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으로 가득한 강유리의 시선 속에서 육시준은 여유롭게 차 한 모금을 마시고 우아하게 찻잔을 내려놓았다.그러고 나서 고개를 돌려 강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유리야, 넌 네가 제자를 거둘 수 있을 거 같아?”“……”이에 강유리는 순간 말 문이 막혔다.“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마지막 제자는 모두 과거형이야. 오늘 사람들이 본 것은 그들이 상상한 것과 너무 다른 장면들이었어. 그 누구도 힘들게 얻게 된 입문 기회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한테 걸지 않을 거야.”“……”흥에 겨워하던 강유리의 눈빛은 점차 평온을 되찾기 시작했다.하지만 육시준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그리고 난 네가 제자를 거두지 않았으면 좋겠어.”그러자 강유리는 의아하기 그지없었다.“왜?”“우선 넌 제자를 가르칠 시간도 정력도 없어.”“그리고……”육시준은 말을 하다가 갑자기 멈칫거렸다.“아니다. 아무런 핑계를 대서 여기 남는다고 해도 널 쫓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그 말에 강유리는 불만이 가득한 눈빛으로 육시준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반박했다.“아무런 핑계? 내가 그렇게 뻔뻔한 사람이야?”육시준은 고개를 돌려 덤덤하게 강유리를 응시했다.그와 몇 초간 눈을 마주치고 난 강유리는 끝내지고 말았다.“그래. 뻔뻔한 사람 맞아.”“음.”“그다음은 뭔데?”“……”육시준은 시선을 돌리고 고개를 숙였으나 살짝 움찔거리고 있었다.이에 강유리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진지하게 바라보았는데, 아름다운 두 눈을 지그시 뜬 채로 심사하는 듯한 빛이 짙게 물씬거렸다.“혹시 남사스러운 이유라도 되는 거야? 설마 신입생 가운데 잘생기고 젊은 남자가 있을까 봐 그러는 건 아니지?”그 말에 육시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강유리를 흘겨보았다.“내가 그렇게 소심한 사람이야?”그러자 강유리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덤덤하게 응시했다.몇 초간 눈을 마주치고 나더니 육시준 또한 태연자약하게 인정했다.“그래. 나 소심한 사람이야.”강유리는 두 눈이 번쩍이더니 한참 지나서 살짝 미친 듯이 웃기 시
[……]강유리는 잠시 사색하더니 계속 답장했다.[내가 너무 직설적으로 평가했어? 요즘 애들은 이 정도 말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야? 난 맨날 스승님한테 어리석다고 욕먹으면서 컸었어.]이에 육시준은 다소 불가사의했다.[너 보고 어리석다고 그러셨다고?][그래! 내가 조금 전에 한 모든 말들은 모두 스승님이 나한테 하셨던 명언들이야. 언젠간 써먹고 싶어서 그동안 내가 모은 거야.][……]설마 스승님께서 이미 오늘과 같은 상황을 예견이기라도 한 것일까?게다가 이미 모든 방비를 마치고 강유리더러 “자살식”으로 제자를 거두게 한 것일까?역시 스승님은 달리 스승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참으로 수단이 대단했다.하지만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강유리는 눈에 훤히 보일 정도로 책략을 바꾸었다.될 수 있는 한 독설을 퍼붓지 않고 격려하는 듯한 방식으로 개변했다.예를 들면……“조금 전에 발차기 아주 정확했어요. 비록 기대했던 정도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목표는 뚜렷했어요.”“계속 맞는 상태에 처해 있었는데, 꽤 잘 견디는 것 같아요. 무려 5수나 버텨냈어요.”“대박! 조금 선배 옷깃을 스치다니! 대단해요!”“……”무대 아래 신입생들의 얼굴은 눈에 훤히 보일 정도로 점점 일그러졌다.게다가 긴장한 기색이 얼굴에 역력했다.평소에 훈련을 잘해 온 이들도 심사에서 본래의 수준을 잃고 겨우 관문을 통과했으면 마음가짐이 살짝 흐트러진 이들은 예상 밖으로 모두 탈락하고 말았다.심사를 마치고 난 신입생 구역도 분위기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다들 나지막한 소리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사숙 말이야 너무 무서운 거 아니야? 가주께서 임시로 넣어주신 새로운 문턱인가?”“듣기로는 저 사람도 제자를 거둔다고 하던데, 입문하고 싶은 사람 있어?”“그냥 편안하게 살고 싶지 않아? 뭐 한다고 저 사람 밑으로 들어가서 말라 죽으려고 그래?”“입만 독한 줄 알았는데, 사람 비꼬는 수단도 장난이 아니야. 앞으로 대전에서 트라우마 생길 거 같아.”“난 문득 저 사람 선
