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방금 좋아했던 거 아니야?”“…”뒤에 대화는 귀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누군가 이미 다른 사람한테 전화를 걸어 이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편집장님, 빅뉴스에요! 라이브 방송 꼭 지켜보세요. 진짜 대박이에요!”성신영은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 정신을 바짝 차렸다.고개를 돌려 스크린을 쳐다보니 몇 달 내내 퍼질까 제일 두려워했던 사진이 걸려있었다.이 일을 다 까먹고 지냈는데 인제야 눈앞에 이렇게 나타나다니…“꺼! 빨리 꺼! 이거 누가 올린 거야!”그녀는 일어나 미친 듯이 모니터를 끄려고 했다. “보지 마! 경호원, 빨리 내쫓아! 모두 모조리 내쫓으라고!”찰칵거리는 셔터 소리는 이 모든 걸 이미 기록했다.제일 먼저 반응한 경호원은 성신영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녀를 경호하고 있던 경호원이다. 그는 신속하게 성신영 앞에 가로막아 사람들이 밀쳐오는 걸 막고 있었다.하지만 이렇게 소중한 기회에 그녀를 가만히 내둘 리가 없는 기자들이었다.그들은 재빨리 성신영 앞으로 밀려왔다.“성신영 씨, 사진 속의 여자주인공은 본인이십니까?’“목소리의 주인공은 성신영 씨 맞죠? 임천강 씨의 첫사랑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그건 누굽니까?”“첫사랑이 부자라고 하시던데 임천강 씨가 자기 첫사랑한테 빌붙어 산다는 말입니까?”“사실을 알고 계시면서 헤어지지 않은 이유는 뭐죠?”“성신영 씨가 그들 사이에 개입한 겁니까?”“성신영 씨, 이 사진은 누가 찍은 겁니까?”“…”흥분한 기자들은 성신영을 고신영이라고 부르는 것도 까먹은 채 말로 그녀의 과거를 계속 캐묻는 중이었다.성신영은 손으로 귀를 막고 끊임없이 뒷걸음질 치며 입으로는 다 가짜 사진이라며 중얼거렸다. 자기가 아니라고, 목소리나 사진이나 모두 본인이 아니라고. 하지만 갑자기 뭔가가 생각났다.이 사진이 왜 지금 이 시점에 폭로된 거지?강유리 짓이다.그녀는 눈빛으로 인파를 뚫고 강유리를 찾았다. 마침 강유리가 조용히 객석을 떠나려던 참이었다.성
형은 이상한 포인트에만 관심이 있네!이걸 형수님이 또 잡아낸다고?육시준은 입을 꾹 다문 채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고 강유리는 뒤에서 웃으면서 싹싹한 말투로 그를 달래고 있었다.어이가 없는 육경서는 참 이상한 커플이라며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발표회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추연화의 작품이 소개되기도 전이지만 이미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고 온통 성신영의 사생활에 이목이 쏠렸다.VIP휴게실.고정남은 화를 내면서 책상을 내리치고 있었다.“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사진은 누가 넣은 거고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거냐고!”담당자는 고개를 숙인 채 욕만 먹고 있었다.“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좀 이상했던 점이라면 방금 영상을 끄려고 해도 꺼지지 않고 코드를 뽑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왜 끄지 못하는데? 귀신이라도 있다는 거야?! 정말 쓸모가 하나도 없는 양반들…”갑자기 고정남이 말을 멈췄다.전에 개인병원에서 강유리 유전자 검사하려고 했을 때도 이상한 상황이 생겼잖아?정전됐다, 인터넷이 끊겼다…전에 고장이 났었던 적이 없던 기계도 갑자기 고장이 생기고.이 모든 일을 생각해 보면 누군가가 일부러 한 짓 같기도 하다.“형님 근심 마십시오. 제가 꼭 진범을 밝혀내고 말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신영이 상황으로 홍보대사는 어려울 것같습니다. 그쪽이랑 합작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니까…”고정철은 예의 바른 말투로 말했지만 그 내용은 냉정했다.모두 일어난 일에 놀라워하고 있는데 고정철만 홍보대사가 취소되는 걸 근심하고 있다.고정남은 그를 노려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너 고성 그룹에만 있었더니 바보가 된 거 아니야?”“네?”“뭐가 급한지도 몰라? 지금 신영이가 이 모양인데 홍보대사? 유강그룹한테 이 합작 취소한다고 말해! 우리 고 씨는 걔네랑 영원히 같이 일 안 해!”“…”고정철은 이 말을 듣고 안색이 퍼렇게 변했다. 추연화가 같이 일하려는 그 우승자는 고 씨네 사람이다. 고정철은 이번 합작을 통해 추연화와 고 씨네의 합작을 성사하려고 했
