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어?”임유진은 덤덤하게 말문을 열고는 강지혁이 들어오기 편하게 자리를 비켰다.“누나, 오래 기다렸지.”지혁은 웃으며 말했다. 그는 테이블에 널려있는 미처 미처 정리하지 못한 사건 서류를 보았다.지혁은 아무렇지 않게 그 중의 자료를 들고 몇 번 훑어보았다.“왜 누나는 또 그때 사건을 보고 있는 거야?”유진의 몸이 굳었다. 예전에도 유진은 지혁에게 그 사건을 말한 적 있다. 하지만 그때 유진은 지혁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다시 그 사건에 대해 말하자니 오히려 난감하고 어색했다.유진이 아무리 무죄라고 생각하더라도 그 교통사고는 실제로 발생한 일이고,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은 지혁의 약혼녀이다!“누나, 왜 그래요?”유진이 꾸물거리며 대답하지 않자 지혁이 고개를 들어 유진을 바라보았다.“그냥…… 심심해서 보는 거야.”유진은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참, 누나는 전에도 억울하다고 말했잖아. 지금 이 자료들을 다시 보는 게 판결을 뒤집기 위한 거야?”지혁은 잡담처럼 말했지만 기이한 눈빛을 비쳤다.유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판결을 뒤집다, 유진은 당연히 뒤집고 싶다! 하지만 그때의 증인을 찾을 수 없고 그 물증들은 절대 번복할 수 없이 뚜렷했다.유진이 감옥에 갇힌 3년 동안 지영은 판결을 뒤집기 위해 수많은 돈과 시간, 정력을 썼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하여 유진이 출소한 지금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수중에 돈이 없고 200만 원도 안 되는 병원비조차도 친구에게 빌려야 한다.유진은 변호사를 한 적이 있으니 판결을 뒤집으려면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고 재수사하려면 얼마의 돈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확실한 유력한 새로운 증거가 없기 전에 경찰은 경찰력을 낭비하여 재수사할 수 없다. 하여 모든 조사는 자신이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진은 이런 경제력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문득 유진은 지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그럼 너는? 너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싶지 않아? 너의 약혼녀가 왜 운전을 하고 내 차를 박았는지 알아내고 싶지 않아?
“왜 그렇게 생각해?”강지혁이 반문했다.“어차피 이번 생에 여자와 결혼해야 해. 그럼 조금 늦거나 조금 빠른 게 차이가 있어? 진애령은 조용하고 말을 잘 들어. 진씨 가문과의 혼인은 강씨 가문의 사업에도 도움이 돼. 왜 마다하겠어?”지혁은 비즈니스 계약을 말하는 것처럼 아주 덤덤하게 말해 임유진은 조금 소름이 돋았다.이 남자에게는 사랑이 전혀 없는 것 같다. 결혼조차도 사업인 것 같았다.이런 사람에게 도대체 무엇이 중요할까?“하지만 지금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지혁은 유진을 빤히 쳐다보며 입가에 웃음기가 돌았다.유진은 어색하여 시선을 피했다. 마치 유진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유진은 자신에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말했다. 지혁과 유진은 다른 세계의 사람이고 여태껏 같은 세계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장갑만 주면 이제는 더 이상 마주칠 기회가 없을 것이다.“장갑 받아.”유진은 다급히 장갑을 가지러 가려고 했다.“급하지 않아.”지혁은 유진의 팔을 잡아당기고 천천히 허리를 굽혀 유진과 눈을 마주쳤다.“누나는 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 누나는 판결을 뒤집고 싶어?”뒤집고 싶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판결을 뒤집지 않으면 유진은 평생 그 죄명을 짊어지고 고개를 들 수조차 없다.하지만…….“뒤집고 싶다고 한들 어떻게 할 수 있겠어?”유진이 되물었다.“만약 누나가 정말 판결을 뒤집고 싶다면, 내가 도울 수 있어.”지혁이 말했다.그러자 유진은 깜짝 놀랐다.“너는 내가 그 당시에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걸 믿어?”“누나가 음주운전을 했든 안 했든 나한테는 상관없어.”지혁이 나지막하게 말했다.“단지 누나가 음주운전을 했다는 죄명을 벗기는 것에 불과해. 그 점을 뒤집으려면 내가 가장 좋은 변호사를 선임해 당시 사건의 허점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 그러면 사건을 뒤집을 수 있을 거야.”유진의 반짝이던 눈빛은 순간 암울함으로 대체되었다. 유진은 지혁의 뜻을 이해했다.
