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노려보던 한지숙은 곧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아휴, 우리 한문이 안 됐네.”한지숙이 두 번이나 언급하니 가만히 있던 육시준도 슬슬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신한문과는 원래 친구 사이고 연예인이라는 그 여동생이 강유리의 친구라는 걸 알았을 때까지만 해도 그냥 이런 우연도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신한문과 엮어주려던 거였어?’“전에 한문이한테 좋아하는 사람 생겼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유리랑 엮을 생각을 하셨을 줄은 몰랐네요.”육시준이 최대한 무덤덤한 표정으로 물었다.“아, 그게...”그제야 육시준의 존재를 체감한 한지숙이 살짝 말끝을 흘렸다.‘우리 아들이랑 맺어주려던 애가 아들 친구 와이프가 되다니. 이게 무슨 막장이래...’솔직히 신주리가 아들과 강유리를 이어주려고 할 때 내색은 안 했지만 나름 기분이 좋았었다.딸처럼 생각하는 딸 친구를 며느리로 맞이하면... 얼마나 좋을까?뭐,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해봤자 다 의미없는 일이 되어버렸지만.“아까 장회장 사모가 당신 찾지 않았던가?”이때 심 회장이 불쑥 끼어들었다.“아, 그러게. 너희들이 너무 반가워서 깜박했지 뭐니. 그럼 조금 있다가 다시 얘기하자!”그렇게 심 회장 부부는 강유리만을 남겨둔 채 자리를 떠버렸다.‘하... 결국 뒷수습은 내 몫인 건가.’샴페인 한 모금으로 겨우 시간을 번 강유리가 멀어져가는 두 사람을 가리켰다.“신경 쓰지 마. 어렸을 때부터 워낙 가깝게 지내서 괜히 저러시는 거니까.”“아, 그래? 너무 가까워서 아들과 딸 친구 사이의 스캔들을 퍼트리시는 건가?”“쿨럭, 쿨럭...”한편, 한지숙은 가십의 여왕이라는 닉네임답게 강유리가 육시준의 와이프라는 사실은 바로 파티장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고, 육시준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도 두 사람의 관계를 의문스럽게 바라보는 눈빛에서 당당하게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장족의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미소를 짓느라 입꼬리에 경련이 일어날 무렵, 자연스레 고개를 돌리던 강유리는 잔뜩 화가 난 누군가와 시선을 마주친다
‘여기서 대답 잘해야 한다. 안 그럼 또 한동안 시달릴 거야...’이런 생각을 하던 강유리는 다시 육시준의 품에 기대 속삭였다.“우리 여보가 정장 입은 모습이 너무 멋져서... 막 덮치고 싶지 뭐야? 진심으로 한 말이었어.”“그럼 오늘 밤 기회를 주지.”“...”두 사람이 이런 말을 속삭이는 사이,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왔다.“여러분, 오늘 파티에 빛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국내에 없는 동안 그룹의 모든 업무를 담당했던 제 동생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턴 저 스스로 제가 짊어져야 할 책임을 지도록 하겠습니다.”고성그룹의 주인이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했다.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고정남은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사람들이 모인 김에 다른 얘기도 조금 덧붙이겠습니다. 저희 딸 신영이는 LK그룹 육경원 본부장과 이미 결혼한 사이입니다. 외부에서 떠도는 근거없는 헛소문에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뭐야? LK그룹? 장난해?”“근거없는 헛소문? 그럼 언니 남자친구를 빼앗았다는 것도 다 거짓말인가?”“뭐 알 게 뭐야. 언니가 육시준 대표랑 결혼하니까 어떻게든 그쪽 집안 남자 하나 잡은 걸지도 모르지. 하여간... 재주도 좋아.”고정남의 말에 수군대는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강유리에게로 향했다.한편, 강유리가 의아함을 느끼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뭐야? 두 사람 이혼한다면서?”“그러게. 두 사람 사이가 갑자기 좋아지진 않았을 테고...”“그럼 굳이 이렇게 말한다는 건 육경원한테 이혼할 생각은 하지 말라는 뜻이겠지?”“뭐, 내 동생이야 얻어먹을 콩고물이 있으면 어떻게든 빌붙을 자식이니 어쩌면 이혼 안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실 오늘 파티의 주인공은 고우신 고주영 남매야.”역시나 육시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고정남이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다음이 바로 가장 중요한 소식입니다. 저희 우신이와 대헌그룹 김유정 양이 곧 약혼식을 올릴 예
