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리는 자기도 어느 날부터 손주 문제에 골치가 아파야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심지어, 결혼식도 안 올렸는데. 지금 생활이 만족스럽다. 하지만 이미 결혼을 한 상태라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았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얼마 전에 송미연이 결혼식 때문에 이것저것 그녀한테 상의하곤 했었는데 그제야 결혼한 실감이 났다. 이제야 겨우 결혼 할 실감이 났는데 벌써 손주 얘기가 나오다니…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근심 마세요. 항상 노력하고 있는데 방해가 된 건 아닙니다.”육시준은 진지하게 해석했다.강유리는 그런 육시준을 노려보았고 강학도은 웃고만 있었다,“그래, 그러면 됐어. 방해가 안 됐다고 해도 너희 신혼집인데 같이 산다는 건 말이 안 되지. 게다가 나이도 들더니 옛집이 좋아.”“…”이렇게까지 굳건하신데 육시준은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옛집이 좋다고 하는 걸 보니 근처의 연희동 오피스텔로 모시고 싶다던 생각도 때려치웠다.밤이 깊어졌다.강유리는 침대에 누워 옆에서 아이패드를 보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느껴져서 그런지 육시준은 고개를 돌려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피곤하다며? 잠이 안 와?’“자기야, 전에 나한테 거짓말한 거지?”“???”강유리는 생각하다 벌떡 일어나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전에 애 때문에 다퉜잖아. 너도 마지막엔 애를 갖지 않기로 타협하고.”육시준은 생각이 났다.전에 강유리가 생리가 미뤄진 탓에 오해가 있었었다.강유리 마음속엔 유강그룹뿐이고 그의 자리가 없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얘기를 해보고 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난 후엔 애를 갖는 일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았다.“그런데 넌 애를 갖고 싶잖아?”강유리는 갸우뚱거리며 진지하게 물었다.“할아버지한테 한 말 때문에 전에는 내가 거짓말 했다고 생각하는 거야?”“거짓말까지는 아니고… 물러선 거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지.”“내가 물러설 사람으로 보여?”“…”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강유리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당연히 내 문제는 아니지! 이런 경우는 보통 남자들 탓이거든.”육시준의 안색은 갑자기 안 좋아졌다.“내 능력을 아직도 잘 모르겠어?”“…”갑자기 이러면 반칙이지. “아니면 오늘 밤에 한 번 해봐?”“아니, 아니. 괜찮아.”“…”육시준은 그녀만 뚜렷이 바라보고 있었다. 방 안의 온도도 그 차가운 눈빛 때문에 떨어지는 듯하였고 강유리는 어쩔 줄 몰라 하였다.눈빛을 저도 모르게 돌렸고 중얼거리며 해명했다.“연애만 하기로 협의했잖아. 갑자기 왜 애기 얘기가 나와.”이거야 말로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육시준의 차가운 눈빛은 점점 온기로 따뜻해졌다.“그래. 그러면 먼저 연애만 하는 거로 해.”“???”연애한다면서 왜 만지작거리는데.강학도는 역시 행동파인지 옛 저택으로 이사 가겠다고 말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날 준비를 모두 끝냈다.토요일 오전.강유리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일찍 기상하여 강 씨네 옛 저택으로 향했다.가는 길 내내, 강유리는 강학도가 달라졌다며 불만을 토했다. 분명 전에는 자기를 그렇게 예뻐했으면서 지금 와서 떨어져 살질 못해서 안달이라고.“그저 빨리 깨난 거에 불만이 있는 거 아니야? 너더러 바라다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시준이가 나랑 같이 가면 되지.”강학도는 그녀의 꼼수를 집어냈다.“걔가 뭘 안다고 그래요? 옛 저택이 이젠 비어있은 지도 얼마나 됐는데, 진짜 들어가 살 수 있는 거 맞아요?”운전석에 있던 남자가 대꾸했다.“류 집사님이 먼저 몇 명 데리고 갔어. 미리 가서 청소해 놓을 거야.”먼저 이것저것 수선하고 청소하고 며칠 뒤에 이사할 계획이었지만 강학도가 이렇게나 빨리 돌아가고 싶어 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강유리는 말하고 있는 육시준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은근히 세심한 면이 있네.강학도랑 수다를 떨다보니 점심쯤 되어야 옛 저택에 도착했다.강유리가 상상했던 스산한 모습과 달리 웅장하고 깔끔한 저택이었다. 까만 대문은 반짝거렸고 겨울이지만 마당의 꽃들은
