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이 제 발 저린 모습을 한 소은을 바라보던 강유리는 눈을 깜빡거렸다.“아주 교활한 애야. 속지 말길 바래.”고개를 돌린 그녀는 여전히 침착한 그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당부했다.육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난 당신한테만 속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도대체 무슨 얘길 한 거지?그녀는 몰래 그의 눈치를 살폈다. 분노나 불만 같은 감정들이 보이지 않자 조금 안도할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잠긴 그녀는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나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남자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되물었다.“내가 뭘 물어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 아니면 나한테 할 말이 있어?”입을 열었으니 솔직하게 털어놓을 준비가 된 상태이다. “나와 둘의 사이에 대한 얘기잖아. 그들이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아?”“친구라고 했으니, 여기에 나타나는 게 아주 정상적이지.”“...”와, 남편이 갑자기 이해심이 깊어졌네?강유리는 빙그레 웃으며 다가갔다.“그저 일반 친구는 아니거든.”둘은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서 있었다. 여리고 사랑스러운 그녀의 모습에서는 방금 무대 위에서 풍기던 우아하고 차가운 아우라를 볼 수 없었다. 남자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와인을 잡고 다른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벽에 비스듬히 기대 눈앞의 사랑스러운 여자를 응시하고 있었다.이 장면이 어느 한 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 기자는 빠르게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촬영 후 잘생긴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정도면 충분한 화제거리인 것 같았다.육시준의 단 두 번의 공개 석상에 모두 강유리가 함께 하고 있었다.귓속말을 주고받고 있는 둘은 누군가가 그들을 당당하게 도촬하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들의 대화는 계속되었다.그녀를 지긋이 바라보던 육시준은 화제를 돌렸다.“아저씨의 와인잔을 받는 모습이 아주 능숙하던데?”멈칫하던 강유리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우리 사이를 처음 안 내 주변의 친구들도 충격받았잖아? 아저씨도 마찬가지일 테니
“이 모든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으면서 왜 애초에 내가 신아람이란 것은 몰랐던 거야?”그녀는 입을 삐죽거렸다. 과거를 들먹여 그의 기를 꺾고 싶었다.그래서 뭐? 그만 똑똑한가?아무리 똑똑해도 모두 무릎 꿇지 않았던가?그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그는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내 추측이 정확하다는 거지?”“...”그녀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면서 서로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던 둘의 약속이 떠올랐다.그래.천천히 알아가게 하면 되지....유강그룹은 유명한 디자이너를 위한 환영식을 호텔의 펜트하우스 전체 층을 모두 전세하여 열었다.쥬얼리 업계의 디자이너는 물론 유명 기업의 사장들도 초대되었다.그중 가장 먼저 초대받은 것은 육씨 가문이었다.LK주얼리 담당자 외에도 적지 않은 가족분들도 초대되었다.예를 들어, 육경원과 육경민.모두가 알다싶이 LK주얼리는 세마와 손잡으려 했었다. 육경원이 직접 참석하는 것으로 상대에 대한 진심을 보여줄 계획이었다. 하지만 육경민 경우에는 단순한 사냥을 하려고 참석한 것 같았다.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는 사람은 갑자기 이런 행사에 나타난 그가 곤란해할 강유리의 모습을 노리고 있다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성씨 가문도 개의치 않는 존재가 신분 상승해 그의 앞에서 감히 콧대를 높이려고 하다니.그는 강유리가 오늘 얼마나 난처하게 될지 기대하고 있었다.누구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육씨 가문의 셋째와 넷째가 동시에 얼굴을 비춰 환영식이 더 성대해졌다는 것만 알 뿐이다.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여러 거물들 사이를 편안하게 거닐고 있는 성홍주는 지금이야말로 그의 인생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했다.강씨 가문의 어르신과 강민영이 살아있었을 때는 그는 그저 조수 역할이었다. 그들이 떠나고 유강그룹은 활기를 잃었다. 이렇게 성대하게 무언가를 준비해 그가 주인공이 된 적이 없었다.이런 경험은 오늘이 처음이었고 이것은 그의 새로운 시작이었다.하지만 이런 좋은 느낌은
