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위험하다.’강유리의 머릿속에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웃음기가 서린 육시준의 눈동자를 보아하니 이미 뭔가 눈치챘음에도 일부러 묻는 게 분명한데 도대체 어떻게 넘어가면 좋을까 난처했다.“큼, 뭐 못 알려줄 거야 없지.”강유리가 최대한 호탕하게 웃어보였다.“그냥 우리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지 뭐. 우리가 사이좋게 잘 지내나... 뭐 그런 질문?”“그래서 어떻게 대답...”“윽.”이때 강유리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어딘가 고통스러워 보이는 표정에 육시준이 당황하며 물었다.“왜 그래?”일부러 허리를 만지작거리던 강유리는 일부러 더 오버스럽게 물었다.“나 어제... 술 먹고 시비라도 붙었나? 왜 이렇게 삭신이 쑤시지?”“...”“허벅지는 또 왜 이렇게 아파. 나 혼자 집에 왔었어?”강유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커다랗게 떠보였다.“아니, 당신이 안 온 건 그렇다 치고 기준 씨는?”어이없다는 듯 웃던 육시준이 물었다.“병원이라도 가볼래?”“아니, 그 정도는 아니야.”“이리 와봐.”너무나 자연스러운 말이었지만 강유리는 급격히 경계하기 시작했다.“왜 나더러 가라고 그래?”이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육시준은 너무나 쉽게 그녀를 번쩍 안아 자신의 허벅지에 앉혔다.그리고 그의 큰 손으로 강유리의 허리를 어루만졌다.잔뜩 긴장한 채 뻣뻣하게 앉아있던 강유리는 한참 뒤에야 육시준이 마사지를 해주고 있음을 인지했다.“힘 빼. 어때? 지금은 좀 괜찮아?”그제야 안심한 강유리는 자연스레 육시준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윽.”육시준의 마사지는 충분히 편했지만 가끔씩 그녀가 간지러움을 타는 부분을 건드리는 통에 이상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조금 어색해졌다.“음, 미안.”“아, 괜찮아. 내가 간지러움을 너무 많이 타서.”“아니, 그거 말고. 어젯밤에 내가 너무... 몰아붙인 거 같아서.”얼굴을 파묻은 채 한참을 가만히 있던 강유리가 대답했다.“괜찮아. 뭐 그런 걸로 사과까지 해. 그래도 다음부터는 그러지
어차피 다 밝혀진 거 강유리는 연기 같은 걸 집어치우기로 결정했다.육시준의 목을 끌어안은 그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그럼 어젯밤에 했던 대답... 그 대답도 그대로인 거지?”“그럼.”시원한 대답에 만족스러워진 강유리는 방금 전까지 여기저기 쑤셔대는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육시준의 입술에 살짝 흔적을 남긴 그녀가 폴짝 뛰어내려 안방으로 향했다.저녁 식사 후.육시준은 평소처럼 서재로 들어가 낮에 미처 처리하지 못한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그런데 서재에 앉은 지 2분 정도 지났을까? 누군가 서재 문을 똑똑 두드렸다.“들어와.”문틈 사이로 익숙한 실루엣이 보이고 강유리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저기요, 옆에 자리 있나요?”그런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육시준이 멈칫했다.평소에 집에선 항상 편한 차림으로 있던 강유리가 오늘은 흰 원피스에 살짝 메이크업까지 한 모습이었으니까.화려한 이목구비에 곁들인 청순한 메이크업이 그녀의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자리 비었데요.” 어느새 서재로 들어온 강유리가 사뿐사뿐 걸음을 옮겼다.“아, 오늘 너무 늦게 왔는지 도서관에 여기 말고 빈 자리가 없네요. 앉아도 괜찮죠?”‘연애하는 것처럼 살자더니.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는 것이 로망이었나?’육시준이 픽 웃었다.“괜찮습니다. 여긴 저만 앉는 자리라 앞으로도 언제든지 오세요.”서재를 둘러보던 강유리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솔직히 저도 이런 공간이 있긴 하거든요? 그런데 이젠 좀 질려버렸어요.”“그럴 리가요. 가장 아늑한 공간인 걸로 알고 있는데.”“내일부터 확장 공사라도 할까 봐요.”“그럼 제가 너무 시끄러워질 것 같은데요.”“...”어색한 침묵 끝에 강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NG! NG! 우리 지금 첫눈에 반한 연기 중이거든? 그런데 왜 대화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방에 대한 얘기를 먼저 꺼낸 건 너잖아?”육시준이 미간을 찌푸렸다.“아니, 거기서 포인트를 어떻게 그렇게 잡아? 왜 질렸는지 이유를 물어야지. 그래야 더