지금 뻔뻔하게 말하고 있는 건 왕소영의 가족들이다 강학도가 아프고 강유리도 해외로 간 후에 왕소영의 가족들이 이 저택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몇 년 살다 보니, 진짜 자기 집이라고 생각한 모양인 것 같다.경치도 좋고 시설도 완벽하니, 내어주기 싫은 건 당연하다. 예전 같으면 강학도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는 걸 알면 바로 도망갔을 사람들이다. 강 씨네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지금은…“유리야, 너도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예의를 잘 모르네. 비록 엄마없이 컸다고 하지만 네 이모한테서도 많이 배웠을 텐데, 날 적어도 아주버니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니겠어?”“참 염치가 없으시네요. 그쪽이 왜 제 아주버니세요?”남자의 표정이 갑자기 뒤바뀌었다.“강유리, 내가 경고하는데 말조심해. 지금 유강그룹이 누구 덕을 보고 있는지 생각해 봐! 소영이가 안 도왔으면 너네 유강그룹은 내일 당장 망해버리는 거야.”강유리는 그의 말에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웃음이 터져버렸다.“유강그룹이 왕소영 돈을 가지고 버티고 있는 거라고 누가 알려준 거에요? 성홍주?”왜 갑자기 이렇게 당당해졌나 했더니 이것 때문이네. 왕기현은 그녀의 태도를 보고 불쾌한 듯 눈썹을 찌푸렸다.바로 대꾸하려고 했는데 연륜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별장 대문이 열리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어르신이 걸어 나왔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의 모든 사람을 훑어보았다.결국 그의 시선은 강학도한테로 머물렀고 입을 열었다.“시댁이 오셨네. 밖에 있지만 말고 들어오세요.”마치 이 집의 주인인 듯한 말투였다. 자기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도 하지 않는 모양이다.강유리가 반박하려고 했으나 옆에 있던 강학도가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이면서 달래주고는 집안으로 들어섰다.육시준은 류 집사님한테 눈치를 주고 강유리의 손을 잡고는 강학도 뒤를 따랐다.객실에는 이미 왕 씨네 가족들이 소파에 앉아있었다.강유리 일행은 그 옆에 서 있었고 누가 봐도 이 집의 손
지금 다들 부자 집안의 질서에 적응을 다 한 모양이다. 남존여비에 장유유서…중간에 앉아서 이 난장판을 지켜보고 있는 노인네는 이미 습관이 된 모양인지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았다.강유리가 뭔가 말하려던 참에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육시준의 손이 살짝 그녀를 일깨웠다.고개를 돌리니 웃음기 가득한 그의 얼굴과 마주했다. 왜 이러지 싶을 때 육시준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대고 가볍게 말했다.“할아버지가 알아서 하실 테니까, 우리는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자.”“…”육시준의 따가운 기운이 귀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 온몸이 간질간질했다.항상 무슨 일이 생기면 앞서서 해결해 온 강유리이기에 누군가의 뒤에 숨어있는 느낌을 거의 까먹을 뻔했다.육 씨네 가족이랑 같이 지낼때만은 달랐다.육지원이랑 송미연은 조그만 일이 있어도 항상 강유리와 육시준대신에 해결해 주기 때문에 강유리는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이 사랑을 받기만 하면 됐었다.하지만 이건 육 씨네에 있을 때만 한정된 거라는 걸 강유리도 잘 알고 있다.자기 일에 있어서는 그래도 강유리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괜찮아?”육시준은 그녀의 의견을 다시 물어왔다.강유리는 순진한 눈망울로 웃으며 육시준한테 대답했다.“응. 할아버지가 계신다는 걸 까먹었어.”왕 씨네는 방 하나 놓고 정신없이 다투기 시작했다. 이걸 본 강학도는 웃으며 그들을 말렸다.“이런 작은 문제가지고 싸우면 뭐가 돼. 다들 가족인데, 이런걸로 감정 상하면 안 되지.”“네가 손해 본 것도 아니니까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겠지!”그 까탈스러운 중년 여자가 대뇌를 거치지 않고 막 말을 내뱉었다.“왕소윤!”왕순혁이 드디어 소리를 내서 제지했다.하지만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에 위엄함을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어서 더욱더 불만을 털어놓는 여자였다.“맞잖아요! 갑자기 와서 저희 계획을 망쳐버린 게 아니라면 제가 왜 오빠랑 방 하나 가지고 다퉈야 해요?”왕순혁은 경고하는 듯한 눈빛을 날리고 다시 머쓱하게 강학도를 쳐다보았다.