두 사람도 어마어마한 명성을 자랑했다. 게다가 지금 상황에서 세마와 관련된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감히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성홍주는 성신영더러 함께 모시러 가자고 했다.성신영은 난감해하며 말했다.“저희 진심을 세마 님도 느끼셨을 거예요. 서두를 필요 없어요. 도착한 후에 내려가도 늦지 않아요.”“그래요. 당연히 느끼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주소를 헷갈려서 아래층의 출시 파티에 참석했네요.”육경민이 가볍게 흘린 정보에 성홍주가 발걸음을 멈췄다.고개를 돌린 그는 육경민을 노려보았다.“뭐라고 했어요? 어디로 갔다고요?”떠벌이는 성격에 기분까지 더러워진 육경민은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그는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모시려는 당신의 손님이 다른 이의 축하 파티에 갔다고! 수십 년을 업계에 있었으면서 어떻게 딸보다 인맥이 없을 수 있어!”같은 시간, 같은 장소, 한쪽은 열기로 북적이는데 다른 한쪽은 썰렁하기 그지없을 것이 그저 웃겼다.육경민이 메가폰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현장의 사람들은 이렇게 빨리 소식을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적어도 내일이 되어야 알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소란을 피운 그덕분에 모두 알게 되었다.성홍주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원래는 작은 범위내에서만 주목을 받았지만, 그 범위가 점점 커지더니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그의 머릿속은 하얀 백지상태가 되었다.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말했다.“주인공도 오지 않은 자리를 우리는 왜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거죠?”“맞아요. 저녁 시간을 낭비했네요. 돌아갑시다.”“그 장인은 신비주의라 안 오실 줄 알았어.”“그러게.”비꼬는 이들은 평소 유강엔터와 아무 상관이 없는 그저 시간만 때우려는 이들이었다.배경도 있는 사람들이고 심지어 성홍주보다 지위가 높아서 그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아주 솔직했다.꽤 사이가 괜찮았던 이들은 떠나려 했지만, 눈치를 보며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소식을 들은 거물급 인사들은
아래층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자신의 지성이 모욕당하는 느낌이었지만 남편에게 화풀이할 수 없었던 강유리는 소은에게 분풀이하기로 했다.그녀의 옆에선 강유리는 차갑게 노려보았다.소은은 애써 그녀의 시선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피할 수 없게 되자 바른대로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LK 주얼리의 첫사랑 시리즈가 여전한 인기를 끌고 있어서 디자이너에 대해 문의하고 싶었을 뿐이야! 지인의 힘으로 내부정보도 알아보려 했어.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런 식으로 보지 마.”그녀는 겁이 났다.강유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육씨와는 협력하지 않기로 했잖아! 그런데 회장님을 구슬려 정보를 캐내려 하다니 간땡이가 부었네?”“회장님이 아니고, 형부잖아! 형부는 소문처럼 무섭지 않았어. 오히려 친해지기 쉬운 타입이었어.”“그래. 어울리기 쉬운 타입이지.”몇 마디 대화로 그들의 관계를 파악했다.그와 더 교류했다간 탈탈 털릴 수밖에 없었다.불공평했다.육시준은 자신의 옛날이야기, 우정 같은 건 하나도 털어놓지 않았는데 그녀는 속내까지 고스란히 간파당했다.소은의 눈이 반짝거렸다.“언니도 느꼈지? 형부는 아주 괜찮은 사람 같아. 심지어 친구들에게도 다르게 대하잖아.”그녀의 말에 강유리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사실이었으니까...“아닌데? 나에겐 불친절하던데?”성규는 최애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그러다 와이프가 다른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심통이 났다.“난 별로야.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고개를 돌린 소은이 성규를 흘겼다.“네가 뭘 알아? 무턱대고 누군가의 와이프를 포옹하려고 하니 상대가 기분이 좋겠어?”알렉스가 의아해하며 대꾸했다.“정상적인 인사잖아. 주아 씨와 포옹했을 때 넌 화내지 않았고 여전히 다정했잖아.”성규의 말에 소은은 입을 다물었다. 그 광경이 웃긴 강유리가 그를 바라봤다.갑자기 성규는 복잡한 감정에 휘말리기 시작했다.“내가 다른 여자를 안아도 아무렇지 않은 거야? 사랑이 식었어? 왜 그렇게 마음이 넓어?”소은
