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안방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육시준을 제대로 혼내 줄 생각이었다.남자가 돼선 식을 올리고 싶으면 올리는 거지 왜 엄마 핑계, 아빠 핑계를 대며 내 맘을 떠보는 거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그런데... 육시준은 역시나 그녀의 예상을 훨씬 더 뛰어넘는 남자였다.자기 주장이 넘치다 못해 이미 결혼식 준비까지 거의 다 마친 상태라니.허리춤에 당당히 얹은 손이 왠지 살짝 떨려왔다.“그럼... 생일날... 식 올리든가...”비록 모기소리만큼 작은 목소리였지만 육시준이 이를 놓칠 리가 없었다.“정말?”“정말이지 그럼! 내가 설마 결혼식 날짜로 장난을 치겠어!”그럼에도 앙큼하게 혼자 식 준비를 진행한 육시준이 왠지 얄미워진 강유리는 고개를 홱 돌렸다.“진짜 생일날에 올릴 거야 아니면 가짜 생일날에 올릴 거야?”“큼... 뭐, 아무 날이나 상관없잖아?”그녀의 대답에 겨우 풀렸던 육시준의 얼굴이 다시 굳어버렸다.“상관없어? 아니, 인생에 한번뿐인 결혼식이야. 좀 진지하게 생각하면 안 돼?”“진짜, 진짜 생일날 올려!”강유리가 다급하게 대답했다.“가짜 생일은 그냥 아무렇게나 정한 날짜란 말이야. 솔직히 지금까지 생일이라고 딱히 축하받은 적도 없고.”“임천강이 생일파티도 안 해줬어?”“뭐?”이 상황에서 갑자기 전남친 언급이라니.강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내 진짜 생일을 아는 사람은 당신까지 네 사람뿐이야.”“다른 세 사람은 누군데?”육시준이 눈을 가늘게 떠보였다.“우리 엄마, 우리 할아버지, 그리고 나까지.”“...”한편, 어느새 침대에 올라온 강유리는 애교 넘치는 고양이처럼 꿈틀대더니 바로 육시준의 품을 파고들었다.“아니, 그렇게 준비를 하고 있었으면 미리 말을 하든가! 그리고 아무리 섭섭해도 그렇지. 와이프를 문전박대를 해? 우리 둘 다 잘못했으니까 쌤쌤, 없던 일로 치자, 응?”고개를 숙인 육시준의 눈동자에 귀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강유리의 얼굴이 들어왔다.다른 사람에게는 항상 차갑고 도도한 그녀, 이런 표정을 볼 수
껄렁거리듯 마지막 음을 살짝 올리는 목소리가 왠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일부러 그런 거잖아! 그러니까 이건 무효야!”하지만 눈을 아무리 부릅 떠 보아도 이미 얼굴까지 잡힌 상황에서 그녀의 말이 위협이 될 리가 없었다.오히려 잔뜩 바람을 불어넣은 볼이 귀엽게 느껴지고...고개를 숙인 육시준은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웃음소리에 따라 강유리가 손을 올린 그의 가슴 역시 들썩거리고 진동 때문인지 손바닥이 어딘가 찌릿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정말 이럴 거야...”“기회 한 번 더 줄 테니까 이번엔 잘해 봐.”“뭐...”이번에도 역시나 강유리가 미처 반응하기 전에 폭풍 같은 키스가 시작되었다.‘악마 같은 자식...’이 게임에 재미라도 들린 듯 육시준은 그녀의 숨이 다할 때까지 폭풍 키스를 이어가다 살짝 숨 쉴 틈을 준 뒤 또 다시 키스를 이어가기를 반복하길 몇 번....참다못한 강유리가 이번엔 그의 어깨를 잡은 채 허리를 돌리며 어떻게든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려 했다.하지만 저번에 이미 한번 똑같은 술수에 당한 적 있는 육시준은 능숙하게 이를 피해 버리고 오히려 그녀를 다시 침대에 눕혀버렸다.‘허, 피해?’이 방법이 통하지 않은 건 처음이라 당황한 것도 잠시, 순간 승부욕이 타오른 강유리는 또 예리한 공격을 해보지만... 이 역시도 육시준은 너무나 쉽게 피해버렸다.안방. 두 사람이 쿵쾅대는 소리가 더 세게 울려 퍼지고...한편, 마침 계단을 오르던 아주머니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아이고, 젊다, 젊어.’...지난밤의 치열한 전투가 어찌나 피곤했던지 강유리는 다음 날 점심이 되어서야 부스스 눈을 떴다.그리고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도희에게 문자를 보냈다.[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났을 땐 어떻게 해야 해?]약 3초 후, 부리나케 전화를 해온 도희가 고래고래 소리쳤다.“뭐? 이길 수 없는 상대? 누군데? 너, 뭐 이상한 짓 당한 거 아니지? 호신용품 이런 건 안 챙겼어?”쏟아지는 질문에 목소리는 또 어찌나 높은지 강유리는 저
