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리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다리를 꼬고 소파에 앉아 쿠션 하나 집어 들고는 이미 들을 준비를 끝마쳤다.육시준은 곧이어 고정남 왕년의 업적을 모두 알려주었다.강유리는 턱을 어루만지면서 생각에 잠겼다.“이렇게 들어보면 확실히 소문은 소문이네. 성신영이 불쌍해 보이네.”육시준은 도리어 무덤덤하게 말했다.“왕관을 쓰려면 무게를 견딜 줄도 알아야지. 걔가 원한 거잖아.”강유리는 그의 태도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너 대체 걔 편을 드는 거야 안 드는 거야?”“내가 왜 걔 편을 드는데?”“너 방금 나한테 걔가 혼외 딸이 아니라며 시정했잖아.”“그건 객관적인 사실이니까.”“…”강유리는 인정한다는 듯 눈썹을 약간 치켜올렸다.확실히 객관 사실이기는 하니까.하지만 육시준은 흥미가 없는 사실에 객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도 그녀가 싫어하는 사람한테…“네 생각은 어떤데?” 육시준은 도리어 강유리를 물었다.“무슨 생각?”“내 말에 동의하는 거야?”강유리는 끄덕거렸다.“동의해. 들어보면 확실히 고 씨네 혼외 딸은 아니잖아. 모든 것이 고정남의 우유부단함 때문에 일어난 일이고.”“맞아. 하지만 고 씨네는 자기네들 체면 때문에 자기 잘못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지.”“그래서 그저 운수 나쁜 딸더러 이런 누명을 덮으라는 거야?”강유리는 풉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표정은 약간의 혐오가 들어갔다.“고정남의 딸로 태어나는 건 진짜 별로네. 그런데 그 여자도 진짜 바보 아니야? 사랑 때문에 눈이 멀어서 뭐가 맞는 건지 모르잖아.”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집안을 맞서나간다고 생각했지만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가 이미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쌍둥이도 낳았던 거니까. 미련하다.“바보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적어도 고정남 몰래 딸을 지켰잖아.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고정남한테 발견되지 않은 걸 보면.”강유리는 인정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사랑하지 않으니까 다시 똑똑해진 거지.”“…”고 씨네 작은 아가씨가 돌아온다는 소식에 발표회는 모든 사
밤이 깊어졌다.성신영은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를 보면서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차한숙처럼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분명 이 수치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녀한테 찾아올 것이다.차한숙이 화를 내면 그 기회로 무언가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모든 준비는 끝났다. 차한숙이 화를 참지 못하고 손찌검이라도 한다면 그녀의 함정에 딱 빠진 것이다.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생기면 계속 폭로하여 차한숙을 고 씨 집안에서 내보낼 수 있다.며칠 사이에 이미 고정남의 태도는 명확히 파악했다. 그는 차한숙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혐오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꼼수를 부려도 아무 말도 없이 지켜보고 있는것이다…아니면 고 씨네 세력으로 언론이 이렇게까지 퍼질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할 리가 없다.하지만 온 저녁을 기다렸지만 차한숙은 찾아오지 않았고 아침에 미용실 갔다는 소식만 들려왔다.하이 팰리스.서울 최고의 미용실.듣기로는 권세가 있는 부잣집 사모님들만이 드나드는 곳이라고 한다. 여기 회원 카드가 있으면 부잣집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가진 거랑 마찬가지라고.이인실에 편안한 자세로 누워있는 강유리는 마사지를 받고 있으면서 실없는 수다를 떨고 있었다.“Seema새 작품의 홍보사진도 이미 올렸는데 절 지금 부른 이유는 홍보대사 일때문만이 아니겠죠?”“역시 이래서 내가 똑똑한 사람이랑 대화하기 좋아하는 거라니까.”차한숙은 눈을 감고 힘이 풀린 목소리로 대답했다.“한동안 유리씨랑 성신영이 사이가 안 좋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사실인 건가요?”강유리도 서서히 대답했다.“이건 해명해야 하는 부분인데 사실 맞거든요.”차한숙은 참지 못하고 웃음소리를 흘렸다.“어제 신영이랑 만났는데 걔가 유리씨더러 내가 자기를 학대한다고 했나요?”강유리의 입꼬리는 올라갔다. 추측하고 있던 무언가의 진실을 안 것 같은 느낌이다.차한숙의 초대를 처음 받았을 때부터 성신영의 일때문에 찾아온 거라고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은 해결책에서 하필 그녀를 선택한 이
