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불빛이 켜졌다.서울의 밤은 번화하고 시끌벅적하다.낯익은 롤스로이스 한 대가 별장으로 들어섰다.강유리는 뒷좌석의 차창을 내리고 눈앞에 있는 검은 꽃무늬 대문을 쳐다보았다. 그 위에 금박을 입힌 큰 글씨는 이미 바뀌었다.강-강유리는 감개무량했다. 그리고 너무나도 익숙했다.매번 돌아올 때마다 강유리는 저 간판이 눈에 거슬리고 거부감을 느꼈다.성홍주 일가가 이곳을 점령하는 동안, 강유리는 심지어 이곳이 더럽혀져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고 느꼈었다.그런데 외할아버지와 이모님이 돌아오시고 본격적으로 입주하시자 집의 느낌이 바로 돌아왔다.“남편, 오늘 밤은 여기서 자고 갈까?”대문을 바라보던 강유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육시준은 태블릿을 들고 일을 처리하고 있다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강유리를 쳐다보았다. 그는 강유리의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육시준은 손을 뻗어 무릎 위에 올려진 강유리의 작은 손을 잡고 다정하게 말했다. “그래.”강유리는 그의 손을 잡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갑자기 미숙한 생각이 하나 떠올랐어!”육시준은 살짝 경계하며 말했다. “일단 들어는 볼게.”“봐봐. 이모는 오늘 고정남을 만나서 분명 불쾌한 기억이 떠올랐을 거야. 비록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속으로는 틀림없이 매우 슬프실 거야.”“그래서?”“사랑을 완전히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거야! 우리 이모한테 남자 친구를 소개시켜 주자!”“...”육시준은 경계를 풀었다.그래도 아직 통제 가능한 범위 내의 생각이다.너무 미숙할 정도는 아니다.그는 신중하게 타당성을 분석하고 말했다. “이모가 훌륭하시니 당연히 안목도 낮지 않으실 거야. 하지만 이 나이에 독신이고 능력 있는 남자에 아직 감정에 대한 기대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거야.”강유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꼭 동갑내기 남자를 찾아야 해? 그럼 선택 폭이 얼마나 좁아!”육시준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무슨 뜻이야
강유리는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강미연이 기분이 좋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그리고 아버지는 부러워할 리가 없다. 아마 자기가 이 자리에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실 것이다.강씨 가문은 요리에는 소질이 전혀 없다.강민영은 강미연과 성격이 정반대다. 강민영이 천하태평의 성격이라면 강미연은 승부욕의 최강자다.강미연은 무엇이든 잘하려고 한다. 이러한 성격은 젊었을 때는 더욱 강했다.그래서 셰프님까지 모셔서 요리를 배우며 숨겨진 재능을 살리려고 했었다.릴리와 바론은 모두 그녀를 경계하고 주변 사람들도 그녀와 요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했다.3년 전에 막 외국에 간 순진한 강유리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그녀가 실망할까 봐 그녀가 요리하는 것을 받아들였다.그리고는 식중독에 걸려 병원 응급실에 입원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바론은 노발대발하며 강미연을 호되게 꾸짖었고 그녀 자신도 미안해서 먼저 다시는 요리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했었다.그런데 지금은...공부는 안 하지만 자기 느낌대로 한다?‘자기가 기분이 나쁘니까 다 함께 죽자는 건가?’강미연은 그들의 표정을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때의 강유리처럼 순진한 놈을 골랐다. “시준, 이리와 이모 좀 도와줘.”육시준은 아무것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하려 하자 강유리는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강유리는 그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소리 없이 눈치를 주었다.강유리는 머리를 미친 듯이 굴리며 핑계를 찾았다. 그녀는 비록 집밥의 맛을 느끼고는 싶지만 그 대가가 목숨이라면 포기할 것이다.육시준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강유리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강미연이 성큼성큼 다가와 강유리의 손을 뿌리치고 육시준을 데리고 부엌으로 갔다.“아이고, 이제 신혼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달라붙어 있어! 남편 좀 빌려줘. 이따가 돌려줄 테니까!”강미연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육시준을 데려갔다. 강유리는 육시준의 다급하지만 우아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가에 희망의 빛이 스쳤다.어쩌면, 그녀의 전능한 남편이라
