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이건 또 누가 그랬을까? 임유진은 가장 먼저 강현수가 떠올랐다.그 영상들은 강현수가 삭제할 이유가 가장 크니까. 게다가 이렇게 신속하게 관련 내용까지 전부 삭제됐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그 시각 강지혁은 노트북 앞에서 침울한 눈빛으로 영상을 지켜봤다.임유진이 이 영상을 봤다면 아마 깜짝 놀랐을 것이다. 바로 탁유미가 말했던 그 영상 말이다. 다만 지금은 전부 말끔하게 삭제된 상태이다.강지혁은 묵묵히 영상을 지켜봤다. 강현수가 쪼그리고 앉아 임유진의 신발 끈을 묶어줄 때 강지혁의 눈빛은 더 짙어졌고 책상에 내려놓았던 손도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불끈 쥐게 됐다.그는 강현수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이다. 강씨 일가에 돌아와 가족들과 재회한 이후로 자연스럽게 강현수와도 접촉했다.강지혁의 집안과 강현수의 집안은 서로 사이가 좋아 그와 강현수도 나름 잘 지냈다.이 바닥에서 이익 충돌이 없는 한 친구 한 명 더 사귀는 것은 원수 한 명 더 만드는 것보단 나은 법이니까.상대가 얼마만큼 진심인지는 바라지 않아도 최소한 겉으론 친구로 지낼 수 있다.하여 그와 강현수도 나름대로 친한 사이였고 강현수가 얼마나 거만한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여자라면 아마 그의 마음속에 품은 그녀 말곤 전부 장식품이고 오직 그녀를 향한 그리움을 담기 위한 대체품이다.그렇다면 강현수가 마음에 품은 그녀는... 강지혁은 입술을 꼭 깨물고 영상 속 강현수가 임유진을 바라보는 그 눈빛을 빤히 쳐다봤다.강현수는 아직 그녀가 바로 자신이 찾고 있는 소녀란 걸 모를 것이다! 만약 안다면 절대 여기서 멈추지 않을 테니까.애초에 임유진의 어릴 적 사진을 안 봤더라면 강지혁은 절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바로 강현수가 수년간 애타게 찾고 있던 그 소녀란 것을.강지혁은 이 사실을 절대 강현수에게 알리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그에게 비밀로 해야 한다.임유진은 오직 강지혁의 여자일 뿐이니 이번 생에 오직 그와 함께해야 한다!옆에 있는 고이준
“그럼 만약 아니라면? 내 여친이 아니면 강현수를 좋아할 것 같아?”강지혁은 집요하게 되물었다.‘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고이준은 죽을 맛이지만 상사의 물음에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제가 볼 때 임유진 씨는... 감정에 비교적 보수적인 편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쉽게 마음이 안 바뀔 거예요.”“그래? 전에는 소민준과도 사귀었는데?”강지혁이 차갑게 쏘아붙였다.고이준은 울상이 되었다.‘비서 하기 참 힘드네. 이런 극한직업이 또 어디 있냐고.’“임유진 씨와 소민준 씨는 이미 지나간 일이에요. 애초에 임유진 씨는 소민준 씨에게 그런 식으로 배신을 당했으니 당연히 미련 따위 없을 겁니다.”“배신?”강지혁이 눈썹을 살짝 치켰다.“그렇다니까요. 소민준 씨는 임유진 씨가 가장 도움이 필요할 때 이별을 고했어요. 이게 배신이 아니면 뭐겠어요?”고이준이 말을 이었다.“임유진 씨 성격상 자신을 배신했던 사람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강지혁은 순간 안색이 확 어두워지고 올라갔던 입꼬리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소민준이 그렇게 대한 것이 배신이라면 강지혁이 임유진에게 했던 짓은 또 뭐란 말인가?그는 무언가로 가슴팍을 꽉 짓누르듯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강지혁이 손을 들어 옆에 있던 물컵을 가져와 물 한 모금 마시려 했지만 손을 든 순간 정처 없이 팔을 떨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아니, 팔이 아니라 그는 지금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하여 물컵도 제대로 잡지 못해 손끝에서 미끄러져 책상에 떨어트렸고 안에 있던 물이 책상에 그대로 쏟아졌다.고이준은 화들짝 놀라더니 무언가 눈치챈 듯 걱정에 휩싸인 표정으로 돌변했다.강지혁은 시선을 떨구고 눈앞에 쏟아진 물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불쑥 말을 꺼냈다.“나가봐, 고 비서!”“네.”고이준은 대답을 마치고 곧게 사무실을 나섰다.강지혁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의자 등받이에 축 처진 몸을 기대고는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가로막았는데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그는 가볍게 웃다가 더 크
