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석훈은 릴리의 흥분된 말투에 놀라 한참 뒤에야 손을 내밀어 릴리의 손끝을 잡았다가 재빨리 놓았다.“그, 그래요?”말하면서 그는 고개를 돌려 신하균에게 눈빛으로 도움을 청했다.신하균도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릴리는 방금 식탁 위의 음식을 호시탐탐 노려보았다.그 눈빛은 릴리가 제일 처음 신하균을 만났을 때와 똑같았다. “당연하지. 릴리가 방금 친아버지를 봤을 때보다 더 좋아하는 눈빛으로 네 요리를 쳐다보던데.” 신하균이 조곤조곤 말했다.“틀렸어요! 어떻게 이런 미식을 고정남이랑 비교할 수가 있어요? 흥이 다 깨져버렸잖아요!”“네, 네. 아가씨 흥을 깨버려서 죄송합니다.”신하균이 말했다.“괜찮아요. 그럼 제가 너그럽게 용서해 드리죠.”“...”“이분은 당신 친구예요? 이렇게 멋지게 생긴 것을 보고 저는 단번에 이 요리들이 이 분이 만든 것이라는 것을 눈치챘어요.”릴리는 칭찬을 하면서 다람쥐 쏘가리에 손을 내밀었다.신하균은 눈썹을 찡그렸다. “...”‘굳이 칭찬하려면 객관적으로라도 하지 그래?’‘잘생긴 거랑 요리실력이 좋은 거랑 무슨 상관이 있지?’신하균이 무슨 말을 하려는데 옆에서 더욱 과장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째 아가씨는 역시 안목이 좋으시네요. 저도 당신을 매우 좋게 보고 있었습니다!”릴리는 눈웃음을 지으며 우아하게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요리 실력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둘 다 모처럼 서로의 가식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접시가 거의 바닥을 드러냈을 때 릴리는 마침내 젓가락을 내려놓고 휴대폰을 꺼내어 건네주었다.“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같이 식사해요!”“...”기석훈은 얼굴이 갑자기 굳어지며 릴리를 쳐다보았다.릴리는 양심이 조금 찔렸다.‘망했다. 내 의도를 알아차린 건가?’‘아니면 나한테 연락처를 알려주고 싶지 않나?’‘식사라는 단어는 말하지 말걸.’기석훈은 못마땅한 얼굴로 릴리를 잠시 쳐다보다가 재빨리 핸드폰을 꺼냈다.“연락처를 물어보는
릴리는 고개를 돌려 예쁜 두 눈으로 신하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왠지 느낌이 이상하다.“맞장구쳐줄 필요 없어요. 이따 제가 추가하라고 할 테니까 릴리 씨는 예약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예약하세요.”신하균이 덤덤하게 말했다. 릴리가 눈을 반짝이며 숭배하는 말투로 물었다. “정말이에요?”신하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했다. “될수록 이면 저도 함께 데려와 주셨으면 더 좋겠고요.”릴리는 잠시 멍해서 반응이 없었다.“쯧쯧쯧. 신 팀장님 참 대범하십니다. 세 사람의 약속인데 세 번째 당사자의 의견은 묻지도 않습니까?”기석훈은 신하균에게 주도권을 쥐게 하려는 의도였다. 릴리의 머릿속은 음식으로 가득 찬 게 뻔했다. 그러니 기석훈이 연락처를 안 주면 릴리는 신하균한테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신하균은 되려 그를 팔아버렸다.‘바보 같기는. 이러니 모태 솔로지.’신하균은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물었다. “왜. 불만 있어?”“내가 무슨 불만이 있겠어. 나는 그저 둘의 오작교지 뭐!”릴리는 젓가락을 들고 이쪽저쪽을 살피다가 둘 사이가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릴리는 뒤늦게 기 셰프의 의도를 알아차렸다.분위기가 잠시 어색해졌다.그러나 신하균의 말처럼 욕심만 없으면 두려울 게 없다고 기석훈은‘마이웨이’를 끝까지 실천했다.그는 유쾌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둘째 아가씨, 또 뭐 먹고 싶으세요? 오늘은 제가 쏠테니 마음대로 주문하세요!”릴리는 순식간에 어색함이 싹 가시고 흥미가 생겼다. “당신이 쏜다고요?”“물론입니다. 첫 만남이 너무 갑작스러웠어요! 신하균이 퇴근하기 전에야 저한테 말해서 당신에게 줄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어요!”이 말은 진심 같았다.릴리가 의아한 듯 신하균에게 물었다. “퇴근하기 전에야 예약했다고요?”신하균은 공용 젓가락으로 릴리에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 “비상사태가 생겨서 야근을 할 수도 있으니 미리 예약할 수는 없었어요.”“아이고, 신 팀장님 바쁘신 거 다 이해합니다. 저야 한가한 사람이니 언제든지 불러만 주십
