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영준은 문예슬의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며 그녀가 연회장을 서둘러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하지만 그리 큰 승리감은 느껴지지 않았다.이 연회는 설영준에게 그저 사회적 의무에 불과했으며 진정한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었다.문예슬과의 대결은 잠시 마무리되었을지 몰라도 그녀의 퇴장은 끝을 의미하지 않았다. 되레 또 다른 시작일 수도 있다는 것을 설영준은 잘 알고 있었다.자신과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을 문예슬이 촬영하도록 시켰다는 것을 설영준은 직감할 수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되레 이런 일은 송재이에게 먼저 알릴 필요가 있었다. 그녀가 괜한 오해를 하지 않도록 말이다.문예슬은 무도장을 떠나지 않고 한쪽 구석에 숨어 설영준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여러 계획들이 떠오르고 있었다.문예슬은 자신이 촬영한 이 영상이 새로운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를 적절하게 언론에 유출한다면 설영준의 대중적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며 말이다.그녀의 생각은 간단했다. 설영준의 사생활이 복잡해질수록 자신이 그와의 경쟁에서 더 유리한 위치에 설 것이라는 판단이었다.생각이 복잡하게 꼬여있어 피곤해진 설영준은 자리로 돌아가 잠시 머리를 꾹꾹 눌렀다.문예슬의 위협을 다시 한번 평가하고 새로운 대책을 세워야 할 필요가 있었다.이 게임은 설영준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했고 그녀의 모든 행동에는 치밀한 계산이 숨어 있었다.그 시각, 송재이도 연회장에 도착했다.하지만 그녀는 설영준이 알아차리지 못한 곳에 조용히 있었다.송재이는 우연히 이런 연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면 설영준이 아마 자신에게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그녀는 내내 설영준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그가 문예슬과 춤추는 모습을 보았고 떠날 때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문예슬의 모습도 놓치지 않았다.송재이는 눈물을 참으며 음료 코너로 향해 술을 한 잔 들었다.연회는 계속되었지만 분위기
송재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물이 저절로 흘러 베개를 적셨다.그러자 설영준은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돌려 마주 보게 했다.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 목소리마저 조금 무게감이 있었다.“송재이, 왜 울고 있어?”송재이는 눈물을 머금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 남자가 밖에서 다른 여자들과 즐기는데 난 울 자격도 없다는 거야?”순간 설영준은 심장이 덜컹했다.그는 박윤찬이 송재이를 바라볼 때의 그 애정이 어린 눈빛을 떠올렸다. 그 눈빛은 자신 앞에서도 숨김이 없었고 그때마다 질투가 피어올랐다.복잡한 감정이 설영준의 마음을 휘감았다. 송재이에 대한 애정과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단지 춤춘 것뿐인데 이렇게 심하게 반응할 일이야?”설영준의 목소리에는 냉소가 담겼다. 자신의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었다.하지만 송재이는 더욱 크게 울었고 목소리도 떨렸다.“그게 단지 춤춘 거라고? 그 여자들이 영준 씨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얼굴이 굳어진 채 설영준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여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설영준의 차가운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그는 일부러 냉담하게 굴어 송재이에게 자신이 느꼈던 질투와 불안을 느끼게 하려는 듯했다.마음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요동쳤고 박윤찬에 대한 질투와 송재이에 대한 깊은 애정이 얽혀 있었다.송재이는 그의 말을 듣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떨리는 목소리에서마저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영준 씨, 난 영준 씨가 나를 이해하고 나를 믿는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렇게 날 몰아붙이다니... 우리 관계가 이것밖에 안 되는 거였어?”설영준은 자신에 송재이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걸 알았지만 자존심과 질투 때문에 쉽게 고개를 숙일 수 없었다.고통스러운 눈빛이 스쳐 지나갔지만 곧 그는 다시 냉담한 표정을 되찾았다.“널 믿지 않는 게 아니야. 그냥...”그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송재이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그녀는 핸드폰을 들어 뉴스와 SNS를 습관적으로 둘러보았다.