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 어느 클럽의 룸에서 서도재는 무언가를 예감한 듯 무거운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친구들의 웃음소리 속에서 그의 눈빛은 유난히 튀었다. 그는 입가에 간신히 웃음을 머금고 있었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자, 도재 도련님, 오늘은 네가 주인공이야. 취할 때까지 마시자.”한 친구가 얼큰하게 취해서 잔을 들고 그에게 술을 권했다.서도재는 기계적으로 잔을 들고 억지웃음을 지었다.“물론이지, 오늘 밤 제대로 즐기자.”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룸의 문이 열리더니 경찰 몇 명이 걸어 들어왔다.룸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맨 앞에 선 경찰이 예리한 눈빛으로 서도재를 쳐다보았다.“서도재 씨, 당신의 불법 행위에 관한 제보가 들어와서 조사를 받으셔야 합니다.”서도재는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지만 침착하려고 애썼다.“조사요? 무슨 조사인데요?”경찰은 표정 변화가 없었다.“서도재 씨는 지금 불법 상업 행위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같이 경찰서로 가셔서 심문에 응해 주시길 바랍니다.”서도재는 창백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친구들도 모두 당황한 기색이었다.그는 지금 이 순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는 일어서서 잔을 내려놓으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래요, 따라갈게요. 하지만 전화 한 통만 하게 해주세요.”경찰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통화를 허락했다.서도재는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건 후 나지막이 말했다.“아버지, 저 도재예요. 제가 지금 경찰에 끌려갈 것 같아요.”전화기 저편에서 서지훈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알았어. 도재야, 냉정을 잃지 말고 너무 많은 말을 하지 마. 내가 변호사를 데리고 갈게.”전화를 끊은 서도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경찰에게 말했다.“따라갈 수는 있지만 변호인을 만나게 해주세요.”경찰은 그래도 된다고 말한 후 그를 데리고 룸을 떠났다.서도재의 친구들은 근심과 의문 가득한 얼굴로 그가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때 서지훈은 서재에서 혼자 장기를 두고 있었다.
심문이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언론에서 서씨 부자의 행각이 화제가 됐다.인터넷에서 분노한 누리꾼들이 서씨 가문을 맹렬히 비난하기 시작했다.[뉴스를 봤어요? 서지훈과 서도재가 상업 범죄를 저질렀대요. 정말 놀랍네요.]한 누리꾼이 게시판에 글을 올리자 다른 한 누리꾼이 댓글을 달았다.[소문에 의하면, 송재이가 회사를 망쳤다며 책임을 떠넘기려고 했대요. 진짜 우습네요. 자기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가?][맞아요. 이 두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에 책임져야 해요. 지금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데, 정말 쌤통이네요.]또 다른 누리꾼이 댓글을 달았다.[서씨 가문의 명성이 철저히 무너졌네요. 더 이상 국내에 머물 수 없을 것 같아요.]누군가는 고소해했다.서씨 부자는 거액의 벌금을 내고 끝내 경찰서를 떠날 수 있었다.하지만 그들은 이내 비난의 대상이 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빗발치는 인터넷 여론 때문에 이전에 그들과 관계가 좋았던 사업 파트너들도 그들과 계속 왕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서지훈은 염치 불고하고 하루 종일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그들을 상대해 주지 않았다.이번에 형사처벌은 받지 않았지만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것은 확실하다.빌딩은 한순간에 무너진 것 같다.아니, 어쩌면 그들이 세상을 모르고 설영준을 건드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의 비극이 결정되었을지도 모른다....서씨 저택의 거실에서 TV 뉴스를 보는 서지훈과 서도재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서도재가 분노하며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저 사람들이 뭘 알아요? 덩달아 욕할 뿐 진실이 뭔지 전혀 몰라요.”서지훈은 표정이 굳어지고 눈빛이 어두웠다.“이제 와서 그런 말이 무슨 소용 있어? 가문의 명성은 이미 손상됐으니 반드시 만회할 방법을 찾아야 해.”서도재는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다 설영준이 한 짓이에요.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서지훈이 아들을 돌아다보며 엄숙하게 말했다.“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냉정을 잃지 않는 거야. 앞으로 기회를 봐서 반격하겠
