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씨 가문은 내가 진애령을 죽게 만들었다고 생각해.”한참 지나 유진이 입을 뗐다. 감옥에서 세령이 사람을 시켜 그녀의 손톱을 뽑으라고 할 때 그녀는 그제야 사람이 이토록 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내가 보기에 진애령이 죽은 것보다 진세령은 네가 자리를 양보했다는 거에 더 기뻐할 거야.”지영은 화가 가시지 않았다.“애초에 네가 판결 받은지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에 진세령은 이미 소민준과 사귀었잖아. 진세령은 그전부터 소민준에게 관심이 있었어.”“나와 소민준의 사이가 그 정도라는 걸 설명하지. 하지만 이 일로 한 사람을 똑똑히 알아볼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유진이 웃으며 말했다.“맞아. 소민준 같은 남자는 사랑할 가치가 없어.”지영은 말을 하고는 무엇인가 떠올랐다.“참, 너 새로 알게 된 동생이랑은 어떻게 됐어? 설마 그와 계속 살 작정이야?”“응.”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만약 혁이가 계속 나랑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그럴 거야.”“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너희 둘이 연애하고 동거하는 줄 알 거야.”지영이 걱정되어 물었다.“너에게 이상한 행동은 안했지.”“아니.”유진은 말을 하며 머릿속으로 그 이쁜 눈동자가 생각났고 그녀에게 다가왔을 때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빨리 뛰는 것 같았다.“야, 너…….”지영은 친구의 발그레해진 볼을 보더니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너 설마 그에게 마음이 간 거야?”“아니야.”유진이 곧바로 부인했다.“지영아, 너도 알 거야.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심지어 감옥에서……난 누구를 사랑할 생각이 없어.”감옥의 일을 언급하자 지영의 얼굴빛도 어두워졌다.“유진아, 좋은 의사를 찾아보면 아마도……”“그럴 필요 없어. 어차피 난 한평생 시집갈 생각이 없어. 그럼 굳이 치료해야할 필요도 없고.”유진이 말했다. 애초에 감옥에서 자궁이 파열될 정도로 맞았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앞으로 임신을 하려면 일반인보다 훨씬 더 많은 위험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의사는 그녀에게 앞으로 임신을 하지 말라고 건의한
세령은 반성하는 얼굴로 사과했으며 심지어 허리 굽히며 사과할 때 몸을 바들바들 떨어 많은 동정을 얻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말을 이었다.“저는 환경위생과에 가서 저를 도와 반지를 찾아준 환경미화원들에게 진심어린 사의를 표할 것이고 저의 올해 업무상의 모든 수입을 기부해 조식차를 만들 것입니다. 환경미화원들은 작업증으로 아침식사를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기자회견 동영상이 인터넷에 방영되자 세령의 위기 처리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팬들은 끊임없이 세령을 도와 기사를 내며 호감을 샀다.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정말 오해라고 생각했다.그리고 세령이 환경위생과에 가서 감사인사를 전할 때 기세가 대단해 적지 않은 기자까지 찾아왔다.환경위생과 쪽에서는 그날 반지를 찾는 것을 도와준 환경미화원들과 세령에게 일일이 악수하고 세령이 감사의 뜻을 표하는 선물을 받도록 했다.미옥은 선물을 받고 아주 기뻐했다. 선물박스에는 현금 10만 원외에 패딩이 한벌 있는데 가격이 20만원이나 넘은 모양이었다.“유진 씨, 왜 나가서 선물을 받지 않아?”미옥은 의자에 혼자 앉아 있는 유진을 보고 말했다.“저는 필요 없어요.”유진이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이 패딩 20만원이나 넘어. 그리고 10만 원짜리 돈봉투도 있어. 월급의 절반이나 돼. 왜 안 받아?”미옥이 설득했다.하지만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휴, 그냥 지나가서 선물만 받아오면 돼.”미옥은 말을 하며 유진을 끌고 나갔다.“아니에요. 정말 필요 없어요.”유진이 말했다.하지만 유진은 미옥의 손을 뿌리치기도 전에 이미 밖으로 끌려갔다.“선물을 못 받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어요!”미옥이 말했다.갑자기 기자들은 카메라를 임유진에게로 향했다.유진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 카메라들을 피했다.그 장면은 마치 그녀가 법정 밖에 있을 때 수많은 기자들이 마이크를 내밀며 그녀를 취재하려던 상황 같았다.그리고 그때 민준은…… 유진의 두 눈은 카메라 밖에 서 있는 민준에게
