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멍하니 서 있는 차한숙의 시선은 여전히 성신영의 가녀린 손목을 향해 있었다.비록 다정한 말 한마디 안 해준 건 사실이었지만 맹세코 몸에 손을 댄 적은 없었다.그리고 당황한 척하지만 묘한 제스처로 암시를 주던 성신영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고정남에게 어떻게든 자기가 학대를 받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주고 싶었겠지. 내 딸의 CF를 위해 일부러 손에 상처를 낸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길 바랐던 거야. 하, 이딴 수작에 넘어가? 하긴, 고정남 당신은 애초에 날 겨우 그런 여자로 보고 있을 테니까. 추악한 내 말보다 그렇게 사랑했던 여자가 낳은 금지옥엽 딸의 말을 믿고 싶겠지.”모든 실마리가 밝혀지고 나니 화가 나긴커녕 오히려 이 상황이 우습게 느껴졌다.자리에서 일어선 차한숙이 처음 듣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어머, 그러게 조심 좀 하지 그랬어. 치료 잘 받아. CF 촬영 열심히 해야지.”“...”분명 너무나 친절한 말투였지만 성신영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차한숙까지 자리를 뜨고 식탁 앞에는 어느새 고우신 남매와, 성신영 세 사람만 남게 되었다.여전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성신영은 이번엔 두 남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어떡해요. 아빠가 오해를 하신 것 같아요.”“후...”이에 고우신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두 분 문제니까 두 분이 알아서 하시겠지. 너도 아빠 화 풀리면 제대로 해명하고.”‘누가 들어도 오해할 만한 말이었어. 왜 하필 그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한 걸까?’“손목은 도대체 어쩌다 다친 거야?”“아, 그게...”성신영이 손목을 감싸 쥐었다.“며칠 전에... 너무 배가 고파서... 야식 좀 끓여먹으려다가... 데었어요.”“아주머니한테 부탁하지 그랬어.”고우신이 미간을 찌푸렸다.“아주머니도 주무시는 것 같고... 아주머니가 사모님 사람인 거 저도 다 아는데. 괜히 부탁드렸다가 사모님한테 더... 미움받게 될까 봐...”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식탁 주변에 앉은 사람들이 듣기엔 충분
고주영은 어쩔 수 없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앞으로 엄마랑 성신영의 모순에 대해 참견 좀 그만해!”고우신의 눈빛이 약간 흔들리더니 이내 대답했다.“성신영이 그렇게 싫어?”“그럼 넌 좋아한다는 뜻이야?”“좋아한다기보다는 너무 불쌍해.”“불쌍하다고? 생각이란 걸 하고 살아! 불쌍하다는 사람이 매번 아빠가 집에 올 때마다 갈등을 일으켜? 아빠가 엄마에 대해 불만을 품게 하지 않았냐고!”“우연의 일치 아니야? 설마 그렇게 나쁘기야 하겠어?”고우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또 한 가지 일이 떠올라 다시 입을 열었다.“아빠가 엄마가 한 일을 아직도 원망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고주영은 그의 말에 눈을 질끈 감더니 말했다.“역시. 어리석은 남자들만 이런 저급한 수법에 넘어가겠지. 그리고, 원망하든 안 하든 뭐가 중요해? 지금은 다 한집안 식구인데.”그녀의 머릿속에는 한 사람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오직 그만이 이런 수법에 절대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현명하든 저급하든 그는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그 외국 여자 외에는 아무도 상대하지 않았다. 물론 강유리도 예외는 아니었다……그녀는 현재 육시준 부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육시준은 그녀에 대해 책임질 의무가 있다. ‘엄마 아빠가 지금 지내는 패턴이 뚜렷한 예가 아닌가? 서로 사랑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서로 깍듯이 대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그런 패턴……’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녀는 속으로 후회하면서 되뇌었다.‘그때 맞선에 내가 나갔더라면 내가 육시준 부인이 되었을 게 분명해……’그녀는 두 번이나 기회를 놓쳤다……그때, 고주영이 입을 열었다.“지난번에 육시준이 클럽에 갔다면서?”“아내를 데리고 왔던데. 왜?”“다음에 오면 나한테 알려줘.”……강유리는 완성된 시리즈 제품을 직접 검수하러 나섰다. 장식품은 가공 기술이 정교하고 디자인이 교묘하며 무거운 느낌을 개량하고 현대적인 요소를 첨가하여 화려하면서도 유행을 잃지 않아 사람들의 눈을 번득하게 했다. 육시준은 몹시 놀
