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겨우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려 눈앞의 사람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눈물에 젖은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듯했다. “혁아, 나 좀 도와서 같이 지영이 찾아주면 안 돼?”임유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빠르게 얘기했다.“경찰은 그저 신고 접수만 했어. 사람을 시켜 찾을 거라는데 언제 찾을 수 있는지는 모른대! 내가 그 차 번호를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왜 다 기억하지 못한 걸까.”그녀의 말투에서 죄책감이 묻어났다.강지혁은 임유진의 얼굴을 보았다. 이렇게 조급한 표정은 그녀의 외할머니께 문제가 생겼을 때 봤던 표정이다. 외할머니는 그래도 그녀의 혈육이지만 한지영은 아니었다. 하지만 임유진은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조급해질 수 있었다.그의 마음속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질투심이 피어올랐다. 그녀를 이렇게 조급하게 만든 한지영에게 나는 질투였다. 만약 그였다면?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이렇게 조급해할 건가?“일단 돌아가자. 여기 추워.”강지혁이 얘기했다.“이거 봐, 손 차가운 거.”추운가? 그녀는 감각을 잃은 것 같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한지영을 찾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뿐이었다.“그럼... 그럼 넌 한지영을 찾는 걸 도와줄 거야?”임유진이 확실한 대답을 원한다는 듯 물었다. 경찰은 기다릴 수밖에 없으나 강지혁은... 그가 도와준다면 빠르게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그는 S시에 수많은 인맥과 자원이 있으니까.“일단 돌아가서 얘기해. 내가 도와준다고 해도 돌아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아니야. 그 후에 또 사람들한테 연락을 돌려서 도와주고. 안 그래?”그가 얘기했다.“하지만 늦으면... 지영이가 위험할 수도 있잖아.”어슴푸레한 달빛 아래서, 그녀는 그렇게 물에 젖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불안해 보이는 표정과 파리해진 얼굴을 보니 마치 여러 개의 바늘이 그의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다.“제발, 지금,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지영이를 찾아줘... 만약 지영이한테 무슨 일
답답함에 가슴이 먹먹했다. 딱 가슴 쪽에 무언가가 막혀서 내려가지도 않았고 뱉어내지도 못했다.강지혁이 언제 여자를 이리도 걱정했던가. 아마도 임유진이니, 오직 그녀에게만 이러는 것이다.강지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한숨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말을 들어주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사람 한 명 지금 어디 있는지 찾아줘. 그리고 안전한지도. 이름은 한지영. 오늘 오후에 어떤 차량에 납치되었대. 차는...”말하던 강지혁은 핸드폰을 임유진 앞에 가져다주며 얘기하라고 했다.정신을 차린 임유진이 얼른 얘기했다.“검은색 마이바흐예요. 차량 번호는...”그녀는 자신이 기억한 숫자를 다 얘기했다. 그리고 주차장의 위치, 몇 시에 발생했는지 등 디테일도 빠짐없이 얘기했다.임유진이 말을 마치자 강지혁이 또 핸드폰에 대고 얘기했다.“들었지? 얼른 이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통화를 끝낸 그는 또 임유진을 바라보았다.“됐지? 이제 제발 돌아가자.”그녀는 그제야 발을 옮겨 그의 차 앞으로 갔다. 강지혁은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었고 그녀가 차에 탄 후 또 허리를 숙여왔다.놀란 임유진이 굳어버렸다. 그의 상반신이 임유진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얼굴이 가까이 오더니 호흡마저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거리가 되었다.그녀는 어쩔 줄 모르고 강지혁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가까운지, 그의 기다란 속눈썹과 검은 눈동자, 높은 코의 날카로운 선, 지어 이마 앞의 잔머리까지 다 볼 수 있었다. 곧게 뻗은 코 아래는 그의 입술이었다. 그의 입술은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예뻤다. 윗입술은 살짝 얇았는데 섹시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이 입술이 말아질 때, 사람에게 이유 모를 압박감을 준다. 하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며 웃음을 지을 때는 또 그의 미소를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S시에서 가장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 웃음을 지을 때는 얼마나 순진한 얼굴인지, 누가 알겠는가! 임유진의 시선이 계속해서 강지혁의 입술을 계속 쳐다보았다