비록 얼굴은 여전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그녀가 입고 있는 것은 고급진 옷이 아니라 형광색 작업복이었다.소민준은 조금 어리둥절했다. 감옥에서 그녀가 필사적으로 그의 앞에서 그에게 믿어 달라고 빌던 모습이 눈앞에 또 한 번 떠올랐다.그때 그를 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절박함, 희망, 간청…… 등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흔들림이 보이지 않고 평안해 보였다.진세령은 곁눈질로 곁에 서 있는 남자친구의 반응을 힐끗 보며 얼굴에 온화한 웃음을 띠고 준비한 선물 상자를 임유진에게 건네주었다.“이건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그날은 정말 미안했어. 너에게 하루종일 반지를 찾아달라고 했으니.”그때의 원망과는 하늘과 땅 차이었다!임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전히 침묵하며 상자를 받아들고 돌아섰다.방으로 돌아온 임유진은 들고 있던 상자를 서미옥에게 건네주었다.“언니, 이거 가지세요.”“어? 이렇게 좋은 옷을 버리는 거야?”서미옥이 의아해했다.“전 옷이 충분해서요.”임유진이 대답했다.“그러면 이 10만 원은…….”“그것도 됐어요.”임유진은 시간을 보고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청소도구를 들고 청소구간으로 가려고 했다.밖에 있던, 취재하러 온 기자들이 이미 떠난 걸 보고 임유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가 환경위생과를 나서자마자 소민준과 마주쳤다.“너…… 괜찮아?”소민준이 물었다. 그는 이 여자를 미워한 적이 있다. 그녀가 진애령을 부딪쳐 죽였고, 그로 인해 그가 가족의 질책을 받아 소 씨네 집에서 쫓겨날 뻔했다.하지만 지금, 그녀가 환경미화원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의 마음 한구석이 불쾌했다.어쨌거나 이 여자는 한 때 그가 사랑했던 여자이다.“내가 좋은지 나쁜지는 소민준 씨와 상관없는 것 같은데.”임유진은 담담하게 말하면서 곧 걸음을 옮겨 상대방 옆을 스쳐 지나가려 했다.“임유진, 너 너무 그러지 마!”소민준은 그녀를 가로막고 말했다.“너무 그러지 말라고?
임유진은 웃긴다는 듯 입술을 깨물더니 걸음을 옮겨 자리를 뜨려 했다.소민준은 자신의 호의가 무시당한 것 같아 가슴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임유진, 무슨 뜻이야, 내가 이렇게 너를 돕는다는 것은 이미 매우 큰 위험을 감수한 거야!”“아무도 네가 이런 위험을 감수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어.”임유진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리고 너 이러면 세령 씨에게 알려질까 두렵지 않아?”그때 누군가의 소리가 갑자기 울렸다.“나에게 알려지면 안 되는 게 뭐지?”소민준의 몸이 뻣뻣해지더니 재빨리 임유진의 팔을 풀고 고개를 돌려 걸어오는 진세령을 바라보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그 말을 들은 진세령은 앞으로 나가 소민준의 팔을 잡았다.“자기야, 자기는 이런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강지혁이 알면 어쩌려고 그래? 자기도 알다시피, 우리 언니는 강지혁이 유일하게 결혼하고 싶어 하던 여자야. 우리 언니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되었어도 강지혁은 지금까지 옆에 다른 여자가 없어…….”말을 다 하지는 않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소민준은 표정이 일그러진 채 이전에 프로젝션 광고가 철거된 일을 떠올렸고, 강지혁이 두 집안의 혼인을 거부하고 약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것도 떠올렸다.소 씨네 집 내부에서도 임유진의 일 때문에 강지혁이 소 씨 가문을 시큰둥하게 대하는 거로 추측했다.“임유진, 넌 그냥 환경미화원이 잘 어울려. 강지혁은 네가 이미 석방됐다는 것을 알지 않을까?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아 너는 S 시에 발붙일 곳도 없게 될 거야.”진세령은 마치 높은 곳에 있는 여왕처럼 이 말을 다 한 후 소민준의 팔을 잡고 떠났다.임유진은 평온한 얼굴로 청소도구를 들고 환경위생과에 배치된 자전거를 타며 그녀가 청소하려는 길목을 향해 갔다.그녀에게 있어서, 옛날 그녀가 소민준에 대한 그 사랑은 이미 철저히 짓밟혔는데, 지금 다시 소민준을 보니 마치 낯선 사람을 만난 것 같았다.소민준과 진세령이 다정하게 함께 있는 것을 봐도 그녀는 이미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위에서 이미 명령이 내려왔어. 임유진이라는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은 심사 통과할 수 없다고 말이야.”편집장의 말에 이선경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소 씨네 압박인가요?”그러나 일리가 없다. 전에 진세령이 사고를 당했는데 그가 쓴 진세령에 관한 보도는 편집장이 그대로 심사를 거치지 않았던가? 왜 지금은 도리어 임유진에 관해 쓸 수 없다는 말이지?“소 씨네 집이 아니야. 됐어, 이 일은 묻지 마. 아무튼 이 기사가 정말 나가면 네가 기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나도 아마 짐을 싸고 나가야 할 것 같아.”편집장이 말했다.이선경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믿을 수 없었다. 편집장의 이 말은……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닌가?