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왜 그런 말을 한 거지? 눈앞에 있는 여자가 불쌍해서? 한때는 잘 나갔던 여자가 빛을 잃은 채 이곳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게 안타까워서?하지만 그녀는 그가 불쌍하다고, 안타깝다고 여기면 안 되는 여자다. 그녀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윤이 생각해서 얘기한 것뿐이야. 판결이 나기 전까지 윤이는 너와 함께 있을 거고 나는 그 짧은 순간에도 윤이가 힘들게 사는 거 보고 싶지 않아.”이 말은 탁유미가 아닌 이경빈이 자신에게 들려주는 말이었다.“윤이는 내 아들이야. 네 아들이 아니고.”탁유미는 차갑고 단호하게 말을 내뱉었다.“전에 네가 했던 말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아서 다시 말해주는데, 너는 그때 내가 네 아이를 임신한다고 해도 지우게 하겠다고 했어. 나 같은 여자는 네 아이를 낳을 자격이 없다고도 했고. 그런데 대체 이제 와서 왜 이래? 너야말로 대체 무슨 자격으로 윤이를 데려가려는 건데!”이경빈은 얼굴을 굳힌 채 한 걸음 한 걸음 탁유미의 앞으로 다가왔다.“너는 내 아이를 낳기로 했을 때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상했었어야 했어.”탁유미의 몸이 움찔 떨렸다.“아이를 그렇게 원하는 것도 아니면서 네 핏줄이 내 옆에 있는 건 싫어?”“네 옆에서 윤이가 행복할 것 같아? 네가 윤이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뭔데.”이경빈은 그녀의 아픈 구석을 콕콕 찔렀다.“왜, 윤이가 크면 이 포장마차에서 서빙이라도 시키게? 그리고 엄마가 했다는 걸 사람들한테 들켜서 애가 평생 주눅 들어 살았으면 좋겠어?”탁유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버렸다.하지만 야속하게도 그의 말은 계속되었다.“소송이 끝나면 바로 윤이를 해성시로 데려갈 거야. 너한테 애를 맡기는 것보다 수진이한테 맡기는 게 훨씬 나아. 해성시로 가면 윤이는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좋은 것들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돼. 너, 윤이한테 그런 거 줄 수 있어? 없잖아.”탁유미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반박할 말을 골랐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러고는 묵묵히 발걸음을 돌려 식자재를 실은 작은 차에 올라
호기롭게 회사로 찾아간 건 좋았지만 두 사람은 강현수를 만나기도 전에 프런트 데스크에서 막혀버렸다. 한지영이 이곳으로 온 목적을 설명하고 백연신이 누군지 얘기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직원은 그저 강현수가 현재 회사에 없다고만 전할 뿐 어디로 갔는지는 입을 꾹 닫고 알려주지 않았다.한지영이 다급한 마음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자 백연신이 그녀를 진정시키며 말했다.“전화해 보면 되는 일이야.”“강현수 번호 있어요?”한지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없어. 하지만 연락처를 알아내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백연신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뭐라고 얘기하더니 5분도 안 돼 강현수의 연락처를 알아냈다.이에 한지영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강현수의 전화번호는 절대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닐 텐데 백연신은 너무나도 쉽게 알아내 버렸다.역시 백연신이라고 해야 할까?백연신은 곧바로 강현수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대로 휴대폰을 한지영에게 넘겨주었다.한지영은 전화기 너머에서 강현수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다급하게 물었다.“안녕하세요. 강현수 씨 맞죠? 저 유진이 친구인 한지영이라고 해요. 혹시 강지혁 씨가 유진이를 어디로 데려갔는지 알고 있어요?”한지영이라는 이름이 들리자마자 강현수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 그는 한지영을 기억하고 있다.그녀는 임유진이 감옥에 가게 생겼을 때 유일하게 발 벗고 도와준 사람이며 임유진이 형을 살게 됐을 때는 면회하러 자주 갔었던 사람이다.그리고 바로 엊그제 자선 파티에서 얼굴도 봤었다.“아직 알아내지 못했어요. 하지만 계속 찾을 겁니다.”강현수가 대답했다.“그러시구나... 저희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어요. 혹시 강현수 씨 쪽에서 먼저 알아내게 되면 이 번호로 전화 한 통 해주실 수 있으세요?”“그러죠.”강현수는 순순히 알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그의 앞에는 수많은 모니터가 놓여 있었고 화면 속에는 그날 밤의 도로 CCTV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다만 강지혁의 차량
