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영은 백연신의 분석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감독 부인 멍청한 사람 아니야. 오히려 지나치게 똑똑한 여자지. 그런데 그런 여자가 자기한테 득 될 거 하나 없는 짓을 한다고?"백연신의 말에 한지영도 그제야 뭔가를 깨달은 듯 읊조렸다."그러니까 누군가가 뒤에서 일부러 임유라를 매장해 버리려고 한다는 거죠?"임유라를 싫어하던 라이벌 배우일까? 아니면 강현수? 그것도 아니면... 한지영은 자기도 모르게 머릿속에 강지혁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뭐, 그런 거지."백연신이 담담하게 말했다."연신 씨는 그 누군가가 누구라고 생각해요?"한지영이 두 손을 꼭 맞잡은 채 물었다."강지혁."백연신이 답했다."왜요?""이 일을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어. 그리고 웬만한 사람은 그 감독 부인에게 이러한 제안을 할 수도 없었을 거야. 강현수라는 선택지도 있긴 한데 이런 일을 벌이면 강현수의 체면도 말이 아닐 거야. 임유라는 대외적으로 그의 전 여자친구이기도 하니까. 이러한 구설에 휘말리면 자기 이름이 나올 게 뻔한데 그런 멍청한 짓을 강현수가 했을 리가 없잖아."한지영은 백연신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점점 강지혁이 한 일이 맞다는 결론에 다다랐다."강지혁도 자기가 한 일이라는 걸 감추려는 생각 없어 보이던데? 임유라를 이 세상에서 소리소문없이 처리할 방도는 많았을 테니까."백연신의 보기에는 강지혁이 정상적인 사고가 박혀 있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내리려고 이런 일을 벌인 것 같았다. 임유진을 건드리면 임유라 꼴 난다고 말이다."유진이가 강지혁 씨 옆에 있게 된 게 정말 잘된 일일까요?"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한지영이 갑자기 이 한마디를 던졌다.백연신은 시선을 돌려 그제야 창백해진 얼굴로 손을 덜덜 떨고 있는 한지영을 발견했다."왜 그래?"그는 얼른 그녀의 손을 잡아 주며 물었다."어디 아파?"따뜻한 백연신의 체온이 전해지자 한지영도 서서히 떨림이 멈췄다."그냥... 강지
만약 누군가가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 먹잇감을 뺏으려 든다면 아마 피를 보게 될 것이다.무슨 위로를 이렇게 해! 한지영은 도끼눈을 뜨며 그를 쳐다봤다."그럼 만약에 유진이가 어쩌다 강지혁 씨의 심기를 건드려버리면요? 그때 강지혁 씨는 어떻게 할 것 같아요?"진지하게 물어보는 한지영에 백연신이 손을 들어 그녀의 이마를 아프지 않게 톡 건드렸다."너 말이야. 네 친구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 아니야? 내가 보기에 두 사람 중 전전긍긍하고 있는 쪽은 강지혁이야."그러자 한지영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전전긍긍이라니. 이게 과연 강지혁과 어울리는 단어인가?"장난하는 거죠?"한지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장난 같아?"백연신이 진지하게 얘기했다."그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는 쪽은 지금도 앞으로도 네 친구일 거야. 그러니까 너무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연인 사이에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은 항상 주도권을 뺏기게 되고 그 관계에서 을이 된다. 그리고 강지혁과 임유진 사이는 누가 봐도 강지혁이 더 사랑하고 있다.마치 지금 이 두 사람처럼 말이다.백연신은 턱을 괴고 한지영을 빤히 바라보았다. 눈앞에 이 여자는 아직도 자신이 복수하려고 이러는 줄 알고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건 그저 한지영의 사랑일 뿐이다.이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은 사람은 한지영이다. 처음에는 못마땅했지만 어느샌가 그도 이 여자에게 지배당하는 걸 바라고 있다.지금도 그녀의 한마디에 하루에도 수십 번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있는 게 바로 그였으니까.이유는 그저 백연신이 한지영을 많이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토요일, 임유진의 퇴근 시간에 맞춰 강지혁이 그녀를 데리러 왔다."같이 갈 곳이 있어."강지혁이 말했다."어디?""가보면 알아."임유진은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강지혁이 데려간 곳은 임유진이 전에 살던 아파트, 즉 그의 아버지가 팔려고 내놨던 바로 그 집이었다.그는 집주인처럼 열쇠를 꽂고 들어간 후 그녀를 안으로 들였다."설마 이 아파트, 네가 산 거야?"
