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리는 오후 내내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퇴근시간이 다 되어서야 소지석에게 연락해서 해명해 주기로 약속했던 것이 기억났다.전화를 걸었는데 상대가 받지를 않았다.아마 촬영 중일 거라 짐작한 그녀는 집에 가봐야 기분이 나쁜데 현장에 나가 보기로 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소지석이 촬영을 마무리하고 잠깐 쉬고 있었다.그녀의 얘기를 들은 그가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아까 피어싱 사장님한테 연락이 왔었어. 누군가 홈서비스를 주문했는데 주소를 착각했다고 하던데?”강유리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주소를 착각해?”소지석이 되물었다.“맞아. 설마 내가 모르는 뭔가가 또 있어?”강유리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아니. 주소를 착각했다면 설명이 되네. 안영이처럼 순진한 애가 그렇게 담대한 짓을 벌였을 리 없지.”‘오해를 풀어줬으면 그랬다고 말이라도 좀 해주지! 괜히 왔잖아!’강 감독이 다음 촬영을 재촉하고 있었기에 소지석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떠나기 전, 그는 진지한 얼굴로 경고하듯이 말했다.“유리야, 서울은 해외랑 달라. 내 능력에도 한계가 있어. 매번 너희들 사고 친 거 수습해 줄 수 없다고. 절대 LK 쪽 사람들은 건드리지 마!”그녀와 소지석은 해외에서 처음 만났다.비슷한 직종의 일을 하고 있었기에 빠르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나중에 그와 소안영이 남매라는 것을 알고 그녀도 그를 오빠처럼 편하게 대했다.그는 그녀를 위해 많은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었다. 그래서 그의 말이라면 강유리도 거의 따르는 편이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달랐다.이미 저질러 버렸으니…소지석이 촬영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녀도 자리를 뜨려다가 마침 대기실에서 나오는 육경서와 마주쳤다.그가 반가운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왔다.“형…”주변 사람을 의식한 그가 재빨리 말을 바꾸었다.“누나, 저 데리러 오신 거예요? 저 너무 행복해요! 아줌마가 해주신 맛있는 집밥을 또 먹을 수 있겠네요!”한껏 들뜬 목소리였다.“똥이나 먹어!”강유리는 제 발로 걸어 들어
LK 그룹에 출근한 육시준은 오후 내내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었다. 그는 오 씨 아주머니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 말처럼, 강유리는 아무 이유 없이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아니었다.그런데 자기가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그때, 테이블에 놓인 핸드폰이 울렸고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육경서였다.육시준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형수님이 다 알게 된 거지?”전화기 너머 육경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그래, 알게 됐어. 근데 왜?”말도 안 되게 담담한 육시준의 목소리에 육경서가 흠칫 놀랐다.‘왜라고 묻다니?’“목소리가 하나도 다급하지 않아 보이네? 형수님이 화를 안 냈어?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인 거야?”자기는 욕까지 먹었는데 아무일이 없는 것 같은 육서준을 보자 너무 불공평했다.육시준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육경서는 그제야 말을 이어갔다.“형수님도 화를 냈네, 맞지? 아니, 잘못을 저질렀는데 왜 이렇게 태연해?”“나도 사과를 했어, 그런데 그 사람이 안 받아준 거야.”육시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사과만 한 거야? 다른 건 안 했어?”“다른 거, 뭐?”육경서는 답답하게 행복하는 육시준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 어쩌면 형수님은 형에게 내지 못한 화를 그에게 해소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경서는 자신이 너무 불쌍했다.어쩔 수 없이 참을성을 가지고 형을 타이르기로 했다.“선물이라도 주면서 성의 있게 사과를 해야지! 형이 이 일을 숨기는 바람에 형수님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데! 돈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형수님이 집이랑 결혼반지까지 사주면서 형 체면을 제대로 세워줬잖아. 형을 위해 최선을 다한 거잖아. 그런데 형은? 형수님의 재산을 빼돌려 놓고, 가볍게 사과 한 마디로 끝낸다고?”동생의 말을 들은 육시준은 그제야 강유리가 아직도 화를 내는 이유가 납득되었다.강유리가 돈을 밝히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적
