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리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조보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너 바쁘다며?”“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얼른 말해.”“......”조보희는 욕을 하고 싶었지만, 애써 참으면서 순순히 말했다.“나 그 사람 어디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아, HZ그룹의 사장같은데…일 거야. 우리 아빠가 그러던데, 너 요즘 HZ그룹이랑 협업하려고 한다며? 쳇, 중간에서 가로채 갔네?”전화 너머에는 침묵으로 가득했다. 조보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너 설마 내가 거짓말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믿든 말든 네 선택이지만......”‘사진이 있지만 주진 않을 거야, 안 믿으면 너만 손해지, 쌤통이다!’“넌 지금 HZ그룹에서 뭐 하는데?” 강유리가 갑자기 물었다.조보희가 허세를 부리며 대답했다. “난 당연히 일하지, 너만 바쁜 줄 아니?”강유리가 여유로운 목소리로 수긍했다. “그럼 넌 하던 일 마저 해. 나중에 내가 밥 살게. 끊는다.”‘이 애매한 태도는 뭐지? 믿는 건지 안 믿는 건지도 모르겠네.’강유리의 태도가 마음에 걸렸지만, 이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그녀가 급히 입을 열었다.“오늘!”“뭐?”강유리가 어안이 벙벙해서 묻자,조보희가 다급히 말했다. “오늘 나 밥 사줘, 나 오늘밖에 시간 안 돼!”강유리는 어이가 없었다. “나 이따가 손님 만나야 해.”“그럼 이 언니가 직접 간다. 30분이면 도착하니까 로비로 사람 보내!” 조보희는 말이 끝나자마자 대답할 여지도 주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30분 뒤, 조보희는 유강엔터의 로비에 도착했다.막 차에서 내리려는데, HZ그룹 사장의 차가 건물로 들어왔다.그녀의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가득했다. 한무리의 사람이 서류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리더니, 당당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임천강은 이미 행방을 감춘 뒤였다.조보희는 얼른 차에서 내려 무리를 따라갔다.강유리는 그들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젊은 여직원을 보내
조보희는 오늘 심플한 스커트를 입었다.하지만 손에는 금팔찌와 옥팔찌 여러 개와 두 개의 진주 목걸이를 두르고 있었다......그녀의 과한 메이크업까지 더해지니 촌스럽고 허세가 가득해, 눈에 담기 꺼려졌다.조보희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녀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너 표정이 왜 그래? 나 무시하지 마! 나 요즘 팔로워도 꽤 늘었다고!”강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사무실로 향했다. 조보희도 그녀의 뒤를 쫄래쫄래 쫓아갔다.자기가도 미운 짓 하는 건 아는지, 사무실로 돌아온 후에야 조용히 물었다. “너네 회사 투자자 찾는 거야? 네 남편 찾아가면 되잖아, 남편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데, 다른 사람을 찾는 거야?”강유리는 사무실의 의자에 앉아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네가 내 남편이 대단한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육씨 가문의 DH랑 관련 있는 거 맞지? 데이오도 얼마 전에 협업했잖아? 데이오 대표가 기회주의자로 얼마나 유명한데, 그가 협업했다는 건 분명 무슨 냄새를 맡은 게 분명해!”“......”조보희의 확신에 찬 얼굴에 강유리는 머리가 멍해졌다.데이오는 확실히 먼저 그들에게 협업 제안을 했었다.하지만 그녀와 하석훈은 그들이 제공했던 DH 스캔들 영상에 대한 감사 표시라고 여겼다. 어쨌든 그 사건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적지 않았기에.게다가 DH도 그들과 협업하고자 했던 참이었고, 데이오는 경쟁을 통해 겸사겸사 DH를 짓밟고 가려고 했었다......“내가 다 맞췄지? 그러니까 나한테 다 말해봐, 내가 다른 사람한테 가서 얘기할 것도 아닌데!” 조보희는 그녀의 침묵에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말했다.강유리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 남편이 네 말처럼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면 내가 이렇게까지 하겠니? 이 작은 회사를 지키면서?”조보희는 그녀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지만, 쉽게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부자들은 원래 다 신중하잖아. 