한편 그시각, 임유진은 의자에 앉아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총 세 가지 음식에 국 하나, 음식 모양새로 보아 셰프 요리는 아닌 것 같았다.“내가 만든 거야. 먹어봐.”그녀의 의문을 눈치챈 것인지 맞은 편에 앉은 강지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에 임유진은 조금 놀란 듯 보였다.강지혁이 직접 요리를 했다고?“그때, 작은 원룸에 있을 때 너도 나한테 요리 많이 해줬잖아. 그래서 나도 널 위해 해봤어. 맛이 없으면 없다고 솔직하게 말해. 다음에 더 맛있게 해볼 테니까.”그는 말을 마친 후 예쁜 두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예쁘게 웃었다.마치 아직 연인인 것처럼, 한 번도 헤어진 적 없는 것처럼, 제일 행복했었던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임유진은 어딘가 불편한 느낌에 그의 시선을 피해버리고 최대한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그의 두 눈은 꼭 블랙홀과도 같아 마주치는 순간 속절없이 빠져들게 되고 자꾸 고요한 마음에 파도가 인다.“도우미는 없어?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임유진은 화제를 돌렸다.“정기적으로 와서 냉장고 채워주고 청소해주고 있어. 하지만 네가 다른 사람과 만날 일은 없을 거야. 그냥 여기 너랑 나만 있다고 생각해.”이에 임유진의 몸이 움찔했다.하지만 강지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나만 바라보고 언제 날 다시 사랑해줄 건지만 생각해.”“그럴 일 없다고 난 분명히 말했어.”“나도 말했어. 넌 분명히 다시 날 사랑하게 될 거라고.”강지혁은 그녀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날 다시 사랑하게 될 일 없다면서 왜 지금은 내 눈도 못 쳐다보는데?”임유진은 입술을 꼭 깨물고는 고개를 홱 하고 들어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혔다.임유진은 그를 한껏 노려보고 있었고 강지혁은 그런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강지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이제 밥 먹어. 차가워지면 맛없어.”그는 먼저 시선을 내려 젓가락
“강씨 집안 사람들만 아는 옛 저택이야. 대외적으로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곳이기도 하지.”강지혁은 딱히 숨길 생각이 없는 듯 바로 대답해주었다.하지만 그 말을 듣고 임유진은 미간을 찌푸렸다.방금 그 말은 두 사람이 이곳에 있는 걸 그 누구도 찾아내지 못할 거라는 뜻인가?“그리고 한 가지 더 알려주자면 이 저택에 갇혔던 사람, 너뿐만이 아니야.”임유진이 눈을 깜빡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뜻이지?“너 말고 여기 갇혔던 여자 한 명 더 있어. 애초에 이 저택을 사들인 것도 그 여자를 가두기 위해서니까.”강지혁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너무나도 태연하게 무서운 말을 꺼냈다.임유진은 순간 한기에 뒤덮인 듯 소름이 돋았다.전에도 이곳에 갇혀버린 여자가 있었다고?“70년 전쯤이었을 거야. 강씨 가문에 한 남자가 한눈에 반한 여자가 있었어. 하지만 그 여자는 당시 정혼자가 있었고 그 정혼자와는 예쁜 사랑을 나누던 연인이기도 했지. 그래서 남자는 그 여자를 이곳으로 납치해왔어. 이곳에 가둬놓고 매일 자기만 보게 했지. 언젠가는 자기를 사랑하게 될 거라고 믿으면서.”강지혁의 목소리는 원래 부드러운 편이 아니었지만 이 넓은 공간에서 듣게 되니 어딘가 무섭게 들려왔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이 그저 나무 향이 솔솔 풍겨오는 운치 있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의 말을 듣고 나니 괜히 오싹해졌다.“그래서...? 그 뒤로는 어떻게 됐는데?”임유진의 목소리는 조금 잠겨있었다.“그 여자는 너무 자연스럽게 남자를 사랑하게 됐어. 그리고 이곳에서 나갈 수 있게 됐지.”강지혁은 임유진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너는 어때? 너도 여기서 나가고 싶어?”임유진은 순간 입술이 바싹 말라오는 느낌이 들었다.“너를 사랑하지 않으면 나 정말 여기서 못 나가?”“네가 날 다시 사랑할 때까지 나는 계속 네 옆에 있을 거야.”이곳을 나가기 위해서는 정말 강지혁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마치 이곳에 갇혀있던 그 여자처럼?사랑하던 정혼자가 있음에도 자기를