차한숙의 안색은 갑자기 어두워졌다.예전에 성신영을 데리고 이런 장소로 가면 항상 우물쭈물하면서 아무것도 못하는 모습이었는데 강유리는 완전 달랐다.소개를 듣고 이 정도로 덤덤할 뿐만 아니라 자랑까지 해대다니?불만과 동시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이 계집에 송만추의 마음에 들 수 있다는 점도.하긴, 처음 보는 사이지만 기도 세고 어디서 꿀리지 않은 성격이니까…“씻겨주고 나머지는 다 나가.”차한숙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내보냈다.그녀는 예정보다 일찍 끝내고 빨리 강유리랑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하지만 강유리는 그럴 마음이 하나도 없다는 듯 마사지사한테 말했다.“나가지 마시고 계속해 주세요. 얼굴 케어 끝나고 온몸 마사지도 부탁할게요. 아, 제가 낼 돈은 많으니까 근심하지는 마시고요. 제가 돈이 없다고 해도 사모님이 여기 계시는 데 근심할 필요는 없겠네요.”“…”차가운 눈빛으로 강유리가 서비스를 다 받기까지 지켜보고 있는 차한숙이다.강유리는 하품하고 느긋하게 일어났다.“사모님 벌써 끝나셨어요? 아참. 방금 모두 내보낸 건 저한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 건지?”마치 이제야 생각이 난듯한 모습이다.“…”차한숙은 강유리의 태도로 뭔가를 확신했다. 이 계집은 성신영만큼 호락호락한 년이 아니라는걸.게다가 육 씨네 가문에서의 지위도 성신영이랑 비교가 안 될 정도니까. 이걸 깨닫고 차한숙은 바로 태도를 바꿨다.“제가 왜 온 건지 아니잖아요. 유리씨도 신영이 그 계집애 안 좋아하는 걸 아는데, 우리가 합작해서 각자 얻고 싶은 걸 얻는 건 어때요.”그녀는 휴게실에 앉아 빨대로 주스를 휘적휘적했다.방금 화풀이를 하고나니 강유리도 태도가 많이 온화해졌다.“어떻게 하시고 싶은데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차한숙은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해명하려고 해요. 성신영 그 계집애를 망쳐버리면 더 좋고.”몇 년간 그녀를 이렇게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성신영 이 년이 지금 먼저 이렇게 했으니까 그에 맞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어렵진
사진 두 장까지 첨부했다. 그중 한장은 고 씨네 가족사진이다.다른 한 장은 고주영과 차한숙, 그리고 성신영 세 명이 같이 찍은 사진이다.해명문이 나오니 인터넷은 마비되었다.실시간 검색어에는 온통 이 사건과 고 씨네에 연관된 것 뿐이었다.대부분 사람은 고주영의 신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고 소수의 사람은 고주영이 지금, 이 시점에 이런 글을 올린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다.“부잣집 딸내미라서 그런가 봐. 예전부터 고주영 분위기가 고급스럽다고 했어.”“가족사진에는 성신영이 없는데. 고 씨 집안이 아직 성신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말인가?”“대박. 내 최애 언니 둘이 친자매였다니.”“누가 그년이랑 자매라는 거야. 우리 주영 언니는 진정한 고 씨 아가씨고 성신영은 어디서 굴러온 건데.”“위에 댓글 말하는 꼬락서니 봐. 고주영이 직접 신영이 언니를 인정한 거잖아.”“그저 해명 글이잖아. 루머 퍼뜨리는 기사 때문에 그런 건가? 팬이 배우 닮아간다고, 성신영네 팬들도 자기 언니처럼 들러붙기 바쁘네.”“성신영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완전 애매모호하게 말해서 주영 언니 엄마 모함하려고?”“헐, 빨리 자기 신분 인정해라고 협박하는 거네.”“와, 진짜 역겨워.”“,,,”고주영의 인지도는 성신영이랑 차이가 크게 났다. 팬의 수량도 비길 수 있는 정도가 아니고.그런 고주영이 갑자기 이 사태에 휘말리니 고주영 팬들의 공격은 물론이고 언론사들도 고주영 쪽으로 치우치는 기사를 내고 있다.동영상의 진실 여부에 관해서 관심하는 사람은 없었고 성신영이 이렇게 하는 의도에만 집중이 갈 뿐이다…JL빌라.강유리는 소파에 기대어 인터넷의 기사를 보고 있었다.고주영이 이 정도로 말을 잘 들을 줄 몰랐다. 이렇게 오랫동안 숨겨온 신분을 망설임 없이 터뜨리다니.이때 메시지 한 통이 떴다.차한숙님, [왜 아직도 사람들이 주영이가 그년을 인정하는 거로 생각하는거야? 우리 의도랑 어긋나잖아. 유리씨, 내가 원하는 건 해명뿐만이 아니라는 걸 명심해 줬으면 좋겠어.”강유