임유진은 더없이 확신했다.“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해!”“그 일은 이미 3년이 지났어. 그 당시 CCTV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일 거야. 판결을 뒤집는 것만 해도 어려운 일인데 진상을 찾는 건 더 말할 것도 없지.”유진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유진은 지혁의 뜻을 이해했다. 지혁은 단지 유진을 도와 사건을 뒤집는 것이다. 지혁에게 사실의 진상은 결코 중요하지 않다. 그날 진애령이 왜 자살하는 방식으로 차를 박았는지, 진애령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중요하지 않다.지혁은 애령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기에 애령이 죽어도 단지 혼인에 적합한 사람이 한 명 적어진 것에 불과하다.“강지혁, 넌 조금도 진애령을 사랑하지 않아.”유진은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그러자 지혁은 눈을 가볍게 떴다.“난 단 한 번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어.”“그럼 넌 누구를 사랑해?”그 순간 그 답이 지혁의 머릿속에 떠올랐다.지혁은 유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누나는 내가 누구를 사랑했으면 좋겠어?”유진은 갑자기 자신이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다. 유진이 왜 그걸 물은 것일까? 게다가 지혁은 결혼을 거래처럼 말한다. 아마 지혁은 평생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미안해, 내가 묻지 말았어야 했어.”유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날 도와 사건을 뒤집을 필요 없어. 내 사건은 내가 스스로 방법을 찾아볼게.”유진은 자신의 방식으로 진상을 찾아낼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르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그래?”지혁이 유진을 빤히 바라보았다.“좋아, 누나가 어떤 방법을 생각해 낼지 보고 싶네. 하지만 만약 누나가 생각을 바꾸어 사건을 뒤집으려고 한다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와. 내가 누나를 도와 사건을 뒤집을 거야.”“왜 사건을 뒤집는 것을 도와주는 거야?”유진은 의심스럽게 지혁을 바라보았다. 지혁의 표정을 보니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유진을 위해 사건을 뒤집을
마치 인생의 우스개처럼 느껴졌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랍 쪽으로 걸어가서 이미 짜놓은 장갑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이것은 약속했던 대로 너에게 주는 장갑이야.”그는 이 장갑을 자세히 들여다본 다음 다시 끼려고 했다.“잘 짰네, 게다가 아주 따뜻해. 누나가 짠 목도리처럼, 따뜻하고 편해.”“사실 너 그 목도리 할 필요 없어. 다른 사람이 보면 오히려 네 옷이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낄 거야.”그녀가 말했다. 그의 이 고급스러운 옷은 오히려 목도리를 더 낡고 저렴해 보이게 만들 뿐이다.“안 어울려?”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뜨고 가볍게 웃었다.“누나, 나한테 이 목도리가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를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내가 좋기만 하면 돼. 이 목도리처럼, 내가 어울린다고 느껴지면 어울리는 거야!”잠시 멈칫하던 그는 목도리를 만졌다.“하물며, 누나가 짠 것이라면, 어떤 옷이든, 다 잘 어울려!”그녀의 심장은 갑자기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런 말이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면 우습다고만 생각할 텐데 그가 뱉으니 진심처럼 느껴졌다.그의 잘생긴 얼굴이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다.마치 그녀가 짠 이 목도리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인 것처럼 말이다.“하지만 누나…….”그는 손에 끼워 본 장갑을 벗고 아무렇게나 의자를 당겨 앉더니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나는 다른 사람과 똑같은 물건을 사용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누나가 나를 위해 목도리랑 장갑을 짜줘서 정말 고마운데 앞으로 다른 사람한테는 이런 것들을 만들어주면 안 돼. 알겠지?”그의 미소는 정말 깨끗하고 맑았다. 마치 이른 아침의 햇빛과도 같아서 자신도 모르게 웃음 짓게 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그녀의 마음 다른 한구석을 씁쓸하게도 만들었다.‘이건 경고인가?’그는 그녀에게 앞으로 다른 사람에게 목도리 장갑을 짜 주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S시에서 그의 경고를 거역할 사람이 또 몇 명이나 되겠는가?————엑스트라 신이 있던 날, 임유진은 그룹
