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방현주가 다가와 경멸에 찬 표정으로 임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서미옥 씨, 이 사람이랑 무슨 말을 해요? 감옥살이를 한 적이 있다잖아요! 사람을 죽였대요!”“현주 씨, 모두 동료인데, 이렇게 말할 필요가 있어? 게다가 유진 씨가 감옥에 있는 것도 단지 운전을 잘못했기 때문이라는데…….”서미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현주가 말을 가로챘다.“그런데 그 차에 치이어 죽은 사람이 바로 진애령래요, 서미옥 씨, 진애령이 누군지 알아요? 바로 그 진세령의 언니예요! 어쩐지, 진세령이 우리에게 있지도 않은 반지를 찾게 한다 했어요. 그분이 겨냥하는 것은 임유진인데 우리 모두 연루된 거잖아요.”“그래서 우리도 사과와 보상을 받았잖아?”서미옥이 말했다.방현주는 얼굴에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서미옥이 이렇게 임유진을 위해 말하는 것에 불만스러워했다. 오늘 그녀가 감옥살이했다고 폭로한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며칠 전 그녀는 우연히 임유진이 소민준, 진세령과 대화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약간의 공을 들여 인터넷에서 소민준과 진세령의 각종 뉴스를 찾아서야 진애령을 치어 죽인 사람이 바로 임유진이라는 것을 발견했다.“서미옥 씨, 설마 임유진에서 뭘 받은 건 아니겠죠? 이렇게 편들어 주는 걸 보면.”방현주가 비꼬으며 말했다.“방현주 씨…….”서미옥이 화를 냈다.“됐어요, 할 말이 뭐 있어. 교통사고는 사고였고 유진 씨도 고의는 아니었어.”한 남자가 끼어들었다.임유진은 곽동현이 그녀를 두둔해 말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러나 이렇게 되자 방현주는 더욱 화가 났다. 그녀는 임유진이 눈에 거슬렸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곽동현을 좋아하지만 곽동현이 좋아하는 사람은 임유진이기 때문이다.“곽동현 씨, 이렇게 임유진 씨를 감싸줘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녀가 동현 씨를 마음에 들거로 생각해요? 그녀의 전 남자친구는 소민준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요. SY 그룹의 도련님이라고요!”곽동현의 얼굴이 갑자기 빨갛게 달아올랐다.방현주는 더욱 신나게 비꼬았다.“하지만 그
저녁에 임유진이 전셋집으로 돌아와 강지혁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임유진은 좀 의아했다. 보통 그녀의 문을 두드려 줄 사람이 없는데, 설마 그녀의 아버지와 계모, 여동생이 또 찾아왔단 말인가?!하지만 그녀가 문을 열었을 때 뜻밖에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이 곽동현이라는 것을 발견했다.곽동현은 검은색 겨울옷을 입고 있었는데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그는 임유진을 보며 다소 촉박한 목소리로 말했다.“전…….”그가 겨우 입을 열려던 순간 임유진의 뒤에 있는 강지혁을 발견하고 멈칫하더니 잠시 망설였다.강지혁은 집 밖에 서 있는 남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 남자, 그는 기억하고 있다. 임유진의 환경위생과 동료인데 그녀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다.“왜요, 누나 찾으러 왔어요?”강지혁이 물었다.“저…… 일이 좀 있어서 유진 씨와 둘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곽동현은 얼굴을 붉히며 다시 임유진을 바라보았다.“유진 씨, 괜찮을까요?”강지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상대방의 입에서 뱉어낸 ‘유진 씨’ 라는 호칭이 그를 다소 귀에 거슬리게 느꼈다.임유진이 대답하려던 찰나, 강지혁이 끼어들었다.“무슨 일인데 여기서 이야기할 수 없어요?”“그건…….”곽동현이 머뭇거렸다.그러자 임유진은 입을 열었다.“무슨 일인데요? 솔직히 말해도 돼요.”“유진 씨, 저…… 전 유진 씨가 감옥살이한 것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전 정말 유진 씨를 좋아해요. 유진 씨가 내 여자친구가 돼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기다릴 수 있어요. 유진 씨가 아직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면 저는 기다릴 수 있어요.”그가 단숨에 말했다. 이 말들은 용기를 내어 말한 것 같았다.임유진은 멍해졌다. 상대방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저도 알아요, 전 그냥 운전기사일 뿐이라는 걸 말이에요. 하지만 열심히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할 거예요. 전…… 저는 단지 유진 씨에게 행복을 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곽동현이 말을 마쳤지만 임유진이 아무 말이 없자 또