너 좋은 일 막 시켜주지 않아! 그래도 네 남편이니까 네가 잘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강유리가 의아한 얼굴로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곤 옷을 바꿔입은 뒤 방을 나서자 오 씨 아주머니께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데리고 쳐들어왔다.그중 패션 감각이 뛰어난 한 여자가 강유리의 방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시선을 베란다에 고정했다.베란다는 햇빛이 잘 들어 메이크업하기에 적합했다.강유리는 입을 뻥끗하기도 전에 여자에게 잡혀 인형처럼 끌려갔다.코디가 강유리를 훑어보더니 감탄을 연발했다."사모님, 제가 본 분들 중에서 제일 완벽한 이목구비를 가지신 것 같아요, 피부도 너무 좋으세요. 오늘은 공식적인 활동에 참석하셔야 하니까 제가 예쁘게 꾸며드릴게요."강유리는 속으로 고작 데이트 하나가 얼마나 정식적일까하는 의문이 들었다."Amy 언니, 사모님께서 고른 드레스 제가 가지고 들어갈까요?"문밖에서 들린 목소리에 강유리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Amy?"강유리는 그제야 눈앞에 여자가를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의 얼굴은 잡지에서 보던 것과 똑같았다.국제적으로 유명한 스타일리스트, 재벌 집 사모님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스타일리스트, 강유리 같은 사람은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이었다…강유리는 인파들 속에서 유일하게 낯익은 오씨 아주머니를 의아하게 바라봤다.그녀의 눈빛을 알아챈 오씨 아주머니가 웃으며 대답했다."자선 파티는 오후 4시부터 시작이에요, 그 전에 티타임이 있는데 사모님께서는 처음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니 조금 일찍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강유리가 물으려던 것은 이것이 아니었지만 오씨 아주머니 덕분에 다른 유용한 소식을 알게 되었다.그들은 오늘 저녁 육씨 가문에서 주최하는 칠석을 주제로 한 자선 파티에 참석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이 자선 파티는 서울에서도 이름있는 것이었다, 강유리도 육씨 가문에서 주최하는 이 자선 파티에 대해 예전부터 소문으로 익히 들었다.육씨 가문의 넷째 도련님은 셋째 사모님의 아들이었는데 나이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성숙하고 듬직했으며 똑똑한
육시준이 강유리에게 서서히다가갔다.강유리의 이마에 육시준의 이마가 닿았고 코끝이 닿았다. 두 사람의 입술이 곧 닿으려던 찰나, 강유리는 주변 사람들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황급히 육시준을 밀어냈다."늦겠다! 얼른, 얼른 따라 와!"강유리는 말을 마치자마자 육시준을 지나쳐 밖으로 나갔고 육시준은 그런 강유리를 바라보다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따라 나갔다."사모님."Amy 무리는 멍청하게 서서 눈앞의 광경을 지켜봤다. 방금 그들이 본 육시준은 임 비서가 말한 워커홀릭과 거리가 멀었다.이그는 분명 와이프를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강유리가 완벽한 모습으로 파티에 참석할 수 있도록 전용 헬기를 보내 해외에 있던 Amy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게 육시준이었다.한편 마당에서는 롤스로이스 팬텀이 존귀한 신분을 뽐내고 있었다. 차 앞에서 대기 중이던 임강준은 강유리를 보더니 공손하게 차 문을 열었다."사모님, 타시죠."차에 타려던 강유리는 그 차를 발견하고 멈칫했다.눈앞의 차는 그녀가 귀국하던 당시, 강유리가 찬 돌멩이에 긁힌 그 차였다.그녀는 자신의 연락처를 두 번이나 남겼지만 배상하라고 찾아오는 이가 없었다.오늘 이 차를 보지 않았다면 강유리는 그 사실을 완전히 잊을 뻔했다."이 차, 네 것이었어?"강유리가 육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응."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임강준은 침을 꿀꺽 삼켰다.육시준도 겉으로는 담담해 보였지만 속으로 잔뜩 긴장하며 강유리를 바라봤다.8월의 무더운 여름, 마당의 식물들도 강렬한 햇빛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불어오는 바람마저 후덥지근해 사람의 마음까지 짜증 나게 만들었다.육시준은 지금 이 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그때, 강유리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이런 우연이 어디 있나 했네, 너 진작에 나 눈여겨보고 있었구나. 겉으로는 배상 안 해도 된다고 하고 뒤로는 몰래 계획하고 있던 거였어? 역시 사업가는 손해 보는 장사 안 한다는 말이 맞네."강유리의