육시준은 맞은편의 소파에 앉아 그녀를 진지하게 쳐다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성신영을 고 씨네에서 쫓아내려고 하는 거야?”강유리는 직접 대답하지 않았다.“차한숙은 그러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우리가 합작해서 원하는 걸 얻으려면 성신영을 희생시킬 수 밖에 없지.”“너 고정남이 성신영이 막 하는 걸 왜 안 말리는지 알아?”“그게 중요해?”“…”육시준은 순간 목이 메어왔다.고정남이 성신영을 상관하지 않는 건 차한숙을 처리하기 위해서다.매정하지만 자기 딸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 일을 평생 비밀로 할 수가 있었지만, 고정남이 강유리를 위해 이 모든 걸 계획한 거라면 그가 반대할 이유도 없다.그래서 성신영이랑 차한숙의 싸움에도 옆에서 보고만 있고 심지어 성신영을 지지하기 까지 하는 거다.“고 씨네 집안 사정에는 관심이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아. 만약 내가 고주영을 움직인 게 너한테 피해를 줬다면 미안해. 하지만 그외의 일은 내 알바가 아닌것 같아.”강유리는 별거 아니라는 듯한 말투로 말하고 나서 의문을 내던졌다.“그런데, 고주영 신분이 밝혀지는 게 그렇게까지 안 되는 일이었나?”육시준은 입을 꾹 대문채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아니면 고정남이랑 무슨 일을 계획하고 있어서 내가 성신영을 처리하는 게 싫은 건가?”“넌 그러고 싶어?”육시준은 대답은 하긴커녕 되물었다.강유리는 입을 삐쭉댔다.“내가 성신영을 안 좋아한다는 모두 다 아는 사실이잖아. 예전에 처리를 안 한 건 그저 성신영이 그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야.”하지만 지금처럼 그녀를 철저하게 밟아버릴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이걸 안 잡을 이유가 없잖아.육시준은 하는 수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하고 싶으면 해. 뒷처리는 후에 다시 보지 뭐.”“…”육시준이 이렇게 말할수록 강유리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일어서 그의 앞에 다가가 표정을 관찰했다.“설마 내가 무슨 일을 망친 건 아니겠지? 고주영 때문이야 고정남 때문이야? 너랑 고정남이 무슨 비
아주머니와 류 집사가 어느 때든 나올 수 있다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에게 부탁하지 않으면 정말 계속할 생각인 듯했다. 텅 빈 침묵 속에서 따뜻하고 큰 손이 허리 위로 올라가자, 강유리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소리쳤다.“제발! 우리 방으로 가자!”육시준은 미소 짓더니 그대로 그녀를 안고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서 엎드리고는 그제야 웃음을 머금고 설명했다.“오 씨 아주머니랑 류 집사 집에 없어.”“뭐?”육시준은 그녀에게 다시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큰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와 깍지를 끼고 부드러운 침대 시트 위에 살포시 누웠다. 그때,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육시준은 눈썹을 약간 찌푸리더니 벨 소리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키스에만 집중했다. 벨 소리는 그치지 않았고, 멈추면 또다시 울렸다.강유리는 그를 밀어내며, 가볍게 헐떡거렸다.“일단 전화 받아. 혹시 무슨 급한 일이 생긴 거면 어떡하려고?”그는 침대 옆에 옷과 함께 떨어진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전화 발신 번호를 들여다봤다. 장경호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수신 버튼을 막 누르자 옆에 있던 강유리가 장난치기 시작했다. 반쯤 그의 가슴 위에 엎드린 채 연약한 작은 손으로 셔츠 속을 파고들며 손끝으로 무턱대고 그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그는 잠깐 당황한 듯 몸이 굳어지더니 그녀를 쳐다보았다. ‘귀엽긴…… 방금 내 행동을 복수라도 하겠다는 건가?’다만 손해 볼 건 하나도 없었다.“시준 씨,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온 거 봤어요?”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에 두 사람은 동시에 멍해졌다. 강유리의 장난 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얼굴이 굳어졌다.‘고주영?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해?’육시준은 강유리의 눈치를 살피더니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전화를 끊으려 했으나 그녀가 제지했다.“저는 그냥 걱정이 돼서요……”전화 반대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말할 수 없이 다정했다.“……”육시준이 입을 열기도 전에 강유리는 빠르게 몸을 홱 돌려
