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너머로 정적이 이어졌다.어쩌면 문예슬은 그동안 혼자만의 착각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송재이가 워낙 성격이 착해서 싫은 소리를 차마 못 한다고 생각했다.따라서 그녀의 이런 ‘착한 성격’을 저도 모르게 이용했던 것이다.결국 지금까지 매번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는가?이제 와서 강경한 태도로 자신의 위선적인 이면을 들춰낼 만큼 딱 잘라 말하니 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다.송재이가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휴대폰을 타고 문예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송재이, 네가 이렇게 나쁜 년일 줄은 몰랐네? 그래도 한동안 둘도 없는 친구였는데 그런 모난 생각으로 날 억측하다니...”한껏 누그러진 말투는 억울한 느낌이 역력했지만 정작 상상을 초월하는 멘트를 내뱉었다.송재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감히 그녀에게 모났다고 하는 건가? 자기 잘못을 인정해도 모자랄 판에 되레 남을 비난할 줄이야!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은 송재이는 바쁘다고 대충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었다.이내 연신 심호흡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었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뒤에 떡하니 서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대체 언제 나타났단 말이지?그녀는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여긴 왜 왔어?”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설영준은 햇빛을 등지고 그녀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하지만 눈동자만큼은 뜨거우면서 그윽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고, 곧이어 남자는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송재이는 무의식적으로 연신 뒷걸음질 쳤고, 등 뒤에는 바로 통유리창이 있었다.어쩌면 상대방의 카리스마가 너무 강한 탓인지 몰라도 설영준을 마주할 때면 저도 모르게 기가 죽었다.그녀의 앞에 멈춰선 남자는 곧바로 턱을 살짝 움켜쥐었다.이내 입술을 달싹이며 무심한 말투로 물었다.“방현수랑... 잤어?”방금 문예슬과 통화하고 나서 안 그래도 짜증이 난 상황인데, 뜬금없는 설영준의 질문에 겨우 참았던 화가 다시금 폭발했다.사실은 일부러 그를 열받게 하려고 인정할까 고민도 했었다. 어차피 쉬운 여자라고 생각하는 이상 될 대로 되라는 식
교장은 그제야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입을 열었다.“대표님, 송 선생과...”“들어가서 얘기하시죠.”설영준은 교장실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문까지 닫았다.사실 오늘 다음 시즌 광고 투자 건 때문에 학교를 찾았는데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인 만큼 교장이 고급 레스토랑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하지만 예상외로 설영준이 아무렇지 않게 마침 근처에 있으니 그냥 운전해서 오겠다고 했다.설영준은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단 몇 마디로 화제를 돌렸다.방금 밖에서 송재이와 있었던 해프닝은 그다지 언급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교장도 잡담을 즐기는 스타일이 아닌지라 설영준이 대충 넘어가려는 의도를 눈치채고는 딱히 캐묻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었다.설영준은 때로 무심해 보이지만 일에 관해서는 끊고 맺음이 확실했다.시간이 흐를수록 교장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다행히 전체적인 협상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그만큼 설영준이 교장의 체면을 세워줬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협상 도중에 교장이 물을 따르러 일어나자 무심코 고개를 돌린 설영준의 시야에 책상 위에 놓인 교환 학생 제안서 더미가 들어왔다.이내 한 장을 집어 들고 대충 훑어보았다.