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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출국

송재이가 떠나고 나서 설영준은 굳이 따라가지 않았다.

오히려 설도영이 옆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형, 왜 또 선생님이랑 싸운 거예요?”

사실 일부러 두 사람을 위해 기회를 마련해줬지만, 매번 설영준이 보기 좋게 망쳐버렸다.

이제 자신도 두손 두발을 들었다.

형이 워낙 성격이 변덕스러운 건 알고 있지만 송재이에 관한 일이라면 유난히 티가 났다.

설도영은 안타까우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설영준이 굳은 얼굴로 시종일관 침묵했다.

하지만 입을 닫고 있으니 오히려 카리스마가 폭발했고 점점 더 다가가기 힘든 뉘앙스를 풍겼다.

룸 안의 분위기는 금세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설도영은 억지로 미소를 쥐어짜 내더니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우리 형 이러다가 평생 혼자 살겠는데?’

송재이는 레스토랑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택시 안에서 오랜만에 되찾은 일정 노트를 펼쳐 보자 6개월 가까이 되는 스케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그녀는 마침내 잃어버린 물건을 찾게 된 소중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생각 없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뒤적거렸다.

이내 어지럽게 쓰인 ‘0’을 보고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제야 설영준을 생각하면서 써 내려간 숫자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0은 시작과 끝을 의미했다.

대놓고 이름을 쓰면 행여나 속마음이라도 들킬까 봐 일부러 애매모호하게 숫자만 썼다.

여태껏 일정 노트가 설영준한테 있었기에 이 페이지를 발견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선견지명이 있어 숫자 0만 쓴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혹시라도 설영준이 유추해낸 건 아닌지 싶어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설영준처럼 공사다망한 사람이 설령 발견했더라도 찬찬히 연구할 정도로 한가하지는 않겠지...?

그녀는 속으로 묵묵히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

다음날 송재이는 교장실에 불려갔고, 교장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송 선생, 혹시 출국할 생각은 없나?”

무방비 상태의 송재이는 순간 넋을 잃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대답했다.

“네?”

교장은 50이 넘은 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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