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생각한 임유라는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그녀는 문득 딱딱한 물건에 손이 닿아 힐끔 내려다보니 강현수가 늘 착용하고 다니는 은팔찌였다.이 팔찌는... 임유라는 그의 가슴팍에 있는 은팔찌를 보며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평범하디 평범한 팔찌인데 그는 왜 항상 이렇게 착용하고 다니는 걸까? 마치 귀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임유라는 팔찌를 가져와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다.하지만 강현수가 곧장 그녀의 손목을 꽉 잡았다. 손목에서 밀려오는 고통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팔찌를 내려놓았다.임유라는 고통을 호소하며 싸늘한 강현수의 두 눈을 마주했다.분명 취했을 텐데 지금 이 순간 그의 눈빛에서 취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도리어 소름 끼치도록 정신이 맑아 보였다.“이건 네가 만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그는 차가운 말투로 쏘아붙였다.“알았어요... 앞으로 더는 안 만질게요. 난 그저 현수 씨 옷 갈아입혀 주고 편히 잠들라고 그런 거예요... 진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현수 씨... 일단 이 손 좀 놔줘요...”임유라는 너무 아파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손목이 곧 부러질 것 같은 고통이었다.강현수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더니 다시 눈 감고 침대에 누웠다.“나가.”강현수가 말했다.“하지만 오늘 밤엔 여기 남아서 당신 돌보고 싶어요. 많이 취했고 도우미들도 이미 잠들어서...”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현수가 가차 없이 잘라버렸다.“나가.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말고.”임유라는 이를 꽉 악물었다. 어렵게 구한 기회인데 이대로 사라지다니.다만 그녀는 감히 더는 말할 엄두가 안 나 의기소침해서 강현수의 방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방안에 강현수 한 사람만 덩그러니 남았다.그는 손을 들어 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어루만졌다. 결국 취기가 올라온 것이다.오늘 밤 그는 가슴이 답답해 술을 좀 많이 마셨다. 낮에 임유진을 본 것 때문일까?머릿속에 자꾸만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멀어져가는 뒷모습이 떠올랐다.그녀는 강지혁의 여자
그 시각 임유라는 눈앞의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전에 이 화실을 지나가다가 한번 들어가 보려 했는데 강현수에게 바로 제지당했다.하여 이번에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화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다만 그 안에 임유진의 초상화가 있을 줄이야.지금 성인이 된 임유진이 아니라 어릴 때의 임유진이었다.한 소녀가 소년을 업고 있는 그림인데 소녀의 얼굴은 임유진의 어릴 때 모습과 똑같았다.게다가 소녀가 입고 있는 꽃무늬 치마는 임유진의 사진첩에서 봤던 그 치마와 매우 흡사했다.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왜 강현수의 화실에 임유진의 초상화가 있는 걸까? 두 사람은 대체 어떤 관계일까?임유라의 머릿속은 수많은 의혹으로 가득 찼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더할 나위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예전에 느꼈던 불안감보다 훨씬 더 강렬한 공포였다.그녀가 간신히 얻은 모든 것을 임유진에게 빼앗기는 느낌이었다.‘안 돼! 절대 안 돼!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임유진과 강현수가 무슨 사이이든 그녀야말로 강현수의 여자친구이고 장차 강씨 일가에 시집가서 재벌가의 사모님으로 거듭날 사람이다!...임유진은 강씨 저택에 돌아와 강지혁의 침실 문 앞에 가서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문을 두드렸다.잠시 후 문이 열렸는데 강지혁이 목욕 가운을 입은 채 머리도 살짝 젖어 있었다. 보아하니 금방 샤워를 마친 듯싶었다.“저기... 잘 자.”말을 마친 그녀는 곧장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 했다.그의 요구 때문에 임유진은 매일 밤 돌아올 때 그가 집에 있으면 그의 방으로 가서 굿나잇 인사를 한다.하지만 강지혁이 재빨리 그녀의 팔을 덥석 잡아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누난 나한테 잘 자라는 인사만 하면 끝이야?”강지혁이 물었다.임유진은 입술을 앙다물고 무고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굿나잇 인사만 하기 위해 찾아온 게 틀림없었다.