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유미는 이경빈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이제는 정말 그 어떤 말을 들어도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그녀의 관심과 남은 시간은 오직 윤이와 김수영을 위한 거니까.“알았어. 지금 써서 줄게.”탁유미는 말을 마친 후 우악스럽게 잡혀있는 손을 바라보았다.“이제 그만 놔줄래?”이경빈은 그 말에 천천히 손을 놓았다.탁유미는 손을 뺀 후 아무 말 없이 앞장서서 걸어갔다.이경빈은 어쩐지 손아귀가 공허해진 느낌에 어쩐지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그의 요구대로 계약서까지 써준다고 하는데 뭐가 이렇게 자꾸 답답하고 마음에 걸리는 걸까? 뭣 때문에 두려움까지 느끼는 걸까?탁유미는 이경빈과 함께 집으로 올라왔다.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탁유미는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종이와 펜을 꺼내 들고 이경빈에게 물었다.“어떻게 쓸까?”그러자 이경빈이 탁유미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양육권을 포기한다는 것과 3개월 뒤에 윤이를 나한테 넘기겠다는 내용을 적어. 그리고 앞으로 윤이랑은 연락도 하지 않고 윤이 눈앞에 나타나지도 않겠다는 것도. 물론 몰래 만나는 것도 안 돼. 만약 네가 계약서까지 썼음에도 허튼짓을 하면 그때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이용해서 널 제일 밑바닥까지 끌어내릴 거야.”“걱정하지 마. 허튼짓할 거였으면 애초에 널 찾아가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윤이와는 이 3개월이 마지막이야.”탁유미는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이경빈이 원하는 요구들을 기재해 나갔다.윤이와는 이 3개월이 마지막이다. 윤이의 미래에 그녀가 함께할 일은 없다.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3개월이고 그녀는 이 3개월 동안 윤이와 마지막으로 원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이경빈은 탁유미의 평온한 답변에 눈살을 찌푸렸다.그의 말은 더 이상 그녀에게는 닿지 않는 것 같고 꼭 그녀의 마음속에서 그라는 존재가 영원히 사라진 것만 같았다.한때는 껌딱지처럼 옆에 달라붙어 작은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며 나 좀 봐달라고, 네가 날 바라봐주는 게 좋다고 했던 여자였는
“그 남자가 그렇게도 좋아?”이경빈이 갑자기 탁유미의 손을 낚아채더니 벽 쪽으로 그녀를 몰아세웠다.“언제는 윤이가 네 목숨이라며? 아이는 더 이상 낳고 싶지 않다며? 그런데 지금은 연애도 하고 싶고 이제는 그 남자의 애까지 낳고 싶어졌어?”손을 비틀며 이경빈에게서 벗어나려 힘을 줘봤지만 탁유미의 힘으로는 끄떡없었고 이경빈은 그녀가 반항하면 할수록 더 세게 힘을 가했다.“대답해. 넌 내 앞에서 유리잔을 들어 네 배까지 찔렀어.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 지금은 아이 같은 건 다른 남자 사이에서 또 낳으면 된다고 생각해? 그래?”이경빈이 무서운 얼굴로 추궁하기 시작했다.이에 탁유미는 반항하는 것을 그만두고 고개를 들어 이경빈을 바라보았다.그렇게도 사랑했는데, 가진 전부를 내어줄 수 있을 정도로 사랑했는데 그 사랑도 기한이 다 되니 이토록 부질없게 느껴졌다.“좋아하는 남자랑 함께하고 그 남자랑 나를 닮은 아이를 내가 낳겠다는 게 왜? 뭐가 문제야? 걱정하지 마. 네 아이를 낳을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탁유미의 목소리는 평온했고 그 어떤 희로애락도 느껴지지 않았다.하지만 그 말에 이경빈의 얼굴은 무섭게 가라앉았다.“그래? 그 남자가 그렇게도 좋아? 윤이를 버리고 아이를 낳아줄 만큼? 날 좋아했을 때보다 더?”“널 좋아한 건 내 실수야.”실수.이경빈은 실수라는 그녀의 말에 이성을 잃고 그대로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거칠게 키스를 퍼부었다.탁유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전부 다 먹어버리려는 듯 그는 그녀가 숨 술 공간조차 주지 않았다.탁유미는 갑작스럽게 다가온 그의 입술에 처음에는 격렬하게 반항했지만 이내 모든 걸 다 포기한 듯 반항을 멈추고 그가 이끄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실수’라는 두 글자에 자극을 받아 홧김에 그녀에게 키스했지만 이경빈은 어느 순간부터 그녀와의 키스에 완전히 빠져버렸다.끝날 것 같지 않았던 키스가 끝이 나고 이경빈은 숨을 몰아쉬며 입술을 뗐다.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뛰고 있었고 그녀와의 키스는 정신이 아득해
