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 호감이 점차 감소했지만 오늘 목적을 이루면서 그가 온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릴리는 신하균이 건네준 생일 선물과 따뜻한 눈빛을 보니 마음속에 있던 불만이 가뭇없이 사라졌다.“뭐예요?”선물 박스를 받으며 릴리가 물었다.“좋아할 것 같아서 샀어요.”신하균이 웃으며 말하자 릴리는 토끼 눈을 하면서 물었다.“지금 열어봐도 돼요?”“집에 가서 열어봐요.”신하균이 말했다.룸 안은 조용했고 다들 두 사람이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사적인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상업계의 따분한 모임이 싫어 참석하는 것을 꺼렸지만 정작 신하균 본인은 유명인사였다. 그런 신하균이 모처럼 나타나서 여자와 속삭이듯 대화하는 모습에 다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이 사람이 진짜로 냉철하고 무정한, 여자라는 말만 들어도 귀찮다고 하면서 자기 여동생도 거들떠보지 않는 신씨 가문 도련님이 맞단 말인가?다들 뭐 하나 놓칠까 봐 두 사람을 열심히 관찰하고 있었다.두 사람과 제일 가까운 거리에 앉아 있던 김솔은 이 모습에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만일 오늘 전에 두 사람이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 깨끗하게 포기했겠지만 바로 전에 릴리와 몇몇 나쁜 여자들의 대화를 들었다.릴리는 신하균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아무 조건 없이 자기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전에 김솔은 릴리가 남자관계가 복잡하고 책임감이 없으며 애인에게 충실하지 못하다는 등등의 소문을 많이 들었다.일단 남자가 사랑에 빠지기만 하면 그녀는 못 본 체 떠나버린다...“하균 씨, 이 로맨틱한 분위기는 뭐예요? 꽃다발이며 선물이며. 누가 보면 고백이라도 하는 줄 알겠어요?”김솔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장난투로 다들 있는 앞에서 신하균의 속마음을 폭로한 동시에 릴리가 태도를 표시하게끔 압박했다.만일 릴리가 두 사람 사이를 승인하고 사귀면 이제부터 진심으로 신하균을 대하고 그의 마음을 저버리지 않으면 그만이다.하지만 신하균을 거절하고도 신씨 가문의 덕을 보려 한다면 이곳에 있는
신하균이 고개를 들면서 김솔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했다.“위로 몇 대를 거슬러도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데 친오누이가 말이 돼요? 릴리를 좋아하는 게 맞고 지금 대시 중인 것도 맞아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분위기가 아수라장이 되었다.“진짜예요? 진짜로 릴리 좋아해요?”“나는 신 도련님이 한평생 여자와 엮이지 않을 줄 알았어.”“신 도련님 힘내요. 제가 연애 레슨 해드릴까요?”“입 닥쳐. 릴리는 다른 여자와는 차원이 달라. 네 방법이 먹힐 줄 알아?”“...”주위에서 장난치면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다시 터져 나왔다.김솔의 얼굴색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그녀와 마찬가지로 신주리도 얼굴색이 좋지 않았다.신주리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릴리를 향해 걸어가더니 막무가내로 그녀를 자기 좌석으로 잡아끌면서 신하균을 힘껏 노려보았다.그래도 신하균은 화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이자리에서 릴리의 답을 들으려고 했던 건 아니다...반면에 릴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연약한 신주리가 갑자기 어디서 그런 괴력이 생겼는지 마구잡이로 잡아끄는 바람에 반응할 틈도 없이 끌려가면서 다급하게 말했다.“잠깐만, 아직 대답을 못 했어. 내가 모르는 체하면 난처하잖아.”“대답하면 네 친구인 내가 난처해.”신주리가 쌀쌀맞게 말하더니 이내 덧붙여 말했다.“난처한 게 아니고 가슴이 아파. 계집애가 왜 이렇게 물러터졌어? 내가 며칠 안 봤더니 그새 속아 넘어갔어?”신주리의 분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릴리는 자신이 없지만 입만 살아서 대꾸했다.“속아 넘어갔다는 건 좀 슬프다. 하균 씨가 내 생일도 기억하고 있어.”신주리가 차갑게 노려보면서 물었다.“오늘 네 생일이야?”그러자 릴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비록 진짜 생일은 아니지만 신분증은 오늘 날짜로 되어있어. 하균 씨가 마음 썼잖아.”“이게 마음 쓴 거야? 진심으로 마음을 쓴다면 진짜 생일을 알아냈어야지.”“함부로 뒷조사하는 건 이상하지 않아? 그건 내가 싫어.”그러자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릴리를 바라보았다.저
