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시준은 벽에 기대었다. 손에 든 와인 잔이 심하게 흔들리자, 그는 잔을 살짝 기울여 와인이 흐르지 않게 했다.앞에 있는 조그만 여자는 겨우 자신의 가슴팍까지 밖에 오지 않았다. 그가 한쪽 팔만으로 다 감싸 안을 수 있을 정도였다.그는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과 눈을 맞추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잘못 느낀 거야.”“...”그녀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그녀는 이미 이 남자가 고의로 한 행동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덕적인 문제에 대해 그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해주려고 하자, 시준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네가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다고 생각하긴 했어. 그래서 난 그냥 네가 작가인 줄만 알았지.”“...”강유리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어떻게 알았어?”말을 마친 후, 그녀는 놀란 듯한 그의 표정을 보고는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망할, 불 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그럼 그렇지, 안 좋은 일은 꼭 몰려오더라...남자의 그윽한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천천히 앞으로 다가왔다. “강 사장, 역시 대단해. 생산부터판매까지 다 책임지는 것도 모자라, 로열을 봉으로 만들어서 드레스까지 만들어오게 하다니!”강유리는 몹시 당황에 뒤로 물러났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봉은 무슨 봉이야, 서로 윈윈하는거지!”등이 벽에 닿아 더 이상 물러날 길이 없었다. 남자는 앞으로 몸을 숙여 압박감 있는 눈빛으로 그녀를 주시했다. “순수하고 솔직한 마음으로 협력하는 걸 윈윈이라고 하는 거야. 강 사장이 하고 있는 건 사기고.”“지금 우리 관계, 거짓말하면 분명 서로 감정 상할 거야!”“우리가 무슨 관계인데? 소지석도 아는 걸 내가 모른다고?”“소지석은 몰라!”“...”육시준은 잠시 멈칫하더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강유리는 그의 표정이 풀린 것을 보고 빠져나갈 구멍을 찾은 듯 서둘러 그의 비위를 맞춰 주었다.“작가는 나야. 이건 아직 아무도 몰라! 진짜 우리 둘밖에 모르는 비밀이야!”
육시준은 한 손으로 와인잔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네.”유리는 이전에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정체에 대해 은근한 힌트를 주었는데도 모두 무시당했다.“남편에 대해 많이 알고 싶어서 내가 따로 공부 좀 했지.”“못 믿겠어.”“그럼 내가 오늘 밤 당신 방에 가서 확인해 볼까?”그녀는 까치발을 든 채 그의 귓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매우 유혹적이었다.집 안에는 아직 오 씨 아주머니와 류 집사가 있었다. 요 며칠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오 씨 아주머니는 이상한 시선으로 유리를 바라보았고 식탁 위 진수성찬은 더욱 사람을 골치 아프게 만들었다.피할 수 없으니 차라리 호텔에 있는 게 맘 편했다. 그녀의 심리적 부담도 줄어들었다.육시준은 이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손을 꽉 쥐었다. 몇 초간 침묵한 뒤 말했다. “이렇게 철이 들었다니, 기회를 한 번 더 주지.”......연회장은 여전히 분주했다. 여한영과 하석훈은 대부분의 비즈니스 관계를 파악하는 데에 문제가 없었지만 다니엘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몰라 강유리의 소개가 필요했다.물론 강유리만이 그렇게 생각했다.그래서 그녀는 시준을 설득하여 먼저방으로 가 그녀를 기다리게 한 다음 연회장으로 다시 돌아갔다.연회장에 들어선 순간, 그녀의 눈빛이 달라졌다.여한영은 역시 사교계의 꽃이라는 별명에 맞게 ‘자기 사람들’과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벌써 다니엘을 자신의 진영에 끌어들여 그를 대신해 꿍꿍이를 품고 접근하는 사람들을 쳐내고 있었다. 강유리가 돌아온 것을 보자, 여한영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그녀를 맞이했다.“왜 다시 오셨어요? 다니엘 씨가 본부장님은 이런 자리를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했어요. 여긴 그냥 저희에게 맡기세요!”이 말과 함께 옆방으로 유리를 밀어 넣었다. “저분들이 방금 본부장님에 대해 물어봤어요. 오신 김에 인사하시죠!”그 방은 주요 스태프들의 회식 자리였다. 조용하고 기품있