[내가 왜 알렉스한테 내 사무실 감시하라고 했는지 알아?]강유리가 문자를 보냈다.[그거야 너희 회사에 스파이가 있으니까!!]휴대폰을 내려놓은 강유리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스파이라고 단언할 순 없지만 본부에 그녀를 탐탁치 않게 보고 있는 이들이 한, 두 명이 아닌 것만은 자명한 사실.중요한 정보는 굳이 사무실에서 처리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시간은 빠르게 흘러 디자인대회는 어느새 결승전을 맞이하게 되었다.사실 대회 자체보다 세마와 추연화가 차례로 새 작품을 발표할 것이라는 뉴스가 더 눈길을 끌긴 했지만 말이다.그중 추연화의 새 작품은 고성그룹 고정남 대표가 오래전 잃어버린 딸이 착용한 채 그녀의 신분을 밝히는 기자회견장에 참석하기로 했다. 이는 앞으로 고성그룹과 유강그룹의 지속적인 협력을 의미하기도 했다.그보다 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건 바로 세마의 작품이었다.정식으로 국내 시장 문을 두드리는 건 이번이 처음, 그 첫 포문을 누가 열 것인지. 누가 가장 먼저 새 작품을 착용할 것인지 그 어느 때보다 열띤 토론이 이어졌지만 세마는 일관적으로 기밀사항이라 아직 발표할 수 없다는 말뿐이었다.인터넷에서 두 브랜드의 팬들이 자기 쪽 디자이너가 더 대단하다고 키보드 전쟁을 벌이는 한편, 유강그룹 역시 작은 폭풍을 맞이하고 있었다.그리고 그 시작은 이번 세마 새 작품의 홍보대사를 고주영에게 맡기자는 누군가의 제안 때문이었다.이 안건은 회의에서 바로 투표에 붙여졌고 당연하게도 강유리, 사인호 등 소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이에 찬성을 표했다.이때, 평소 성홍주와의 친분을 믿고 항상 강유리에게 태클을 걸어왔던 김 이사가 비아냥댔다.“강유리 대표님, 고주영 씨를 홍보대사로 선정하는 걸 반대하신다는 건... 생각해 두신 다른 후보가 있어서입니까?”“그럼요.”강유리가 침착하게 대답했다.“당연하죠. 전 신주리 씨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유강엔터 쪽에서도 어떻게든 신주리 씨가 홍보대사를 할 수 있도록 최대한 힘쓰고 있는 중이고요. 설마 모르셨
하지만 그의 말에도 강유리는 그저 차갑게 성홍주를 쏘아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차분한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에 성홍주는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저 계집애 앞에만 서면 이상하게 후달린단 말이지.’하지만 회사 임원진들 앞에서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순 없는 법.잠깐 침묵하던 그가 다시 근엄한 목소리로 말해다.“그래. 유강엔터 소속인 신주리를 밀어주고 싶은 마음이야 백번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은 더 큰 곳을 봐야 할 때야. 이번 대회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참가자가 바로 세마와 추연화야. 그만큼 중요한 홍보모델이니까 괜히 수작질할 생각하지 말...”“수작질이요? 뒤에서 온갖 더러운 수작질하시는 건 성홍주 이사님 아니십니까? 자기 앞길을 위해서라면 딸도 팔아버리는 그런 분이시잖아요. 뭐, 그 덕분에 고성그룹이라는 대단한 뒷배를 얻으셨으니 아주 기분 좋으시겠어요?”강유리의 말에 제대로 자극받은 성홍주가 책상을 쾅 하고 내리쳤다.“너 지금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하지만 성홍주가 분노할수록 강유리는 어깨를 으쓱하는 여유까지 보였다.“왜요? 제 말이 틀렸어요? 그 수많은 연예인들 중 왜 굳이 고주영을 추천하는 건지 제가 정말 모를 것 같으세요? 신주리를 추천하는 제게 사심이 있다고요. 네, 그렇다고 칩시다. 그러는 성 이사님은요? 정말 떳떳하십니까?”“고주영이 신주리보다 인기가 더 많은 건 사실...”“신주리의 화제성도 결코 고주영에게 뒤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마가 언제부터 톱클라스 연예인들만 고집했죠? 세마는 오로지 작품의 컨셉과 분위기에 따라 홍보모델을 정해 왔습니다. 아, 외람된 질문이지만 이번 세마의 작품, 무슨 컨셉인지 알고는 계십니까?”강유리의 질문에 성홍주가 드디어 침묵하기 시작했다.아니, 성홍주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귀를 바짝 세웠다.세마의 작품 컨셉은 대회 참가 이후로 철저히 비밀에 붙여져 왔던 사안, 그걸 강유리가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으나 대박 정보인 것만큼은 확실했으니까.