”이게 지금 몇 번째예요? 일부러 저 골탕 먹이는 건가요? 전에 대본도 좋았는데 왜 수정했어요? 메인 작가라는 거 이렇게 티내는 거예요?”표정이 확 굳은 오예라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꾸했고 서민우가 언짢은 듯 눈살을 찌푸렸다.“그래서 수정한 대본을 확인하지 않으셨다는 말인가요?”오예라가 살짝 흠칫하다가 재빨리 대답했다.“대본을 수정하든 안 하든 전 이렇게 연기할 거예요! 이 역할 자체가 이렇게 연기를 해야만 하는 거예요! 감독님이 지금 저한테 괜히 억지를 부리는 거잖아요! 제가 너무 피곤해서 그러는데 오늘은 여기까지 찍을게요!”말을 끝낸 오예라가 손에 들고 있던 촬영 도구를 버린 채 촬영장을 벗어나려고 하자 매니저가 다급히 그녀에게 커피를 건네며 화를 식히라고 부채질까지 했다.‘화를 식히긴 무슨? 화가 나는 건 되려 스텝들인데!’이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이미 이틀을 허비했다. NG가 몇십 번이나 났는데도 연기자는 개선할 여지가 보이지 않았고 어제도 이렇게 흐지부지 끝났었다.게다가 촬영 현장에는 신인들 밖에 없었고 오예라의 인지도가 꽤 높았기에 아무도 그녀에게 감히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카리스마 있게 행동하던 서민우도 오예라의 오기를 꺾지 못했다.서민우는 어떻게든 잘 설득하려고 안간힘을 썼다.“오예라 씨, 우희나 씨가 일정이 빠듯해서 오늘 이 장면을 무조건 완벽하게 찍어야 합니다. 조금만 더 촬영에 집중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강유리가 밀고 있는 우희나는 연기자 수준도 높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스케줄로 꽉 차 있었다. 그녀는 촬영이 끝나자마자 이 드라마에 합류하게 되었고 중간에는 광고 촬영과 모델 활동도 틈틈이 끼어 있었다.만약 이번 촬영 때문에 뒤에 있던 스케줄에 차질이 생기기라도 하면 서민우는 절대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우희나 씨만 바쁘고, 저는 한가해 보여요? 우희나 씨가 주인공이라고 모든 사람이 우희나 씨 스케줄에 맞춰야 해요? 지금 감독이라고 눈에 뵈는 게 없는 거 같은데, 이 바닥도 룰이라는 게
우희나는 오예라의 호통에 아무 말도 못한 채, 억울해서 입술만 꽉 깨물었다.오후 촬영에서 그녀가 대사를 까먹은 것 때문에 NG를 한 번 낸 적이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촬영당시, 오예라의 눈빛이 이상해서 흠칫 놀라서 NG를 낸 것이다.하지만 감독님은 컷을 외치지 않았고 우희나가 대사를 이어가려던 순간, 오예라가 갑자기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대꾸조차 하지 못하는 우희나를 보자 오예라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서민우를 공격했다.“그리고 당신! 기본적인 스케줄 조율도 안 되면서 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하는 거예요? 전 처음부터 이 드라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강 감독님 체면을 봐서 출연을 결심한 거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촬영 현장에 와보니 역시나 너무 실망스럽네요!”오예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매니저도 얼른 말을 보탰다.“맞아요! 우리 예라 같은 대스타가 당신들과 합작하는 건 당신들의 영광이라고요! 그런데 이런 태도를 보이시면 저희도 더 이상 같이 일을 못합니다! 오늘 강 대표님이 계신 자리에서 저희도 털어놓고 얘기할게요! 지금 당장 사과하지 않으면 저희는 더 이상 촬영에 임하지 않겠습니다!”오예라는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곁에 서서 서민우와 우희나가 사과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는 이런 상황을 한두 번 겪어본 게 아니었다. 스텝들 대부분은 모른 척 가만히 있을 것이고 그녀보다 인지도가 낮은 연기자들은 묵묵히 참고 견딜 것이다. 겁이 많고 이 바닥에서 힘이 없었던 서민우와 우희나는 어떻게든 조용하게 이 일을 처리하려고 할 것이다.조용하게 처리하고 싶으면 사과를 하는 방법밖에 없다.오늘 강유리만 대충 속이고 넘어가면 오예라는 기분이 좋아져서 이 사람들의 장단에 조금 더 맞춰줄 생각이었다.조용히 의자에 앉아 오예라와 그녀의 매니저가 하는 말을 듣고 있던 강유리가 고개를 돌려 서민우에게 물었다.“사실이 맞나요?”입술을 꽉 깨물고 있던 서민우는 착잡한 눈빛으로
