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원치 않아. 아직 아이 가질 준비가 안 됐어.”“그럼 갖지 말자.”강유리에게 한없이 잘해주던 그 남자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그녀는 육시준이 며칠 동안 귀신에 씌었던 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위아래로 훑어보는 여자의 이상한 눈빛에 육시준은 조금 부자연스럽게 헛기침을 뱉어냈다. 복잡한 문제를 해명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몸을 일으키며 화제를 끝낼 뿐이었다.“씻고 나와서 밥 먹고, 좀 이따 내가 회사에 데려다줄게. 방금 유강 그룹에서 온 소식인데, 이사회에서 너의 대한 중대 안건을 결정하겠데.”“…”가는 길 내내 강유리의 정신은 딴 곳에 팔려있었다.어차피 벌어질 현실이라 딱히 더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기에 유강 그룹의 일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다.그녀의 정신을 팔리게 한 건 다름 아닌 바로 육시준이 했던 말들 때문이다. 그녀는 아직도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막 입을 열어 물어보려는 그때 육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더 이상 세마 만날 일없어. LK 주얼리도 더 이상 그 사람이랑 협력하지 않아도 되고.”그냥….중간에 뭔가 자신이 모르는 일이 있는 것만 같았다.유강 그룹.강유리는 회사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을 느꼈다. 다들 웃는 얼굴로 그녀를 맞아주고 있었다. 찬 바람 쌀쌀 불던 예전과는 아예 다른 모습이었다. 제일 열정적인 사람은 ‘오지랖이 넓던’ 그때 그 인턴이었다.인턴은 강유리에게 다가오더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소문들을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거 알아요? 유리 씨 곧 진급한대요! 아니, 진급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한걸음에 하늘을 오른 거나 다름이 없어요! 성 대표님이 이사회에서 지분 10프로를 유리 씨에게 준다고 발표했어요. 저도 방금 들은 소식이에요. 유리 씨도 이제 회사 주주가 되는 거예요!”강유리는 인턴을 위해 준비한 케이크를 건네주며 아무 상관도 없는 말을 묻기 시작했다. “너, 세마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알아?”“네?”호기심이 가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이곳으로 쏠리고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벌써부터 ‘열정적인’ 사람이 이 문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혀를 씹어댔을 것이다. 아마 강유리를 질책했겠지. 아가씨면 뭐? 결국에는 실질적인 권력도 없으면서. 장규진은 성 대표의 비서였다. 더 귀한 사람이 누군지는 모두 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은 모두 냉정하게 이 상황을 지켜보기만 할 뿐 감히 나서지 않았다. 다들 이 아가씨 예전에 자신들이 했던 무례한 행동을 기억이라도 할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장비서는 이런 냉정한 눈빛을 느꼈는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는 분노를 억누르며 말을 꺼냈다. “이사회에서 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아직 지분 양도 수속은 끝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근데 벌써부터 이렇게 권력을 뽐내지 못해 안달이 나시다니..” “당연하죠. 이게 다 장 비서님한테서 배운 게 아니겠어요?” 강유리는 웃음을 짓더니 이내 화제를 바꾸었다. “하긴 이러면 안 되긴 해요. 누구 말이 맞는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아는 거니까요.” 그녀의 말 속에는 다른 뜻이 숨어있었다. 텃세를 부리며 권력을 뽐내던 장규진이 지금 그 행동의 응보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조롱하는 게 분명했다. 그녀의 말은 주위 사람들의 입도 막아버렸다. 그동안 잘난체하던 사람들은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강유리는 몸을 일으키더니 위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도희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날 밤 육시준이랑 무슨 말 했어?’ 만약 외부에 세마에 관한 소문이 떠돌지 않았다면 문제는 분명 이곳에서 나타났을 것이다. 육시준은 세마를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세마에게 적대감도 좀 가지고 있는 것 같고. 왜? 뭐가 상황을 이렇게 만든 거지? 바쁜 건지, 강유리가 성홍주의 사무실에 도착했는데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소파에 앉은 그녀는 눈앞에 놓인 파일을 보며 일부러 모르는 척을 했다. “성 대표님, 이게