“임유진은…… 환경미화원일 뿐인데, 누가 이렇게 그녀를 감싸준다고 그래요.”"넌 아직 너무 어려. 이 세상에는 네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분명 있을 거야.”편집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다. 강 씨 가문의 어르신이 임유진을 감싸고 있다는 건 정말 불가사의했다.————다른 한편, 강지혁은 그릇과 젓가락을 치우고 있는 임유진을 보면서 갑자기 말했다. “오늘 누나에게 반지를 찾으라고 한 진세령이 환경위생과에 가서 사과했다면서?”“그래.”임유진은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가 사과로 준 선물은 내가 서미옥에게 주었어.”“그럼 누나도 소민준을 만났어? 뉴스를 보니까 그도 같이 갔다고 하던데.”그는 말하면서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봤어.”평온한 표정으로 그녀가 말했다. 마치 남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그는 그녀를 흘겨보다가 갑자기 일어나 그녀의 곁으로 걸어갔다.“누나 안 슬퍼?”그녀는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깨달은 듯 웃으며 말했다.“혁이 내 걱정하고 있는 거야? 걱정하지 마, 나는 이런 남자 때문에 슬퍼하지 않을 거야.”걱정? 그의 눈동자가 짙어졌고 걱정 외에 다른 것이 있는 것 같았다…….그녀는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최근에 이 동작을 갈수록 자
그러나 그의 앞머리 아래 눈동자는 유난히 맑았다. 마치 이 문제가 그에게는 단순한 문제일 뿐인 것처럼 말이다.음…… 강지혁은 매우 단순해 보인다. 그가 이 말을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다.임유진은 이런 생각에 목청을 가다듬었다.“좋아할 수는 있어. 이건 사랑이 아니야. 좋아하는 거랑 사랑하는 건 두 가지 감정이야. 나는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일생일대, 대체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해. 심지어……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그는 갑자기 눈을 가늘게 떴다.‘생사를 같이한다고?’이상하게도 그가 그녀의 입에서 이 답안을 들었을 때, 맨 처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은…… 그녀와 생사를 같이하면 좋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그래서, 그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 걸까?그럴 리가? 그는 갑자기 스치는 자기 생각에 실소했다.그는 그녀에게 호감이 있고, 미련이 있고, 신경이 쓰이며,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곁에 있는 이런 느낌에 빠진 것 같다는 걸 인정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게임도 그렇게 오래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사랑은…… 하지 않을 것이다.그는 일찍이 자신에게 어떤 여자도 사랑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적이 있다.“그리고 혁이도 나를 슬프게 하지 않겠지”부드러운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그는 그녀의 살짝 붉어진 얼굴과, 옅은 미소를 보며 나지막하게 웃었다.“맞아, 혁이는 누나를 슬프게 하지 않을 거야.”다만 이 여자가 언젠가 그가 강지혁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슬퍼할까?아니면 좋아할까? 기뻐하며 그에게 아부하지 않을까?그러나 어떤 부류든 그는 오히려 그녀를 평생 보호하겠다고 약속할 수 있다. 어쨌거나,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 너무 쉬운 일이니 말이다.————임유진은 이튿날 출근했다. 서미옥과 거리를 청소한 후 환경위생과로 돌아와 점심 휴식할 때, 환경위생과의 동료들이 그녀를 곁눈질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눈빛은 호기심도 있고 경멸도 있고 조롱도 있으며 또 일부 동정도 있었다.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녀를 향해
이때 방현주가 다가와 경멸에 찬 표정으로 임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서미옥 씨, 이 사람이랑 무슨 말을 해요? 감옥살이를 한 적이 있다잖아요! 사람을 죽였대요!”“현주 씨, 모두 동료인데, 이렇게 말할 필요가 있어? 게다가 유진 씨가 감옥에 있는 것도 단지 운전을 잘못했기 때문이라는데…….”서미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현주가 말을 가로챘다.“그런데 그 차에 치이어 죽은 사람이 바로 진애령래요, 서미옥 씨, 진애령이 누군지 알아요? 바로 그 진세령의 언니예요! 어쩐지, 진세령이 우리에게 있지도 않은 반지를 찾게 한다 했어요. 그분이 겨냥하는 것은 임유진인데 우리 모두 연루된 거잖아요.”“그래서 우리도 사과와 보상을 받았잖아?”서미옥이 말했다.방현주는 얼굴에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서미옥이 이렇게 임유진을 위해 말하는 것에 불만스러워했다. 