왕소윤의 까칠한 얼굴에는 순간 웃음으로 가득 찼고 연신 고맙다는 인사만 했다. 이 기세를 보면 당장에 강학도를 아버지로 삼을것만 같았다.하지만 이런 왕소윤의 친아버지인 왕순혁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강학도의 의도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부자들만 살 수 있다는 JL빌라는 너무 유혹적이어서 거절하기 어려웠다.그러기에 머뭇거리면서 다시 확인을 해왔다.“JL빌라의 집은 돈만 있다고 해도 사기 어려운데. 언제 샀습니까? 진짜 저희가 가서 살아도 괜찮습니까?”재미있네. 지금 “저희”라고 말한 거야?육시준은 눈썹을 슬쩍 치켜들었다.“당연하죠. 제가 JL빌라에 집이 두 채 있는데 하나는 제 손녀한테 줄 신혼집이고 하나는 시댁네 손녀한테 줄 신혼집입니다. 시댁네 손녀가 저희 고 씨 가족 사람이 된 다음부터 그 집이 비어있었는데, 지금 시댁 네가 들어가면 딱 맞죠.”이 말에 왕소윤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성신영 신혼집을 말하는 거네?그 집은 이미 알고 있는지 오라다. 예전부터 그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왕소윤이 죽어도 싫다고 하는 탓에 가질 못하고 이 촌구석에서 살게 된 것이다. “지금 놀리시는 거에요? 그 집이 우리 조카네 신혼집이라는 걸 제가 모를 줄 알세요? 갑자기 그게 왜 당신 집이 됐는데?”그녀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질문을 해왔다.강학도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모두 한 가족인데. 내 물건, 네 물건이 어디 있어요.”“걔 물건이 왜 당신 거에요? 진짜 이렇게까지 뻔뻔하다니. 남의 신혼집도 제멋대로 안배하고.”강학도는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하게 대답했다.“뻔뻔하다는 말도 아는 사람이 왜 남의 집에 이렇게 눌러살면서 나가지 않는 건가요?”“난…”“자네가 밟고 있는 이 땅, 우리 강 씨네 재산인데. 지금 우리 강 씨네 가족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겠다는데 당신들 눈치도 봐야 되는건가?”“…”강학도는 평소에 엄청 온화한 사람이지만 화만 내면 기세가 엄청났다.소파 중간에 앉아있다고 해서 이 집의 주인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사건의 전개에 당황한 강유리는 떠나가는 트럭을 바라보았다.류 집사님과 문기준은 조용하게 문 앞에 서 있었고 그 옆에는 건장한 경호원 몇 명이 있었다.강유리는 경호원들을 보고 육시준한테 물었다.“네가 경호원 부른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저 사람들이 끝까지 안 갈까 봐.”왕 씨네 한 가족들은 어린애부터 노인까지 모두 뻔뻔하기 그지없어서 무력으로 해결해야 하는 때가 오면 그렇게 하려고 부른 경호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렇게 순순히 갈 줄이야…“할아버지, 대체 저 사람들은 무슨 생각 하는 걸까요? 왜 저희가 돌아와달라고 빌것으로 생각하는 건가요?”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얻어내지 못한 강유리는 강학도한테 물었다.강학도는 잠시 생각하는 척하더니 대답했다.“인터넷에 그런 사람있잖아. 가진 건 쥐뿔도 없지만 자신감만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들.”“…”할아버지가 인터넷서핑을 이렇게 즐겨할 줄은 더욱더 몰랐다.빌라 밖으로 나가는 승용차 안에서 왕기현은 옆에 있는 왕순혁을 보고 못 참고 물었다.“아버지, 이렇게 가면 어떡해요! 집을 이렇게 내주면 저희는 어디 가서 살아요!”왕소윤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그러니까요 아빠. 너무 충동적이잖아요. 식구들도 많은데 호텔이라도 가요?”“소영이 생활비도 입금이 안 됐는데, 호텔에 살면 돈도 많이 나갈 거고.”“인제야 돈이 근심돼? 휘현이랑 해인이 각 방 주겠다며?”“…”다시 말다툼이 붙을 것 같으니 빨리 나와서 말리는 왕순혁이다. “그만해! 꼬락서니라고는. 날마다 이런 시답잖은 일로만 싸우고.”왕순혁의 말에 둘 다 입을 다물었다. 앞으로도 왕순혁한테 빌붙어 살아야 하는데 말을 듣지 않으면 안 된다. “네 매부집가서 살자. 맨날 자기네 집의 위치가 좋다고 자랑하잖아.”왕소윤의 얼굴은 순식간 웃음으로 뒤덮였다.“진짜요? 저희 다 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왕기현은 아직도 염려가 가득한 모양이다.“사람도 많은데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대충 산다고 해도 너무 비좁잖아요! 별장