임유진이 오늘 할 엑스트라 배역은 시녀였고 감독이 요구하는 지정된 위치에 서서 머리를 숙이기만 하면 됐다. 게다가 오늘 시녀 배역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였다. 주요배역이 지나가는 앞에서 감독의 명령에 따라 다 같이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대사 한마디만 하면 됐다.“나리께 인사드리옵니다, 부인께 인사드리옵니다.”무릎을 꿇는 장면이 있어서 이쪽에서 페이를 만원 정도 더 준다고 했는데 그걸 합치면 2만 6천 원이었다.임유진은 고민해 보더니 무릎 꿇는 건 사실 별거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연기일 뿐이니까. 아무리 인기 있는 연예인이라도 무릎을 꿇는 장면 한 번씩은 다 있지 않가. 게다가 생업으로 연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무릎 까짓것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엑스트라의 분장실은 하나의 방이고 여기에는 여러 명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있다. 그리고 남자배우와 여자배우 모두 여기서 줄을 서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메이크업해 주는 걸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메이크업 아티스트 모두 속도가 빨라서 기본적으로 5, 6분에 한 명씩 화장을 완성했다.임유진의 차례가 되었을 때,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의아해하며 말했다.“이마에 흉터가 있네요!”임유진은 몸을 약간 떨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흉터는 두피에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사실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이 흉터는 감옥에 있을 당시 다른 사람으로 인해 다쳐 생겼고 후에 잘 관리하지 못해 남은 흉터였다.임유진도 왜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이 흉터를 언급했는지 알고 있다. 오늘 시녀의 헤어스타일은 앞머리를 모두 빗어 올려야 하므로 상처가 가려지지 않으니 흉터가 보일락말락 하게 드러날 것이다.“괜찮아요? 연기 계속할 수 있겠어요?”그녀가 불안하게 물었다. 처음에는 진세령에게 괴롭힘을 당할까 봐 걱정했지만, 지금은 이 배역을 계속할 수 있을지가 걱정됐다.“괜찮아요, 파우더로 살짝 두껍게 가리면 돼요.”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신속하게 임유진에게 메이크업을 완성했다.임유진이 거울을 보니 정말
어쨌든 이 일은 훔친 것도 빼앗은 것도 아닌, 오직 본인의 노동력만으로 얻은 것이다.“엑스트라를 하려던 거였으면 날 찾아오지 그랬어? 대사를 몇 마디 더 만들어 줄 수도 있는데. 그럼 단순 엑스트라보다 훨씬 돈을 벌 수 있어.”임유라는 이 말을 할 때 일부러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카락을 귓등으로 넘기며 손목에 찬 명품 시계를 과시했다.임유진은 임유라의 이 행동이 가소롭다고만 생각했다.“몇 마디 대사를 더 따내려고 자신의 언니를 속여 술자리에 데려갈 줄은 몰랐네.”“너-”임유라의 표정이 변했다. 임유진이 지난번 조감독과 술을 마시게 한 일을 저격 하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곧 그녀는 마치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임유진을 훑어보며 물었다.“너 지금 돈이 많이 부족해? 단역 할래? 설마 아무도 너에게 돈을 주지 않는 거야? 그래서 네가 이렇게 고생하면서 돈을 버는 거야?”“너에게 보고할 필요가 없지 않아?”임유진은 임유라를 무시했다. 그녀의 옆을 스쳐 지나가 엑스트라들이 대기하는 곳으로 걸어갔다.임유라는 눈살을 찌푸리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옆에 있는 비서에게 말했다.“방금 만난 저 여자는 임유진이라고 하는데 네가 좀 알아봐. 그녀가 지금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말이야. 그녀를 여기에 데려온 사람이 그녀의 정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야. 가서 전부 알아봐. 자세할수록 좋아.”‘도대체 강지혁과 임유진은 무슨 사이일까?’임유라는 마음속으로 추측하고는 있었지만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만약 그날 강지혁이 안고 차에 태운 여자가 정말 임유진이라면 임유진은 엑스트라로 나올 필요가 전혀 없었다. 임유진은 연예계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돈이 부족하면 직접 강지혁에게 한마디 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더군다나 엑스트라를 해서 돈을 몇 푼이나 벌겠는가!임유라가 화장할 때 알아보러 갔던 비서가 마침내 돌아와 임유라에게 보고를 했다.“뭐? 지금도 환경미화원 일을 한다고? 게다가 다른 환경미화원이 그녀를 소개하여 엑스트라로 나온 거라고?”