“그 남자가 이런 말을 해서 누나가 상대방을 좋아하게 된 건가?”그는 중얼거리며 물었지만, 눈에는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질투가 역력했다.그녀의 코끝은 온통 그의 숨결이었다. 이런 접근은 그녀를 어찌할 바를 모르게 했다. 몸에서 본능적인 위기감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그녀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순간 맹수처럼 덮쳐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 같았다.맙소사,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임유진은 마음속으로 방금 스친 자기 생각을 질책하고 있었다. 지금 그녀 앞에 있는 사람은 혁이지 결코 위험한 사람이 아니다.“나는 곽동현 씨를 좋아하지 않아.”그녀가 말했다. 상대방의 그 감정에 대해서도 그녀는 미안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그녀의 말 한마디에 그의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다. 그는 그녀를 쳐다보았다.“누나는 정말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내가 그런 걸 왜 속이겠어.”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출소한 후에 평생 누구를 다시 사랑하게 되리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너무 무겁다. 자신의 모든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묶이고, 나중에 버림받았을 때, 그 충격을 그녀는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그의 눈에는 웃음기가 물들었다.“그럼 그를 거절하는 것을 잊지 마. 그렇지 않으면 그 남자는 아마도 계속 누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거야.”“거절할 거야.”그녀가 말했다. 이 감정이 의도치 않은 이상 당연히 상대방을 질질 끌 수 없다.하물며 곽동현은 괜찮은 사람이므로 진정으로 그의 감정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지 시간을 그녀에게 낭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참, 그가 어떻게 누나가 감옥에 갔다는 것을 알게 된 거야?”강지혁이 불쑥 물었다.임유진은 얼굴이 어두워졌다.“한 동료가 그 당시 나의 교통사고 뉴스를 알아냈어. 그래서 지금 환경위생과 전체가 내가 감옥에 갔다는 것을 알게 됐어. 자, 이젠 손을 놓아. 내 방을 치워야 해.”그녀는 말을 돌렸다.그는 그제야 손을 놓았는데, 그녀가 그의 곁에서 떠날 때, 마치 온도도
예전엔 자기 힘으로 생활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이젠 이런 일이 매우 쉽지 않았다.“그래도 이렇게 젊은데 늘 이런 일만 할 수는 없잖아. 유진 씨 이러면 나중에 어떻게 좋은 사람을 찾을 수 있겠어!”서미옥 같은 사람이 가장 관심을 두는 건 시집가는 문제였다.“동현 씨는 유진 씨의 과거에 개의치 않는 것 같은데 정말 생각해보지 않을 거야? 동현 씨처럼 성실한 남자는 요즘 드물어.”“아니에요, 저랑 그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임유진이 말했다.서미옥은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유진 씨, 혹시 동현 씨가 운전기사라 사회적 지위가 좀 낮다고 생각하는 거야? 유진 씨 전 남자친구가…….”“언니!”임유진은 서미옥의 말을 끊었다.“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저는 이런 많은 일을 겪었고, 지금은 정말 연애할 마음이 없을 뿐이에요.”“유진 씨도 참!”서미옥은 한숨을 쉬었다.“유진 씨, 정말 시집가지 않으면 혼자 외로울 거야.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아이가 곁에 없으면 그런 외로움은 결코 모든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야.”아이…… 임유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아마도 이것은 욕심일 것이다.종일 일을 끝낸 임유진은 서미옥과 함께 공구를 정리하고 환경위생과 쪽으로 돌아갔다.공구를 돌려줄 때 임유진은 곳곳에서 그녀를 겨냥하던 방현주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손을 씻으러 가려고 할 때 세면대 쪽에서 방현주가 곽동현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았다.“임유진은 감옥살이했는데, 동현 씨는 왜 그녀를 기다리고 있어요? 설마 내가 감옥살이를 한 사람만도 못하다는 거예요?”방현주가 분노했다.곽동현은 불쾌하게 말했다.“입만 열면 감옥에 갔다는 마을 하지 말아요. 유진 씨는 운전하다가 부주의로 사고 낸 거지 고의로 사람을 해치려는 것도 아니잖아요!”“그걸 음주운전이라고 해요, 그런데 왜 고의가 아니라는 거예요!”방현주가 말했다.“그녀는 여우예요. 그래서 동현 씨를 끌어당긴 게 분명해요
