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이 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그 동안 참았던 욕구를 전부 쏟아내려는 듯 무섭게 몰아치는 육시준 때문에 강유리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다음 날.강유리는 출근날인 것도 잊은 채 점심까지 자버리고 말았다.너무 오래 잔 걸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강유리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꿈이었나?’하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을 정도로 축 늘어진 몸과 아직도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통증이 어젯밤 있었던 일을 상기시켜주고 있었다.“깼어? 점심 먹어야지?”방으로 들어온 육시준이 싱긋 웃었다.“뭘 멍하니 보고만 있어? 내가 옷이라도 입혀줄까?”“윽...”어딘가 장난기가 담긴 육시준의 목소리가 짜증 났지만 강유리는 괜한 자존심에 애써 쿨한 척을 해보였다.“하, 날 뭘로 보고.”하지만...침대에서 벌떡 일어선 강유리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윽...”‘으악, 쪽팔려. 왜 지금 넘어지고 난리냐고.’그 모습에 방금 전까지 깐족대던 육시준이 부랴부랴 달려와 강유리를 부축했다.그리고 다음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은 살짝 붉은끼가 묻은 침대 시트로 향했다.‘진짜 바닥까지 보이는구나, 강유리...’“뭘 멍하니 보고 있어! 얼, 얼른 내 옷 좀 가지고 와봐.”괜히 버럭 소리를 지르며 창피함과 쑥스러움을 감춰보는 강유리였다.“아, 그래.”고개를 돌린 육시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옷장으로 향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강유리 역시 머리를 빠르게 돌리기 시작했다.버진인 걸 들켰으니 앞으로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여자 코스프레는 못할 테고...이제 어떤 이미지 메이킹을 해야 하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나 힘들어. 옷... 입혀줘.”고개를 돌린 강유리가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한편, 육시준은 모든 가면을 벗어던진 솔직한 강유리의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지만...‘그래도 앙칼진 게 더 내 스타일이란 말이지.’그가 풀 죽은 고양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강유리의 머리를 쓰
“해명?”난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떠보이는 강유리를 바라보던 육시준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다시 한 번 그녀를 위한 해명을 시작했다.경계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화를 낼까 봐, 그래서 그를 떠날까 봐 그게 겁이 나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이다.“처음엔 의심했다며.”“내 말 제대로 들은 거 맞아? 처음에만 그랬다고. 입장 바꿔서 생각해 봐. 처음 만난 여자가 갑자기 계약 결혼 얘길 꺼내. 너라면 의심부터 가지 않겠어?”“...”백 번 들어도 맞는 말이었으므로 말문이 막히고 만 강유리였다.“부부 사이에 네 돈, 내 돈이 어디 있겠냐만은... 내 부인은 워낙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 같으니까...”육시준이 카드를 향해 손을 뻗었다.“이 카드는 내가 다시 챙기는걸로.”하지만 강유리가 재빨리 손목을 접으며 육시준의 손길을 피했다.“뭐야. 줬다 뺐는 게 어딨어?”행여나 마음이 바뀔까 싶어 카드를 주머니에 쑤셔넣은 강유리가 구시렁댔다.“자꾸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까... 성의를 봐서 어쩔 수 없이 받는 거야, 내가.”익숙한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은 육시준이 강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알겠으니까 얼른 밥이나 먹어.”식사를 마치고 옷방에서 한참을 밍기적거리던 강유리는 평소 잘 입지 않던 셔츠를 골라 단추를 끝까지 잠갔다.거기에 긴 치마를 매치하니 평소와는 달리 얌전한 숙녀 같은 모습이 연출되었다.색다른 스타일에 눈썹을 씰룩거리던 육시준의 시선에 미처 가리지 못한 울긋불긋한 흔적이 들어오고...“피곤하면 오늘 하루는 그냥 쉬지 그래?”“회사에 할일이 산더미인데 어떻게 쉬어. 내가 쉬면 우리 집안은 누가 먹여살려?”‘가장’ 노릇을 너무 오래 한 탓일까? 너무나 자연스레 나온 말이었지만 다음 순간 아차 싶었다.‘아, 우리 남편 부자였지.’역시나 육시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누가 누굴 먹여살려?”“크흠... 아무튼!”“카드 비밀번호까지 알려줬잖아. 잔액
