수 씨를 안 구했다면 나한테 잘해주지 않을 거예요?”그녀는 단지 ‘그런 거 아니야’라는 이 한마디만 원했는데 정작 돌아온 건 차갑고 소외감이 느껴지는 짙은 눈빛이었다.눈앞의 남자는 차분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고만 있었지만 그녀에게 주는 느낌은 마치 낯선 이를 대하는 식이었다.배여진은 문득 가슴이 움찔거리고 방금 했던 말이 후회됐다.“난 그저... 현수 씨가 내게 잘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랬어요. 내가 구해준 것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무언가도 있었으면 해서요...”그녀는 말을 더듬으며 겨우 대답했다.“됐어, 너무 많은 생각 하지 마.”강현수가 담담하게 말했다.“시간이 늦었어. 너도 일찍 자.”그는 말하면서 차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타려는데 배여진이 뒤에서 갑자기 외쳤다.“운전 조심해, 현수야!”‘현수야’라는 이 한마디에 강현수는 돌연 몸이 굳어버렸다. 그의 머릿속엔 그해 가녀린 소녀가 그를 업고 하산하는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그때 그 소녀는 쉴 새 없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가 과다출혈로 쓰러질까 봐 그런 듯싶다.“넌 이름이 뭐야? 말 안 하면 그냥 현수라고 부른다. 옷깃에 적은 글자 네 이름 맞지? 현수야, 자면 안 돼. 자면 못 깨어나. 내가 이야기해줄게. 무슨 이야기 들을래? 나 이야기 엄청 잘한다! 현수야, 얼른 대답 좀 해봐! 현수야... 현수야...”‘현수야’라는 세글자가 이 몇 해 동안 수없이 그의 귓가를 맴돌았고 매번 꿈속에서 놀라 잠을 깨기도 했다.그때 만약 그 소녀가 없었다면 지금의 강현수도 없다!그는 몸을 돌려 배여진을 지그시 바라봤다.“그래, 알았어.”눈가에 스쳤던 차가운 기운이 조금은 사라진 듯싶었다.강현수의 차가 멀어져간 후에야 배여진은 표정이 서서히 변하고 이를 악문 채 제자리에 서서 두 주먹을 꽉 쥐었다.어쨌거나 그녀는 이미 임유진의 신분을 사칭했으니 임유진만 이 일을 기억하지 못하면 배여진이 바로 그해 강현수를 구한 그 소녀를
이 그림들은 모두 당시 ‘그녀’가 강현수를 업고 하산할 때의 광경이 아니면 두 어린 남녀가 산속에서 서로 의지하고 있는 풍경이었다.그때의 두 사람은 의지할 곳이 서로뿐이었고 아마도 그때 처음으로 옆에 있는 이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심지어는 이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많고 많은 그림 중에 하나의 예외도 있었는데 거기에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닌 성인 여성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 속의 여성은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고 눈동자에는 따뜻함이 흘러나와 있었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마치 모든 걱정이 다 사라지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강현수는 그림 앞에 서서 가만히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칠흑같이 어두운 눈동자 속에 슬픔이 스쳐 지나갔다.만약 이곳에 임유진이 있었으면 강현수는 그림 속 여인이 바로 임유진, 그녀라는 걸 확신했을 것이다."왜 네가 아닌 거야..."원망이 섞여 있는듯한 그의 목소리가 화실에 울려 퍼졌고 그에 대한 답은 돌아오지 않았으며 그림 속 여인은 그저 옅게 웃으며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강현수는 손을 들어 여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단지 그림인데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그의 손길은 마치 실존하는 여인의 얼굴을 만지는 듯했다.만약 임유진이 지금 여기 나타난다면 그녀는 강현수가 이렇게 만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오늘 웨딩드레스 모습의 그녀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강현수는 그제야 임유진과 강지혁이 결혼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임유진은 강현수가 아닌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될 것이고 앞으로는 그 남자만 눈에 담을 것이며 그 남자의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강현수와는 아무런 가능성도 남기지 않은 채 말이다.이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자 강현수는 갑자기 숨이 막혀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한참 후, 갑자기 화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강현수가 입을 열었다."화실에 있는 그림 전부 다 치워버리세요. 그리고 방문을 잠근 후 그 누구의 출입도 허락하지 마세요.""네, 알겠습니
