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뉴스에 나왔으니까.”육시준이 대답했다.‘하, 내가 성홍주를 너무 과소평가했네. 그 정도로 경고하면 당분간이라도 가만히 있을 줄 알았는데. 감히 선수를 쳐? 그럼 이제 작품을 발표해도 내 입장만 난처해지게 생겼잖아...’“이게 정말 이번 대회의 메인 테마야?”육시준이 다시 한번 캐물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강유리가 고개를 들었다.“어느 쪽인 것 같아?”설계도면을 내려놓은 육시준이 뭔가 더 말하려던 그때, 뭔가 묘한 향기가 풍겨오고 육시준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강유리의 날카로운 펀치가 바로 육시준의 코 앞에서 멈췄다.“내가 이기면 그때 얘기해 줄게.”여유롭게 펀치를 피한 육시준이 어깨를 으쓱했다.“그냥 대답하고 싶지 않다고 얘기해.”며칠 전 육시준과의 “난투”에서 패배한 뒤로 강유리는 시간 날 때마다 육시준에게 기습공격을 하곤 했다.뭐 그때마다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말이다.“어쭈 피해?”...그리고 5분 뒤.두 손을 완전히 뒤로 꺾이고 얼굴은 책상에 처박다시피 한 강유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육시준! 진짜 와이프한테 이렇게까지 할 거야? 그 외모로 왜 20년 동안 솔로로 살았나 했더니... 성격이 더러워서였네!”이에 육시준은 손목에 더 힘을 주며 우아한 목소리로 물었다.“응? 뭐라고?”“아아아, 아파! 이거 좀 놔봐!”“일단 질문에 대답부터 해.”“대회에 주제 같은 건 없었어! 추연화 그 자식이 내껄 베낀 거라고!”강유리의 대답에 육시준의 눈이 살짝 커졌다.추연화, 그쪽으로 뭔가 시나리오를 써볼까 했더니 이렇게 바로 소재를 던져주시네...“왜 그렇게 확신해?”“그거야...”육시준의 손목에 힘이 점점 풀리기 시작하자 이때다 싶은 생각에 강유리는 그의 다리 사이를 향해 킥을 날렸다.화들짝 놀란 육시준이 뒤로 물러서며 강유리는 드디어 자유를 얻게 되었다.“미쳤어? 얘가 얼마나 중요한데! 너, 신중하게 생각해. 남은 부부생활 행복하게 할 수 있냐가 달린 문제기도 하니까.”육시준이 이를 악물었다.
한편, 진짜 강유리의 싸움실력을 확인한 육시준은 나름 꽤 놀란 상태였다.그리고 저번 레이싱 사건 때도 봐주는 건 상대를 존중하는 게 아니라며 극히 분노하던 모습도 떠올랐다.‘부부사이에도 승부욕을 불을 태우는 스타일이었나...’방금 전 난투로 살짝 흐트러진 옷 사이로 육시준의 매력적인 쇄골라인이 그대로 드러났다.“그래, 내가 졌다.”“졌다고?”“그래, 내가 졌어. 이제 어떻게 할 거야?”육시준의 큰 손이 강유리의 얇은 허리를 감싸 쥐었다.풀썩.강유리가 자연스럽게 육시준 위로 쓰러지고...얇은 섬유 사이로 느껴지는 뜨거운 손바닥의 온기가 허리에서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 야릇한 자세까지, 강유리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하지만 겉으론 부끄러운 기색 하나 없이 어여쁜 아녀자를 보쌈하여 납치한 산적 두목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오늘은 이 자세로 하는걸로. 어때?”그녀의 말에 육시준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이런 혜택이 있을 줄 알았다면 좀 더 빨리 져줄 걸 그랬다.얇은 허리를 감싸 안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긴 키스가 시작되었다.살을 에는 칼바람이 부는 차가운 날씨와 달리 후끈 달아오른 서재의 온도 때문에 창문에 얇은 안개가 드리웠다.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지칠대로 지친 강유리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큼, 절대 내가 먼저 지친 거 아니야. 아까 싸우느라 힘, 힘을 너무 많이 빼서 그래.”성관계에서까지 주도권을 차지해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강유리를 품에 끌어안은 육시준이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그래, 그래. 그런데... 추연화가 네 아이디어를 표절했다고 했잖아. 왜 그렇게 확신해?”“하, 이렇게 바로 일 얘기로 넘어가는 거야?”“그럼 뭐? 아까 하던 거 계속해?”화들짝 놀란 강유리가 육시준의 품에서 벗어나려 애쓰지만 헛수고에 불과했다.“그래, 일 얘기하자 일. 내가 기막힌 영감이 떠올랐... 읍!”남은 말은 결국 폭풍 같은 키스에 휘말려 사라 져버렸다.그렇게 그날 밤, 서재의 조명은 새벽