“왜 불을 안 켜?”임유진이 의아한 듯 물었다.“보고 싶었어.”강지혁이 생뚱맞게 대답했다.순간 그녀는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마구 쿵쾅댔다. 불을 안 켜 주위가 어두운 덕에 강지혁은 그녀의 달아오른 얼굴을 볼 수 없었다.“누나는? 오늘 내 생각했어?”그의 목소리가 계속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졌고 목깃까지 간지럽혔다.임유진은 온몸의 신경이 목에 쏠린 것처럼 간지러웠고 심지어 뜨거운 숨결을 느낀 후 그의 입술이 곧 귀에 닿을 것만 같았고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면 아예 그녀의 귀에 입 맞출 것만 같았다.그녀가 한창 넋 놓고 있을 때 귀가 이따금 아파졌다. 흠칫 놀란 임유진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데... 결국 얼굴이 더 빨개졌다.강지혁은 지금... 그녀의 귀를 깨물고 있었다.“했어, 내 생각?”그의 중저음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응...”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저기... 일단 나 좀 놔줘. 가방 좀 내려놓게.”임유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지금 이 분위기가 너무 애틋해 숨 막힐 지경이었다.하지만 강지혁은 그녀를 품에서 놓아주기는커녕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었다.“그럼 누나도 날 사랑해?”그녀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사랑이라... 이런 감정은 너무 깊이 파고드는 거라 그녀는 정말 강지혁을 ‘사랑’ 하고 있을까?“좋아해... 너를.”임유진 숨을 깊게 몰아쉬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랬다. 지금은 단지 좋아하는 마음일 뿐 ‘사랑’에 이르는 정도는 아니었다.그녀에게 사랑은 거룩하고 유일하며 쉽게 변하지 않는 존재이다.굳이 강지혁 앞에서 억지로 본의 아닌 사랑을 논하고 싶지 않았다.지금 이 대답이 그가 원하는 해답이 아닐지언정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임유진은 그가 이 대답을 들은 후 불쾌해하거나 단호하게 다시 대답하라고 강요할 줄 알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묵묵히 그녀를 안고 가라앉을 것만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난 누나를 사랑해. 그 언젠가 누나를 잃게 되는 날엔 어떻게 해야
“지금 당장 사랑해주길 바라는 건 아니야. 내게 마음을 활짝 여는 것도 바라지 않아. 단지 날 좋아하는 그 마음이 내가 누나를 사랑하는 마음의 10분의 1이라도 돼주길 바라는 거야. 날 좀 더 많이 좋아해 달란 뜻이야.”강지혁이 나지막이 속삭였다.자신을 향한 그녀의 마음이 가벼울까 봐, 그 언젠가 다른 감정에 의해 대체될까 봐, 조만간 그의 곁을 떠날까 봐 두려운 것이다!강지혁은 천천히 그녀의 몸을 돌리고 서로 정면으로 마주 봤다.거실은 여전히 칠흑처럼 어두웠지만 창밖의 은은한 달빛을 빌려 임유진은 어렴풋이 그의 얼굴이 보였다.다만 표정은 보이질 않았고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서서히 손을 들어 두 손을 그의 얼굴에 갖다 대고 정중하게 말했다.“그래, 널 더 많이 좋아해 줄게.”처음에는 둘 사이의 관계가 막막하고 서로 사귀어도 미래가 없을 거라고 여겼다면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미래에 어떻게 되든 적어도 지금 그녀는 이 남자를 받아들이고 싶었고 자신의 마음을 더 많이 표현하여 그의 불안감을 잠재우고 싶었다.말을 마친 그녀는 발꿈치를 살짝 들어 선뜻 강지혁의 입술에 키스했다.임유진은 처음으로 맨정신에 이성을 다잡고 온 마음을 다해 그에게 키스했다.이 키스에 그를 향한 모든 감정을 다 실은 것만 같았다.오직 그녀만이 강지혁을 이토록 애타게 한다.그는 임유진을 사랑한다. 이 감정은 자신도 모르게 깊어졌고 강지혁 본인조차 두려울 지경이다.키스를 마친 후 임유진은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강지혁이 두 팔로 그녀를 받쳐주지 않았다면 아마 바닥에 쓰러졌을지도 모른다.“이건 누나가 한 말이야. 날 많이 좋아해야 해... 그리고... 날 사랑해줘.”그는 나지막이 속삭이며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어루만졌다.임유진은 여전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불을 안 켜길 참 다행이었다.“그리고... 나랑 약속해줘. 앞으로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꼭 날 용서해줘야 해.”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임유진
