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었지만 확신에 가까운 말투였다.강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숨길 이유도 없었다. 육시준이 그녀가 회사에서 하는 일을 알아내는 것은 아주 쉬웠기에 그에게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육시준이 침묵했다. 마치 그녀가 무언갈 더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하지만 강유리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는 손목에 시계를 찬 뒤, 하이힐로 바뀌신었다.그가 입을 열었다.“어떻게 할 생각이야?”그녀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성홍주가 유강 엔터에 하고 있는 짓은 인맥으로 밀어 붙이겠다는건데, 그럼에도 성홍주가영원히 닿을 수 없는 곳이 있잖아?”육시준의 눈썹이 희한한 곡선을 그렸다. “예를 든다면?”가방을 든 강유리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그를 바라봤다.“연예계의 마이다스 손, 신아람, 다음 달에 귀국해 종방연에 참석할 거야. 유강 엔터와 장기계약의 뜻도 밝혔어.”“...”성홍주가 말한 바라보지 못할 나무는 당연히 육시준이라고 여겼다.그녀는 무기 사용 능력이 뛰어났다.그녀가 직접 그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하면 훨씬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절대적 실력 앞에 인맥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해. 유강 엔터가 성장할수록 투자자가 밀려들 거야. HZ 그룹은 수많은 선택 중 하나야.우리가 부탁할 필요도 없어.”강유리가 멈칫하다가 갑자기 화제를 전환했다.“당연히 육사장님의 힘은 무시 못 하죠. 우리를 골탕 먹이지 않는다면야.”남자의 눈썹이 희한한 곡선을 그렸다.“골탕을 왜 먹여?”강유리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됐어. 고마워. 투자는 시간문제일 뿐이야. ”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그의 옆을 지나갔다. 그러자 그녀의 향기가 사방으로 퍼졌다.육시준은 움직일 수 없었다.찡긋거리며 고맙다고 말하는 그녀때문에 하마터면 나쁜 마음을 먹을 뻔했다.아래층 거실, 송이혁은 그 둘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후다닥 구급상자를 챙기고 떠나려 했다.그를 쭉 지켜보던 조보희도 머릿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송이
송이혁은 잘 생겼다. 그 고급스러운 아우라는 태어났을 때부터 타고난 것이다. 강유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풍기는 특유의 아우라는 인위적으로 흉내를 내거나 따라해서 얻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그들은 조보희와 다른 사람이었다, 조보희도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유독 자존감과 자신감이 부족했던 조보희는 각종 화려한 것들로 자신을 포장해 왔다. 그래서 그녀는 유독 강유리나 육시준 그리고 송이혁 같은 사람들을 동경했다.특히, 여러번 거절을 했던 자기에게 계속 물어보는 송이혁의 모습은 그녀에게 신선했다.조보희는 이를 악물고 강유리가 그녀를 괴롭히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모습을 떠올렸다...그녀는 그런 얄미운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와 강유리는 달랐다.“안 돼요. 아무래도 기다리는 게 좋겠어요. 제가 이렇게 가고 나면 절교하게 될지도 몰라요.”그녀는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그녀의 대답은 송이혁의 예상을 빗나갔다.그는 여자의 마음을 꿰뚫고 있다.그녀는 그의 주위를 맴도는 다른 여자와 다르게 순수했던 조보희였고 그래서 자신이 몇 번 타이르면 그녀가 따를 줄 알았다...“친구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어요?”송이혁은 갑자기 그녀에게 관심이 생겼다.조보희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최근들어 갑자기 친구가 된 것 같네요...”그녀는 오래전부터 강유리의 친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강유리는 조보희를 무시하기 일쑤였고, 그래서 강유리가 미웠다. 하지만 최근들어 둘 사이가 부쩍 가까워졌고, 조보희는 힘들게 가까워진 강유리와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송이혁은 그녀의 뒷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는 어두운 표정을 하고 생각에 잠겼다.그녀의 일에 상관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움츠러든 그녀의 어깨를 다독여 주고 싶었다.“육시준이 그렇게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상황에 맞게 임기응변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 아니겠어요? 유리 씨도 이해할 거예요.”아니나 다를까 조보희의 얼굴