영혼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있던 육시준은 “유강엔터”라는 단어에 반응했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말에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육경원 팀장이요?”그의 반응에 전 대표도 의아한 표정이었다.“모르셨습니까? 육경원 실장님께서 유강엔터를 인수할 생각이시라던데요.”오늘 아침 유출된 소식에 유강엔터에 투자하려던 기업들도 전부 올스톱 상태, 다들 LK그룹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전 대표 역시 괜히 먼저 투자금을 넣지 않은걸 다행으로 생각하던 차에 이렇게라도 하면 육시준의 호감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던진 화두였는데 그 말을 들은 육시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괜시리 긴장이 되었다.“LK그룹은 유강엔터에 관심없습니다. 대표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능력입니다. 그럼 이만.”이 말을 마지막으로 육시준은 방을 나섰다.어리둥절함을 넘어 두려움이 서리기 시작한 전 대표를 힐끗 바라보던 임강준이 한 마디 건넸다.“유강엔터 강유리 대표가 얼마 전 결혼한 사실은 알고 계시겠죠?”“네, 들어서 알고 있기 합니다만...”전 대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성홍주 대표가 자기 친딸인 강유리에게 무너지기 직전인 유강엔터만 처리하 듯 던져주었다는 것도 들었지. 아, 그러고 보니 육시준 대표도 얼마 전 결혼을 했었다고 했나? 그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것뿐인데 그게 무슨 관계가... 아니... 설마...’경악으로 가득찬 표정의 전 대표를 향해 임강준은 긍정의 끄덕임을 보여주었다.“함부로 입 놀리시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한편, 유강엔터.회사에 도착한 강유리 역시 LK그룹에서 유강엔터를 인수하려 한다는 놀라운 소식을 입수한다.강유리의 뒤를 따라 사무실까지 들어온 여한영 본부장이 자기가 들은 찌라시들을 따발총처럼 내뱉었다.성신영이 육경원과 사귀고 있으며 성신영의 연예계 사업을 위해 유강엔터를 인수하고 성신영을 유강엔터의 간판 스타로 키우는 게 목적이라는 것이었다.“아니,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또 육경원이 끼어들어선.
이때 하석훈이 얼굴이 벌개져선 고개를 숙인 여한영의 앞을 막아섰다.“글쎄요. 강유리, 성신영. 성도 다른데 도대체 어디가 한 가족이라는 건지...”“야, 어디 한낱 비서 나부랭이가 끼어들어. 육경원 팀장님이 이 회사 인수하면 너부터 자를 거니까 짐이나 싸두지 그래!”“탕!”테이블을 거칠게 내려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매니저의 눈이 강유리와 마주친다.눈보라가 이는 듯 차가운 강유리의 눈동자와 마주친 매니저가 순간 움찔했다.“매니저님 말씀 한 번 잘하셨습니다. LK그룹에서 유강엔터를 인수하고 나면 누굴 자르든 제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만... 아직 인수 전 아닙니까? 그전까지 이곳은 제 구역입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지금 뭐라고...”“경비실이죠? 대표실로 잠깐 오셔야겠습니다.”매니저의 말을 잘라버린 강유리가 바로 경비원을 호출하자 성신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평소 다혈질인 그녀가 어쩐 일인지 오늘은 여유만만이었다.또각또각 하이힐 소리와 함께 책상 앞으로 다가온 그녀가 입을 열었다.“다들 나가주세요. 언니랑 단둘이서 얘기하고 싶으니까.”강유리가 하석훈, 여한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한참을 씩씩거리던 매니저까지 사무실을 나서자 방금 전까지 시끌벅적하던 곳이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사무실 책상에 살짝 기댄 성신영이 피식 웃었다.“너... 남편 하나 제대로 물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지?”성신영의 도발에 강유리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그러니까... 내 남편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 왜 이러는 걸까...’“그런데 말이야... 네 그 대단한 남편이 요즘 집안에서 상황이 애매해. 회장님한테 크게 밉보인 모양이더라고. 그리고... 네 남편 정말 널 사랑하는 건 맞아? 그쪽 집안 사람들은 네 존재도 모르는 것 같던데.”어젯밤 슬쩍 지나가는 말로 육경원을 떠본 성신영은 조용히 결혼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단 한번도 가족들에게 아내를 보여준 적도 없다는 대답에 그 어느때보다 자신만만한 상태였다.‘자기 와이프를 가족들한테