강유리는 휴대폰에 뜬 이름을 보곤 의아했다.HZ 그룹의 부 회장님?"손 사장님?"강유리가 의아한 얼굴로 전화를 받아들었다."강 사장님, 제가 어제 사장님 회사에 대해서 잘 알아보고 생각해 봤는데 유강엔터 잠재력이 상당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투자가 가능하다고 보는데 계약서 들고 오시죠, 주소는 메시지로 보내드릴게요." HZ그룹이 토요일에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특근을 하면서 연구를 했다는 사실이 강유리는 조금 믿기지 않았다.‘그것도 하필 지금이라니.’강유리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가 보내온 주소를 보고 망설여졌다.주소는 천강호텔이었다.[마침 여기에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 강 사장님도 괜찮으시죠?]강유리가 주소와 함께 보내온 메시지를 바라봤다.아직 이른 시간이었기에 계약서를 체결하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결국 강유리는 고개를 돌려 잘생긴 남편을 바라보며 애교를 부렸다."자기야…""안 돼."하지만 육시준은 차갑게 거절했다.차 안은 조용했고 휴대폰 소리도 작지 않은 탓에, 붙어 앉은 육시준이 두 사람의 통화 내용을 듣지 못했을 리 없었다. HZ 그룹은 실력도 평범했고 사장의 사람 됨됨이도 좋지 않았기에 적합한 파트너가 아니었다.잠시 뒤, 파티에서 신분을 공개하면 강유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더욱 많아질 것이 분명했다.그런데 하필 지금 그곳에 강유리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전에도 본가에 같이 들르기로 해놓고 안 갔잖아,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돼."육시준이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육시준이 한 말을 들은 강유리가 미안함에 목소리가 작아졌다."전에는 내가 정말 미안해, 하지만 지금 이거, 나한테 엄청 중요한 기회야. 성홍주 때문에 누구도 나한테 투자를 못 하고 있단 말이야. 그런 나한테 투자를 해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계약 시간까지 바꿔 달라고 하는 건 좀 그렇잖아.""그럼 거절하면 되겠네."육시준이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무슨 소리하는 거야! 나 우리 회사 돈 많이 벌게 해야 돼! 그
kaylen과 그녀의 남편은 강유리 보석 작업실의 파트너였다.하지만 두 사람 모두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특히 kaylen의 남편은 해커 중에서도 랭킹 1위를 차지하는 해커였다. 보안 시스템을 제 집 드나들 듯 드나들 수 있었기에 호텔 CCTV를 보는 건 그에게 식은 죽 먹기와도 같았다.호텔에 도착한 뒤, 육시준은 강유리를 데리고 꼭대기 층의 룸으로 갔다. 안에는 이미 그녀를 위해 준비한 옷이 있었는데 강유리에게 꼭 맞았다.강유리는 옷을 바꿔 입은 뒤, 화려한 룸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자기야, 육 씨 집안 이렇게 돈 많아? 룸도 스위트 룸으로 준비해 줬네."하지만 이는 평소 다른 이에게 개방되지 않는 육시준 전용 휴게실이라는 사실을 강유리는 모르고 있었다.육시준이 대답을 하려던 찰나, 강유리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동영상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내가 잘못 기억한 게 아니라면 이 두 사람 중 하나는 네 고객이고 하나는 네 전 남친?][네 전 남친이 네 고객님을 빼앗아 간 거니?][그런데 넷째 도련님은 또 누구야? 왜 육 씨 집안사람이랑 연관이 있다는 거야?]강유리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동영상을 재생했다.동영상에는 임천강과 HZ그룹의 손 사장이 있었는데 두 사람은 시끄러운 곳에서 은밀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랬기에 대부분 내용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중간중간 핵심 키워드를 들을 수는 있었다.‘넷째 도련님이 그 여자를 좋아하고 있다’와 ‘주스’, ‘방으로 보낸다’는 어구를 조합해 보면 간담이 서늘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최종목적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진심으로 협력을 하려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동영상을 보던 강유리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임천강이 자꾸 스스로 죽음을 자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임강준 쓸만한 사람이야?"육 씨 집안의 일이 연관되었다면 육 씨 집안사람을 데리고 가 처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사람 죽이는 거 말곤 다 처리 가능해."
