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연예계를 은퇴하면 되죠! 연기를 안 하면 죽지 않지만 그 바보한테 시집가면 저는 정말 죽어버릴 거예요! 김씨 가문이 다른 속셈이 있고 저도 마음에 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계시잖아요! 정말 제가 죽는 꼴을 보실래요?”“그럼 네 할아버지가 망하게 두고 볼까? 그녀가 그 자료들을 넘기면 네 할아버지는 이 나이에 감옥에 가실텐데?”고정남이 엄하게 되물었다.고주영은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기억속의 아버지는 집에 거의 없었다. 집에 있는 시간에도 그들에게 그렇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주영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마음 속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아버지가 효자라는 것도 잘 안다.그래서 그녀는 항상 할아버지의 말을 잘 듣고 모든 비위를 맞추었다. 이렇게 하면 아버지가 그녀에게 더 관심을 가져줄 것 같았다.사실이 증명하듯이 이 방법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고정남은 아내보다 자녀들에게 훨씬 잘해 주었다. 어른들에게 효도하며 늘 고성그룹의 명예를 지키는 데 전념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고주영은 어렸을 때부터 그녀가 이익을 얻었던 이 습관과 방법이 언젠가 그녀의 인생을 망칠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다.고정남은 고주영의 쓸쓸하고 상처받은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하고 위로했다. “아버지는 네 억울함을 안다. 하지만 네가 혼인을 해야만 고성그룹이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지! 그 계집애는 그 자리가 앉기 쉽다고 생각하겠지. 얼마나 많은 노력으로 그 자리에 오르게 됐는지 전혀 모를거야!”“그래서 지금 걔를 위해서 김씨 집안과 정략결혼을 하라는 거예요?”고주영이 그를 올려다보는 눈 밑에는 원한이 서려 있었다.고정남이 설명했다. “릴리뿐만이 아니라 네 할아버지를 위해서이기도 해.”“제가 왜 남을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데요!”고주영은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분노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그녀는 사랑도 잃고 직업도 잃고 이제는 바보에게 시집까지 가게 생겼다.그녀는 왜 늘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
고우신은 밤새도록 이런 저런 생각에 뒤척였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그는 냉정히 릴리가 그들을 용서해줄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그러나 분명 기대했던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그는 릴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릴리는 고우신이 위선적이고 약자를 동정할 뿐이라고 했다.‘하지만 가족을 위하는 것이 정말 잘못된 것 일까?’여기까지 생각하자 그는 오늘 밤 아버지의 결정이 생각났다. 그는 고주영과 김씨 가문의 바보의 혼인을 승낙했다.이것은 모두 할아버지를 위한 것이다.모두 가족을 위한 일이다.‘그나저나 주영이는 가족이 아닌가?’‘아버지가 이렇게 가족을 희생시켜 가족을 지키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일까?’그는 아버지의 방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고주영을 위해 릴리더러 타협하라고 한다면 아버지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모두 가족의 이익을 위해 다른 가족을 희생시키는 방법이다.여기까지 생각하니 그는 머리가 복잡한 듯 이불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맞다.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왜 굳이 문제를 일으켰을까?...새벽. 고우신은 전화 한 통에 잠에서 깼다.그는 수신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전화기 너머로 몇 초간 침묵이 흘렀다. “오빠 목소리가 참 좋으시네요. 저한테 돈이 좀 있는데 지금 만날 수 있을까요?”“???”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그는 낮은 목소리로 욕을 한 마디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휴대폰을 내려놓고 잠을 청하려는데 다시 휴대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그는 휴대폰을 들어 힐끗 보았다.또 낯선 번호였다.“여보세요?”“어머, 우리 꽃미남도 아직 안 잤나 보네요? 위치 좀 알려 주세요. 제가 데리러 갈까요? 참, 개인정보는 사실인가요? 진짜 키 188에 복근이 있어요?”“...”고우신은 잠이 차츰 깨고 휴대폰을 들여다 보았다. 방금 그 사람도 그렇고 무슨 상황이지? 그는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개인정보라니? 누구세요?”“어젯밤 월계만의