그리고 강유리는 육시준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그날 고주영과 선을 보는 자리라고 했던가...’“지금 저쪽에서도 아주 후회막심이겠어. 일이 그렇게 꼬이지 않았다면 지금쯤 딸이 LK그룹 며느리가 됐을 텐데.”이에 육시준이 힐끗 그녀를 바라보았다.“왜?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싶어?”“그냥 사람 일은 참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어깨를 으쓱하던 강유리가 물었다.“그건 그렇고 당신은? 당신은 아쉽지 않아?”“내가 뭐가 아쉬워?”“그날 그 자리에 나온 게 고주영이 아니라 나라는 거 말이야. 솔직히 당신은 그냥 결혼이 하고 싶었던 것뿐이었잖아. 상대가 나였든 고주영이었든 당신은 딱히 상관없었던 거 아니야? 그리고 당신이 고성그룹 고주영과 결혼했다면 육경원 같은 건 상대도 안 됐을 텐데. 그리고...”“강유리.”이때 육시준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한문이가 자기 동생한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는데 왠지 지금은 그 마음이 이해가네.”“무슨 말인데?”“맞고 싶지 않으면 입 다물어.”“헉.”육시준의 차가운 목소리에 강유리는 무의식적으로 자기 뺨을 만지작거렸다.한편 육시준은 자기 마음도 몰라주는 아내가 야속할 따름이었다.“그래. 그 자리에 나갈 때까지만 해도 누구든 상관없었다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널 만나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어.”육시준의 말에 강유리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결혼, 사랑이 다는 아니지만 사랑이 없다면 시작하려는 생각마저 나지 않는다는 느꼈거든. 그러니까 농담이라도 그런 말하지 마. 네가 어느 집안 딸이든 상관없어. 내가 한평생 관심을 가졌던 사람도, 사랑에 빠졌던 사람도 너뿐이니까. 그리고 정략결혼 따위로 겨우 유지할 수 있는 기업이라면 차라리 문 닫는 게 낫겠지.”쿵쾅쿵쾅.파티장에 모인 사람들의 대화소리로 시끌벅적하던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왠지 귓가에는 그녀의 쿵쾅대는 심장소리만이 들려왔다.‘뭐야... 왜 이렇게 멋있는 건데. 말은 또 왜 이렇게 잘 하고.’솔직히 딱히 다른 마음을 품고 그런 말을 한 것도 아니
유혹과 도발이 담긴 매력적인 목소리에 강유리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려왔다.그렇게 조심스럽게 그의 입술로 다가가려던 그때, 파티장 문이 벌켝 열리고 강유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하게 되었다.“뭐야.”미간을 찌푸리던 육시준이 강유리의 시선을 막았다.“진지하게 임해. 어디 다른 데 눈길을 돌려?”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파티장에 들어선 이가 성홍주라는 걸 확인한 강유리의 촉촉한 눈동자가 순간 다른 의미의 흥미로 반짝였다.“잠깐. 오늘 파티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될 예정이라.”‘하이라이트? 하이라이트고 뭐고 지금 당장 집에 가고 싶고만.’한편, 성홍주 부부는 초대장을 소지했음에도 경비원에게 막히는 상황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아니,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내가 당신네 아가씨 성인까지 키워준 사람이야. 나 몰라?”“죄송합니다, 사모님. 이 초대장으로는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하, 왜 안돼? 신영이 나오라고 해! 나오라고 하라고!”...막무가내인 왕소영과 경비원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그 틈에 살짝 뒤로 밀린 그녀는 이때다 싶어 더 악을 썼다.“하, 지금 나 친 거야? 20년 넘게 금지옥엽 기른 딸 한순간에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이제 얼굴도 못 보게 해! 이게 고성그룹의 품격이야?”밖의 소란에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씩 쏠리기 시작하고 성한일도 파티장을 향해 머리를 들이밀었다.“누나! 얼른 나와보라니까!”같은 시각. 오늘 우아하게 차려입은 성신영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름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사람들 앞에서 고정남이 직접 그녀를 딸이라고 인정하기도 했고 육경원도 적어도 사람들 앞에서는 젠틀한 타입이라 이 순간만큼은 모두의 사랑을 받던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 싶었다.여러 시련이 있었지만 이렇게 결국 상류사회의 일원이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던 순간, 성홍주 부부의 등장은 그녀의 환상을 완전히 깨부숴버렸다.그 짜증나는 꼴이 보고 싶지 않아 얼른 경비원을 불렀던 건데 모든 걸 다 잃더니 자존심마저 잃은 건지 사람들 앞에서 고