방 안으로 들어와 보니 이상하게도 잡동사니들만 사라지고 그녀의 물건은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마치 감옥에 들어가기 전 살았던 곳처럼 말이다.만약 그녀의 어머니에 관한 물건이 있다면 그건 아마 침대 밑 상자 안일 것이다. 어머니의 유품들은 모두 그곳에 보관해 두었으니까.임유진은 침대 쪽으로 가 상자를 꺼내려고 했다."내가 할게."그때 강지혁이 무릎을 꿇더니 임유진을 도와 상자를 꺼내주었다. 바닥에는 먼지가 가득했기에 그의 옷은 금세 더러워졌다."미안해."임유진은 그가 깔끔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다. 월세방에 살았을 때를 제외하고 강지혁은 밖에 나가면 최대한 먼지투성인 것들과 멀리했었으니까."뭐가 미안해. 내 여자 도와주는 거 당연한 거 아니야?"내 여자라는 강지혁의 말에 임유진은 잠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가 얼른 시선을 상자 쪽으로 돌렸다.여기에는 임유진이 아끼던 헤어핀, 어머니와 같이 그렸던 그림 그리고 어머니가 사줬던 인형들까지 전부 들어있었다.한 가지 아쉬운 건 그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임유진은 아직 어렸기에 유품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고 다 커서 보니 이것밖에 남지 않았다.임유진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 그러고는 익숙한 물건들에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녀가 간직해왔던 것들이 그대로 들어있었다.출소 후 이것들을 가지고 가려고 했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반대했다.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앨범도 다 태운 다음에야 손에 넣지 않았던가.그래서 이 물건들이 아직도 남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버려지지 않았고 고스란히 다시 그녀의 품에 들어왔다.닭똥 같은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쉴 틈 없이 흘러내렸고 강지혁은 그 모습에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천천히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울리려고 한 건 아닌데."그는 임유진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만큼은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고 매번 심장이 쿡쿡 질린 듯 아팠다."기뻐서 그래. 여기 있는 물건들을 다시 볼 수 있게 돼서."
그가 기꺼이 지배당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다!그녀 앞에 무릎을 꿇으라고 해도 달갑게 꿇을 것이다.한편 그가 바라는 건 단 하나, 그녀가 떠나지 않는 것...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그해 아버지도 이토록 어머니를 사랑하셨겠지. 다만 어머니는 결국 아버지를 떠나셨고 아버지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임유진은 그의 엄마와 다르다. 유진이라면 절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키스를 마친 후 임유진은 빨간 두 볼에 숨을 헐떡이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지만 강지혁이 그녀의 허리를 사로잡고 품에 꼭 껴안았다.“왜 그래?”임유진이 의아한 듯 물었다.“나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해.”그는 고개 숙여 짙은 눈빛으로 그녀를 지그시 바라봤다.임유진은 눈을 깜빡이더니 웃으며 대답했다.“당연히 안 떠나지. 왜 갑자기 그런 생각 해?”“아마도...”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솔직하게 털어놨다.“방금 아버지랑 어머니가 생각나서. 한 사람을 사랑할수록 잃을까 봐 두려운 것 같아. 잃게 되면 남는 건 절망뿐이잖아.”임유진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강지혁은 부모님에 관한 말을 거의 한 적이 없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아버지가 제일 가난하고 힘들 때 곁을 떠났고 그 때문에 아버지도 한겨울에 눈밭에서 얼어 죽었다. 임유진이 아는 건 이것뿐이다.이 일은 강지혁에게 평생의 고통으로 남았다!그때 그는 한낱 어린아이에 불과했다!임유진의 머릿속에 문득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강지혁은 아버지의 낡은 옷을 입고 눈밭에 앉아 한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여기까지 생각하니 임유진은 심장을 콕콕 찌르듯 아팠다.그녀가 말했다.“혁아, 허리 좀 숙여봐.”강지혁은 두 눈을 반짝이며 고분고분 허리를 숙였다.임유진은 양손으로 그의 머리를 감싸 안고 그의 얼굴을 품에 쏙 껴안았다. 얼굴이 그녀의 가슴에 닿는 순간 귓가엔 쿵쾅대는 그녀의 심장 소리로 가득 찼다.“혁아, 너만 날 사랑해주면 나 어디도 안 가. 절대