그러다 갑자기 그녀의 시선이 한 화면에 멈췄다.설영준이 다른 여자와 춤을 추는 영상이 각종 사이트에 퍼져 있는 것이었다.송재이는 떨리는 손으로 그중 하나를 눌렀다. 그녀가 가장 보고 싶지 않았던 두 사람, 문예슬과 설영준이 함께 춤을 추고 있는 장면이었다.마음이 복잡한 채로 송재이는 계속해서 영상 밑의 댓글들을 읽어 내려갔다.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춤을 칭찬하고 있었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천생연분이라는 표현까지 썼다.질투일까, 실망일까, 아니면 설영준에 대한 배신감일까?복잡한 감정들이 마음속에 휘몰아쳤다.그녀는 깊은 숨을 내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외부의 소리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안 되겠어. 영준 씨랑 제대로 얘기 나눠봐야겠어.’곧 송재이가 설영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음성 메시지뿐이었다.전화를 끊고 그녀는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설영준의 방 앞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다시 전화를 걸자 이번엔 방 안에서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방에 없구나...’의문과 불안을 가득 품은 마음으로 송재이는 발길을 돌렸다.회사로 가서 설영준을 만나야겠다고 결심한 그녀는 그에게서 무슨 설명이든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회사를 향해 가는 길, 송재이의 마음은 매우 복잡했다.어젯밤의 다툼과 설영준의 냉정한 태도가 계속해서 떠올랐고 그녀는 점점 불안해졌다.설영준이 합당한 설명을 해줄지 아니면 자신이 그 설명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송재이는 곧바로 설영준의 사무실로 향했다.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설영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오세요.”송재이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설영준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고 그의 앞엔 서류가 쌓여 있었다. 마치 밤새 잠을 자지 못한 듯한 모습이었다.송재이는 깊은 숨을 들이쉬고 용기를 내어 물었다.“영준 씨, 어
송재이는 설영준의 질문에 깜짝 놀랐다.갑자기 박윤찬에 대해 물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라 순간적으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그녀의 눈빛에는 혼란스러움이 스쳐 지나갔고 잠시 말문이 막혔다.설영준은 송재이가 당황한 모습을 보자 마음이 급격히 무거워졌다.그는 이것이 송재이의 마음이 약해진 증거이며 자신이 원치 않는 진실을 마주하게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을 느꼈다.순간 얼굴이 창백해진 채 설영준의 마음속에는 분노와 실망이 가득 찼다.설영준은 갑자기 몸을 돌려 책상 위에 있던 전화기를 들고 박윤찬의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충동적인 그의 손길은 떨리고 있었다.“박윤찬, 죽여버릴 거야!”설영준의 목소리는 분노와 위협으로 가득 차 있었고 곧 폭발 직전이었다.송재이는 설영준의 의도를 즉각 알아차렸다. 이대로 두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오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하여 송재이는 서둘러 달려가서 설영준의 손에서 전화기를 힘껏 빼앗았다.“영준 씨, 진정해!”걱정이 담긴 다급한 목소리에는 설영준이 순간적인 감정에 휘말려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막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히 보였다.설영준은 몸이 굳어졌다.그는 돌아서서 분노에 찬 눈으로 송재이를 바라보았다.“송재이, 왜 그 자식을 감싸는 거야? 혹시 너 정말 그 자식 좋아하는 거야?”송재이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답답함을 느꼈다.이대로라면 오해가 더 깊어질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반드시 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영준 씨가 오해하고 있는 거야.”송재이는 차분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박윤찬 씨는 그냥 친구일 뿐이야.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어. 내가 영준 씨를 막은 이유는 영준 씨가 충동적으로 후회할 일을 저지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야.”설영준은 송재이의 말을 듣고 차츰 분노가 가라앉기 시작했다.그는 자신의 행동이 송재이에게 상처를 줬을 뿐만 아니라, 박윤찬과의 우정에도 금이 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송재이 역시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그녀는 마치 자