이경빈은 자신이 탁유미에게 있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다는 것에 심장이 쿵 내려앉으며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졌다....“경빈 씨, 소는 왜 갑자기 취하한 거예요? 윤이 데려오겠다면서요.”공수진이 S 시까지 찾아와 이경빈에게 물었다.사실 그녀는 이경빈이 당분간 S 시에 머물기로 한 순간부터 불안하고 또 초조했다. 꼭 자신이 모르는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탁유미는 별 볼 일 없는 여자가 분명하지만 그녀와 이경빈 사이에는 아이라는 유대가 남아있다. 아이라는 건 생각보다 영향력이 크고 아이로 맺어진 인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그래서 공수진은 하루라도 빨리 이경빈과 결혼해 자기 위치를 확고히 하고 싶었다.“탁유미랑 합의 봤어. 3개월 뒤에 군말 없이 윤이를 보내주겠대. 그리고 그 뒤로는 더 이상 윤이 앞에 나타나지도 연락하지도 않을 거래.”이경빈의 말에 공수진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혹시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요? 이렇게 갑자기 양육권을 넘게 주는 게 뭔가 이상해요.”꿍꿍이라는 말에 이경빈은 순간 탁유미와 우직하고 성실해 보이는 남자가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광경이 떠올랐다.이에 그는 어쩐지 화가 치밀어 조금 딱딱하게 말했다.“꿍꿍이는 무슨. 그 여자가 머리를 굴려봤자 내 손바닥 안이야.”공수진은 이경빈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나긋나긋한 말투로 화제를 돌렸다.“알겠어요. 합의했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좋은 일이죠. 경빈 씨, 나 좋은 엄마가 될게요. 윤이를 내 아들처럼 잘 키워볼게요.”이경빈은 공수진의 말에 문득 그날 밤 탁유미가 호텔 방으로 찾아와 말했던 첫 번째 조건이 생각났다.“경빈 씨? 왜 그래요?”공수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야.”“저기 경빈 씨, 우리 결혼식 말이에요. 이 3개월 안에 빨리 진행해버리는 거 어때요? 결혼 준비도 거의 끝나가고 결혼식이 끝나고 나면 바로 윤이 데려올 수 있잖아요. 그때가 되면 나도 윤이를 돌봐줄 엄마라는 명분이 생기고요.”이경빈은 그 말에 생각에 잠겼다.
...다음날.탁유미는 공수진이 제 발로 또다시 자신을 찾아올 줄은 몰랐다.공수진은 부잣집 사모님이라도 되는 양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두르고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유치원 앞에서 본 게 마지막이었나요? 이렇게 또 보게 되네요. 경빈 씨한테 들었어요. 양육권을 포기한다면서요? 아들을 끔찍하게 생각하길래 끝까지 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꼬기를 내렸네요? 혹시 양육권을 포기하는 것을 빌미로 다른 이익을 얻어갈 생각은 아니죠?”공수진은 포장마차 앞에 서서 음식을 조리하는 탁유미를 마치 패배자 보듯 바라보며 조롱했다.이에 탁유미는 가스 불을 끄고 공수진을 바라보았다.“하고 싶은 말은 그게 끝이야?”“당연히 아니죠. 나랑 경빈 씨 3개월 안에 결혼해요. 3개월 뒤에 윤이를 우리한테 보낼 생각이죠? 걱정하지 마요. 윤이는 내가 아주 ‘잘’ 키워줄 테니까.”공수진은 일부러 ‘잘’이라는 글자를 강조하며 탁유미의 화를 돋우려는 듯 생글생글 웃었다.이에 탁유미는 차갑게 식은 얼굴로 공수진을 빤히 바라보았다.“탁유미 씨 때문에 유산까지 했지만 어차피 지난 일이고 그 일로 탁유미 씨가 감옥살이까지 했으니 벌은 다 받았다고 생각할게요. 나는 그렇게 꽁한 사람이 아니라서요. 윤이도 내 친아들처럼 잘 키워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말은 이렇게 하지만 공수진의 눈빛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탁유미는 공수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공수진, 그 사건의 진상이 어땠는지는 너도 알고 나도 알아. 네가 그때 날 모함하고 음해할 수 있었던 건 이경빈이 날 싫어해서 가만히 내버려 둔 덕이야. 하지만 상대가 윤이라면 상황이 달라지지. 윤이는 이경빈의 자식이야. 이경빈이 네가 윤이한테 손대는 걸 가만히 두고 볼 것 같아? 이경빈이 정말 그렇게 멍청해 보여?”그 말에 공수진의 표정이 굳더니 반박할 말이 없는지 입을 꾹 닫았다.“만약 그 언젠가 너 때문에 윤이가 조금이라도 다치는 날이 오면 이경빈은 네가 아닌 윤이를 선택할 거야. 자기 핏줄