조보희가 보기에도 이건 너무 가식적이었다.반응이 도가 지나쳤던 것 같다. ‘다시 번복할 수 있나?’그건 불가능했다. 강유리가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렇게 조보희는 도로에 버려졌다. “강유리! 나쁜 년아! 내가 만약 사고를 당하기라도 하면 귀신이 되어서도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한 차량이 빠른 속도로 그녀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겁에 질린 그녀는 꼼짝 못 하고 눈만 질끈 감았다.월요일 아침은 출근 시간대라 도로는 차들로 붐볐다.강유리는 백미러로 점점 작아져 가는 실루엣을 확인하며 익살스럽게 웃었다.겁쟁이 그녀가 울며불며 아버지에게 고자질할 거라고 생각한 강유리였다.그녀의 아버지는 딸이라면 껌뻑 죽었고 회사도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기사가 10분 내로 도착할 것이다.절대 큰일이 생길 수 없었다.그러다 그녀의 시야에 조보희의 아기자기한 물건이 잡혔다.그것은 조보희의 휴대폰이었다.“...”그녀는 핸들을 오른쪽으로 꺽었다. 그렇게 회전 도로를 빠져나와 차를 돌릴 타이밍을 보았다.그때 낯선 벨 소리가 울렸다.조보희의 휴대폰 벨 소리다.강유리가 확인해 보니 송이혁이 걸어온 전화였다.그녀는 가볍게 웃었다. ‘능력도 좋네? 언제 번호까지 받은 거야? 이렇게 그쪽에서 전화까지 오는 걸 보니 잘 되어가는 중인가 봐? 그렇다면...’“여보세요?”그녀는 통화버튼을 눌렀다.전화 저편에서 잠시 멈칫하더니 당황한 목소리로 송이혁이 물었다. “유리 씨?”강유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래요. 저예요. 보희가 휴대폰을 차에 빠뜨렸네요.”송이혁이 웃으며 이상한 말을 했다.“잘 푸는 중인가 보네요. 내가 괜한 걱정을 했어요.”강유리가 물었다.“보희가 어디 있는지는 궁금하지 않아요?”송이혁이 대답했다.“아니요. 전 그저...”“내가 보희를 길바닥에 버렸어요. 휴대폰도 없이 차만 다니는 곳에서 다른 사람이 돕지 않은 이상 아마 반나절 정도 저기에 있어야 할거에요.”“...”“이혁 씨도 제가 뒤끝이 장난 아니란 걸 이제 실감하시겠죠
조보희는 하마터면 타죽을 뻔했다.이런 상황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니 이산 가족을 상봉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그녀는 터덜터덜 걸어서 차에 올랐다. 그러고는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렸다. 갑작스럽게 터진 울음에 송이혁이 깜짝 놀랐다.그가 묵묵히 종이만 건넸다. 조보희는 송이혁의 앞에서 이미지를 관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오래전에 잊었다. 그녀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하소연하기 시작했다.“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 강유리... 강유리 어떻게 이렇게 사악할 수 있나요? 까맣게 탔단 말이에요. 엉엉엉... 절교할 거예요. 말도 섞지 않을 거예요. 흐엉...”“...”‘지금 피부가 탔단 이유로 울고 있단 말인가?’강유리와 멀리하는 게 좋겠다고 타이르려던 그때, 그의 시선에 낯익은 차량이 보였다.그의 알기론 조보희의 차가 페라리였다.하지만 차의 주인인 조보희는 송이혁의 차에 타 있었다, 그렇다면 조보희의 차에 탄 사람은 강유리일 것이다. 전화를 끊고부터 10분이나 흐른 뒤였다, 강유리가 아직도 여기 있을 줄 몰랐다.전부 강유리가 꾸민 일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고개를 돌려 조수석에서 아이보다 더 슬프게 울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눈물 때문에 정성을 들인 메이크업이 무너졌다. 이건 연기일 수 없었다.송이혁과 조보희는 강유리에게 당한 것이다. 심지어 송이혁은 자기 발로 찾아왔다.말문이 막혀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차들이 속도를 늦춘다. 앞쪽이 막혔는지 빨간색 페라리가 송이혁의 차 앞으로 서섯히 다가오더니 브이 표시를 해보였다. 그러자 조보희의 울음소리도 뚝 그쳤다.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봤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시선을 따라 밖에 있는 빨간 페라리에 멈췄다.그녀의 빨갛게 부은 두 눈이 매섭게 변했다.송이혁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유리 씨도 보희 씨가 상상하는 것 만큼...”“다시 돌아온 거야? 내가 얼마나 처참한 모습인지 확인하려고? 나쁜 년! 욕 좀 하게 창문 좀 내려