무대 위의 심사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어떤 이들은 무대 아래에서 차라리 강유리를 선택해서 겨루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단지 입으로 하는 말뿐이다.강유리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고 강유리를 상대 선수로 선택한다고 한들 꼭 체면이 사는 것도 아닐 것이다.몸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가차 없이 때리기도 하기 때문이다.강유리는 무섭기에 그지없는 존재가 아닐 수 없다.육시준은 의자에 기대어 오른손으로 의자 손잡이를 두드리며 머릿속으로 이 사람의 우점과 단점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했다.누군가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으로 봐서는 천부적인 재능이나 실력이 그리 떨어지지 않음을 증명한다.다만 머리가 좀 어리석어 사고를 거치지 않고 말을 하는 것뿐이다.하지만 바로 이러한 점으로 하여 그에게는 남에게 없는 특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솔직하고 직설적인 것이다.게다가 자존심이 강하고 빽으로 어느 한 지위에 올라가려고 하지 않으며 굴복할 줄 알고 실력 있는 사람에게 고개를 숙일 줄도 안다.가장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 좋고 욕을 먹어도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이는 제자를 거둠에 있어서 강유리의 기준에 제법 부합되는 인물이다.“인정 또한 실력의 일부분입니다. 도가네 무술 관에서 신입생을 거두는 것은 만 명 중의 한 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번 기회를 포기한다면 내년에 다시 들어올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육시준의 차가운 목소리가 갑자기 울렸는데, 뒤에서 똑똑히 들을 정도로 퍼졌다.소년을 말리고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순간 모두 사라지고 그들의 시선은 육시준에게로 향했는데, 두 눈에는 의문이 가득했다.이때 홍석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앞으로 몇 걸음 다가가더니 입을 열었다.“내년이면 올해보다 더 나아져서 올 것인데, 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입니까?”그러자 육시준은 의자에 지그시 기대었는데, 분명히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가 줄어들지 않았다.노기가 등등한 어린 녀석을 바라보며 얼굴에는 시종일관 우아한 미소가 그려
게다가 강유리가 봐줘서는 홍석천이 심사를 넘게 될 수 있었던 것이라 한 번 더 맞는다고 해서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강유리는 온 오후 내내 온갖 정신을 몰두하여 단어 하나까지 신중하게 선택하며 심사하곤 했다.행여나 신입생들의 마음을 다치게 할까 봐 유난히 조심스러웠다.하지만 그 효과는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았고 신입생들의 눈빛에는 공포의 빛이 아른거렸다.심사가 끝나기 무섭게 다들 뿔뿔이 흩어졌으니 말이다.신입생들은 옆에 있는 지도사들과 감히 얘기도 나누지 못하고 “걸음아, 날 살려”하며 달아나기 급했다.옆에 백현문과 다른 선배들은 강유리를 보고 몇 번이나 머뭇거리다가 끝끝내 참지 못하고 일깨워주었다.“유리 후배, 아니면 입문할 때 다시 오는 건 어때요?”이에 강유리는 망연하기만 했다.“네? 여기서 계속 환심을 사면 안 되는 거예요? 왜요?”“……”그러자 선배들은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제자를 거두고 싶지 않으면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만이지 굳이 이렇게 면전에 두고 허튼소리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신입생들과의 소통에도 크나큰 걸림돌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본래 백현문은 저녁에 식당에서 강유리의 컴백 기념으로 한 턱 쏘려고 했다.하지만 오후에 일어난 일련의 일로 많은 신입생들은 강유리를 앞에 두고 자기 암시 지도사에게 다가와 얘기를 할 용기도 없게 되었다.하여 오후에 물어봐도 되는 문제들을 모두 저녁으로 옮겨 한방에 물어보기 시작했다.이에 따라 저녁 회식은 취소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화려한 등불이 처음 밝혀질 초저녁.이 도시의 중심에 있는 오래된 마을은 번화하면서도 고즈넉하며 자기만이 지니고 있는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다.강유리는 2층 베란다 난간에 기대어 작은 망원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는 신입생 기숙사 정원을 바라보고 있다.삼삼오오 지도사를 에워싼 채로 한창 토론 중인 것처럼 보였다.강유리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여보, 나도 가서 애들 한 번 봐야 하는 거 아니야? 나한테 물어보고 싶