그때 그는 일을 마치자마자 그녀가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어린 소녀를 끊임없이 위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노래도 하고 춤도 추며 많은 익살스러운 동작을 했다. 마치 주위 사람들의 이상한 눈빛을 조금도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마침내 그녀는 성공했고, 소녀는 울음을 멈추었다.그리고 그녀는 소녀에게 빵을 사 먹이며 경찰에 신고하고는 그 자리에서 소녀의 가족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마침내 경찰이 소녀의 가족과 함께 왔다. 소녀의 부모는 몇만 원을 꺼내 그녀의 손에 쥐여주며 감사를 표하려 했지만 그녀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한 푼도 받지 않았다.그 부모가 어린 소녀를 안고 떠났을 때, 그녀는 그대로 제자리에 서서 그 세 식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그 순간, 그는 자신의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그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렇게 평온한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첫눈에 반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는 그가 난생처음 여자에게 이렇게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동현 씨가 신경 안 써도 동현 씨 부모님은 동현 씨가 감옥 간 여자랑 결혼하는 것도 신경 안 써요?”임유진이 말했다.곽동현은 멈칫했다가 얼굴의 홍조가 사라지고 차츰 얼굴색이 창백해졌다.“결혼은 두 사람의 일이 아니라 두 가족의 일이예요. 동현 씨도 내 가족이 어떤지 모르잖아요.”임유진이 말했다.“게다가 나는 동현 씨를 좋아하지 않으니 나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요.”말을 마친 임유진은 세면대로 다가가 손을 씻었다.곽동현은 방금 그녀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옆에 서 있었다.임유진이 손을 씻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곽동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제가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다면…….”그녀는 발걸음을 멈칫하고 그를 바라보았다.“그럴 리가 없어요. 만약 내가 정말 동현 씨를 좋아한다면, 동현 씨의 부모님이 반대하더라도 동현 씨를 붙잡고 함께 동현 씨의 부모가 승낙할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 하지만, 저는 동현 씨를 평범한 동료로 생각할 뿐,
“곽동현에게 꼬리치면서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었네요!”방현주의 목소리가 갑자기 울렸다.임유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 세상에는 방현주 같은 사람이 많다.강지혁은 몸을 돌려 뒤에 있는 이 평범하고 야박한 여자를 냉정하게 바라보았다.그러나 방현주는 강지혁을 똑똑히 본 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남자는 드라마의 남자주인공보다 더 멋있었다.그의 앞머리가 좀 두꺼워졌지만 오히려 머리를 잘 다듬고 의상을 바꾸면 아이돌 뺨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방현주는 갑자기 질투했다. 왜 임유진 같은 여자는 동현 씨의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멋진 남자도 함께 할 수 있는 걸까!그녀는 갑자기 입꼬리를 치켜들며 악랄한 웃음을 지었다.“당신은 임유진 씨의 친구인가 봐요? 아마 그녀가 감옥살이했다는 것을 아직 모르겠죠. 예전에 술에 취해 차를 몰다가 사람을 치어 죽였대요. 술을 마시고 차를 몰다니, 이건 고의 살인이랑 같은 거예요!”하지만 그녀는 곧 실망했다. 상대방의 얼굴에 그녀가 보고 싶은 놀라움, 의아함, 혹은 거리낌이 나타나지 않았고, 여전히 평온한 얼굴이었다.만약 정말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상대방이 그녀를 보는 눈빛이 더욱 차가워진 것이다.“보아하니 이 일을 퍼뜨린 사람이 바로 당신이군.”강지혁은 차가운 눈으로 방현주를 흘겨보며 말했다.방현주의 마음속에는 갑자기 공포가 일어났다. 마치 그녀가 인정한다면 그녀는 매우 비참해질 것이다.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억지로 말했다.“그러면 어때서요,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모두를 위한 것이에요. 모두 알 권리가 있어요. 자신의 주변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요. 만약 그녀가 다른 사람이 알까 봐 두려웠다면, 애초에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죠!”강지혁은 갑자기 씩 웃었다.“인정하면 됐어.”말이 끝나자 그도 이제는 방현주를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임유진을 향해 말했다.“누나, 가자. 나 이 여자를 보고 싶지 않아.”“그래.”임유진이 대답했다.방현주는 두 사