밤은 길고 잠들지 못한 사람은 많았다.프로필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많은 여인들이 참지 못하고 전화를 걸었다.고우신은 그날 밤 수많은 ‘초청’ 전화를 받았다. 오만한 태도의 사람도 있었고 조심스럽게 떠보는 사람도 있었다.날이 차츰 밝아올 때 고우신은 다크서클이 가득한 얼굴로 휴대폰 전원을 껐다.그는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빤히 쳐다보다가 잊어버린 게 뭔지 생각났다.전에 월계만에 그 계집애를 데리러 갔을 때 릴리는 사람들에게 다음 날 고우신의 개인 정보를 출력해서 정문에 붙여놓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당시에 릴리가 농담을 하는 건줄 알았다. 게다가 저녁의 일어난 불쾌한 일 때문에 그는 이 일은 진작에 잊고 있었다.지금 보니 릴리는 농담이 아니었고 보복성까지 띠고 있다.단순히 그의 개인 정보를 노출한 것이 아니라 그런 라벨까지 붙이다니.이제 남매 관계는 회복하기 어려울 것 같다....김씨 가문의 원래 의도는 가장 권세있는 릴리와 혼인하여 그녀를 통제하고 고성그룹도 통제하는 것이었다.하지만 이 일이 들통나고 고성그룹은 강미연에게 협박을 받았다.김 씨 어르신은 불이 김씨 집안까지 옮겨 붙을까 봐 걱정을 하셨다.바로 이때 김서준이 결혼 상대를 고주영으로 바꾸자고 제안했고 이는 강미연에게 적극적으로 호의를 표한 셈이다.못마땅한 김재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그런 황당한 말을 하는 거냐! 우리 김 씨 그룹의 지위와 권세가 그정도 밖에 안 되냐. 권세에 의탁하고 있는 여자에게 잘 보여야 할 정도로?”소파에 단정히 앉은 김서준의 얼굴은 김재원보다 차분하고 우아했다.그는 예리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보고 낮은 목소리로 그를 바로잡았다.“강미연은 권세에 의탁한 여자가 아니고 권모술수를 쓰는 정치인으로 Y국 황실을 쉽게 흔들 수 있는 사람이니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습니다.”“자기를 좀 그만 깍아 내려.”“강미연이 국내에서 지위가 없다고 해서 육시준도 그렇나요? 우리가 왜 이런 사소한 일 때문에 LK그룹의 반대편에 서야 하죠?”“육시준 같은
김 씨 어르신의 추측이 맞았다. 고성그룹은 감히 거절하지 못했다.심지어 그들이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고정남이 먼저 입을 열어 두 젊은이의 결혼식을 제안하고 두 그룹끼리 혼담을 맺도록 했다.이 일은 아주 수월하게 결정되었다.곧 소문이 퍼졌다.김씨 집안은 여전히 강미연에게 자신들의 태도를 보여 주고 싶어 했다.고정남은 이런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주영은 유명인이고 인기도 많은 편이다.갑작스런 결혼 소식은 한바탕 소란을 일으켰다.“뭐야? 대스타도 결국엔 재벌가에 시집가는 거야? 최연소 대상 여배우도 예외는 아닌가 보네.”“윗댓 무슨 소리 심? 우리 주영이는 고성그룹의 아가씨예요. 자기가 재벌인데 굳이 재벌가에 목적을 가지고 시집갈 필요가 있나요?”“저희가 알고 있는 고성그룹인가요?”“맞아요! 바로 그 고성그룹이에요. 제 여신의 이복언니예요!”“혼인 상대는 김씨 집안의 그 바보 도련님이라고요! 바보 도련님! 고성그룹의 소리 없는 전쟁. 여러분은 눈치채셨나요?”“강릴리 그년은 염치도 없나? 남의 가정을 파탄 낸 것도 모자라 이제 우리 주영이 한테 까지 손을 대?”“윗댓 말이 심하시네요! 우리 공주님이 뭘 했는데요? 증거 있어요?”“뻔하잖아요? 고주영이 그녀의 앞길을 막았겠죠! 회장 자리에 앉은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본모습이 드러나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물려받는다는 컨셉이나 내세우고. 정말 뻔뻔해요!”“증거를 대세요!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막말하지 마시고요. 당신 때문에 사람들이 고주영한테 비호감이 될 것 같네요!”“...”이 기간 동안 여 팀장의 고된 노력 끝에 릴리는 최고 이사 자리를 굳혔고 온라인상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하지만 고주영도 오랜 세월 동안 연예계에서 분투해 왔는지라 인기가 보통이 아니다.이렇게 갑자기 결혼 소식이 전해지고 심지어 상대는 김씨 집안의 바보 도련님이니 팬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그래서 분노의 화살을 고성그룹의 ‘외부인’에게로 돌렸다.바로 릴리다.두 사람의 팬들은 인터넷상에서
