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1시쯤.JL 빌라 입구에는 사람과 차량이 거의 오가지 않아 조용했다.검은색 마이바흐와 입구 앞에 주차된 롤스로이스, 바람에 흐트러진 모습으로 서 있는 세 사람 뿐이었다.왕씨 아저씨는 어리둥절했다. ‘요즘 남자들은 모두 이렇게 노골적인가? 열심히 살고 싶지 않다니?’강유리는 롤스로이스의 창문이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남편의 오만하면서도 잘난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막 인사를 하려고 할 때, 이 괴상한 추천 멘트를 듣게 된 것이다…그녀는 차 안에서 풍겨오는 싸늘함을 느꼈다.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고개를 돌린 그녀는 왼손 약지에 끼워진 결혼반지를 내밀었다. “미안해요, 난 이미 결혼해서.”“상관 없어요.”성찬은 전에 연극에서 그녀를 본 이후로 계속 그녀를 주시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약지에 결혼 반지가 있음을 발견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육경서의 손에는 결혼반지가 없었다. ‘그 남자도 되는데, 내가 안될 건 뭐야?’그가 적극적으로 나서기만 한다면, 그녀가 동의하기만 한다면,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는 매우 진지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꼭 입 다물고 있을게요! 필요할 때 나타나겠습니다. 제가 필요하지 않으시다면, 그저 가만히 누님의 전화만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질투도 하지 않을게요. 누님과 다른 사람의 관계는 신경 쓰지 않아요!”강유리는 자신의 등에서 느껴지는 한기를 의식하며 더욱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저는 그쪽한테 관심이 없어요!”“어떻게 그럴 수 있죠? 제가 육시준이라는 사람보다 잘생기지 않아서 인가요? 하지만 제가 그 남자보다 훨씬 믿을 만해요. 게다가 시중도 더 잘 듭니다!” 성찬이 약간 격앙되었다. 그는 몇 걸음 더 다가왔다. 마치 길에서 사이비를 전도하려는 사람같이 끈질겼다.그러는 이유는 역시 이 기회가 다시는 없을 기회이고 오늘을 놓치면 언제 다시 강유리를 만날지 몰랐기 때문이다.그는 정말 오늘 밤 그녀와 함께 별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강
그리고 육시준은 한 마디 덧붙였다.“앞으로 저 자식 tv에서 안 보게 해줘.”“알겠습니다.”임강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바닥에 주저앉아 한편 멀어져가는 육시준의 차량을 바라보는 성찬은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하, 저 남자 도대체 뭐야?’한편, 육시준은 방금 전 우아한 표정은 싹 지운 채 어두운 표정으로 전방을 주시할 뿐이다.잔뜩 경직된 채 앉아있는 강유리는 곁눈질로 육시준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뭐야? 아까랑 같은 사람 맞아? 혼자 고고한 척은 다하더니...’입술을 달싹이던 강유리는 어색한 기침과 함께 한마디 건넸다.“일주일은 걸린다고 하지 않았어? 왜 이렇게 빨리 온 거야?”“그 덕분에 내 아내가 내 차로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즐긴다는 걸 알 수 있었지.”“...”“그쪽은 유부녀라도 괜찮대?”“...”“착하네. 배려심이 아주 깊어.”“...”나지막한 목소리임에도 그 말투에 담긴 비아냥거림이 그대로 느껴졌다.별다른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바람 현장을 딱 잡힌 것과 비슷한 상황, 강유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진짜 배역 때문에 만나려고 한 건줄 알았어. 그런데...”“배역 하나 따내려고 투자자들한테 어떻게까지 하는지 알잖아? 왜 이래? 아마추어처럼?”하지만 냉랭한 질타에 강유리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이런저런 프로젝트에 투자하긴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얼굴을 드러낸 건 처음이라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육시준의 포스에 눌려 결국 입을 다물어버리고 만 강유리다.‘하필 거기서 들키냐... 내가 왜 이런 죄책감을 느껴야 하냐고.’워낙 무거운 분위기에 운전대를 잡은 기사의 손에도 식은땀이 배어나올 정도였다.‘극한 직장이 따로 없네...’1초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기사는 엑셀을 거세게 밟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량은 빌라 앞에 도착했다.육시준이 말없이 차에서 내리려던 순간, 작은 손 하나가 그의 옷소매를 잡았다.뭐야 하는 그의 눈빛이 손을 따라 강유리의 얼굴로 이동했다.‘막말로