예전에 그녀는 로펌 동료들과 일한 후에 이곳에 와서 한 끼 먹었다. 그때의 그녀에게는 여기서 밥을 먹는 것이 마치 회사 밥을 먹는 것 같았다.그러나 지금은 조금 사치를 부려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그거 괜찮은데, 이따가 누나가 주문해.”강지혁은 흔적도 없이 화제를 돌렸다.임유진이 주문한 요리는 모두 상대적으로 싼 것이었다. 가장 비싼 요리는 새우볶음이었는데 9600원이었다. 모든 요리 값을 합치면 모두 3만 5천 원이었다.이 돈은 사실 많지 않지만, 이것은 이 기간에 임유진이 여전히 먹었던 가장 비싼 식사였다.강지혁이 임유진에게 좀 더 많이 주문하라고 했다.“누나, 나 돈 있어.”그러나 임유진이 말했다.“이 정도면 충분해. 좋은 것을 먹더라도 너무 많이 주문할 필요는 없어.”얼마 지나지 않아 종업원이 요리를 내왔고 임유진은 강지혁과 함께 먹었다. 이곳의 요리는 평소에 그들이 먹는 그 간단한 음식보다 너무 좋았다.새우를 먹을 때 강지혁은 자연스럽게 임유진에게 새우를 까준 뒤 껍질을 벗긴 새우를 그릇에 놓았다.그녀는 멍하니 그 새우를 보고 있었다.“왜 안 먹어?”그가 말했다.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도 혁이가 사람을 잘 보살피는구나. 앞으로 누가 너랑 연애하든 행복하겠어.”말을 마친 그녀는 새우를 입에 넣었다.그녀가 예전에 드라마를 볼 때, 남자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새우를 까주는 장면을 보았는데 매우 따뜻함을 느꼈던 것을 기억했다.이런 행동은 섬세하고 소중하고 보호받는 느낌을 준다.다만 그때 그녀가 소민준과 연애할 때 그는 한 번도 그녀에게 새우껍질을 벗겨준 적이 없었다.사실 이전에 연애할 때 일부 세부사항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소민준은 사실 그녀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이 감정은 별로 깊은 것은 아니다.그래서 한바탕 변고가 닥쳤을 때, 그는 그렇게 빨리 철수할 수 있었다!“그래?”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연애라…….”마치 어린아이의 장난 같았다. 그는 평생 영원히 그 어떤 여자와 연애 같은
임유진은 고개를 살짝 들고 한쪽을 바라본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강지혁을 바라보았다.“계산을 다 했어?”“응, 다 됐어.”“그럼 가자.”그녀는 자신의 가방을 들고 무언가를 피하는 것처럼 그와 함께 가게를 나갔다.“왜, 뭘 피하는 거야?”그가 물었다.그녀의 발걸음이 멈추자 얼굴에 난해함이 스쳤다.“전 동료들도 이곳에 와서 밥을 먹네. 나는…… 그들을 보고 싶지 않아.”그녀는 말하면서 또 스스로를 비웃었다.“매우 우습지, 사실 그들은 모두 나의 처지를 알고 있어. 아마도 내가 지금 얼마나 초라한지 짐작할 수 있을 거야. 그래도 나는 그들을 이렇게 마주치고 싶지 않아.”그들의 눈에 비친 동정을 보고 싶지 않고, 그들의 안타까움을 보고 싶지 않았다.한때 변호사라는 직업은 그녀가 일생을 분투하고자 하는 직업이었지만, 지금은 그 동료들이 여전히 그 직업을 하고 있고, 그녀는 이제는 손댈 수 없다.그녀가 지금 이 자신을 향한 비웃음은 그의 마음을 갑자기 아프게 했다.그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낮게 말했다.“그럼 피하는 것이 좋겠다. 언젠가 누나는 누구보다도 더 잘살고 있을 거야.”“잘 산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의 그녀는 어떤 미래도 생각하지 않았다.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벅찬 현실이었다.————"세령이에게서 들었는데, 너 임유진을 도와 일을 찾아주려 했다면서? 경고하는데 이제는 그 여자의 일에 손을 대지 마라. 그녀가 애초에 해친 것은 세령의 언니야, 강지혁의 약혼녀라고! 우리 소씨네 집은 강지혁의 미움을 사면 안 돼!"핸드폰 너머로 소민준의 아버지의 엄한 경고가 들려왔다. 소민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알았어요.”강지혁에게 미움을 살 수 없다는 이 말을 그는 이미 너무 많이 들었다. 그 당시 모든 사람은 왜 그가 임유진 같은 여자친구를 사귀었냐고 원망했다.다행히도 후에 그는 유진이와 헤어지고 세령과 교제했다. 세령에 대해 집안은 자연히 매우 만족했다. 두 집안이 대등했으니 말이다. 진 씨 가문과
설마 재벌과 사귀었던 신데렐라가 주변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한지영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조나연을 바라보았다. 조나연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이 번기 회에 자신을 깎아내리며 조롱하려는 게 분명했으니까.조나연은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묘하게 그녀를 깎아내렸다. 게다가 한지영이 없을 때면 다른 동료에게 두 사람은 얼마 안 가 반드시 헤어지게 될 거라며 저주 아닌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그러다 정말 헤어졌을 때는 한껏 기분 좋은 얼굴로 한지영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나는 두 사람 오래 못 갈 줄 알았어요. 솔직히 백연신 씨가 아무것도 없는 지영 씨와 진심으로 사귈 리가 없잖아요. 요즘은 남자들도 여자 배경을 본다고요.”진심이 아니었다고? 그럴 리는 없다.한지영과 사귀었을 당시 백연신은 늘 그녀에게 진심을 다해 행동했고 자신의 사랑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그러니 진심이 아니었다는 말은 틀렸다.하지만 조나연의 말에 맞는 말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한지영은 백연신이 원하는 것을 주지 못했으니까.“지금 돌이켜봐도 참 안타까워요. 만약 헤어지지 않았으면 지금쯤 사모님 소리 들으며 편히 살고 있을 텐데.”