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도로를 달리는 동안 송재이는 계속 창밖만 뚫어져라 응시했다.설영준은 그녀가 여전히 자신에게 화가 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오늘 밤의 송재이는 유독 아름다웠다. 옅은 메이크업이 오히려 그녀의 화려한 이목구비와 하얀 피부를 더 돋보이게 했다.설영준의 각도에서는 송재이의 옆모습이 더 잘 보였다. 긴 속눈썹에 크고 밝은 눈, 앙증맞은 턱과 선명한 턱선까지.설영준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송재이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낯선 남자의 손길에 송재이가 재빨리 얼굴을 돌렸다.이미 은밀한 관계는 여러 번 가져봤던 탓에 설영준의 소유욕 가득한 눈빛만 봐도 송재이는 지금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그 모습에 송재이는 사냥꾼을 경계하는 사슴처럼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그녀의 반응에 설영준은 오히려 웃으며 물었다.“내가 그렇게 무서워?”“응.”송재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재이야, 너 오늘따라 정말 예쁘다.”설영준은 보기 드물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송재이를 바라보며 칭찬을 늘어놓았다.그 말에 송재이가 잠시 멍해졌다. 설영준의 눈빛에서 마치 봄날의 햇살 같은 따뜻한 기운을 읽어낼 수 있는 것도 드문 일이었으니 말이다.“너랑 도경진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오늘 밤에 나한테 자세히 얘기해줄래?”설영준이 덧붙였다.송재이가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뭘 얘기해?”설영준이 가늘게 실눈을 뜨더니 말했다.“그건 네가 알아서 생각해봐!”말을 마친 그는 더 이상 송재이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려 버렸다.뒤늦게 송재이도 설영준이 했던 말을 이해했다. 자신과 설영준이 헤어졌다는 사실을 도경진에게 얘기했던 것에 대해 해명을 하라는 뜻이었다.하지만 이런 것도 해명이 필요할까? 이건 정말 팩트인데.송재이는 여태껏 두 사람이 헤어진 것은 이미 합의된 사안이었고 그러니 아무런 오해도 생기지 않으리라 여겼다.차에서 내리자 송재이는 설영준의 팔짱을 낀 채 파티장 안으로 들어섰다.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송재이는 자신이
설영준이 공식 석상에서 이렇게 여자를 데리고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언론 기자들이 이 특종을 절대 놓칠 리 없었다.다음 날 아침이 되자 두 사람이 찍힌 사진이 모든 주류 웹사이트들에 등장했다.송재이가 눈을 떠 휴대폰을 확인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낸 상황이었다. 그 메시지들 전부 다 그녀와 설영준의 사이를 묻는 내용들이었다.그중에는 문예슬도 있었다.[재이야, 너 설 대표님이랑 헤어진 거 아니었어?]이런 비슷한 질문만 서너 번 반복해서 와있는 걸 보니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문예슬은 이미 송재이에게 설영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명확하게 표현한 적이 있었다.문예슬은 송재이의 성격상 다시는 설영준과 얽히지 않으리라 생각했다.더군다나 송재이는 이미 자신이 설영준 때문에 간접적으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는지 알고 있었다.그러니 예상 밖일 수밖에...점심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송재이가 문예슬에게 답장을 한 줄 보냈다.[너랑 설 대표님은 안 어울려.]그 후로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하지만 문예슬이 여기서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송재이도 알고 있었다.역시,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문예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재이야, 너 그게 무슨 뜻이야? 너도 알다시피 난 설 대표님 좋아해. 게다가 넌 지금 설 대표님이랑 헤어져서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그런데 왜 계속 설 대표님 잡고 안 놔주는 거야?”평소 문예슬은 이렇게까지 직설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정도니 아마 최후의 방어막까지 자극받은 모양이었다,하지만 설영준의 성격을 잘 아는 문예슬이라면 공식 석상에 여자를 데리고 나타날 정도면 그 여성이 설영준에게 어떤 존재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계속 소리를 지르던 문예슬은 오히려 더 평온해졌다.잠시 침묵을 지킨 송재이가 입을 열었다.“문예슬, 너도 스스로를 속이려 하지 마, 자꾸. 너도 알 거 아니야. 너랑 설 대표는 절대 안 돼.