이보라는 오전에 불려 와 신주리와 상의하고 신제품을 착용해 보려 했다. 강유리가 온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우연히 세 사람의 대화를 들은 이보라는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이걸 직접 디자인 하셨다고? 육 대표님이랑 결혼식을 준비하신다고?’이보라는 머릿속이 하얘져 몇 분 동안이나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소은이 주문을 넣으라는 소리에 그녀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걸어가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말했다.“주문서를 어떻게……”“주문 넣을 줄 몰라요?”그것은 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가 유강그룹 직원이라는 것이 포인트였다. 이보라는 조금은 불안한 말투로 물었다.“저를 그렇게 믿으세요? 저더러 이런 일을 하라고 시키시다니……”그녀의 말에 소은은 웃으며 말했다.“계약서를 잘 확인하지 않았나 봐요? 보라 씨는 강 대표님 비서잖아요. 어차피 유강그룹도 강 대표 것이 될 텐데 다 한 식구 아니겠어요?”이보라는 망연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그렇기는 하지만, 제가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거 아닙니까?”소은은 살짝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왜요? 입을 막을 일이 생길까 봐 그래요?”이보라는 천천히 손을 올려 자신의 입을 막았다.“그렇게 심각한 일이에요? 아니면 방금 들은 거 모두 못 들은 걸로 할까요?”소은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너무 늦었어요. 이미 다 들었잖아요? 강 대표가 늘 말했는데, 수다 떨기를 그렇게 좋아한다면서요? 정보를 이리저리 넘기고……”“아…… 제가 비밀을 잘 지키기도 합니다.”“못 믿겠어요. 이걸 먹지 않는 이상 정말 믿지 못하겠어요.”소은은 작은 도자기 병을 꺼내더니 까맣고 동글동글한 것을 쏟아 놓았다.“이건 우리 집안에서 만들어낸 약이에요. 보라 씨가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하면 온몸이 간지러울 거예요. 특히 얼굴이 간지러워서 계속 긁게 되고 결국에는 얼굴이 망가지게 돼요. 이걸 먹으면 비밀을 지킬 거라는 걸 믿을게요.”이보라는 얼떨떨한 얼굴로 눈앞에 있는
이보라는 소은의 동작을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몇 발짝 뒤따라갔다.“방금 그거 드신 거예요? 부작용 없어요? 아니면 집안사람이 먹으면 괜찮은 건가요?”소은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더니 말했다.“정말 드라마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에요? 그런 초능력이 어디 있어요?”“드라마에서 나오는 것도 다 생활에서 나온 거라면서요!”소은은 이보라가 참 재밌다고 생각하면서 작은 병을 그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이거 다른 이름이 있어요. 초콜릿이라고 하죠? 저혈당을 방지하는 효능도 있어요. 하나 줄까요?”“됐어요.”얼마 지나지 않아 신주리가 찾아왔다. 신제품을 착용해 보고 바로 촬영장으로 가 다급하게 홍보 사진을 찍었다. 이보라는 발에 불이 나게 바빴고, 머리가 핑그르르 돌 지경이었다. 오후에 촬영이 시작된 후에야 그녀는 조금 정신을 차릴 여유가 있었다. 오전 내내 받은 메시지가 너무 많았는데, 스튜디오에 관한 소식과 강유리에 관한 소식이었다. 그녀는 설레기도 하고 진심으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을 받았다. 덕과 능력이 어찌나 좋은지, 들어가자마자 높은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모두가 그녀한테 조금도 숨김없이 솔직하게 대하니 그녀는 꼭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비밀을 지키리라 다짐했다.이보라는 천천히 강유리한테로 다가가 귓속말로 말했다.“대표님, 추연화도 내일 홍보 사진을 전시한다고 합니다. 동시에 공개하면 좀 그렇지 않나요?”“괜찮아.”강유리는 육시준과 대화 중이었는데 내키는 대로 이보라의 말에 대충 대답했다.“모두가 대표님 작품을 기대하는데요…… 시기가 좀 잘못된 것 같아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요……”“내일 수중 영상 시리즈만 전시하니까 안심해.”“……”강유리의 말에 이보라는 고개를 끄덕였고, 많이 안심되었다. 잠시 후 안심했던 마음이 다시 울렁이기 시작했다. ‘지금 발표하지 않으면 결선 신상 발표회에서 이 작품을 발표한다고? 추연화는 발표 날짜를 강 대표님의 신제품 발표회와 같은 날로 정했는데……’고성그룹 기자회견도