‘화... 화상 회의’강유리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연애하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어 집에서 화장을 하는 오버까지 했는데 이런 상황이 벌어지다니.“하하하하!”잠시 후, 방으로 돌아온 강유리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신주리의 웃음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주리야, 그만 웃자. 괜찮아. 너 알렉스 앞에서도 온갖 추태 다 부렸었잖아.”도희의 목소리도 들려왔다.“그래. 그런데... 추태를 부리는 방식도 너무 다양해서 탈이다.”강유리가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갑자기 연애니 뭐니 해서 뭘 어떻게 하려나 했더니. 기껏 생각해 낸 게 집에서 로코 찍으시는 거셨어요? 아, 귀엽다니까. 하여간.”“그래, 칭찬 고맙다.”“됐고. 어울리지도 않는 짓 그만하고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그냥 일이나 하면서 살아. 새 작품 언제 출시할 거야? 나 빨리 돈 벌고 싶어.”“지금 저 상황에서 일이 머리에 들어오겠어?”신주리가 짐짓 도희를 꾸짖었다.“됐어. 연애 그깟거 배워봤자 별 쓸모도 없어. 너, 사랑은 변해도 다이아몬드는 영원한 거 알지? 정신 똑바로 차려.”“육시준 대표님과 하는 연애는 뭔가 다를 수도 있잖아.”“...”대화를 한동안 이어간 뒤에야 소안영의 부재를 인지한 강유리가 물었다.“안영이는? 주태규랑은 뭐 어떻게 돼가고 있는 거야? 주태규 정말 강남연우에 취직이라도 했어?”그녀의 질문에 신주리가 대답했다.“그건 잘 모르겠고 어젯밤에 꽤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뭔데? 뭔데?”강유리가 눈을 반짝였다.신주리의 입에서 흘러나온 어젯밤의 후속 스토리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강유리가 자리를 뜬 뒤에도 소안영에게 들러붙던 고우신에게 욕이라도 퍼부어야 하던 그때, 주태규가 갑자기 나타나자 방금 전까지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을 짓던 사람이 갑자기 고우신의 품에 안겼다는 것이다.“헐, 독하다, 독해...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주태규가 그거 보고 완전 눈 돌아가선 고우신이랑 치고 받고 난리났었지
“아니, 왜?”이에 도희는 알렉스가 찾은 정보를 말해 주었다.얼마 전 소안영이 주태규의 뒷조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그가 레이싱 선수라는 꿈을 포기한 것이 단순히 가족들의 반대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고성그룹 고정철은 당연히 자기 아들이 회사를 물려받길 바랐고 그러기 위해선 고우신이 아예 레이싱계에 뼈를 묻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물심양면으로 고우신의 레이싱 커리어를 응원해 주었다.그 와중에 고우신과 막상막하의 실력을 가진 주태규가 눈에 거슬린 고정철은 그를 은퇴시키기 위해 주성 그룹에 압박까지 가했던 것이다...“헐, 뭐 이런 막장 스토리가 다 있냐? 두 사람 친구 아니었어?”신주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뭐 물론 본인들은 이 일을 전혀 모르고 있지.”도희가 한마디 덧붙였다.“어쩐지. 안영이는 주태규가 이렇게라도 복수를 하길 바랐던 걸지도?”“가만히 있던 고우신 씨만 당했구만.”“솔직히 억울할 것도 없어. 그렇게 멍청하니까 여기저기 이용이나 당하고 다니는 거지.”도희가 혀를 찼다.“성신영이 자살 시도를 했단다. 어제 그거 우리한테 따지려고 피어싱까지 찾아온 거였어. 유리야 어제 잔뜩 취해서 기억 못하겠지만.”“큼.”도희의 말에 강유리가 어색하게 기침을 날렸다.‘사실 어제 나 하나도 안 취했어. 오히려 너무 또렷하게 기억이 나서 문제지...’“어쨌든 결론적으론 안영이가 유리 대신 사태를 해결해 준 거나 다름없으니까 육시준 대표도 이번 일로 안영이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을걸? 주리 너도 남자친구한테 우리 안영이 그렇게 나쁜 애 아니라고 설명 좀 잘 해줘.”“당연하지. 내가 내 욕하는 건 참아도 친구 욕하는 건 또 못 참지.”무의식적으로 대답한 신주리가 뭔가 이상한 점을 의식하곤 바로 반박했다.“아, 그리고 남자친구라니.”“남자친구를 남자친구라고 그러지 그럼 남편이라고 하냐?”이에 잠깐 침묵하던 신주리가 대답했다.“그래, 솔직히 말해서 지금 우리 사이...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