침대에서의 첫 전투가 패배로 끝난 뒤로 몸에 손도 대지 못하게 했더니 그걸로 소심하게 복수를 하는 게 분명했다.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극도의 피곤함에 강유리는 기절하듯 잠이 들어버렸다.도로를 밝히는 가로등의 따뜻한 조명으로도 가시지 않는 살벌한 추위의 겨울밤이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한편, 고성병원, vip 휴식실에 고정남이 초조한 표정으로 앉아있다.그리고 잠시 후, 정전 한번, 인터넷 고장 한번, 검사 장치 고장 한번.오늘따라 파란만장했던 친자 검사 결과는... 불일치였다.생물학적으로 친자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는 내용의 결과지를 훑어보던 고정남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이런저런 사고 때문에 반나절 넘게 기다렸지만 기분이 언짢지 않았던 건, 어디까지나 결과에 대한 확신이 어느 정도 있어서였다.그런데... 종이에 찍힌 결과는 고정남의 흥분된 마음에 찬물을 끼얹어버렸다.“오래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오늘은 왠지 자꾸 사고가 끊이지 않아서...”굳은 표정의 고정남의 눈치를 살피던 의사가 변명을 늘어놓았다.“전에는 이런 상황이 없었다고 했나?”이때 고정남이 고개를 번쩍 들고 그 표정에 깜짝 놀란 의사가 뒤로 살짝 한발 물러섰다.“아, 네. 정전과 인터넷 연결은 뭐 그렇다 치더라도 최첨단 설비가 이렇게 말도 안 되게 고장날 리가 없는데... 오늘은 기기 재부팅만 몇 번을 했는지...”“그게 결과에 영향을 줄 수도 잇지 않나?”“아, 그건...”의사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비록 여러 가지 사고가 있긴 했지만 결과는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기기는 그렇다 쳐도 샘플을 취급한 이들 전부 프로, 결과가 잘못되었을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고 의사는 확신했다.“그럴 리가 없어. 왜 강유리와 관련된 일은 전부 이렇게 틀어지는 거지. 이게 전부 우연일 리가 없어.”연신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리던 고정남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오늘 있었던 일, 외부에 절대 유출하지 마세요.”고정남의 수행 경
한편, 경호원이 별뜻없이 뱉은 말에 공허하던 고정남의 눈동자에 다시 빛이 감돌았다.‘그래. 뭔가 문제가 있는 게 확실해. 사실 난 이미 답을 알고 있잖아? 그 마지막 확신이 그 정도로 중요한 건 아니잖아?’자세를 고쳐앉은 고정남이 생각을 이어갔다.‘아니지. 그러고 보니 LK쪽에서는 왜 내가 딸을 찾는 걸 그렇게 방해하는 거지? 육시준 그 자식이 무슨 자격으로...’“유강그룹에서 주최한다는 그 디자인대회는 어떻게 돼가고 있지? 강유리, 성홍주 두 사람이 아주 강하게 대립하고 있다면서? 강유리는 세마, 성홍주는 추연화를 지지한다고 들었어.”“네. 추연화와 세마가 내놓을 작품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특히 추연화 디자이너가 선보일 작품의 홍보대사는 신영 아가씨가 아닙니까? 신영 아가씨의 신분을 공개하는 기자회견장에 보석도 함께 보여줄 예정입니다.”“...”경호원의 설명에 고정남은 미간을 찌푸리고 경호원은 말을 이어갔다.“추연화 디자이너는 회장님과 아주 각별한 사이입니다. 신영 아가씨의 신분을 밝히는 자리라면 언론사들이 잔뜩 모일 테니 이를 기회로 본 거겠죠. 실력적으로 보면 추연화 디자이너가 세마에게 밀리는 게 사실이니까요.”“우리 동생... 몇년 사이에 많이 자랐네.”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갖 수단으로 딸을 찾으려는 그를 방해하더니 정작 딸을 찾고 나니 바로 이용하기 시작하는 점까지.‘아버지와 참 닮았어.’“조치를 취할까요?”경호원이 물었다.“아니야. 동생이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주는데 받아줘야지.”사생아, 지금 다시 딸을 되찾는다 해도 그 아이에게 달릴 이 꼬리표가 신경 쓰여 그 동안 망설이고 또 망설였던 고정남이다.‘그래. 누군가 그 모욕을 받아야 한다면 차라리 성신영 그 아이가 받는 게 나을 거야. 힘을 더 쌓은 뒤 고정철의 만행을 파헤친다면... 그땐 대중들도 되찾은 사생아보다 재산을 물려받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른 고정철에게 집중하게 될 테니까.’“그래도 일단 더 이상 내가 하려는 일에 끼어들지 못하겐 해야겠어.”