강지혁은 한숨을 내쉬다가 갑자기 허리를 굽혀 그녀를 번쩍 안았다. 그는 임유진의 어깨에 머리를 파묻고 그녀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강지혁은 한숨을 한번 내쉬더니 천천히 몸을 세웠다. 그러고는 매력적인 눈동자로 그녀를 애절하게 쳐다보았다."누나뿐이야."강지혁이 이토록 누군가의 시선을 갈망하는 것도 임유진뿐이었고, 강지혁의 질문에 아무 대답이 없어도 그가 어떻게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임유진뿐이었다. 강지혁은 그녀 앞에만 서면 원래의 자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나 머리 말려줘."그는 젖은 머리를 말리려고 했었던 수건을 임유진한테 들이밀었다. 임유진은 그 말에 상당히 당황했는지 그저 강지혁이 천천히 허리를 숙여 머리를 자신의 눈앞에 가져다 놓는 걸 바라보고만 있었다."왜? 예전에는 종종 해줬었잖아."강지혁이 뭐가 문제냐는 듯 바라보았다.‘그때랑 지금이 어떻게 같냐고!’임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천천히 수건을 그의 머리 위에 얹고 요구대로 머리를 말려주었다. 그녀는 수건 때문에 강지혁의 얼굴을 그나마 보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강지혁은 지금, 마치 얌전한 강아지처럼 그녀의 손길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있다.임유진은 지금, 이 상황이 마치 자신이 강지혁의 주인이고 말 한마디면 강지혁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이내 속으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냐고 자신을 비웃었다. 현실은 정반대였으니까.강지혁이 지금 강아지처럼 온순하게 굴어서 그녀가 이런 착각이 드는 걸까?그렇게 한참을 말린 후 임유진의 손이 천천히 멈추더니 입을 열었다."다 됐어."수건을 치워버리자 방금까지 물기를 닦아낸 탓인지 강지혁의 앞머리는 그의 이마와 눈을 거의 가리다시피 했고 임유진은 그 모습에 ‘혁이’가 떠올랐다.앞머리 뒤에 가려진 그의 칠흑 같은 검은 눈동자는 임유진을 삼켜버릴 듯 응시했고 임유진은 마치 자신의 영혼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하여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강지혁의 앞머리를 옆으로 넘겨주었다. 그러자 이제는 청초해 보이기까지 한 그의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강지혁은
"앞으로도 말 잘 들을 테니까, 나 좋아해 줄래?"애절하게 말하는 강지혁을 보며 임유진은 망설였다.만약... 그가 강지혁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아마 그를 좋아하게 됐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상대는 하필이면 강지혁이었고 3년이라는 감옥생활 동안 임유진은 하루도 그가 악몽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고 그가 무섭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임유진은 이제 강지혁과의 관계를 자신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여전히 그가 무섭고 두려웠지만, 자꾸 그가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아파 난다.강지혁이 진지한 얼굴로 달콤한 말을 속삭일 때면 임유진은 어김없이 심장이 두근거렸다.강지혁은 정말로 임유진을 그저 게임 상대로만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진심도 섞여 있는 걸까? 그렇다면 임유진은? 임유진은 그한테 설레고 있는 걸까?임유진은 현재 움직이려고 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져버리는 늪에 서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배달을 마치고 돌아온 임유진은 가게 안에 있는 한 남자를 보고 멈칫했다. 의자에 앉아 있는 건 바로 강현수였고 그는 이런 작은 가게에 얼굴을 비출 사람이 아니었다.준수한 얼굴에 꼭 어울리는 정장 차림, 그리고 은은하게 풍기는 향수까지 그에게 어울리는 건 고급 레스토랑이나 라운지 바 같은 곳이지 절대 이런 후미진 작은 가게가 아니었다.계산대에는 탁유미가 아닌 탁유미 엄마가 서 있었다.그리고 이때 강현수도 임유진을 발견하고 천천히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설마 했는데 진짜 여기서 일을 하고 있었네요?""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임유진이 궁금한 듯 물었다."어제 길을 가다 우연히 유진 씨가 스쿠터 타고 가는 걸 봤어요. 뒤에 ‘윤이 식당’이라고 쓰여 있더라고요. 그러다 오늘 마침 이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식사도 할 겸 들렀죠."강현수는 아마 모를 것이다. 담담하게 내뱉은 목소리와는 반대로 그의 얼굴에서는 일말의 따뜻함이 묻어나오고 있다는 것을."유진 씨, 여기 세 곳 더 배달해야 해요."그때 탁유미 엄마가 임유진을 향해 외쳤다."네."