공수진은 분노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탁유미,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두고 봐!”공수진은 말을 마친 후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그러자 얼마 안 가 양아치 몇 명이 다가오더니 포장마차에 있던 손님을 쫓아내고 손님들이 앉았던 의자와 음식이 놓여있는 테이블을 엎어버리기 시작했다.하지만 유독 공수진이 앉은 자리는 건드리지 않았다.즉 이 양아치들은 공수진이 부른 사람들이라는 뜻이었다.양아치 중 한 명은 흉흉한 기세로 다가오더니 그대로 탁유미에게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을 가했다.탁유미도 반항을 해보고 주먹도 막아봤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결국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버렸고 양아치들은 쓰러진 그녀에게 욕을 퍼부으며 자비 없이 발길질을 해댔다.“미친년이 감히 누굴 건드려? 너 같은 년은 기어오르지 못하게 확실히 밟아버려야 해!”“독한 년, 입 꾹 다물고 있는 거 봐.”탁유미는 이를 꽉 깨문채 버티고 또 버텼다.공수진과 양아치들에게 살려달라는 말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으니까.그런데 그때 갑자기 발길질이 멈추더니 이내 양아치들의 비명과 깜짝 놀란 듯한 공수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뭐가 어떻게 된 거지?탁유미가 상황파악을 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올린 순간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니, 괜찮아요? 어디 다친 데는요?!”임유진이 서둘러 탁유미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를 부축해 바닥에서 일으켜 세웠다.“유진 씨가 왜...”“언니 보러 왔다가 우연히 보게 됐어요.”임유진은 탁유미가 양육권을 포기하려는 것을 말리려고 왔다가 양아치들이 날뛰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임유진과 함께 온 황채린은 이미 진작 양아치들을 제압해 바닥에 무릎을 꿇렸고 몰래 도망가려는 공수진의 손도 낚아채 임유진의 앞으로 데려왔다.“이거 놔! 내가 누군지 알고 나한테 이딴 식으로 굴어?! 나 당신들 고소할 거야!”공수진은 큰소리로 외치며 황채린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뿌리쳐봐도 끄떡없었다.“잘됐네.
그러다 먼저 정신을 차린 강지혁이 대충 상황을 파악한 듯 입을 열었다.“약혼녀 데리러 왔나 봐요?”“강 대표님도 아는 사람 데리러 왔나 보죠?”이경빈이 되물었다.“제 와이프랑 와이프 친구가 여기 있다고 해서요.”강지혁의 말에 이경빈이 미간을 찌푸렸다.공수진은 아까 전화로 일이 좀 생겼다고 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는 얘기해주지 않았다. 게다가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고 해도 공수진이 울먹거리며 흐느끼는 바람에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했다.그런데 지금 강지혁의 하는 말을 들으니 상황이 저도 모르게 누군가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설마... 탁유미도 경찰서에 있는 건가?생각을 마친 이경빈이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강지혁이 갑자기 뒤에서 입을 열었다.“탁유미 씨가 양육권을 이 대표님한테 넘겼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하지는 않으십니까?”이유...이경빈은 강지혁의 말에 전에 다른 남자랑 결혼해 아이를 낳고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던 탁유미의 말이 생각나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강 대표님이 남 일에 이토록 관심이 많을 줄은 몰랐는데.”“이 대표님의 증언으로 탁유미 씨를 감옥에 보낸 일, 앞으로도 후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강지혁은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한마디 건네더니 이내 발걸음을 옮겨 먼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그는 타인의 일 따위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이경빈과 탁유미를 보고 있으면 그와 임유진의 일이 떠올라 어쩐지 신경이 쓰였다.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탁유미는 이경빈의 증언으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고 임유진은 강지혁의 방관으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이경빈은 후회하지 말라는 강지혁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후회라니, 그딴 걸 할 리가 없다.탁유미가 감옥에 들어가게 된 건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고 3년 반이라는 형은 한 아이의 생명을 대체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하지만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도 자꾸 심장이 욱신거렸다.생각을 다잡고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머리가 잔뜩 헝클어지고 얼굴에는 멍이 들어버린 탁
