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적당한 선에서 정한나가 다시는 이런 행동도 말도 못 하게 겁을 줄 필요가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정한나의 얼굴은 금세 사색이 되어버렸다.“한나 씨 말대로 현수 씨와 결혼하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한나 씨 하나 처리해달라고 부탁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정한나는 입술을 꽉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도 그럴 것이 만약 임유진이 정말 강현수에게 부탁하게 되면 강현수는 아마 100%의 확률로 그 부탁을 들어주게 될 테니까.아니, 어쩌면 부탁할 필요도 없이 방금 그 녹음 하나로 당장 움직여 줄지도 모른다.지금도 최악인데 만약 강현수 쪽으로부터 압박이 들어오게 되면 아마 그녀는 더 이상 S 시에 발을 붙일 수가 없게 될 것이다.정한나는 생각으로 벌써 몸이 덜덜 떨렸다.임유진은 그런 그녀를 힐끔 보더니 커피를 들고 유유하게 탕비실을 나왔다.그리고 자리에 앉아 이제 일을 시작하려는데 한지영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유진아, 너 강현수 씨랑 사귀어?!][??]또다시 강현수의 이름이 나왔다.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다들 이러는 걸까.그때 한지영이 또다시 메시지를 보내왔다.[아니라고? 그럼 이 동영상은 뭔데?]한지영은 말을 보내고 난 후 문제의 동영상도 바로 뒤이어 보냈다.임유진은 그 영상을 클릭하고는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영상은 버스 안에서 찍힌 것이었고 등장인물은 그녀와 강현수였다.촬영 각도로 봤을 때 해당 영상을 찍은 사람은 그들 뒤쪽 좌석에 앉아 있던 사람으로 보인다.문제의 영상 속에는 강현수가 그녀의 머리와 버스 창문 가운데 손을 넣고 그녀의 머리가 흔들릴 때마다 조심스럽게 감싸주는 모습이 찍혔다.그리고 제일 문제가 되는 건 강현수의 표정이었다. 입꼬리를 예쁘게 말아 올린 채 임유진만 보는 그 시선은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남자의 시선이었다.이... 이게 뭐지?임유진은 영상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잠깐 넋을 잃었다.그러다 한지영이 다시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야 다시 정신을 차렸다.
임유진은 메시지를 보낸 후 채팅방에서 나와 인터넷을 확인했다.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해당 영상은 벌써 인기 동영상에 올라 있었고 댓글도 수없이 많이 달렸다. 댓글 중에는 강현수를 데리고 버스에 탄 첫 번째 여자라면서 임유진이 신기한 동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다.이에 임유진은 기가 막히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처음에는 걱정되기도 했지만 어차피 이제껏 이런 스캔들보다 더한 기사들도 많았었기에 시간이 지나면 네티즌들도 잠잠해지리라 생각했다.그래서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일로 직접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유진 씨 혹시 현수랑 사귀어요?”임유진을 찾아온 건 이한이었다.이한은 임유진과 몇 번 만난 적 있었고 그는 강지혁과 강현수의 친한 친구이자 S 시에서 유명한 재벌가의 아들이다.“빨리 얘기해봐요. 사귀어요?”이한은 다급한 얼굴로 그녀에게 답을 요구했다.“제가 꼭 그 질문에 대답해야 하나요? 이건 제 사생활이에요.”임유진의 말에 이한은 머리가 아파 났다.그는 오늘 아침 해당 영상을 보고는 기겁하며 하마터면 의자에서 넘어질 뻔했다.그도 그럴 것이 강지혁이 임유진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대했는지 바로 코앞에서 보았었기 때문이다.물론 고이준에게서 얼마 전 두 사람이 헤어졌다는 소리는 이미 전해 들었다.하지만 시끄러운 곳을 좋아하지 않던 강지혁이 요즘은 수상할 정도로 매일 밤 골드 클럽에 얼굴을 내비치고 클럽에 와서는 기이한 행동만 골라 했다.그래서 이한은 이 모든 것이 임유진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그런데 그러던 와중에 오늘 임유진과 강현수가 사귀는 것 같은 영상이 인터넷에 떠돌게 된 것이다.이한은 이 영상을 만약 강지혁이 보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아니, 어쩌면 이미 다 봤을지도 모른다.이한은 임유진에게로 오기 전 강현수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 일에 관해 물었었다. 하지만 이에 강현수는 임유진과 똑같이 ‘내가 꼭 대답해야 해?’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어