오늘 그녀가 감옥살이했다고 폭로한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며칠 전 그녀는 우연히 임유진이 소민준, 진세령과 대화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약간의 공을 들여 인터넷에서 소민준과 진세령의 각종 뉴스를 찾아서야 진애령을 치어 죽인 사람이 바로 임유진이라는 것을 발견했다.“서미옥 씨, 설마 임유진에서 뭘 받은 건 아니겠죠? 이렇게 편들어 주는 걸 보면.”방현주가 비꼬으며 말했다.“방현주 씨…….”서미옥이 화를 냈다.“됐어요, 할 말이 뭐 있어. 교통사고는 사고였고 유진 씨도 고의는 아니었어.”한 남자가 끼어들었다.임유진은 곽동현이 그녀를 두둔해 말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러나 이렇게 되자 방현주는 더욱 화가 났다. 그녀는 임유진이 눈에 거슬렸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곽동현을 좋아하지만 곽동현이 좋아하는 사람은 임유진이기 때문이다.“곽동현 씨, 이렇게 임유진 씨를 감싸줘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녀가 동현 씨를 마음에 들거로 생각해요? 그녀의 전 남자친구는 소민준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요. SY 그룹의 도련님이라고요!”곽동현의 얼굴이 갑자기 빨갛게 달아올랐다.방현주는 더욱 신나게 비꼬았다.“하지만 그
저녁에 임유진이 전셋집으로 돌아와 강지혁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임유진은 좀 의아했다. 보통 그녀의 문을 두드려 줄 사람이 없는데, 설마 그녀의 아버지와 계모, 여동생이 또 찾아왔단 말인가?!하지만 그녀가 문을 열었을 때 뜻밖에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이 곽동현이라는 것을 발견했다.곽동현은 검은색 겨울옷을 입고 있었는데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그는 임유진을 보며 다소 촉박한 목소리로 말했다.“전…….”그가 겨우 입을 열려던 순간 임유진의 뒤에 있는 강지혁을 발견하고 멈칫하더니 잠시 망설였다.강지혁은 집 밖에 서 있는 남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 남자, 그는 기억하고 있다. 임유진의 환경위생과 동료인데 그녀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다.“왜요, 누나 찾으러 왔어요?”강지혁이 물었다.“저…… 일이 좀 있어서 유진 씨와 둘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곽동현은 얼굴을 붉히며 다시 임유진을 바라보았다.“유진 씨, 괜찮을까요?”강지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상대방의 입에서 뱉어낸 ‘유진 씨’ 라는 호칭이 그를 다소 귀에 거슬리게 느꼈다.임유진이 대답하려던 찰나, 강지혁이 끼어들었다.“무슨 일인데 여기서 이야기할 수 없어요?”“그건…….”곽동현이 머뭇거렸다.그러자 임유진은 입을 열었다.“무슨 일인데요? 솔직히 말해도 돼요.”“유진 씨, 저…… 전 유진 씨가 감옥살이한 것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전 정말 유진 씨를 좋아해요. 유진 씨가 내 여자친구가 돼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기다릴 수 있어요. 유진 씨가 아직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면 저는 기다릴 수 있어요.”그가 단숨에 말했다. 이 말들은 용기를 내어 말한 것 같았다.임유진은 멍해졌다. 상대방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저도 알아요, 전 그냥 운전기사일 뿐이라는 걸 말이에요. 하지만 열심히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할 거예요. 전…… 저는 단지 유진 씨에게 행복을 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곽동현이 말을 마쳤지만 임유진이 아무 말이 없자 또
사람들은 두 가문이 파혼이라는 결말을 맺을 거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그 시기가 이렇게 빠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은채는 어제 기자들에게 오늘 오후 정식 기자 회견을 열겠다고 했던 터라 지금 비장한 얼굴을 한 채 기자들 앞에 앉아 있다.“사실 저와 백연신 씨는 이미 오래전에 헤어졌고 제 현재 남자친구는 기사에서 언급됐던 그분입니다. 백연신 씨와 헤어진 걸 알리지 않았던 건 부모님이 저와 제 남자친구와의 사이를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백연신 씨에게 부모님의 마음을 돌릴 때까지만 저의 남자친구인 척해주면 안 되냐고 했고 백연신 씨는 이에 동의했습니다.”고은채는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내뱉었다.“이번 일은 다 제 잘못입니다. 제 욕심과 이기심 때문에 백씨 가문이 곤란해지고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반인 여성에게까지 피해가 갔습니다. 