약을 써서 여자의 결백을 망치려는 비열한 수법은 할아버지와 자세히 대화하기 어렵다.어르신도 더 이상 자세히 묻지 않았다.단지 릴리더러 강유리에게 위층의 인테리어를 소개하도록 시켰다.이런 일은 여자들끼리 얘기하는 게 더 편할 것이다.2층 침실.익숙하고도 낯선 배치를 보며 강유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모든 방은 그녀가 기억하는 것과 똑같았다. 안방도, 그녀가 머물렀던 침실도, 심지어 자주 머물지 않던 곳도 원래대로 돌아왔다.아버지와 이모의 거짓말에 외할아버지도 참여한 것에 강유리는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원망했다.그 많은 걸 혼자 짊어진 게 원망스러웠고 하마터면 어머니처럼 갈 뻔했는데도 말하지 않은 것에 서운했다.자기가 조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의 신뢰도 주지 않았다.하지만 이런 원망들은 이 인테리어를 보는 순간 깨끗이 사라졌다.이모와 외할아버님 그리고 아버지는 방식은 다르지만 목적은 모두 같았다.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다.가족의 안위를 위하여 모두들 노력해 왔다. 이제 모든 것이 정착되었고 그들은 자신의 희생은 생각하지 않고 강유리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다고 느끼며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해 잘해주고 있다.그들은 강유리가 어머니가 계실 때를 더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고 집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어때요? 감동적이죠? 저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외할아버님은 연세가 많으셔도 기억력이 너무 좋으세요. 다 원래대로 돌아왔다니! 인테리어 할 때 아버지도 계셨대요!”릴리는 바론 공작을 위해 좋은 말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강유리는 시선을 돌려 릴리의 얼굴을 몇 번이고 훑어보았다.릴리는 그녀의 이런 눈빛에 약간 당황했다.“왜, 왜 그래요?”“어젯밤 일은 나한테도 말 안 할 거야? 송이혁이 말하지 않았더라면, 네 형부가 특별히 경호원에게 물어보지 않았더라면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을 거야!”경호원 얘기가 나오자 강유리는 더욱 불만을 터뜨렸다.“그리고 업무적인 일은 그렇다 쳐도
릴리는 목소리가 좋은 남자를 좋아한다. 릴리가 사귀었던 모든 남자 친구는 다 목소리가 듣기 좋다.그리고 모두가 똑같은 낭만적인 일을 한 적이 있는데 바로 이야기를 읽으며 그녀를 재우는 것이다.그리고 이 변태는 이 녹음들을 모아 반복 재생을 해서 가장 좋은 목소리를 선정하는 것을 좋아한다.쯧.정말 창피하다.‘신하균도 릴리의 비디오 중 한 명이 된 건가?’정말 불행하다.강유리는 겉으로는 이런 일에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런 가십에 매우 관심이 있다. 강유리는 스스로 발코니에 있는 소파에 앉더니 최신 진행 상황을 캐물었다.“아뇨. 저도 이야기 따위에는 사실 별 관심이 없어요. 그냥 얘기만 좀 나눴어요.”소파에 기대앉던 강유리는 잠시 멈칫하더니 더욱 묘한 눈빛으로 릴리를 바라보았다. “???”‘이야기는 안 듣고 얘기만 나눴다고?’전대미문의 상황이다!강유리는 믿을 수 없는지 질문을 반복했다. “단순히 얘기만 나눴다고?”릴리는 자연스럽게 맞은편에 앉았다. “당연하죠. 고정남이 왜 갑자기 이런 짓을 했는지도 분석해 보고, 그들이 나중에 저지를 일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서도 논의했어요.”릴리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무엇이 생각난 듯 갑자기 강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가 그를 찾아갔어요?”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자매는 잘 알고 있다.강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강유리의 관심은 딴 데 있다. “한밤중에 음성통화로 이런 지루한 얘기만 했다고?”“이게 어떻게 지루한 얘기예요? 언니도 방금까지는 이 일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봤으면서. 제가 말하지 않았다고 탓했잖아요!”릴리는 당당하게 말했다. “엄마가 그자를 찾아가서 뭘 했는데요?”강유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릴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쯧쯧 고개를 가로저었다. “동생이 다 크니까 이제 비밀도 생겼네!”릴리는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언니도 형부랑 하는 대화를 저한테는 알려주지 않잖아요!”강유리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씩 웃었다. “알았다!”“???”“뭘 알았다는 거예요?