신하균이 먼저 침묵을 깼다. “아버지는 예전 회사와의 계약 종료를 고민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요즘 새로운 협력사를 찾는데 골머리를 앓고 계셨고요. 고성그룹은 이 방면에서 실력이 있다는 걸 잘 압니다. 그래서 제가 한마디 조언했을 뿐입니다.”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은 신하균이 한 말이 신씨 가문이 결정을 내리는데 큰 몫을 했다는 것을 릴리는 잘 알고 있다.릴리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물잔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신하균 씨, 저는 언니와 스타일은 다르지만 성격은 같아서 낙하산은 하기 싫어합니다.”“...”신하균은 잠시 멈칫하고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는 그저...”“알아요. 다만 저도 알량한 자존심이라도 좀 지키려는 거예요!”릴리는 밝고 진심 어리게 말했다.“당신의 도움은 감사하지만 저도 이번에는 대책이 있어요. 저 혼자의 힘으로 해결하고 당신의 호의를 받아들이고 싶어요.”신하균은 릴리를 몇 초 동안 지켜보다가 가볍게 입을 열었다. “그래요. 아버지께는 잠시 기다려달라고 얘기해 놓을게요.”릴리는 갑자기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너무 건방져 보일까요?”신하균은 생각하더니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조금은요. 하지만 장래의 며느리를 위해서니까 아버지도 흔쾌히 허락하실 거예요.”릴리는 두 볼이 약간 뜨거워지며 어이없다는 듯 입을 삐죽이고 말했다. “장난하지 말고요!”“진지하게 하는 말이에요. 저와 신씨 집안 모두 무조건 당신 편입니다. 저는 당신이 바라는 미래를 같이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선택을 존중하고 개입하지 않고 당신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고 싶습니다.”“...”릴리의 처진 눈꺼풀이 가볍게 떨렸다.지금이 따뜻한 느낌은 릴리더러 이성을 버리고 오랫동안 억눌렀던 감정을 직시하게 하기에 충분하다.릴리는 신하균과 눈을 맞추며 진지하게 말했다. “신하균 씨, 당신이 전에 말했던...”“저 왔습니다! 오래 기다리셨죠!”문밖에서 들려오는 쾌활한 목
“됐어요. 이제 저랑도 서먹서먹하게 굴지 마세요. 신하균처럼 떳떳하게 행동해 봐요! 당신이 금기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모두 저한테 알려주세요. 다음에 올 때는 반드시 실수는 없을 거예요! 참, 좋아하는 음식도 알려주시면 다음에 챙겨드릴게요!”오늘은 그에게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정말요? 그래도 돼요?”기석훈이 대답했다. “물론이죠. 만약 앞으로 둘이 사귄다면 언제든지 와서 식사하세요. 전부 공짜니까! 둘의 결혼식 요리도 제가 전부 책임져 드리죠!”화제가 저도 모르게 다시 두 사람으로 돌아갔다.신하균은 기석훈이 본인을 ‘미끼’로 릴리에게 어필해 준 것에 조금 감동했다.그런데 좀 민망하기도 했다.특히 이 상황에서 릴리는 더 그럴 것 같았다.그는 가볍게 기침을 한 번 하고 나서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정말입니까? 번복하면 안돼요!”릴리는 몸을 곧게 세우고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그 표정은 마치 그가 확답만 하면 지금 당장 결혼할 수 있는 것 같았다.“???”신하균은 착잡한 표정으로 릴리를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기석훈을 바라보았다.상대는 가슴을 치며 호언장담을 늘어놓았다.“그야 당연하죠!”“거래 성사!”두 사람은 하이파이브를 하며 쉽게 합의를 보았다.‘결혼’상대는 옆에서 한마디 발언권도 없이 이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방금 신하균의 소개 때문에 기석훈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난 릴리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더 이상 거리낌이 없었다.오히려 과묵한 신하균이 둘에게‘왕따’를 당했다.그래도 그는 개의치 않고 조용히 음식을 릴리에게 집어주거나 강철에게 먹이며 기다렸다.일등 남편감 같은 모습이었다.릴리는 이미 익숙해 별로 놀라지 않았지만 기석훈은 몇 번이나 놀랐다.떠날 때 기석훈은 살며시 릴리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둘째 아가씨는 남자를 길들일 줄 잘 아시네요! 언제 저한테 비법이나 좀 공유해주세요!”“기 셰프, 당신 좀 의심스러워요!”“...”“앞으로 우리 신 팀장이랑 접촉을 줄여야 할 것 같네요