다만 운명의 장난처럼 둘은 지금 함께하고 있다.“혁아, 난 출소하고 난 뒤로 사랑 같은 건 사치라고 생각했어.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거라곤 아예 생각지도 않았어. 그랬던 내가 널 만나고 너를 사랑할 수 있게 돼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가끔은 네가 하늘이 내게 준 구원 같은 존재인 것 같아. 그런 생각이 종종 들어.”그녀는 제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하늘이 봐도 그녀가 너무 비참해 절망 속에서 구원할 수 있도록 흑기사를 보내준 것 같았다. 임유진도 그때부터 삶에 대한 희망을 되찾았다.강지혁이 몸을 움찔거렸다. 구원? 그 언젠가 모든 진실을 알게 돼도 이렇게 생각할까?아니! 그는 영원히 그녀에게 알리지 않을 것이다.‘그 언젠가’라는 날도 없다!사실 그녀야말로 강지혁에게 선물 같은 존재이다. 임유진을 못 만났더라면 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건지 그는 아마 평생 모를 테니까.이젠 그녀를 제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 매일 안고 있어도, 다정하게 스킨쉽을 해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는 항상 메마른 상태이다!“유진아, 우리... 결혼하자!”강지혁은 갈망에 축축이 젖은 눈빛으로 이 말을 내뱉었다.“나랑 결혼해줘. 내 아내가 되어줘!”...결혼?!임유진은 멍하니 넋을 놓았다. 이럴 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지?“왜? 싫어?”그가 미간을 구기고 대답 없는 그녀를 바라보며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지금... 프러포즈하는 거야?”한참 후에야 겨우 말을 내뱉는 임유진이다.“응.”그가 확고하게 대답했다.임유진은 두 눈을 깜빡였다. 프러포즈라... 두 사람이 벌써 결혼을 상의할 때가 되었나? 그와 알고 지낸 지 1년도 채 안 됐는데?!하지만 그녀는 강지혁을 사랑하고 강지혁도 그녀를 사랑한다. 결혼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청혼이 너무 성의 없어 보여? 아니면 내가 장난치는 거라고 생각해?”그의 목소리가 또다시 방 안에 울려 퍼졌다.강지혁은 허리 숙여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화들짝 놀란 임유진은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를 내려
아이라... 강지혁 같은 집안은 대물림을 매우 중시한다.“그게 왜? 애초에 사귈 때도 말했듯이 난 평생 아이가 없어도 괜찮아. 내가 사랑하는 건 아이가 아니라 임유진 바로 너야.”그가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히 여기는 건 오직 임유진뿐이다.“하지만...”임유진은 여전히 망설였다.정말 괜찮을까? 이 세상에 과연 아이 못 낳는 여자를 받아들일 남자가 존재할까?“유진아! 아이는 단지 우리 가문의 미래 상속자일 뿐이야. 난 박애한 사람이 아니야. 이후에 만약 진짜 우리 둘만의 아이가 생긴다면 아마 이뻐하겠지. 아이가 없으면 보육원 가서 한 명 입양하거나 방계 친척들에게 한 명 입양해와도 돼. 난 둘 다 문제없다고 봐. 내가 신경 쓰는 건 오직 하나야. 나랑 결혼할래 유진아?”마지막 그 한마디를 내뱉으며 강지혁은 이글거리는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 임유진은 순간 그가 친 그물에 잡힌 것처럼 아무리 몸부림쳐봐도 벗어날 수 없었다. 실은... 벗어나기 싫었다.그녀는 강지혁을 너무 사랑한다. 이 그물 안에서 전혀 벗어날 생각이 없을 만큼.“그래.”그녀가 드디어 대답했다.강지혁은 활짝 웃으며 그녀의 손등에 키스했다.“평생 이 손 안 놓을게.”손등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전류가 그녀의 마음까지 녹였다.강지혁에게 이토록 사랑받는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이다.“알았어. 영원히 놓지 마, 혁아.”그녀는 말하면서 두 손으로 강지혁의 볼을 감싸고 그의 입술에 살포시 키스했다.이건 평생을 기약하는 키스이다.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평생 함께하자는 다짐이다!...“뭐라고? 너랑 강지혁 씨가 결혼 준비를?!”한지영은 친구와 데이트하다가 초특급 정보를 얻었다.“응.”임유진의 입가에 달콤한 미소가 번졌다.“나 친구 얼마 없는 거 너도 알잖아. 결혼식 날 네가 신부 들러리 해줘. 그래 줄 수 있지?”“당연한 소릴. 하지만...”한지영이 그녀를 쳐다보며 말을 머뭇거렸다.임유라 사건을 강지혁이 배후에서 조종한 걸 알게 된 이후로 한지영은 이 남