강유리가 반복했다.“세마 신제품 홍보모델로 고주영은 어떻게 생각해?”“미쳤어? 당연히 별로지. 아까 주리 언니랑 계약까지 다 했는데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해? 고성그룹한테서 살해 협박이라도 받았어?”다혈질인 도희가 바로 목소리를 높였다.‘역시, 이럴 줄 알았지.’“말했잖아. 임원진들의 건의사항이라고.”“...”한동안의 정적끝에 도희가 헛웃음을 지었다.“그럼 미안한데 네가 그 잘나신 임원진들분들께 얘기 좀 해줄래? 홍보모델은 우리가 이미 알아서 정했다고. 그쪽에서 신경 쓸 필요 없다고.”“그래. 그럼 끊어.”통화를 마친 강유리는 휴대폰을 내려놓곤 성홍주 일행을 바라보았다.“다들 들으셨겠지만... 한발 늦었네요. 이미 계약까지 끝냈다는데요.”여전히 차분한 강유리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성홍주는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저 계집애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 맞지? 지금 우리 한 방 먹이려고 일부러 이런 거 아니야!’물론 강유리 역시 홍보모델이 신주리로 내정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다.뭐, 이건 하늘이 그녀의 편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어찌 되었든 이 통화로 임원진들의 망상은 완전히 깨부쉈으니, 강유리는 만족스러웠다.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잔뜩 굳은 얼굴로 회의실을 나선 성홍주는 사무실로 돌아와 바로 추연화를 호출했다.“세마 새 작품 어떤 스타일인지 알고 있나?”이미 40대인 추연화였지만 어깨까지 오는 중장발에 식지, 중지에 독특한 디자인의 액세서리까지 하고 있는 모습은 딱 봐도 나 아티스트예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성홍주의 질문에 추연화는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건 기밀사항이라는 걸 알고 계실 텐데요?”안락한 의자에 기대어 앉은 성홍주는 묘한 눈동자로 추연화를 훑어보았다.“정말 몰랐나? 이번 자네의 작품이 세마의 것과 굉장히 흡사하던데.”“하.”자존심이 상당히 상한 추연화가 헛웃음을 터트렸다.“회장님, 지금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잔뜩
추연화가 사무실을 나서고 혼자 남은 성홍주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세마, 독창적인 재능으로 슬럼프라곤 없을 것 같은 불세출의 디자인 천재, 대중들이 그녀에 대한 이미지기도 했다.그런데 그런 그녀가 이번에 추연화의 컨셉을 베꼈다?‘정말 슬럼프라도 온 걸까? 아니면 같은 컨셉이라도 추연화를 이길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만약 전자라면... 우리에겐 분명 유리한 상황이야. 세마의 이미지가 일낙천장할 테니까. 만약 후자라고 해도... 우리 쪽에서 가만히 있을 순 없지.’한편, 사무실로 들어가려던 강유리는 컵을 든 기연아가 하품까지 해가며 탕비실로 들어가는 걸 발견했다.오후쯤이면 졸려서 탕비실에서 수다라도 떨지 않으면 일이 손에 안 잡힌다나 뭐라나...“연아 씨, 이쪽으로 와봐요.”“...”강유리를 발견한 기연아는 반쯤 남은 하품을 억지로 다시 삼켜냈다.‘얼마 전까지 동료였던 사람이 갑자기 상사가 되다니.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니까.’부랴부랴 달려간 기연아가 물었다.“네, 대표님.”두 사람이 선후로 사무실로 들어서고...“세마 홍보모델이 정해졌어요. 이번 건은 연아 씨가 컨택하도록 해요. 곧 도희가 연락할 거예요.”“정말요?”방금 전까지 졸림으로 가득 차 있던 기연아의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누군데요? 신주리예요 아니면 고주영이에요?”“신주리 씨로 정해졌어요.”“오!”기연아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잘됐네요. 저도 신주리 팬인데. 그래도 이번엔 고성그룹이 버티고 있으니 이번 홍보모델은 힘들겠다 싶었는데...”워낙 회사에서 소식통인 기연아가 홍보모델 최종 후보를 알고 있는 것쯤은 전혀 놀랍지 않았다.“그런데 뭐요?”‘아, 신주리 씨도 유강엔터 소속이었지.’아차 싶은 생각에 기연아가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아, 아닙니다. 결국은 신주리 씨로 결정될 것 같았어요.”“이번에 세마가 내놓은 신제품은 총 두 점이에요. 하나는 물그림자 시리즈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대외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건데 옥비녀 시리즈라고 전통 혼