지금 문예슬은 문씨 가문의 관리직에까지 올라 남도에 지사를 설립하자는 기획안까지 제출하고 있었다.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문예슬의 아버지인 문성호는 딸의 진짜 의도가 술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만약 문예슬이 정말로 설영준과 사귀고 문씨 가문의 사위가 된다면 아무리 간절히 바라도 얻을 수 없는 일이었다.그 때문에 딸의 의도를 뻔히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뭐라 더 말을 얹지 않았다.문예슬이 이사회에서 제안했던 모든 것을 오히려 순순히 받아들여 주었다.문예슬은 주로 외국 무역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생각해주었던 첫 번째 협력사의 대표는 바로 설영준이었다.설영준의 회사로 가기 전, 문예슬은 따로 그에게 연락을 주지 않았다.여진이 설영준에게 문예슬이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전하자 설영준은 반감을 드러내며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 봐도 전혀 반기지 않는 표정이었다.“예슬 씨는 공적인 일로 찾아왔다고 하셨습니다.”공적인 일이라는 명목으로 사적인 욕심을 채우려는 문예슬의 태도에 설영준은 역겨움을 느꼈다.그는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으며 말했다.“바쁘다고 전하세요. 무슨 일 있으면 비서님 찾아서 얘기하라고 하시고요.”“하지만...”문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문예슬은 밖에서 기다릴 때 일부러 문을 살짝 열어두고 있었다.안에서 들려오는 설영준의 말에 문예슬은 이를 꽉 깨물더니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인기척에 고개를 든 설영준의 눈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들어왔다.“누가 들어오라고 했어요?”“설 대표님, 아무리 저를 싫어하신다고 해도 그렇지, 적어도 저랑 얘기는 할 수 있잖아요.”문예슬은 설영준의 눈빛에 담긴 짜증을 애써 무시하며 그에게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설영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마를 매만졌다. 잠시 후, 설영준이 말했다.“제 기억으로는 그 어떤 공적인 일이든 다 먼저 저희 아버지부터 만나고 오던데요. 정말 그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면 제가 직접 문 대표님 찾아가서
송재이는 설영준이 최근 들어 계속 난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송재이가 설영준에게 메시지를 보낸 이후로 설영준은 그녀를 먼저 찾지 않았다.그 대신 양은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지난번 설영준은 송재이에게 농담조로 양은서에게서 마사지를 배우라는 말을 꺼냈다. 송재이는 그 말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양은서가 자신에게 먼저 연락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마침 그날은 송재이가 출근을 하지 않은 덕분에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던 날이었다.그래서인지 충동적으로 양은서의 초대에 응해 그녀가 일하는 한의원에 가서 수업을 듣게 되었다.마침 양은서도 한가했다.송재이가 도착했을 때는 양은서가 마침 점심 식사를 끝낸 참이었다.두 사람은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는 곧장 옆의 진료실로 이동했다.마사지 수업의 1교시는 인체의 혈 자리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었다.필기 노트까지 챙겨온 송재이는 양은서가 하는 말을 필기하며 열심히 수업에 집중했다.송재이가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쓰고 있던 그때, 머리 위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고개를 들어보자 양은서의 웃음기 가득한 눈빛이 보였다.송재이는 얼굴까지 만지며 놀란 눈으로 물었다.“뭘 보고 계신 거예요”양은서는 그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만 지었다. 송재이는 마음 한구석이 왠지 불편해졌지만 딱히 무어라 말은 하지 않았다.수업 하나를 끝내자 양은서가 입을 열었다.“설영준이 왜 재이 씨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제 좀 알 것 같네요.”갑작스러운 양은서의 말에 송재이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그녀는 그 자리에서 바로 질문을 던졌다.“그게 무슨 뜻이에요?”“설영준이 공개적인 행사에도 재이 씨 데려갔잖아요. 그게 무슨 의미겠어요. 게다가 이번에 한의원까지 데려온 걸 보면 겉으로만 봤을 땐 마사지를 배우라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을 재이 씨 몸 조절이나 잘하라는 뜻이에요.”“몸 조절이요?”“네, 제가 한의학을 배워서 산부인과 쪽으로도 빠삭하거든요.”양은서가 입술을 물며 어떻게 얘기해줘야