임천강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대단한 뒷배를 잡았으니 앞으로 성신영은 더 기세등등해질 것이다.하지만...‘내가 그냥 바보처럼 당하고만 있을 것 같아? 감히 내걸 건드리면 육경원이 아니라 육시준이라도... 아니지. 육시준은 워낙 돈이 많으니까 곁에 두는 게 더 이득이겠어.’강유리가 이런 생각을 하던 그때 마침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여보세요?”“퇴근했어? 나 회사 앞이야.”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고 강유리는 자연스레 시간을 확인했다.“저기... 너 안 바빠? 내가 아는 LK그룹 대표는 일 밖에 모르는 워커홀릭이라던데?”오후 늦게 그녀를 회사로 데려다 준 것도 모자라 6시도 되지 않아 다시 픽업이라니.오늘 회사로 출근하긴 한 건가 싶었다.하지만 육시준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엉뚱한 포인트를 짚어냈다.“여보라고 불러야지.”어젯밤 분위기가 달아오를 때부터 집요하게 여보라고 부르라던 육시준의 모습이 다시 떠오르며 강유리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아, 여보라는 호칭 너무 닭살 돋지 않아?”“여보라고 부르면 네가 원하는 건 다 들어줄 수 있는데. 무조건 네가 이득인 거래 아닌가?”매력적인 목소리에서 은근한 유혹이 느껴졌다.이에 흠칫하던 강유리가 물었다.“이미 다 알고 있나 보네?”“그래.”“...”잠깐 동안의 침묵 끝에 먼저 입을 연 건 역시 육시준이었다.“도움 필요해?”한편, 조수석에 앉아 두 사람의 통화를 듣고 있던 임강준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대표님 완벽하신 줄 알았는데 밀당은 되게 못하시네...’‘네 잘난 남편이 요즘 회장님 심기를 좀 건드린 것 같더라고...’성신영의 말을 떠올린 강유리가 대답했다.“내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어. 뭐, 조언 정도는 필요하겠지만.”자신만만한 강유리의 목소리에 육시준의 입가에도 미소가 실렸다.“조언이라면...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 무슨 일 생겨도 뒤처리는 내가 다 해줄 테니까.”“푸흡.”이에 강유리가 웃음을 터트렸다.“잘 나가는 남편 있으니까 든든하고 좋네.”
유강엔터 건물 앞.이미 어두워진 휴대폰 액정을 바라보던 육시준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진태수 회장한테 연락 좀 넣어줘. 경원이가 제시한 기획서 다시 수정해야 할 것 같다고.”육시준의 말에 임강준이 움찔했다.진태수, 진영그룹 회장. 최근 육경원이 공을 들이고 있는 운청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할 기업이었다.진태수 회장에게 줄을 대기 위해 마음에도 자선파티까지 열어가며 인맥을 쌓을 정도였으니까.계약 체결을 바로 앞둔 지금, 육시준의 행동은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리는 거나 다름없었다.“이번 프로젝트... 회장님께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십니다.”임강준의 조언에도 육시준은 개의치 않았다.“유강엔터의 존망도 나한테 중요해. 넘보지 말아야 할 걸 욕심냈으니 대가는 치러야겠지.”어차피 설득 따위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임강준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알겠습니다.”...잠시 후, 회사를 나선 강유리의 시야에 익숙한 롤스로이스 차량이 들어왔다.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저 차량과 번호판 자체가 LK그룹 육시준 대표를 상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걸 안 것도 불과 며칠 전 일이었다.3년간 해외에 있다 돌아온 그녀에게 이런 걸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으니까.워낙 보기 드문 차량이다 보니 지나가는 행인들마다 힐끔힐끔 시선을 보내고...강유리는 건물 앞을 서성이다 사람이 없는 틈을 타 후다닥 차에 타버렸다.“뭐 죄 지었어?”강유리가 1층으로 내려온 순간부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던 육시준이 퉁명스레 물었다.“네 다른 남자들이 볼까 봐 걱정되는 건가?”“왜? 내가 바람이라도 날까 봐 걱정돼?”육시준 앞으로 얼굴을 쑥 들이민 강유리가 괜히 변태처럼 음흉하게 웃어보였다.“김 기사, 출발해.”“큼큼.”그제야 기사와 임 비서의 존재를 인지한 강유리가 괜히 목소리를 가다듬었다.“근처에 볼일이라도 있었나 봐?”‘하, 이 여자가 정말...’“매일 너 픽업하러 오는데... 그때마다 근처에 볼일 있는 줄 알았어?”강유리를 흘겨보
