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강지혁을 쳐다보는 눈빛은 어느 한순간 그에게 푹 빠져들고 더없이 가깝게 느껴지다가도 금세 또 애써 그에게서 멀어지려는 듯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예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지금은 어떤 이유로 갈등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그녀는 한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의 뜨거운 시선 속에서 얼굴만 점점 더 빨개졌다.“왜 날 안 봐? 나 좀 봐줘, 누나!”강지혁이 가까이 다가오며 뜨거운 숨결을 내뿜었다. 그녀는 마치 그의 목소리에 홀린 듯 저도 모르게 다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강지혁은 한없이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는데 갈증과 애틋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그는 앞머리를 뒤로 넘기고 훤칠한 이마를 드러냈지만 그녀 머릿속엔 여전히 기억 속의 ‘혁이’가 끊임없이 겹쳐졌다.애초의 혁이도 이런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으니.“누나는 날 조금이라도 좋아해?”그의 목소리가 또다시 임유진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임유진은 가슴이 찔린 듯 입을 열고 부인하려 했지만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이 또다시 꽉 막혀버렸다.‘난... 지혁이를 좋아할까?’임유진이 속으로 자신에게 물었다. 만약 그가 그저 혁이였다면 동생으로만 생각한 게 아니라 진짜 좋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강지혁이라면...“누난 날 좋아해.”그는 단호한 말투로 그녀의 귓가를 간지럽혔다.그녀의 표정은 이미 그에게 원하는 대답을 준 것만 같았다.강지혁은 입꼬리를 씩 올렸고 두 눈에도 흡족한 듯한 미소가 번졌다.임유진은 그런 그의 미소가 너무 예뻐 보였다....강씨 저택에 돌아간 후 그녀는 강지혁을 따라 거실로 들어가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저기... 오늘 나를 이렇게 많이 도와줬는데... 내가 어떻게 보답했으면 좋겠어?”세상이 늘 그렇듯 얻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하기에 그가 진짜 어떠한 보답을 원해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강지혁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어떻게 보답해줄 건데? 영원히 내 옆에 있어 줄래?”임유진은 입술을 살짝
처음부터 그가 원하는 건 그녀의 진심이다.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욕심이 점점 더 커졌다.그녀가 자신을 더 많이 좋아해 줬으면 좋겠고 딴 남자는 거들떠보지도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심지어 그녀의 미래에 자신이 아닌 딴 남자가 나타나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는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금세 질투의 화신으로 돌변했다.질투라... 그녀 때문에 강지혁은 그제야 질투가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됐다.임유진은 시선을 올리고 강지혁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녀 얼굴에 닿은 그의 손은 뜨겁기 그지없었다. 요 며칠 동안 그와 함께 지낸 순간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물론 아직도 그에게 모종의 공포가 남아있지만 방금 차에서 강지혁이 했던 말처럼 그녀는 이미 그를 좋아하게 된 듯싶다.애초에 그가 혁이였을 때부터 좋아했을 수도 있다.“정말 내가 좋아해 주길 원해?”임유진이 나지막이 물었다.“응.”강지혁은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그럼 넌? 넌 대체 나한테 무슨 감정이야? 내가 신선해 보여서? 꽤 재미있을 것 같은 게임 상대로 느껴져서 이러는 거야?”임유진은 용기 내어 마음속 깊숙이 담아뒀던 질문을 건넸다.강지혁은 어두운 눈빛으로 변하더니 돌연 싸늘하게 웃었다.“단순한 게임 상대로 여겼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그는 임유진의 머리를 확 잡아당겨 둘 사이의 거리를 더욱 좁혔다.“난 이번 생에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많지 않아. 어쩌면 아버지 말고는 누나가 유일한 사람일지도 몰라. 이런 내가 누나한테 어떤 감정일 것 같아?”쿵쾅! 쿵쾅!그녀의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임유진은 살며시 두 손 들어 그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이렇게 하면 그의 존재를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으니까.강지혁은 몸을 움찔거리더니 살짝 놀란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또한 그의 눈빛 속에 은은한 설레임과 갈망이 담겨 있는 듯싶었다.“혁아, 널 좋아해.”임유진은 자신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그녀는 강지혁의 정체를 알게 된 후 처음