그는 완쾌 후 강유리를 처음 만났다.자신을 평생 장애인으로 만든 원수를 본 눈에 핏발이 섰다. "강유리 씨, 정말 우연이네.” 강유리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며 말했다. "공교롭게도 여긴 나의 유강엔터의 축하 행사니까. 넌 이제 나를 알게 되지 않았나? 왜 아직도 나를 강유리 씨라고 부르지?” “아 참, 내가 네 형수이면 네가 내 사돈인 건가?” 그녀는 말을 하며 방금 온 성홍주를 바라보았다. "네가 내 사돈이면, 성 이사는 누구지? 내 양아버지?" 성홍주는 이 말을 듣고 얼굴이 굳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왜 헛소리를 하고 있어!” 강유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잘못 말하진 않았잖아요?” "가능하다면, 넌 태어나지 못하게 했어야 했어! 너 때문에 오늘도 성씨 가문은 물론이고 강 씨 그룹의 명성과 체면은 엉망이 되었어!” 그는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유리는 지금까지 성홍주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그녀를 마치 원수를 보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예전에도 그녀를 미워하기는 했지만 교활하고 계산적인 모습이었지, 오늘처럼 이렇게 직설적인 적은 없었다.게스트 두 명만 뺏았을 뿐인데, 이렇게 침착하지 못하다고? 그녀는 약간 당황했다. 자신의 표정을 감추고 싶었으나 얼굴에서 완전히 당황함을 가리지 못했다. 순간, 옆에 한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자연스럽게 그녀를 자신의 품에 안았다. 익숙한 품에 안긴 강유리는 얼굴을 들어 자신을 걱정하고 있는 눈빛을 보았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그를 안심시켰다. “당신이 강 씨 그룹을 인수한 뒤 엉망진창이 되었는데 체면이 안 설게 뭐가 있어요?"그녀의 나른한 목소리로 무심하게 말했다.성홍주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그녀를 향해 손을 들며 말했다.“이런 나쁜...”육시준이 눈을 가늘게 뜨자, 옆에 있던 도희가 성홍주의 손을 막으며 세게 밀었다."나이도 있으신 분이 이유도 없이 사람을
육경원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며 육시준을 바라보았다. "큰형, 말이 좀 이상하네요. 자신을 위해 만찬을 준비한 줄 알면서도 다른 데로 가는 것이 문제없는 건가요? 세마가 아무리 유명 인사여도 안하무인은 아니지 않나요? 장소를 착각하고 잘못 간 것 외에 달리 설명이 안되지 않아요?” "환영 만찬은 세마를 위해 준비했다고 하는데 초대받았어요?" 육시준이 도희에게 물었다. “아니요.” 도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육시준은 다시 물었다. "그럼 강 사장이 만찬 전에 당신을 초대했나요?” 도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그녀가 초대했어요. 나를 초대하지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그녀와 같이 있겠어요! 우리는 좋은 친구예요.” 육시준은 육경원과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잘 들었어? 이 정도면 답이 됐나?” 육경원은 믿을 수 없는 눈빛으로 강유리를 바라보았다. 강유리가 그들과 좋은 친구라고? “세마가 환영 만찬에 참석하지 않아서 강씨 그룹의 체면이 구겨진 것은 이해해. 하지만 성 이사님은 아무 이유 없이 강 사장한테 화풀이를 했으니 설명을 좀 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육시준이 차분한 목소리로 정곡을 찔렀다. 하지만 그의 차가운 눈빛에 성홍주는 심장이 움츠러들었다 “어... 나는……” "게다가 초대을 받고 불참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만약 유강그룹이 나에게 초청장을 보냈는데, 내가 참석하지 않으면 날 찾아와 왜 참석하지 않았냐고 따질 건가요?”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몰래 비웃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토론하기도 하였다. "누가 육 회장에게 찾아가서 따지겠어, 미쳤어?” "그러니까! 참석할지 말지는 자기 마음이지, 어디 쫓아가서 안 왔다고 따져!” "유강그룹하는 짓이 좀 웃기네!” "육 회장이 강 회장을 위해 나서는데 왜 이렇게 멋있는 거야? 둘 사이가 보통은 아닌 것 같아!” “...” 분위기가 어색해지면서 성홍주는 얼굴도 들지 못하는 상황에, 조명휘는 눈치 없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