차가운 눈빛을 감지한 육경서는 그제야 자신이 경솔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머쓱해하며 손을 놓았다.“내가 거짓말한 거라고 생각할게요. 그러니 그만 말해요!”강유리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티슈로 입을 꼼꼼하게 닦았다. 그러고는 차가운 말투로 명령하듯이 말했다.“거짓말하고도 당당하다고요? 얼른 술 따라요!”육경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대체 당당한 척하는 게 누군데? 육경서는 화났지만 어쩔 수 없이 강유리한테 술을 따라주었다. 강유리가 술잔을 들고 사람들에게 술을 권하며 말했다.“‘마음의 문’이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수고 많으셨어요. 제가 국내 연예계에 돌아와서 처음 맡게 된 콘텐츠인데 저를 믿고 따라와 주셔서 고마워요…”주요 제작자들은 대부분 서로 잘 아는 사이라서 분위기는 엄청 화기애애하였다. 그래서 아주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낯선 직원들은 조금 어색한 기색이었다. 강유리는 자신이 그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인사치레가 끝나자마자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다시 돌아와서 육경서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촬영팀 기숙사에서 자는 게 불편하면 집에 돌아가요. 내일 또 촬영장으로 돌아오면 되죠. 오 씨 아주머니한테 맛있는 걸 만들어달라고 부탁할게요.”마침 저녁에 육씨 가문에 두 사람이 함께 돌아갈 수도 있고 지인과 함께 있으면 긴장을 푸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답답해하던 육경서는 강유리의 말을 듣자 대뜸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유리 형수처럼 체면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 육경서를 어르다니! 게다가 함께 집에 돌아가자고 하다니! 역시 형수는 나를 신경 쓰고 있었어. 유리 형수가 최고야…’ 육경서의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핑 돌았고 앞에 놓인 밥마저 꿀맛 같이 느껴졌다. 육경서는 강유리의 말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내일 휴가 낼게요! 꼭 돌아갈게요!”강유리가 육경서를 대견스레 바라보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우리 화해한 거예요. 그럼, 내일 봐요.”객실
고주영은 마치 사극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막강한 세력을 등에 업었지만, 왕의 사랑은 받지 못하는 왕비에 버금가는 인물처럼 느껴졌다.강유리가 공개하지 않는 이상, 절대 그 일이 먼저 밖으로 새어 나가게 하지 않을 것이다.고주영에 대한 인상에 관해 모처럼 신주리와 의견이 일치했던 육경서가 그녀를 향해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꽤 안목이 있는데?”천강 호텔은 연회장이 속해있는 건물과 투숙할 수 있는 건물이 따로 나누어져 있다.강유리가 연회장을 빠져나와 건물 밖으로 향했다. 그녀는 객실로 갈 생각이었다.구불구불한 호텔 정원 산책로는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만이 정원을 비추고 있었고 매우 고요해 어쩐지 오늘따라 길게 느껴졌다. 고요함 속에서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도 유달리 크게 느껴졌다.강유리는 순간 얼마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난번 육시준이 그녀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려고 했던 곳도 바로 이 호텔이었다. 그날, 그녀가 미리 그 일을 알아버린 탓에 그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오늘 두 사람은 서로가 그날과 반대되는 처지가 되어보았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이제 그녀는 그날, 그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때문에 오늘 밤, 그녀는 그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앞으로 두 사람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상대방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녀는 서로가 서로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후, 사이가 더욱 가까워졌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발견으로 서로에 대해 모르는 상태로 섣부른 결정을 하는 후회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이 정리되자 그녀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그때, 등 뒤에서 웬 손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그녀의 입과 코를 막고 어둠 속으로 끌고 갔다.미처 방어할 새도 없었던 강유리의 눈에 충격과 공포가 일렁였다. 그녀가 힘껏 반항했다.하지만 상대의 힘이 어찌나 강한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
