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상황에 경비원의 목소리에 의아함이 묻어났다.“강 대표님. 이게 무슨...”“저희 빌라에 성신영 씨 사는 거 맞잖아요.”“그렇긴 합니다만... 솔직히 지금 오신 분께서 성신영 씨 아버님이라는 증거도 없고... 지금 성신영 씨도 전화를 받지 않는 상태라...”고급 빌라는 주민들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는 경비원은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게다가 성신영이 고성그룹의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또 다른 아버지의 등장이라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긴 했다.“지금 성신영 씨가 사는 집, 저기 계신 분이 사주신 건데 그래도 들어갈 자격은 있지 않을까요?”강유리가 편을 들어주니 성홍주는 바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경비원도 강유리의 보증이 있으니 그들을 들여보내려던 그때...강유리가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렇게 우르르 들여보내면 주민들이 불만이 많겠어요.”“야, 걍유리. 너 이랬다 저랬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참다 못한 왕소영이 소리쳤다.“아니, 우리가 남의 집 들어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네가 뭔데 옆에서 이래라 저래라야.”다른 가족들의 불평이 이어지던 와중, 성홍주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설마...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건가? 이참에 이 거머리들을 다 떨궈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아, 그럼 저희가 어떻게 할까요...”왕소영을 비롯한 다른 가족들의 긴장감 어린 눈빛과 성홍주의 기대감 가득한 표정속에서 잠깐 고민하던 강유리가 말했다.“일단 들여보내세요. 그리고 성신영 씨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잘 케어해 주시고요. 괜히 다른 주민들한테서 불만 같은 거 나오지 않게.”이에 지금까지 침묵하던 왕강태가 한발 앞으로 나섰다.“케어? 말이 좋아 케어지 감시하라는 말 아닌가? 도대체 우릴 뭐로 보고.”하지만 이런 말에 기가 죽을 강유리가 아니었다.“뭐로 보긴요. 당연히 손님으로 보고 있죠. 설마 손님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 싶은 건가요? 설마... 주인이라든가.”어린 계집
같은 시각, 빌라 2층에서 육시준과 강유리를 기다리던 육경서는 창문을 내다보다 낯선 사람들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빌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눈을 커다랗게 떠보였다.잠시 후, 육시준 부부가 들어오고 2층에서 달려내려온 육경서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형, 형수님. 뭐야? 왜 경비원들을 잔뜩 달고 와?”“뭐야? 넌 또 왜 왔어?”대놓고 하는 불청객 대접에 육경서가 머리를 긁적였다.‘하여간 동생은 거지 발싸개 취급보다 못하지.’“뭘 달고 왔다고 그래요?”그나마 육경서에 말에 대답해 주는 건 강유리뿐이었다.한편 자연스레 슬리퍼를 건네주는 육시준을 바라보는 육경원의 시선이 묘하게 변했다.“뭐야? 두 사람 화해한 거야?”“미안한데.”찌릿.‘형한테 무시당하는 거 기껏 구해줬더만... 또 그 얘기를 꺼내?’강유리의 강렬한 눈빛을 느낀 육경서가 바로 말을 바꾸었다.“아, 미안. 두 사람은 싸운 적 없었지. 내가 헷갈렸네요, 헷갈렸어. 그런데 아까 형수님 뒤로 잔뜩 들어오는 사람들은 누구예요? 성홍주 이사도 보이던데.”“뭐 내 허락으로 들어온 떨거지들 정도랄까?”“아, 네. 난 또 시위대라도 들이닥친 줄 알았네요.”대충 고개를 끄덕이던 육경서의 눈이 다음 순간 휘둥그레졌다.“아니지. 설마 우리 집에 빌붙으려고 온 건 아니죠?”‘설마... 그것 때문에 싸운 건가? 우리 형수님... 사실은 가족한테 약한 타입이셨나?’입을 틀어막고 온갖 상상을 하고 있는 육경서를 현실로 끌어당긴 건 강유리의 목소리였다.“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거 아니니까 그만하죠. 그냥 성신영 가족들이 맞다고 인증만 해준 거뿐이에요.”“에이, 내가 아는 형수님은 그렇게 착한 사람 아닌데...”이때 아주머니에게 두 사람의 코트를 건넨 육시준이 강유리를 돌려세웠다.“자, 얼른 손 씻고 밥이나 먹자. 바보랑 대화하면 너도 멍청해진다?”“아, 그래.”두 부부에 의해 완전히 배척당한 육경서는 구시렁대며 휴대폰을 꺼냈다.[두 사람 화해한 것 같은데? 그런데 부부