정략결혼 얘기는 저희 부모님이 저희 둘 모르게 공표한 것으로 저와 백연신 씨의 의사는 조금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결혼 파기를 빨리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점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일로 불필요한 타격을 입고 상처를 받았을 백씨 가문과 한지영 씨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백연신 씨와의 결혼은 처음부터 없었던 일이라는 것을, 백연신 씨와는 진작에 헤어졌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고은채는 카메라 플래시 앞에서 미리 준비해둔 대사를 전부 다 읽어낸 후 진중하면서도 가녀린 얼굴로 기자들을 바라보았다.지금 그녀가 챙길 수 있는 거라고는 사랑만큼은 진심이었다는 이미지밖에 없었으니까.“그럼 결혼은 지금 남자친구분과 하실 예정인 건가요? 부모님께서 다시 반대하시지 않겠어요?”기자 한 명이 손을 들며 물었다.“결혼은... 당연히 지금 남자친구와 할 생각입니다. 부모님도 시간이 흐르면 저와 남자친구 사이를 예쁘게 봐주실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만에 하나 계속 반대하신다 해도 헤어질 생각은 없습니다.”고은채는 겉으로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반대도 무릅쓰고 끝까지 갈 것
백연신은 차창을 통해 한지영이 머무르고 있는 1층 방의 창문을 바라보았다.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녀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밥은 제대로 챙겨 먹는지,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게 만든 자신에게 화가 나지는 않았는지 같은 질문이 절로 떠올랐다.“안 올라가십니까?”기사가 물었다.“응, 이렇게 보는 거로도 충분해.”백연신은 말을 하며 계속해서 아파트 창문에 시선을 고정했다.내일이면 한지영에게 씌워진 오명을 전부 다 벗겨낼 수 있다....다음날.인터넷은 고은채의 기사로 난리가 났다.한 기자가 고은채에게 백연신이 아닌 다른 남자가, 그것도 여러 명이 있었다며 폭로했기 때문이다.그중 제일 화제가 된 남자는 지하 클럽에서 호스트로 활동했었던 남자였다. 그 남자는 고은채를 만난 후 아주 오랜 기간 그녀의 막대한 지원을 받아왔고 그 덕에 현재는 억 소리가 나는 별장에서 살고 있다고 하며 외출할 때도 꼭 경호원을 한 명씩 데리고 다닌다고 한다.고은채의 기사를 폭로한 기자는 이것은 그저 빙산의 일각이라며 자신의 수중에는 인터넷에 공개된 그녀가 남자와 끌어안고 키스하는 수위가 약한 사진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해괴망측한 취향이 가득 담긴 사진도 다수 있다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아무것도 모른 채로 백연신의 별장에서 석방된 고은채는 기자들의 손에 들린 사진과 그들의 질문을 통해 아주 빠르게 알아챘다. 지금 이건 백연신이 짠 각본이라는 것을.그녀와 친밀한 사이라고 소개된 호스트는 확실히 그녀의 파트너가 맞다. 백연신의 철벽으로 풀지 못했던 욕망을 어디든 분출해야만 했으니까.아마 기자가 공개하지 않은 사진에는 그녀가 남자의 무릎을 꿇리고 개처럼 바닥을 기게 하는 등의 모습이 찍혔을 것이다.하지만 고은채가 호스트와 놀아난 건 2년 전의 일이었다. 하이에나 같은 기자가 아무런 요구도 해오지 않고 그 사진들을 2년이나 간직하고 있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즉, 해당 사진들은 기자가 자기 힘으로 입수한 사진이 아닌 백연신에게서
당시의 백연신은 의지할 만한 사람이라고는 고은채 밖에 없었고 고은채는 고고하게 고개를 치켜든 채 뭐든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있었다.그녀가 도와줘야 백연신이 살 수 있고 또 그녀가 도와줘야만 백연신은 앞으로도 훨훨 날아오를 수 있었다.자신이 우월하다는 감각에 취한 탓일까, 고은채는 홧김에 그에게 한지영을 구해주는 대신 자기 옆에 있으라고 했다. 이제껏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이 남자를 지금에야말로 자기 발밑에 무릎을 꿇리고 온전한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그래서 백연신이 한지영에게 이별을 고했을 때 그녀는 그의 육체라도 곁에 묶어둔 것에 환희를 느꼈다. 어차피 마음 같은 건 시간의 흐르면 당연히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하지만 백연신은 어느샌가 그녀의 손아귀에서 점점 벗어나 있었고 형세는 완전히 뒤집혀버렸다.고은채는 백연신이 미련 없이 몸을 돌리자 그의 뒷모습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다시 그 여자랑 잘 될 수 있을 것 같아? 당신과 그 여자의 인연은 이미 5년 전에 끝이 났어. 두 번 다시 이어질 수 없다고!”백연신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그녀의 말 따위는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말이다.고은채는 백연신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내렸다.고씨 가문에 살길이 터진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가문이 재기할 수 있게 조금이라도 힘을 모으는 것뿐이다.내일부터 꽤 치욕스러운 나날을 보내면서 말이다.고은채는 한지영의 루머를 바로잡아주고 백연신과 합의 하에 파혼한 것처럼 연기해야 할 생각만 하면 벌써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백연신의 차량은 부드럽게 움직이며 서서히 별장에서 멀어졌다.운전기사는 룸미러를 통해 백연신을 바라보며 물었다.“어디서 모실까요?”백연신은 몇 초간 가만히 있더니 이내 한지영이 현재 살고 있는 주소로 향해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시트에 등을 기댔다.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다.생각해보면 그는 어릴 때부터 어느 한순간 피곤하