류지안의 눈빛에 단호함이 스쳤다.“내 말은 우리가 예전처럼 사귀는 척하자는 거야. 그렇게 하면 설 대표님도 네가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 줄 아실 거고 너에 대한 불만도 줄어들겠지.”그러자 박윤찬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굳건한 목소리로 말했다.“류지안,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우리가 어떻게 그런 방법으로 영준 씨를 속일 수 있겠어.”하지만 류지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약간 도전적인 목소리로 말했다.“너 남자라며? 그게 이렇게 주저주저할 일인가? 나랑 엮이는 게 그렇게 싫어?”박윤찬은 쓴웃음을 지었다.“너도 알잖아. 그런 뜻은 아니야. 다만 그렇게 하는 게 떳떳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래.”그러나 류지안은 쉬이 물러서지 않았다.“지금은 특수 상황이야. 우리가 평소에 하던 방식대로만 할 수 없잖아. 난 내 명예 따위 신경 안 써. 근데 넌 왜 그렇게 신경을 써?”박윤찬은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말이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하여 그는 한숨을 내쉬며 약간 체념한 듯 물었다.“정말 이렇게 하는 게 괜찮다고 생각해?”그러자 류지안은 확신에 찬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지금으로선 최선의 방법이야. 우리는 그냥 잠시 사귀는 척만 하면 돼. 진짜로 뭘 하겠다는 것도 아니잖아. 설 대표님 화가 가라앉으면 그때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면 돼.”잠시 고민한 끝에 박윤찬은 결국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한편, 설영준은 책상 위를 가볍게 두드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사무실의 고요를 깨고 전화벨이 울렸다. 설영준은 전화를 받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이시죠?”“영준 씨, 우리 만나서 얘기 좀 해요. 어제 일에 대해 말입니다.”박윤찬의 목소리는 평온하면서도 단호했다.그러자 설영준은 살짝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물었다.“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송재이 씨와 관련된 오해가 있어서 그걸 풀고 싶어요.”이 말에 설영준은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대답했다.“좋아요. 나갈게요. 근데 재이도 같이 갈 겁니
다음 날, 비록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송재이는 약속대로 설영준의 사무실 앞에 나타났다.또한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두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될 운명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나란히 서 있는 거리는 한 뼘에 불과했지만 마음은 마치 끝이 보이지 않은 벽에 가로막힌 듯싶었다.설영준과 송재이는 잇달아 사무실을 나섰고, 가는 길 내내 침묵을 지켰는데 심지어 눈빛 교환조차 없었다.송재이는 만감이 교차했고, 설영준의 무심한 태도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둘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운전석에서 차를 몰던 여진도 유난히 가라앉은 분위기를 느끼고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이내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에 앉은 두 남녀를 힐끔거렸고, 불편한 표정의 송재이와 침묵을 유지하는 설영준을 발견했다.설영준의 오른팔로서 페이스를 잃은 상사와 이처럼 쌀쌀맞은 송 선생님의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기에 저도 모르게 걱정이 들었다.차 안은 에어컨을 틀어 시원했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한기 때문인지 송재이는 두 팔을 꼭 껴안으며 조금이나마 체온을 유지하려고 했다.설영준이 무심결에 시선을 돌리자 스스로 껴안은 송재이를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하지만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도로 삼켰다. 대체 무슨 수로 이 침묵을 깨뜨려야 하지?그렇게 차가 약속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두 사람은 입을 꾹 닫고 있었다.여진은 차를 세우고 뒤를 돌아보며 나지막이 말했다.“대표님, 송 선생님, 도착했어요.”차에서 먼저 내린 설영준은 밖에 서서 감정을 추스르는 듯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두 사람이 레스토랑에 들어섰을 때 뜻밖에도 박윤찬과 류지안도 있었다.눈치 빠른 설영준은 무언가를 알아차리고 마치 상대방의 일거수일투족에서 실마리를 찾으려는 듯 번갈아 훑어보았다.곧이어 종업원을 불러 음식을 주문했고, 주문하는 동안 박윤찬은 류지안을 과하다시피 챙겨주었다.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에 송재이도 어안이 벙벙했다.레스토랑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수라장을 마주할