강지혁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몸을 세우고 차 문을 닫은 후 다시 운전석으로 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임유진은 차를 모는 강지혁을 보며 의외라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보통 운전기사분이 운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차를 운전하고 있으니 임유진은 마침 그의 옆태를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옆에서 보니 오관이 더욱 입체적으로 보였고 턱선도 더욱 날카로워 보였다. 곧은 콧대와 섹시한 입술까지. 지금의 그는 평소처럼 머리를 깔끔하게 올리지 못했다. 머리카락이 조금 흐트러진 모습이 마치 전에 그녀가 알던 혁이 같았다. 혁이... 이 호칭을 생각해 보니 복잡한 감정이 저도 모르게 북받쳤다. 아까 정신이 없어서 계속 그를 혁이라고 불렀다.혹시 그녀가 무의식 간에 혁이한테 도움을 청하면서 강지혁에게는 도움을 청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사실 혁이든지 강지혁이든지 다 그였지만. 지금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도 그였다. 경찰에서 찾는다고 했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직접 한지영을 찾고 싶었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빨리 한지영을 찾는 것이 좋을 것이다. 차가 신호등 앞에 멈춰서자 강지혁이 고개를 돌려 임유진을 보며 물었다.“왜? 왜 계속 그런 눈빛으로 봐?”그녀는 순간 놀랐다. 강지혁이 모르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임유진이 그를 지켜본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오늘은 왜 네가 직접 운전하나 해서.”그녀는 말을 조금 더듬으면서 입을 열었다. 몰래 지켜보다가 딱 걸리니 왜인지 모르게 부끄러웠다.“그래? 직접 운전하는 게...”재미있다는 듯이 얘기하는 그는 더욱 집요한 시선으로 임유진을 쳐다보았다.그가 전화기 너머로 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평정심을 잃은 채 운전기사에게 얘기하지도 못하고 키를 잡고 운전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하나. “진짜 알고 싶어?”강진혁이 뜨거운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품에 토끼를 안은 것처럼, 임유진의 심장은 말을 듣지 않고 빠르게 쿵쿵 뛰었다. 그의
강지혁은 임유진의 눈에 다른 사람이 아닌 강지혁만 있었으면 했다.“알고 싶으면 나랑 같이 기다려. 내 사람들이 한지영 씨를 찾으면 바로 연락할 거니까.”강지혁이 얘기했다.이건 임유진에게 당연히 문제없었다. 잠깐, 기다린다고? 어디에서 같이 기다리는 거지? 임유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5분 후, 어디에서 같이 기다리는지 알 수 있었다.바로 강지혁의 방이었다.그의 방에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이어진 문으로 그의 방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의 방문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었다.방에 들어온 강지혁은 바로 외투를 벗고 핸드폰을 꺼내 옆의 테이블에 놓았다. 임유진은 그의 핸드폰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핸드폰은 제일 처음 그녀가 강지혁에게 사준 30만 원밖에 하지 않던 낡은 특가 핸드폰이었다. 다른 일반인들이 쓰는 핸드폰도 이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그런데 강지혁이 이 핸드폰을 항상 지니고 다닌 건가?그렇지 않으면 오늘 그녀가 전화를 걸었을 때 바로 받을 수가 없었다.그녀가 이 핸드폰에 대해 잘 보지도 못했을 때, 어느새 시야 구석에 있던 강지혁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러자 임유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너... 너 왜...”“그냥 옷 갈아입는 건데.”강지혁은 눈썹을 치켜뜨며 그녀를 보았다.“누나도 나 옷 갈아입는 거 자주 봤잖아? 왜 지금은 부끄러워?”임유진은 갑자기 뜨끔했다. 전에 셋집에 살 때 강지혁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스웨터나 외투를 갈아입는 것이었다.안에 입는 옷들은 다 욕실에 들어가서 갈아입던 그였다.지금의 그는 윗옷을 벗어 얇은 셔츠만 남겼다. 더 벗는다면...그생각에 임유진은 저도 모르게 몸을 돌려 강지혁을 등지고 앉았다.어쩔 수가 없었다. 이곳은 그의 방이니 등 돌려 앉는 것은 임유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그리고 그녀는 사락사락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마도 강지혁이 옷을 벗는 소리인 듯했다.그가 옷을 갈아입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걸까.