잠깐 망설이던 강유리가 물었다.“그게 성신영 말이야... 고정남 딸이 맞긴 한 걸까?”“하, 참나. 꾸물대더니 묻는 게 겨우 그거야?”소안영이 코웃음을 쳤다.“당연히 아니지. 정말 친딸이었으면 아무리 성신영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이렇게 차갑게 내쳤겠어? 이젠 성홍주도 성신영을 구해 주긴 힘들 것 같고... 그냥 앞으로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 여기저기 눈치 보지 말고.”“그럼 고정남의 연인이었다는 그 여자에 대해서 조사해 본 적 있어?”“내가 그걸 왜 알아봐? 주태규랑 상관도 없는 일...”이때 잠깐 멈칫하던 소안영이 어색하게 말을 바꾸었다.“아, 그러니까 내 말은 딱히 내가 관심없는 일이라고.”평소라면 허점을 드러낸 소안영을 끈질기게 놀려댔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럴 겨를이 없는 강유리가 말을 이어갔다.“솔직히 말하면... 난 그 여자가 우리 엄마랑 상관이 있을 것 같아.”쿵!뭔가 떨어트린 듯한 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소안영의 목소리가 귀통을 때렸다.“뭐? 왜 그런 생각을 해? 증거라도 찾았어? 뭔데.”“증거 같은 거 없어. 그냥 감이랄까?”“이런...”입 주변까지 나온 욕을 억지로 삼킨 소안영이 질문을 이어갔다.“그럼 왜 갑자기 그런 감이 들었는데? 계기가 있을 거 아니야.”이에 강유리는 고정남과 함께 식사를 했을 때의 모습과 얼마 전 릴리에게 조사를 부탁했지만 결국 알아내는 것에 실패했던 일까지 모든 걸 털어놓았다.“이렇게까지 정보가 막혀있다는 건 이모가 이 일을 일부러 숨겼다고밖에 볼 수 없어.”“뭐 좀 이상하긴 하네. 그런데 날 너무 과대평가 한 거 아니야? 네 동생도 못 알아낸 걸 내가 알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차라리 남편한테 부탁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일 것 같은데.”“이런 뒷조사는 네가 더 잘할 것 같아서.”‘뭐야, 칭찬인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그리고 당분간은 남편 얼굴 보고 싶지 않아.”“왜? 어제 늦게 들어갔다고 싸웠어?”순수한 소안영의 질문에 강유리의 볼이 다시 화끈 달아
‘아니지. 내가 왜 가출을 해? 난 이미 이 호화로운 저택에 익숙해졌다고.’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강유리는 어느새 스르륵 잠이 들고 말았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누군가 몸을 꽁꽁 감고 있던 이불이 사라지고 그녀는 자연스레 탄탄한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었다.익숙한 시원한 바디워시 향이 강유리의 마음을 더 편학 만들어주었다.그의 허리를 끌어안은 강유리가 나지막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육시준...”“응.”가볍게 대답한 육시준이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나 때문에 깬 거야?”다시 잠이 든 건가 싶을 정도로 오랜 침묵 끝에 강유리가 입을 열었다.“다음에 일 때문에 바쁘면 나 서재로 부르지 마.”아직도 방금 전의 해프닝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강유리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미안, 내가 무심했네.”솔직히 처음엔 회의 중이라 말하려고 했으나 야심차게 꾸민 그녀의 모습에 홀려 하려던 말조차 잊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너무 쪽팔리잖아. 앞으로 사람들 얼굴 어떻게 봐.”육시준이 가벼운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했다.“아직 카메라는 켜기 전이라 네 얼굴은 못 봤을 거야.”“그래도! 내 목소리는 들었을 거 아니야.”“해외 바이어들이라 한국어는 못 알아들을 걸?”“...”고개를 번쩍 든 강유리의 두 눈이 반짝였다.“정말? 못 알아듣는 거 맞아?”“그럼.”‘뭐 임 비서는 들었겠지만.’마지막 한 마디는 생략한 육시준이었지만 유능한 비서인 임강준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이 사실을 유출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딱히 걱정이 되진 않았다.육시준의 단호한 말투에 강유리는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진작 말하지! 내내 우울했었잖아.”“말하려고 했는데 네가 도망쳐 버렸잖아.”“그럼 따라서 나오면 되지!”“아예 방문까지 걸어잠궜던데?”“...”‘큼, 그건 내가 잘못하긴 했지.’강유리의 작은 주먹이 육시준의 단단한 가슴을 콩콩 두드렸다.“그럼 내일 밤엔 당신이 내 서재로 와. 같이 일하자.”“그래.”육시준이 그녀의