임유진은 호전적인 성격이 아니지만 지금은 탁유미 때문에 화가 머리까지 치솟아 말이 예쁘게 나가지 않았다.그리고 이렇게 강하게 얘기하지 않으면 공수진이 또다시 양아치들을 데리고 탁유미를 괴롭히러 올지도 모른다.공수진은 임유진의 말에 움찔했지만 그것도 잠시 여전히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듯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저도 그 양아치들이 뭣 때문에 왔는지 궁금하네요!”임유진은 공수진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더니 고개를 숙여 탁유미를 바라보았다.“언니, 괜찮아요? 일어날 수 있겠어요?”“네, 괜찮아요.”탁유미가 애써 웃어 보이며 휘청휘청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에 임유진이 탁유미를 부축하려고 하자 강지혁이 탁유미의 반대편 팔 쪽으로 다가와 말했다.“내가 할게.”그러고는 그대로 탁유미의 팔을 잡아 부축하고는 경찰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이경빈은 떠나는 세 명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강지혁은 탁유미를 좋아하지도 않고 탁유미를 부축한 건 단지 임유진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데도 두 사람의 모습이 거슬리기 짝이 없었다.또한 아까 이경빈의 곁을 스칠 때 탁유미가 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것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꼭 자신이라는 존재가 그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이경빈은 탁유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눈을 떼지 않았다.그리고 공수진은 탁유미의 뒷모습만 바라보는 이경빈의 눈빛에 어딘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설마 탁유미가 신경 쓰이기라도 하는 건가?!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경빈이 탁유미를 신경 쓴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었다.결국 이경빈과 결혼하는 건 그녀일 테고 결혼한 뒤에도 이경빈은 영원히 그녀의 것일 테니까....경찰서에서 나왔는데도 공수진은 여전히 자신은 억울하다며 울먹거렸다.“나는 그냥 앞으로 윤이를 잘 키우겠다고 한 것뿐인데... 그냥 탁유미 씨와는 이제 과거의 악감정을 다 풀고 싶었던 것뿐인데 이렇게 뺨을 맞을 줄은 몰랐어요. 나는 그때 유산까지 했는데 탁유미 씨는 뭐가 그렇게 당당한 건지
공수진은 이씨 가문의 며느리가 되면 가장 먼저 탁유미부터 제거할 생각이다. 그리고 윤이도 괴롭히고 또 괴롭혀 이윽고 제 발로 집을 나가게 할 생각이다....임유진과 강지혁은 탁유미를 병원으로 데려가 검사를 받게 했다.검사 결과 다행히 가벼운 찰과상만 있을 뿐 큰 상처는 없었다.탁유미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임유진은 잔뜩 굳은 얼굴로 씩씩거렸다.“난 유미 언니가 이해가 안 돼. 어떻게 이경빈에게 윤이를 맡기겠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지? 윤이가 이경빈한테로 간다는 건 공수진이 윤이의 새엄마가 된다는 건데, 그 공수진이 윤이를 제대로 키워줄 리가 없잖아!”“탁유미 씨도 생각이 있겠지.”강지혁이 임유진을 달래주며 말했다.“다행히 큰 상처는 아니었으니까 너도 이제 그만 화 풀어. 화내면 몸에 안 좋아.”“옆에서 보는 게 답답해서 그래. 이경빈은 공수진이 연기하고 있다는 걸 정말 모르는 걸까?”임유진이 강지혁을 바라보며 물었다.“알고 있는데 모른 척하는 걸 수도 있어. 이경빈이 공수진을 옆에 둔 건 이씨 가문이 망하기 직전 이경빈이 병에 걸려 골수 이식이 필요할 때 마침 골수 기증에 적합한 기증자가...”“공수진이었기 때문이라고?”“응.”강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공수진이 골수를 기증해준 걸 알아버렸으니 이경빈 입장에서는 공수진에게 목숨을 빚진 것과 다름없지.”“그런데 보통은 기증자 이름을 알려주지 않지 않나? 이경빈은 공수진이 그 기증자라는 걸 어떻게 알게 된 거야?”임유진이 의문을 제기했다.“당시 공수진한테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그 남자가 이경빈이 입원해 있었던 병원의 의사였어. 아마 그 남자를 통해 어찌어찌 알게 된 게 아닐까 싶어.”강지혁이 답했다.“그런데 나도 네가 공수진 주치의의 행방을 찾아달라고 했을 때 고 비서가 건넨 자료로 우연히 알게 된 거라 자세하게는 몰라.”“참, 그 주치의는 어떻게 됐어? 찾았어?”“곧 있으면 찾을 수 있을 거야.”“다행이네.”임유진은 불행 중 다행인 소식에 찌푸렸던 미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