Seema 새 제품 발표회에 주얼리업계와 패션업계의 셀럽들이 많이 모였을 뿐만 아니라 공식 언론사들도 많이 참석했다.알렉스도 처음엔 진행상황을 지켜보다 육 씨네 디자이너가 오니 바로 누군가한테 자기 대신 지켜봐 달라 부탁하고 혼자 노트북을 들고 구석으로 가서 뭔가 하고 있었다.모든 일을 끝내고 한가해진 도희가 알렉스 곁으로 다가갔다.“너 여기서 혼자 뭐 하고 있는 거야? 곧 네 여신님이 무대에 오르시는데. 유리도 아직 안 왔으니 같이 보러 갈래?”알렉스는 노트북을 닫고 대답했다.“유리는 근심하지 마. 곧 내려올 거니까. 우리 빨리 여신님 보러 가자.”“???”착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유리가 나타났다,도희는 강유리 쪽으로 갈지 고민하다 알렉스랑 같이 움직이면 너무 티가 날까 봐 주저하던 사이에 강유리 옆에 서 있는 육경서를 발견했다. 이렇다면 굳이 우리들이 강유리한테 찾아갈 필요가 없어진다.강유리와 육경서의 등장을 포착하려고 셔터들이 반짝였다.마침 이때 신주리가 마지막 작품을 가지고 등장했다.여인은 빨간 신부 복장에 은하수처럼 빛났다. 긴 머리칼은 단아하게 매여지고 머리 위의 장식품은 걸음걸이에 따라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공손히 올린 두 손에는 각기 정교한 액세서리로 장식되어 있었다.화려하고 우아했다.그녀의 등장과 함께 조용해진 현장이다.그녀의 옷차림으로 인해 모두가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 듯한 느낌이다. 신주리가 무대앞쪽으로 오니 정신 차린 기자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다.“이거 Seema 작품 아니야? 왜 이것도 중식 액세서리지? 너무 우연 아니야?”“유강그룹이 준 주제인 건가?”“에이 설마! Seema정도의 디자이너가 평범한 주얼리회사 말을 듣는다고?”“그게 뭐야. Seema가 추연화 아이디어를 카피했다는 거야?”“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사회자의 칭찬이 끝나고 나서 디자이너를 초대해 디자인아이디어에 대해 말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수군대는 소리는 사라지고 모두 숨을 죽이고 무대를 향해 보고있었다.한 번
도희는 쿨하게 인정했다.“일단 신주리 씨가 워낙 일을 사랑하기도 하고 알렉스가 신주리 씨의 팬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주리 씨의 분위기가 저희 작품과 굉장히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얼마 전 신주리 씨는 스캔들에 휩싸였었죠. 그것과도 연관이 있는 건가요?”“...”기자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도희는 침묵으로 대응했다.분명 귀여운 외모임에도 순간 내비치는 서늘한 눈빛에 기자들은 괜히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순식간에 무거워진 분위기를 푼 건 바로 신주리였다.“스캔들은 제 개인 프라이버시입니다. 오늘의 발표회와는 무관하니 기자 여러분들도 저 신주리가 아닌 작품 자체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하지만 그녀의 말에 기자들은 오히려 눈을 반짝였다.해명을 하라고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지 않다니. 그렇다는 건 설마...기자들의 카메라 렌즈가 알게 모르게 vip석 첫줄에 앉은 육경서에게로 향했다.기자회견 주제가 왠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자 알렉스가 입을 열었다.“저는 여러분들이 저희 신작 컨셉이 왜 미리 발표되었는지 궁금할 줄 알았는데요.”!!특종만을 원하는 기자들이 물론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왠지 강유리의 포스에 눌려 말을 못 꺼내고 있었는데 이렇게 먼저 물꼬를 틀 줄이야.그리고 애초에 이렇게 놀라운 작품에 ‘표절’이라는 단어를 들이미는 자체가 어불성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네, 먼저 말씀을 꺼내주시니 묻겠습니다. 추연화 씨의 신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기자의 질문에 알렉스가 대답했다.“조잡한 모방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조잡한 모방.일말의 포장도 없는 직격타는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기자들이 타이틀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고 네티즌들의 반응 역시 엄청났다.“역시 최고의 디자이너답네. 건방진데 멋져...”“세계적인 디자이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국내 시장에 처음으로 진출하는 건데 이렇게 나와도 괜찮은 거야?”“뭐야. 추연화 쪽에서 먼저 컨셉을 발표한 거 아니었어? 뭐 방귀 뀐 놈이 성낸다