“하지만 너 강지혁 씨에 대해 얼마나 알아?”한지영이 캐물었다.“많이 알고 있는 편이지.”임유진이 대답했다.“집안 상황, 사업, 겪어온 인생, 성격 등등 다 알고 있는데. 내가 또 강씨 저택에서 한동안 지냈잖아.”“그럼 강지혁 씨의 어두운 면은?”한지영이 솔직하게 물었다.임유진은 살짝 놀란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고 이에 한지영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니까 내 말은... 어쨌거나 강지혁 씨는 일반인이 아니잖아. 수단이 악랄하기로 소문이 났고 무릇 강지혁 씨를 건드린 사람은 누구 한 명 좋은 결말을 얻은 자가 없어!”임유진은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그제야 친구의 말뜻을 이해했다. 그해 그녀가 옥살이할 때도 강지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손을 댔다!하지만...“지영아, 어떤 일들은 앞으로 한 걸음 내딛기 전까지는 영원히 미래를 장담할 수 없어. 난 이 한 걸음을 내디디고 싶어. 이 세상에 지혁이보다 날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고 보거든.”임유진은 한지영을 바라보며 말했다.친구의 확고한 눈빛에 한지영은 가슴이 움찔거렸다.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오며 그녀가 얼마나 가정을 꾸리고 싶은지 한지영이 제일 잘 알고 있다.인간은 부족한 것만 더 채우려고 애쓰니까.“하긴, 갈 데까지 가봐야 아는 법이지.”한지영이 말했다.“앞으로 무슨 일 있어도 네 옆엔 항상 내가 있다는 것만 기억해. 우린 베프야.”“응.”임유진은 짤막하게 대답했지만 이 한마디에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한지영이 없으면 오늘의 임유진도 없다!한지영은 그녀에게 이미 가족 같은 존재이다. 평생 은혜를 갚아야 하는 사람, 그게 바로 한지영이다!...며칠간 강현수는 몇 년을 지새운 것만 같았다.다시 임유진을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그해 그 소녀와 만났던 마을로 가서 임유진에 관한 모든 정보를 캐냈다. 마치 그녀를 기억 속 그 소녀와 맞아떨어지게 할 기세였다.다만 너무 오래전 일이라 조사가 더 힘들어졌다.요 며칠 임유라가 유부남과 불륜 현장을 잡힌 일이 각 언론 매체에 대서
처음부터 그녀의 손을 꽉 잡았어야 했다!“왜 혼자 술 마시고 있어?”문득 이한의 목소리가 강현수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오늘 어쩌다 나왔는데 재미없게 왜 혼자 여기서 마셔?”재미가 없다고?강현수는 술잔을 어루만지며 주변 사람들을 쭉 둘러봤다.오늘 이한의 초대로 이 파티에 참석한 이유는 요즘 너무 답답해서 숨 트일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정작 와보니 달라질 건 없었다.머릿속엔 온통 임유진뿐이고 그녀의 실루엣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아 참, 너 얼마 전에 지혁이랑 마찰이 있었다며? 어떻게 된 거야?”이한이 물었다.강현수는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옛친구를 쳐다봤다.“소식 참 빠르네.”이한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진짜네?”그도 단지 전해 들은 소문일 뿐 진짜일 줄은 몰랐다.“왜 그런 건데? 무슨 일이야 대체?”다들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 이들 모임에서 가장 얼굴 붉힐 리 없는 자가 바로 강현수와 강지혁 두 사람이다.둘은 지나칠 정도로 이성적이고 매사에 이익 지상주의이다. 강지혁은 또 모든 일에 관심 없는 편인데 임유진을 알게 된 이후로 180도 달라졌다. 저번 연회에서 강지혁이 그녀를 얼마나 신경 쓰는지 이한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한편 강현수는 늘 차갑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편이다. 유일한 관심사는 바로 팔찌 주인에 관한 일이다.오죽하면 친구들끼리 모일 때 강현수가 대체 언제 팔찌 주인을 찾을지 내기하고 있을까.“궁금해?”강현수가 되물었다.“양가 집안의 사업 때문에 갈등을 빚었어?”이한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물었다.강현수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설마 여자 문제는 아닐 거잖아.”그가 혼잣말로 구시렁댔다.“맞다면?”강현수가 말했다.이한은 충격에 휩싸인 표정으로 말까지 더듬거렸다.“너... 너랑 지혁이가 어떻게...”진짜 여자 문제라면 설마... 임유진?!이한은 머리가 띵했다.임유진이 얼마나 매력적인 것도 아니고 심지어 감방까지 다녀왔는데 친구 두 놈이 다...“팔찌 주인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