“뭐...?”고은채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백연신을 바라보았다.그도 그럴 것이 이때만을 기다려온 사람이 갑자기 죽여야 하는 상대에게 살길을 터주겠다는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까.“내가 돈을 빌려주면 해진 그룹은 파워팰리스 프로젝트만큼은 사수할 수 있을 거야.”백연신의 말에 고은채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그의 말을 달리하면 고씨 가문은 파워팰리스 프로젝트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잃게 된다는 뜻이었다.그리고 그렇게 되면 고씨 가문은 더 이상 부유층이 아니게 되고 한순간에 지위가 하락하게 된다.‘아니야. 이성적으로 생각해. 파워팰리스 프로젝트만 제대로 사수해도 다시 재기할 가능성이 생겨!’“원하는 게 뭐야? 이유도 없이 자금을 빌려주지는 않을 거 아니야.”고은채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분명히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걸 거라고 생각하며 말이다.“내가 원하는 건 우리 둘의 결혼 파기야.”백연신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고은채는 그 말에 저도 모르게 빈정거리며 웃었다.“결혼 파기? 우리 집안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결혼 파기 그까짓게 안 될까 봐 무서워?”“나는 네가 직접 사람들에게 우리 결혼은 합의하에 없던 일이 된 거라고 하길 원하는 거야. 그리고 지영이가 그런 모욕적인 오명을 쓰게 된 것도 네 입으로 직접 해명하길 원하고.”백연신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신...”고은채는 머릿속을 스친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순간 눈을 크게 떴다.“설마... 파워팰리스 프로젝트로 딜을 하려는 게 한지영 때문이야?”“아니면? 내가 그 이유 말고 너희 가문에게 살길을 터줄 이유가 또 있어?”고은채의 두 눈은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그도 그럴 게 백연신은 지금 고작 한지영 하나 때문에 몇조가 되는 이익을 포기한다고 하고 있으니까.‘그렇게 오래 판을 짜놓고 이제 와서 여자 하나 때문에 이익을 포기하고 후환까지 남겨둔다고...? 미친 거야?’고은채는 이쯤 되니 백연신이라는 남자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안 적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강지혁은 불안한 만큼 더욱더 강하게 임유진을 몰아붙였다. 그러다 갑자기 입술을 떼더니 임유진의 눈을 마주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만 내 곁에 있으면 나는 하나도 안 아파... 그러니까 날 떠나지 마.”그러고는 또다시 입술을 부딪치며 마치 그녀의 모든 걸 다 집어삼키려는 듯 폭풍 같은 키스를 퍼부었다....“백연신 씨, 당신 이거 납치야.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거라고! 우리 부모님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빨리 날 내보내!”고은채는 백연신의 얼굴을 보자마자 마치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쳐댔다.이곳에 갇혀있는 동안 그녀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휴대폰도 압수당한 바람에 그녀는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너희 부모님은 지금 너희 집안에 떨어진 불똥 때문에 그거 처리하느라 널 챙길 여유가 없을 테니까. 그리고 이미 너희 부모님한테 따님이 현재 내 별장에 있다고 얘기했어.”백연신은 소파에 앉으며 느긋한 태도로 얘기했다.“불똥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고은채가 급 심각해진 얼굴로 물었다.이에 백연신은 부하직원에게 눈빛을 보냈고 부하직원은 리모컨을 들어 거실에 있는 티비를 켰다. 모니터 속에서는 요 며칠 해진 그룹과 고씨 가문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도한 뉴스들이 편집되어 흘러나오고 있었다.고은채는 굳은 얼굴로 영상을 계속해서 바라보다 마지막에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 몸을 덜덜 떨었다.‘대체 내가 여기 있는 동안에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우리 집안을 완전히 망하게 할 생각이야?’“지금껏 쥐새끼처럼 몰래 움직이면서 뒤에서 칼을 갈고 있었던 거야?!”고은채는 분노로 범벅된 얼굴로 백연신을 바라보았다. 고씨 가문이 며칠 사이에 이렇게까지 무너진 걸 보면 꽤 오랜 기간 이 상황을 준비한 게 틀림없었다.그녀는 그가 정성스럽게 판을 짜는 동안 조금의 의심도 없이 아직도 자신이 모든 걸 주무르고 있다고 착각