“그래, 헤어졌지.”강지혁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너랑 헤어진 게 내 평생 가장 후회되는 일이야. 그래서 더 이상 그런 후회 하고 싶지 않아.”강지혁은 임유진이 그를 너무 많이 사랑해 무슨 일이 있어도 떠날 수 없게 만들 생각이다....저녁이 되고 임유진은 방 안에 있는 소파에 앉아 손에 든 보라색 드레스를 지그시 바라보았다.목 부분부터 팔까지 다 찢겨 있어 수선한다고 해도 처음처럼 그렇게 예쁘지는 않을 것이다.임유진은 너무나도 예뻤던 드레스가 지금 이 지경이 된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단지 드레스가 훼손돼서가 아닌 ‘현수’가 선물해 준거라서 더 그런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강현수가 어릴 적 여자아이가 그녀라는 걸 모른다고 해도, 강현수가 이 드레스를 선물한 것에 큰 의미가 없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그는 어릴 적 두 사람이 했던 약속을 결국 지켜내고야 말았다.임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옆에 있는 책상 서랍을 뒤적거리며 반짇고리 함을 꺼내 들었다.사실 그녀는 아까 심심하던 차에 방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서랍에서 뜻밖에도 이 반짇고리 함을 발견하게 되었다.막 발견했을 때 케이스 위에는 한 층의 먼지가 쌓여있었다. 안에는 여느 반짇고리 함이 그렇듯 갖가지 색상의 실과 쪽 가위 그리고 여러 가지 길이의 바늘이 있었다. 실의 색상은 조금 바랬지만 끊어질 정도는 아니었고 쪽 가위도 오래된 것 치고는 잘 들었다.새것은 아닌 거로 보아 누군가가 쓴 것은 분명해 보였다.아까 강지혁이 얘기했던 이야기 속의 여자가 남기고 간 것일까?임유진은 색이 바랜 덕에 드레스 색과 흡사하게 되어버린 보라색 실을 집어 들고 바늘을 꺼내 수선을 시작했다.이미 엉망이 된 드레스이고 다시는 입지 못할 드레스였지만 그래도 이 드레스는 ‘현수’의 선물이자 약속이기에 이대로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그녀는 한 땀 한 땀 ‘현수’와의 약속을 떠올리며 정성스럽게 바느질을 했다.그때 방문이 열리고 강지혁이 들어왔다. 그는 소파에 앉아 드레스를 수선하고 있는 그
임유진은 천천히 시선을 내리고는 손에 든 보라색 드레스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다시 아무 말도 없이 수선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이에 강지혁의 얼굴에 걸려있던 웃음이 서서히 사라져갔다.“하지 마.”하지만 그녀는 그 말이 들리지 않는 건지 손을 계속 움직였다.강지혁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질투의 감정은 점점 더 강렬하게 그를 지배했다.지금 그녀의 두 눈에는 오직 이 드레스밖에 없는 듯, 아니, 오직 강현수밖에 없는 듯했다.“하지 말라고!”강지혁은 소리를 치며 그녀의 손에 든 드레스를 홱 하고 빼앗았다.“아!”그때 임유진이 외마디 신음을 냈다.강지혁이 거칠게 뺏어 든 바람에 바늘이 왼손 검지에 박혀버렸다. 살을 파고드는 찌릿한 느낌이 드는 순간 빨간 피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생각보다 세게 찔러 넣어 보통이라면 물방울 정도의 피만 맺혀 있었을 텐데 지금은 검지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려 그녀의 손가락을 타고 나무색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그 모습을 본 강지혁은 얼른 손에 있는 드레스를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무릎을 꿇은 채 임유진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피가 흐르는 그녀의 검지를 망설임 없이 입에 넣었다.손끝에서 느껴지는 뜨겁고 말캉한 느낌에 임유진은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그녀는 자기 눈앞에 있는 남자를 복잡한 눈길로 바라보았다.강지혁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미간을 찌푸린 채 시선을 내리고 있었다. 기나긴 속눈썹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그의 눈동자를 반쯤 가려버렸다.그리고 그의 얼굴에는 그녀를 향한 걱정과 속상함이 잔뜩 묻어있었다.강지혁은 지금 그녀를 걱정하고 있다.몇 분 후, 굳게 닫혔던 그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다행히 아까처럼 피가 세게 흐르지는 않았지만 아직 조금씩 피가 올라오고 있었다.“아프지?”강지혁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검은색 속눈썹이 위로 향하고 예쁜 두 눈동자가 드러났다.임유진은 잠깐 넋이 나갔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괜찮아.”그러고는 서둘러 손을 빼려고 했다.하지만 강지혁은 그녀의 손을