“그래. 우리 집으로 와. 나 오늘 회사 안 나갈 예정이니까.”“그래.”통화를 마치고 크게 기지개를 켜던 강유리는 어느새 문 앞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육시준을 발견했다.잠깐 멈칫하던 그녀는 바로 차가운 표정으로 돌변했다.“회사 안 나갔어? 언제 들어온 거야? 왜 노크는 안 해?”“아침은 네가 좋아하는 계란찜이야. 내가 아주머니한테 부탁했어.”이에 육시준은 동문서답으로 응했다.계란찜? 방금 전까지 아침 생각이 전혀 없었던 그녀인데 어느새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다른 반찬도 네가 좋아하는 걸로 준비해 달라고 했으니까 얼른 일어나서 밥부터 먹어. 일 얘기는 천천히 하고.”어느새 옷장까지 다가온 육시준이 옷을 꺼내 강유리에게 건네주더니 무덤덤하게 물었다.“뭐, 내가 도와줘?”이에 겨우 조금 풀렸던 강유리의 표정이 다시 확 어두워졌다.“싫어! 나가! 당신이랑 하룻동안 절교할 거니까.”이불로 몸을 꽁꽁 둘러싸 맨 강유리가 소리쳤다.“하루는 너무 길지 않아? 조금 있다가 친구도 온다면서? 우리 사이가 너무 냉랭하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겠어?”어느새 어물쩡 침대맡에 앉은 육시준이 강유리를 달래기 시작했다.‘그런가...’습관처럼 손톱을 뜯던 강유리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안돼! 지금 저 페이스에 넘어가면 안 된다고!’“내 친구가 오든 말든 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인데. 회사 안 가?”“안 갈 거야. 추연화가 네 작품을 표절했다는 사실에 굉장히 큰 관심이 가서 말이야.”“...”‘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아주 한번 물면 끝까지 놓지를 않아요.’“추연화의 작품 출시 여부가 LK쥬얼리와도 관련이 있나 보지?”강유리의 질문에 육시준은 딱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뭐 LK에 영향이 가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육시준이 더 관심을 가지는 건 이것이 고성그룹을 상대할 좋은 패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추연화는 어디까지나 고성그룹 사람이야. 추연화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건 고성그룹 쪽이겠지. 육경원이 갑자기
아침 식사 시간 후, 도희 부부와 신주리 그리고 이런 가십거리라면 절대 빠지지 않는 육경서까지 차례로 강유리의 집을 방문했다.컴퓨터를 켜던 강유리가 짜증스런 눈길로 육경서를 힐끗 바라보았다.“도련님은 왜 오셨어요? 오늘 안 바쁘세요?”어차피 신주리와의 관계도 이미 들켰겠다, 육경서는 솔직하게 대답했다.“아직 휴가 중이잖아요 저. 주리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졸졸 따라가야죠.”자연스레 허리에 감은 손을 내려다보며 경고의 시선을 보내는 신주리를 향해 찡긋 미소를 지은 육경서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형수님은 우리 엄마, 아빠 스파이나 마찬가지야. 우리가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 거 아니야. 협조 좀 하지?”하지만 신주리는 불편해서 죽겠다는 얼굴로 손을 걷어냈다.“친구 앞에서까지 연기하려니까 불편해서 그러지.”“그럼 연기라고 생각 안 하면 되는 거 아니야?”육경서의 속삭임에 화들짝 놀란 신주리가 고개를 돌렸다.‘뭐지? 왜 심장이 뛰고 난리야. 볼도 조금 뜨거워진 것 같고. 설마... 나 어디 아픈가?’“두 사람 그만 좀 하죠. 나 두 사람 팬인데 자꾸 이런 모습 보여줄 거예요?”“에이.”이에 육경서가 특유의 넉살좋은 미소를 지었다.“좋아하는 연예인 사생활 정도는 존중해 줘야죠? 그런데 알렉스 씨가 내 팬인 줄은 몰랐네. 나 남자 팬 별로 없는데.”“누가 육경서 씨 팬이랍니까? 전 신주리 씨 팬입니다. 항상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죠.”그러자 신주리는 알렉스를 흘겨보다 도희에게 속삭였다.“뭐야. 네 남편이 날 딸이라고 생각한대. 이거 족보 꼬이는 거 아니야?”“워낙 꼰대라서 그래. 아주 집에서도 아빠보다 잔소리가 더 많아요.”도희는 이미 익숙해진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됐고. 일 얘기부터 하자. 추연화, 뭔가 이상하다는 거 언제부터 발견한 거야? 알렉스 말론 추연화는 한 번도 네 사무실에 들어간 적 없다던데.”한편, 컴퓨터 앞에 앉아 신주리와 육경서의 투닥거림을 바라보던 강유리는 육시준과 시선이 마주친