조나연이 안타까운 척 그녀를 비꼬았다.한지영은 그런 그녀를 차가운 눈길로 빤히 바라보더니 갑자기 피식 웃었다.“그렇게 안타까우면 백연신 씨와 나 사이에 다리 좀 놔주지 그래요? 말로만 계속 안타깝다고 하니까 괜히 놀림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물론 제 착각이겠죠, 안 그래요?”한지영의 뼈 있는 말에 조나연의 얼굴이 한순간에 일그러졌다.그리고 가만히 구경하던 동료들 역시 그제야 분위기를 파악한 듯 이상한 눈길로 조나연을 바라보았다.조나연은 조금 머쓱한 얼굴로 웃더니 별다른 대답 없이 자리를 벗어났다.한지영은 자리로 돌아간 후 소개팅 상대와 약속 시간을 잡으려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가 잠깐 멈칫하더니 저도 모르게 백연신의 기사를 검색했다.지난 5년간 그녀는 백연신을 완전히 내려놓을 작정으로 그와 관련
한지영은 한숨을 한번 내뱉더니 이내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엄마, 소개팅 같은 거 하기 싫다고 내가 분명히 말했잖아요. 남자는 내가 알아서 찾을 테니까 나 좀 가만히 내버려 둬요. 이게 대체 몇 번째야.”“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면 내가 이러지 않겠지. 너 이제 20대 아니고 30대야. 34살이나 돼서 남자친구 한 명 없다는 게 말이 돼? 내일모레면 당장 노산에 진입하는데 그때 되면 점점 더 좋은 남자 찾는 게 어려워져!”이해영이 속사포로 말을 뱉어냈다.한지영도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소개팅을 주선하는지 잘 알고 있다. 34살이나 된 딸이 이대로 계속 남자와의 교제를 피하다 결국에는 남자도 자식도 없이 홀로 인생을 마감할까 봐 걱정되고 또 불안한 거겠지.사실 한지영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주의였다. 게다가 요즘은 실버타운도 잘 되어있어 정말 혼자가 된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하지만 부모님들은 그런 걸 바라지도 않거나와 그래도 결혼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었다.그래서 한지영은 결국 오늘도 소개팅을 수락하고 말았다.더 이상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기도 했고 말이다.“아, 알겠어요. 만나면 되잖아요. 톡으로 연락처 보내세요. 이따 연락할게요.”이해영은 딸의 말에 그제야 만족하며 전화를 끊었다.몇 초 후 한지영의 휴대폰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보낸 사람은 이해영이었고 내용은 소개팅할 남자의 프로필과 연락처였다.한지영은 메시지를 보고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뱉었다. 이해영의 말대로 그녀도 이제는 34살로 절대 마냥 어리기만 한 나이는 아니었다.지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는 백연신을 천천히 마음속에서 내려놓았다....정말?문득 마음속 깊은 속에서 이러한 의문이 떠올랐다.정말 백연신을 향한 마음을 완전히 접어버린 게 맞나?한지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이내 잡생각을 털어버리듯 머리를 흔들며 다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웬 동료 한 명이 그녀를 불렀다.“지영 씨,
얘기가 일단락되자 강지혁은 아들의 손을 잡고, 임유진은 딸의 손을 잡고, 그리고 두 아이는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유치원 안으로 들어갔다.소민아는 그런 네 사람의 뒤를 따라 딸과 함께 조용히 앞으로 걸어갔다.만약 전이였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강지혁의 옆에 서며 사람들의 뇌리에 그 모습을 각인하려고 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어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소민아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던 소안나는 강선현과 강선율이 맞잡고 있는 손을 빤히 바라보며 미간을 찡그렸다.강선율이 그녀의 손을 잡아준 건 첫 만남뿐으로 그 뒤로는 한번도 손을 잡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분명히 전보다 훨씬 예뻐지고 공주 옷도 입고 머리도 예쁘게 했는데 강선율은 다른 이들처럼 그녀에게 예쁘다고 칭찬해주기는커녕 점점 더 거리를 두며 이제는 말도 잘 섞으려고 하지 않았다.소안나는 그런 강선율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왜 자신의 손은 잡아주려 하지 않는 거지?결국에는 양녀라 정을 주지 않는 건가?경찰서 앞에서의 일이 있고 난 뒤 소민아는 강지혁의 사진을 들고 있던 여자아이가 바로 강씨 가문의 진정한 딸이고 강선율의 친여동생이라는 것을 소안나에게 얘기해주었다.소안나는 그 말을 듣고는 더욱더 기분이 나빠졌다. 갑자기 나타난 강선현에게 아빠와 오빠를 빼앗기는 것 같았으니까.유치원 입구에 다다른 임유진은 먼저 아이들을 안으로 들여보내고 선생님들과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강지혁은 그런 그녀의 옆에 선 채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강선율은 안으로 들어간 후에도 강선현의 손을 꼭 잡은 채 자리까지 이동했다. 그러고는 듬직한 오빠의 얼굴로 동생의 가방을 직접 옆에 내려놓아 주기도 했다.그 장면을 바라보던 소안나는 질투심에 씩씩거렸다.‘나한테는 한번도 그렇게 해주지 않았으면서! 오빠랑 먼저 알게 된 건 쟤가 아니라 안나잖아!’“엄마, 나도 율이 오빠 친동생 하면 안 돼요?”소안나가 고개를 홱 들며 소민아에게 물었다.소민아는 딸의 말에 서둘러 주위