심수정은 고주영이 슬퍼하는 것 같아서 연신 위로하고 절대 그녀를 얼떨결에 시집가게 놔두지 않겠다고 말했다.고주영은 한참이 지나도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자 차갑게 말했다.“저 피곤해요.”그리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후 고주영은 휴대폰 화면을 보면서 눈 밑에 약간의 원한이 스쳤다.‘내 어머니는 왜 강미연이 한 것처럼 나를 무조건 편애하지 못하는 거야?’로열 엔터와 고성그룹의 홍보팀도 모두 그녀의 편이 아니다. 게다가 릴리도 아직까지 아무 말이 없다. 여론이 가장 뜨거울 때 사실을 폭로할 수도 있다.고주영은 성신영처럼 멍청하지 않다. 상대방이 더 유리한 분야에서 도발하고 싶지는 않다.여론이라는 길은 통하지 않으니 그녀는 이 길을 걷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고주영도 그 천한 모녀에게 본때를 보여주려고 한다. 국내는 Y국과 달리 모두가 그들 강씨 가문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고주영은 다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조 아저씨, 혹시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만나 뵐 수 있을까요?”...인터넷에는 여론과 욕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하지만 릴리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릴리도 만족할 줄 안다.목적을 달성했으니 명성 따위는 상관없다.사람은 욕심이 너무 과해서는 안 된다. 그 후로 며칠 동안 릴리는 똑같은 동선을 반복했다. 회사와 집 사이를 뛰어다녔다. 각종 회의를 하느라 바쁘거나 전문 지식을 배우느라 바빴다.이미 충분히 힘든 줄 알았는데 아직 시작뿐이었다.강유리와 육시준의 신혼여행이 시작된 후 임강중은 LK그룹 쪽에도 약간의 에너지를 쏟았다.그러니 릴리는 더욱 허둥지둥해졌다.“임 비서! LK그룹에서 잘리지 않았나요? 당신이 왜 자초해서 그 쪽 일을 처리해 주고 있는 거죠?”릴리는 책상에 기대앉아 금방이라도 떠나갈 임강준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임강준은 온화하고 공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육 사장님은 제 능력을 처음으로 알아봐 주신 분입니다. 사장님이 저를 필요로 한다면 저는 언제든지 도와드릴 것입니다.”릴리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릴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임강준을 바라보았다.임강준은 당황해서 부자연스럽게 넥타이를 정리하며 물었다. “제가 뭘 잘못 말했나요? 아니면 혹시 이런 식사 자리가 불편하신가요? 켈슨이 대신해서 가게 할 수 있습니다.”“아니요. 지금 이렇게 소통하고 있는 게 너무 좋아요! 그 인공지능 같은 말투 좀 바꿔주세요. Loosen up! 오케이?”“오케이.”“무슨 일 생기면 콜해요. 빠이.”임강준은 손짓을 했다. “???”역시 고급 AI답게 터득력은 막강하다.모드 전환이 아주 빠르다.임 비서가 없는 첫 회의는 비교적 순조로웠고 릴리는 그를 자를 날에 한 발짝 다가섰다고 생각했다.회의가 끝난 후 켈슨은 릴리와 함께 식사 자리에 가자고 자진해서 왔다.차 안.릴리가 물었다.“임 비서가 당신을 보낸 건가요?”릴리는 임강준이 대화할 때 식사 자리가 불편하면 켈슨을 대신 보내겠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네. 임 비서가 당신은 화를 참는 데는 소질이 없다고 했습니다.”켈슨이 솔직하게 대답했다.“...”릴리는 눈꼬리가 실룩거리더니 어이없다는 듯이 그를 흘끗 보았다.‘이런 일에도 천부적인 재능이 필요하나?’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 임강준은 잘못 추측했다. “일전에 공개됐던 제 개인 계정에 왜 그렇게 많은 불평이 있었을까요?”켈슨은 갑자기 받은 질문에 약간 당황했다. “임 비서의 추측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하죠. 억울한 일을 당하는 걸 참지 못하고 털어놓을 곳이 필요했을 테니까요.”“아니죠. 그 자리에서 울분을 터뜨리지 못하니까 온라인상에서 미친 척 한 거죠. 그리고 이건 제가 천대받는 데에도 경험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하고요.”“...”켈슨은 릴리를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솔직히 말해서, 그는 그다지 믿지 않는다.으레 으스대며 거만하게 행동하는 모습이 익숙해서 그녀가 화를 참는 모습이 어떨지 상상하기 어렵다.그러나 룸에 들어서자 릴리의 상냥한 태도는 상대방의 냉랭한 표정을 풀리게 했다.그리고 겸손하게 의견을 받아들였