기분이 좋아지니 평소 얄밉게만 보이던 육경서의 얼굴마저 조금은 잘생긴 것처럼 느껴졌다.“2층 테라스에서 성신영 집이 보이지 않나? 직접 확인해 보는 게 어때요.”강유리의 말에 눈을 반짝이던 육경서가 후다닥 움직이고 어차피 혼자 있어봐야 심심하기만 할 테니 강유리 역시 그의 뒤를 따랐다.5분 뒤.테라스에 도착한 두 사람은 망원경으로 성신영의 집을 염탐하기 시작했다.“어머, 정말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네요. 저 영감도 보기와는 다르게 힘이 좋던데요. 아까 지팡이로 성 대표 등짝을 내리치는데 내 허리가 다 얼얼하더라니까요.”“뭐 저 나이에 빌라 밖에서 몇 시간을 버텼으니... 체력 하나는 좋은 것 같더라고.”“그런데 왜 때렸을까요?”“몰라서 물어요? 자기가 가장 큰 안방에서 지내고 싶은 거겠죠.”“정말 가족같은 사이인가 봐요. 보통의 장인어른, 사위라면 서로 양보부터 할 텐데요. 그럼 저 두 여자는 또 왜 우는 거래요?”“엉망이 된 화장대 안 보여요? 비싼 화장품이라도 깨트렸나 보죠.”“어차피 자기 것도 아닌데 뭔 울기까지...”“저 집안 사람들이 원래 그래요. 자기 것, 남의 것에 대한 경계선이 모호한 인간들이라.”“아~”서로 한두마디씩 주고 받던 육경서는 뭔가 인지한 듯 슬그머니 망원경을 내려놓았다.“우리... 이렇게 다른 사람 사생활을 염탐해도 되는 겁니까?”하지만 강유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연예인 집에 선팅도 안 된 평범한 유리에 커튼도 안 쳤겠다. 일부러 보라고 저렇게까지 했는데 우리라도 봐줘야죠.”밉든 곱든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사이, 강유리는 누구보다 성신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누구보다 많은 사람에게 성신영이 이 JL빌라에 살고 있다고 알리고 싶었겠지...’“참나. 형수님, 아무리 형수님이라도 아닌 건 아닌 겁니다. 방금 전 하신 말씀, 노출 많은 옷을 입은 여자는 성추행을 당해도 싸다는 말고 다를 게 뭡니까?”육경서가 진지한 표정으로 강유리의 언행을 지적했다.‘허, 참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파티요?”강유리의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고정남 대표가 곧 돌아온다잖아요. 그 기념으로 고성그룹에서 큰 파티를 연다고 하더라고요.”“고성그룹 파티요? 도련님도 초대한 거예요?”강유리가 미간을 찌푸렸다.“저뿐만 아니라 저희 집안 사람들 다 초대받았어요. 뭐 엄마는 고성그룹 사람들이라면 치를 떨지만 앞으로 사업적으로 자꾸만 엮이게 될 테니까 겉으로는 잘 지내는 척 해야죠. 아, 그리고...”이때 육경서가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말하려는 듯 강유리의 귓가로 다가갔다.“이번 파티에 젊은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초대했대요. 말이 파티지 자기 자식들을 위한 단체 미팅 같은 거라고 봐도 되죠. 뭐 ,자식들이 능력이 없으니까 결혼을 시켜서라도 그룹을 지켜보고 싶은 거죠,”“결혼을 통해 그룹을 지킨다라. 그러다가 통째로 빼앗기는 수가 있을 텐데...”하지만 육경서는 입을 삐죽거렸다.“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되죠. 정략결혼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고요. 뭐 형수님 부모님 같은 경우는... 형수님 어머님이 남자 보는 안목이 별로라서 그런 거랄까요...”“뭐라고요?”강유리의 매서운 눈빛에 육경서는 바로 화제를 돌렸다.“아, 어쨌든 저 좀 도와주세요. 주리가 저랑은 죽어도 같이 안 간다는데 저 혼자 갔다가 그쪽 집안 딸이 저한테 반하기라도 하면 어떡해요.”정말 겁이라도 먹은 듯 스스로를 껴안는 모습에 강유리는 코웃음을 쳤다.“도련님, 헛소리 하지 말고 그렇게 한가하면 거울이나 들여다 보세요.”‘신안그룹도 나름 규모가 있는 기업이라 이번 파티에 초대를 받았을 텐데... 괘씸하니까 이건 알려주지 말아야지.’...잠시 후 육경서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샤워까지 마친 강유리는 아직도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육시준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하여간 독하다 독해. 돈이 그렇게 많으면 좀 여유를 즐길만도 한데.’그 모습에 자극을 받은 강유리가 스케치북을 들고 서재로 향했다.“우리 남편, 일하는 모습도 잘생겼네?”그제야 고개를 든 육시준이 물었다.“