교장이 설영준의 앞에 물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이번에 우리 학교에도 정원이 몇 명 있는데... 참, 송 선생한테도 추천해줬어요.”제안서를 뒤적이던 남자의 손이 우뚝 멈췄다.“누구?”“송재이 선생이요.”교장이 싱글벙글 웃었다.“이미 동의했고, 유학하는데 관심이 많다고 하네요.”설영준의 눈살이 저도 모르게 찌푸려졌고, 이마에 핏줄이 불끈 솟아올랐다.이미 동의했다니?“언제 동의했는데요?”설영준이 싸늘하게 물었다.상대방의 심기가 불편해졌다는 사실을 눈치챈 교장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오... 오늘이요.”즉, 방금 그녀를 만났을 때 이미 교장에게 유학 가겠다고 약속했지만 자신한테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언제까지요?”설영준이 다시 물었다.“6개월이요.”이내 교
경주에서 남도, 그리고 M국까지.설영준은 송재이가 조금씩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최근 경주와 남도를 오가는 횟수도 점점 더 잦아졌다.나중에 지사가 설립되면 그녀도 이미 출국했을 것이고, 또다시 홀로 남도에 남아 있을 게 뻔하지 않은가?교장이 말하길 송재이의 출국 수속은 일주일도 채 안 되어 완료되었고, 유학 일정도 곧 정해질 예정이라고 했다.송재이가 교장 선생님께 유학에 필요한 학습 자료를 부탁하자 교장은 사무실로 그녀를 불렀다.별생각 없이 문을 밀고 들어가자 교장실에 앉아 있는 또 다른 사람을 발견했다.비록 등이 그녀를 향했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뒷모습이었다.남자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고, 다리를 꼬고 마치 남의 일처럼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보였다.유유자적한 모습은 느긋하니 그녀가 안중에도 없는 듯싶었다.송재이는 심호흡하고 안으로 들어갔다.교장은 서랍에서 일찌감치 준비한 서류를 꺼내 송재이에게 건네주었다.“송 선생, 이번에 가게 될 컴파운대학교야. 도착하고 나서 피터 교수님을 찾아가면 되는데, 나랑 워낙 오랜 친구 사이니 도움이 필요할 때 편하게 부탁하면 돼.”교장 선생님의 배려에 송재이는 크게 감동했다.“걱정하지 마세요. 6개월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기대에 부응하도록...”“참, 송 선생. 이번 학기가 3개월로 줄었다고 얘기한다는 걸 깜박했네.”송재이는 어리둥절했다.“네?”고작 3개월밖에 안 되다니? 좀처럼 믿을 수가 없는 그녀였다.“왜 갑자기 절반이나 단축된 거죠? 3개월이면 너무 짧지 않나요?”교장은 고지식한 사람이라 거짓말에 능한 편은 아니었다. 결국 저도 모르게 맞은편에 앉은 설영준을 힐끗 쳐다보았다.설영준은 시종일관 다리를 꼰 채 두 사람의 대화 따위 관심이 없는 듯싶었다.단지 손에 든 자료만 뒤적거릴 뿐,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교장은 억지로 미소를 쥐어짜 내더니 더듬거리며 변명을 이어갔다.“단지 교환 학생으로서 어차피 교류 위주인데다가 국비 지원 항목이라서 해외 등록금을 지불할 정도까지 많은 투자를
설영준은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느긋하게 교실 밖의 복도를 거닐었다.이때 문득 가까운 곳에 있는 가녀린 실루엣이 보였다.오후 햇살이 그녀를 내리쬐었다. 그녀는 한창 촉촉이 젖은 눈동자로 원수를 쳐다보듯 그를 째려보았다.설영준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와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여기는 학교인지라 그녀도 굳이 밖에서 그와 다투며 남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싶지 않았다.송재이는 입술을 꼭 깨물고 차오르는 분노를 참으며 성큼성큼 그의 앞에 다가가 작은 얼굴을 번쩍 쳐들었다.“따라와!”말투가 꽤 사납고 살짝 협박하는 투였다.다만 이건 단지 그녀만의 생각이다.설영준이 듣는 입장에서는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방금 사무실에서 송재이가 놀란 표정으로 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왜 고작 3개월이에요? 3개월은 너무 짧아요...”그 순간 설영준은 하마터면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라 그녀의 목을 조를 뻔했다.3개월이란 시간이 짧다니?그는 단 3일도 송재이를 내보내고 싶지 않았다.원래도 기분이 언짢았는데 지금 막상 그녀에게 ‘협박’을 당하니 가슴에 꽉 막혔던 돌덩어리가 이상하게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설영준은 가끔 본인이 참 비열해 보였다.두 사람은 앞뒤로 나란히 빌딩을 나섰다.