그녀가 머릿속으로 미친 듯이 범인을 색출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예쁜아, 정신이 들어? 너희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한 거야! 내가 모시고 오라고 했지, 이렇게 거칠게 끌고 오라고 했어?”목소리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곧바로 강유리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생각해 냈다. 오늘 연회장 최고의 빌런 2인조였다.그녀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하필 이런 미친놈과 엮이다니.“셋째 도련님, 이 여자 실력이 보통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희도 이런 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함께 들어온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해명했다.“그래? 가시까지 품은 여자였어? 마침 내가 또 이렇게 까칠한 매력이 있는 여자를 좋아하거든!”육경민이 손을 휙휙 저으며 남자한테 나가라는 뜻을 전했다.방문이 또 한 번 열리더니 다시 굳게 닫혔다.방 안이 또다시 무서울 정도로 고요해졌다.강유리가 입술을 깨물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가 잔뜩 경계하며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육경민이 허무맹랑한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여기까지 와서 웬 순진한 척이야? 지금 여기서 나랑 밀당이라도 하려고? 날 몰라도 너무 모르네.”오늘 밤 그는 술을 많이 마신 터라 인내심이 별로 없었다.특히 눈앞에 이토록 자극적인 장면이 펼쳐지고 있는데 참고 있을 여유가 남아있지 않았다.백옥같이 흰 피부의 여자가 몸에 달라붙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굴곡진 몸매를 드러내고 있었다. 드레스 아래로 희고 길쭉한 그녀의 다리가 보였다. 여자는 손과 발이 묶인 채 장미 꽃잎까지 흩뿌려진 침대 위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었다.그가 그 장면에 매료된 듯 넋을 잃고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곧바로 거추장스러운 정장 외투를 벗어 옆으로 던져버렸다.“그래도 모처럼 이렇게 내 마음에 쏙 드는 여자를 만났으니까, 조금은 인내심 있게 대해 줄게.”그가 무릎을 꿇고 침대 위로 올라가 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쓸어내렸다.낯선 이의
그 말을 마친 후 그는 더 이상 그녀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가 몸을 숙이며 그녀의 목에 얼굴을 파묻었다.강유리의 눈빛이 굳어지더니 그가 붙잡고 있는 팔목을 힘겹게 돌렸지만, 안 되자 그녀는 천천히 저항을 멈추었다. 마치 이 상황을 받아들인 것처럼 몸에 힘을 풀었다. 상대방이 단단히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놓아주자 그녀가 손을 뻗어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그녀의 손목시계에 톡 튀어나온 버튼을 누르자, 그 속에서 가느다란 바늘이 발사되었다.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육경민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바늘이 그의 머리가 아닌 어깨에 꽂혔다.살을 에는 듯한 고통에 결국 그가 폭발해 버렸다. 그녀에게 홀려있던 그의 눈동자에 어느새 독기가 가득 찼다. 그가 또 한 번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이게 예쁘다 예쁘다 하니까 진짜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꼭 독한 맛을 봐야겠어?”“쾅!”엄청난 굉음과 함께 문이 강제로 열렸다.육경민이 잔뜩 짜증을 내며 고개를 돌렸다.“누가 들어오라고 했어! 당장 나가지 못…”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웬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의 정체를 확인한 육경민이 미처 놀라기도 전에, 그의 발에 차여 그대로 침대 아래로 굴러떨어졌다.침대 위에 누워있는 여자를 확인한 육시준은 순간 몇 초간 사고가 정지되었다.새하얀 침대 위에 마구잡이로 뜯겨나간 옷을 걸치고 있는 여자가 누워있었다. 검은색 드레스는 이미 찢겨 있었고 흐트러진 머리카락만이 겨우 그녀의 백옥 같은 피부를 어렴풋이 가려주고 있었다.너무나 갑작스러운 소란에 그녀 역시 놀란 듯해 보였다. 침대 위에 있던 몸이 흠칫거리더니 무의식적으로 무릎을 움츠리며 자기 몸을 감싸 안았다. 빨간 하이힐이 침대를 쓸자 반듯한 침대 커버 위에 주름이 생겼다.하얗게 질린 얼굴에, 빨갛게 부어오른 볼. 평소 도도했던 그녀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의 눈에는 경계와 독기가 가득했다. 마치 벼랑 끝까지 내몰린 작은 동물이, 목숨걸고 상대방
