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부정적인 여론으로 파다한 건 고정남의 은밀한 작업 덕분이기도 했다.한편, 고씨 집안사람들은 고주영을 위로하는 중이었다.“세마? 하, 사람 보는 눈이 이렇게 없어서야 원. 됐어. 그딴 홍보모델 안 하면 그만이야.”우아한 자세로 차를 마시던 차한숙은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엄마, 세마가 그딴은 아니죠. 쥬얼리 쪽에선 톱인데.”고우신이 눈치 없이 찬물을 끼얹자 차한숙의 목소리는 더 날카로워졌다.“넌 오빠란 애가 동생 위로는 못해줄 망정. 너 누구 편이야?”“아, 네네. 아주 뭐든 다 내 잘못이지. 그냥 닥치고 있을게요.”“그렇게 대단한 곳이면 네가 좀 어떻게 해봐. 너 친구들 많잖아. 도대체 왜 우리 주영이가 떨어진 건지 이유라도 알아보라고!”“...”한편, 차분한 얼굴로 앉아있던 고주영은 괜한 불똥이 고우신에게로 튀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엄마, 그만하세요. 어차피 다른 스케줄 때문에 시간 빼기도 힘들었는데. 잘됐죠 뭐.”“그러니까요. 언니 정도면 더 좋은 브랜드 엠버더서도 할 수 있는걸요 뭘.”고주영 옆에 앉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성신영 역시 한 마디 끼어들었다.그런데... 성신영의 목소리는 오히려 차한숙의 타오르는 분노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고 말았다.“네가 뭔데 우리 얘기에 끼어들어!”“...”“신주리 따위 때문에 우리 주영이가 처음 거절을 당했어. 겨우 너 정도 레벨밖에 안 되는 연예인한테 우리 주영이가 밀렸다고! 그러니까 내가 화가 안 나게 생겼어?”“엄마.”고우신이 차한숙을 바라보았다.성신영이 아니꼬운 마음이야 백번 이해하지만 이건 말이 좀 심하다는 생각이었다.“시끄러! 팔이 밖으로 굽어도 유분수지. 넌 네 편, 남의 편이 누군지 구분도 못 해?”“아니, 그게 아니라...”“아니, 얘는 울긴 왜 울어? 아침부터 재수 없게! 내가 뭘 어쨌다고! 이런 널 우리 고씨 집안 핏줄이라고 인정해야 한다니... 기가 막혀서 원.”“사모님... 제 존재가 모두에게 큰 민폐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그게... 제
“......”여전히 아름다운 차한숙의 얼굴이 어느새 증오로 가득찼다.과거의 그 일은 분명 그녀도 피해자였다. 그런데 고정남이 무슨 자격으로 이제 와서 그녀의 인성에 대해 평가질을 하는 걸까?‘여자 한 명 찾겠다고 20년 동안 집에 한번 들어오지도 않고 이제 그 여자가 낳은 더러운 핏줄까지 내 집에 들여놓은 것도 기가 차는데 뭐가 어쩌고 어째?’“당신... 설마 내가 당신 와이프라는 이 타이틀을 지키고 싶어한다고 생각하는 거야?”“맞잖아. 이제 와서 아닌 척이야?”말없이 서로를 노려보는 고정남과 차한숙 사이에 죽음 같은 침묵이 감돌았다.고우신, 고주영 두 남매 역시 꽤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부모님 사이가 안 좋다는 거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재벌 사이의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사이는 의례 그렇게 지내는 것이거니 했었다.그런데... 두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니 둘은 자기가 생각한것 보다 꽤 더 큰 악연으로 엮여있는 듯 싶었다.“아빠, 그만하세요. 엄마도 정말 나쁜 마음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건 아닐 거예요.”자리에서 일어선 고우신이 어떻게든 중재를 해보려 애썼다.그제야 울음을 멈춘 성신영 역시 고우신의 편을 들었다.“그러니까요, 아빠. 화내지 마세요... 제가 떳떳하지 못한 딸이라는 건, 저도 알아요. 솔직히 사모님 입장에서 절 때리셔도 전 할 말 없습니다.”고개를 푹 숙인 채 웅얼거리는 성신영의 모습은 가련한 신데렐라의 모습 그 자체였다.그리고 그녀의 말에서 바로 포인트를 캐치한 고정남이 미간을 찌푸렸다.“설마... 때리기까지 했어?”차한숙의 차가운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 성신영은 잔뜩 겁 먹은 얼굴로 움츠러들었다.“아니요. 그럴 리가요. 사모님께서 저한테 얼마나 잘해 주시는데요...”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성신영의 손은 어느새 손목 부위를 가리고 있었다.성큼성큼 다가간 고정남이 성신영의 손목을 홱 낚아채고 손목에 난 상처가 그대로 모습을 드러냈다.“이게 뭐야?”상처를 확인한 순간, 고정남은 물론이고 차한숙 역시 눈이