설영준이 신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아니, 재이야, 서프라이즈를 준비했어. 이번 여행은 우리 둘만 가는 것이 아니야.”호기심이 발동한 송재이가 캐물었다.“무슨 서프라이즈인데? 영준 씨, 빨리 알려줘.”설영준이 일부러 신비감을 조성하며 그녀의 귓가에 나지막이 말했다.“이번에 특별한 사람과 같이 갈 거야.”송재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특별한 사람? 누군데?”설영준이 한 발짝 물러서며 미소를 지었다.“때가 되면 알게 될 거야. 약간의 신비감을 남겨두는 것이 좋지 않아?”송재이는 화난 척하며 그를 째려보았다.“흥! 뜸 들여? 하지만 서프라이즈라고 하니 참고 기다릴게.”설영준은 웃으며 송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걱정하지 마. 충분히 기다릴 가치가 있는 서프라이즈니까.”그다음 날부터 설영준은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그는 인터넷에서 바르셀로나의 역사, 문화, 음식, 관광지까지 모든 것을 망라한 자료를 가득 수집했다.출발하는 날, 하늘이 맑고 햇빛이 화사했다.송재이와 설영준은 흥분해서 이른 아침에 출발했다.공항에 도착한 후 모든 수속이 매우 순조롭게 진행됐다.10여 시간의 비행 끝에 그들은 마침내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시차 때문에 두 사람은 일단 호텔에서 쉬기로 했다.깨어났을 때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뒤였다.그들이 묵은 곳은 창밖에 도시 야경이 펼쳐지는 호화로운 호텔이었다.오색찬란한 불빛이 밤하늘을 환상적으로 아름답게 수놓았다.창가에 선 송재이는 눈앞의 경치에 깊이 매료되었다.“영준 씨, 빨리 와. 야경이 너무 아름다워.”바르셀로나의 밤은 화려한 드레스로 갈아입은 댄서처럼 우아하고 매력적이었다.석양은 하늘의 구름을 보랏빛으로 물들였고,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면서 다이아몬드처럼 어두운 하늘을 장식했다.호텔 창문으로 바라본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불빛애 비쳐 거대한 촛불처럼 부드러운 금빛을 발산했다.탑신의 조각은 어둠 속에서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고, 이 도시의 유구한 역사를 말해주는 듯했다.설영
가게를 떠나기 전에 그녀는 가장 마음에 드는 도자기 몇 점을 골랐다.설영준은 옆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이들 예술품에 관해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이따금 가게 주인과 몇 마디 주고받았다.수공예품 가게를 떠난 후 두 사람은 계속 고딕지구에서 거닐었다.그들은 분수가 있는 작은 광장에 도착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여름날의 무더위에 한줄기 청량감을 선사했다.광장 주위에는 오후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누군가가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은은한 선율이 공중에서 울려 퍼졌다.“여기 너무 기분 좋고 편안해. 이곳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설영준은 감탄하는 송재이의 어깨를 가볍게 껴안았다.“바르셀로나는 예술과 생활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도시야. 곳곳에 독특한 매력이 있지.”그들은 분위기 있어 보이는 카페를 찾아 들어가서 아이스 상그리아 두 잔과 현지 간식들을 시켰다.이곳에서 그들은 속도를 늦추고 간만에 여유와 평온을 즐길 수 있었다.어둠이 내려앉음에 따라 바르셀로나의 밤 생활도 시작됐다.거리의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술집과 식당들이 벅적거리기 시작했다.설영준과 송재이는 현지 밤 생활을 체험해 보기로 하고, 플라멩코 공연이 있는 벅적벅적한 술집에 들어갔다.송재이는 열정 넘치는 춤에 깊이 매료되어 흥분한 나머지 눈이 반짝거렸다.“영준 씨, 저 사람들이 춤을 추는 것을 봐. 동작 하나하나에 힘과 감성이 넘쳐. 너무 아름다워.”송재이가 흥분하며 말했다.“스페인의 문화재인 플라멩코를 직접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야.”음악의 리듬이 점점 경쾌해지자, 설영준이 송재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재이야, 우리도 같이 추자.”송재이는 어리둥절해하다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그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두 사람은 댄스홀 한가운데로 가서 플라멩코 댄서의 스텝을 따라하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송재이는 처음에 동작이 서툴렀지만 설영준이 잘 이끌어 주어 이내 긴장을 풀고 리듬과 열정을 즐기기 시작했다.그들이 동참하는 것을 보고, 주변의 스페인 사람들이 박수와