어쩌면 어젯밤에 했던 말은 살짝 흥분되어 그랬을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사실인 것을, 그녀는 정말... 어느샌가 이 남자를 좋아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강지혁이란 남자를...임유진은 그에게 공포감을 느끼면서도 좋아하는 감정이 생겨났다. 분명 확연히 다른 두 개의 감정인데 이토록 모순적이면서도 함께 뒤엉켜 있다.“그럼 나랑 사귀겠다고 한 것도 진심이지?”강지혁이 또 물었다.“뭐?!”임유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젯밤에 그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고 강지혁은 곧장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누난 대체 어떻게 하면 나만 좋아할 건데? 더는 딴 남자한테 한눈팔지 말란 말이야!”그 당시 임유진은 그의 이 말을 듣고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내뱉었다.“너만 좋아하라는 건...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강지혁은 그녀의 말을 들은 순간 사랑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속삭였다.“남자친구? 누나 나랑 사귈 거야?”사귄다고? 임유진은 그의 질문에 머릿속이 백지장으로 돼버렸다. 어쩌면 그와 사귀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인 듯싶다.강지혁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그럼 사귀어. 누난 어떻게 생각해?”임유진도 감정에 이끌려 금세 대답했다.“좋아.”그리고 지금, 강지혁의 질문을 마주한 그녀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사귄다고? 그녀와 강지혁이?!임유진에겐 아예 불가능한 일인 듯싶었다.“누나, 번복하면 안 돼.”강지혁의 입술이 그녀의 귓가에 닿을 것만 같았다. 그는 뜨거운 숨결을 내뿜으며 속삭였다.“어젯밤 그 말들, 누나가 직접 한 거야. 번복하고 싶어도 내가 그렇게 안 둬.”그가 확고한 눈빛으로 쏘아붙였다.그랬다, 절대 그녀를 번복하게 놔둘 리 없다. 마치 한때 이미 그의 손에 잡혔던 황홀함처럼 어찌 또다시 돌려줄 수 있겠는가?임유진은 순간 마음이 엉망진창으로 돼버렸다....사귄다고? 정말 강지혁과 사귄다고?그녀는 식당에 출근했을 때까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한편 식당에 들어서자 사장 탁유미는 안 보이고 그녀의
“내가 그날 사람을 제대로 봤나 봐요. 역시 당신이었군요.”강현수는 담담한 눈길로 탁유미를 바라봤다.“날 찾아온 이유는 이경빈한테 당신을 만났단 얘기를 하지 말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죠?”‘이경빈’ 이 세 글자를 듣는 순간 탁유미는 온몸이 움찔거렸다. 얼마 만인가, 다른 사람에게 이 이름을 전해 들은 지가...뼛속 깊이 사랑했고 또 원망했던 그 이름.다만 이젠 그 이름에서 완전히 벗어나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맞아요.”탁유미는 이를 악물었다.“대표님한테 이런 말 할 자격이 없다는 걸 알아요. 단지 대표님이 저를 가엽게 봐주시고 아예 저를 못 본 거로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그녀의 말투는 비굴하기 그지없었다. 강현수가 무릎을 꿇으라고 해도 망설임 없이 꿇을 정도였다.“그쪽도 알다시피 요 몇 년간 이경빈이 사람을 시켜서 그쪽을 찾고 있어요.”강현수가 말했다.탁유미는 입을 앙다물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 남자가 탁유미를 찾는 이유는 단지 그녀가 받고 있는 고통이 아직 많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이고, 그가 정해준 비참한 노선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그녀가 뜻밖에 ‘실종’ 됐기 때문에 이토록 찾아 헤매고 있다.“대표님, 제발 부탁드려요. 저랑 경빈이 사이의 일은 대표님도 조금은 알고 계시잖아요. 저는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을 뿐, 아무도 해치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피해받고 싶지 않아요.”탁유미가 애원했다.“해치지 않는다고요?”강현수가 느긋하게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그쪽 때문에 경빈의 여자친구가 유산해서 한 사람의 목숨이 사라진 게 된 거잖아요?”탁유미는 이를 악물고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것은 그녀에게 강제로 낙인된 죄명이다. 그해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그렇게 강조했건만 아무도 그녀를 믿어주지 않았다.그리고 그녀가 제일 사랑했던 남자가 친히 그녀를 감방에 들여보냈다. 경찰들에게 끌려갈 때 탁유미가 물었다.“이경빈, 날 사랑하긴 했니?”“그럴 리가. 처음부터 너한테는 원망뿐이었어.