“속마음이야 모험이야?”신주리가 담담하게 묻자 신하균이 움찔하면서 말했다.“모험.”직업 때문인지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를 물어볼까 봐 신하균은 속마음을 바로 배제해버렸다.“좋아.”신하균의 선택에 전혀 놀라지 않고 신주리는 익숙하게 카드를 끌어모으더니 그에게 건네줬다.신하균이 한 장을 뽑아 확인하더니 카드에 시선을 꽂은 채 굳어있었다.다들 궁금해 앞다투어 물었다.“뭐예요? 빨리 읽어봐요.”그 모습을 보고 신주리가 신하균의 손에서 카드를 빼앗아 힐끗 보더니 오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카톡 즐겨찾기 맨 위에 저장된 사람과 영상통화로 보고 싶다고 말하기.”말이 끝나자 주위가 순간 조용해지더니 갑자기 야유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신 팀장님 즐겨 찾기에 저장되었다면 일과 관계된 사람 아닐까?”“거야 모르지. 신 팀장님께서 지금 대시하는 여자가 있잖아.”“만일 아니면 입장이 난처해지는 거 아니야?”“...”다들 웃으며 추측하고 있을 때 신주리는 쌤통이라는 표정으로 신하균을 바라보았다.확실히 입장이 난처해졌다.전에 신주리가 신하균의 핸드폰으로 엄마에게 메시지를 발송할 때 보니 즐겨찾기에 저장된 유일한 멤버는 그의 직장 파트너였다.맞아. 남자였어.신하균이 머뭇거리며 어쩔 바를 몰라 했다.이때 육경서가 나서면서 신하균의 위기를 모면해 줬다.“이렇게 하면 어때? 신 팀장님 신분이 특수하잖아. 먼저 즐겨찾기 멤버가 누구인지 보고 만일 일 혹은 직장과 관련된 거면 음성 통화는 안 하는 거로.”한밤중에 직장 동료에게 영상 통화로 보고 싶다고 하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다.두 남자라서 어색한 것보다 만일 파트너가 예민한 성격이라 신하균이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호들갑이라도 떠는 날이면 수습하기 어려울 것이다.다들 동의하고 신주리도 의견이 없는 듯했다.“그래, 우리한테 보여주기만 하면 돼. 누가 신 도련님 마음속에 제일 중요한 사람인지 알고 싶어.”말하면서 신주리가 릴리를 무심하게 힐끗 쳐다보니 어쩔 수 없지만 받아들이겠다는 표정을
고개를 들어 신하균 쪽을 바라보다 앞을 막고 있는 사람 사이로 자기를 바라보는 깊고 조용한 눈빛과 정확히 부딪혔다.그러자 릴리는 움찔하면서 저도 모르게 수락 버튼을 누르니 신하균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면서 핸드폰을 들고 낮지만 섹시한 목소리로 느릿하게 말했다.“요 며칠 릴리가 아주 많이 보고 싶었어요. 시간 날 때 메시지 답장 좀 할래요?”마치 방안에 두 사람만 존재하듯 쥐 죽은 듯 고요했다.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와 현실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겹치더니 무한한 파워가 생기면서 바로 릴리의 심장을 가격했다.릴리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고 얼굴도 살짝 상기되면서 바로 통화를 끊어버리더니 뾰로통하게 말했다.“바빠요. 누가 맨날 핸드폰만 쳐다봐요?”“내가 봐요.”“네?”“릴리 답장을 기다리느라고 수시로 확인해요.”신하균이 설명을 덧붙였다.“...”“세상에 온몸이 오그라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연애 기술은 태생인가요? 아니면 어디서 과외라도 받았어요?육경서의 호들갑 소리가 이상하리만큼 고요한 침묵을 깨뜨리자 다른 사람도 그제야 너도나도 한마디씩 했다.“역시 도련님은 도련님이야. 내가 아까 연애를 가르쳐주겠다고 했던 말 취소할게. 난 자격이 없어.”“릴리, 메시지 받으면 한글자라도 적어서 보내. 아니면 일하는데 집중이 되겠어?”“신 도련님이 이런 사람일 줄 몰랐어요.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릴리 씨는 어떻게 참았어요? 콘크리트로 심장을 봉하기라도 했어요?”“...”주위에서 의논하는 소리가 분분했다.릴리는 얼굴이 아까보다 훨씬 뜨거워지고 귀뿌리까지 화끈거려 손을 저으며 화제를 돌리려고 애썼다.“게임 계속해요.”다음 주자부터는 서로 밑바닥까지 아는 사이라 흥미가 확 사라졌고 모험게임은 범위가 넓기에 가슴이 뛰는 짜릿함도 덜 했다.그렇게 고우신 차례가 되었다.눈이 높기로 소문난 고씨 가문 도련님이 오늘은 이상하게 조용해 전혀 존재감이 없었다.“속심말할 거예요? 모험할 거예요?”육경서가 고우신의 체면