송재이가 머리를 돌리자 설영준이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유유하게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이런 모습을 보니 송재이는 또다시 울화가 치밀었다.“네가 몰래 손 쓴 거지?”그녀가 물었다.설영준은 눈썹을 치키며 대답했다.“아니!”“너!”“몰래가 아니라 대놓고 그랬어.”설영준은 스스럼없이 대답했다.그녀는 이 남자가 바로 승인할 줄은 미처 몰랐던지 두 눈을 부릅떴다.“네가 뭔데 제멋대로 내 유학 시간을 줄여? 분명 6개월이라고 했는데 이젠 고작 3개월이야. 대체 그 시간 동안 뭘 배우라는 건데?”“열심히 공부할 마음만 있다면 3개월도 족해.”설영준이 표정 변화 없이 대답했다.“벌써 몇 번째 묻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딜 가든 얼마나 오래 있든 대체 너랑 뭔 상
송재이는 황급히 구급차를 불러서 허둥지둥 니콜을 병원까지 실어갔다.가는 길에서 니콜이 정신을 차렸다.“나 저혈당이라서 조금만 방심해도 병이 발작하거든. 괜찮아, 별문제 아니야...”비록 이렇게 말했지만 송재이는 여전히 마음이 안 놓여 한사코 그녀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전면 검진을 받았다.니콜이 검사를 받을 때 송재이는 복도에서 그녀를 기다렸다.이때 의사로 보이는 금발의 외국인 두 명이 이쪽으로 걸어오며 나지막이 말했다.“얼마 전까지 시험 압력이 너무 커서 계속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어제 케빈 교수가 추천한 약을 먹고 진짜 단잠을 잔 거야. 눈 떠보니 날이 환히 밝았더라고. 심지어 아무런 부작용도 없이 너무 개운하고 머리가 맑아진 기분이었어...”“너 그 불면증 고질병 아니야? 무슨 약인데? 나도 몇 알 줘봐. 안 그래도 요즘 사람들은 좋은 수면 질량을 유지하기가 너무 어렵더라고...”그들은 말하면서 송재이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한편 송재이는 두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실은 설영준도 수면 질량이 나쁜 거로 알고 있다.그는 젊은 나이에 홀로 그런 어마어마한 대기업을 운영하고 있다.다른 사람들이 볼 땐 그가 회사를 이어받고 나서부터 흐트러짐 없이 너무 완벽하게 경영해나가는 모습이었다.설동훈과 비하면 더 잘하면 잘했지 절대 뒤처지진 않았다.하지만 송재이는 잘 안다. 그가 누구보다 압력이 크고 어깨에 짊어진 짐이 한없이 무겁다는 것을.가끔 새벽에 일어날 때 설영준이 옆에 없으면 바로 서재에 가서 그를 찾곤 했다.그때마다 설영준은 통유리창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그토록 고독하고 적적한 뒷모습을 하고 있었다.송재이는 얼른 앞으로 다가가 영어로 두 의사에게 물었다.“실례지만 그 약 이름이 뭐예요? 불면증 치료에 효과가 있나요?”...니콜은 검사를 마친 후 송재이와 함께 병원을 나섰다.송재이는 손에 봉투를 하나 들고 있었다.“재이, 그건 뭐야?”니콜이 의아한 듯 물었다.“친구한테 주려고 샀어.”송재이가 자연스럽게
설영준은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같은 남자인 여진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설영준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표정 하나로만 뭇사람을 압도하는 매력을 지녔으니까.설영준은 답장을 다 보낸 후 무심코 머리를 들었다.이때 마침 백미러로 자신을 쳐다보는 여진과 시선이 마주쳤다.여진은 뻘쭘한 듯 얼른 눈길을 피했다.한편 설영준은 화내지 않고 불쑥 이런 질문을 건넸다.“여 비서님은 여자친구 있어요?”여진은 화들짝 놀라며 하마터면 핸들을 쥔 손이 미끄러질 뻔했다. 그는 얼른 자세를 다잡고 설영준에게 대답했다.“아직 없습니다.”“그래요. 그럼 얼른 여자친구 찾아요.”설영준은 처음 부하직원인 여진에게 이런 말을 해본다.평소에 그는 타인의 사생활이나 가십거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근데 오늘 웬일인지 방금 카톡을 하고 나서부터 이러고 있다.“대표님, 송재이 씨 유학 가신지 한 달 가까이 됐죠?”여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니나 다를까 설영준의 미소가 그대로 굳었다.그는 마른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창가에 머리를 기댔다.그의 눈가에 송재기를 향한 그리움이 잔뜩 묻어났다.“제외 얘기가 갑자기 왜 나와요? 운전이나 해요 얼른!”성영준은 정색하며 여진에게 쏘아붙였다.질책이긴 하지만 그의 옆에서 수년간 일해오면서 여진은 당연히 알아들을 수 있다. 성영준은 사실 너무 단호한 말투는 아니었다.역시 송재이여야만 했다.여진은 다 알고 있지만 굳이 까발리지 않았다....송재이는 설영준의 답장을 받은 후 기숙사로 돌아와 얼른 택배를 불러서 내일 바로 국내에 물건을 부치기로 했다.택배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소파에 앉아 심심한 듯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그러던 중 우연히 문예슬의 인스타에 들어가 보았다.문정 그룹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녀의 인스타에는 대부분 여행 다니는 사진이거나 최신상 명품백들을 구매한 사진들이었다.하지만 문정 그룹에서 근무한 이후로 피드를 올리는 횟수도 점차 줄어들었다.간혹 올린다 해도 전부 자사 제품 광고거나 일부 상업적인 사항이었다.그녀