유강그룹 경영권을 내준 뒤로 성홍주는 마음이 한결 더 편해졌다.더 이상 그룹 업무를 처리해야 할 필요도 없고 능구렁이 같은 이사들과의 기싸움도 사라졌고 진짜 가족이 아닌 사위라는 이유로 항상 강씨 집안 사람들에게 주눅들어 살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이다.게다가 10%이나 지분을 받았으니 앞으로 남은 인생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 이 얼마나 완벽한 삶인가?매일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바둑을 두고 화분을 가꾸는 삶은 너무나 행복했고 심지어 이럴 줄 알았으면 고성그룹 사람들과 손 잡는 선택 같은 거 하지 말걸 그랬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하지만 완벽한 은퇴의 삶을 즐기는 성홍주와 달리 왕소영은 이 모든 게 고역처럼 느껴졌다.온갖 술수를 써가며 겨우 상류사회에 비집고 들어갔다.이제 겨우 부잣집 사모님의 삶을 살아보나 했는데 이렇게 모든 걸 내어주다니.게다가 강유리가 유강그룹을 이어받은 이상 LK그룹의 금전적인 지지를 받을 테니 그녀의 그 얄팍한 자금 지원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니 그녀에게 더 이상 기회 따윈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행복에 겨운 성홍주의 얼굴을 볼 때마다 화가 치밀던 그녀를 완전히 무너트린 건 바로 부모님의 등장이었다.“평생 호강하게 해주겠다며. 이딴 작은 별장에 다들 처박혀 사는 게 호강이야? 이게 단체 기숙사와 뭐가 다르냐고!”왕소영의 외침에 붕 떠 있던 성홍주는 찬물을 확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그래. 그 지분으로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 수야 있겠지. 하지만 집안 가족들까지 먹여살리기엔... 아니, 정확히 말하면 두 집안인가?’“이게 다 당신 가족들이 집으로 들어오면서 이렇게 된 거야 아니야.”성홍주가 짜증스레 대답하자 왕소영은 더 득달같이 달려들었다.“뭐? 이제 와서 네 가족, 내 가족 나누자는 거야? 이게 다 당신이 무능력해서 그렇게 된 거 아니야. 이제 회사까지 빼앗겼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 거야. 뭐 먹고 살 거냐고!”“회사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몰라서 그래? 그 큰 구멍을 뭐로 메꿀 건데? 당신 그 비자금 몇
한편, 성홍주가 원래 살던 집을 되찾은 강유리는 일단 청소업체를 불러 다른 이들이 살던 흔적부터 깔끔하게 지워버렸다.‘그 사이 바뀐 인테리어는 천천히 다시 돌려놓아야겠어.’저녁 식사자리.고개를 푹 숙인 채 밥알을 세고 있는 강유리를 바라보던 강학도가 갈비를 밥 위에 얹어주었다.“얼른 먹고 집으로 가. 내일 출근도 해야 하잖아.”‘쳇, 섭섭하게 내쫓으시긴.’“할아버지, 아무리 생각해도 여긴 너무 외딴 곳인 거 같아요. 할아버지 혼자 여기 계시는 건 마음에 안 놓여요.”하지만 그녀의 말에 강도식은 잠깐 침묵했다.“갑자기 저희랑 같이 사시는 거 불편하실 거라는 거 알아요. 그럼 아버지가 사는 그 별장으로 가시는 게 어때요? 거기가 우리가 예전에 살던 집이잖아요.”강유리의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던 강도식이 피식 웃었다.‘하여간... 하나라도 밑지면 못 사는 성격이라니까.’“성 서방도 새로 들였다는 부인도 탐욕스러운 사람이야. 그 가족들도 마찬가지일 테니 같이 살면 가만히 내버려둬도 문제가 생길 거다. 이 별장만 되찾은 것만 해도 할아버지는 만족이야. 다른 건 알아서 하라고 해.”‘그 별장까지 다시 빼앗아오긴 힘들겠지.’“할아버님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알아서 조치하겠습니다.”육시준의 말에 강도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야. 궁지에 몰린 쥐는 사람을 물기 마련이지.”“저희 손만 안 쓰면 되는 거 아닙니까?”육시준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얼마 전 성홍주는 세마에게 위약금을 지급하기 위해 LK은행에게서 대출을 받았었다. 이 사안을 주도한 이가 바로 육경서, 당연하게도 이 대출은 그저 없는 일처럼 되어버렸다.하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 육경서와 성신영은 법적인 부부라는 걸 제외하고 실질적인 왕래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지금 LK그룹에서 대출 상환으로 육경서에게 압박을 가한다면...‘자기 장인어른에게 어떻게 나오려나...’육시준의 생각을 눈치챈 강유리의 입가에도 묘한 미소가 실렸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강학도는 오히려 마음이 착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