강유리의 대사들은 서민우가조금 전에 했던 말과 똑같았지만 단지 전달한 방식과 말투가 달랐다.서민우는 배우들에게 재촬영에 대해 부드럽게 설명했지만, 강유리는 단순 명료하게 반드시 다시 찍어야 한다고 전했으며 상대방에게 훈수까지 두었다.또한 서민우는 촬영장 분위기가 어순해지면 조금만 집중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강유리는 촬영이 끝나기 전까지 아무도 못 간다고 명령을 내렸다.그리고 강유리는 투자자를 언급하면서 배우의 눈치따위를 보려고 해당 배우를 캐스팅한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촬영장에서 벌어지는 일 중 그녀가 모르는 일은 없다는 것을 경고했다.그녀는 오예라가 했던 헛소리를 추호도 믿지 않았다.사람들은 강유리의 말에 마음이 뻥 뚫리는 듯 너무도 통쾌했다.사실 오예라는 지금까지 보여주기 식으로 강덕준과 작가가 있을 때만 열심히 하는 척했고 그들이 현장에 없으면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듯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 촬영에 태클을 걸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감히 그녀에게 불만을 표시하지 못했으며 얼리고 달래서 촬영하느라 바빴는데 드디어 그녀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마음속으로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과는 달리 서민우는 등골에 소름이 돋아 식은땀까지 흘렸다.강유리가 들어오자마자 오예라의 거짓말을 까발리지 않은 건, 서민우의 반응을 확인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만약 그가 이 일을 조용히 넘어가기 위해 사과를 했다면 강유리는 그에게 철저하게 실망했을 것이다.아무도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원치 않을 것이다.다행히 서민우는 그 순간,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다.“대표님,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죠?”화가 잔뜩 난 오예라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리를 질렀고 강유리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뭐 하자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어요?”오예라도 강유리의 뜻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에게 창피를 줄 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처지가 너무 난처했다.눈치를 살피던 매니저가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말을 꺼냈
다음 촬영을 준비하겠다는 서민우의 말에 스텝들은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혹시라도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봐 전전긍긍했다.한편, 긴장되긴 했지만 기분이 약간 좋아진 우희나는 메이크업을 고치기 위해 대기실로 갔다. 그녀는 강유리가 오예라의 헛소리를 믿지 않아 기분이 좋았다. 다만 자신의 연기를 보고 강유리가 실망이라도 할까 봐 약간 긴장됐다.회사에서 우희나에게 레슨 선생님도 여러 명 붙여주고 그녀에게 공도 많이 들였기에 그녀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는 없었다.“우희나 씨, 이리 오세요.”덤덤한 강유리의 목소리에 멈칫하던 우희나가 덜덜 떨면서 조심스럽게 강유리에게 다가갔다.“강 대표님…”“겁먹은 어린애처럼 뭐 하는 거예요? 제가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그래요?”강유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우희나를 쳐다보았고 깜짝 놀란 우희나가 연신 손을 저었다.“아닙니다!”“회사로 돌아가면 여한영 본부장님한테 액션 선생님 한 명 붙여달라고 하세요.”강유리는 우희나 얼굴에 선명하게 새겨진 손바닥 자국을 바라보며 눈살을 더욱 깊이 찌푸렸다.“네? 다음 드라마에서 제 역할이 그런 쪽인가요?”우희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작지 않았기에 그들의 대화는 주위에 있던 사람들 귀에 똑똑히 들렸다.특히 곁에 멍하니 서있던 오예라와 매니저는 그 대화에 질투가 나서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다.만약 오예라가 유강 엔터를 떠나지 않았다면, 원태영이라는 썩은 동아줄을 잡지 않았다면 지금 이 모든 건 전부 자기가 누렸을 거라고 오예리는 착각했다.“아니요. 우희나 씨가 싸움도 못하고 너무 바보 같이 굴어서 그래요.”강유리는 진지하면서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고 그 말에 우희나는 더욱 어안이 벙벙했다.우희나보다 먼저 강유리의 말을 알아들은 건 오예라였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 그녀가 강유리에게 따지려고 달려들자 매니저가 그녀를 꽉 잡은 채,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흥분하지 마. 이 드라마 인기가 지금 어마어마해. 우린