신하균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강철을 뒷좌석에 앉히고는 릴리를 향해 말했다. “이제 가죠.”그러자 릴리가 대답했다. “가요! 가요!”릴리는 기석훈을 향해 아쉬운 듯 손을 내저으며 빠른 걸음으로 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기석훈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가게로 들어갔다.차가 도로에 합류했다.서울의 밤은 번화하고 시끌벅적하다.도로 양쪽의 가로등이 두 줄로 이어져 하얀색 은하수 같았다.검은색 승용차는 차량들 속에서 천천히 달렸다. 차 안은 조용했고 신하균은 신호등을 기다리는 틈을 타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그는 방금 문자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잠금을 해제한 후 문자를 보던 그의 차분한 눈매가 살짝 빛났다.릴리는 강철을 뒷좌석에서 데려와 품에 안고 놀다가 곁눈질로 그의 유쾌한 얼굴을 흘끗 보고 무의식적으로 따라 웃으며 물었다.“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입꼬리가 귀까지 걸렸네요.”“...”신하균은 핸드폰을 끄고 릴리를 돌아보았다.웃음기가 얼굴에 번지고 목소리가 경쾌해지며 말했다. “네, 좋은 일이 있어요.”릴리는 의심스러운 듯 그를 바라보며 그가 계속 말하기를 기다렸다.하지만 상대는 더 이상 말할 뜻이 없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릴리는 한참 쳐다보고도 답을 얻지 못하자 입을 삐죽하고는 고개를 돌려 강철에게 말했다.“애기야, 이 오빠랑은 앞으로 놀지 마! 이상한 사람이야. 너는 나랑 살고 있으니까 내가 네 부모야. 앞으로 모든 일은 이 아버지에게 본받아야 해. 알겠어?”신하균은 아직도 방금 기석훈이 보내온 문자에 정신이 팔려있다. ‘우리 신 팀장님...’‘미래 남친...’‘릴리의 마음속에는 내가 있다. 단지 츤데레라 말하지 않는 것뿐이다. 그가 계속해서 진심으로 대한다면 언젠가는 릴리도 받아들일 것이다... 응?’‘오빠?’‘아버지?’“촌수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그는 고개를 돌려 얼굴을 찌푸리고 릴리를 보았다.릴리는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그런가요?”릴리의 품에 안긴 작은 생명을 힐끗 쳐다본 신하균이 말했
신하균은 몇 초 망설이더니 말했다. “일요일 오후에는 제가 일이 좀 있어서 늦게 도착할 거예요. 그러니 먼저 가세요.”“...”사실 이번 모임에서는 회식을 명분으로 일 얘기를 할 계획이다. 그래서 릴리는 그를 데리고 갈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그가 굳이 가겠다고 해서 릴리는 승낙했다.그리고 그를 계획에 포함시켰다.그런데 시간이 임박했는데 또 일이 생겼다고?릴리는 괜히 마음이 서운했다.다음 날 스케줄이 어떻게 되냐고 수없이 물었지만 자기 일이 바빠서 한 번도 데이트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괜찮아요. 굳이 안 가도 돼요.”릴리는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하지만 신하균은 알아듣지 못한 채 자신의 생각에 잠겨 말했다. “이렇게 중요한 날에 저도 당연히 가야죠. 꼭 갈 테니 안심하세요.”“???”별로 중요한 날은 아니다.‘굳이 안 와도 되는데...’...일요일 휴일날 릴리는 정오까지 잠을 잤다.일어나서 브런치를 시켜 먹고 나서는 화장하고 옷을 고르며 저녁 회식 자리를 준비했다.릴리는 김씨 집안과 연락이 없다.그런데 신주리는 있다.그러니 신주리의 이름으로 김씨 집안의 작은 아가씨들과 다른 재벌 2세들도 불렀다.모두들 오랜만에 모이는 것이다.하지만 명단에 릴리가 있는지라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화장을 다 하고 옷을 갈아입고 있을 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릴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전화를 받았다.“재촉하지 마세요.”릴리는 신주리의 소식이라 짐작하고 재촉 말라고 했다.과거 모임에서 릴리는 지각 전과가 많다.하지만 오늘은 릴리가 가장 적극적이어서 절대 늦지 않을 것이다.잠시 후 전화기 너머로 예의 바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릴리 양, 시간 될 때 만날 수 있을까?”“... 고 부인?”릴리는 목소리를 듣고 무의식적으로 말하고는 얼른 호칭을 바꿨다. “아, 죄송합니다. 이제는 아니시구나, 심 여사님.”고 부인이라는 호칭은 그동안의 습관 때문에 다른 뜻 없이 불쑥 내뱉은 말이다.저쪽에서도 따지