순간 육시준이 그녀의 허리를 홱 잡아당기고...육시준의 뜨거운 입술이 당황한 채 벙긋거리는 강유리의 입을 막아버렸다.성지를 공략하는 장군에 빙의라도 한 듯 맹렬한 공세, 그리고 도망칠 수 없도록 허리를 꽉 감은 탄탄한 팔...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키스에 다리에 힘이 풀리고 정신이 아득해진 강유리가 결국 육시준을 밀어냈다.“야, 육시준...”살짝 뒤로 물러선 육시준의 눈에 들어온 건 촉촉한 강유리의 눈동자였다.그 촉촉함이 육시준의 마음에 닿더니 기세를 막을 수 없는 그리움의 홍수가 되어 솓아져내렸다.이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던 육시준은 강유리를 번쩍 들어안아 침대로 향했다.그녀를 살폿이 내려놓는 손놀림과 달리 그의 입술은 뜨거웠고 손은 빠르게 치마밑을 탐색하다 그녀의 허리에 도착했다.뜨거운 손바닥에 몸에 닿으니 정신이 번쩍 드는 듯한 기분, 가뜩이나 큰 강유리의 눈이 더 휘둥그레지며 육시준의 새카만 눈과 마주했다.‘심장이 터질 것 같아...’쿵쾅대는 심장이 금방이라도 가슴을 뚫고 나올 것 같은 기분에 강유리는 육시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그녀의 손길에 멈칫하던 육시준은 숨을 고르다 강유리의 입술에 스쳐지나듯 뽀뽀를 남겼다.“왜? 스킨십으로 내 화 풀어주려던 거 아니었어? 겨우 이 정도야?”뜬금없는 말에 강유리의 눈동자에 막연함이 가득찼다.한참을 멍하니 있던 강유리는 그제야 육시준의 말에 담긴 뜻을 눈치챘다.‘아까 내가 먼저 손 좀 잡았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그래도 이런 것까지 바란 건 아니었다고...’강유리의 허리를 감싼 육시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이제 하다하다 연예인까지 만나?”육시준의 장난스러운 손길에 움찔하는 강유리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그런 거 아니야...”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육시준의 입술이 강유리의 목덜미 구석구석을 훑다 쇄골에 멈추었다.“그런데 그 자식이 왜 네 차에 탄 건데? 너 마음만 먹으면 되게 잘 숨잖아.”‘이 남자가 정말...’강유리의 얼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이 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그 동안 참았던 욕구를 전부 쏟아내려는 듯 무섭게 몰아치는 육시준 때문에 강유리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다음 날.강유리는 출근날인 것도 잊은 채 점심까지 자버리고 말았다.너무 오래 잔 걸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강유리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꿈이었나?’하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을 정도로 축 늘어진 몸과 아직도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통증이 어젯밤 있었던 일을 상기시켜주고 있었다.“깼어? 점심 먹어야지?”방으로 들어온 육시준이 싱긋 웃었다.“뭘 멍하니 보고만 있어? 내가 옷이라도 입혀줄까?”“윽...”어딘가 장난기가 담긴 육시준의 목소리가 짜증 났지만 강유리는 괜한 자존심에 애써 쿨한 척을 해보였다.“하, 날 뭘로 보고.”하지만...침대에서 벌떡 일어선 강유리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윽...”‘으악, 쪽팔려. 왜 지금 넘어지고 난리냐고.’그 모습에 방금 전까지 깐족대던 육시준이 부랴부랴 달려와 강유리를 부축했다.그리고 다음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은 살짝 붉은끼가 묻은 침대 시트로 향했다.‘진짜 바닥까지 보이는구나, 강유리...’“뭘 멍하니 보고 있어! 얼, 얼른 내 옷 좀 가지고 와봐.”괜히 버럭 소리를 지르며 창피함과 쑥스러움을 감춰보는 강유리였다.“아, 그래.”고개를 돌린 육시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옷장으로 향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강유리 역시 머리를 빠르게 돌리기 시작했다.버진인 걸 들켰으니 앞으로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여자 코스프레는 못할 테고...이제 어떤 이미지 메이킹을 해야 하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나 힘들어. 옷... 입혀줘.”고개를 돌린 강유리가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한편, 육시준은 모든 가면을 벗어던진 솔직한 강유리의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지만...‘그래도 앙칼진 게 더 내 스타일이란 말이지.’그가 풀 죽은 고양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강유리의 머리를 쓰