이튿날.어젯밤에 춤을 추느라 피곤했는지 송재이는 오후까지 잠을 잤다. 깨어나 보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설영준과 송재이는 간단히 샤워한 후 아래층 식당에서 브런치를 먹고 한가하게 거리를 거닐었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바르셀로나의 유명 관광지 파세오 데 그라시아에 도착했다.넓은 도로에 햇살이 쏟아지고 양옆의 나무들이 아롱다롱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곳은 오랜 건물과 현대 예술이 잘 조화되어 있었다.송재이는 아름다운 분수 옆에 서서 리드미컬한 물 흐름을 감상하고 있었다.그녀의 얼굴에는 유쾌한 웃음이 넘쳐흘렀다.그때 잘생긴 스페인 남자가 송재이의 아름다운 외모에 끌려 그녀에게 다가왔다.잘생긴 남자는 스페인 억양의 영어로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저는 카를로스라고 합니다. 이 분수를 좋아하는가 봐요.”송재이가 미소를 지었다.“네, 정말 아름다워요. 저는 송재이라고 합니다.”카를로스는 더 가까이 다가와 유창한 영어로 대화를 계속했다.“바르셀로나에는 처음 오셨나요? 여기 가볼 만한 아름다운 곳이 많아요.”송재이는 다소 의외였지만 여행의 즐거움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어서 기뻤다.“네, 처음 왔어요. 다음에 어디로 갈지 생각 중이에요.”바로 그때 설영준이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돌아왔다.송재이와 카를로스가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그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송재이에게 다가가 아이스크림을 건네주며 약간 불쾌한 말투로 물었다.“재이야, 여기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어?”아이스크림을 받아 든 송재이는 설영준이 질투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나지막이 설명했다.“카를로스는 지나가던 길이었고 그냥 몇 마디 얘기를 나눴어.”카를로스는 설영준이 언짢아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 여전히 열정적으로 송재이에게 말했다.“송재이 씨, 관심이 있다면 제가 더 많은 재미있는 곳으로 데려가 줄 수 있어요.”설영준은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지만 여전히 예의 바르게 말했다.“감사하지만, 저희는 정해진 일정이 있습니다.”카를로스는 설영준의 태도에는
한 젊은 여성이 [지구의 미래를 위해 행동하자!]라는 피켓을 높이 들고 옆 사람에게 힘차게 외쳤다. “우리는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해요. 기후 변화로부터 우리의 지구를 보호해야 합니다!”옆에 있던 중년 남성은 손으로 그린 지구 모형을 흔들며 답했다. “맞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친환경 에너지를 도입하고 화석 연료 사용을 줄여야 합니다. 지속 가능한 발전만이 우리 후손들에게 건강한 지구를 남길 수 있어요.”그 근처에서는 학생들 무리가 목소리를 높였다.“친환경 생활을 우리부터 실천합시다!”그들 중 한 대표가 덧붙였다.“모두가 환경 보호를 위해 책임을 져야 해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 활동에 동참하는 작은 노력이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이때, 감정이 격해진 한 시위자가 경찰의 저지선을 뚫으려 시도했다.그 시위자는 크게 외쳤다.“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요! 기후 변화는 이미 우리 눈앞에 다가 왔고 우리는 당장 행동해야 합니다!”경찰들은 질서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한 경찰관이 확성기로 말했다.“진정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우려는 이해하지만, 법을 준수하며 평화롭게 요구를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설영준은 송재이의 손을 꽉 잡고 인파 속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을 찾으려 애썼다.그러나 갑자기 인파가 밀려들었다.몇몇 흥분된 시위자들은 경찰을 향해 물건을 던지기 시작했다.경찰은 최루탄을 사용해 군중을 해산하려 했다.설영준과 송재이는 갑작스러운 혼란에 당황했다.그들은 발걸음을 고정시키려 했지만, 결국 인파 속에서 서로를 놓치고 말았다.설영준이 뒤를 돌아봤을 때, 송재이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그 순간 설영준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 버렸다.정신을 차리자마자 설영준은 필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송재이를 찾기 시작했다.설영준은 점점 초조해졌다.한편으로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처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송재이의 안전을 걱정했다.설영준은 끊임없이 송재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 문제로 계속 연결되지 않았다....한편,
