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의 말에도 강유리는 그저 차갑게 성홍주를 쏘아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차분한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에 성홍주는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저 계집애 앞에만 서면 이상하게 후달린단 말이지.’하지만 회사 임원진들 앞에서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순 없는 법.잠깐 침묵하던 그가 다시 근엄한 목소리로 말해다.“그래. 유강엔터 소속인 신주리를 밀어주고 싶은 마음이야 백번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은 더 큰 곳을 봐야 할 때야. 이번 대회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참가자가 바로 세마와 추연화야. 그만큼 중요한 홍보모델이니까 괜히 수작질할 생각하지 말...”“수작질이요? 뒤에서 온갖 더러운 수작질하시는 건 성홍주 이사님 아니십니까? 자기 앞길을 위해서라면 딸도 팔아버리는 그런 분이시잖아요. 뭐, 그 덕분에 고성그룹이라는 대단한 뒷배를 얻으셨으니 아주 기분 좋으시겠어요?”강유리의 말에 제대로 자극받은 성홍주가 책상을 쾅 하고 내리쳤다.“너 지금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하지만 성홍주가 분노할수록 강유리는 어깨를 으쓱하는 여유까지 보였다.“왜요? 제 말이 틀렸어요? 그 수많은 연예인들 중 왜 굳이 고주영을 추천하는 건지 제가 정말 모를 것 같으세요? 신주리를 추천하는 제게 사심이 있다고요. 네, 그렇다고 칩시다. 그러는 성 이사님은요? 정말 떳떳하십니까?”“고주영이 신주리보다 인기가 더 많은 건 사실...”“신주리의 화제성도 결코 고주영에게 뒤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마가 언제부터 톱클라스 연예인들만 고집했죠? 세마는 오로지 작품의 컨셉과 분위기에 따라 홍보모델을 정해 왔습니다. 아, 외람된 질문이지만 이번 세마의 작품, 무슨 컨셉인지 알고는 계십니까?”강유리의 질문에 성홍주가 드디어 침묵하기 시작했다.아니, 성홍주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귀를 바짝 세웠다.세마의 작품 컨셉은 대회 참가 이후로 철저히 비밀에 붙여져 왔던 사안, 그걸 강유리가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으나 대박 정보인 것만큼은 확실했으니까.
강유리가 반복했다.“세마 신제품 홍보모델로 고주영은 어떻게 생각해?”“미쳤어? 당연히 별로지. 아까 주리 언니랑 계약까지 다 했는데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해? 고성그룹한테서 살해 협박이라도 받았어?”다혈질인 도희가 바로 목소리를 높였다.‘역시, 이럴 줄 알았지.’“말했잖아. 임원진들의 건의사항이라고.”“...”한동안의 정적끝에 도희가 헛웃음을 지었다.“그럼 미안한데 네가 그 잘나신 임원진들분들께 얘기 좀 해줄래? 홍보모델은 우리가 이미 알아서 정했다고. 그쪽에서 신경 쓸 필요 없다고.”“그래. 그럼 끊어.”통화를 마친 강유리는 휴대폰을 내려놓곤 성홍주 일행을 바라보았다.“다들 들으셨겠지만... 한발 늦었네요. 이미 계약까지 끝냈다는데요.”여전히 차분한 강유리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성홍주는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저 계집애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 맞지? 지금 우리 한 방 먹이려고 일부러 이런 거 아니야!’물론 강유리 역시 홍보모델이 신주리로 내정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다.뭐, 이건 하늘이 그녀의 편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어찌 되었든 이 통화로 임원진들의 망상은 완전히 깨부쉈으니, 강유리는 만족스러웠다.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잔뜩 굳은 얼굴로 회의실을 나선 성홍주는 사무실로 돌아와 바로 추연화를 호출했다.“세마 새 작품 어떤 스타일인지 알고 있나?”이미 40대인 추연화였지만 어깨까지 오는 중장발에 식지, 중지에 독특한 디자인의 액세서리까지 하고 있는 모습은 딱 봐도 나 아티스트예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성홍주의 질문에 추연화는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건 기밀사항이라는 걸 알고 계실 텐데요?”안락한 의자에 기대어 앉은 성홍주는 묘한 눈동자로 추연화를 훑어보았다.“정말 몰랐나? 이번 자네의 작품이 세마의 것과 굉장히 흡사하던데.”“하.”자존심이 상당히 상한 추연화가 헛웃음을 터트렸다.“회장님, 지금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잔뜩