그 뒤로 며칠 뒤 강유리는 밤마다 테라스에 앉아 성신영의 집에서 펼쳐지는 기막힌 드라마를 지켜보곤 했다.물론 아직 도와주겠다는 확답을 받지 못한 육경서 역시 문지방이 닳도록 빌라를 들락거리곤 했다.여느때처럼 강유리의 곁에서 얼쩡대던 육경서가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그런데 성신영은 지금 이 상황 모르는 겁니까? 집에도 안 들어오는 거예요?”“글쎄. 요즘 이혼 소송 중이라 바쁠걸. 어떻게든 고성그룹 파티가 열리기 전까지 법적으로 싱글로 돌아와야 하니까.”“독하다, 독해.”육경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이때, 테라스의 난간을 두드리던 강유리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아버지 말이에요. 생각보다 꽤 치밀한 사람이더라고요. 나름 열심히 알아봤는데 할아버지가 아빠 때문에 그렇게 되셨다는 증거가 안 나와요.”“뭘 고민해요. 형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되지. 형수님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할 사람이구만.”“저기요, 도련님. 저희 남편은 지금 돈 버느라 바쁘시거든요. 귀한 분은 귀한 일 하게 내버려두고 이런 더러운 일은 우리 두 사람이 하죠.”“우리... 두 사람이요?”육경서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형수님. 제 능력을 높게 사주신 건 고마운데요... 제가 그런 뒷조사에는 재능이 없어서요.”“성신영, 지금은 고정남의 딸이 되어버렸지만 어찌 됐든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워준 사람이니 아마 아버지도 초대하는 게 예의에 맞지 않을까요?”“설마 성홍주 대표가 파티에 초대받길 바라시는 거예요?”육경서의 질문에 강유리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최근 유강그룹의 주가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보수적인 회사 이사들도 강유리의 능력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가 인정을 받을 수록 성홍주를 향한 비난은 더 커져만 갔다.딸이 이렇게 똑똑한데 왜 이제까지 숨기고 있었냐.사위 주제에 처가 재산을 노리고 그랬던 게 아니냐.강 회장이 지금이라도 건강을 회복해 회사가 살아날 수 있었다.지금 겪는 모든 일들 전부 자업자득이다.‘온갖 비난을 받고 있는 양부가 파
인기척에 고개를 든 육시준의 표정이 묘하게 굳었다.완벽한 몸매를 감싸는 우아한 검은색 드레스차림의 강유리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찔하게 드러나는 매끈한 다리, 찰랑이는 머릿결, 그리고 무엇보다 반짝이는 완벽한 얼굴까지.도저히 눈을 뗄 수밖에 없었다.“이뻐?”“그래... 이쁘다.”육시준의 대답에 강유리가 미간을 찌푸렸다.‘오버는 바라지도 않지만 좀 더 확실한 리액션은 안 되나? 얄밉게.’하지만 그녀의 뒤를 따르던 에이미는 육시준의 평가에 꽤 만족하는 모습이었다.“나쁘지 않네에서 예쁘다로 바뀌셨네요. 대표님께서 누군가를 이렇게 칭찬하시는 건 처음 봅니다. 저도 괜히 뿌듯해지는데요.”“저번엔 그냥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고요?”이에 강유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평생 예쁘다는 말만 들어왔던 강유리에게 나쁘지 않다는 평가는 그야말로 모욕 그 자체였다.‘하아... 그랬단 말이지?’천천히 고개를 돌린 강유리가 괜히 비아냥거리며 물었다.“역시 LK그룹 대표님이라 그런지 눈이 아주 높으시네. 나쁘지 않아? 이 얼굴이?”이때, 피식 웃은 육시준이 소파에서 일어섰다.“저번에는 그냥 강유리였고 지금은 육시준의 아내 강유리니까. 더 예뻐 보이는 게 당연하지 않겠어?”그의 말에 흠칫하던 강유리가 고개를 홱 돌렸다.‘하여간... 말이라도 못하면.’그리고 자연스레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은 육시준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어머니가 차 보내주셨어. 그리고 쓸데없이 생각만 많은 우리 와이프를 위해 오늘은 내 친구부터 집안 어르신들까지 다 만나고 올 생각이야.”어차피 더 이상 관계를 숨기고 싶지 않았던 강유리가 어깨를 으쓱했다.곧 결혼식 날짜이니 이번 파티에서 모두에게 미리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저녁 7시.두 사람을 태운 차량이 호텔 앞에 도착했다.호텔 로비, 귀빈들과 얘기를 나누던 고정남, 고우식 부자가 강유리를 발견하고 표정이 묘하게 굳었다.“강유리 씨 당신이 여긴 무슨 일로...”고우식의 눈에 강유리는 동생으로 지