“강지혁, 나는 네 생각대로만 움직이고 내 생각이나 자아가 있어서는 안 되는 거야. 널 화나게 해서도 안 되고, 그렇지? 너는 말로만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나를 한 번도 존중해 준 적이 없어.”임유진의 말에 강지혁이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였던 속상함 가득했던 얼굴이 지금은 말끔히 다 사라지고 무표정한 얼굴이 되어버렸다.그는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더니 드디어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를 존중해주길 원해?”청량한 목소리가 방안에서 쓸쓸히 울려 퍼졌다.이에 임유진은 헛웃음을 터트렸다.“내가 바보 같았네. 애초에 네가 나를 여기로 데려와 가둬둔 순간부터 그런 걸 원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존중해줄게. 네가 원하는 거 말만 하면 다 들어줄게. 대신 나만 바라봐. 나만 사랑하고 나만 생각해. 다른 남자 생각 같은 거 단 1초도 하지 마.”강지혁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는 건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렸다는 것과 다름없었다.하지만 임유진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담담하게 말을 내뱉었다.“나는 널 사랑해야지만 네 존중을 얻을 수 있는 거야? 너를 사랑하지 않으면 내 자유와 감정 그리고 생각까지 전부 다 너한테 통제받아야 하는 거고? 그런 거야?”강지혁의 입술이 꾹 닫히고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임유진은 그런 그의 얼굴을 보고도 전혀 무서워하지도 물러서지도 않았다. 어쩌면 이미 물러설 만큼 물러서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만약 네가 줄 수 있는 존중이 그런 거라면, 그것이 전부라면 나는 네 존중 같은 거 필요 없어.”“그래? 필요 없단 말이지.”강지혁은 갑자기 몸을 일으켜 그녀를 번쩍 안아 들더니 침대가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뭐 하는 거야? 당장 내려놔!”임유진이 그의 품 안에서 발버둥 쳤다.“내 존중 같은 거 필요 없다며. 그러니 나도 이제부터 널 존중할 필요 없는 거 아니야?”강지혁은 이 말을 끝으로 그녀를 침대에 던져버리더니 힘줄이 돋은 손으로 넥타이를 아래
임유진은 지금 무서워하고 있다.그의 행동에 놀랐던 것일까?강지혁은 그녀에게 무서움을 심어주려 했던 게 맞다. 자신이 베푸는 친절이 얼마나 큰 것인지 만약 존중이 섞여 있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어떤 상황을 겪게 됐을지 똑똑히 알려줄 생각이었다.하지만 가녀린 몸을 덜덜 떨고 얼굴 가득 두려움이 서려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니 심장이 욱신거리고 마치 벌은 자기가 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강지혁은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에 있는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다시는 너한테 이렇게 강압적으로 굴지 않을게.”임유진은 조금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그리고 자기가 이렇게 세게 울게 될 줄도 몰랐다.솔직히 이곳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언젠가는 이런 순간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때가 되면, 만약 정말 그에게 강제로 안긴다고 해도 감정을 싹 다 배제한 채로 있으면 된다고, 그러면 괜찮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하지만... 막상 정말 아무런 반항도 못 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자 감옥에 있었을 당시의 광경이 머릿속에 떠올라버렸다. 그때도 그녀는 이렇게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고 다른 수감자의 발길질을 그저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자신이 마치 살아있는 인간이라기보다는 그들이 언제든 분풀이할 수 있는 샌드백이 된 것만 같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짓이겨지는 것만 같았다.임유진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눈물 너머로 그를 바라보았다.강지혁은 그녀와 눈을 맞추고 말했다.“약속할게. 이건 믿어도 돼.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할게.”그녀의 눈물이, 그녀의 두려움이 이토록 무섭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그녀가 두려움을 멈출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머리를 조아리고 그녀의 발밑에 깔릴 수 있을 것 같았다....강현수의 본가.강현수의 아버지인 강재호는 눈앞에 있는 아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강현수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강재호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고 언제나 뭐든 척척 해내는 아들 덕에 남들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