추연화가 사무실을 나서고 혼자 남은 성홍주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세마, 독창적인 재능으로 슬럼프라곤 없을 것 같은 불세출의 디자인 천재, 대중들이 그녀에 대한 이미지기도 했다.그런데 그런 그녀가 이번에 추연화의 컨셉을 베꼈다?‘정말 슬럼프라도 온 걸까? 아니면 같은 컨셉이라도 추연화를 이길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만약 전자라면... 우리에겐 분명 유리한 상황이야. 세마의 이미지가 일낙천장할 테니까. 만약 후자라고 해도... 우리 쪽에서 가만히 있을 순 없지.’한편, 사무실로 들어가려던 강유리는 컵을 든 기연아가 하품까지 해가며 탕비실로 들어가는 걸 발견했다.오후쯤이면 졸려서 탕비실에서 수다라도 떨지 않으면 일이 손에 안 잡힌다나 뭐라나...“연아 씨, 이쪽으로 와봐요.”“...”강유리를 발견한 기연아는 반쯤 남은 하품을 억지로 다시 삼켜냈다.‘얼마 전까지 동료였던 사람이 갑자기 상사가 되다니.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니까.’부랴부랴 달려간 기연아가 물었다.“네, 대표님.”두 사람이 선후로 사무실로 들어서고...“세마 홍보모델이 정해졌어요. 이번 건은 연아 씨가 컨택하도록 해요. 곧 도희가 연락할 거예요.”“정말요?”방금 전까지 졸림으로 가득 차 있던 기연아의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누군데요? 신주리예요 아니면 고주영이에요?”“신주리 씨로 정해졌어요.”“오!”기연아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잘됐네요. 저도 신주리 팬인데. 그래도 이번엔 고성그룹이 버티고 있으니 이번 홍보모델은 힘들겠다 싶었는데...”워낙 회사에서 소식통인 기연아가 홍보모델 최종 후보를 알고 있는 것쯤은 전혀 놀랍지 않았다.“그런데 뭐요?”‘아, 신주리 씨도 유강엔터 소속이었지.’아차 싶은 생각에 기연아가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아, 아닙니다. 결국은 신주리 씨로 결정될 것 같았어요.”“이번에 세마가 내놓은 신제품은 총 두 점이에요. 하나는 물그림자 시리즈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대외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건데 옥비녀 시리즈라고 전통 혼
그렇다면 방금 전 들은 말을 이 회사에서 아는 사람이라곤 강유리와 그녀뿐이라는 뜻.‘만약 이 사실이 유출된다면 바로 내가 의심받게 되는 거잖아... 아니지?’기연아는 적당히 정보를 유출하고 다른 정보를 캐내는 것도 능력이라며 칭찬하던 강유리의 말을 떠올렸다.“대표님, 설마... 제가 이 소식을 퍼트리길 바라시는 겁니까?”기연아가 조심스레 물었다.“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얘기하면 되는 거죠?”‘역시, 기연아... 똑똑한 여자야. 구체적으로 짚어주지 않아도 바로 알아듣네.’강유리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일과 관련된 내용 말고 전부요.”그렇게 사무실에서 나온 기연아는 빈 물컵을 들고 넋이 나간 얼굴로 자리에 돌아왔다.지금까지 온갖 업무는 다 맡아봤지만 일부러 소문을 퍼트리는 업무라니.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그럼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일이 정말... 세마 스튜디오를 위한 거였어?’“연아 씨, 왜 멍하니 앉아있어요. 대표님한테 혼난 거예요?”옆에 있던 동료가 조심스레 물어왔다.“아니요!”정신을 차린 기연아가 눈을 반짝였다.“우리 커피 한잔할래요? 내가 대박사건 하나 알아냈는데...”...잠시 후, 퇴근을 위해 건물을 나선 강유리는 낯익은 얼굴과 마주한다.번듯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고정남 역시 그녀를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왔다.“강유리 씨, 우연이네요.”“우연이라뇨. 제가 퇴근하려면 이 문을 무조건 나서야 한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인데. 용건 있으면 그냥 얘기하시죠. 아, 홍보모델 건은 안 됩니다. 이미 계약까지 전부 체결한 상태라서요.”강유리가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고 완전히 주도권을 빼앗은 고정남은 잠깐 벙찐 표정을 짓다 웃음을 터트렸다.“이 핑계로 밥 한번 사려고 했는데... 너무 쉽게 들켜버렸네요.”계단 위에 서 있는 강유리가 고정남을 내려다보며 물었다.“그럼, 남은 용건은요?”피식 웃던 고정남이 자동차 조수석 문을 열었다.“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같이 식사나 해주시죠?”잠깐 망설이던 강유리가 고개를