소씨 모녀의 등장에 사람들의 두 눈은 금세 흥미로움으로 가득 찼다. 그도 그럴 것이 강지혁이 또다시 결혼하게 된다면 그 상대는 분명히 양녀의 어머니인 소민아라고 생각했으니까.임유진은 포르쉐에서 내린 소민아를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간 집사와 고이준으로부터 전해 들은 말에 의하면 소민아는 소소하게 인기를 얻고 있던 인플루언서였다가 재벌 2세의 아이를 배고 그 집의 며느리로 들어가려다가 철저하게 버림을 받고 홀로 아이를 키우며 그간 힘든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소안나가 강씨 가문에 입양된 건 2년 전의 일로 강지혁은 소안나와 소민아를 위해 집도 주고 생활비도 다달이 보내주며 그 외의 큰 지출도 부담해주었다고 한다. 즉 소씨 모녀는 하루아침에 강지혁이라는 든든한 백을 둔 신데렐라 모녀가 됐다는 뜻이었다.지금 소민아가 입고 있는 옷이나 타고 있는 차량만 봐도 그간 얼마나 호의호식하며 지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임유진이 소민아를 훑어보고 있을 때 소민아도 마찬가지로 임유진을 훑어보고 있었다. 설마 레스토랑에서 언쟁을 벌였던 별 볼 일 없는 여자가 강지혁의 사망한 아내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소민아는 강지혁과 함께 나란히 서 있는 임유진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질투의 감정이 몸 곳곳에 퍼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하지만 그 감정을 겉으로 내비칠 수는 없었기에 소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유진 씨 맞으시죠? 그날은 죄송했어요. 딸 일이라 괜히 흥분해서 언성을 좀 높였어요. 용서해주세요...”그 말에 임유진이 뭐라 대꾸하려는데 강지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호칭 똑바로 해. 임유진 씨가 아니라 사모님.”차가운 그의 말에 주변 공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임유진이 강지혁의 아내였다는 것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임유진의 위치를 똑똑히 전하고자 하는 강지혁의 의도를 바로 알아챘다.5년 만에 돌아왔어도 임유진은 여전히 강지혁의 아내였고 강씨 가문의 안주인이었다.하지만 임유진이 누군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은 강지혁의 말에
게다가 5년 만에 돌아온 거라 그간 많이 변한 저택의 상황도 알아야 했고 새로운 사람들과도 익숙해져야만 했다.그래서 아이들 일에는 조금 소홀해졌다. 딸이 아버지를 원했던 만큼 아들도 마찬가지로 엄마를 원했을 텐데 말이다.저택 고용인들에게 듣기로 강지혁은 매일 아침 율이와 함께 저택을 나서기는 하지만 나가서는 서로 다른 차를 타고 각자의 목적지로 향한다고 한다.즉, 강선율은 그간 아버지가 아닌 도우미나 기사의 보호 아래 유치원에 갔다는 소리였다.임유진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또다시 죄책감이 피어올랐다. 또한 바쁘다는 이유로 율이에게 소홀했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강선율은 임유진의 팔이 더 세게 자신을 끌어안자 조금 움찔했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안기는 일은 익숙지 않았지만 상대가 엄마라서 그런지 이런 식의 포옹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기분이 좋았다.게다가 앞으로는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유치원으로 가주겠다는 말 또한 기분 좋게 귓가에서 맴돌았다....다음날.강선현이 유치원으로 가는 날, 임유진은 율이와 현이에게 똑같은 옷을 입혔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강선율은 바지고 강선현은 치마라는 것이다. 엇비슷한 키의 두 아이가 똑같은 옷에 똑같은 신발을 신은 채 가방을 메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절로 마음이 녹는 기분이었다.임유진은 결국 참지 못하고 두 아이를 품에 끌어안고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강선현은 그녀의 이런 행동에 이미 습관이 되었던 터라 꺄르르 웃으며 뽀뽀로 회답했지만 강선율은 별다른 반응 없이 그저 그녀의 행동을 받고만 있었다. 분명히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귀가 살짝 빨개진 것을 보니 기분이 나쁜 건 아닌 듯했다.강지혁은 세 사람이 다정하게 스킨십하는 걸 보면서 저도 모르게 슬쩍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유치원에 도착한 후, 강지혁과 임유진은 각자 아이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렸다. 아이를 등원시키러 온 학부모들은 네 사람의 등장에 입을 떡 벌리며 그대로 굳어버렸다.강지혁은 좀처럼 유치원에 얼굴을 내비치