“해명?”난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떠보이는 강유리를 바라보던 육시준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다시 한 번 그녀를 위한 해명을 시작했다.경계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화를 낼까 봐, 그래서 그를 떠날까 봐 그게 겁이 나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이다.“처음엔 의심했다며.”“내 말 제대로 들은 거 맞아? 처음에만 그랬다고. 입장 바꿔서 생각해 봐. 처음 만난 여자가 갑자기 계약 결혼 얘길 꺼내. 너라면 의심부터 가지 않겠어?”“...”백 번 들어도 맞는 말이었으므로 말문이 막히고 만 강유리였다.“부부 사이에 네 돈, 내 돈이 어디 있겠냐만은... 내 부인은 워낙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 같으니까...”육시준이 카드를 향해 손을 뻗었다.“이 카드는 내가 다시 챙기는걸로.”하지만 강유리가 재빨리 손목을 접으며 육시준의 손길을 피했다.“뭐야. 줬다 뺐는 게 어딨어?”행여나 마음이 바뀔까 싶어 카드를 주머니에 쑤셔넣은 강유리가 구시렁댔다.“자꾸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까... 성의를 봐서 어쩔 수 없이 받는 거야, 내가.”익숙한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은 육시준이 강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알겠으니까 얼른 밥이나 먹어.”식사를 마치고 옷방에서 한참을 밍기적거리던 강유리는 평소 잘 입지 않던 셔츠를 골라 단추를 끝까지 잠갔다.거기에 긴 치마를 매치하니 평소와는 달리 얌전한 숙녀 같은 모습이 연출되었다.색다른 스타일에 눈썹을 씰룩거리던 육시준의 시선에 미처 가리지 못한 울긋불긋한 흔적이 들어오고...“피곤하면 오늘 하루는 그냥 쉬지 그래?”“회사에 할일이 산더미인데 어떻게 쉬어. 내가 쉬면 우리 집안은 누가 먹여살려?”‘가장’ 노릇을 너무 오래 한 탓일까? 너무나 자연스레 나온 말이었지만 다음 순간 아차 싶었다.‘아, 우리 남편 부자였지.’역시나 육시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누가 누굴 먹여살려?”“크흠... 아무튼!”“카드 비밀번호까지 알려줬잖아. 잔액
영혼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있던 육시준은 “유강엔터”라는 단어에 반응했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말에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육경원 팀장이요?”그의 반응에 전 대표도 의아한 표정이었다.“모르셨습니까? 육경원 실장님께서 유강엔터를 인수할 생각이시라던데요.”오늘 아침 유출된 소식에 유강엔터에 투자하려던 기업들도 전부 올스톱 상태, 다들 LK그룹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전 대표 역시 괜히 먼저 투자금을 넣지 않은걸 다행으로 생각하던 차에 이렇게라도 하면 육시준의 호감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던진 화두였는데 그 말을 들은 육시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괜시리 긴장이 되었다.“LK그룹은 유강엔터에 관심없습니다. 대표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능력입니다. 그럼 이만.”이 말을 마지막으로 육시준은 방을 나섰다.어리둥절함을 넘어 두려움이 서리기 시작한 전 대표를 힐끗 바라보던 임강준이 한 마디 건넸다.“유강엔터 강유리 대표가 얼마 전 결혼한 사실은 알고 계시겠죠?”“네, 들어서 알고 있기 합니다만...”전 대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성홍주 대표가 자기 친딸인 강유리에게 무너지기 직전인 유강엔터만 처리하 듯 던져주었다는 것도 들었지. 아, 그러고 보니 육시준 대표도 얼마 전 결혼을 했었다고 했나? 그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것뿐인데 그게 무슨 관계가... 아니... 설마...’경악으로 가득찬 표정의 전 대표를 향해 임강준은 긍정의 끄덕임을 보여주었다.“함부로 입 놀리시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한편, 유강엔터.회사에 도착한 강유리 역시 LK그룹에서 유강엔터를 인수하려 한다는 놀라운 소식을 입수한다.강유리의 뒤를 따라 사무실까지 들어온 여한영 본부장이 자기가 들은 찌라시들을 따발총처럼 내뱉었다.성신영이 육경원과 사귀고 있으며 성신영의 연예계 사업을 위해 유강엔터를 인수하고 성신영을 유강엔터의 간판 스타로 키우는 게 목적이라는 것이었다.“아니,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또 육경원이 끼어들어선.