고요함이 귀청을 때렸다.다들 말도 없고 반응도 하지 않는 것으로 자기 태도를 표시했고 자발적으로 게임을 지속했다.다음 순서는 김솔이었고 그녀는 속심말을 선택했다.원래는 무작위로 문제를 선택하는 것이었지만 김찬욱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이번에도 카드를 뽑지 않고 김옥이 먼저 입을 열어 물었다.“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어떤 사람이야?”“...”모든 사람이 숨을 죽이고 조용히 기다렸다.김솔의 눈빛이 슬쩍 옆을 쓸고 지나가더니 다시 릴리의 방향을 보면서 말했다.“있어. 지금 이곳에 있어.”“정말?”“대체 누가 김솔 씨의 마음을 사람 잡은 거야?”“혹시 짝사랑이야? 아니지? 대담하게 말해봐. 그 사람도 널 좋아할 수 있잖아.”“...”놀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다들 기대에 찬 눈빛으로 김솔을 바라봤지만 릴리만 저도 모르게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김솔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도발적인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가까이에 있는 남자를 보면서 대놓고 암시했다.“유감스럽게도 조금 전에 그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어. 하지만 상관없어. 나는 인내심이 강하기 때문에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수 있어.”다들 서로의 눈치를 봤다.“???”혹시 신 도련님 말이야?김솔이 신 도련님을 좋아한다고?이건 대체 무슨 대형 아수라장이지? 공개적으로 선전 포고하는 건가?다들 흥미진진해서 보고 있었다...김솔의 말은 공개 고백과 마찬가지였기에 분위기가 이상해졌고 신하균과 릴리와 김솔은 동시에 집중대상이 되어 버렸다.기대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몰라도 모두의 바람대로 다음으로 뽑힌 행운아는 바로 릴리였다.“둘째 아가씨, 속심말이야 모험이야?”한 재벌 2세가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그 옆에 앉은 여자는 속마음을 감추려고 하지도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속심말 해. 문제도 다 준비했어.”“팝콘도 준비했어. 속심말 선택해 줘. 부탁이야.”“속심말, 속심말.”“...”모든 사람의 기대 속에서 릴리는 테이블 위에 놓인 카드
릴리는 김찬욱의 고소해하는 표정을 보더니 다시 한번 확인했다.“뭐라고요?”“이곳에 있는 이성 중의 한 명을 선택해 입으로 과일을 먹여줘야 한다고요. 무슨 과일인지는 상대가 지정할 수 있어요.”김찬욱은 릴리가 못 알아들었을까 봐 진지하게 설명했다.설명하고 나서 그는 릴리의 눈빛이 이상함을 감지했고 갑자기 안 좋은 예감이 떠오르면서 다급히 덧붙였다.“선택당한 사람은 거절할 수 있어요. 거절당하면 다시 선택해야 해요.”분명히 김찬욱에게 물귀신 작전을 펼치려는 듯한 눈빛이었다.김찬욱이 미쳤다고 릴리와 이런 게임을 한단 말인가?“그렇게 쓰여있어요? 거절할 수 있다고?”릴리가 고집스레 묻자 김찬욱이 당당하게 대답했다.“안 쓰여있지만 거절할 권리는 있는 거 아니에요? 나같이 여자 친구가 있는 사람은 배려심이 있어야죠. 다들 안 그래요?”“맞아. 당연히 거절할 수 있지. 이건 게임에서 진 사람을 징벌하는 거지 우리를 징벌하는 거 아니잖아.”어떤 총명한 사람이 이내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그 때문에 거절하지 않을 이성을 찾아야죠.”“...”구경꾼들은 일을 키우기에 급급했지만 반대의견이 있을 시에는 소수가 다수에 복종하는 것이 원칙이다.릴리가 좀 더 고집을 피워보려다가 엉겁결에 신하균을 흘낏 쳐다보고 말았다.남자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이 없었지만 두 눈을 들어 조용히 릴리를 쳐다보는 것이 마치 버림받은 강아지 같았다.릴리가 움찔하더니 입가까지 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좋아요.”“만일 모든 이성이 거절하면요?”두 목소리가 동시에 흘러나왔고 좋다고 한 건 릴리였고 진지하게 물음을 던진 사람은 신주리였다.신주리는 여느 구경꾼과는 달리 친오빠인 신하균이 오픈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신하균이 아무리 릴리를 좋아한다고 해도 많은 사람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말이 끝나자마자 신주리가 보수적이라고 생각했던 신하균이 담담하게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모든 사람이 거절하지 않을 거야. 적어도 나는 아니야.”신주