하지만 남매 사이가 하루가 다르게 좋은 것 같아 보이니 임유진은 괜히 뿌듯해 나며 기분이 좋았다.“내일 유치원 갈 때 아빠도 엄마랑 함께 현이 데려다주면 안 돼?”현이가 눈을 반짝이며 강지혁을 바라보았다. 어지간히도 같이 가고 싶은 듯했다.강지혁은 아이가 이런 요구를 해올 줄은 몰랐는지 미간을 살짝 꿈틀거렸다.“유치원에 같이 가달라고?”“응! 원래 유치원 가는 첫날은 엄마랑 아빠가 함께 가줘야 하는 거야!”현이는 이번이 첫 유치원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아빠도 찾았으니 강지혁과 함께 등원하고 싶었다. 아빠가 있다는 기분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사실 지금껏 아빠의 부재에도 잘 자라왔던 아이였지만 아무래도 아빠의 빈자리가 꽤 컸던 모양이다.“그래, 그럼 내일 유치원에 같이 가줄게.”강지혁의 말에 현이는 활짝 웃더니 곧바로 팔을 쭉 내밀었다. 품에 안기고 싶다는 뜻이었다.강지혁은 스킨십 많은 딸이 아직도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인 율이는 이제껏 이런 식의 요구를 해오지 않았으니까.하지만 임유진과 쏙 빼닮은 두 눈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로 팔이 뻗어졌다.현이는 강지혁에게 안긴 후 그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지난번 서재에서처럼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했다.“아빠가 최고야!”진심으로 기뻐 보이는 딸의 모습에 임유진은 괜스레 코끝이 찡해 났다.딸이 아빠의 존재를 그리워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새삼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조금 더 빨리 기억을 회복하지 못했던 것에 죄책감이 일었다.임유진은 눈물을 감추기 위해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바로 옆에 서 있는 아들을 발견했다.혹시 율이도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엄마가 있어야 하는 상황에 항상 없었던 것에 쓸쓸해 하지는 않았을까?“율아.”임유진은 그 생각에 강선율을 향해 팔을 활짝 열었다.“엄마가 안아줄까?”아이는 그 말에 어색해하며 답했다.“전 어린애가 아니에요. 동생이나 안아주세요.”말은 이렇게 하지만 은근히 원하고 있다는 눈빛을 보냈다.임유
그날 밤, 임유진과 강지혁은 마치 5년 전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열렬하게 사랑을 나눴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그녀가 더 적극적이라는 것이었다.강지혁은 정사가 끝이 난 후 노곤해진 그녀를 안아 들고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욕실로 가 그녀를 깨끗이 씻겼다.아마 그의 이런 챙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임유진뿐일 것이다.다 씻은 후 강지혁은 임유진에게 가운을 입힌 후 다시 그녀를 안아 든 채 침대로 걸어왔다.임유진은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으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혁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뿐이야. 강현수랑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하고 싶은 말은 그것뿐이야?”강지혁이 미간을 살짝 꿈틀거리며 물었다.“우리 다음에는 자세 좀 바꾸는 거 어때? 물론 리드하는 것도 좋지만 생각보다 내가 체력이 없어서.”“...”강지혁은 그녀의 말에 순간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랐다. 아까 그를 아래에 깔고 멋대로 주도권을 쥐어간 그녀의 행동만 생각하면 지금도 상당히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어쩐지 임유진과 관련된 일이면 그 무엇하나 자기 마음대로 흘러가는 게 없는 것 같았다. 강지혁은 임유진을 침대 위에 살포시 내려놓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너는 과거의 내가 선택했던 내 아내야. 예전의 내가 그렇게도 널 많이 사랑했다면 지금의 나도 널 사랑할 수 있어.”임유진은 그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정말? 정말 날 사랑할 거야?”“그래. 하지만 절대 날 배신해서는 안 돼. 5년 전처럼 내 곁을 떠나서도 안 되고. 알았어?”임유진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의 눈가를 어루만졌다.강지혁은 그날 별채에 있는 그의 아버지 앞에서도 그녀에게 비슷한 말을 했었다. 절대 자신을 떠나지 말라고.기억을 잃은 강지혁도 역시 아버지의 전철을 밟게 될까 봐 무서운 걸까?“혁아, 내가 널 떠난 건 정말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 있어서였을 거야. 절대 원해서 널 떠난 건 아니었을 거야.”임유진은 계속해서 그의 눈가를 매만지며 어머니와 똑 닮았