설영준은 핸드폰을 손에 쥐고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도경욱의 목소리를 들으며 복잡한 심경에 휩싸였다.도경욱의 목소리에는 기대와 걱정이 묻어 있었다.“영준 씨, 저 이제 바르셀로나에 무사히 도착했어요. 방금 여기에 시위가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괜찮은 거죠? 꼭 안전에 유의하세요.”설영준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답하려 애썼다.“아저씨, 저희 괜찮아요. 시위 중에 잠시 흩어졌지만, 지금은 무사히 다시 만났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도 안전에 신경 쓸게요.”도경욱은 설영준의 목소리에서 무언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듯했다.도경욱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영준 씨, 목소리가 평소랑 다른데 무슨 일 있어요?”설영준은 순간 긴장했지만, 송재이와 카를로스가 가까이 있는 상황에서 느낀 불안을 털어놓고 싶지 않았다.설영준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별일 없어요. 방금 재이 씨를 찾느라 좀 긴장을 뿐이에요. 아저씨가 바르셀로나에 오셨으니 저희 한번 제대로 축하해야겠어요. 제가 식사 대접할게요.”도경욱은 웃으며 설영준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다.“좋아요. 그럼 기대할게요. 어디서 만날까요?”전화를 끊은 후에 설영준은 송재이에게 돌아서며 말했다.“재이 씨, 제 친구도 스페인에 왔는데 우리 같이 밥 먹어요.”송재이는 기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좋아요!”송재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 후, 다시 카를로스를 바라봤다.“오늘 정말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저희와 함께 점심 먹을래요?”송재이가 밝은 미소로 말했다.카를로스는 열정적으로 대답했다.“물론이죠. 기꺼이 함께할게요. 오늘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저도 기뻐요.”송재이가 카를로스를 초대한 순간에설영준의 마음속엔 다시금 불쾌감이 치밀어 올랐다.원래 설영준은 도경욱과 송재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했다. 이 식사 자리는 그들 가족이 처음으로 함께하는 자리였다.송재이는 아직 도경욱이 친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오늘 밤 도경욱은 송재이에게 이 사실
카사모노의 우아한 분위기 속에서 네 사람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카를로스는 송재이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며 송재이의 음식 취향을 물어보거나 편안한지 확인하는 등 자주 신경을 써주었다.설영준은 차가운 태도로 일관하며 카를로스가 송재이에게 호의를 보일 때마다 틈을 놓치지 않고 끼어들어 송재이의 주의를 돌렸다.도경욱은 이 모든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때때로 설영준을 놀리며 설영준의 표정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결국 송재이는 참을 수 없었다. 송재이는 설영준에게 다가가 낮게 속삭였다.“설영준, 왜 이러는 거야? 오늘 너 너무 민감해 보여. 카를로스는 그냥 예의상 친절하게 구는 것뿐이야.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설영준은 송재이의 말을 듣고 나서 마음속 불쾌감이 더 커졌다.설영준은 목소리를 낮춰 답했다.“민감해? 난 그저 카를로스가 너한테 다른 의도가 있는 걸 보고 싶지 않을 뿐이야.”송재이는 고개를 저으며 무심하게 말했다.“정말 유치해. 우리 둘 다 성인이잖아. 내가 그 정도는 구분할 수 있어. 조금만 진정하고 이 식사를 즐기면 안될까?”설영준은 좌절감을 느꼈다. 송재이를 보호하고 싶었을 뿐인데 오히려 유치하다는 말을 듣고 말았다.설영준은 손에 든 포크를 꽉 쥐며 마음속에서 분노와 무력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도경욱은 설영준의 불쾌감을 알아차렸다.도경욱은 낮은 소리로 송재이에게 말했다.“송 선생님, 영준 씨를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아마도 선생님을 걱정하는 것뿐일 거예요. 우리 그냥 이 식사를 즐기자고요.”식사는 계속되었지만, 분위기는 눈에 띄게 어색해졌다.설영준은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려 했지만, 설영준의 시선은 여전히 카를로스와 송재이에게 향했다.설영준은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하다가 갑자기 손에 든 식기를 내려놓고 도경욱을 바라보며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사실 계속 생각해 왔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불러야 할지 말이죠. 아저씨라 해야 할지 아니면...아버님이라 해야 할지...”이 말은 마치 폭탄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