한편, 고정남을 발견한 왕소영은 더 목에 핏대를 세우며 목소리를 높였다.“고정남 대표님. 저희한테 어떻게 이러세요? 신영이를 데리고 가겠다고 하셨을 때 저희는 두말없이 동의했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저희를 이렇게 버리실 수 있나요? 친자식처럼 신영이를 키워온 지난 20여년의 세월은 뭔가요? 얼굴 한 번 보는 게 이렇게 힘들어도 되는 건가요?”“그러니까요. 아저씨, 우리 누나가 절 얼마나 아꼈는지 아세요?”“한일아,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끼어들지 마.”짐짓 아들을 꾸짖은 성홍주가 인자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소란을 피운 건 저희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저희 딸이 걱정돼서.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한편 고정남은 이 상황이 상당히 불쾌했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담담한 척 대답했다.“당연히 모셨어야 했는데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그래요? 그런데 이 경비원은 우리한테 왜 그런 거죠?”왕소영이 경비원을 가리키며 물었다.“우리가 초대장까지 내밀었는데도 입장을 막는다는 게 말이 돼요?”“네?”고정남의 날카로운 시선에 경비원이 바로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신영 아가씨께서...”“아빠, 엄마, 오셨어요?”이때 성신영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경비원의 말을 잘라버렸다.그리고 여배우답게 커다란 눈망울에 바로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오실거면 미리 말씀이라도 해주시지 그러셨어요. 어디 다치신 데는 없죠? 당신들 우리 엄마, 아빠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고개를 홱 돌린 성신영의 꾸짖음에 경비원은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그게...”“다치시기라고 했으면 어쩔 뻔했어!”“아니, 그게...”경비원이 변명을 늘어놓기 전에 성신영이 먼저 왕소영과 성홍주를 와락 끌어안았다.하지만 뜨거운 포옹과 달리 두 사람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이는 성신영의 표정은 어느새 일그러진 모습이었다.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강유리가 흥미롭다는 얼굴로 눈썹을 치켜세웠다.“점점 더 재밌어지는데? 우리 가까이 가서 보자.”두 사람이 발
“그렇지.”육시준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비슷한 사람들끼리 가족이 된다라...”차한숙이 혼잣말처럼 강유리의 말을 반복했다.“네. 왜요? 제 말이 틀렸나요?”당당한 미소를 짓고 있는 강유리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훑어보던 차한숙은 별말없이 자리를 떠버렸다.한편, 성신영에게서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성홍주, 왕소영 부부는 고정남 대표에게 억지 미소를 지어보인 뒤 쫓기듯 파티장을 나섰다.마침 차한숙과 대화를 마치고 고개를 돌린 강유리와 성홍주가 서로 시선을 마주치고...성홍주는 도둑질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다급하게 시선을 피해버렸다.“눈을 가늘게 뜬 채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강유리가 물었다.“성신영이 뭐라고 했길래 저렇게 도망까지 치는 걸까?”“뭐, 전에 했던 추잡한 짓들 전부 까밝히겠다고 말했나 보지.”“겨우 그것 때문에 물러난다고? 그럴 거면 여긴 왜 왔대?”“성홍주는 지금 벼랑끝에 몰린 상태야. 조금의 타격에도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떨어질 테니 겁이 날 수밖에.”육시준의 말에 강유리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성신영... 그 동안 죽도록 당하더니 그래도 꽤 똑똑해졌네.’“고성그룹 사람들이랑 너무 가깝게 지내지 마. 특히 차한숙은 안돼. 그 여잔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여자거든.”육시준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도 강유리는 다른 생각에 잠겼다.“날 어느 정도 경계하는 거야 이해가 가지만... 왜 성신영을 저렇게까지 두둔하는 거지? 바보가 아닌 이상 고정남 대표도 성신영이 친딸이 아니라는 것쯤은 눈치챘을 텐데. 도대체 왜?”강유리의 질문에 육시준이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친딸이 맞는지 아닌지 그게 뭐가 중요해. 저 사람들에게 어차피 자식은 자신들의 자본을 부풀리기 위한 장기말에 불과해. 성신영을 이용해 LK그룹 육경원이라는 사위를 얻게 됐으니 꽤 이득인 거래지.”육시준의 대답에 꽤나 충격을 먹은 강유리의 입이 저도 모르게 벌어졌다.