한편 임유진은 이 마을에서의 평판이 좋지 못하다. 마을 사람들은 감옥살이한 임유진을 경멸했고 조문 오는 사람 중에는 혀를 끌끌 차며 삿대질하거나 심지어는 노씨 집안 사람들에게 그녀를 내쫓아버리라고 얘기하기도 했다.그러나 매번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심장이 남아나질 않는 건 임유진이 아니라 오히려 노씨 집안 사람들이었다. 임유진을 건드려 화가 난 강지혁이 홧김에 노씨 집안을 없애버릴 수도 있는 노릇이었으니까. 게다가 강현수가 배여진을 지켜준다고는 하지만 그 범위가 노씨 집안까지일지는 그 누구도 알 길이 없었다.상복을 입은 임유진의 얼굴이 퉁퉁 부은 것이 벌써 몇 번이나 눈물을 흘린 게 틀림없다.그러다 조문객들을 대접하는 자리에서 큰 삼촌이 사람들에게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얘기할 때 임유진은 어김없이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점점 사라져만 간다. 임유진의 어머니도 그렇게, 이제는 외할머니도 그녀의 곁을 떠났다.다음에는 또 누가 그녀의 곁을 떠나게 될까...?임유진의 머릿속에는 자꾸만 자기도 모르게 무서운 상상이 들었다.그렇게 두려움에 잠식되어 주먹을 꽉 쥐고 있을 때 한 남자의 따뜻한 손이 그녀에게 다가와 정처 없이 흐르는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마치 아기 다루듯 다정하고 따뜻한 남자의 손에 임유진의 두려움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고개를 돌려보니 거기에는 자신만을 바라봐주는 강지혁이 있었다.‘지혁이는 나만 내버려 두고 쉽게 떠나지는 않을 거야.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평생 함께 있을 거야...’장례식장을 찾는 사람들은 더더욱 많아졌고 그중에는 이미 술에 얼큰하게 취한 사람들도 있었다. 삼촌들과 이모는 사람들 챙기기에 바빴고 상주 자리는 임유진이 대신 지키며 조문객들을 맞이했다.모든 게 평화로운 그때 조문을 마친 한 남자가 다짜고짜 임유진에게 삿대질하며 언성을 높였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상주 자리에 있어? 감옥까지 다녀온 애가 집안 망신인 줄 알면 안 보이는 구석에 찌그러져 있거나 차라리 이곳에
남자는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누군가에 의해 바닥에 꼴사납게 널브러졌다."실수, 발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바람에."실수라고 하기에는 강지혁의 왼쪽 발은 여전히 남자의 심장 쪽을 꾹 짓누르고 있다. 남자는 숨이 막히는 듯한 고통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는 끙끙 앓으며 신음을 냈다. 발버둥을 치려고도 해봤지만 마치 돌덩이에 깔리기라도 한 것처럼 꿈쩍할 수가 없었다.상황이 심각해지자 옆에서 구경만 하던 노씨 집안 삼촌들과 이모가 헐레벌떡 다가오더니 그에게 사정하기 시작했다."저... 아무리 그래도 여기는 장례식장인데 이럴 필요가 있을까요?""장례식에서 불상사라도 생기면 안 되잖아요.""이 사람도 그냥 생각 없이 막 내뱉은 말일 거예요. 진심으로 받아들일 필요 없어요."강지혁은 세 사람 쪽으로 고개를 돌린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사랑해 마지않는 손녀가 이런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도 모를 놈한테 비난이나 듣는 걸 할머니가 아신다면 엄청나게 속상해하지 않을까요? 내 말이 틀렸습니까?"무표정한 얼굴에 이렇게까지 소름이 끼쳐본 적은 그들도 아마 처음일 것이다."그,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이 인간 그때 유진이가 프러포즈 좀 거절했다고 속 좁게 이러는 게 틀림없어요. 남자가 돼서는, 쯧쯧.""이런 인간은 장례식에 올 자격도 없는 사람이에요. 우리 유진이가 어떤 앤데, 이런 막말을 듣고만 있게 해줘서는 안 되죠! 우리 엄마가 평소에 제일 좋아하는 사람도 바로 유진이었는걸요."세 사람은 금세 태도를 돌변해서는 서둘러 임유진의 편을 서며 강지혁의 기분을 살폈다. 게다가 큰 삼촌은 경비원까지 불러 임유진에게 막말한 남자와 그의 가족들을 전부 다 빈소에서 쫓아내 버렸다.그리고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본 조문객들은 입을 떡 벌리고 그저 벙쪄있었다.감옥살이하고 나온 임유진을 당연히 노씨 집안의 천덕꾸러기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이제까지 그녀에게 비난의 말을 서슴지 않았는데 그녀 뒤에 이런 무서운 남자친구 있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아까 까불다가 경비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