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용기를 낸 송재이는 설영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걸기 전, 그녀는 이미 어떤 결과든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었다.송재이는 긴장감 때문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손으로 휴대폰을 힘껏 쥐었다.몇 번의 신호음이 들리자 이윽고 설영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송재이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설영준, 너 그날 밤에 어디 있었던 거야?”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지만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다.설영준은 송재이가 여전히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잠시 침묵이 흐르고 설영준이 천천히 대답했다.“재이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지민건의 죽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그건 사고였으니까.”정말 그럴까? 정말 아무 상관도 없을까?하지만 송재이의 의심은 마음속에서 잡초처럼 커져만 갔다.그녀는 눈을 힘껏 감았다.그 순간, 초인종 소리가 날카롭게 울리며 송재이의 생각을 방해했다.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전화를 끊고 문을 열어주었다.문밖에는 최연희가 서 있었다. 그녀는 바로 전에 송재이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달라고 부탁했던 여인이었다.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빛은 이상할 정도로 빛나고 있었고 얼굴에는 더 이상 무력함이 아닌 분노와 결연함만 가득 차 있었다.“재이 씨, 당신이 설 대표를 지켜주고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설 대표는 내 아들을 죽인 살인자예요!”최연희의 목소리는 날카로웠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 한마디 한마디가 송재이의 심장을 후벼 팠다. 송재이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창백해졌다. 그녀는 자신의 귀를 믿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은 통제할 수도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무슨, 무슨 증거라도 있으신 건가요?”송재이의 말 한마디가 최연희의 마음에 대못을 박아버린 듯했다.최연희의 목소리가 힘을 잃더니 문손잡이를 꽉 잡았다. 마치 그것이 그녀의 유일한 버팀목이라도 되는 듯 말이다.최연희는 가방에서 USB를 꺼내며 결연한 눈빛을 보였다. “여기에 그날 밤 CCTV 영상이 있어요. 난 이걸 경찰에 넘길 거
취조실 불빛은 유난히 밝고 눈이 부셨다.차가운 의자에 앉은 송재이는 두 손을 앞으로 모았고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지금 그녀의 마음은 마치 이 밀폐된 방처럼 모순으로 뒤덮였다.하루 꼬박 조사를 받은 송재이는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자신의 충동이 초래한 결과를 뼛속 깊이 깨우쳤지만, 그녀는 절대 후회하지 않았다.그래도 제 행동에 대한 책임은 지고 싶었다. 그게 법적 처벌이라고 할지라도 그 결심은 달라지지 않았다.…그동안 문예슬은 핸드폰이 손을 떠나지 않았으며 새로운 기삿거리를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지금껏 송재이를 향한 질투는 불 번지듯이 커졌고 절대 꺼지지 않았다.송재이가 구속당한 소식을 들은 후로는 가뭄의 단비 같은 기분이 들었고, 깨고소한 마음에 환호를 날릴 정도였다.드디어 설영준에게 가깝게 다가갈 절호의 기회가 생겼다. 어쩌면 송재이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문예슬은 한껏 꾸미기 시작했다.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옷차림과 화려한 메이크업을 한 그녀는 바로 설영준의 회사로 향했다.회사 아래에서 심호흡하고 용기를 내어 안으로 들어섰다.“죄송합니다,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여진이 문 앞을 막아서고 예의 바르지만 단호하게 말했다.문예슬이 자신감 넘치는 미소와 교활한 시선을 날렸다.“아, 저는 설영준 대표와 일 얘기를 하러 온 거에요. 이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않나요?”부드럽지만, 꽤 도발적인 목소리였다.그러나 여진은 꿈쩍도 하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문예슬 씨, 예약 없이는 절대 안으로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문예슬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여진을 살짝 밀어버리고 그 틈을 타 빠르게 설영준의 사무실로 들어갔다.설영준은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인상을 찌푸린 채로 문서를 읽고 있었다.부산스러운 소리에 고개를 들자 문 앞의 문예슬이 보였다.“설영준 대표님, 안녕하세요.”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오고 그녀는 요염한 자태로 걸어갔다.도발적인 시선이 설영준을 향했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 감정이 담기지 않은 차가운