“난... 자기 친딸을 찾기 위해 성신영을 이용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강유리와 육시준 역시 고개를 까딱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그 뒤로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반갑다느니 파티가 끝나면 집에서 따로 더 시간을 갖자느니 쓸데없는 말만 내뱉는 고정남을 바라보며 강유리는 가식적인 미소로 일관했다.그런데 당연히 거절할 거라 생각했던 육시준이 강유리의 어깨를 살짝 토닥였다.“저기 당신 친구 아니야? 가서 얘기라도 걸어줘.”육시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에는 조보희가 서 있었다.“보희?”“응.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뻘쭘한 것 같은데 당신이 가봐.”“그래. 그럼 실례하겠습니다.”별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인 강유리가 돌아서고...방금 전까지 호탕하게 웃던 고정남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나와 유리 사이를 막아 자네에게 이득이 될 게 뭔가?”“아, 오해하셨네요.”육시준이 싱긋 웃었다.“보희 씨 이한이 여자친구거든요. 자기 여자친구가 고성그룹이 주최한 파티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서있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이한이가 꽤 언짢아 할 것 같아서요. 아직은 송일그룹이 필요하신 거 아닙니까?”이때 한발 앞으로 다가선 육시준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러고 보면 사람 참 안 변해요. 젊었을 때 그 우유부단함 때문에 원하는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지 못한 것도 모자라 이제 자기 딸을 앞에 두고도 이름 한번 당당히 부르지 못하는군요.”“역시 육 대표는 아직 너무 젊어. 이 세상은 자네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돌아가는 게 아니야.”“글쎄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사정이 있었다. 이런 건 패자들이나 하는 변명이라고 생각합니다만.”...한편, 조보희를 향해 다가가던 강유리가 입을 삐죽거렸다.‘무슨 비밀 얘기를 하시려고 그렇게 티나게 날 다른 곳으로 보내는 걸까? 에이, 됐다. 머리 아파.’머리를 털어낸 강유리가 조보희의 이름을 부르려던 그때,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 강유리가 미간을 찌푸렸다.인적이 드문 구석, 조보희 주위를 둘러싼 여자들이 그녀를 향해 모욕의 말을 뱉어내고 있었다.“야, 마셔.”“참나, 넌
한편, 강유리의 등장에 조보희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그래. 그렇게 술이 좋으면 너희들이나 많이 마시든가!”어느새 고개를 치켜세우고 대드는 모습에 강유리는 웃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하, 태세전환 하나는 빠르다니까...’“하, 하여간 잘난 척은.”이때 생머리 여자가 강유리를 힐끗 바라보았다.“강유리 대표님, 굳이 이 일에 참견을 하시겠다 이 말씀이세요?”“우리 희연이 우신 씨 여자친구거든요. 앞으로 고성그룹 사모님이 되실 분이라 이거예요.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예요.”‘고우신?’강유리가 흠칫하던 그때 단발머리 여자가 갑자기 옆에 있던 와인잔을 들어 연희연의 드레스에 쏟아부었다.“어머!”그리고 할리우드 액션으로 뒤로 넘어지려 하는 연희연의 뒤로 이쪽으로 다가오는 고우신의 모습이 보였다.그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이 강유리의 머릿속을 스쳐지났다.‘CCTV 사각지대에서 이런 짓을 벌이시겠다. 그리고 모든 걸 내게 뒤집어 씌우려는 속셈이겠지?’“쯧.”그리고 다음 순간, 성큼 다가선 강유리는 뒤로 넘어지려는 연희연의 손목을 붙잡고는 비상통로 쪽으로 향했다.한편, 어렸을 때부터 강유리를 봐왔던 조보희 역시 그녀의 속셈을 알아채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시작이네.’그리고 눈치껏 멍하니 서 있는 단발머리 여자의 손목을 끌어당겼다.“따라와.”비상통로의 다른 출구는 호텔의 수영장과 연결되어 있었다.겨울이라 찾는 이가 거의 없는 수영장. 두 사람의 못된 성격을 고쳐주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과 함께 강유리가 발걸음을 멈추었다.풍덩!그리고 잡고 있던 손목을 비틀어 그대로 연희연을 물속으로 집어넣었다.“내가 정신적인 결벽증이 있어서요.”팔짱을 낀 강유리가 말을 이어갔다.“예의가 없는 사람을 보면 참을 수 없는 분노 같은 게 치밀거든요. 그 더러운 주둥아리 그리고 가능하다면 시커먼 속까지 잘 씻고 나오길 바랄게요.”한동안 푸덕거리다 겨우 일어선 연희연은 한참을 기침을 뱉어낸 뒤에야 겨우 대답했다.“강유리, 너...”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