매니저가 굳이 이한에게 전화한 이유는 골드 클럽의 진짜 주인이 바로 이한이기 때문이다.게다가 이한은 강지혁의 친한 친구이니 그라면 이 상황을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리고 지금 이한은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임유진을 차에 태웠다.강지혁이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건 모두 임유진 탓일 테니까.강지혁은 요즘 어떻게든 그와 엮어보려는 여자들을 대함에 있어 전과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였다.여자들이 끼를 부리든 여우 짓을 하든 막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두면서도 어떤 포인트에서 심기가 뒤틀리면 바로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무섭게 행동했다.이에 무서워진 여성들은 절반 정도 아예 클럽을 나오지 않게 됐고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안 가 골드 클럽 여성들이 전부 다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이한은 그렇게 되는 것만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만 했다.“차 세워요!”임유진이 이한을 바라보며 외쳤다.“지금 세우지 않으며 당장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신고해요. 유진 씨 휴대폰으로도 신고하고 내 휴대폰으로도 신고해요.”이한은 진심인 듯 휴대폰을 꺼내 임유진에게 던졌다.임유진은 단호한 그의 얼굴을 보고는 지금 상황에서는 경찰이 와도 말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20분 후, 이한의 차량이 드디어 어느 한 곳에 멈춰 섰다.임유진이 차에서 내려 고개를 들고 보니 이곳은 골드 클럽이었다.골드 클럽은 재벌들은 물론이고 졸부들도 자주 오는 곳으로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이곳은 언제나 사람들도 붐볐다.하지만 오늘은 어찌한 일인지 그 많던 고급 차들이 하나도 없고 가게 앞에 있던 예쁜 여성들과 잘생긴 남성들 역시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어디 있어?”이한은 다급한 발걸음으로 마중 나온 매니저를 향해 물었다.“아직 안에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도저히 강지혁 대표님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매니저는 창백해진 얼굴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가 본 강지혁은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 그 자체였으니까.한편 임유진은 매니저의 말에 멈칫했다.강지혁이라고?하지만 생
하지만 그때 임유진이 자리에서 버티며 말했다.“손 좀 놓으세요! 나랑 강지혁은 완전히 헤어졌어요. 나랑 얼굴 마주치기도 싫어하는 사람한테 나를 데려가봤자 화만 돋굴 뿐일 거예요.”그 말에 이한이 임유진을 노려보았다.“그럼 정말 지혁이가 살인해도 상관없다는 말입니까? 두 사람이 헤어졌든 아니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당장 저 안에 있는 지혁이를 말리는 것뿐이라고요. 알겠어요?!”그는 말을 마치고는 다시 임유진을 데리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이윽고 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이곳은 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컸고 꼭 큰 홀 같았다. 룸 안에는 라운지 바도 있었고 당구대, 게임 테이블 그리고 작은 무대와 노래방 기계도 있었다.그리고 그런 큰 룸 중앙, 아무것도 없는 바닥 위에 웬 중년 남성이 무릎을 꿇고 계속해서 누군가를 향해 용서를 빌었다.그 중년 남성 앞에는 피가 흥건히 묻어있는 핀셋이 놓여 있었다.임유진은 그 핀셋을 보는 순간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고 순간 시간이 역행해 그날 그 시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그날의 기억들은 마치 오래 묵은 낙인처럼 꽤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혔다.그리고 그녀는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이따금 차가운 핀셋이 손가락 살을 파고들어 이윽고 손톱이 하나하나 뽑히는 악몽을 꾸고는 했다.그 고통은 직접 겪어보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대표님, 제발 용서해 주세요.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할 테니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중년 남성은 끊임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었다.눈가가 푸르딩딩하고 코와 입 주변에 핏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여러 차례 얻어맞은 것 같았다.“뽑아.”강지혁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임유진은 뻣뻣하게 굳은 몸을 돌려 천천히 강지혁 쪽을 바라보았다.그는 검은색 스웨터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원래부터 차가웠던 얼굴은 오늘따라 유난히 더 싸늘하게 느껴졌고 한기마저 감돌아 보는 것만으로도 손이 덜덜 떨려왔다.웨이