특히 지금처럼 강지혁 같은 남자는 높은 자리에 있어 주위에 유혹이 끊이지 않을것이다. 그가 방금 했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임유진은 알고 있다.하지만 이 감정이 과연 오래갈 수 있을까?“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나뿐이야. 다른 사람은 없어, 평생!”강지혁이 말했다.“그러니까 만약 다른 일로 내가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누난 날 용서해줄 거지?”그는 애원과 애교가 살짝 섞인 목소리로 나지막이 속삭였다.“응.”임유진이 대답했다.그녀의 대답이 떨어지기 바쁘게 강지혁은 또다시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누나, 지금 한 말 절대 잊으면 안 돼. 영원히 기억해야 해!”마치 임유진이 아주 대단한 일을 맹세하기라도 한 듯 강지혁은 그녀에게 영원히 잊지도 말고 번복하지도 말라고 한다....욕실에서 임유진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방금 거실에서 강지혁과 포옹하고 키스한 지 한참 지났다 해도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여전히 홍조기가 가시지 않았다.오늘 밤 강지혁은 어딘가 수상해 보였지만 구체적으로 뭐가 수상한지는 또 딱히 설명할 수 없었다.갑작스러운 사랑 고백에 너무 놀란 탓일까?여기까지 생각한 임유진은 마음에 달달한 전류가 흐를 것만 같아 입꼬리를 씩 올리고 흐뭇하게 웃었다.이런 느낌을 받아본 지 대체 얼마 만인가?!샤워를 마친 후 그녀는 잠옷을 입고 밖에 나왔는데 강지혁이 한창 그녀의 침대에 앉아 그녀가 침대 머리맡에 놔둔 사진첩을 보고 있었다.사진첩은 새로 샀지만 안에 있는 사진은 불에 타버린 사진첩에서 꺼낸 것들이고 그중 일부는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타버렸다.그럼에도 그녀는 버리기 아까워 조심스럽게 사진을 정리하여 다시 새 사진첩에 넣어두었다.“누나 어릴 때 보면 볼수록 귀엽다니까.”강지혁이 고개 들어 임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자꾸 이렇게 칭찬하면 난 진짜 내가 미인이라도 된 줄 안단 말이야.”임유진이 어쩌다가 장난치듯 말했다.“내 눈엔 누나 미인 맞아.”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임유진을 쳐다봤다.“
비록 지금은 모든 영상이 삭제됐지만... 그녀는 이 일을 강지혁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 둘은 이미 연인 사이니까.“실은...”임유진은 오늘 점심에 빚은 갈등과 강현수가 자신을 도와 위기에서 벗어난 것까지 전부 강지혁에게 알렸다.다만 말을 마치고 강지혁을 쳐다봤는데 그의 얼굴엔 놀라움이나 의외라는 표정은 전혀 없었다.“알고 있었어?”“응, 누나가 말한 그 사건에 관한 영상을 봤어.”그가 대답했다.순간 임유진이 되레 충격을 받았다. 자신도 못 본 영상을 그가 어떻게... 볼 수 있었던 걸까?!“그 영상... 나랑 강현수 씨는 아무 일도 없었어.”임유진은 그가 오해할까 봐 일단 해명에 나섰다.유미 언니가 말하길 영상이 올라오자마자 그녀와 강현수 사이를 의심하는 댓글이 적지 않았다고 했으니 얼른 해명해야 할 듯싶었다.강지혁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양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턱을 살짝 치키며 그녀를 바라봤다.“그러니까 누나는 강현수한테 설렌 적 없다는 거지?”“당연하지.”‘설레다니, 너야말로 얼마나 날 설레게 하는지 몰라서 물어?’강지혁은 지금 평소 사람들 앞에서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그럼 만약 강현수가 누나한테 설렜다면?”그는 임유진을 빤히 쳐다보며 그윽한 눈길로 물었다.“뭐?”임유진은 흠칫 놀라더니 곧바로 담담하게 말했다.“강현수 씨는 임유라 남친이야. 게다가 설사 나한테 호감이 있다 해도 내가 그 사람 안 좋아해.”강지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안 좋아한다?’ 그러니까 강지혁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절대 강현수에게 호감 가질 일이 없다는 뜻이었다.“고작 임유라 남친인 것 때문에?”“난 여자친구 자주 바꾸는 사람 별로야. 제 감정을 막 다루는 사람 같아. 여자는 어쩌면 강현수 씨에게 조제품일지도 몰라. 오늘 이 여자한테 관심 있고 내일은 또 저 여자한테 관심 가질 거잖아.”임유진이 말했다. 그녀는 대체적으로 강현수를 플레이보이로 여기는