이때 하석훈이 얼굴이 벌개져선 고개를 숙인 여한영의 앞을 막아섰다.“글쎄요. 강유리, 성신영. 성도 다른데 도대체 어디가 한 가족이라는 건지...”“야, 어디 한낱 비서 나부랭이가 끼어들어. 육경원 팀장님이 이 회사 인수하면 너부터 자를 거니까 짐이나 싸두지 그래!”“탕!”테이블을 거칠게 내려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매니저의 눈이 강유리와 마주친다.눈보라가 이는 듯 차가운 강유리의 눈동자와 마주친 매니저가 순간 움찔했다.“매니저님 말씀 한 번 잘하셨습니다. LK그룹에서 유강엔터를 인수하고 나면 누굴 자르든 제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만... 아직 인수 전 아닙니까? 그전까지 이곳은 제 구역입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지금 뭐라고...”“경비실이죠? 대표실로 잠깐 오셔야겠습니다.”매니저의 말을 잘라버린 강유리가 바로 경비원을 호출하자 성신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평소 다혈질인 그녀가 어쩐 일인지 오늘은 여유만만이었다.또각또각 하이힐 소리와 함께 책상 앞으로 다가온 그녀가 입을 열었다.“다들 나가주세요. 언니랑 단둘이서 얘기하고 싶으니까.”강유리가 하석훈, 여한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한참을 씩씩거리던 매니저까지 사무실을 나서자 방금 전까지 시끌벅적하던 곳이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사무실 책상에 살짝 기댄 성신영이 피식 웃었다.“너... 남편 하나 제대로 물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지?”성신영의 도발에 강유리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그러니까... 내 남편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 왜 이러는 걸까...’“그런데 말이야... 네 그 대단한 남편이 요즘 집안에서 상황이 애매해. 회장님한테 크게 밉보인 모양이더라고. 그리고... 네 남편 정말 널 사랑하는 건 맞아? 그쪽 집안 사람들은 네 존재도 모르는 것 같던데.”어젯밤 슬쩍 지나가는 말로 육경원을 떠본 성신영은 조용히 결혼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단 한번도 가족들에게 아내를 보여준 적도 없다는 대답에 그 어느때보다 자신만만한 상태였다.‘자기 와이프를 가족들한테
임천강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대단한 뒷배를 잡았으니 앞으로 성신영은 더 기세등등해질 것이다.하지만...‘내가 그냥 바보처럼 당하고만 있을 것 같아? 감히 내걸 건드리면 육경원이 아니라 육시준이라도... 아니지. 육시준은 워낙 돈이 많으니까 곁에 두는 게 더 이득이겠어.’강유리가 이런 생각을 하던 그때 마침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여보세요?”“퇴근했어? 나 회사 앞이야.”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고 강유리는 자연스레 시간을 확인했다.“저기... 너 안 바빠? 내가 아는 LK그룹 대표는 일 밖에 모르는 워커홀릭이라던데?”오후 늦게 그녀를 회사로 데려다 준 것도 모자라 6시도 되지 않아 다시 픽업이라니.오늘 회사로 출근하긴 한 건가 싶었다.하지만 육시준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엉뚱한 포인트를 짚어냈다.“여보라고 불러야지.”어젯밤 분위기가 달아오를 때부터 집요하게 여보라고 부르라던 육시준의 모습이 다시 떠오르며 강유리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아, 여보라는 호칭 너무 닭살 돋지 않아?”“여보라고 부르면 네가 원하는 건 다 들어줄 수 있는데. 무조건 네가 이득인 거래 아닌가?”매력적인 목소리에서 은근한 유혹이 느껴졌다.이에 흠칫하던 강유리가 물었다.“이미 다 알고 있나 보네?”“그래.”“...”잠깐 동안의 침묵 끝에 먼저 입을 연 건 역시 육시준이었다.“도움 필요해?”한편, 조수석에 앉아 두 사람의 통화를 듣고 있던 임강준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대표님 완벽하신 줄 알았는데 밀당은 되게 못하시네...’‘네 잘난 남편이 요즘 회장님 심기를 좀 건드린 것 같더라고...’성신영의 말을 떠올린 강유리가 대답했다.“내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어. 뭐, 조언 정도는 필요하겠지만.”자신만만한 강유리의 목소리에 육시준의 입가에도 미소가 실렸다.“조언이라면...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 무슨 일 생겨도 뒤처리는 내가 다 해줄 테니까.”“푸흡.”이에 강유리가 웃음을 터트렸다.“잘 나가는 남편 있으니까 든든하고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