경찰이 고개를 끄덕이며 석방 서류를 건넸다.“조사 과정에서 새로운 증거가 나타났고 이제 돌아가셔도 됩니다.”송재이는 떨리는 손으로 그 서류를 건네받았고 어느새 눈물이 앞을 가렸다.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송재이는 휘청이며 구치소 밖으로 걸어 나갔다.얼굴을 비추는 햇볕이 유난히 따뜻하고 눈부시게 느껴졌으며 너무 따뜻한 나머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문밖에는 설영준이 차를 대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두 사람은 짧은 거리를 두고 마주했지만, 그 몇 걸음이 유독 멀고 아득하게 느껴졌다.“영준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송재이는 물기 여린 목소리로 물었다.설영준은 이런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덤덤하게 대답했다.“며칠 동안 수고 많았어. 우린 USB를 찾아냈는데 그 안에는 텅 비었고 아무것도 없었어.”송재이가 고개를 번쩍 쳐들더니 충격을 받은 듯 말했다.“그런데 왜 지민건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던 거야?”설영준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그 사람도 이용당한 거야. 가짜 USB로 널 속이는 게 그들의 목표였던 거지. 넌 내가 걱정할까 봐 나한테 물어보지 않았고 그 함정에 고스란히 빠졌던 거야.”송재이는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처음부터 잘못된 단추였다.설영준이 송재이의 손을 꼭 잡았다.“재이야, 이제 모든 게 끝났으니 걱정하지 마.”“그 USB 안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던 거야?”믿을 수 없다는 듯 재차 묻자 설영준이 또박또박 다시 말을 건넸다.“처음부터 증거는 존재하지 않았어. 지민건의 죽음은 그저 의외의 사고였고 모든 게 오해였어.”송재이가 고개를 떨구고 한참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내가 너무 성급했어.”설영준이 그녀의 턱을 잡고 올리며 말했다.“날 위해서 그랬다는 걸 알아.”따스한 햇볕이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송재이는 여전히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으나 그동안 긴 악몽을 꿨다는 기분이 들었다.쓴웃음을 지은 송재이가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얼굴로 말했다.“사고가 우연인지 고의인지 잘 모르겠지만, 세
어두워진 밤, 송재이와 설영준은 식탁을 마주 향해 앉았다.부드러운 무드 등이 비추고, 군침 도는 요리를 마주한 두 사람 사이에는 미묘하고 긴장한 분위기가 맴돌았다.설영준은 짙은 눈동자로 끈질기게 송재이를 쫓았으며 마치 그녀의 영혼마저 탐내는 것 같았다.“재이야,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설영준의 목소리가 침묵을 깨트렸다.고개를 쳐든 송재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뭔데?”설영준이 조금 뜸을 들이며 말했다.“그때 헤어지자고 했던 건 정말 우리 사이를 끝내고 싶었던 거야?”송재이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눈빛에 복잡한 마음이 담겼다.“그때는… 오기로 그렇게 말했던 거야. 자꾸 나한테 다른 사람이 있는지 의심하고 심지어 박윤찬 씨와 엮으니까, 화가 나서 그만…”설영준이 인상을 찌푸렸고, 죄책감이 마음을 졸여왔다.“내가… 너무 예민했던 것 같아. 네가 너무 좋아서 예민해진 거야.”송재이는 조금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박윤찬 씨는 네 오랜 친구잖아. 그런데 왜…”설영준은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박윤찬은 처음부터 너한테 관심이 있었어. 너만 모를 뿐이지.’두 사람이 오해로 영영 헤어지게 될 줄 알았지만, 송재이가 자신을 그렇게 걱정했다는 걸 알아버린 설영준은 다시 되돌리고 싶었다.다시 만나게 되면 그 어떤 오해와 의심도 두 사람을 갈라놓을 수 없게 하겠다고 다짐했다.송재이는 조금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설영준과 반복해서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했지만 송재이는 결국 그를 떠날 수 없었다.어쩌면 마음속엔 그래도 설영준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식사를 마치고 송재이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섰다.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하는데 설영준이 갑자기 백허그를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그의 행동에 송재이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몸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머릿속이 난장판이 되었다.머리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몸은 솔직하게 그의 품에 안겼다.설영준의 품 안은 따뜻하고 넓었으며 귓가에 울리는 심장 소리는 안정적이고 거셌다.설영준의 호흡이 귓