니콜이 그녀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눈물범벅이 된 그녀를 보더니 니콜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대체 왜 그래? 누가 괴롭혔어?”니콜은 바짝 긴장해 하며 물었다.송재이는 흐느끼면서 영어로 니콜에게 물었다.“넌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 있어?”니콜은 흠칫 놀라더니 머리를 끄덕였다.“당연하지!”“그럼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널 너무 좋아하지 않거나 또 혹은 말로는 네가 좋다고 하더니 돌아서서 딴사람 좋아하게 된다면 어떻게 단념할 거야?”“그거야 당연히 새로운 연애를 시작해야지!”니콜은 연애 경험이 매우 풍부하다.송재이가 감정 문제로 이토록 처참하게 우는 걸 알고 나니 금세 잠이 확 깼다.그녀는 송재이에게 ‘수업’을 열기 시작했다.“자고로 한 나무에만 매달릴 수 없는 법이야. 여기 앉아서 남자 때문에 울 바엔... 가자, 내가 좋은 곳 데려가 줄게. 너 금방 기분 전환될 거야!”송재이는 얼떨결에 니콜에게 이끌려 소파에서 일어났다.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화장실로 끌려가 세수를 했다.니콜이 대체 어디로 데려갈지 그녀는 전혀 몰랐다.한 시간 후, 송재이는 드디어 알게 됐다.니콜이 말한 ‘좋은 곳’은 바로 이 도시에서 가장 큰 바였다.송재이는 M국에 온 지 어언간 한 달이 되어가는데 줄곧 학업에만 전념하다 보니 일반 유학생들처럼 밤에 나가서 놀지 못했다.하지만 니콜은 자주 드나드는 걸 알고 있었다.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금발의 웨이터가 능숙하게 니콜과 인사했다.니콜은 매우 여유 넘치는 모습으로 칵테일 두 잔을 주문했다.“재이 넌 평소에 너무 갇혀있기만 했어. 잘 생각해봐. 바깥세상이 이렇게 큰데 여기저기 잘생긴 남자들 천지잖아...”이날 밤 송재이는 술을 많이 마셨다.설영준이 딴 여자랑 춤을 춘 일로 그녀는 상심이 너무 컸다.하여 니콜이 건네는 술을 거부하지 않고 전부 다 마셨다.옆 테이블에 일여덟 명의 젊은이가 앉아 있었는데 이 근처 의대생인 것 같았다. 그들은 송재이와 니콜에게 함께 놀자고 했다.송재이의 동양적인 외모와 깔끔하고 온화
송재이는 그 스토리를 올릴 때 이미 인사불성이 되어버렸다.아침에 깨나서 어젯밤에 했던 일을 떠올린 후 재빨리 그 스토리를 삭제했다.자극받은 거냐고 묻는다면 부인할 수도 없다.그녀는 확실히 설영준에게 자극받았으니까.그래서 니콜과 함께 바에 가서 실컷 술을 마셨고 몇몇 잘생긴 남자애들이랑 신나게 놀았다.사진을 찍을 때 뒤에 있던 잘생긴 남자가 그녀에게 미리 어깨에 손을 올려도 되냐고 물었었다.그때 송재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취기에 흐릿해진 눈빛으로 그 남자를 쳐다보며 머리를 끄덕였다.“당연하지!”설영준은 정아현을 안고 춤을 추는데 그녀라고 왜 딴 남자가 어깨에 손도 못 올리게 할까?그녀는 지금 자유의 몸이고 오직 본인만 위해서 살면 그뿐이다.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 스토리는 전체 공개여서 남도 사립예술학교의 동료들과 교장까지 전부 볼 수 있었다...설영준을 무시할 순 있지만 다른 사람들까지 신경 쓰지 않을 순 없었다.한편 피드를 삭제하자마자 카톡이 울렸다.[정말 그토록 외로운 거라면 그 도시의 관광지나 둘러봐봐. 수요되면 가이드도 소개해줄게.]그건 바로 설영준이 보낸 카톡이었다.송재이는 어리둥절해졌다. 이 남자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다만 첫 마디에 그녀에게 ‘외로운 거라면’이라고 말했다.송재이는 추측에 나섰다. 설영준은 아마도 어젯밤에 그녀가 취기에 올린 피드를 보고 허전해서 바에 가 잘생긴 남자들과 놀고 온 줄로 착각하나 보다.그래서 이런 ‘제안’을 하며 선심 쓰듯 가이드까지 소개해주겠다고 한 것이다.‘웃겨 정말!’송재이는 달랑 물음표만 하나 보냈다.‘본인이 뭐라도 된 줄 아나 봐?’‘네가 내 상사야? 선배야? 아니면 인생 멘토라도 돼?’해외까지 나왔는데 아직도 그녀에게 삿대질하고 있다니!설영준이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가이드 필요해?]송재이는 이를 악물고 단답형으로 말했다.[필요 없어!]‘이 여자가! 나한테만 사납게 굴고 그 외국인들 앞에선 배시시 웃으며 신나게 놀아?’‘완전 앞뒤가 다른 여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