릴리의 시선이 과일 접시를 훑고 지나더니 부득이하게 선택해야 한다면 딸기가 괜찮은 선택이었다.“괜찮아요. 그런데 수박이 더 낫지 않아요?”“수박은 너무 커요.”신하균이 낮은 소리로 완곡하게 거절했다.신주리의 눈이 다시 휘둥그레졌다.“욕심을 더 확실하게 드러내지 그래? 아예 블루베리로 해.”신주리가 비꼬는 말투로 툭 내뱉었지만 신하균은 전혀 미동이 없는 얼굴로 포기하지 않고 릴리에게 물었다.“블루베리는 안 될까요?”“딸기! 딸기로 해.”“...”손가락으로 새빨간 딸기를 집으려 할 때 릴리의 가슴이 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솔직히 말해 릴리가 많은 남자 친구를 사귀었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남자와 접촉해 본 적이 없었다.그것도 수많은 사람이 바라보는 앞에서 주동적으로 남자에게 다가가야 하는 상황이었다.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다짐하더니 눈을 감고 이로 딸기를 물고 신하균을 향해 다가갔다.남자의 눈빛이 아까보다 좀 더 깊어지면서 눈앞의 여자를 보니 딸기의 빛이 반사된 것인지 아니면 부끄러워서인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올라있었다.빨간 입술에 하얀 이를 드러내고 다가오는 모습이 상당히 유혹적이었다.신하균은 눈을 감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참으며 몸을 낮추더니 고개를 숙였다.상대방의 호흡소리가 들리자 릴리의 가슴이 당장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신하균의 얼굴이 눈앞에서 점점 확대되더니 입술이 살짝 닿으면서 달콤한 딸기즙이 입안으로 흘러들어왔다.입술이 닿을락 말락 했던 느낌이 마치 깃털이 살짝 스치고 지나간 듯했고 분명히 거의 아무 감촉이 없었지만 릴리는 온몸이 전기충격이라도 맞은 듯 굳어졌다.사람들의 환호 소리에 방안이 시끌법적했기에 그 누구도 릴리의 표정이 일순 변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릴리는 오작동한 기계처럼 입안의 딸기를 잘근잘근 씹으니 달콤했다.처음 연애를 해서부터 릴리는 자신이 이성과의 신체접촉을 거부한다는 것을 알아챘다.키스가 그나마 유지 가능한 적정거리였는데 상대가 선을 넘으려 해서 헤어진 경우가 많았다.하지만 신하균과
김옥이 술에 취한 김솔을 끌고 차에 태워달라고 부탁했다.“김찬욱이와 고우신은 어데 갔어요?”신하균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뒤쪽을 바라보니 고우신의 차가 아직 있었다.김옥이 웃으며 말했다.“우리 오빠는 우리를 안 데려다줄 걸 알잖아요. 그리고 우신 오빠는 릴리를 데려다주고 싶어 하는데 기회를 줄 수 있겠어요?”신하균은 묵묵부답이다.그는 김옥의 의도를 알 수 있지만 릴리를 대신해 결정할 수 없기에 고개를 숙이고 곁에 서 있는 릴리에게 낮은 소리로 의견을 물었다.“고우신과 함께 가고 싶어요?”그러자 릴리도 고개를 들면서 그를 바라보며 되물었다.“절 바래다주고 싶어요?”신하균의 눈이 반짝이더니 이내 말했다.“당연하죠.”“그럼 기회를 하균 씨에게 줄게요.”이 말을 남기고 릴리가 먼저 신하균의 차에 올라타자 남자는 웃으며 고개를 돌려 김옥에게 말했다.“미안해요. 김옥 씨, 차 불러서 바래다 드리라고 할게요.”“옥아. 집에 가면 안 돼. 큰아버지가 널 데리고 술 마시러 나온 걸 알면 또 한바탕 뭐라 하실 거야.”김솔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정색해서 당부했지만 말투를 들어서는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김솔은 오늘 밤 기분이 상당히 안 좋았다.그녀의 신분, 학력과 미모를 따지면 주위에 널린 게 흠모자이다. 김솔과 릴리의 연애관이 비슷해 쿨하고 내키는대로 했으며 좋으면 사귀고 싫증나면 헤어지면 그만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차이점이 뭐냐면 김솔은 항상 주도권을 자기가 잡고 있었고 먼저 싫증 나서 헤어지는 타입이다.이렇게 교만하고 아름다운, 거의 한번도 거절당해 보지 못했던 김솔이 처음으로 신하균에게 거절당했다.“전 낯선 사람이 바래다주는 걸 안 좋아해요. 도와주세요. 먼저 릴리를 바래다주고 우리를...”김옥은 단념하지 않고 릴리와 함께 타고 가더라도 신하균의 차를 타려고 애썼다.신하균이 고개를 돌려 차 안을 들여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리면서 예의 바르게 철벽을 쳤다.“김옥 씨, 어떤 일은 강요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오늘 충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