설영준의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류지안과 박윤찬은 사전에 합을 맞춰 모든 멘트와 액션을 꼼꼼하게 연습해 디테일마저 자연스럽고 진실하게 보이도록 했다.박윤찬의 손을 살며시 잡은 류지안의 모습은 다정하면서 확신이 넘쳤고, 행복한 표정은 만족감이 묻어났다.이내 설영준을 돌아보며 차분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영준 씨, 사람 일은 워낙 모르는 법이에요. 비록 과거에 작은 오해로 헤어진 적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한층 더 성숙하고 나니 역시나 서로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사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죠. 다행히 박윤찬도 아직 싱글인지라 새로운 기회라고 여기고 다시 시작하기로 했어요.”박윤찬은 옆에 잠자코 있었다. 비록 표정은 어딘가 어색했지만 그녀의 말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그리고 류지안을 지지한다는 듯 손을 살포시 포갰다. 그와 동시에 부드러운 눈빛으로 마치 설영준에게 둘은 진지하게 만나고 있는 사이니까 거짓말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았다.설영준의 시선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이내 박윤찬과 류지안을 번갈아 훑어보며 표정에서 조금이라도 수상한 낌새를 찾아내려고 했다.하지만 두 사람의 찰떡 호흡과 진솔한 모습을 보자 속으로 품었던 의심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그제야 한시름 놓게 되었고, 물론 친구로서 류지안과 박윤찬을 지지하고 믿어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설영준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만약 이게 둘의 결정이라면 존중해 줄게요. 두 사람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요.”비록 겉으로 수긍하긴 했으나 운전하고 돌아가는 길에 마음속을 가득 채운 의구심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차 안의 분위기는 또다시 가라앉았고, 고요함은 무형의 벽처럼 두 사람을 가로막고 있었다.숨이 막힐 듯한 분위기에 송재이는 왠지 모르게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유는 설영준의 침묵뿐만 아니라 자신을 의심하는 그의 불신 때문이기도 했다.결국 참다못해 한마디 했고, 떨리는 목소리는 단호함이 묻어났다.“설영준, 차 세워!”송
설영준은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박윤찬과 류지안의 갑작스러운 재결합이 의아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다른 속셈이 숨어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왜냐하면 바보가 아닌 이상 수시로 송재이를 향하는 박윤찬의 시선을 모를 리 있겠는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눈빛은 전 여친과 다시 만난다고 해서 숨기기 힘들 것이다. 설영준의 마음은 질투로 가득 찼다. 박윤찬이 송재이를 위해 이런 희생까지 감수한다는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박윤찬이 대체 왜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의심을 지우려는지 그 의도에 대해 당최 짐작이 안 갔다.왠지 모르게 농락당했다는 생각에 그는 자존심이 상하고 감정적으로 타격이 컸다.“재이야, 넌 몰라.”설영준의 목소리에 씁쓸함이 담겨 있었다.“박 변호사님은 단지 널 지켜주고, 네가 내 의심받지 않게 하도록 그랬을 뿐이야.”송재이는 어리둥절했다. 생각지도 못한 설영준의 답변에 눈빛은 의혹으로 가득했다.“날 지켜준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설영준은 속으로 망설였다. 송재이가 박윤찬의 집착 때문에 힘들어하는 건 물론 그녀에게 질투로 똘똘 뭉친 자기 모습도 보여주기 싫었다.이내 입만 벙긋하다가 결국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도로 삼켰다.“아니야.”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살짝 떨렸지만 거의 티가 안 났다.“이만 돌아가자.”송재이는 설영준을 빤히 쳐다보았다. 물론 미묘한 기분 변화를 눈치챘지만 굳이 캐묻지 않았다.어차피 하기 싫은 말을 물어봤자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결국 묵묵히 차에 다시 올라탔고, 두 사람 사이에 또다시 침묵이 이어졌다.설영준은 시동을 걸었다. 어두운 밤, 차는 송재이의 집을 향해 천천히 달렸다.가는 내내 둘을 아무 말도 안 했고,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가로등과 가끔 반짝이는 전조등만이 침묵의 귀갓길에 위로가 되어주었다.송재이를 집까지 데려다준 다음 그는 지체하지 않고 작별 인사만 건네고는 차를 몰고 떠났다.그리고 일주일 동안 두 사람은 거의 교류도 없다시피 보냈고, 사실상 냉전이라고 해도 무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