임천강의 얼굴이 서서히 굳었다."단지 자기의 예쁜 얼굴을 믿고 그러는 거예요."육 회장님이정말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것 같아요? "손 회장의 웃음도 옅어졌다."진심이 아니면, 무슨 자신감으로 내가 하는 일이 넷째 도련님을 만족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어제 임천강이 그를 찾아와서, 이 계약서에 서명하면 안 된다고 극구 만류했다.그는 강유리가 육 씨 가문의 넷째 도련님과 관계가 있었으나, 지금은 사이가 틀어져서 육 씨 가문에서 그녀를 지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그가 감히 투자를 감행하는 것은 바로 육 씨 넷째 도련님의 체면을 구기는 것이라고 했다.하지만 그가 넷째 도련님 침대로 사람을 보낸다면, 틀림없이 만족할 것이다……."남자라면 보여지는 이미지가 중요하지. 진심이든 아니든, 일단 얻어야 하지 않겠나?"임천강은 차갑게 비웃었다."게다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지경까지 됐으니, 뒤돌아볼 여지도 없어."이 말은 손 회장에게 들려주는 것뿐만 아니라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다.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강유리가 그를 몰아붙인 탓이었다..LK그룹의 임원 명단에 올라있는 그녀를 그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오늘이 지나면, 모든 사람들이 그녀가 자기 남편의 형제와 놀아난다는 것을 알 것이다!게다가 3년 전의 스캔들까지 겹쳤는데, 육 회장이 그녀 같은 상스러운 여자를 감싸겠는가?’그는 지금 가진 것이 없으니 두려울 것도 없었다. 죽더라도 물귀신처럼 여럿을 데리고 같이 죽기로 마음 먹었다. 손 회장이 할 말을 잃었다.확실히 되돌아갈 여지가 없어 보였다.사실그는 이 말을 믿지 않았다. 임천강은유강엔터 같은 작은 회사가 LK그룹과 합작할 수 있고, LK그룹 장 회장이 경매에서 강유리에게 값을 불러주고, Lk그룹 백화점에서 DH 제품을 내리는 것과 같은 일련의 예시를 들었다. 마침 LK그룹과 합작해야 할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고, 손 회장은 고민 끝에 결국 이 도박에
손 회장은 소파에 돌아가 앉아서 다리를 꼬고, 손이 가는 대로 서류를 넘겼다."유강엔터의 현재 처지를 알고 있지? 나도 숨기지 않고 얘기할게, 성 회장님이 너희 회사가 상장하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고 직접 얘기했어.""손 회장님이 저를 불렀으니 이미 결정을 내린 거겠죠. 저는 회장님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거라고 믿습니다."강유리는 담담한 목소리로 아부했다.손 회장은 영리한 시선으로 그녀를 힐끗 쳐다봤다. "그것은 당연하지."말을 하며 그는 술잔을 들고 강유리에게 술을 따라 건넸다."하지만 내가 이렇게 큰 위험을 무릅쓰려면 네가 뭔가 표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강유리는 앞에 놓인 술을 바라보며 말했다."어떤 표시를 원하십니까?""급하지 않아! 먼저 나랑 한잔 해!""……."불빛은 붉은 와인 잔의 선홍색 액체를 비추었고, 맑고 투명한 모습이 위험함을 비추었다.하석훈은 눈을 찌푸리며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나아가서 막으려고 했다.강유리는 눈빛으로 그를 제지하고, 바로 술잔을 들어 손 회장과 부딪쳤다."이 잔은 제가 권하겠습니다. 손 회장님이 저에 대한 믿음에 감사드립니다."손 회장은 고개를 젖히며 술을 마셨고, 시선은 강유리 얼굴에 굳게 고정되어 있었다.이 여자는 어제 회사에서 보았던 것과 좀 달랐다. 정갈한 얼굴에 연한 화장을 칠하여 룸의 불빛에 비추어 아름다운 모습이 짜릿하게 마음을 움직였다.남자의 넋을 빼놓기에 충분했다.LK그룹이 주최한 자선 만찬이 바로 이 호텔에서 진행되었다. 연락하자마자 바로 올 수 있었던 이유가 육씨 넷째 도련님과 화해한거라고 여겼다.눈 밑에 서늘한 빛이 스치더니 손 회장은 잔을 내려놓고 탐색하는 말투로 물었다."사실 설령 이렇다 하더라도 모두가 성 씨 가문을 무서워하는 것은 아니지. 너에게 또 다른 선택이 있는 거지?"강유리는 웃겼다."손 회장님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의 태도는 줄곧 명확했어요. HZ와 협력하기를 매우 기대하고 있어요."손 회장은 그녀를 몇 번이나 떠보았지만, 강유리는 육 씨 가문에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