오예라가 5섯번째 따귀 씬을 찍을 현장의 분위기는 이미 살얼음판이었다. 그녀는 점점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서민우는 컷 소리와 함께 몰래 강유리의 눈치를 살폈다.촬영 전, 강유리가 막무가내인 사람에게는 똑같은 방식으로 대하야 한다고 그에게 조언했다. 그녀의 사람일 수록 당하지만 말고 상대에 맞서 싸우리거 했다.그는 긴가민가해사 우희나를 걸고 넘어지며 생트집을 잡았보았다. 강유리는 정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그녀가 한 말이 어떤 것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하여간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그의 긴장한 시선을 받은 강유리가 한숨을 내 쉬었다. 자신이 하는 수 없이 총대를 메야 겠다고 생각한 강유가 입을 열었다.“여전히 별로네요. 처음 씬으로 하죠.”‘괘씸한 것, 그녀는 분명 고의적이다!’오예라는 퉁퉁 부은 자신의 뺨을 보다가 강유리를 매섭게 노려보았다.하지만 강유리는 그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저 멀지 않은 곳에 멍하니 서있는 비서 우희나의 매니저를 보며 입을 열었다.“얼음주머니를 갖다 드리지 않고 뭐 해!”오예라는 그럴듯하게 포장하려는 강유리의 행동에 냉소를 지었다.그렇게 행동한한들 그녀는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희나 씨 손에 문제라도 생기면 내일 촬영은 어떡해?”“...”‘우희나의 손 때문에 그러는 거라고?강유리 이 몹쓸 년, 분명히 그녀를 골탕먹였으면서 사과 한마디 없다니?젠장.’강유리는 아무리 유명하다고 한들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고 누구도 그녀의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걸 행동으로 똑똑히 보여주고 있었다.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 하고 강유리는 몸을 일으켜 1층 화장실로 향했다.그녀는 속이 불편했다. 아마도 어젯밤에 마신 술때문에 숙취가 남아 오늘 제대로 된 한끼도 못 먹어서 인 것 같다. 그래서 장이 탈이 났나 보다.급했던 그녀는 먼 곳의 동태까지 살 필 여유가 없었다.거기에는 한참 전부터 그녀를 지켜보는 두 실루엣이 있었다.육시준은 두번째 씬을 찍을 때부터 이미 현장에
강유리는 순간 멈칫했다. 머리속에 무수히 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갔다.‘그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걸 알았을까?사람이라도 심었나?’수많은 우려 중에서도 그가 그녀를 조롱하고 있지 않는지가 제일 중요했다.잠깐의 고민끝에 그녀는 3개의 물음표만 조심스럽게 보내보았다.[???]이내 간단명료한 몇마디로 답장이 왔다.[촬영지에 있다고 해서 널 데리러 온 거야.]강유리는 생각에 잠겼다.‘이건 좋은 방법이 아니지만 지금으로선 이 방법 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통화하려다 이내 다시 종료버튼을 눌렀다.‘어떤 말투로 말해야 할까?너무 부탁하는 말투면 비굴하지 않을까?’한참 망설이다가 대화창에 타자를 했다.[뭐 좀 사다줘...]지우고.당당하게.[뭐 좀 사와.]콧대 높은 이 남자가 여자의 생리현상에 대한 것들을 알 리 없었다. 강유리가 어플을 클릭해 자신이 사용하는 브랜드를 캡쳐해서 보내려는데 문자가 또 다시 울렸다.[샀어. 그런데 내가 들고 들어가야 한다고?]문자를 보내고 있는 육시준도 망설이고 있었다.그의 문자를 계속 기다린 것인지, 그가 선물을 들고 사과하기를 기다린 것인지 몰라 망설였다.특별한 날을 맞은 선물이 늦게 도착하긴 했지만 보다 낭만적인 분위기속에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적어도 깨끗한 곳에서 선물해야 하지 않을까?진심이라고?이런 더러운 화장실에서?’한편, 문자를 확인한 강유리가 두눈을 동그랗게 떴다.‘나쁜 자식, 사람을 붙인 게 확실하네!이 자식 변태 아니야?어떻게정확하게 알 수 있어?소름이야!’강유리는 휴대폰을 보며 씩씩거렸다.[그래! 직접 들고 들어와!]‘이렇게 된 이상 될대로 되라고 하지 뭐.’그가 이 일로 그녀를 비웃기라도 한다면 그녀도 화장실에 들어온 그를 똑같이 비웃을 것이다.답장을 받은 육시준이 입술을 깨물었다.난감해하는 그의 표정을 본 임강준이 물었다.“왜 그래요?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에요?”육시준은 잠깐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그런 건 아닌데 요구가 점점 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