설영준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둘이 그다지 같이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 둘은 이미 헤어졌지 않은가, 헤어졌다고!송재이의 눈이 크게 떠지더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설영준의 하늘을 찌르는 자존심을 정말이지 견딜 수 없었다.“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은 안 들어? 내 동의도 없이 카메라 앞에서 우리 사이를 공개해버리질 않나, 양 선생님한테 내 임신 준비나 부탁하지 않나. 그리고 이젠 또... 또...”송재이는 화가 난 나머지 말문까지 막혀버렸다. 이 남자가 왜 이토록 괘씸하게 느껴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하지만 송재이의 분노와는 달리 설영준은 그저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내가 널 최애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 안다면, 내가 지금 하는 이 모든 행동이 다 정상적인 거 아니겠어?”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송재이의 손을 잡은 설영준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자신의 품에 안았다.남자의 단단한 가슴과 복근, 그리고 설영준만의 독특한 향기가 송재이를 과거의 아찔했던 순간으로 끌어당겼다.송재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설영준을 바라보았다.갑자기 울리는 휴대폰 벨 소리가 그 순간 둘만의 분위기를 와장창 깨버렸다.송재이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더니 재빨리 설영준의 품을 빠져나왔다.설영준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아마도 잘 잡혀가던 분위기가 깨진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그는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그 맞은 편에 선 송재이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정리하며 점점 심각해지는 설영준의 표정을 바라보았다.“이게 무슨 소리예요? 거기가 어딥니까?”휴대폰을 쥔 설영준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말을 마친 설영준이 전화를 끊었다.“무슨 일 있어?”송재이는 엄습해오는 불길한 예감에 설영준의 팔을 붙잡고 물었다. 설영준은 잠시 송재이를 바라보더니 점점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잠시 망설이던 그가 끝내 입을 열었다.“지민건이... 죽었대.”“뭐라고?”송재이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물었
다음 날, 송재이가 출근했을 때 우연히 회사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오늘 아침에 설한 그룹 근처를 지나고 있었는데 누가 현수막 들고 시위하고 있던데? 그거 때문에 차 막혀서 지각할 뻔했잖아!”“왜 시위하는 거래?”“아직 모르는구나? 설한 그룹이 맡은 공사장에서 사람이 죽었잖아. 그 프로젝트 제대로 진행될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 경찰도 이미 조사 들어갔다고 하더라.”“아, 그 뉴스 말하는 거구나. 나도 인터넷에서 봤는데 그거 살인 사건이라고 하더라. 설영준이랑 그 죽은 사람, 예전부터 계속 갈등이 있었다고 하더라. 누구는 설영준이 복수한 거라고도 하던데...”이 사람들, 듣자 듣자 하니 추측이 점점 도를 넘고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송재이는 더 참을 수 없었다.“아니에요, 그건 사고였다고요!”평소 회사에서 조용한 편이었던 송재이가 격한 반응을 보이자 주변 동료들 모두가 깜짝 놀란 듯했다.조금 전까지 얘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송재이를 돌아보았다.송재이가 침착하게 다시 말했다.“적어도 경찰 조사가 나오기 전까지는 무책임하게 추측부터 하지 마세요. 그렇게 멋대로 추측하는 거, 사실은 헛소리 퍼뜨리는 거나 다름없다고요!”동료 중 한 명이 어리둥절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게 재이 씨랑 무슨 상관인데요?”라는 말을 당장이라도 꺼내고 싶었지만 다른 동료가 순간적으로 뭔가 떠오른 듯 손을 내밀어 송재이를 말리며 말했다.“아, 맞다. 재이 씨, 죄송해요... 재이 씨랑 설 대표가 무슨 사이인지 까먹고 있었네요...”그 동료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눈빛은 송재이를 한껏 비꼬고 있었다.분명 송재이의 심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송재이는 점점 멀어져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기분은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그녀는 계속해서 설영준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송재이는 애써 설영준이 지금 가장 바쁠 때이니 아마 전화를 받을 시간이 없으리라 생각했다.하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걱정되었다.설한 그룹의 문