“...”알렉스를 흘겨보던 도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애초에 기자회견장에 알렉스를 데리고 가는 게 아니었는데 싶었다.‘저 입을 꿰매버리든가 해야지.’“지금 당신 때문에 우리 입장이 완전 불리해진 거 알기나 해?”솔직히 뭐가 뭔지 잘 모르겠는 알렉스였지만 일단 와이프가 화난 모습이니 최대한 성의있는 표정을 지어보였다.“그럼 내가 어떻게 할까? 내가 저 댓글들 다 지워버릴까?”‘하이고, 말은 쉽지.’하지만 어렵긴 해도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으므로 도희가 강유리를 돌아보았다.“어떻게 생각해?”반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여유로운 표정의 강유리는 손에 든 펜을 빙글빙글 돌리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댓글들 좀 봐. 작품에 대한 얘기는 하나도 없고 추연화가 선배인데 예의가 없다는둥, 해외 기반 브랜드가 왜 이렇게 건방지냐는둥 얘기뿐이야.”“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합심해서 세마라는 외부인을 배척하고 싶은 거지.”이렇게까지 부정적인 여론이 압도적인 건 분명 누군가 의도한 것이라고 강유리는 생각했다.그리고 포털 사이트를 다시 확인한 도희는 성신영에 대한 추문과 영상이 전부 내려갔음을 발견했다.“저쪽에서 일부러 이쪽으로 여론을 몰고 갔다는 뜻이야?”강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고정남이 아직 성신영을 완전히 버린 건 아닌 모양이야.”‘지키는 건 좋은데 적어도 날 방패막으로 쓰진 말았어야지.’이때 뭔가 떠올린 강유리는 부리나케 육시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끼어들지 마!]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왠지 육시준이 고정남의 이번 행동만큼은 꽤 응원하는 것 같은 느낌은 받은 강유리였다.‘성신영이 그쪽 집안에서 하루빨리 자리잡길 바라는 눈치란 말이야. 도대체 왜?’마침 육시준도 휴대폰을 보고 있었는지 바로 답장이 도착했다.[? 무슨 소리야?]휴대폰을 내려놓은 강유리가 미간 사이를 꾹꾹 눌렀다.‘아, 아직 삐진 상태였지.’강유리의 표정 변화를 눈치챈 알렉스는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나, 나도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 솔직히 조잡한
회의실에 덩그러니 남겨진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도희가 조심스레 물었다.“쟤... 설마 고정남 대표 암살하러 간 건 아니겠지?”“그건 아닐 거야. 아까 훔쳐봤는데 남편한테 문자 보내던데?”신주리가 어깨를 으쓱했다.“그런데 왜 남편이 장애물이라는 거야?”“뭐 기껏해야 사랑싸움이나 하셨겠지....한편, LK그룹 회의실.세마 불매운동으로까지 불거진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긴급 회의가 가열차게 진행대던 그때.휴대폰을 들여다 보던 육시준이 문득 입을 열었다.“일단 세마 스튜디오의 반응부터 지켜보죠.”“???”회의실 테이블을 채운 홍보팀 직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LK그룹과 세마가 콜라보를 앞두고 있는 지금, 세마 스튜디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LK를 향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아침 일찍 불러 회의를 할 때는 언제고 솔루션 몇 가지를 제시한 지금, 갑자기 기다리자니.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건가 싶었다.그리고 휴대폰 벨소리까지 울리고 의아함 가득한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육시준은 여유롭게 육시준은 회의실을 나섰다.해명 한마디 없이 대표가 사라지니 직원들의 시선은 그의 비서인 임강준이게로 향했다.하지만 임강준 역시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그래도 겉으로는 짐짓 담담한 척 입을 열었다.“대표님 말씀대로 일단 세마 스튜디오의 반응에 따라 협조하는 걸로 하죠.”“누구와 연락해야 하죠? 세마 스튜디오는 워낙 신비주의라...”“유강 엔터 측 직원들에게 컨택하면 될 겁니다.”같은 시각, 사무실로 들어선 육시준이 넥타이를 풀어헤쳤다.“여보?”수화기 저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육시준의 손이 살짝 떨려왔다.“뭔데.”“저녁에 뭐 먹고 싶어? 내가 해줄... 아니, 내가 사줄게.”강유리의 달콤한 목소리에도 육시준의 반응은 꽤 차가웠다.“나 야근할 거야.”“괜찮아. 내가 기다리면 되지 뭐. 아니다. 그냥 내가 지금 회사로 갈까?”강유리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청하니 육시준의 목소리 역시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