보아하니 육경민은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육시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유리가 손을 뻗어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 동작이 어찌나 어리고 약했는지 새끼 고양이가 앞발로 장난치는 것처럼 느껴졌다.그가 곧바로 다시 자리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았다.“왜? 어디 불편해?”강유리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 제법 많이 진정된 상태였다. 그녀의 뺨은 여전히 살짝 부어오른 상태였다. 그녀가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여기서 데리고 나가 줘. 나 여기 조금도 더 있고 싶지 않아.”쉬어버린 목소리에서 고집이 느껴졌다. 그녀는 그에게 온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 행동에서 그녀가 그를 얼마나 믿고, 의지하고 있는지 느껴졌다.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육시준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실렸다. 그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그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전혀 다른 물음을 물었다.“저놈이 어느 손으로 널 만졌어?”강유리는 그 일을 잊을 수 없다는 듯이 곧바로 대답했다.“왼손.”육시준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화장실을 지나치며 싸늘하게 한 마디 내뱉었다.“왼손 다시는 못쓰게 만들어버려.”임강준은 순간 대답하지 못했다.그는 원래 육시준을 말릴 생각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셋째를 가장 아꼈으니까. 만약 정말로 못쓰게 만들어 버린다면 그 뒷일이 제법 고단할 것이다.하지만 협상의 여지가 전혀 없어 보이는 육시준의 눈빛을 확인한 후 결국 입을 다물었다.육시준의 명령에 강유리마저 깜짝 놀랐다.방을 나선 순간, 맞은편에서 누군가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육시준이 무의식적으로 몸을 옆으로 피하며 거리를 두었다. 그가 강유리를 안고 있는 손에 온 힘을 실어 그녀를 더욱 자기 가슴 가까이로 끌어당겼다.달려온 사람은 육경서였다.그가 급브레이크를 밟아 육시준은 겨우 몸을 옆으로 틀어서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육경서의 시선이 마침 강유리의 부어오른 볼과 손바닥 자국에 향했
강유리는 무의식적으로 아이스팩을 부여잡았다.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 다시 부끄러워진 강유리는 몸을 웅크리고 중얼거렸다.“ 나 혼자 할수 있는…”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끄러운 욕조 탓에 다시 물속으로 빠져 버렸다.그때 육시준은 큰 손으로 물속에서 강유리를 건져냈다. 강유리는 코에 물이 들어갔는지 격하게 기침하고 구명조끼를 본 듯 허둥지둥 그의 팔을 부여잡았다.땀 때문인지 물 때문인지 육시준의 옷이 온통 젖어버렸다.그는 눈을 꾹 감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서 대충 강유리를 씻겨준 뒤 수건으로 닦아주려고 했지만, 강유리는 싫다는 듯 뒤로 몇 발짝 물러섰다.“ 나 컨디션이 안 좋아서 혼자 조금 더 있고 싶어.”그녀는 조금 떨린 목소리로 억울한 듯이 말했다.육시준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조금 아팠다. 그는 강유리를 한참 쳐다보고는 허리를 숙여 가볍게 그녀의 볼에 키스하고 나서 그 길로 목까지 다가가 몇초간 머무르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그리고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낮게 말했다.“미안해. 너의 신분을 일찍 밝혔더라면, 이런 오해는 없었을 텐데.”강유리가 가든에서 사라진 후 CCTV에서 정신을 잃은 채로 방에 옮겨지는 모습을 보고 그가 얼마나 긴장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그 순간, 그는 몇변밖에 본 적이 없는 동생을 처음으로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강유리는 멈칫하고는 자기의 목을 만지작거렸다, 부끄러운지 얼굴은 빨갛게 물 들었다.그의 입술이 머문 곳은 방금 그 쓰레기가 만졌던 곳인데 분명 육시준은 그 장면을 봤을 것이고 강유리가 신경이 쓰일 거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육시준은 강유리를 번쩍 들고는 욕실에서 나왔다.그는 강유리를 위해 젖은 머리를 닦아주고 망가지기 쉬운 인형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잠옷 치마도 갈아입혀 줬다.무거운 분위기를 눈치 챈건지 육시준의 죄책감을 느낀 건지 강유리는 도리어 화가 사그라들었다.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위로했다.“ 네 탓이 아니야. 내가 경각심이 떨어져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