"유진 씨, 잠시만요."다급해진 강현수가 얼른 그녀의 팔을 잡았다."혹시 화났어요? 유진 씨 일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없었어요."그러자 임유진이 이상한 눈길로 그를 쳐다봤다."화 안 났어요."임유진은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고 이런 일에까지 화를 냈다면 그녀는 진작에 화병으로 몸져누웠을 것이다.강현수가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혹시 일자리 필요하면 언제든 나한테 연락해요."그러자 임유진이 그를 쳐다보다 단호하게 얘기했다."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고 강현수 씨가 제 직업까지 신경 써줄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까도 말했다시피 전 지금 배달원 일에 만족하고 있어요."그러고는 자신의 팔을 잡은 강현수의 손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이제 손 좀 풀어주시겠어요? 배달하러 가야 해서."강현수의 검은 눈동자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이내 서서히 손에 힘을 풀고 그녀를 놓아주었다.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임유진은 모르겠지만 강현수는 꽤 임유진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그녀가 어릴 때부터 지금에 잇따르기까지, 물론 전부 임유라의 입에서 전해 들은 말이긴 하지만."지금 일에 만족하고 있다고요?"강현수는 피식 웃었다."한때 잘나가는 변호사였던 사람이 지금 배달 일에 만족하고 있다고요?"그에 임유진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변호사라는 건 이제 그녀의 마음속에서 꽤 오래전 일이 되어버린 듯했다.그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스쿠터에 올라탔다. 그러자 뒤편에서 또다시 강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두 사람 사이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것 같네요. 강지혁 옆에 더는 있고 싶지 않게 되면 언제든지 나한테 연락해요."그 말에 임유진이 잠깐 멈칫하나 싶더니 이내 스쿠터를 타고 떠났다.언젠가 임유진이 강지혁의 곁을 떠나게 되는 날이 와도 강현수를 찾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그의 사회적 신분을 생각하면 아마 그는 강지혁보다 더 냉정하고 무정할 것이니까.강현수의 연애사는 꽤 화려한 편이다. 그는 자신의
"너 어디 있냐고 그래서 주방에 있다고 하니까 슬쩍 쳐다보더니 가버리던데?"탁유미 엄마가 대답했다."대체 저 사람이 누군데? 너 아는 사람이야?"필경 자신의 딸이 남자의 얼굴을 본 순간 다급하게 숨어버리는 걸 봐버렸으니 탁유미 엄마도 많이 궁금했을 것이다.그러자 탁유미가 복잡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강현수라고 엔터 사업 쪽에서 알아주는 사람이에요. 내가 그 사람... 옆에 있을 때 저 남자하고 몇 번 정도 마주친 적 있었어요.""그럼 너 알아본 거 아니야?"탁유미 엄마가 다급하게 묻자 탁유미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아마... 알아본 것 같아요."탁유미가 예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라고는 하나 알아보지 못한 거였으면 굳이 떠날 때 그녀에 관해 물어보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러자 탁유미 엄마가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그, 그럼 이제 어떡하지? 너 여기 있다고 얘기라도 하게 되면 어떡해? 아! 아까 유진 씨 보니까 그 남자와 아는 사이인 것 같던데, 유진 씨한테 부탁해 보면 어때? 너 여기 있는 거 말하지 말아 달라고."그에 탁유미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솔직히 강현수가 어쩌다 이런 작은 가게까지 오게 됐는지 의문이긴 했었지만, 상황을 보니 임유진을 찾으러 온 것이었다. 하지만...‘그 강현수가 일개 식당 배달원을 찾으러 여기까지 왔다고?’임유진이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자 탁유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유진 씨, 혹시 강현수 씨랑 아는 사이에요?""언니가 강현수 씨를 어떻게 아세요?"임유진이 놀란 듯 묻자 탁유미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매번 여자친구 스캔들로 기사에 대문짝만하게 실리잖아요. 만났던 여자친구들도 다 유명 연예인이라고. 그래서 알죠.""강현수 씨하고는 몇 번 만난 적 있었어요.""그럼 그 사람하고... 아, 아니에요."탁유미가 손사래를 치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어 보였다. 임유진은 잠깐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배달음식을 들고 말했다."언니, 그럼 저 배달 다녀올게요.""그래요."탁유미는 역시 자신이 직접 강현수를