이른 아침의 햇빛이 커튼 틈으로 새어 들어와 송재이의 얼굴을 비췄다.천천히 눈을 떠보니 설영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갑자기 알 수 없는 서운함이 밀려왔다.몸을 일으켜 사방을 둘러보니 방안이 너무 조용했다.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송재이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시간을 확인했다. 오늘은 출근하지 않아도 되었다.머릿속에는 자꾸 설영준이 자신을 쓰다듬던 그 모습이 떠오르고 마음이 콩닥콩닥 뛰었다.그래서 설영준의 회사로 찾아가기로 했다. 이건 그녀가 처음으로 먼저 그를 찾은 것이었다.조금 기대가 되기도 긴장이 되기도 했다.심플하지만 우아한 원피스로 갈아입고 옅은 메이크업을 마친 후 송재이는 회사로 향했다.회사 입구에서 심호흡하고 용기를 내어 안으로 들어섰다.설영준의 사무실 앞에 다다가서는 먼저 가볍게 노크했다.방안에서 설영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요.”송재이가 안으로 들어서자, 사무실 책상에 앉아있던 설영준이 그녀를 발견하더니 바로 부드러운 목소리를 장착했다.“재이야, 무슨 일로 왔어?”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모습이었다.송재이는 설영준의 앞에 앉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늘 출근하지 않아도 돼서 널 보러 온 거야.”설영준이 몸을 일으키더니 사무실 책상을 빙 돌아 송재이의 앞으로 다가가 가볍게 끌어안았다.“와줘서 고마워. 나 너무 기뻐.”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안았다.송재이는 설영준의 품에 안겨 그의 체온과 심장박동을 느꼈다.설영준은 고개를 숙이더니 두 사람이 한 몸으로 겹치도록 꽉 끌어안았다.사무실에서 한참이나 꽁냥거린 두 사람은 온 세상이 두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에 잠겼다.얼마 뒤, 송재이가 화장실을 다녀왔다.그런데 사무실 문이 닫혀있었고 천천히 다가가니 꾸짖는 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송재이를 내 사무실에 들여보낼 수 있어?”설영준의 갑작스러운 외침에 밖의 송재이마저 깜짝 놀라버렸다.설영준은 분노를 참지 못했고 여진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합니다, 대표님
눈 깜짝할 사이에 주말이 되었다.설영준은 송재이와 함께 절에 가서 향을 피우며 불운을 씻기로 했다.새벽의 햇살은 나뭇잎 사이로 고즈넉한 절을 비췄고 공기 중에는 은은한 향냄새가 났다.송재이는 설영준의 뒤에서 청석이 깔린 계단을 차근차근 올랐지만, 마음은 여전히 뒤죽박죽이었다.운을 점칠 수 있는 곳에서 송재이는 신중히 패를 뽑아 손에 들었다.확인해 보니 불길한 징조를 가리키는 패였다.“모든 게 추억이 되고 망연자실에 잠기다.”송재이는 마음이 가라앉았다.설영준과 자신의 앞길이 벌써 예상이 되었다.절을 떠날 때까지도 송재이는 여전히 우울하고 마음이 가라앉아 있었다.이 모든 걸 설영준은 말없이 지켜보았다.어느덧 산 아래턱에 다다른 설영준이 갑자기 걸음을 세우고 송재이를 품에 넣더니 꼭 끌어안았다.산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그들 마음속의 불안을 대신 말해 주는 듯했다.설영준은 고개를 숙이고 송재이와 입을 맞췄다.그 순간 주변 모든 게 멈춰졌다.노을이 두 사람을 비추고 황금빛이 주변의 초록색과 어울려 아름다운 한 장면을 연출했다.키스는 뜨겁고 애틋했으며 지금 그들의 마음 같았다.송재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설영준의 품에 안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영준아, 우리가... 그렇게 될까 봐 너무 무서워.”설영준이 단호하게 말했다.“무서워하지 마.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난 네 옆을 지킬 거야.”송재이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설영준을 꼭 껴안았다.두 사람의 대화는 다시 예전처럼 사랑이 가득했으며 세상의 어둠과 차가움을 모두 털어내려 애쓰는 것 같았다.하산하는 길에 설영준이 갑자기 허리를 숙이더니 송재이더러 업히라는 시늉을 했다.송재이는 조금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지만 바로 그 뜻을 알아채고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그리고 얌전히 설영준의 등에 몸을 대고 그의 힘과 따뜻함을 느꼈다.설영준은 든든하게 그녀를 업고 천천히 산을 내려갔다....설영준의 설득하에 송재이는 다시 그의 별장으로 돌아왔다.문 앞에서 짐가