강유리가 정신을 차렸을 때 추연화의 촬영 팀임을 알아차렸다. 방금 이보라가 말하기를 내일 발표한다고 했는데 공교롭게 촬영날짜와 장소도 겹쳤다.“아, 언니가 여기 있었네?”경이로운 소리가 문밖에서 울렸다. 성신영은 사람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으며 강유리를 보는 순간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그렇게 위선적일 수가 없었다.강유리는 그녀를 힐끗 보고는 입을 열었다.“디자이너부터 모델까지 스케줄 겹치는 걸 이렇게도 좋아하나 봐?”성신영은 얼굴이 조금 굳은 채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언니가 오해한 거야. 내가 요즘 몸이 아파서 촬영을 못 했어. 추 대표님이 내일 홍보 사진을 올린다길래 오늘 부랴부랴 온 거야.”옆에 있던 성신영의 매니저가 한마디 거들었다.“강 대표님, 이 스튜디오는 회사에서 빌린 거예요. 스케줄이 겹쳤다니요? 무슨 말을 그렇게 서운하게 하세요?”그런 매니저를 보면서 성신영이 연약한 척 귀띔했다.“됐어. 그만 해.”“뭐가 됐어요? 이렇게 착하게 구니까 강 대표님이 자꾸 괴롭히는 거예요!”두 사람은 낮은 소리로 토론했다.성신영은 사람들 앞에서 여전히 남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착한 여자 코스프레를 했는데, 억울함과 치욕을 참아내는 모양이 역겨울 지경이었다. 성신영은 고성그룹 덕분에 연예계에서 몸값이 많이 올랐다. 행사할 때도 경호원 여럿이 뒤를 따랐고, 매니저도 거들먹거렸다.“스튜디오에서 대체 어떻게 일하는 거예요? 미리 준비하라고 말하지 않았나요?”스튜디오 사람들은 일이 커질까 봐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저희 쪽 실책입니다. 당장 처리하겠습니다!”스튜디오 직원들은 말을 마친 후 고개를 돌려 강유리 쪽을 보며 말했다.“강 대표님, 성 회장님 분부대로 해야 하니 저녁 시간으로 조정해 드리겠습니다.”이건 상의가 아니라 통보였다.강유리가 대답하지 않자, 성신영은 걱정스러운 척하면서 비아냥거렸다.“언니, 너무 오래 기다리는 거 아니야? 우리 엄청나게 오래 촬영할 텐데?”그 말에 직원 한 명이 알랑거리며 말했
단순히 유강그룹의 촬영이라면 양보하면 그만이었다. 성홍주가 직접 추연화의 수요를 우선으로 하라고 분부했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이제 와서 단순히 유강그룹 촬영이 아니라 그 유명한 디자이너 세마의 촬영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서둘러 사람을 시켜 책임자를 불렀다.성신영 일행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다른 스튜디오 사람들도 소식을 듣고 달려와 그 상황을 구경했다.“어? 성신영이잖아? 여기서 홍보 사진을 찍는 건가?”“마감일이 다 됐는데 이제야 촬영한다고? 하긴, 고성그룹 집안사람인데 어련하시겠어? 이렇게 직업을 막 대해도 되는 건가?”“지금은 부잣집 아가씨인데 예전과 비교할 수 없지.”주위에서 수군거리는 소리에 매니저가 눈살을 찌푸리며 내쫓으려 하자 성신영은 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이번 발표를 계기로 이미지 세탁을 하려는 작정이었다. 금방 고성그룹 집안사람이 된 것처럼 바보스럽게 자기 얼굴을 더럽혀서는 안 되었다.성신영은 각양각색의 시선을 뚫고 천천히 강유리 앞으로 걸어갔다.“언니, 정말 여기 있는 줄 몰랐어요. 폐를 끼쳐서 정말 미안해요. 진작 촬영했어야 했는데 제가 몸이 불편한 바람에……”그녀의 목소리는 주위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높았다. 강유리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응답하는 듯했다.강유리는 눈썹을 한껏 찌푸리고 성신영의 뒷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신영은 정성스럽게 해명했고, 자신의 소매를 잡아당겨 아직 감추지 않은 상처를 드러냈다.“추 대표님 작품에 팔찌도 있어요.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쉬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매니저 오빠가 모든 스케줄을 뒤로 미룬 거예요.”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소파에 기세등등하게 앉아있는 강유리와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강유리는 성신영의 수법을 알아차리지 못해 몇 초 동안 멍하니 있었다. 주위에서 놀람을 금치 못하는 소리가 들렸고, 휴대전화를 들고 동영상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강유리는 다시 그녀의 손에 있