하지만 강지혁은 자비 따위 모르는 인간이었다.“뽑아.”“안 돼!”임유진은 강지혁의 앞으로 달려가 그를 막았다.그녀는 이곳이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강지혁이 무엇을 하든 말릴 자격 같은 거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하지만 눈앞에서 누군가의 손톱이 뽑히는 것을 도저히 모른 체할 수가 없었다.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당시 그녀가 그렇게 큰 고통을 겪었을 때 그 누구 하나 도와준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오직 홀로 감내했어야만 했다.임유진의 말에 강지혁이 싸늘한 시선이 그녀에게로 다시 향했다.임유진은 그와 눈이 마주치고는 몸을 움찔 떨었다. 그의 두 눈이 너무나도 차갑고 또 싸늘해 꼭 끝이 보이지 않는 늪 한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안 된다고?”강지혁은 서서히 소파에서 일어서더니 임유진을 내려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네가 뭔데?”임유진은 두 손을 덜덜 떨었다.눈앞에 있는 남자는 그녀가 알던 강지혁도 예전에 다정하기만 했던 혁이도 아니었다.지금의 그는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감히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S 시의 꼭대기에 있는 남자였다.“너한테는 누군가의 손톱을 뽑게 만드는 게 숨 쉬는 것만큼 그렇게 쉬운 일이야? 그래?”임유진은 숨을 한번 깊게 들이켜고 말을 내뱉었다.불빛 아래, 그녀의 얼굴을 창백하기 그지없었고 몸은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무서워하면서도 그녀는 강지혁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강지혁은 임유진의 말을 듣고는 흉흉한 기운을 풍기며 미간을 찌푸렸다.이에 이한이 황급히 다가와 먼저 입을 열었다.“참, 아까 이곳으로 오면서 유진 씨한테 물어봤는데 현수랑은 아무 사이도 아니래. 그 영상도 그냥 어쩌다 찍히게 된 것일 뿐이라고 하고.”“그 얘기 하려고 여기까지 얘를 데려온 거야?”분명 이한에게 묻는 말이었지만 강지혁의 시선은 여전히 임유진을 향해 있었다.이한은 그 말을 듣고는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이한, 딱 한 번
“아니요. 많이 괜찮아졌어요...”여성은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아까 저 남자가 네 손톱을 뽑으려고 했으니 이번에는 네가 저 남자 손톱을 뽑아. 열 손가락 다.”“강 대표님께서 나서주지 않으셨다면 아마 저는 아까 손톱이 다 뽑히고 말았을 거예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 남성분도 반성하고 있는 것 같으니 이제 그만 용서해주세요. 저는 정말 괜찮아요.”여성은 청순한 매력을 내뿜으며 거기에 가해자를 용서해주는 착한 마음씨도 어필했다.아주 남성들의 보호 본능을 마구 자극하는 그런 여자였다.임유진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는 흠칫했다. 그리고 이 상황이 어이없고 웃기게 느껴졌다.무릎 꿇은 중년 남성은 알고 보니 가해자였고 손가락을 다친 여성은 하나터면 손톱이 다 뽑힐 뻔한 피해자였다.그리고 강지혁은 그 여성을 위해 나서주는 중이었다.임유진은 그 여성을 바라보는 강지혁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강지혁은 그 여성을 바라본 뒤로 임유진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았고 꼭 임유진의 존재 자체를 까먹기라도 한 듯 계속 그 여성에게만 말을 걸었다.순간 임유진의 머릿속으로 ‘네 결백은 내가 꼭 찾아줄게.’라고 했던 강지혁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강지혁은 그 말을 증명해 보였고 정말 그녀에게 결백을 찾아주었다.그리고 지금은... 다른 여성을 위해 나서주고 있었다.임유진은 강지혁에게서 서서히 시선을 거두고 이제 이곳의 일은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며 차가운 바닥을 바라보았다.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이곳을 조용히 떠나는 일뿐이다.하지만 이제 막 몸을 돌리려던 찰나 누군가가 룸으로 뛰쳐 들어와 그대로 임유진의 앞에 멈춰 섰다.“유진 씨, 괜찮아요?!”이에 임유진이 고개를 들어보니 강현수가 숨을 헐떡인 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괜... 찮아요. 그런데 현수 씨가 왜 여기 있어요?”임유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그건 이따 얘기해줄게요.”강현수는 말을 마치고 강지혁 쪽을 바라보았다.그