설도영이 설영준의 집에 며칠 더 머물러 있겠다고 해서 송재이는 문제 될 게 없었다.정작 집주인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설도영은 형의 짜증 따위 모르는 듯싶었다.저녁이 되자 송재이는 널찍한 주방 입구에 서서 능숙하게 웍질하는 설영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거실을 가득 메운 맛있는 냄새 때문이지 평소에 무뚝뚝하기만 하던 남자에게서 인정미가 느껴졌다.이러한 장면을 목격하자 머릿속으로 저도 모르게 경주에서 동거했을 때 겪었던 시시콜콜한 일상이 떠올랐다.이때, 설도영이 정적을 깨뜨리며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농담을 건넸다.“형이 웬일이래? 요리까지 하고.”비록 말투는 비아냥거렸지만, 형에 대한 존경심이 기본으로 깔려 있었다.설영준이 고개를 돌리더니 설도영을 흘겨보았다.“닥치고 저리 꺼져.”설도영은 푼수처럼 웃으면서 가까이 다가가 의혹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형, 지금 선생님을 위해 요리하는 거예요? 진짜 애지중지하네요.”여태껏 형이 누군가를 이렇게 챙겨주는 건 처음 본다.설영준이 멈칫하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뜻 스쳐 지나간 다정한 눈빛만큼은 무시할 수 없었다.설도영은 속으로 몰래 감탄했다.‘역시 선생님은 형의 마음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군.’이내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오서희에게 카톡을 보냈다.[엄마, 그거 알아요? 형이 오늘 직접 요리까지 했어요! 송 선생님이 형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나 봐요.]문자를 확인한 오서희는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안 그래도 송재이에 대한 경멸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지극히 평범한 여자는 설영준의 관심 따위 받을 생각이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 요리까지 해준다는 소리를 들으니 어찌 화가 나지 않겠는가?“이 년이 점점 도를 넘고 있네?”오서희가 씩씩거리며 말했다.하지만 직접 찾아가서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쨌거나 아들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한번 결정한 일은 되돌리기 힘들었다.저녁 식사가 준비되고 셋은 식탁에 둘러앉았다.예상외로 훌륭한 설영
이내 심호흡하고 말을 이어갔다.“저는 박윤찬의 전 여자친구 류지안이라고 해요. 혹시 윤찬이 친구 맞으세요?”류지안을 바라보는 송재이의 표정은 의아함으로 가득했고 괜스레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이런 상황에서 박윤찬의 전 여자친구를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네, 친구 맞아요.”송재이가 고개를 끄덕였다.“윤찬이한테서 많이 전해 들었어요.”류지안이 송재이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미소를 지었다.“듣던 대로 미인이시네요. 어쩐지 윤찬이가...”그리고 말을 이어가다가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뜸을 들였다.송재이는 알 수 없는 미소에 의혹을 감추지 못했다.“네?”류지안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윤찬은 남자로서 참 괜찮은 사람이죠. 지금 만나는 분이 없으면 진지하게 생각해보세요. 본인은 물론 어머님도 정말 좋으시거든요. 다시 말해서 윤찬한테 시집가면 고부 문제는 신경 안 써도 된다는 뜻이죠.”진지한 목소리로 말하는 모습은 전혀 비꼬거나 빈정대는 느낌이 아니었다. 송재이는 눈을 깜빡이다가 한참을 넋 놓고 있더니 의아하게 물었다.“지안 씨, 지금 전 남친이랑 잘해보라고 부추기는 거예요?”류지안이 순진무구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전 단지 이 세상의 모든 싱글 남녀를 위해 짝을 찾아주고 싶을 뿐이죠.”송재이는 말문이 막혔다.수술실 밖, 두 여자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비록 처음 만났지만 전혀 낯설지 않았고, 서로에 대한 첫인상이 꽤 좋았다.송재이의 마음이 차츰 진정되었고, 어쨌거나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박윤찬의 안전이라고 생각했다.멈춰버린 듯한 시간 속에서 수술실 문이 드디어 열렸다.의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걸어 나왔다.“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어요. 환자분은 이제 고비를 벗어났습니다.”송재이와 류지안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던 돌덩이가 그제야 사라진 듯싶었다.박윤찬은 수술실에서 나와 병동으로 옮겨졌다.류지안이 병상 옆에 서서 머리에 거즈를 감고 아직 마취가 덜 풀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