순간, 숨 막히는 침묵이 찾아왔고, 강유리의 눈빛이 급격히 싸늘해졌다. 그녀는 성신영이 상황이 좋지 않으면 저절로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그녀를 여기 들인 사람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무고한 사람에게 화를 입힐세라 그녀는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순진했다. 일부 사람들은 업무능력이 딸릴 뿐만 아니라 심리 소질은 더욱 딸리므로 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무슨 일이에요?”책임자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하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육시준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여기 대표님이 점점 보는 눈이 없어지는 것 같네요. 무슨 물건이든 다 잡지사에 끌어들이나요?”그 책임자는 살짝 눈치를 보더니 육시준임을 발견하고 공손하게 앞으로 나가 인사했다. 사건의 경위를 파악한 즉시 일을 잘못 처리한 직원을 처리하겠다고 말했다.그 직원은 자신이 총알받이가 된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강유리한테 소리치다가 또 고개를 돌려 성신영을 향해 소리쳤다.“양심이 있어요? 방금 나한테 내쫓으라고 시켰잖아요! 누가 있든 내쫓으라고 시킬 때는 언제고……”책임자가 소리쳤다.“닥쳐! 얼른 끌고 나가!”그러고 나서 손을 흔들어 경호원에게 그 직원을 데리고 가라는 의사를 표시했다. 한바탕 난리를 결국 스태프들 간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성신영도 대기실에 가서 기다리겠으니 좀 늦어도 괜찮다고 선심을 썼다. 방금 지체된 시간을 보상한다고 하면서 예의 있게 사람들을 데리고 갔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신주리는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신주리가 일을 마치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강유리한테로 뛰어오더니 말했다.“무슨 상황이야?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데?”강유리가 신비로운 말투로 대답했다.“빅 뉴스.”신주리는 그녀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서더니 간절한 말투로 말했다.“얘길 좀 해 봐. 나 안 바빠. 시간 엄청 많다고!”강유리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말했다.“내가 시간 없어. 남편이랑 집에 가야 해. 실시간 검
“내가 직접 한다는 말이 농담 같아?”그의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강유리는 조금 감동을 한 모양인지 그의 곁으로 다가가 입가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수고했어. 이건 포상이야.”강유리의 행동에 멈칫한 육시준이였지만,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다.“다른 사람도 있는데, 주의해.”임강준은 어이가 없었다.“…”날 사람 취급 안 해도 되는데. 너희 둘 싸움만 안 해도 난 감지덕지니까. 강유리는 전에 한번 합작했었던 사진사를 선택하고 장소는 아직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수상황이 있는 하객들을 고려해야 하니까.육시준은 그녀의 말에 이어 물어봤다.“이모는 초대할 거야?”강유리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응답했다.“당연하지. 이모네 가족 모두 초대할 거야.”육시준은 뭔가를 알아차렸다.가족이라면 이모가 전에 비혼주의자라고 했던 것도 그저 거짓말인 것이다.곧 집에 도착할 무렵, 강유리는 아이패드를 놓고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그러고는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육시준을 바라보면서 물었다.“그런데 성신영, 요즘 많이 변한 것 같지 않아?”“그래? 신경 안 써서 모르겠는데.”육시준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역시 환경을 바꾸니까 사람이 확 달라지네. 예전 같으면 걔 분명 나랑 당장에서 싸움 나고 말았잖아.”강유리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차한숙의 교육법이 효과가 있네. 완전히 얌전해졌잖아.”“차한숙 같은 성격에 자기 체면도 버리고 걔랑 싸울 리가 없잖아.”강유리는 그의 말에 놀랐다.“그러면 성신영 팔에 상처는 뭔데? 저절로 그랬단 말이야? 일부러?”육시준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육경원은 어떤 사람 같아?”강유리는 이해가 안 되는 듯한 표정이었다.“육 씨네 집안에 대해 조사해 봤잖아. 그런데 육경원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몰라?”“탐욕적이고 겉과 속이 다른 사람?”“그리고 또?”“그리고?”강유리는 더욱더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건 그녀가 완전히 접해본 적이 없는 부분이다.차가 마당에 세워지고 육시준은 차에서 내리면서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