도희와 알렉스에게 몇 마디 인사를 하며, 자신은 궁금해서 그랬던 것이지 따지러 온 것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와줘서 고맙다며 강유리한테 그들을 잘 대접하라고 말했다. 그는 인사치레를 하고 나서 황급히 떠났다. 여한영은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앞으로 나서서 말을 꺼내 볼 틈도 없이, 적군이 의기소침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앞에 있는 육시준을 한참 동안 쳐다보고는 하석훈에게 몸을 돌려 말했다. "육 사장님이 우리 강 사장님을 지나지게 방어해 주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하석훈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가요? 불의를 보고도 가만히 있는 것이 더 이상한 것 아닙니까?” ".....” 여한영은 아무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도와준 사람이 육시준이잖아! 육씨 가문의 실세, 집안의 첫째 아들! 평소 이런 지루한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체면을 세워주지도 친절하지도 않은 냉담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불의를 보고 나선다? 칵테일 파티는 작은 소란을 뒤로하고 곧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하지만 강유리가 세마 스튜디오 사람들과 친분이 있어 유강그룹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하 주차장. 성신영은 빠른 걸음으로 성홍주를 쫓아가 빠른 말투로 말했다 "아빠, 언니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왜 언니를 보내서 나를 곤란하게 하는 거야?” 차에 타려던 성홍주는 잠시 멈춰 서서 그녀를 차갑게 쳐다보며 말했다. "말이 나왔으니 좀 물어보자, 너 강유리가 세마 스튜디오 사람들과 친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성신영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냥 아는 사이를 친분이라고 할 수 없잖아.” "kaylen이 수많은 손님들 앞에서 내 체면을 그렇게 구겨 놨는데, 그게 그냥 아는 사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 성신영은 반박할 수 없어 말을 하지 않았다. 성홍주는 심호흡을 했다. "너와 네 엄마가 한일이의 일로 유라에 대해 의견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 난 충동적으로 그런 결정을 한 것이 아니야.”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쨌든 상대의 지위가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개의치 않고 말할 수 있지? 육 사장은 여자를 멀리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두 사람의 갑작스러운 결혼은 아무리 생각해도 협력을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갑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행동할 수 있지? 그는 입을 열어 그녀에게 몇 마디 훈계하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육시준이 먼저 말을 꺼냈다. "유리랑 결혼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강유리는 도도한 표정과 거만한 눈빛으로 말했다. "들었죠? 그가 영광이라고 했어요." "...” 조명휘는 자신의 나이를 핑계 삼아 얼굴에 철판을 깔고 그에게 강유리를 잘 보살펴 달라고 몇 마디 당부하려 했지만 지금은 할 말이 없다. 그는 그들의 관계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여기서 더 이상 말을 덧붙이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다.조명휘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돌아가는 길에 자기 딸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조보희는 처음엔 경계하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두 사람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고 자세한 사항을 알고 싶다고 말하자, 조보희는 여러 가십거리를 그에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녀가 알고 있는 사실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나마 가장 잘 아는 내용은 라운지에 가서 호스트바 선수를 찾은 것과 육씨 가문 셋째 사모와의 갈등이었다. 선수 남자를 찾는 일을 말하자 조명휘의 안색이 변했다."그날 남자 홍보담당자가 잘못 보낸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육 사장은 너에게 항상 자기 아내를 데리고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고 경고했잖아!” "내가 그의 아내를 데리고 간 게 아니야, 그의 아내가 나를 데리고 간 거야?! 난 그런 자리는 처음 가봤다고! 하지만 정말이지, 안영 언니 라운지의 선수들은 정말 최고야, 몸매와 얼굴은 연예계의 아이돌이랑 맞먹어......” 조보희는 말을 하면 할수록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즐거워했다. 실컷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갑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