한편, 멍하니 서 있는 차한숙의 시선은 여전히 성신영의 가녀린 손목을 향해 있었다.비록 다정한 말 한마디 안 해준 건 사실이었지만 맹세코 몸에 손을 댄 적은 없었다.그리고 당황한 척하지만 묘한 제스처로 암시를 주던 성신영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고정남에게 어떻게든 자기가 학대를 받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주고 싶었겠지. 내 딸의 CF를 위해 일부러 손에 상처를 낸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길 바랐던 거야. 하, 이딴 수작에 넘어가? 하긴, 고정남 당신은 애초에 날 겨우 그런 여자로 보고 있을 테니까. 추악한 내 말보다 그렇게 사랑했던 여자가 낳은 금지옥엽 딸의 말을 믿고 싶겠지.”모든 실마리가 밝혀지고 나니 화가 나긴커녕 오히려 이 상황이 우습게 느껴졌다.자리에서 일어선 차한숙이 처음 듣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어머, 그러게 조심 좀 하지 그랬어. 치료 잘 받아. CF 촬영 열심히 해야지.”“...”분명 너무나 친절한 말투였지만 성신영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차한숙까지 자리를 뜨고 식탁 앞에는 어느새 고우신 남매와, 성신영 세 사람만 남게 되었다.여전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성신영은 이번엔 두 남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어떡해요. 아빠가 오해를 하신 것 같아요.”“후...”이에 고우신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두 분 문제니까 두 분이 알아서 하시겠지. 너도 아빠 화 풀리면 제대로 해명하고.”‘누가 들어도 오해할 만한 말이었어. 왜 하필 그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한 걸까?’“손목은 도대체 어쩌다 다친 거야?”“아, 그게...”성신영이 손목을 감싸 쥐었다.“며칠 전에... 너무 배가 고파서... 야식 좀 끓여먹으려다가... 데었어요.”“아주머니한테 부탁하지 그랬어.”고우신이 미간을 찌푸렸다.“아주머니도 주무시는 것 같고... 아주머니가 사모님 사람인 거 저도 다 아는데. 괜히 부탁드렸다가 사모님한테 더... 미움받게 될까 봐...”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식탁 주변에 앉은 사람들이 듣기엔 충분
고주영은 어쩔 수 없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앞으로 엄마랑 성신영의 모순에 대해 참견 좀 그만해!”고우신의 눈빛이 약간 흔들리더니 이내 대답했다.“성신영이 그렇게 싫어?”“그럼 넌 좋아한다는 뜻이야?”“좋아한다기보다는 너무 불쌍해.”“불쌍하다고? 생각이란 걸 하고 살아! 불쌍하다는 사람이 매번 아빠가 집에 올 때마다 갈등을 일으켜? 아빠가 엄마에 대해 불만을 품게 하지 않았냐고!”“우연의 일치 아니야? 설마 그렇게 나쁘기야 하겠어?”고우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또 한 가지 일이 떠올라 다시 입을 열었다.“아빠가 엄마가 한 일을 아직도 원망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고주영은 그의 말에 눈을 질끈 감더니 말했다.“역시. 어리석은 남자들만 이런 저급한 수법에 넘어가겠지. 그리고, 원망하든 안 하든 뭐가 중요해? 지금은 다 한집안 식구인데.”그녀의 머릿속에는 한 사람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오직 그만이 이런 수법에 절대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현명하든 저급하든 그는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그 외국 여자 외에는 아무도 상대하지 않았다. 물론 강유리도 예외는 아니었다……그녀는 현재 육시준 부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육시준은 그녀에 대해 책임질 의무가 있다. ‘엄마 아빠가 지금 지내는 패턴이 뚜렷한 예가 아닌가? 서로 사랑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서로 깍듯이 대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그런 패턴……’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녀는 속으로 후회하면서 되뇌었다.‘그때 맞선에 내가 나갔더라면 내가 육시준 부인이 되었을 게 분명해……’그녀는 두 번이나 기회를 놓쳤다……그때, 고주영이 입을 열었다.“지난번에 육시준이 클럽에 갔다면서?”“아내를 데리고 왔던데. 왜?”“다음에 오면 나한테 알려줘.”……강유리는 완성된 시리즈 제품을 직접 검수하러 나섰다. 장식품은 가공 기술이 정교하고 디자인이 교묘하며 무거운 느낌을 개량하고 현대적인 요소를 첨가하여 화려하면서도 유행을 잃지 않아 사람들의 눈을 번득하게 했다. 육시준은 몹시 놀