차량은 한참을 달려 단아한 분위기의 한식당에 도착했다.“뭐 좋아해요?”“매운 건 잘 먹나?”“해산물은 좋아해요?”“와인은 어때요? 술 좋아하나?”메뉴판을 들여다보며 고정남은 끊임없이 질문을 이어갔지만 강유리의 표정은 점점 더 짜증스러워질 뿐이었다.메뉴 주문을 마치고 직원이 멀어지자 강유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고 대표님, 이렇게까지 제 비위 맞추실 필요 없습니다. 대표님이 무슨 짓을 하시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요. 뭐,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고 해도 이 식사 한 번으로 무조건 오케이라는 대답이 나올 리도 없고요.”그녀의 말에 고정남은 오히려 너털웃음을 지었다.“참 직설적인 성격은 나랑 아주 비슷하구먼. 마음에 들어요.”‘하, 누가 그쪽 마음에 들고 싶대?’강유리가 속으로 구시렁댔다.잠시 후, 메뉴들이 하나둘씩 테이블에 오르고 고정남은 요리 하나하나에 들어간 재료까지 설명해 주는 인내심을 보였다.대충 요리를 다 맛본 강유리가 드디어 먼저 포문을 열었다.“그래서... 도대체 용건이 뭐죠?”“뭐가 그렇게 급해요. 일단 이것부터 먹어봐요. 내가 특별히 부탁해서 땅콩가루는 빼달라고 했으니까. 땅콩 싫어한다면서요...”탁.젓가락을 내려놓은 강유리가 차가운 얼굴로 고정남을 노려보았다.그 시선을 느낀 고정남이 어깨를 으쓱했다.“뭐, 뒷조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난 어디까지나 유리 씨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알아본 것뿐이에요.”“제가 그쪽 따님과 사이가 안 좋은 건 맞습니다만 맹세코 제가 먼저 건드린 적은 없으니 괜히 저한테 관심 가지지 마세요.”이때, 깊은 한숨을 내쉬던 고정남이 어색하게 화제를 돌렸다.“육시준 대표 말입니다. 유리 씨한테 아주 특별한 존재인가요?”‘뭐야? 성신영이 아니라 고주영 때문에 온 거였어?’“부부사이니 특별하다면 그 누구보다 특별하다고 할 수 있죠.”강유리는 특별히 부부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두 사람 어떻게 만났습니까?”“그게 왜 궁금하시죠?”잠깐 멈칫하던 고정남이 대답했다.“
자리에서 일어서 컵에 꽂힌 빨대를 챙긴 고정남 역시 식당을 나섰다.한편, 레스토랑을 나선 강유리를 맞이한 건 익숙한 롤스로이스 차량이었다.마침 차에서 내린 육시준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괜찮은 거지?”“그럼, 괜찮지.”괜찮다는 말에도 강유리의 몸 이곳저곳을 훑어본 뒤에야 육시준이 그녀를 에스코트했다.집으로 돌아가는 길, 굳은 표정으로 침묵을 유지하는 육시준을 보고 있자니 괜히 더 화를 내기 민망해진 강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아, 괜찮아. 그냥 같이 식사 한번 한 것뿐이야. 고정남도 바보도 아니고 사람들 다 보는 데서 나한테 무슨 짓이야 하겠어? 당신한테 문자 한 건 어디까지나 괜히 엇갈릴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고!”“그래서, 왜 널 만나러 온 건데?”육시준의 질문에 강유리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몰라. 이상한 질문만 잔뜩 하더라고. 뭐 나에 대해 더 잘 알고 싶다나 뭐라나.”“너에 대해 알고 싶다고?”육시준이 미간을 찌푸렸다.“응.”강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게다가... 뭐 우리 엄마 납골당에 가보고 싶다나... 설마... 나한테 관심 있는 건 아니겠지?”충격 발언에 깜짝 놀란 임강준이 거세게 브레이크를 밟았다.관성에 의해 바로 몸이 앞으로 쏠렸지만, 육시준의 탄탄팔이 그녀를 지탱해 주었다.“임 비서!”육시준의 호통에 임강준이 보기 드물게 당황한 기색으로 변명을 이어갔다.“앞 차가 갑자기 끼어들어서요. 죄송합니다, 대표님, 사모님!”오히려 강유리는 손을 내저었다.“괜찮아요, 괜찮아. 운전에 집중하세요. 우리 대화 엿듣지 말고요.”“...”‘저도 엿듣고 싶지 않아요. 사모님께서 너무 크게 말씀하셔서 그런 거 아닙니까!’“앞으로 고정남 최대한 피해 다녀. 단둘이 만나는 건 더더욱 안돼.”“뭐?”“사랑의 라이벌이라고 해주기도 짜증 나지만 그 정도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짜증 나니까.”“...”‘그냥 대충 말한 건데 그걸 또 진지하게 받아들이냐...’이에 강유리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내가 볼