강유리의 말에 육시준은 잠깐 침묵을 유지했다.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가 막혀서였다.‘내가 정말 제 명에 못 살지...’깊은 한숨을 내쉰 육시준이 물었다.“내가 개입 안 하면 네 힘으로 해결할 순 있고?”“당연하지.”잠시 후 통화를 마친 육시준이 임강준을 호출했다.“홍보팀한테 이번 일에 간섭하지 말라고 전해요. 세마 스튜디와의 콜라보는 계속 추진하고요.”“예?”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임강준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오랫동안 육시준의 곁을 지키며 다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이 사람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반응은 그의 예상을 아득히 넘어선 것이었다.“왜요? 다들 이 일 말고 할거 없나 봐요? 그렇게 한가한가? 스타디움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죠? 부동산 프로젝트 진전은요?”“큼, 바로 전달하겠습니다.”일 폭탄이 쏟아질 것만 같은 예감에 깔끔하게 물러선 임강준은 도망치 듯 사무실을 나섰다.‘보나마나 사모님이 간섭하지 말라고 하신 거겠지. 하여간... 팔불출.’그리고 임강준은 바로 홍보팀 팀장에게 연락했다.“네, 세마 스튜디오아의 콜라보만 추진하시고... 유강엔터 측과는 굳이 연락할 필요 없으실 것 같습니다.”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던 임강준은 최대한 돌려돌려 표현해보았다.“아, 네. 사모님께서 최대한 조용히 해결하길 바라시는 거죠?”역시 오랜 회사생활로 잔뼈가 굵은 홍보팀 팀장 역시 바로 그의 뜻을 간파했다....한편, 통화를 마친 강유리는 뭔가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혔다.‘뭐지? 왠지 더 화가 난 것 같단 말이야. 내 요구가 그렇게 과분한 건가?’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강유리는 다시 회의실로 돌아왔다.그 사이에 알렉스는 빠르게 이미 삭제된 영상을 다시 업로드한 상태였지만 도희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고성그룹의 개입이 있어서인지 부정적인 댓글을 삭제하는 것에 꽤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쏠린 지금 추연화가 SNS에 글을 업로드했다.[창작은 자유입니다
추연화가 올린 글을 자세히 살펴보던 기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긴 하네요. 솔직히 아티스트들 사이에 표절이라는 건 꽤 민감한 문제잖아요. 이렇게까지 너그럽게 나오는 게 좀 수상하긴 하네요. 그럼, 이젠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글쎄요.”강유리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세마에 대한 악플이 한국에서 당장 나가라는 수준에 이르렀을 무렵.세마 스튜디오 역시 공식 입장문을 발표했다.[창작은 자유라는 말, 저희 측도 동의합니다만. 다른 아티스트의 심혈이 담긴 아이디어를 훔치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던 것은 결코 이 일을 그냥 넘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번 사태 끝까지 파고들고 잘잘못을 따져 모두가 인정할만한 결론을 보여드릴 예정이니 진실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세마 스튜디오의 당당한 입장이 발표되자 무분별한 악플 공격에 괜히 주눅이 들었던 팬들 역시 조금씩 응원의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그래. 이번 기회에 세마에게 불의를 못 참는 다혈질 이미지를 입혀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이런저런 일을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 10시.시간을 확인한 강유리가 중얼거렸다.“저녁은 내가 사기로 했는데 같이 먹을 수나 있으려나...”사무실을 나선 강유리가 임강준에게 문자를 보냈다.[대표님 퇴근하셨나요?]...몇 분이 흘러도 묵묵부답.“흠, 아직 퇴근 전이란 말이지?”결론을 얻은 강유리는 바로 LK그룹으로 향했다.겨울밤의 연기에 몽롱한 거리를 길가의 가로등이 비추었다.그런데 당당하게 건물로 들어서는 그녀를 인포 직원이 막아섰다.그 동안은 육시준이 직접 그녀를 에스코트한데다 신입 직원이라 아직 그녀의 얼굴을 모르는 모양이었다.“죄송합니다. 대표님과 만나시려면 미리 예약을 하셔야 합니다.”“아, 대표님한테 직접 전화 좀 해주실래요?”하지만 직원은 여전히 사무적인 미소로 응했다.“지금 회의 중이시라서요. 그리고 매일 육시준 대표님을 무작정 찾아오시는 손님들이 꽤 됩니다. 그때마다 대표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