“너는 그 기억을 영영 되찾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어?”강지혁의 질문에 임유진은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그가 말하는 기억이 절벽에서의 일이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다. 이곳으로 돌아온 그 날 고이준에게서 들었으니까.강지혁은 두 눈을 임유진에게 고정한 채 그녀의 반응을 조금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가만히 바라보았다.임유진은 숨을 한번 깊게 들이켜더니 이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나한테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닌 현재야. 그리고 나는 고통으로밖에 다가오지 않을 과거라면 차라리 이대로 영원히 기억하지 않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기억을 잃어버린 상태라도 괜찮다는 소리야?”“응.”임유진은 고통스러운 과거로 서로가 고통을 받느니 차라리 영원히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영원히 지워버리면 당시의 고통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같은 건 영원히 알지 못한 채로 살 수 있게 될 테니까.임유진은 말을 마친 후 손을 뻗어 강지혁의 얼굴을 부드럽게 매만졌다.“혁아, 기억을 회복하는 것도 좋지만 무리는 하지 마. 네 몸을 축내면서까지 과거 일을 떠올리지 말라는 소리야. 나는 네가 행복하게 잘 살아갔으면 좋겠으니까.”강지혁은 그녀의 말에 머리가 다시금 아파 왔다.잘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말이 그녀의 입에서 뱉어져 나온 순간 마치 거대한 돌덩이가 심장을 꽉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네가 없는데 내가 어떻게 잘 살 수 있겠어...”강지혁은 자기가 말하고는 자기가 더 놀랐다.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대체 왜?왜 이 말이 이토록 익숙한지, 왜 이 말을 수백 번은 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언제 이런 말을 한 거지? 임유진이 절벽에서 떨어지고 난 뒤에?강지혁은 기억을 헤집으며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머리는 점점 더 아파져 왔다.게다가 이제는 얼굴이 창백하게 굳고 이마에 땀까지 송골송골 맺히며 고통스러운 신음까지 멋대로 흘러나왔다.임유진은 상태가 점점 더 심각
소민아는 양 볼이 퉁퉁 부은 채로 씩씩거리며 딸과 함께 저택에서 나왔다.임유진은 율이와 현이를 씻긴 후 방으로 데려가 잠을 재웠다.현이는 많이 피곤했던 건지 엄마와 오빠에게 번갈아 뽀뽀한 후 금세 잠자리에 들었다.율이는 동생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 진지한 얼굴로 임유진에게 말했다.“나는 엄마가 계속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어요.”임유진은 아이의 말에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아무래도 소민아가 엄마 자리를 꿰차고 들어오기라도 할까 봐 걱정됐던 모양이다.“걱정하지 마. 너희 아빠는 절대 다른 여자를 너희 엄마라고 데려오지 않을 테니까.”아이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러고는 굿나잇 인사를 한 후 드디어 잠자리에 들었다.임유진은 천사 같은 아이들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아이들을, 이 가정을, 그리고 세상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해주는 남자를 무슨 수를 써서든 꼭 지켜주고 싶었다....침실로 돌아온 임유진은 강지혁이 눈을 질끈 감은 채 관자놀이를 마사지하는 걸 보고 빠르게 그쪽으로 달려갔다.“왜 그래? 또 두통이 도진 거야?”강지혁은 걱정 가득한 그녀의 목소리에 몸을 미세하게 움직이며 눈을 번쩍 떴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임유진은 그의 눈빛에 어려있는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고통에 조금 놀라며 물었다.“혁아, 무슨 일...”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지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혁아.”임유진은 그런 그의 등을 끌어안으며 물었다.“또 머리가 아파?”강지혁은 한참을 침묵한 뒤에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응...”방금 머리에 통증이 일었을 때 그는 그의 요구로 종일 경호원들을 뒤에 붙인 채로 있어야만 했던 임유진의 모습을 기억해냈다.아무리 임신 중이라 걱정이 됐다고 해도 이건 도가 지나쳤다. 이건 마치 그녀가 떠날 아주 조금의 틈조차도 주지 않으려는 듯한 무척이