“...”익숙한 말이었다.“남편 데리러 가는 데 뭐 이유가 필요해?”처음 육시준을 데리러 로열 엔터로 갔을 때, 그녀가 했던 말과 놀랍도록 비슷했으니까.“솔직하게 말해 봐. 내가 로열 엔터로 데리러 갔을 때, 그날 당신 거기 없었지? 장경호 대표가 꽃선물을 하네 뭐네 부산을 피웠던 것도 당신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끄느라 그랬던 거고?”날카로운 질문에 육시준은 침묵으로 답했다.가끔씩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바보 같다가도 또 이럴 때 보면 놀라울 정도로 똑똑한 것이 어느 쪽이 강유리의 진짜 모습인지 헷갈리는 육시준이었다.한참을 침묵으로 채운 육시준이 입을 열었다.“어차피 다 지난 일이잖아. 네가 괜히 오해해서 날 피했던 거 없었던 일로 할 테니까 너도 내가 너 속였던 거 없었던 일로 해.”“역시, 거래 하나는 끝내주게 하시네요, 육시준 대표님.”강유리가 그를 흘겨보았다.“육시준 대표님? 내가 원하는 호칭은 그게 아닐 텐데...”낮은 목소리로 강유리의 귓가에 속삭이는 육시준의 손가락이 그녀의 허리를 살짝 건드렸다.야릇한 손길에 움찔하던 강유리가 육시준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그만. 나 할 일 많단 말이야.”그러자 강유리를 번쩍 들어 두 다리에 제대로 앉힌 육시준이 그녀를 더 세게 껴안았다.“일해. 기다릴 테니까.”물론 말과 달리 그의 시선은 집요하게 강유리의 얼굴을 향해 있었지만 말이다.완벽한 예술작품으 감상하듯 흐뭇하던 눈빛이 점점 뜨거워지고 어느새 그의 손은 강유리의 옷 속을 탐색하기 시작했다.강유리가 잠깐 가만히 있나 싶더니 또 짓꿎은 유혹을 시작하는 육시준을 노려보았다.“아, 나 진짜 바쁘다고. 며칠 뒤면 촬영도 끝나. 홍보며 뭐며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고.”육시준은 넋을 잃고 일 얘기만 하면 유난히 반짝이는 강유리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할 수만 있다면 이 모습은 평생 혼자만 보고 싶은데...“내가 준 카드 말이야. 잔액 확인해 봤어?”육시준의 질문에 강유리가 흠칫했다.“해... 해봤지.”강유리의 고개
겨우 다시 이성을 되찾은 강유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내 성격 알지? 나 자존심 센 여자야. 다른 사람이 나 무시하는 거 못 견뎌. 그게 날 사랑하는 남자라면 더더욱. 알아, 당신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거. 그런데... 그냥 내가 싫어. 사회적 위치, 경제적 실력, 객관적으로 우리 두 사람 많이 차이 난다는 거 알아. 그래서 더 열심히 살려고. 항상 당신 뒤에 숨어서 보호받는 거 말고 언젠간 당신 옆에 서서 함께 비바람을 이겨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최대한 진지하게 말해 보고자 육시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던 강유리의 눈동자가 결국 살짝 흔들렸다.‘윽, 얼굴 하나는 진짜 끝내준단 말이야. 그리고... 너무 가까워.’행여나 터질 듯한 이 심장소리가 육시준한테 들리진 않을지 걱정이 될 무렵, 한참을 가만히 있던 육시준이 물었다.“그러는 넌?”앞뒤 다 자른 뜬금없는 질문에 강유리의 눈이 살짝 커졌다.“응?”육시준의 긴 손가락이 강유리의 가슴팍 위를 쓸어내렸다.“넌 날 어떻게 생각하는데?”그 와중에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아니라 날 사랑하는 남자라고 표현한 게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그의 질문에 눈을 깜박이던 강유리는 짐짓 깊은 고민에 잠긴 듯 한참을 낑낑댔다.“당신에 대한 생각이라... 음 스킬이 조금 부족하다?”하, 이 와중에도 장난이라니.뭐, 이런 그녀의 모습마저도 사랑하는 것이긴 하지만...육시준의 눈동자가 살짝 어두워졌다.“그래?”“아, 농담이야, 농담. 그게...”하지만 육시준은 더 이상 강유리에게 해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그녀를 번쩍 안아들어 책상 위에 앉힌 육시준이 말했다.“어젯밤은 별로 마음에 안 들었나 봐? 오늘은 더 잘해 볼게.”마치 업무적인 실수를 저지른 직원이 반성하 듯 가벼운 말투와 달리 육시준의 키스는 뜨거웠다.욕망의 불길이 책상을 따라 서재를 가득 채우고...육시준은 그의 거친 키스를 받아들이던 강유리의 손을 꼭 잡았다.별빛만 반짝이는 어두운 밤, 정원에 가득 핀 정열적인 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