“지민건의 죽음 말이야. 정말 너랑 연관 있는 거야?”송재이는 계단 위로도 가지 않았고 그와 함께 길을 걷지도 않았다. 그저 설영준을 뚫어져라 바라보기만 했다.순간 멍해진 설영준이 송재이와 눈을 맞추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물리자 설영준은 송재이의 눈빛에서 낯선 냉기를 느꼈다.“없어.”설영준은 피하지 않고 송재이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며 대답했다.송재이는 무의식적으로 설영준의 시선을 피하더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남자를 살짝 밀어내며 말했다.“나 피곤해. 이제 좀 쉬고 싶어. 너도 그만 돌아가.”비록 송재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설영준은 송재이가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문예슬의 사건 이후로 두 사람 사이에는 계속해서 불신의 벽이 존재했다. 이제 지민건의 죽음으로 그 벽이 더 커지고 두꺼워졌다.이번만큼은 설영준도 송재이를 따라가지 않고 그녀의 뒷모습이 조용히 건물 입구에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집에 돌아온 송재이는 그대로 소파에 몸을 던졌다.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지민건을 생각하다가 다시 설영준을 생각했고 설한 그룹을 향한 험담들을 생각했다.그날 밤, 여러 생각으로 머리가 뒤죽박죽된 송재은은 깊게 잠들지 못했다.다음 날 아침, 송재이는 눈을 뜨자마자 베개 밑에서 휴대폰을 꺼냈다.뉴스를 확인해보니 설한 그룹과 지민건에 관한 모든 부정적인 뉴스가 사라졌었다.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설영준의 손길이 닿은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설한 그룹에 더 나쁜 영향을 주기 전에 설영준은 이 시끄러운 여론을 억누르려 했던 것 같았다.곧이어 경찰의 지민건 사건의 조사 결과가 공개되었다. 그 결과는 의외의 사고였다.그 결과를 확인한 송재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 했지만 사실은 여전히 가슴 속에 큰 돌덩이가 얹힌 듯 답답했다.출근할 때에도 송재이의 마음은 계속 심란했다. 결국 참지 못한 송재이는 박윤찬에게 전화를 걸었다.설영준이 자신과 박윤찬 =의 관계를 의심하는 상황을 피하려고 일부러 연락을
송재이는 빌딩 입구에 서 있었다. 얼굴에 눈물 자국을 가득 매단 채 자신을 찾아온 여인의 정체는 바로 지민건의 어머니인 최연희였다.그녀의 등장에 송재이의 마음이 무거워졌다.송재이는 최연희가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으러 온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본인도 아직 그의 죽음에 여러 의문을 품고 있었으니 말이다.“재이 씨, 재이 씨가 설 대표랑 친한 사이라고 들었어요. 내 아들의 죽음이 정말로 단순 사고였나요?”최연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송재이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 질문을 던지는 최연희의 눈에는 절망과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송재이는 심장이 마치 칼에 베이는 듯 아파왔다.그녀는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녀 자신도 설영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 자신의 앞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 한 어머니의 희망을 완전히 짓밟고 싶지 않았다.“어머님, 저는 경찰 조사 결과를 믿어요. 새로운 증거가 나타난다면, 영준 씨 역시 진실이 밝혀지길 바랄 겁니다.”송재이는 애써 단호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대답했다.최연희의 눈에 복잡한 감정이 담겨있었다.그녀는 송재이의 말에서 조금의 위안을 얻은 것 같아 보였다.최연희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듯한 심정으로 송재이의 손을 꽉 잡았다.“재이 씨, 저는 그저 제 아들이 억울하게 안 죽었길 바랄 뿐이에요. 설 대표가 우리 아들 죽음에 대한 어떤 정보라도 갖고 있다면 저는 무슨 대가든 다 치를 겁니다.”최연희의 말에는 엄청난 결의가 느껴졌다.송재이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더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그녀는 꼭 설영준을 찾아가야만 했다. 설영준을 찾아 모든 진실을 밝혀내야 했다....송재이는 설영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수화기 너머로 송재이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재이야, 무슨 일이야?”“설영준, 지민건 씨 어머님께서 날 찾아오셨어. 진실을 알고 싶어 하셔.”송재이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수화기 너머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곧이어 설영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재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