그해의 교통사고는... 임유진에게도 말하지 못할 속사정이 있는 걸까? 강현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실소를 터트렸다. 그해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은 강지혁의 약혼녀 진애령이고 임유진은 현재 강지혁과 함께 있다.설사 그해 교통사고에 또 다른 속내가 있다고 해도 강지혁이 알아서 조사할 일이지 그가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하지만...“임유진 씨는 언제부터 그쪽 가게로 출근했어요?”강현수가 뜬금없이 물었다.“네?”탁유미는 놀란 기색이 역력하여 잠시 후에야 대답했다.“보름 정도 됐어요. 우리 가게에서 배달 일을 맡고 있어요.”“평소 가게에서 표현이 어때요?”강현수가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아주 잘하고 있어요. 부지런하고 배달 효율도 엄청 높아요. 힘든 내색을 안 해요...”탁유미는 임유진의 가게 근황을 얘기했고 강현수는 한 손으로 한쪽 얼굴을 받치고 흥미진진하게 들으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싸늘하던 그의 얼굴이 살짝 온화해졌다.탁유미는 속으로 적잖게 놀랐다. 강현수가 설마 임유진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강현수는 연예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황태자라 주변에 갖은 미녀가 넘실거릴 테지만 임유진은 평소 출근할 때 수수한 옷차림에 민낯으로 길거리를 누볐고 두 손엔 심지어 굳은살이 많이 박혀 딱 봐도 막노동을 많이 한 사람인 게 티가 났다.이런 두 사람이 어떻게? 탁유미가 애초에 이 둘이 윤이 식당에서 대화를 나눴던 광경을 목격하지 않았다면 강현수가 임유진에게 호감이 있을 거라고 어찌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탁유미가 임유진이 가게에서 있은 일을 전부 얘기한 후 강현수는 그제야 정신을 가다듬고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방금 임유진 씨가 그쪽 가게에 지원하러 왔을 때 감방 생활을 한 적이 있다고 했는데 왜 그럼에도 채용한 거죠? 이후에 무슨 일 생기면 가게에 피해가 갈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나요?”탁유미는 쓴웃음을 지었다.“아마 저도 같은 경력이 있어서 측은지심에 그랬나 봐요.”처지를 바꾸어 생각해보면 그녀는 그 당시 임유진이 직업을 간절하게
임정호는 화가 나 다시 집주인에게 따져 물으려 했지만 상대가 이미 전화를 꺼버렸다.“어떻게 된 일이에요? 누가 유골함을 건드렸어요?”옆에 있던 방미령이 재빨리 남편에게 물었다.“집주인이 어젯밤에 누군가가 그쪽으로 찾아가서 유골함을 가져갔대!”임정호가 대답했다.“가져가다니요? 그럼 우리 백억은 어떡해요? 유골함이 없으면 그 계집애도 백억을 안 줄 거라고요!”방미령도 안달이 났다. 그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아 참, 설마 그 계집애가 사람을 시켜서 유골함을 가져간 게 아닐까요...”임정호는 미간을 구기더니 냉큼 휴대폰을 꺼내 임유진에게 전화했다.잠시 후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죠?”“저기 유진아, 나도 생각해봤는데 어쨌거나 난 네 아비잖니.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어제 말한 백억 말이야, 네가 한꺼번에 내놓기 힘들면 일단 절반만 줘도 돼. 그럼 내가 너희 엄마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알려줄게. 너 한창 강지혁과 뜨겁게 불타오를 단계잖아? 이 액수는 강지혁에게 별문제 되지 않을 거야.”임정호가 말했다. 비록 지금 유골함이 사라졌지만 그는 여전히 딸에게 돈을 갈취하고 있었다.만약 어젯밤 유골함을 유진이가 가져간 게 아니라면 50억도 좋으니 나중에 대충 유골함 하나 사서 가짜 유골을 넣어두고 속이면 그뿐이다.다만 아쉽게도 그는 전화기 너머의 싸늘한 임유진의 표정을 볼 수가 없다.친아빠라는 자가 엄마의 유골을 이용해서 돈이나 뜯어내려고 하다니, 어찌 엄마가 죽었음에도 이용하지 못해 안달이란 말인가?“그럴 필요 없어요. 어제 이미 엄마 유골을 가져와서 안장했어요.”임유진이 대답했다.이 말을 들은 임정호는 버럭 화냈다.“진짜 너였네. 네가 무슨 권리로 내 월세방에 쳐들어가 네 어미 유골함을 가져가? 게다가 이미 안장을 해? 내가 남편인데 대체 내 허락 없이 어디에 묻은 거야?”“남편인 걸 알긴 해요? 엄마가 살아계시면 아빠를 남편으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을 거예요.”임유진이 차갑게 쏘아붙였다.“너... 지금 아빠한테 그게 무