이보라는 오전에 불려 와 신주리와 상의하고 신제품을 착용해 보려 했다. 강유리가 온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우연히 세 사람의 대화를 들은 이보라는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이걸 직접 디자인 하셨다고? 육 대표님이랑 결혼식을 준비하신다고?’이보라는 머릿속이 하얘져 몇 분 동안이나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소은이 주문을 넣으라는 소리에 그녀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걸어가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말했다.“주문서를 어떻게……”“주문 넣을 줄 몰라요?”그것은 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가 유강그룹 직원이라는 것이 포인트였다. 이보라는 조금은 불안한 말투로 물었다.“저를 그렇게 믿으세요? 저더러 이런 일을 하라고 시키시다니……”그녀의 말에 소은은 웃으며 말했다.“계약서를 잘 확인하지 않았나 봐요? 보라 씨는 강 대표님 비서잖아요. 어차피 유강그룹도 강 대표 것이 될 텐데 다 한 식구 아니겠어요?”이보라는 망연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그렇기는 하지만, 제가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거 아닙니까?”소은은 살짝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왜요? 입을 막을 일이 생길까 봐 그래요?”이보라는 천천히 손을 올려 자신의 입을 막았다.“그렇게 심각한 일이에요? 아니면 방금 들은 거 모두 못 들은 걸로 할까요?”소은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너무 늦었어요. 이미 다 들었잖아요? 강 대표가 늘 말했는데, 수다 떨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면서요? 정보를 이리저리 넘기고……”“아…… 제가 비밀을 잘 지키기도 합니다.”“못 믿겠어요. 이걸 먹지 않는 이상 정말 믿지 못하겠어요.”소은은 작은 도자기 병을 꺼내더니 까맣고 동글동글한 것을 쏟아 놓았다.“이건 우리 집안에서 만들어낸 약이에요. 보라 씨가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하면 온몸이 간지러울 거예요. 특히 얼굴이 간지러워서 계속 긁게 되고 결국에는 얼굴이 망가지게 돼요. 이걸 먹으면 비밀을 지킬 거라는 걸 믿을게요.”이보라는 얼떨떨한 얼굴로 눈앞에 있는
이보라는 소은의 동작을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몇 발짝 뒤따라갔다.“방금 그거 드신 거예요? 부작용 없어요? 아니면 집안사람이 먹으면 괜찮은 건가요?”소은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더니 말했다.“정말 드라마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에요? 그런 초능력이 어디 있어요?”“드라마에서 나오는 것도 다 생활에서 나온 거라면서요!”소은은 이보라가 참 재밌다고 생각하면서 작은 병을 그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이거 다른 이름이 있어요. 초콜릿이라고 하죠? 저혈당을 방지하는 효능도 있어요. 하나 줄까요?”“됐어요.”얼마 지나지 않아 신주리가 찾아왔다. 신제품을 착용해 보고 바로 촬영장으로 가 다급하게 홍보 사진을 찍었다. 이보라는 발에 불이 나게 바빴고, 머리가 핑그르르 돌 지경이었다. 오후에 촬영이 시작된 후에야 그녀는 조금 정신을 차릴 여유가 있었다. 오전 내내 받은 메시지가 너무 많았는데, 스튜디오에 관한 소식과 강유리에 관한 소식이었다. 그녀는 설레기도 하고 진심으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을 받았다. 덕과 능력이 어찌나 좋은지, 들어가자마자 높은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모두가 그녀한테 조금도 숨김없이 솔직하게 대하니 그녀는 꼭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비밀을 지키리라 다짐했다.이보라는 천천히 강유리한테로 다가가 귓속말로 말했다.“대표님, 추연화도 내일 홍보 사진을 전시한다고 합니다. 동시에 공개하면 좀 그렇지 않나요?”“괜찮아.”강유리는 육시준과 대화 중이었는데 내키는 대로 이보라의 말에 대충 대답했다.“모두가 대표님 작품을 기대하는데요…… 시기가 좀 잘못된 것 같아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요……”“내일 수중 영상 시리즈만 전시하니까 안심해.”“……”강유리의 말에 이보라는 고개를 끄덕였고, 많이 안심되었다. 잠시 후 안심했던 마음이 다시 울렁이기 시작했다. ‘지금 발표하지 않으면 결선 신상 발표회에서 이 작품을 발표한다고? 추연화는 발표 날짜를 강 대표님의 신제품 발표회와 같은 날로 정했는데……’고성그룹 기자회견도