농담인 듯 농담 아닌 육시준의 말에 고정남의 미소가 어새하게 굳었다.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아직은 LK그룹과의 사이를 어느 정도 유지해야만 하는 고정남은 이 상황이 꽤 난처했다.오늘 파티에 굳이 LK그룹 쪽 사람들을 초대한 것도 사적인 원한이 회사의 협력으로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고우신의 말 한 마디에 첫만남부터 삐걱댈 줄이야.잠깐 침묵하던 고정남이 말했다.“우신아, 사모님께 어서 사과드려.”상황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고정남은 특별히 사모님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이 상황에서 사과라니. 이 상황이 상당히 내키지 않았지만 고우신은 아무렇게나 날뛰는 주청모와는 달랐다. 게다가 주위에 사람들이 점점 더 몰려드는 게 느껴지니 굴욕적이었지만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죄송합니다. 육시준 대표님, 사모님. 저번 대회로 두 분과 많이 친해졌다고 제가 착각했나 봅니다.”“그래요?”강유리가 한발 앞으로 다가섰다.“아닙니다. 제가 친구의 농담에 쪼잔하게 대응했네요. 제가 우신 씨 친구가 되기엔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이 한 마디를 내뱉은 강유리는 육시준의 뒤를 따라 파티장에 들어섰다.화려한 샹들리에의 불빛, 우아한 첼로 연주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한편, 주위를 둘러보던 강유리는 알아서 인적이 드문 구석쪽으로 향했다.하지만 스스로 빛나는 사람은 아무리 숨으려 해도 그 빛을 숨길 수 없는 법.수많은 사람들이 육시준에게 인사를 건네는 걸 바라보던 강유리가 속삭였다.“육시준 대표님, 인기가 너무 많으신데요? 나 너무 피곤해질 것 같아서 당신이랑 거리 좀 두고 싶은데.”“이미 늦었어.”이때, 육시준이 다가오는 중년 부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아버님, 어머님. 오랜만에 뵙네요.”“어머, 시준아. 오랜만이다. 여긴...”두 사람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육시준이 강유리의 허리를 끌어안았다.“제 와이프입니다. 이쪽은 한문이 부모님이셔. 아, 한문이 어머님도 연예인 좋아하시는데... 이름이 뭐더라.”“잘 알지.”강
남편을 노려보던 한지숙은 곧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아휴, 우리 한문이 안 됐네.”한지숙이 두 번이나 언급하니 가만히 있던 육시준도 슬슬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신한문과는 원래 친구 사이고 연예인이라는 그 여동생이 강유리의 친구라는 걸 알았을 때까지만 해도 그냥 이런 우연도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신한문과 엮어주려던 거였어?’“전에 한문이한테 좋아하는 사람 생겼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유리랑 엮을 생각을 하셨을 줄은 몰랐네요.”육시준이 최대한 무덤덤한 표정으로 물었다.“아, 그게...”그제야 육시준의 존재를 체감한 한지숙이 살짝 말끝을 흘렸다.‘우리 아들이랑 맺어주려던 애가 아들 친구 와이프가 되다니. 이게 무슨 막장이래...’솔직히 신주리가 아들과 강유리를 이어주려고 할 때 내색은 안 했지만 나름 기분이 좋았었다.딸처럼 생각하는 딸 친구를 며느리로 맞이하면... 얼마나 좋을까?뭐,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해봤자 다 의미없는 일이 되어버렸지만.“아까 장회장 사모가 당신 찾지 않았던가?”이때 심 회장이 불쑥 끼어들었다.“아, 그러게. 너희들이 너무 반가워서 깜박했지 뭐니. 그럼 조금 있다가 다시 얘기하자!”그렇게 심 회장 부부는 강유리만을 남겨둔 채 자리를 떠버렸다.‘하... 결국 뒷수습은 내 몫인 건가.’샴페인 한 모금으로 겨우 시간을 번 강유리가 멀어져가는 두 사람을 가리켰다.“신경 쓰지 마. 어렸을 때부터 워낙 가깝게 지내서 괜히 저러시는 거니까.”“아, 그래? 너무 가까워서 아들과 딸 친구 사이의 스캔들을 퍼트리시는 건가?”“쿨럭, 쿨럭...”한편, 한지숙은 가십의 여왕이라는 닉네임답게 강유리가 육시준의 와이프라는 사실은 바로 파티장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고, 육시준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도 두 사람의 관계를 의문스럽게 바라보는 눈빛에서 당당하게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장족의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미소를 짓느라 입꼬리에 경련이 일어날 무렵, 자연스레 고개를 돌리던 강유리는 잔뜩 화가 난 누군가와 시선을 마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