내 말을 믿지도 않으면서 키스는 왜 해?임유진은 그 생각에 울컥하며 키스를 끝내려는 듯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하지만 강지혁은 그녀가 피할 틈조차 주지 않았고 맹렬하게 그녀를 몰아붙였다. 그러다 임유진이 거의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을 느낄 때야 천천히 입술을 뗐다.“네가 못 믿는 건 아니고? 내가 널 그렇게 사랑했다는 걸?”잔뜩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임유진은 방금의 키스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내쉬는 숨은 무척이나 거칠었다.“반대로 물어볼게. 그럼 너는? 너는 날 얼만큼 사랑하는데?”임유진은 귓가에 울려 퍼진 그의 목소리에 몸이 움찔 떨렸다.강지혁의 두 눈은 감겨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일까, 마치 두 사람을 감도는 공기와 모든 것이 한순간에 멈춰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간신히 진정한 임유진의 호흡이 또다시 흔들리며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했다.잠깐의 침묵 후 강지혁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다시 떠진 그의 눈동자에는 싸늘함만이 감돌고 있었다.“그다지 사랑하는 게 아니라면 앞으로 다시는 내 앞에서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다는 등의 말을 꺼내지 마. 그리고 네가 날 사랑한다는 말도.”강지혁은 차갑게 말을 내뱉고는 몸을 일으키려는 듯 천천히 그녀에게서 멀어졌다.이에 임유진은 만약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를 보낸다면 평생 이 순간을 후회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그래서 그녀는 두 팔을 뻗어 그의 목에 두른 후 더 이상 그가 멀어지지 못하게 했다.“혁아, 날 똑바로 봐!”다급한 그녀의 말에 강지혁의 몸이 멈추더니 이내 조금 놀란 듯한 시선을 그녀에게 보냈다.“내가 널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다고? 멋대로 추측하지 마.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지, 지금도 또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넌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렇게 궁금하다면 알려줄게.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임유진은 그 말을 끝으로 곧바로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그러고는 강지혁이 했던 키스와 달리 은근하고 유혹적이며 또 절절한 키스를 퍼부었다.키
임유진은 말을 하며 뒤로 발걸음을 옮겼다.하지만 몸을 돌린 순간 한 걸음도 채 내딛지 못하고 강지혁에게 손목이 잡혀버렸다. 그리고 눈앞이 핑 도는 느낌과 함께 어느새 침대에 눕혀져 버렸다.임유진은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겨를도 없이 강지혁의 몸이 그녀에게로 바짝 다가왔다.강지혁은 두 손을 그녀의 몸 바로 옆에 둔 채 얼굴을 그녀의 얼굴 가까이에 가져갔다.숨이 거칠고 눈동자가 이글거리는 것이 아주 단단히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아까는 그렇게도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더니 왜 갑자기 도망가지? 네가 원하는 대로 얘기하고 있잖아.”“네가 흥분을 가라앉히면 다시 얘기하려고 했던 것뿐이야.”임유진이 버둥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일어나려고 할 때마다 강지혁이 누르는 바람에 좀처럼 상체를 일으키지 못했다.“혁아, 일단 좀 비켜봐.”임유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두 사람 사이는 무척이나 가까웠고 강지혁은 그녀에게 가감 없이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나는 지금 충분히 이성적이야.”강지혁이 답했다.그의 코는 거의 그녀의 코와 맞닿을 정도였다.몸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임유진의 체취가 그의 몸을 감싸왔다. 마치 그의 정신을 쏙 빼놓는 게 목적인 것처럼 그를 집어삼키려고 하고 있었다.강지혁은 자신이 왜 이러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이렇게 그녀에게 화가 나는지 그는 도저히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신경이 쓰이는 걸까? 강현수와 그녀의 과거가?“강현수 좋아하지 말고 사랑하지도 마. 알아들었어?”강지혁이 낮은 목소리로 경고하듯 말했다.“난 한번도 강현수를 좋아하거나 사랑한 적이 없어!”임유진이 외쳤다.“네가 사랑하는 사람은 계속 나였다. 뭐 그런 말이 하고 싶은 거야?”강지혁이 물었다.“그래.”임유진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통 알 수 없는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단호하게 외쳤다.“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임유진은 그 말에 멈칫했다.강지혁의 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