임유진에게 이런 재주가 있는 걸 알았더라면 애초에 잘 대해 줄 걸 그랬다며 임정호는 후회했다. 방미령은 임정호의 말에 배가 아팠는지 화를 냈다."강지혁은 감방까지 갔다 온 여자가 뭐가 좋다고 그런대요? 그리고 강지혁의 약혼녀를 차로 치어 죽인 것도 임유진이잖아요!""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임정호도 짜증을 냈다."하지만 뭐 어찌 됐든 그렇게 당당하지는 못할 거예요. 우리 유라처럼 모든 면에서 걸릴 것이 없어야 이제 강현수랑 결혼도 하고 강씨 집안의 안주인이 될 수 있죠. 우리 이번 여행 다녀온 것도 다 유라 덕이잖아요."임정호는 자신의 작은딸을 떠올리며 그제야 기분이 나아진 듯 보였다. 이제 그에게 남은 희망은 임유라뿐이었다.한편, 강지혁은 임유진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누나 아버지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강지혁은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그 안에 숨겨진 위험한 뜻을 임유진은 단번에 알아챘다. 또한, 알아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었다면 분노에 차서 내뱉은 한마디를 강지혁이 그대로 들어줄 것 같았으니까."아니야. 이제 아빠와는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으니까 이거로 된 거야."임정호가 이번에 한 일은 그저 임유진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일말의 부녀의 정을 끊어놓았을 뿐이었다. 임유진은 이때까지 임정호가 그래도 자신의 어머니에게 조금은 감정이 남아있을 줄 알았다. 두 사람은 연애결혼이었고 자신의 어머니는 임정호가 제일 힘들고 제일 형편없었을 때 결혼을 결심했으니까.하지만 이제는 임유진도 깨달았다. 그건 단지 자신의 일방적인 희망일 뿐이었다는 것을. 또한, 제일 무서운 건 시간이고 예전에 얼마나 대단한 사랑을 했어도 시간에 따라 그 감정은 옅어지고 또 옅어져 결국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강지혁은 눈앞에서 초연한 얼굴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약간의 슬픔과 허탈함까지 보이는 임유진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었고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을 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강
지금의 강지혁은... 자신을 좋아하는 거겠지? 다만 이 좋아하는 감정이 언제까지 갈까?임유진은 걱정부터 앞섰다. 자신의 어머니도 임정호에게 시집을 갈 때 임정호가 평생 자신만 바라보며 사랑할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보면 임정호의 마음에 어머니의 자리는 더는 없어 보였다. 영원한 사랑도 세월이 흐르면 그저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임유진 자신 또한 소민준과 뜨거운 사랑을 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자신이 평생 기댈 수 있는 사람을 드디어 찾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민준은 그런 기대가 우습게 단번에 그녀와의 모든 관계를 끊어버렸다."누나도 내가 이러는 게 장난 같아 보여?"그때 강지혁이 갑자기 질문을 해왔고 임유진은 움찔하며 거기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강지혁이 일개 장난으로 자신에게 이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가 품고 있는 이 감정이 얼마나 지속이 될지, 임유진은 거기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아마 1년, 2년... 혹은 고작 몇 개월일지도 모르니까."누나가 말해 봐. 내가 진심이라는 걸 어떻게 해야 믿어 줄래?"강지혁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가 내뱉은 다음 한마디에 임유진은 하마터면 소파에서 떨어질 뻔했다."우리 결혼할까? 이러면 내 진심을 믿어 줄 수 있겠어?"임유진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결혼?"결혼이라는 두 글자가 이토록 쉽게 입에 담을 수 있는 단어였나?"그래, 결혼."강지혁은 임유진이 잘 못 들은 것이 아니라는 듯 한 번 더 강조했다."난 이번 생에 누나 말고 다른 여자를 내 옆에 둘 생각 같은 거 없어. 그러니까 내 곁에는 평생 누나라는 여자만 있게 되겠지. 그래서 결혼하고 싶다는데 뭐가 잘못됐어?""하지만...""아니면 누나는 나랑 결혼 같은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거야?"강지혁의 손가락이 임유진의 볼을 스쳤다. 임유진은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의 손가락이 닿은 부분은 뜨거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임유진이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