강유리가 정신을 차렸을 때 추연화의 촬영 팀임을 알아차렸다. 방금 이보라가 말하기를 내일 발표한다고 했는데 공교롭게 촬영날짜와 장소도 겹쳤다.“아, 언니가 여기 있었네?”경이로운 소리가 문밖에서 울렸다. 성신영은 사람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으며 강유리를 보는 순간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그렇게 위선적일 수가 없었다.강유리는 그녀를 힐끗 보고는 입을 열었다.“디자이너부터 모델까지 스케줄 겹치는 걸 이렇게도 좋아하나 봐?”성신영은 얼굴이 조금 굳은 채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언니가 오해한 거야. 내가 요즘 몸이 아파서 촬영을 못 했어. 추 대표님이 내일 홍보 사진을 올린다길래 오늘 부랴부랴 온 거야.”옆에 있던 성신영의 매니저가 한마디 거들었다.“강 대표님, 이 스튜디오는 회사에서 빌린 거예요. 스케줄이 겹쳤다니요? 무슨 말을 그렇게 서운하게 하세요?”그런 매니저를 보면서 성신영이 연약한 척 귀띔했다.“됐어. 그만 해.”“뭐가 됐어요? 이렇게 착하게 구니까 강 대표님이 자꾸 괴롭히는 거예요!”두 사람은 낮은 소리로 토론했다.성신영은 사람들 앞에서 여전히 남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착한 여자 코스프레를 했는데, 억울함과 치욕을 참아내는 모양이 역겨울 지경이었다. 성신영은 고성그룹 덕분에 연예계에서 몸값이 많이 올랐다. 행사할 때도 경호원 여럿이 뒤를 따랐고, 매니저도 거들먹거렸다.“스튜디오에서 대체 어떻게 일하는 거예요? 미리 준비하라고 말하지 않았나요?”스튜디오 사람들은 일이 커질까 봐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저희 쪽 실책입니다. 당장 처리하겠습니다!”스튜디오 직원들은 말을 마친 후 고개를 돌려 강유리 쪽을 보며 말했다.“강 대표님, 성 회장님 분부대로 해야 하니 저녁 시간으로 조정해 드리겠습니다.”이건 상의가 아니라 통보였다.강유리가 대답하지 않자, 성신영은 걱정스러운 척하면서 비아냥거렸다.“언니, 너무 오래 기다리는 거 아니야? 우리 엄청나게 오래 촬영할 텐데?”그 말에 직원 한 명이 알랑거리며 말했
단순히 유강그룹의 촬영이라면 양보하면 그만이었다. 성홍주가 직접 추연화의 수요를 우선으로 하라고 분부했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이제 와서 단순히 유강그룹 촬영이 아니라 그 유명한 디자이너 세마의 촬영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서둘러 사람을 시켜 책임자를 불렀다.성신영 일행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다른 스튜디오 사람들도 소식을 듣고 달려와 그 상황을 구경했다.“어? 성신영이잖아? 여기서 홍보 사진을 찍는 건가?”“마감일이 다 됐는데 이제야 촬영한다고? 하긴, 고성그룹 집안사람인데 어련하시겠어? 이렇게 직업을 막 대해도 되는 건가?”“지금은 부잣집 아가씨인데 예전과 비교할 수 없지.”주위에서 수군거리는 소리에 매니저가 눈살을 찌푸리며 내쫓으려 하자 성신영은 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이번 발표를 계기로 이미지 세탁을 하려는 작정이었다. 금방 고성그룹 집안사람이 된 것처럼 바보스럽게 자기 얼굴을 더럽혀서는 안 되었다.성신영은 각양각색의 시선을 뚫고 천천히 강유리 앞으로 걸어갔다.“언니, 정말 여기 있는 줄 몰랐어요. 폐를 끼쳐서 정말 미안해요. 진작 촬영했어야 했는데 제가 몸이 불편한 바람에……”그녀의 목소리는 주위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높았다. 강유리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응답하는 듯했다.강유리는 눈썹을 한껏 찌푸리고 성신영의 뒷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신영은 정성스럽게 해명했고, 자신의 소매를 잡아당겨 아직 감추지 않은 상처를 드러냈다.“추 대표님 작품에 팔찌도 있어요.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쉬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매니저 오빠가 모든 스케줄을 뒤로 미룬 거예요.”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소파에 기세등등하게 앉아있는 강유리와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강유리는 성신영의 수법을 알아차리지 못해 몇 초 동안 멍하니 있었다. 주위에서 놀람을 금치 못하는 소리가 들렸고, 휴대전화를 들고 동영상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강유리는 다시 그녀의 손에 있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