녹음에는 강유리가 대답한 조건에 관한 내용만 담겨있어 전체적으로 성홍주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불리한 요구들은 이렇게 얼버무리며 넘어가는 것이었다. 그러게 누가 강유리보고 술에 취해 기억도 못 하래? “어차피 난 상관없어요. 육시준 명성이 나랑 크게 상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지분 10프로가 내 손에 들어오게 된다면 그룹에서 묵묵히 일하는 직원보다는 처지가 나아지겠죠. 성 대표님, 더 볼일 없으시면 저는 이만 가볼게요.” 그녀는 계약서를 거두며 몸을 일으켰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성홍주의 얼굴은 그만 얼어버리고 말았다. “강유리! 기어코 같이 죽어보자는 거냐!” 강유리는 오만하게 그를 내려다보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성 대표님, 그렇게 말하시면 안 되죠. 계약을 파기하려는 사람도, 부탁을 하는 사람도, 저의 신용을 바닥으로 끌어 내리려는 사람도 다 대표님이잖아요.” “…” “세마랑 얘기하는 건 동의했어요. 대신 제대로 보상해야 하고, 조건은 우리 엄마가 남긴 지분으로 하는거로 결정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차가웠다. “하지만 대표님, 방금 세마를 설득해달라고 하면서 고작 지분 10프로로 절 치워버리려고 했잖아요. 이건 기만과 다름없는 행동이에요. 죽자고 달려드는 사람이 누군데요?” 그녀의 말에 성홍주의 낯빛은 단번에 어색해졌다. 어젯밤의 상태를 보아하니 이번 대화는 수포로 돌아간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번의 대화만으로 그는 먼저 선수를 치는 것으로 예상치 못한 효과를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세마를 설득하고 육시준의 압력을 없애는 것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었다. 게다가 지분을 준다는 건 그녀가 감지덕지해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반응 할 시간도 주지 않고 속전속결로 해결한다면 목적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자세히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술에 취해서 한 말을 진짜라고 생각하신 건 아니죠?’ 성홍주는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정
돌아가는 길에 강유리는 생각할수록 점점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성홍주가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도 인지하지 못할 뻔 했기 때문이다. 유강 그룹의 주식이 큰돈은 아니지만 그녀가 정 때문에 돌려받고 싶어 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인데 왜 성홍주는 그렇게 포기하지 않는 걸까?그녀를 견제하는 걸까?그녀를 견제하기 위해 세마가 대신 주식을 요구하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다니!육시준은 그쪽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얼마나 신중했으면 그녀를 이런 지경까지 견제하는 걸까?또 성홍주는 이익밖에 모르는 사람인데 그녀를 견제하기 위해 돈도 마다 할까?“네가 생각해 봐. 유강 그룹에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지는 않은지.”그녀가 갑자기 소리 내며 말했고 남한테 묻는 것이 아니라 혼자 중얼거렸다.차를 몰고 있던 문기준이 후시경으로 그녀를 보고 말했다.“사모님, 저한테 얘기하신 건가요?”강유리가 문기준을 보며 말했다.“너는 알아?”문기준이 답했다.“알아낼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그녀는 문기준이 정보 수집에 능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그녀가 찾을 수 있는 자료는 전부 비즈니스적 측면의 자료였고 그녀가 강 씨에 대한 인지로 분석하기엔 너무 일방적이었다.그러나 문기준이 찾으면 달랐다.“최근 몇 해 동안 유강 그룹의 운영 방식, 그리고 성홍주의 인적 관계에 대해 알아봐줘. 가능하면 간단한 분석 보고를 하나 만들어주면 더 좋고.”강유리가 진지하게 말하자 문기준이 예의를 갖추며 머리를 끄덕였다.“네.”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리며 메시지가 왔다.강유리가 폰을 들고 확인하자 도희의 문자였고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도 애원이 느껴진다.[내가 무슨 말을 했겠어? 당연히 너 얘기를 했겠지. 넌 정말 나쁜 X이야. 고작 그런 일로 날 팔아먹다니. 조심해! 너 몰래 독타서 못난이 만들어 버릴 테니까!]강유리가 답장했다.[내 얼굴에 주름이 하나라도 더 생기면 다 네 탓일 거야. 구체적으로 나에 대해 뭐라 한 거야?]도희가 차갑게 답장했다.