소민아는 순간 임유진에게 맞은 것보다 더한 타격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괜찮아.”임유진의 말에 강지혁은 그녀의 손바닥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다음부터는 때리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네가 직접 손을 올리지 말고.”그는 임유진이 괜찮다고 하는데도 걱정을 멈추지 않았다.“이것 봐. 빨개졌잖아.”“회, 회장님, 저는 더...”소민아는 저도 모르게 자기가 더 아프다고, 자기는 얼굴이 붓기까지 했다며 속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강지혁은 그녀의 말에 그제야 소민아의 존재를 의식한 듯 쌀쌀맞은 말투로 얘기했다.“내 아내가 5년이나 집을 떠나있었다고 해도 여전히 내 아내고 이 집안의 안주인이야. 대체 언제부터 집안의 사람도 아닌 것이 내 아내한테 훈수를 두기 시작했지? 아까 이 집을 자기 집처럼 생각한다고 했나? 나는 너라는 인간을 한번도 내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으니까 그런 주제넘은 생각은 집어넣어.”소민아는 차갑디차가운 그의 말과 눈빛에 몸을 움찔 떨었다.“하지만 저는... 제 딸은 강씨 가문의...”“내가 거둔 양녀는 소안나지 네가 아니야. 너는 우리 가문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라고. 알아들어?”소민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다.‘그러니까 나는 처음부터 당신한테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소리네...? 내가 당신을 가지기 위해 그렇게도 노력을 했는데... 그게 다 부질 없는 짓이었다고?’소민아는 강지혁에게 손 마사지를 받고 있는 임유진을 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5년 만에 나타난 여자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차지한 것이 도무지 용서되지 않았다.“회장님은 임유진 씨 때문에 가문이 불필요한 욕을 먹게 될까 봐 걱정도 안 돼요? 아무리 강씨 가문이라도 여론이 박살 나면 그때는...”강지혁은 소민아의 말을 자른 채 담담한 목소리로 얘기했다.“내 아내가 원하면 나는 얼마든지 이 가문을 바칠 수 있고 얼마든지 이 가문을 내 손으로 망가트릴 수 있어. 강씨 가문 전체가 내 아내 건데 대체 네가 뭐라고 자꾸
“그... 유진 씨랑 유진 씨 스승님이 이상한 관계라는 거요. 애가 휴대폰에 눈을 일찍 뜨는 바람에 평소 제 휴대폰을 들고 이런저런 영상을 클릭해보거든요.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됐나 봐요. 물론 저는 안 믿어요! 유진 씨 스승님이 유진 씨랑 부적절한 관계라 변호사 업계에서의 유진 씨 이름을 날리려고 일부러 재판에서 졌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요. 요즘 가짜 뉴스가 어디 한두 갠가요...”소민아는 겉으로는 임유진을 믿는 척 옹호하는 척하면서 강지혁이 혹시라도 제대로 못 들었을까 봐 다시 한번 아주 자세하게 얘기를 해줬다.“뭘 많이도 봤나 보지?”강지혁이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유진 씨 일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어쩌다 그런 이상한 내용까지 보게 됐어요. 저랑 우리 안나가 이렇게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된 게 전부 다 회장님 덕분이잖아요. 그래서 저도 언제부턴가 저 역시 강씨 가문의 일원이라고 생각해 오고 있었어요.”소민아는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임유진을 바라보았다.“유진 씨, 그래서 하는 말인데 한지영이라는 친구분과는 슬슬 거리를 두는 게 어떨까요? 근묵자흑이라고 사람이라는 건 본래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하잖아요.”임유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소민아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소민아 씨는 오지랖이 태평양처럼 넓나 보네요. 나와 내 친구가 연을 이어가든 말든 그쪽이 상관할 바 아니에요. 그리고 대체 몇 번을 더 말해야 하죠? 분명히 내가 호칭 똑바로 하라고 했을 텐데요.”소민아는 그 말에 갑자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저는 그저 사모님이 걱정돼서 이러는 것뿐이에요. 서둘러 친구분과의 연을 끊지 않으면 조만간 그 피해가 강씨 가문에까지 오게 될 거라고요. 사모님은 가문의 안주인으로서 걱정도 안 되세요? 그리고 제가 낮에는 차마 말을 못 했지만 다섯 살짜리 애들도 상간녀가 뭔지 알고 남의 남자를 뺏는 여자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도 알아요. 사모님과 사모님 스승님의 일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저희끼리만 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