잠시 후, 집에 도착한 육시준은 정원에서 문기준의 전화를 받았다.“대표님, 고정남 대표가 사모님과 함께 식사한 테이블에서 빨대를 챙겨 병원에 도착한 것으로 보입니다.”이에 육시준이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어느 병원인데?”“고성그룹 산하의 DNA 감식센터입니다.”“...”육시준의 침묵에 문기준 역시 긴장하기 시작했다.솔직히 오늘 처음 고정남의 행동을 지켜볼 때까지만 해도 이 남자 혹시 변태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여성이 사용했던 빨대를 몰래 챙기는 모습, 누가 봐도 정상처럼 보이진 않았으니까.하지만 고정남이 그 길로 바로 병원으로 향하는 걸 본 순간, 지금까지 육시준이 그에게 알아보라고 했던 내용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며 머릿속에 놀라운 가설이 생성되기 시작했다.“앞으로 찰리와 함께 움직이도록 해. 고정남 대표가 검사결과지를 받는 일은 없어야 할 거야.”이번 일을 위해 히든카드나 다름없는 프로 해커 찰리까지 동용하다니. 이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 건지 알아챈 문기준의 목소리가 한결 더 무거워졌다.“알겠습니다.”통화를 마친 육시준은 잠깐 고민하다 임강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고정남도 귀국한 마당에 아직도 고성그룹은 고 회장 위주로 돌아가고 있나?”‘갑자기 고성그룹에 대해 물으신다고?’흠칫하던 그가 살짝 안경테를 올리며 대답했다.“최근 고성그룹에 큰 이슈는 없는 것 같습니다. 굳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라면 되찾은 딸에 대한 기자회견과 그 자리에서 소속 디자이너가 새로운 작품을 발표한다는 것쯤이랄까요?”“디자이라면 추연화인가?”“네. 추연화는 워낙 고성그룹과 각별한 사이입니다. 화제성 면에서 세마를 눌러버리기 위해 특별히 이번 기회를 이용하려는 것 같습니다.”“...”그저 입을 꾹 다물고만 있는 육시준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방법이 없으니 임강준은 말을 이어갔다.“저희 LK 쥬얼리 소속의 두 디자이너도 전부 결정에 진출했습니다. 세마도 꽤 마음에 들어한다고...”“추연화가 포인트네. 고성그룹이 확 바빠지게
“이미 뉴스에 나왔으니까.”육시준이 대답했다.‘하, 내가 성홍주를 너무 과소평가했네. 그 정도로 경고하면 당분간이라도 가만히 있을 줄 알았는데. 감히 선수를 쳐? 그럼 이제 작품을 발표해도 내 입장만 난처해지게 생겼잖아...’“이게 정말 이번 대회의 메인 테마야?”육시준이 다시 한번 캐물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강유리가 고개를 들었다.“어느 쪽인 것 같아?”설계도면을 내려놓은 육시준이 뭔가 더 말하려던 그때, 뭔가 묘한 향기가 풍겨오고 육시준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강유리의 날카로운 펀치가 바로 육시준의 코 앞에서 멈췄다.“내가 이기면 그때 얘기해 줄게.”여유롭게 펀치를 피한 육시준이 어깨를 으쓱했다.“그냥 대답하고 싶지 않다고 얘기해.”며칠 전 육시준과의 “난투”에서 패배한 뒤로 강유리는 시간 날 때마다 육시준에게 기습공격을 하곤 했다.뭐 그때마다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말이다.“어쭈 피해?”...그리고 5분 뒤.두 손을 완전히 뒤로 꺾이고 얼굴은 책상에 처박다시피 한 강유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육시준! 진짜 와이프한테 이렇게까지 할 거야? 그 외모로 왜 20년 동안 솔로로 살았나 했더니... 성격이 더러워서였네!”이에 육시준은 손목에 더 힘을 주며 우아한 목소리로 물었다.“응? 뭐라고?”“아아아, 아파! 이거 좀 놔봐!”“일단 질문에 대답부터 해.”“대회에 주제 같은 건 없었어! 추연화 그 자식이 내껄 베낀 거라고!”강유리의 대답에 육시준의 눈이 살짝 커졌다.추연화, 그쪽으로 뭔가 시나리오를 써볼까 했더니 이렇게 바로 소재를 던져주시네...“왜 그렇게 확신해?”“그거야...”육시준의 손목에 힘이 점점 풀리기 시작하자 이때다 싶은 생각에 강유리는 그의 다리 사이를 향해 킥을 날렸다.화들짝 놀란 육시준이 뒤로 물러서며 강유리는 드디어 자유를 얻게 되었다.“미쳤어? 얘가 얼마나 중요한데! 너, 신중하게 생각해. 남은 부부생활 행복하게 할 수 있냐가 달린 문제기도 하니까.”육시준이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