‘그러니까 임유진 씨의 마음을 얻고 싶은 게 맞다는 거지...?’고이준은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강지혁이 여자 하나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임유진 씨는 과거에... 아픈 상처를 지닌 분이셔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마음을 사로잡기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아마 억지로 밀어붙인다거나 하면 겉으로는 따를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속으로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될 거고요."고이준이 임유진을 냉철하게 분석했다."이건 어디까지나 제 의견이긴 합니다만, 항상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해주고 맞춰주려고 하는 자세로 다가가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야만 임유진 씨 마음의 벽도 서서히 무너질 테니까요.""그러니까 내가 철저하게 잘 보여야 한다는 거지?"강지혁의 혼잣말에 고이준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해주고 맞춰주려고 하는 자세로 다가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지 자신이 언제 철저하게 잘 보이라고 했나..."그런데 잘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고이준은 한 번도 여자에게 먼저 잘 보이려고 노력해 본 적 없을 것 같은 자신의 대표를 보며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때 핸드폰이 울렸고 고이준은 발신자를 보더니 이내 신속하게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지났을까, 고이준이 전화를 끊고는 강지혁에게 말을 전했다."대표님, 누군가가 진애령 씨 사건을 들쑤시고 있다고 합니다."그러자 강지혁의 얼굴이 삽시에 굳었다."누가?""그것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현재 알고 있는 건 꽤 여러 명이 당시 사건자료와 증인들의 행방을 찾고 있다는 겁니다. 또한, 해성시에 있는 증인한테는 현재 사람까지 붙인 것으로 보입니다.""‘갈’씨 성을 가진 그 증인 말하는 거야?"강지혁이 눈썹을 추켜올리며 물었다."네, 그리고 지금 해당 증인을 조사하고 있는 사람은 일전 한지영 씨가 고용한 사립탐정이 아니라고 합니다."고이준은 한지영이 사립탐정을 고용한 시점에서 이미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었다.
정장 차림에 가죽 구두, 거기에 만화를 막 찢고 나온 것 같은 얼굴까지, 이런 사람을 갑자기 남자친구라고 소개하면 그 누가 믿을 수 있을까.한지영은 하늘을 바라보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요 며칠 일어난 일들을 회상하며 자신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모든 일의 시작이 된 그 맞선. 한지영은 그날 선 자리를 그렇게 망쳐버린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보니 한지영의 엄마가 노발대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왜 남자친구가 있는데 자기한테 얘기를 안 하냐고, 그것 때문에 자기가 어떤 말을 들었는지 아느냐고. 그러고는 집요하게 남자친구가 누군지 물어보기 시작했다.그에 한지영은 마침 근처에 있던 친구가 자신의 사정을 듣고 일부러 남자친구인 척 도와줬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고는 어느 친구냐는 질문에 적당히 자신과 친한 남자애의 이름을 대고 다음 날 말을 맞추려고 했었다.하지만 말을 맞추기도 전에 마침 백연신에게서 전화가 왔고 전화를 받지 않는 한지영이 이상했던 그녀의 엄마가 핸드폰을 낚아채 대신 전화를 받고는 백연신과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그렇게 자연스럽게 한지영과의 관계를 물었고 백연신은 당연하다는 듯, 이 한마디를 던졌다."어머님, 제가 바로 그 남자친구입니다."그 한마디에 한지영네 집은 초토화가 됐고 한지영의 엄마는 언제 한번 시간 내서 집으로 오라고 쐐기를 박았다. 한지영이 필사적으로 핸드폰을 잡으려고 했지만, 한지영의 아빠가 그녀를 제지했고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엄마와 백연신이 통화하고 있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여차여차 통화를 끝낸 후 한지영은 엄마와 아빠한테 족히 2시간을 더 잡혀있었다."너는 애가 남자친구가 있으면 있다고 얘기를 하면 될 것을, 뭘 그렇게 꼭꼭 숨기고 그러니? 얼굴이 못생겼든 직장이 변변치 않든 가족들한테는 얘기는 했었어야지. 아니면 덜컥 애라도 생기고 나서야 얘기하려고 했어?!""..."한지영은 맹세코 그런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하지만 부모님에게 백연신과는 감정 없는 연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