“가요. 집까지 데려다줄게요.”강현수는 임유진의 손을 잡고 룸 밖으로 걸어 나갔다.강지혁은 떠나는 강현수와 임유진의 뒷모습을 힐끔 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 이한을 향해 말했다.“네 사람들 내보내.”“응? 그럼 이 둘은...”이한은 손가락이 다친 여성과 아직 바닥에 꿇고 있는 이 사장을 가리키며 물었다.“둘만 빼고 내보내.”그 말에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웨이터들과 다른 여자들에게 전부 다 룸에서 멀리 떨어질 것을 명했다.몇 초 후 룸 안에는 강지혁과 이한, 손가락을 다친 여성과 이 사장, 그리고 고이준과 강지혁의 경호원들만 남았다.강지혁은 여성의 손을 다시금 잡더니 붕대가 감긴 그녀의 손가락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이에 여성의 얼굴을 빨갛게 물들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한은 미간을 찌푸렸다.‘설마 진짜 저 여자한테 반하기라도 한 거야?’그때 굳게 닫혔던 강지혁의 입이 열리고 이내 그 입에서 무시무시한 말이 흘러나왔다.“그렇게도 손톱이 뽑히는 게 소원이라면 그렇게 해. 소원대로 해주지.”강지혁은 말을 마치고는 여성의 손을 다시 내려놓았다.그 말에 당황한 여성은 얼굴이 사색이 돼서 물었다.“강 대표님...? 저... 방금 한 말 농담이시죠? 왜 제가 손톱을...”“왜냐고?”강지혁은 그녀에게 되묻고는 이내 시선을 돌려 옆에 있던 고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고 비서, 왜 손톱이 뽑혀야 하는지 이 여자한테 알려줘.”그 말에 고이준은 고개를 한번 숙이더니 여성의 앞으로 다가가 담담하게 말을 내뱉었다.“친척 중에 감방살이했던 분이 마침 임유진 씨와 같은 방이었죠? 아마 그 친척분한테서 들었을 겁니다. 임유진 씨의 손톱이 뽑힌 적 있었다는 사실을요. 그걸 듣고 기회다 싶어 평소 친분이 있었던 이 사장한테 부탁했겠죠. 강 대표님 눈에 들 수 있게 도와달라고. 어떻게, 이제 그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이 정도면 충분히 설명된 것 같은데.”강지혁이 임유진과 연인이었다는 건 상류계층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공공연히 다 알려진 사실이고 서민들도
이한은 이에 조롱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너는 네 스스로가 대단한 가치라도 있는 줄 아나 보지? 그리고 이따위 멍청한 연극을 계획하기 전에 이런 결말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단단히 각오했었어야지.”그는 말을 마치고는 여자의 손을 차갑게 뿌리쳐버렸다. 그리고 아무런 미련도 없이 유유하게 룸을 빠져나갔다....임유진을 차에 태워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길, 강현수는 핸들을 꽉 잡으며 먼저 말을 건넸다.“만약 이한 그놈이 또다시 쓸데없는 일로 유진 씨 찾아가면 그때는 나한테 바로 연락 줘요.”임유진은 그 말에 잠깐 침묵하더니 손가락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어제... 버스에서 말이에요. 그냥 날 깨우지 그랬어요.”“아, 영상 봤어요? 곤히 자고 있길래 깨우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설마 그 모습을 누가 찍고 있었을 줄이야. 게다가 그걸 인터넷에 올리기까지... 만약 그 영상이 신경 쓰이면 지금 당장 모든 영상을 내리도록 지시할게요.”강현수는 도촬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예민한 사람이었지만 어제 버스 안에서는 온 신경을 전부 다 임유진에게 쏟는 바람에 주변을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어제 그녀가 버스에서 졸았던 시간은 고작 반 시간 남짓이었지만 강현수에게 그 반 시간은 그 어느 순간보다 더 소중한 시간이었다.심지어 영상을 찍은 사람에게 소중한 추억을 남겨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주고 싶은 기분이었다.강현수는 영상 속에 찍힌 자신의 얼굴을 보며 이토록 가슴이 따뜻해지고 또 설렘으로 부풀어 올랐던 순간이 또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네, 그렇게 주세요.”비록 얼굴 전체가 찍힌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생판 모르는 타인이 자신의 모습이 찍힌 영상을 보고 있다는 건 많이 불쾌한 일이었다.그때 임유진의 휴대폰이 울렸다.발신자가 탁유미라는 것을 확인한 임유진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유진 씨, 혹시 지금 40만 원만 송금해줄 수 있어요? 급하게 쓸 데가 있어서요.”“언니, 혹시 무슨 일 있어요?”탁유미는 평소와 달리 목소리에 힘도 없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