한편, 자살 시동까지 벌였음에도 고씨 일가 사람들 중 그녀의 병문안을 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그나마 그녀를 측은하게 여기는 고우신마저 경찰서에 들어간 상태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그리고 그런 그녀를 찾아온 건 성홍주였다.그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온 왕소영이 성신영을 와락 끌어안았다.“불쌍한 내 딸... 이게 다 엄마 탓이야. 애초에 네 아빠 그 황당한 제안에 응하는 게 아니었어. 널 그 불구덩이에 집어넣는 게 아니었는데...”익숙한 부모님의 얼굴을 보니 서러움이 밀려온 성신영이 울먹이며 말했다.“괜찮아요, 엄마. 저 괜찮잖아요.”“괜찮긴 뭐가 괜찮아! 나쁜 자식들. 너 이용해 먹을 때는 언제고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널 버릴 수 있어. 엄마가 말했잖아. 그 사람들한테서 뭐가 얻을 게 있다고 기어코 거길 들어가!”그리고 고개를 돌린 왕소영의 표정이 표독스럽게 변했다.“여보. 우리 그냥 신영이 다시 집으로 데려가자.”“엄마, 제 걱정 많이 해주시는 건 알겠는데... 전 고씨 집안 사람이에요. 발표회도 엎어지고 상황이 좋게 흘러가는 건 아니지만 제 몸에 흐르는 건 분명 고씨 집안 피라고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두 분을 따라가요.”하지만 말과 달리 성신영의 속셈은 다른 곳에 있었다.뭐 하나 제대로 해본 거 없이 이렇게 쫓겨나자니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누가 뭐래도 난 고씨 집안 사람이야. 이 신분만 지키고 있으면 언젠가 다시 판을 뒤엎을 기회를 찾을 수 있어... 이게 다 강유리... 강유리 그 계집애 때문이야. 지금이야 나한테 실망해서 그런다지만 물보다 진한 게 피라고 했어. 결국 날 다시 원하게 될 테고 고성그룹의 힘이라면 지금 이 상황쯤은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어. 강유리, 두고 봐. 절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성신영의 말에 흠칫하던 왕소영이 말없이 성홍주를 돌아보았다.아직 신분에 대한 진실도, 이 사태의 심각성도 전혀 모르고 있는 딸이 안쓰럽게 느껴졌다.“신영아.”이때 가만히 있던 성홍주가 입을 열었다
왠지 불안한 예감이 엄습하고...역시나 성홍주는 말을 이어갔다.“우리 집안 사정에 고성그룹 사람들에게 줄을 댈 수 있을 거라 생각해?”“그럼요.”성신영이 애써 미소를 지었다.“전 고정남 대표 딸이고 두 분은 절 지금까지 키워주신 분들이잖아요.”“그게 아니라... 강유리가 너무 타이트하게 압박하는 바람에... 널 이용했던 거야.”“그러게 내가 그러지 말자고 했잖아. 아무리 급해도 자식을 이용하진 말자고! 그런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선... 나도 미쳤었지... 왜 당신 제안을 받아들여선. 지금 애 꼴을 봐. 어떻게 할 거야!”왕소영의 질타에 성홍주는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후우...”이때 성신영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니에요. 괜찮아요. 두 분께서 절 지금까지 키워주신 은혜가 있는데 마지막으로 두 분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전 기꺼이 이용당할 수 있어요.”정말 이해를 못한 건지 아니면 사실을 부정하는 건지 여전히 맥락을 짚지 못한 성신영을 바라보던 성홍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러니까 내 말은... 넌 우리 딸이야. 고정철 대표가 널 가짜 딸로 위장하자고 제안했던 거야...”“그만하세요!”성신영이 목소리를 높였다.애써 침착한 척하던 눈동자 역시 빨갛게 달아올랐다.“가짜 딸로 위장한다는 게 말이 돼요? 아버지가 바보도 아니고 그런 거짓말에 속을 리가 없잖아요! 그리고 친자검사도 했는데...”“신영아, 일단 진정 좀 해.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거 알아. 하지만 너에 대한 자료와 친자검사까지 전부 고정철 대표가 조작한 거야. 그리고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고정남 대표 역시... 애초에 널 딸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아.”‘그저 신영이를 욕받이로 사용한 것뿐이겠지. 그리고 이제 이용가치를 다했으니 매정하게 버린 것뿐이고.’“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그녀를 바라보던 고정남의 표정을 생각하며 성신영은 고개를 저었다.“우신 오빠가... 우신 오빠가 분명 그랬단 말이에요. 내가 동생이 맞다고. 날 처음 보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