그렇게 되면 HZ 그룹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투자하겠다고 달려들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선택의 폭도 넓어진다.강유리가 눈썹을 치켜뜨며 진지하게 물었다.“내가 신아람이라면 믿을 거예요?”어딘가 익숙한 말이었다.육시준이 JL빌라의 집문서를 그녀 손에 쥐어주면서 물었었다. 만약 그의 성이 육 씨인 그 재벌이라면 어쩌겠냐고 묻던 장면과 겹쳐보였다.그녀는 그쪽으로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돈 때문에 그녀와 결혼한 남자가 서울을 망라한 국내에서 제일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재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이해했어요.”하석훈은 눈을 반짝이고는 자료를 들고 서둘렀다.그때 강유리가 그를 불러세웠다.“잠깐 만요.”하석훈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왜 그래요?”강유리가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왜 믿는 거죠? 터무니없지 않나요?”하석훈은 멈칫했다.“그럼, 날 속인 거예요?”강유리가 얼버무렸다.“아니...”“그럼 된 거 아니에요? 나를 믿어 주는 만큼 저도 종래로 의심해 본적 없어요.”“...”그리고 사무실 문이 닫겼다.강유리는 반성했다. 육시준에 대한 그녀의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말을 듣고도 진짜일 거란 생각을 못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돌이켜 보았다.그렇다면 그녀의 그릇이 너무 작은 탓을 해야지 그가 속인 거라고 뒤집어 씌우면 안 됐다.‘그도 고백하려 하지 않았던가... 잠깐!’강유리는 의심을 떨쳐버렸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그 재벌은 남자를 좋아한다고 들었었다.그녀는 전에 이 얘기를 그의 면전에서 했었다.신분을 숨긴 이유가 돈을 노리고 접근하는 사람과 이혼을 막기 위해서였고 어젯밤에 그녀가 이혼이란 말을 꺼냈을 때 즉시 거절했다고 여겼다.깔끔쟁이 육시준이 생리대를 들고 망설임 없이 여자 화장실에 들어 왔었다. 같은 이불을 덥고 수많을 밤을 함께하면서 그녀의 유혹에 절대 넘어오지 않았다.반지를 나눠 끼고 결혼식을 올려야만 진정한 부부라는
임강준은 보고가 끝난 뒤에도 우물쭈물하며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육시준은 그런 그를 흘끗 쳐다보고는 말했다. “할 말 있으면 그냥 해.”임강준은 진지하게 건의를 했다. “HZ 그룹의 고위 임원 한 명을 손해 봤습니다. 유강 엔터에 대한 의견도 다분합니다. 최근에 그들이 협업을 논의하고 있는데, 어려움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굳이 내가 끼어들지 않아도 혼자 처리할 수 있을 거야.”“......”임강준은 왠지 모르게 이 말에서 분노가 느껴졌다.오랫동안 육 회장님의 옆에서 일하면서 육씨 가문 사람들보다도 임강준이 그에 대해서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다. 육 회장님은 업계에서는 포부가 당찬 이미지지만, 섬세하지 못했다.상대를 도와야 할 타이밍에는 안 도와주고, 설사 돕더라도 조용히 처리했다.‘이렇게 해서 어떻게 와이프를 달랠 수 있겠는가?’그는 보너스가 깎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건의했다. “알아서 처리하는 건 사모님의 능력이지만, 환심을 사려면 먼저 나서서 행동하셔야죠! 여자는요, 반드시 잘 어르고 달래야 합니다! 게다가 사모님 나이도 어리시고, 기댈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전에 사모님을 속여서 큰 돈을 쓰셨잖아요! 그렇게 큰 손실을 보시고, 알아서 나서서 잘 메꾸셔야지요......”말하던 중, 임강준은 회장님의 낯빛이 좋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그는 조용히 입을 닫고, 서류를 집어 들고 몸을 돌렸다.“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사무실 문이 닫히자, 육시준은 볼펜을 집어 던지고 의자에 기대 피곤한 듯 손을 들어 미간을 문질렀다. '도대체 왜 다들 그녀를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걸까?’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강했다.로열을 제외한 엔터 내부에서는 그녀의 인맥이 아주 넓다. 천재적인 감독, TOP 급 여자 연예인 등등, 지금이라면 신아람도 국내로 불러올 수 있었다.확실히 그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하지만 어젯밤 안쓰럽게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한 번도 본 적