문자 한 김에 성홍주가 이미 그녀와 세마의 사이를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 협상은 방식을 주의해야 한다고 얘기했다.이 모든 것을 끝내자 강유리가 다시 보드판을 꺼내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기록하려고 했다.육시준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시안 하나를 마친 상태이다. 한 손으로 머리를 지탱하며 보드를 보고 멍 때리고 있는데 사람이 들어왔는지도 몰랐다.뒤에서 냉랭한 목소리가 들리자 그의 정신이 돌아왔다.“당신 친구 말이 맞아. 당신이랑 세마 사이가 더 각별하더라고 스케치까지 보여줄 정도로.”강유리가 머리 돌려 그를 보며 말했다.“언제 들어왔어?”육시준이 차갑게 말했다.“네가 다른 사람 스케치를 보며 멍 때리고 있을 때.”강유리. ”......”그녀는 눈을 깜빡이고 머리를 갸우뚱하며 육시준을 보며 갑자기 물었다.“여보, 이 팔찌 어때? 세마 평상시 스타일을 벗어난 것 같지 않아? 더......”“더 소심해졌어. 다들 이 디자이너님이 아이디어 바닥날 때가 없다고 하는데 나는 아닌것 같아!”육시준이 스크린을 지긋이 보며 트집을 잡는 표정이었다.별로라는 표정이 얼굴에 쓰여 있는 것 같았다.강유리가 입꼬리를 씰룩이며 그의 표정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좀 객관적일 수는 없을까?”육시준의 시선이 그녀의 몸에 머물렀다.“왜? 사실도 말을 못 하게 해?”강유리”......”그래.네가 잘났지 뭐. 사실만 얘기해.두고 봐.저녁 식사 타임은 이상한 침묵 속에 끝이나 버렸다. 하지만 식사가 끝난 후, 두 사람은 소파 위에서 움직이지를 않았다.평소라면 강유리가 육시준이 안방으로 들어오기를 빌며 적극적으로 물건을 옮겨와야 하는데 강유리는 마치 까먹은 것처럼 전혀 적극적이지가 않았다.육시준은 마치 나는 무척 도도하다는 모양으로 누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절대로 먼저 다가오지 않는다.시침이 열두시를 가리키자 강유리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하품으로 안방에 들어갔다.계단에 올라서고 뒤에 인기척이 없자 머리를 돌려 육시준을 보며 물었다.“안 자?”육시준은
강유리의 남편은 우수한데다 태생이 우월한 사람이라 영원히 승리를 손에 거머쥔 고오한 자태여야 했다. 그렇기에 속상함을 참고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육시준이 그녀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입술을 움찔했다.“하고 싶은 얘기 더 있어?”“나만 속 좁은 거 아니지? 당신도 질투 난거 맞지?”강유리가 조심스레 물었다.“......”육시준이 말없이 천천히 그녀 옆에 다시 누웠다.임청강은 그냥 그녀와 오래 함께한 것을 질투하고 사적으로 만나는 거에 불만 있을 뿐 그들이 다시 눈이 맞을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필경 임천강을 한 번도 경쟁자라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하지만 그 세마는 달랐다.그는 천재에다 능력도 있고 재간도 있으며 강유리를 신경 쓰는 마음도 있다.육시준은 남자이게에 남자를 더 잘 안다. 마음속으로 그녀를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여자한테 그렇게나 마음 쓸 수가 없다.게다가 강유리가 세마와 더 오랜 시간을 알았고 그를 더 의지하고 믿는다.그 점 만으로도 육시준은 진 셈이였다.마음이 불편해서 질투가 생기면 표현해도 되고 달래주면 된다.그러나 정말 위기감이 느껴져하는 질투는 쉽게 달래지지 않느다.강유리 말대로 그들은 더 많은 시간으로 서로를 알아갈 필요가 있다.“말 안 하는 거면 인정하는 거지?”강유리가 다가와 몸을 그의 팔에 기댔다.육시준이 멈칫하더니 꿈틀거리는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인정하거나 안 하면 뭐 어때? 인정하면 그 사람이랑 계속 거리 유지할 거야?”강유리 머리를 갸웃 뚱하며 일부러 고민하는 척하고 말했다.“그건 안될것 같아.”육시준은 그녀를 내려보더니 갑자기 그녀의 엉덩이를 큰 소리 나게 때렸다.“나를 비웃으려고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은 거야?”힘은 세지 않았으나 소리는 무척이나 컸다.강유리가 머리가 하얘지고 수치심이 폭발하더니 혈압이 머리끝까지 올랐다.그녀가 손을 지탱하며 벌떡 이러나 엉덩이를 잡으며 그를 한참 째려보며 말했다.“왜 때려! 남자는 입으로 말하는 거지 손찌검 하는 거 아니야!