로열 사무실.고주영은 소파에 걸터앉아 끊어진 전화를 쳐다보며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가 강유리와 고주영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뚜렷하게 구별됐다. 그녀는 강유리에게 이런 행운이 있다는 것을 시종 믿을 수 없었고 이런 우연이 육시준의 마음을 열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맞은편 멀지 않은 곳에 앉은 장경호는 통화 내용을 뚜렷하게 들었고, 그의 눈에는 슬픔이 어려 있었다. 그 통화로 피해를 본 건 장경호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육시준을 방애하는 자체가 두려운 일이었는데, 옆에 강유리까지 있었으니 더 심각한 일이었다. 육시준이 한 달 동안 야근을 추가한 것은 그나마 자비를 베푼 것이었다.‘기회를 찾아 해명해야겠네……’“주영 씨, 제가 말했잖아요. 부부 생활을 방애하는 건 좋지 않은 일이라고요……”그의 말에 고주영은 길길이 날뛰며 소리쳤다.“시준 씨는 강유리를 사랑하지 않아요! 그냥 서로 필요해서……”그녀의 말에 그는 잠시 멍해졌고, 고주영은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두 분이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거로 생각해요.”“뭘 알아서 그런 말을 해요? 제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 있는 눈빛을 분명히 내 눈으로 봤다고요!”강유리는 특별한 존재였기에 고주영은 점점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상상보다 육시준에게 더 소중한 사람이었다.그녀는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가버렸고, 장경호는 소파에 앉아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내가 봉변을 당하는구나…… 주영 씨와 가까이 지내는 게 아니었는데……’……깊은 밤에도 JL빌라 2층의 불은 여전히 켜져 있었고, 차가운 밤 속에 온화함이 깃든 느낌이었다.목욕을 마친 강유리는 온몸이 개운해 이불 속에 틀어박혀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고, 욕실에서 콸콸 흐르는 물소리를 듣느라 잠시 넋을 잃었다. 머리에는 자기도 모르게 방금 육시준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그는 고성그룹의 비밀스러운 사생아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고정남이 저번에 찾아온 게 성신영
“아니, 국내 상황은 나도 잘 몰라. 지석 오빠 한국에 있잖아. 그쪽한테 물어보든가.”“우리 남편도 못 알아낸 거니까 지석 오빠도 힘들 거야. 게다가 고정남 그 사람 꽤 오랫 동안 해외에 있었잖아. 그래서 정보를 얻으려면 해외 쪽에서...”이에 릴리의 눈이 반짝였다.‘뭐야. 지석 오빠도 못 알아내고 그 대단하다는 언니 남편도 실패했다고? 그럼 내가 여기서 고정남에 대한 정보를 턱 알아내면 두 사람보다 내가 더 대단하다는 거잖아?’이런 생각에 더 이상 뒷말은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그래서 누구에 대해 조사하고 싶다고? 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다 알아봐줄게!”“고정남이 한때 굉장히 사랑했던 여자가 있어. 그런데 고정남에게 배신을 당했고 임신한 채로 서울을 떠났었지...”“어머, 내 이런 막장 스토리 너무 좋아해!”“...”“아, 그리고 이 일은 너희 엄마한테는 비밀로 해.”이때 강유리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었다.“어? 왜?”“때가 되면 해명할 테니까 일단 비밀로 해. 그리고 자세한 건 도희 언니한테 묻고.”잠깐 멈칫하던 강유리가 말을 이어갔다.“혹시나 말이야. 이 모든 것의 끝에 우리 가족들이 연관되어 있다고 해도 숨기지 말고 나한테 말해.”꽤 진지한 목소리에 릴리의 목소리도 조금 떨려왔다.“뭐야... 생각보다 꽤 복잡하잖아? 내가 엄마 가족에 대해 알아보는 걸 알면... 날 죽일지도 몰라.”“걱정하지 마. 네가 이모한테 맞아죽으면 장례는 내가 책임지고 치러줄 테니까.”“됐거든.”“아, 그리고 할아버지 상태 많이 좋아지셨어. 연말 쯤에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해줄게. 내 결혼식 때까지 실컷 놀다가 가.”“오케이!”그제야 릴리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미션 무조건 완수할 테니까 좋은 소식 기다려.”통화를 마치자마자 안방 문이 열리고 육시준이 물었다.“누구랑 통화한 거야. 연말에 뭐 어디 가?”“왜 남의 통화를 엿듣고 그래!”강유리가 미간을 찌푸렸다.“네가 문을 제대로 닫았어야지.”“내가 문을 열었어도 알아서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