강현수를 생각하면 임유라의 마음속에는 늘 떨쳐버릴 수 없는 불안이 있다. 현수는 지금까지 진정으로 그녀에게 스킨쉽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어쨌든 그녀야말로 현수의 현재 정식 여자 친구이다.그리고 임유진, 그녀는 임유진에게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걸를 알게 만들 것이다. 지난날 그녀가 임유진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임유진은 거절했다. 그렇다면 지금, 그녀는 임유진에게 그때 거절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루게 할 것이다!————정식으로 촬영하기 전에 감독은 여러 사람에게 두 번씩 리허설을 해 보라고 했다. 리허설할 때도 임유진은 진세령을 보지 못했다. 진세령의 대역이 그녀를 도와 자리를 잡았다.그러나 임유라는 오히려 대역이 대신 자리를 잡게 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나서 남자주인공의 옆에 섰다.임유라는 이 드라마에서 여주인공 2호로 남자주인공의 작은 부인 역할을 하는데 진세령과 적지 않은 상대역이 있다.강현수는 임유라에게 대본을 여러 건 주며 선택하게 했는데 임유라는 직접 이 극을 선택했다.그때 강현수가 말했었다.“나는 유라 씨가 여주인공의 연극을 선택할 줄 알았어요. 이것은 여자 주인공 2호일 뿐이에요.”“하지만 이 작품은 대작이고 감독도 유명감독님이세요. 남자주인공은 영화제최우수상을 두 번이나 차지한 적이 있어요. 그리고 여자 주인공 진세령은 지금 한창 인기를 끌고 있잖아요. 이런 촬영팀에 들어가면 여자 주인공 2호가 되더라도 다른 작은 비용을 투자한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 1호가 되는 것보다 나아요.”그녀는 그때 이렇게 대답했다.그러나 임유라만이 스스로 알고 있었다. 이런 것들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가 이 촬영팀에 들어간 것은 단지 진세령 앞에서 으스대기 위해서였다.지난날 진세령은 그녀를 업신여겼다! 그녀가 소민준에게 배역을 달라고 부탁하러 갔을 때 진세령은 어떤 얼굴로 그녀를 대했는지 그녀는 분명 기억하고 있다.그리고 지금, 그녀는 진세령에게 자신이 비록 이 드라마에서 2호 주인공이라도 진세령이라는 여자
비록 그녀는 지영이가 그녀에게 돈을 갚으라고 재촉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녀가 지영이에게 빚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기에 계속 이렇게 모른 척할 수 없었다.한 번 또 한 번, 임유진은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다시 일어났다……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했다.그리고 주위의 다른 엑스트라들도 여러 번 무릎을 꿇는 동안 점점 더 힘들어하고 ,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소리 치며 이렇게 사람을 고생시키는 게 어디 있냐고 화를 냈다.감독은 엑스트라들의 감정이 점점 흐트러지는 것을 보고 조감독에게 가서 임유라의 뜻을 물어보라고 했다.임유라는 상황을 보고 일부러 진지하게 생각하는 척했다.“이렇게 해요. 이 사람이 잘하더라고요. 자세가 아주 모범적이고 시간도 잘 맞춰서 끝내던데, 차라리 그녀가 다른 엑스트라들에 시범을 보이고 다시 하는 건 어때요?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옆에서 다시 잘 보고 연습하기만 하면 일이 번거롭지는 않을 거예요.”그녀가 가리키는 사람은 당연히 임유진이었다.“하지만 이 엑스트라 분께서 여러분을 위해 시범을 보이고 싶은지 모르겠네요. 어쨌거나 이렇게 되면 이분이 다른 사람보다 더 피곤할 테니 말이에요.”임유라는 상대방을 위해 생각하는 척했다.“이게 싫을 게 뭐가 있어요, 돈만 좀 더 주면 문제없어요.”조감독이 기뻐하며 말했다. 어차피 많은 엑스트라들이 전부 힘든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이렇게 많은 엑스트라가 불만을 가지고 파업을 하게 되면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작은 소동 같은 것도 일어나기 쉽다.그냥 한 사람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게 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임은 틀림없다.그리하여 조감독은 임유진더러 한걸음 나서라 하고 4만 원을 추가하는 조건으로 그녀가 시범을 보이게 했다. 만약 거부한다면 그녀는 계약위반으로 오늘 한 푼도 받지 못할 것이다.임유진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임유라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띤 미소가 매우 눈부시게 느껴졌다.그녀는 임유라가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