강지혁은... 상체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너...!”그녀의 얼굴은 부끄러워서 붉게 물들었고 두 눈을 꼭 감은 채 뜨려고 하지 않았다. 눈을 떴다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될까 봐 무서웠다.“누나, 눈 안 뜰 거야?”그는 여유롭게 얘기했다. 그 느긋한 말투는 마치 유혹처럼 들리기도 했다.임유진은 여전히 눈을 꼭 감은 채 얼굴을 붉히며 재촉했다.“너, 너 얼른 옷부터 입어!”“하지만 난 누나가 나를 봐줬으면 하는걸?”강지혁이 대답했다.“게다가 난 오늘 누나의 일도 도와줬는데, 누나는 날 보기도 싫은 거야?”그 말에 임유진의 몸이 굳었다. 그리고 입술을 잘근 씹었는데 전에 그가 깨문 상처 부위를 다치게 되자 저도 모르게 낮은 신음을 흘렸다.그러자 귓가에 강지혁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임유진은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입술을 만지는 것을 느꼈다.“그거 알아? 아까 모습 꽤 귀여웠어.”귀엽다고?임유진이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입술 위로 무언가가 닿았다. 바로 그의 입술이었다. 강지혁이 갑자기 임유진에게 키스했다.놀란 임유진이 두 눈을 뜨고 가까이 다가온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임유진은 그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그녀를 잡아먹을 듯한 검은 눈동자를 마주하고 말았다. 마치 금방 피어난 꽃같이, 예쁜 모습으로 모든 사람의 영혼을 끌어당기고 있었다.“읍...”그녀가 입을 열고 뭐라고 얘기하려고 하자 키스가 더욱 격렬해졌다.임유진은 그 키스를 받아들이며 손을 그의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스가 끝났고 임유진은 숨이 차서 얼굴이 빨갛게 된 채 숨을 몰아쉬었다.강지혁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여유롭게 웃으며 얘기했다.“이렇게 해야 누나가 날 보는구나?”그녀는 놀라서 사레가 들렸다. 이 말에는 엄중한 착오가 있다. 하지만 임유진은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랐다. 마침 눈을 다시 감으려는데, 강지혁이 얘기했다.“왜, 내가 도와줬는데 날 보는 것도 싫은 거야?”그녀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얘기했다.“옷을 제대로 입으
하지만 그는 듣지 못한 것처럼 임유진만 쳐다보면서 얘기했다.“누나, 누나는 나한테 상처 줄 거야?”그 질문에 임유진은 몸을 흠칫 떨었다. 무슨 말이 나오려다가 성대에 걸려서 나오지 않는 듯했다.강지혁의 두 눈은 그대로 임유진을 바라보며 그녀의 속까지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이 질문이 어려워?”그녀가 긴 시간 동안 침묵하고 있자 강지혁이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누나가 대답하기 싫다면 됐어. 괜찮아. 그저 얘기해 줄 게 있어.”허리를 숙인 그가 입술을 임유진의 귓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영원히 나한테 상처 주지 마. 알겠어?”상처를 주지 않는다면 그는 임유진을 보물처럼 여기며 평생을 사랑하고 지켜줄 것이다. 그녀가 그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면 말이다....커다란 방안에서 임유진은 가만히 앉아있지 못했다. 핸드폰의 시간을 계속 유심히 지켜보며 언제쯤이면 한지영의 소식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강지혁은 이미 간편한 홈웨어로 갈아입고 소파에서 전업적인 보고들을 보고 있었다.우아한 자세로 앉은 강지혁을 보며 임유진은 아까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그녀한테 영원히 강지혁에게 상처 주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임유진은 전혀 그녀에게 상처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강지혁이 한 말은 사실 쓸모없는 말이라고 볼 수 있었다.강지혁 같은 사람을, S시에서 누가 감히 그를 상처 줄 수 있는가. 그녀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강지혁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내 생각해? 아니면 한지영 씨?”당연히 한지영 생각을 한 것이다. 아까는 그저 우연히 그가 한 말이 떠올랐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강지혁이 그녀를 보고 있으니 거짓말을 못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순진하고 온화하며 부드러울 것 같은 강지혁이지만 그를 건드리거나 심기를 거스른다면...그 후과를 상상하기도 싫었다. 지금의 그녀는 절대로 강지혁을 건드리거나 그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 아직 한지영을 찾기 위해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이때 강