육시준은 고개를 숙여 손에 들고 있는 물 잔을 바라보다가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도씨 가문 전임 가주 후보에 누구 있었어?”그러자 신하균은 망연자실한 듯이 말했다.“둘밖에 없다니까. 도씨 가문 보스 그리고 현재 도씨 가문 가주.”“다른 성을 가진 사람은 없었어? 순위가 다섯째 되는 사람은 없었어?”“없었어.”“……”육시준은 입술을 오므린 채 몇 초간 침묵하더니 갑자기 다시 입을 열었다.“요즘 고정철과 고한빈 두 사람한테 신경 좀 써.”“……”이에 신하균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갑자기 목표를 바꾼다고?’‘도씨 가문에서 고씨 가문으로?’강유리는 휴대 전화를 들고 들어가 소파에 기댄 채 수신 버튼을 눌렀다.그러자 수화기 너머 흥분해 마지 못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어때요? 내가 보낸 메시지 봤어요?”이에 강유리는 무슨 뜻인지 도통 모르는 얼굴이었다.“무슨 메시지?”“보지 않았어요? 내 방 안에 있잖아요!”릴리는 재촉하며 덧붙였다.“얼른 봐봐요. 다른 건 몰라도 그 못난 아버지 효율 하나는 빠르던데요. 반나절 만에 내 요구대로 방을 꾸며냈어요.”강유리는 스피커를 켜고 통화 내용에서 나와 메시지를 보면서 계속 일깨워주었다.“너무 값 떨어지게 행동하지 마. 겨우 방 한 칸에 벌써 넘어간 거야? 여기서 네가 잘 곳이 없었어?”“자기가 지니고 있는 것이랑 남에게서 뺏는 것이랑 같아?”강유리는 온통 핑크색으로 물들어 있고 소녀 감성이 넘치는 사진을 열어 보았는데, 두 눈에는 만족하는 듯한 빛이 번쩍였다.릴리의 성격은 다소 어두운 면이 있으나 애호는 외모와 제법 일치한 모습을 보였다.대화창을 나와 강유리는 또다시 입을 열었다.“누구 거 빼앗은 거야? 성신영?”그러자 릴리는 대수롭지 않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성신영 거 빼앗는 건 재미 없어요. 게다가 고씨 가문에서 대우도 별로 받지 못하고 그다지 환대도 받지 못하는 입장이라 내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는 아직 급이 안 돼요.”“그럼…… 고주영?”“아니요. 고주영도 내
릴리는 잠시 생각하더니 강유리의 말에 대답했다.“그리 많지는 않아요. 고정철이 그 사람을 보물로 여기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요. 자기가 지니고 있는 인맥과 우세로 여러 기능을 모두 주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잘난 인물이 무슨 무술관이고 그 안에 온통 능력자들로 가득 차 있다고 그랬어요.”“도가네 무술관.”“그럼, 인맥이 좋은 건 확실하네요. 근데 언제 적 일이에요? 왜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어요?”이에 강유리는 다시 입을 열어 대답했다.“전에 가끔 너한테 한 선배가 좀 미쳤다고 했었잖아. 나한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적대시 한다고 했던 그 선배.”그러자 릴리는 문득 깨달은 듯이 소리쳤다.“대박! 그 사람이었어요? 그 후로 도희한테 들은 적이 있는데, 설경구 사숙이 지위가 높고 하여 그의 제자는 무술관에서 모두 지위가 엄청 높다고 들었어요. 근데 후에 무슨 일을 저질렀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그렇게 건방지게 나갈 수 있었던 거예요?”강유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무엇인가를 더 묻고 싶었지만, 뒤에서 차가운 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을 저질렀다는 거야?”조금 전에 사진을 본다고 스피커 폰을 켜고 있었던 사실을 강유리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하여 두 사람이 하는 대화 내용을 똑똑히 들었다.게다가 스피커를 열고 있던 상황이라 강유리는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개를 돌려 육시준을 뚫어지게 째려보며 강유리는 불만이 가득했다.육시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다가와 강유리의 고개를 어루만지며 위로하는 척했다.그러고 나서 손에 들고 있던 휴대 전화를 빼앗아 물었다.“자세히 말해 봐.”“……”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파렴치한 인간이 있을 수 있는가 싶었다.대화 내용을 엿들은 것으로 모자라서 휴대 전화까지 빼앗아 가다니……강유리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빼앗으려 했지만, 육시준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고 품속으로 끌어당겼다.그럼에도 강유리는 빼앗아 오려고 했지만, 수화기 너머 소리가 들려왔다.“자세한 건 저도 잘