강유리가 그의 불만을 무시한 채 배시시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당신도 세마 뒷조사 중이라며?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거야? 그건 내가 알려줄 수 있는데”“필요 없어.”육시준의 목소리가 더 가라앉았다.“LK 주얼리에서 그 사람이랑 계약 안 하기로 했어.”“진짜? 기회가 찾아왔는데도 필요 없어?”“......”육시준은 말없이 그녀를 뚫어지게 봤다.강유리는 유난히 거슬리게 말했다.“당신도 나 몰래 도희랑 만났잖아. 사실 도희 말이 맞아. 나를 찾아왔어야지. 나랑 세마 정말 친해, 내가 찾아가면 제일 최적이였던거야.”그녀는 육시준이 신경 쓰는 걸 알면서도 쫑알쫑알 거리며 세마 얘기를 계속 했다.육시준도 당연히 일부러 그러는 걸 눈치챘지만 사실이기에 반박하지 못했다.안색이 점점 어두워졌고 분위기가 점점 더 차가워졌다.강유리도 눈치채고 그만하려고 했지만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따져 물었다,“정말 안 알려줘도 돼? 진짜 괜찮은 사람이야. 후회하지 마!”육시준은 그녀의 해맑은 얼굴을 보자 말했다.“말해봐, 얼마나 괜찮은지”그 어떤 남자라도 육시준보다 더 강유리한테 잘할까?더 잘해줬다면 그녀가 이미 그 사람이랑 결혼했을거고, 육시준은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일단 세마는 정말 미인이야!”강유리가 목 한번 풀고 한마디로 그녀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그 말을 듣고는 육시준은 어이가 없었다. 강유리가 계속 얘기했다.“나랑 위 아래를 가릴 만큼 예쁘고 나처럼 몸매도 죽여! 능력으로는 아이디어가 바닦날 때가 있지만 그래서 얼마 전에 쉬었잖아. 근데 쉬는 동안에도 자기 결혼반지도 디자인했다? 스타일은 약간 왜소해 내 거랑 비슷 하달가......”그녀는 얘기하면서 약지에 있는 결혼반지를 흔들어 보였다.그리고 몰래 육시준의 표정을 관찰했다.희미한 불빛 아래 남자는 날카로운 얼굴에 당황하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강유리가 입꼬리를 씩 올리고 육시준의 귀가에 대고 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니가 지금까지 여자를 질투했던 거 알아? 여자일 뿐만 아니라.
육시준이 멈칫하더니 검은 눈동자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어색하고 정중하게 경고했다.“이 얘기 더는 꺼내지마. 꺼내면 나 또 엉덩이 때릴 거야.”“......”정말 뻔뻔한 협박이었고 정말 쓸데가 없었다.그녀도 일부러 비웃은 게 아니라 약간 민망해 했다.“우리 오늘 밤에는 못 할 것 같아.”육시준이 반응 못한 채 말했다.“뭐?”강유리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급히 일어나 화장실로 뛰어갔다.며칠 늦어진 생리가 이제야 온 것이다!십분 뒤.그녀가 아랫배를 잡으며 힘없이 안방으로 돌아왔다방금 전이랑 다른 것은 얼굴에 홍조가 가라앉은 것이었고, 오히려 창백해졌다.육시준이 그 모습을 보고 다가와 그녀를 부추기며 말했다.“왜? 생리 시작했어?”강유리가 힘없이 그의 어깨에 기댔다.“응. 이번엔 좀 늦게.”육시준이 천천히 그녀를 끌어안고 허리를 숙여 그녀의 허벅지 뒤로 손을 넣은 후 그녀를 가볍게 안아 올려 침대로 돌아갔다.이불 속에 쪼그려 송골송골 땀을 흘리고 있는 그녀를 보며 육시준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많이 힘들어?”“윽… 괜찮아. 그냥 아쉬울 뿐이야. 아까 멈추지 말고 다하고 얘기했었으면...”강유리 목소리가 허약했다.“......”육시준이 몇 초 멍해 있다 그제야 반응했다.그녀의 솔직함에 놀랐다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도 이럴 때만 할 말을 막 하곤 한다. “이럴 때 그런 생각 하다니 너무 아픈 건 아닌가 봐?”육시준이 낮게 말했다.강유리가 입을 삐죽이고 억울해 하며 말했다.“집중력을 딴 데로 옮기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남편이 아껴주지 않으니 나 스스로 아픔을 달래봐야지.”육시준은 그녀의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며 그녀를 보고 있었다.“잠시만.”방문이 또 닫히고 육시준이 나갔다.강유리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고 아랫배는 누가 때린 것처럼 아프다.너무 아파서 토하고 싶을 정도이다.근데 잠시만이라고? 이럴 때일수록 같이 있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나쁜 남자, 기다리라니!”육시준은 잘생기고 돈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