“백연신은 백선 그룹의 회장이야. 백씨 가문의 가주이기도 하지.”강지혁이 말했다. 그리고 이상한 표정으로 임유진을 쳐다보았다.“백연신이 누군지 정말 몰라? 전에 한지영 씨가 얘기한 적도 없어?”임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친구의 입에서 백연신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백선 그룹은 알고 있었다. 이곳의 기업은 아니지만 S시에서 합작 프로젝트가 많은 유명한 해운회사다. 하지만 한지영이 왜 백연신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까 전화에서 얘기한, 백연신이 직접 나서서 손을 썼다는 것이었다.그럼 오늘 본 그 마이바흐에 백연신도 있었다는 것인가?친구가 그저 단순히 납치된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그럼... 내가 가서 찾아볼게!”임유진이 갑자기 몸을 돌려 아까 들은 주소로 가서 한지영을 구해주려고 했다.“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강지혁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임유진의 발이 그대로 멈춰 섰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럼... 경찰이랑 얘기해서 나를 데리고 들어가라고 할게.”“그렇다면 내가 장담하는데 100% 못 들어가.”강지혁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임유진 앞으로 다가왔다.마치 아직 철들지 않은 아이에게 얘기하듯 말했다.“백연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 그 사람에게는 누나가 한지영 씨를 만나지 못하게 할 방법이 백 가지는 넘을걸.”임유진은 당연히 백연신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기에 그저 간절하게 눈앞의 강지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강지혁은 설명하며 얘기했다. “백연신은 원래 백씨 가문의 사생아였어. 그래서 해외로 내쳐졌지.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수두룩했을 뿐만 아니라 적자도 두 명이나 있었어. 그러니 사생아가 얼마나 많은지는 얘기 안 해도 알 거야. 그런 사생아 중 하나였던 백연신이 어떻게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된 것 같아?”임유진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강지혁이 몇 마디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백연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사생아
돈도 없는 임유진에게 자본이라곤 더 없었다.임유진이 몇 해간 배운 것들이 강지혁에겐 더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이다. GH 그룹 변호사팀에 그녀보다 경력이 많은 사람은 많고도 많을 것이다.그녀에게 남은 건 그녀 자신뿐이었다.아무 이름이 없는 자신이 그녀가 가진 전부였다.임유진은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자세를 낮추더니 그대로 강지혁 앞에 무릎을 꿇었다.“제발 부탁이야. 나 백연신 좀 만나게 해줘. 내 눈으로 직접 지영이 만나보고 싶어.”강지혁은 까만 눈동자로 바닥에 무릎을 꿇은 임유진을 노려봤다. 표정은 놀라움과 분노가 섞여있었다...“너 지금 네가 무슨 짓 하는지 알고 있어?”강지혁은 임유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마음속에서 파도가 일렁이는 것 같았다.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늘 그녀만의 자존심이 있음을 말이다. 아무리 누가 그녀를 나무란다 해도 그녀는 늘 이미 짓밟힐 대로 짓밟힌 그녀만의 작은 자존심을 지키려고 했다.그렇지 않고서는 계속 강지혁을 그렇게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임유진은 지금 한지영을 위해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한지영은 자신의 자존심보다 더 중요하다는 게 아닐까?“알아.”그녀는 머리를 수그린 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지영이 만나게만 해준다면, 지영이 무탈하게 지켜준다고 약속하면 어떤 요구를 하든 받아줄게.”이게 그녀가 걸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었다.강지혁은 그녀를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강지혁의 눈에는 자기 자신도 알아채지 못한 억울함이 보였다.“만약 내가 싫다고 하면?”강지혁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임유진은 몸을 바르르 떨더니 천천히 시선을 그에게로 돌렸다.강지혁은 입을 앙다문 채로 그녀를 쳐다볼 뿐이었다.그녀의 안색이 점점 하얘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크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래, 알았어.”이렇게 말하고는 바닥에서 일어났고 방에서 나가 집 밖으로 향했다.그녀가 유일하게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꾸려고 해도 안 되면 직접 해결할 수밖에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