칠흑 같은 밤이 찾아왔음에도 도주원과 가주는 여전히 무술관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자리 잡고 쉬기로 했다.무술관에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머무는 것도 기억이 아득할 정도로 오랜만이었다.신입생들은 저마다 마음속으로 격동하며 가주가 이번 심사를 중요시 여기고 있다는것을 알았다.하지만 신입생을 위함이 아니라 강유리를 위해서 두 사람이 여태껏 머물고 있음을 선배들은 똑똑히 알고 있다.그들은 본래 자기가 힘들게 훈련한 제자들을 강유리가 중간에서 손쉽게 빼앗아 가는 줄 알았는데, 늦은 시간이 되자 대부분 사람이 비밀리에 지시를 얻게 되었다.그것은 바로 갖은 방법을 도모하여 강유리가 제자를 거두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이 일은 도가네 무술관 선배들에게 있어서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강유리는 마침 오후에 신입생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는 대상이 되었고 “불 난 집에 부채질”만 하면 되는 격이다.그뿐만 아니라 강유리에 대해 더 깊게 “소개”를 해주면 된다.예를 들면, 강유리는 거의 무술관에 오지 않는다는 것.예를 들면, 모두가 들은 강유리의 독설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한 다는 것.신입생들에 대해서 이미 인정을 봐준 것이며 주변 친인들을 상대할 때는 눈에 뵈는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예를 들면, 강유리의 남편은 무서운 질투쟁이라 이성 제자를 거두게끔 하지 않으리라는 것.만약 이성 제자와 강유리가 가깝게 어깨를 나란히 할 시에는 육씨 가문의 블랙 리스트에 오르게 되리라는 것 등등...그렇게 밤새 소문은 부풀어 퍼져갔으며, 신입생들 가운데서는 일종의 신비로운 호흡이 맞춰지게 되었다.[생명을 소중히 여기려면 강유리로부터 멀어져야 함.]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정작 강유리는 본인은 완전히 모르고 있었다.이튿날 오전은 여전히 심사를 진행하여야 하며 밤이 되어서야 합격자는 입문 심사를 볼 수 있었다.올해 입문 스케일은 입이 떡하니 벌어질 정도이다.도주원과 도씨 가문 가주도 자리를 빛내주며 지금 지도사들 가운데 앉았다.자리에 앉을 때, 도주원은 가주를
무대 위의 신입생에 대해 강유리는 낯이 익었다.‘그 어리석은 친구 아니야?’“저 친구는 민 선배 사람인데, 내가 빼앗아 오는 건 좀 아니지 않을까?”표정이 한껏 엄숙해진 강유리는 머뭇거리기 시작했다.이에 육시준이 대답했다.“저 친구가 널 선택할 수도 있잖아.”그러자 강유리는 웃음을 터뜨렸다.“무슨 이상한 사람도 아니고 나한테 그렇게 모욕을 당하고 나서도 다시 올......”“사숙, 외람되지만, 가능하다면 다시 한번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순간 장내는 쥐 죽은 고요해지면서 모두 귀신이라도 보는 듯이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물론, 강유리로 그중에 포함되어 있다.그 말에 편안하게 앉아 있던 강유리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펴고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키며 망연자실했다.“저를 선택한다고 했습니까?”무대 위에 소년은 얼굴이 살짝 붉어지며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그래도 되겠습니까?”“......”그래도 되기는 하지만......강유리는 고개를 돌려 민경훈을 바라보았다.민경훈 또한 그녀와 마찬가지로 동공에 흔들렸으며 마치 이런 의외의 상황을 생각지 못한 모습이었다.민경훈의 방향을 따라 시선을 이어가 보니 도씨 가문 가주와 도주원도 놀라워 마지 못하며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이었다.특히 도씨 가문 가주는 죽일 듯이 무대 위를 노려보며 그들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애송이”를 죽일 것만 같았다.그뿐만 아니라 도씨 가문 가주는 거의 협박하는 듯한 목소리로 일깨워주었다.“사제관계는 딱 이번 한 번으로 결정되며 번복할 수 없습니다. 확실합니까?”이에 홍석천은 강유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확신에 찬 소리로 대답했다.“네! 확실합니다!”도씨 가문 가주는 무엇인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이때 강유리가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좋습니다.”그녀는 성큼성큼 무대 위로 올라가 홍석천의 맞은편에 섰다.무척이나 나른해 보이는 자태임에도 불구하고 강대한 압박감이 미친 듯이 밀려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