임유진은 문득 어제 강현수가 대신 신발 끈을 묶어준 일이 떠올랐다.‘지금 이거 질투 맞나? 지혁이가 질투를 해?’임유진은 예전 같으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 내심 마음이 흐뭇했다.햇빛?탁유미는 창밖의 하늘을 바라봤는데 오늘은 날이 흐려 태양이 아예 구름 뒤로 숨어버렸다.“아 참, 윤이 곧 수술해서 나랑 엄마는 병원 가서 며칠 동안 아이를 돌봐야 할 것 같아요. 가게는 며칠 문 닫을 예정이에요, 걱정 마요, 유진 씨 월급은 그대로 줄 테니까.”탁유미가 말했다.“출근 날짜는 나중에 문자로 알려드릴게요.”“네.”임유진이 대답했다.“윤이 수술 마치면 나한테도 알려줘요. 나도 윤이가 수술 성공했다는 소식을 빨리 듣고 싶거든요.”“알겠어요.”탁유미가 웃으며 답했다. 며칠 동안 가게 문을 닫아서 장사에 영향을 끼치겠지만 그녀에겐 아들의 청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다.윤이가 인공와우를 끼면 더 많은 일들을 마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소리를 듣고 말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언제까지 ‘알아듣기’ 만 하는 게 아니라 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하지만 탁유미는 이미 곤란을 극복할 준비가 되어있다.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윤이가 보통 아이들처럼 잘 듣고 잘 말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울 것이다. 그래야만 아이의 인생길이 험난하지 않을 테니까.오후 장사에 텀이 생기자 탁유미는 식당 뒤에 있는 방으로 돌아갔는데 윤이는 한창 외할머니 품에 안겨 자고 있었다.탁유미 엄마는 조심스럽게 윤이를 침대에 내려놓았다.“왜 들어 와?”탁유미 엄마가 물었다.“마침 시간이 비어서 윤이 보러 왔어요.”탁유미가 말했다.“너도 참, 매일 보는데도 또 보고 싶어? 내일이면 윤이 입원하니까 24시간 내내 실컷 지켜봐.”탁유미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도 다음날 외손주의 수술을 몹시 기대하는 듯싶었다.탁유미는 사랑스러운 눈길로 제 아들을 바라봤다.“다 나 때문이에요. 만약 그때 약을 잘못 먹지 않았더라면 윤이도 이렇게 되지
“유진 씨는 가게에 없어요?”강현수가 물었다.“유진 씨 배달 나갔어요... 돌아오려면 한참 걸릴 거예요.”탁유미가 대답했다.강현수도 더 묻지 않고 가게에서 커피 한 잔 시킨 후 의자에 앉아 천천히 음미했다.다만 강현수 같은 사람이 가게에 앉아있는 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비록 이 시간대에 가게에 사람도 많지 않고 강현수가 연예계 황태자란 걸 알아보는 사람도 많지 않지만 그의 외모와 몸매, 몸에서 내뿜는 고독하고 쓸쓸한 분위기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적잖은 손님들이 그에게 시선이 쏠렸다.임유진은 대체 언제쯤 돌아올는지, 탁유미가 속으로 중얼거릴 때 가게 앞에 불쑥 또 한 대의 고급 차가 도착했다.‘또’라고 말하는 건 포르쉐가 이미 가게 앞에 세워졌기 때문이다.새로 도착한 벤틀리에서 훤칠한 체구의 남자가 내렸고 탁유미는 순간 두 눈이 반짝였다.라이트 그레이 정장 차림에 정교한 이목구비, 앞머리는 뒤로 넘기고 훤칠한 이마를 드러냈으며 새하얀 피부에 매우 젊어 보였다. 다만 그의 몸에서 내뿜는 진중한 분위기는 젊어 보이는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그 남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올 때야 탁유미는 발견했다. 남자의 가장 아름다운 부위는 맑고 영롱한 두 눈이란 것을. 그의 눈에 차가운 한기가 감돌았지만 시선을 올릴 땐 숨길 수 없는 요염함이 비쳤다.이 남자는... 연예인인가? 대체 정체가 뭘까?탁유미는 혼자 생각하다가 이제 막 다가가 물어보려는데 뜻밖에도 그 남자는 강현수 앞에 멈춰 섰다.훤칠한 체구의 두 남자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잠시 후 뒤에 들어온 남자가 의자를 빼내고 강현수 옆에 앉았다.탁유미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아는 사이인가?뭐 그렇다 해도 딱히 놀랄 건 없었다. 두 사람은 같은 부류의 사람처럼 보였으니까.“여기서 널 보게 될 줄은 몰랐네.”강지혁이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먼저 말을 건넸다. 그의 어두운 눈동자는 마치 상대를 훑어보는 것만 같았다.“그러게, 나도 생각지 못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