“......”그는 말하면 지키는 성격이다. 그가 고치겠다고 했던 것들은 강유리도 잘 지켜보고 있었다.게다가 이렇게 정성을 쏟고 있으니, 주차비에 대한 얘기는 꺼낼 수도 없이 그냥 속으로 삼킬 뿐이었다......“나한테 이미 충분히 잘해주고 있어. 사모님 대우도 나한테 영광이야.” 강유리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며 팔뚝을 가슴 앞쪽에 두어 거리를 유지했다.육시준은 눈을 낮춰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녀의 이마에 살짝 키스를 했다. “나 내일 아침에 출장 가.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장경호한테 얘기해.”강유리는 온몸이 거부하고 있었지만, 이 말을 들으니, 눈이 반짝였다. “얼마나 가는데?”육시준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5일 정도.”강유리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5일 정도......”“응, 일 최대한 빨리 끝내면 더 일찍......”“아니야, 아니야!”강유리는 급히 손을 저었다.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일은 섬세하게 해야 좋아! 그리고 일 끝나면 거기 구경도 하고 좀 놀다가 와!”육시준은 얇은 입술을 만지며 말했다. “넌 내가 어디로 출장 가는지도 안 물어보네.”강유리는 잠시 멈칫했다. “어디로 가?”“파주.”사실 파주는 서울에서 멀지 않다. 최근 몇 년간 육씨 가문에서 파주 여행 도시 조성을 계획 중에 있다. 하지만 이건 단지 계획일 뿐이고, 지금은 아직 미완성의 근교일 뿐이다. 그래서 아직 구경할 곳이나 놀만한 곳이 딱히 없다.강유리는 민망한 듯 웃었다. “너도 며칠 더 있으면서 거기...... 날씨 변화라도 느껴봐.”남자는 냉정하게 결론을 내렸다. “너는 그냥 내가 오는 게 싫은 거잖아, 나 피하고 있잖아.”강유리는 잠시 침묵한 뒤 말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나도 어쩔 수 없네.”드디어 쓰레기 같은 남자들이 이런 말을 할 때의 느낌을 알았다. 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그래! 맞아! 난 그렇게 생각해, 그냥 착하게 안 알려주는 것뿐
그가 그녀에게 주는 물질적인 보상, 그녀가 그의 비밀을 지켜주는 것, 이 결혼이 유지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이다.‘딱 좋지 않나?부드럽고 친절한 컨셉으로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힐 필요는 없으니까......’“연기? 네 생각에는 어떤 게 필요 없고 어떤 게 필요한 것들인데?” 남자는 눈을 살짝 찡그리며 그녀를 보고 있었다.“방금 네가 한 말들 같은 거 말이야. 진짜 필요 없잖아.”강유리가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 결혼도 애초에 각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거였고, 서로 아무 일도 없으면 된 거지. 네 이런 위선적인 친절함, 인위적인 친근함, 계약 위반이야. 난 네 연기에 놀아날 마음도 없고 의무도 없어.”그녀는 말을 하며 이마를 쓸었다. 마치 그의 흔적을 닦아내는 것 같았다.그녀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육시준은 방금 그 키스를 떠올렸다.‘그녀의 막무가내를 달래고 아쉬운 마음을 키스로 표현했는데, 그녀의 눈에는 인위적이고 위선적으로 보였다고?’“네 생각에 내가 다 연기하는 것처럼 보여?”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그녀의 허리에 있던 손에도 더욱 힘이 들어갔다.강유리는 더 가까워졌고, 아주 얇은 옷 한 겹 사이로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행동이 그녀를 화나게 했다. “아니면? 설마 진짜 안 되는 건 아니겠지?”육시준은 그녀의 턱을 잡고 붉어진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누가 가짜래?”강유리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내가 눈이 없어? 딱 보면 알잖아! 좀 존중해 줄......”“강유리!”육시준은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이만하면 됐어. 내가 너 좋아한다고 그렇게 사람 재면서 막무가내로 굴지 마.”그들은 그동안 이미 가까이 지내왔고, 그 거리를 다시 멀어지게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시작점으로 돌아가고자 차갑고 냉정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그의 진심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었다.강유리는 애초에 화를 참고 있었고, 그가 화를 내자, 그녀도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내가 사람을 잰다고?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