‘비서?’릴리는 자기가 천대를 받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자기 사람이 무시당하는 것은 참지 못한다. 릴리는 처음으로 그에게 반박했다. “조 사장님, 이분은 저희 고성그룹의 대표시고 금융계에서도 유명합니다. 나이가 드신 건가요 술을 많이 드신 건가요. 이것도 모르세요?”조 사장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릴리의 부드럽고 순한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릴리의 속마음을 예측할 수 없었다.그녀는 태도가 성실하고 표정이 진지해 보이지만 사실 그 눈에는 공손함과 겸손함이 없었다.고주영 말대로 이 계집애는 만만하지가 않다.“내 안목을 의심하는 건가?”그는 차가운 목소리와 위협적인 어조로 말했다.“그럴 리가요?”대답을 하면서 릴리는 탁자 위의 술병을 집어 자신의 술잔에 보탠 다음 그를 향해 살짝 들어 올렸다.“켈슨은 성격이 직설적이고 술자리의 규칙을 잘 모릅니다. 만약 실례가 된 점이 있다면 제가 대신해서 사과드리겠습니다.”릴리는 여전히 예의 바르고 겸손한 태도였다.릴리는 술 한 잔을 비우고 여러 번 거절당한 계약을 다시 꺼냈다.“고성그룹과 조운그룹은 수년간 함께 일해서 윈윈했습니다. 이번 재계약은 당신들의 이윤을 원래보다 3포인트 더 올려서 성의를 표했습니다.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시면 서명해 주세요.”말투에는 겸손함이 좀 줄어들고 강인함이 좀 더 많아졌다.인내심이 바닥날 조짐이다.조 사장은 얼굴의 웃음도 옅어졌다.그는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비서가 이 상황을 보고 급히 ‘선의’의 주의를 주었다. “둘째 아가씨, 철이 없으시군요! 술도 다 못 마셨는데 왜 이런 흥을 깨는 말을 꺼내십니까?”“괜찮다. 아직 젊고 모르는 게 많으니 이해한다. 어른으로서 잘 가르쳐야 할 의무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 계약서에 서명을 해도 앞으로의 협력이 순조롭지 않을 것이다.”“...”또 말을 돌리자 릴리는 눈동자가 더 차가워졌다.잠깐 핸드폰을 힐끗 쳐다보고 침묵했다.그는 릴리가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냉소를 했다.‘계집애가
“고성그룹의 이런 태도는 협력할 마음이 없는 것 같은데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조성운은 무시당해 불쾌한 기분으로 벌떡 일어섰다.릴리가 너무 낮추어서 그는 릴리가 이 계약을 쉽게 포기할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이 말은 협박이자 결정을 강요하는 것이다.릴리가 완전히 고개를 숙이기만 하면 다음 조건은 더 쉽게 이야기할 수 있다.하지만 그는 릴리가 낮춘 것은 그저 도를 잘 조절하지 못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릴리는 이제 더 이상 참기 싫었다.“당신이 이 문을 나서면 협력은 영원히 끝납니다.”릴리는 휴대폰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조성운은 걸음을 멈추고 의아한 표정으로 릴리를 바라보았다. “뭐라고요?”“당신이 이 문을 나서면 우리의 협력은 영원히 끝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고성그룹뿐만 아니라 LK그룹과의 협력도 종료될 수 있습니다.”“...”조성운은 릴리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자기가 뭐라고 LK그룹이 오랫동안 협력한 동료에게 미움을 살 거라고 생각하는거야?’이 계집애는 나이는 많지 않으면서 패기는 작지 않다. “육시준이 형부라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네 언니는 이렇게 건방지지 않았다. 네가 뭔데?”조성운도 더 이상 상냥한 척하지 않았다. “우리 언니는 그렇지 않겠죠. 언니는 교양이 있지만 제 명성은 들어보셔서 아시잖아요.”릴리는 차가운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릴리도 교양을 쌓고 싶고 세력을 내세우지 않고 실력으로 승부하고 싶다.하지만 이런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세력을 내세우는 것이 더 빠르다.“서자는 영원히 서자지! 네 명성? 수치로 여기지 않고 도리어 영광으로 여기는 건가?”“조 사장님, 말조심하세요!”켈슨이 불쾌한 듯 말했다. “내 표현이 뭐? 당신 같은 사람이 판단해야 하나? 나는 당신을 알고 있어. 예전에는 나도 당신을 매우 좋아했어. 젊고 유능하고 박력과 안목이 있어서 말이야. 하지만 당신이 이렇게 타락할 줄은 몰랐지. 겨우 계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