“자기야, 진정 좀 해.”잔뜩 흥분한 얼굴로 벌떡 일어선 도희를 다시 앉히게 한 알렉스가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이때,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육시준이 입을 열었다.“추연화와 오랜 시간 동안 라이벌 관계였으니 그쪽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이미 알고 있는 거 아닙니까?”“라이벌이라뇨! 실력 차이가 이렇게 심한데 라이벌은 무슨!”도희가 또다시 발끈했다.“그래요? 라이벌이라고 칭할 수준도 안 된다면 뭐가 그렇게 걱정인 거죠?”“...”“추연화는 몰래 세마의 컨셉을 엿보았고 감시카메라 기록을 지웠어요. 굉장히 초조하고 조심스러웠다는 걸 의미하죠. 그런데 그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왜 두 번째 시도를 했을까요? 아마... 한 번 본 거로는 부족했기 때문이겠죠?”“맞아.”강유리도 육시준의 의견에 동조했다.“추연화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우리 모두 알고 있잖아? 그리고 내 컨셉은 대충 엿보는 걸로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두 결과물이 동시에 대중 앞에 드러난 순간, 누가 누굴 베낀 건지, 다들 알게 될 겁니다. 대중들 눈이 옹이구멍은 아니니까요.”두 사람의 설명을 들을수록 도희의 눈은 점점 더 커다래져만 갔다.“미리 네 컨셉을 얘기한 것도 경고한 거나 마찬가지였네? 괜히 일 키우지 말라고.”“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추연화, 고성그룹 쪽 사람이야. 괜히 안 좋게 엮여서 좋을 게 없으니까.”하지만 육시준은 그녀의 말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왜 그런 걱정을 해. 내가 너한테 했던 말 잊은 거야?”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하라고. 영원히 네 편이 되어주겠다고 말했는데. 아직도 그가 못미더운가 싶어 조금 섭섭했다.역시나 그의 생각을 읽은 강유리가 육시준의 무릎을 어루만졌다.“당신은 육경원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하잖아. 괜히 나까지 일 키울 거 있어?”‘뭐지? 내가 그렇게 약해 보였나? 육경원이 나한테 꽤 위협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건가?’그녀의 의도와 달리 육시준은 진지한 반성을 시작했다.“형수님, 형이
이렇게 부정적인 여론으로 파다한 건 고정남의 은밀한 작업 덕분이기도 했다.한편, 고씨 집안사람들은 고주영을 위로하는 중이었다.“세마? 하, 사람 보는 눈이 이렇게 없어서야 원. 됐어. 그딴 홍보모델 안 하면 그만이야.”우아한 자세로 차를 마시던 차한숙은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엄마, 세마가 그딴은 아니죠. 쥬얼리 쪽에선 톱인데.”고우신이 눈치 없이 찬물을 끼얹자 차한숙의 목소리는 더 날카로워졌다.“넌 오빠란 애가 동생 위로는 못해줄 망정. 너 누구 편이야?”“아, 네네. 아주 뭐든 다 내 잘못이지. 그냥 닥치고 있을게요.”“그렇게 대단한 곳이면 네가 좀 어떻게 해봐. 너 친구들 많잖아. 도대체 왜 우리 주영이가 떨어진 건지 이유라도 알아보라고!”“...”한편, 차분한 얼굴로 앉아있던 고주영은 괜한 불똥이 고우신에게로 튀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엄마, 그만하세요. 어차피 다른 스케줄 때문에 시간 빼기도 힘들었는데. 잘됐죠 뭐.”“그러니까요. 언니 정도면 더 좋은 브랜드 엠버더서도 할 수 있는걸요 뭘.”고주영 옆에 앉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성신영 역시 한 마디 끼어들었다.그런데... 성신영의 목소리는 오히려 차한숙의 타오르는 분노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고 말았다.“네가 뭔데 우리 얘기에 끼어들어!”“...”“신주리 따위 때문에 우리 주영이가 처음 거절을 당했어. 겨우 너 정도 레벨밖에 안 되는 연예인한테 우리 주영이가 밀렸다고! 그러니까 내가 화가 안 나게 생겼어?”“엄마.”고우신이 차한숙을 바라보았다.성신영이 아니꼬운 마음이야 백번 이해하지만 이건 말이 좀 심하다는 생각이었다.“시끄러! 팔이 밖으로 굽어도 유분수지. 넌 네 편, 남의 편이 누군지 구분도 못 해?”“아니, 그게 아니라...”“아니, 얘는 울긴 왜 울어? 아침부터 재수 없게! 내가 뭘 어쨌다고! 이런 널 우리 고씨 집안 핏줄이라고 인정해야 한다니... 기가 막혀서 원.”“사모님... 제 존재가 모두에게 큰 민폐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그게...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