그렇다면 방금 전 들은 말을 이 회사에서 아는 사람이라곤 강유리와 그녀뿐이라는 뜻.‘만약 이 사실이 유출된다면 바로 내가 의심받게 되는 거잖아... 아니지?’기연아는 적당히 정보를 유출하고 다른 정보를 캐내는 것도 능력이라며 칭찬하던 강유리의 말을 떠올렸다.“대표님, 설마... 제가 이 소식을 퍼트리길 바라시는 겁니까?”기연아가 조심스레 물었다.“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얘기하면 되는 거죠?”‘역시, 기연아... 똑똑한 여자야. 구체적으로 짚어주지 않아도 바로 알아듣네.’강유리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일과 관련된 내용 말고 전부요.”그렇게 사무실에서 나온 기연아는 빈 물컵을 들고 넋이 나간 얼굴로 자리에 돌아왔다.지금까지 온갖 업무는 다 맡아봤지만 일부러 소문을 퍼트리는 업무라니.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그럼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일이 정말... 세마 스튜디오를 위한 거였어?’“연아 씨, 왜 멍하니 앉아있어요. 대표님한테 혼난 거예요?”옆에 있던 동료가 조심스레 물어왔다.“아니요!”정신을 차린 기연아가 눈을 반짝였다.“우리 커피 한잔할래요? 내가 대박사건 하나 알아냈는데...”...잠시 후, 퇴근을 위해 건물을 나선 강유리는 낯익은 얼굴과 마주한다.번듯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고정남 역시 그녀를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왔다.“강유리 씨, 우연이네요.”“우연이라뇨. 제가 퇴근하려면 이 문을 무조건 나서야 한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인데. 용건 있으면 그냥 얘기하시죠. 아, 홍보모델 건은 안 됩니다. 이미 계약까지 전부 체결한 상태라서요.”강유리가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고 완전히 주도권을 빼앗은 고정남은 잠깐 벙찐 표정을 짓다 웃음을 터트렸다.“이 핑계로 밥 한번 사려고 했는데... 너무 쉽게 들켜버렸네요.”계단 위에 서 있는 강유리가 고정남을 내려다보며 물었다.“그럼, 남은 용건은요?”피식 웃던 고정남이 자동차 조수석 문을 열었다.“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같이 식사나 해주시죠?”잠깐 망설이던 강유리가 고개를
차량은 한참을 달려 단아한 분위기의 한식당에 도착했다.“뭐 좋아해요?”“매운 건 잘 먹나?”“해산물은 좋아해요?”“와인은 어때요? 술 좋아하나?”메뉴판을 들여다보며 고정남은 끊임없이 질문을 이어갔지만 강유리의 표정은 점점 더 짜증스러워질 뿐이었다.메뉴 주문을 마치고 직원이 멀어지자 강유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고 대표님, 이렇게까지 제 비위 맞추실 필요 없습니다. 대표님이 무슨 짓을 하시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요. 뭐,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고 해도 이 식사 한 번으로 무조건 오케이라는 대답이 나올 리도 없고요.”그녀의 말에 고정남은 오히려 너털웃음을 지었다.“참 직설적인 성격은 나랑 아주 비슷하구먼. 마음에 들어요.”‘하, 누가 그쪽 마음에 들고 싶대?’강유리가 속으로 구시렁댔다.잠시 후, 메뉴들이 하나둘씩 테이블에 오르고 고정남은 요리 하나하나에 들어간 재료까지 설명해 주는 인내심을 보였다.대충 요리를 다 맛본 강유리가 드디어 먼저 포문을 열었다.“그래서... 도대체 용건이 뭐죠?”“뭐가 그렇게 급해요. 일단 이것부터 먹어봐요. 내가 특별히 부탁해서 땅콩가루는 빼달라고 했으니까. 땅콩 싫어한다면서요...”탁.젓가락을 내려놓은 강유리가 차가운 얼굴로 고정남을 노려보았다.그 시선을 느낀 고정남이 어깨를 으쓱했다.“뭐, 뒷조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난 어디까지나 유리 씨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알아본 것뿐이에요.”“제가 그쪽 따님과 사이가 안 좋은 건 맞습니다만 맹세코 제가 먼저 건드린 적은 없으니 괜히 저한테 관심 가지지 마세요.”이때, 깊은 한숨을 내쉬던 고정남이 어색하게 화제를 돌렸다.“육시준 대표 말입니다. 유리 씨한테 아주 특별한 존재인가요?”‘뭐야? 성신영이 아니라 고주영 때문에 온 거였어?’“부부사이니 특별하다면 그 누구보다 특별하다고 할 수 있죠.”강유리는 특별히 부부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두 사람 어떻게 만났습니까?”“그게 왜 궁금하시죠?”잠깐 멈칫하던 고정남이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