한편 이쪽. 고주영은 이렇게 전화를 끊은 심수정을 약간 의아한 듯 쳐다보았다.“엄마! 왜 동의하셨어요? 다음 주 수요일까지 되려면 아직 이렇게 오래 남았는데! 그가 중간에 무슨 짓을 할지 알아요? 오늘 소식 못 들으셨어요?”신주리의 모임에 서울의 명문가 재벌 2세들은 모두 초대받았다.간단하게 모이는 거라고 했지만 어엿한 고성그룹 집안의 아가씨가 초대 목록에 없었다.보통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가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도 감히 이 모임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하지만 초대받은 사람은 모두 참석했다.모두 말이다.이것은 얼마나 명백한 신호인가?‘고성그룹의 아가씨는 그 망할 계집이고 나는 이미 서열 밖이란 뜻이잖아!’“들었는데 어쩌려고? 릴리에게 모임에 가지 말고 바로 나를 만나러 오라고 할까? 그게 가능할 것 같아?”심수정의 목소리는 차가웠다.고주영은 목이 메어 유난히 안색이 안 좋았다.“...”“엄마도 네 마음이 급하다는 걸 알지만 지금 우리는 열세라서 뭘 요구할 자격이 없어. 게다가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 오늘의 모임은 단지 너만 배척하는 게 아니다.”“???”고주영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하지만 심수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것은 그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돌아오자마자 고주영에게 물으니 역시나 릴리가 권세를 믿고 사람을 업신여긴다는 답이 돌아왔다.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믿지 않고 조운 그룹에게도 물었다.그리고 여러모로 수소문하여 마침내 진실을 알아냈다.어쩐지 원래는 그들과 맞서려고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만나 악수하고 화해할 기회조차 주지 않더라니.자기 딸이 너무 심하게 잘못해서 지금 사과도 할 수 없고 정면승부는 더더욱 할 수 없어졌다.이제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할 수밖에 없다.2층에서 내려오자 심수정은 마침 밖에서 돌아오는 고우신을 만났다. 풀이 죽은 얼굴이었고 아무도 건드리지 말라는 기세였다.심수정은 계단 입구에 서서 이 못난 아들을 보고 있자니 눈가에 희미한 빛이
고정남은 기척을 듣고 황급히 빠른 걸음으로 나와 승용차가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고 안색이 나빠졌다.‘심수정!’‘이 여자 미친 거 아니야?’심수정은 차를 몰고 도로에 합류했다.고우신은 멍한 얼굴로 어머니의 싸늘한 옆모습을 보며 긴장했다. “엄마,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심수정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고우신에게 몇 글자를 던졌다. “빌리진.”고우신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굳어지더니 말했다. “거기에 왜 가요? 안 가요!”“네가 안 가면 여동생이 김씨 집안과 혼인할 텐데 그걸 지켜만 볼 거야?”심수정이 덤덤하게 말했다.“...”고우신은 결국 사실대로 말했다.그는 사실 이미 갔었다.하지만 들어가지도 못하고 육경서 그놈에게 한바탕 욕만 먹었다.육경서도 육 씨 가족인지라 이때 입장을 밝히자 주위에서도 맞장구를 치며 빈정거리더니 급기야 ‘고씨 가문의 개는 환영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왔다.그는 살면서 처음으로 이런 홀대를 받았다. 그래서 바로 돌아섰다.그리고 사실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어쨌든 상대 마음속에서 자신들은 아무런 지위도 없기 때문이다.“어머니, 저도 정말 한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고 싶지만 아버지와 주영이가 잘못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고우신이 진지하게 말했다.사실 더 직설적인 말은 하지 않았다. 정말 돌이킬 수 없다면 그는 차라리 릴리를 지지하겠다고 말이다.먼저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원래도 릴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고주영은 사과하지 않았을뿐더러 릴리를 난처하게 하고 고성그룹으로 장난을 쳤다.그는 정말 고주영을 지지할 수 없다.심수정은 똑똑해서 이 말을 듣고 바로 고우신의 마음을 알아챘다.심수정은 의아한 듯 고우신을 돌아보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었다. “어머나, 우리 평화주의자가 지금 편을 드는 거야?”“굳이 편을 들려면 맞는 사람 편을 들겠습니다.”고우신은 우물쭈물하고 우유부단할 수는 있지만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녀에게 증명하고 싶었다.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