릴리는 안색이 초조하고 이상했다.확실히 꿍꿍이는 있다.이렇게 빨리 내려가면 외할아버지께서 음식을 바꿔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 같다!더 이상 대화를 나누면 이번 일로 욕을 먹을 수도 있고 더 자세한 심문을 받을 수도 있다.릴리는 머리를 미친 듯이 굴리면서 적당한 핑계를 생각해 보려는데 옆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혹시 릴리에게 아버지를 저한테 이모부를 찾아주실 의향이 있으신가요?”“???”릴리는 고개를 돌리고 강유리를 충격먹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이렇게 파격적인 화제를 그녀들은 방금까지도 나눈 적이 없다.하지만 이것도 나름 좋은 생각인 듯 릴리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강미연의 표정을 살폈다. “저도 언니의 제안에 동의해요. 하지만 엄마가 눈이 너무 높을까 걱정이예요!”“눈이 높아도 상관없어요. 게다가 같은 나이대에 적당한 사람이 없으면 유망주를 찾으면 되죠!”“!!!”릴리는 눈꼬리가 실룩거리더니 다시 강유리를 충격적이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애초에 나한테 남자 친구를 찾으라고 권할 때는 이렇게 권하지 않았잖아요.’‘나보고는 좀 조심하라고 다른 사람을 놀라게 하지 말라고 하더니.’‘그런데 엄마한테는 유망주를 찾으라고 격려하는 거야? 쉽게 말해 순정 어린 남자에게 악마의 손을 뻗는 거지.’그러자 릴리는 엄마의 반응이 더 궁금해져 강미연을 쳐다보았다.질문이 정곡을 찌르자 자매는 모두 강미연의 얼굴에 시선을 집중했다.강미연은 그들이 이런 문제를 물었을 때 멍해졌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다만 두 사람이 맞장구를 치는 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너희 둘, 이 정도로 한가한 거야?”강유리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저희가 이모의 감정 문제 때문에 얼마나 애간장을 태웠는데요.”릴리도 맞장구를 쳤다.“그럴 여유가 있으면 자기 일에나 신경을 쓰세요.”강미연은 이 한마디를 남기고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기 귀찮다는 듯 밖으로 나가려 했다.“...”두 자매는 눈
만나는 순간 필터는 박살이 났고 강미연은 그의 진정한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는 집념이 사라졌다.이런 위선적이고 파렴치한 사람은 그녀에게 약간의 감정 기복도 줄 자격이 없다.“이런 엉뚱한 추측은 네 이모를 너무 얕잡아 보는 거 아니야?”강미연은 입장을 밝히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우아하고 예쁜 얼굴에 잠시 고민이 스쳐 지나갔다. “싫은 건 아니고 그저 경험한 일이 많아져서 연애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진 것뿐이야.”“사랑을 믿지 않는 거예요? 이렇게 아름다운 것에 관심이 없다니.”릴리는 충격적인 얼굴을 했다.“...”두 사람은 일제히 릴리에게 시선을 돌렸다.강유리는 어이가 없는 얼굴이었고 강미연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이 계집애는 감정 문제에서는 정말 EQ가 구제 불능이라니까.’강미연은 문득 오후의 장면이 떠올라 물었다. “너는 관심이 있나 보지? 아직 사랑을 믿는 거야? 열 몇 명의 불량한 전 남친을 만나고도 여전히 사랑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열 명이예요! 열 몇 명이 아니라.” 릴리가 정정했다. “사실 저도 전 남친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요!”“???”강미연은 고개를 돌려 묻는 눈빛으로 강유리를 바라보았다.강유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보시 다시 피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강유리도 자세한 것은 모른다... “어젯밤에 신하균이 같이 고성그룹에 가준 거야?”강미연은 예리한 육감으로 짐작했다.“아니요, 왜 그렇게 물어요?”강미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유를 추구하는 우리 집 연애 박사가 왜 갑자기 사랑이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의문이네. 어떤 사람이 그렇게 느끼게 했어? 설마 10명의 전 남자 친구는 아니겠지?”“...”엄마의 야유하는 웃음에 릴리는 표정이 점점 부자연스러워져서 한참 동안 입을 벌리고 말을 하지 못했다.질문 대상자가 교체되려는 순간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육시준이다.그는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재촉했다.릴리는 좋아라 하고 빠른 걸음으로 맨 앞으로 달려갔다. “아이고, 배고프다!”.
어둠이 내렸다.이 독특한 디자인의 작은 별장은 불빛으로 가득했고 아늑하고 낭만적이다.2층 침실에 강유리는 샤워를 마치고 침대로 올라가 옆사람을 쳐다보다가 하룻밤 동안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여보, 오늘 저녁은 정말 이모가 만드신 거야?”육시준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태블릿을 보다가 이 말을 듣고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맛이 내가 아는 식당 맛이랑 비슷했다고 생각해.”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외할아버님은 짠할 정도로 능숙하시더라고. 앞으로 이모에게 부엌에 들어가지 말라고 설득해야겠어. 노인네가 고생이 많으시더라.”물론 육시준도 견디지 못했다.주방에 있는 동안, 그는 생사의 갈림길을 몇 번이나 오간 느낌이었다.정신을 고도로 집중하고 시선은 줄곧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조금만 방심하면 새로 단장한 별장이 불바다가 될까 봐 걱정이었다.“몇 년 동안 설득했지만 이모는 듣지를 않으셔.”강유리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요리를 잘 하는 남자를 찾아드리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지!”강유리는 어떤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끝까지 집착한다.강유리는 집에 돌아온 이후로 지금까지 머릿속은 온통 강미연의 남자 친구를 찾아주는 일뿐이다.“이모님도 전남친을 더이상 신경쓰지 않으시는 것 같던데 굳이 새로운 감정을 시작할 필요가 있을까.”육시준의 목소리는 덤덤했다.강유리가 반박했다. “작은이모는 오랫동안 독신이었는데 지금은 시간도 있고 에너지도 있으니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도 있지!”육시준은 설득에 실패하고 별말을 하지 않았다.그런데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그도 약간 흥분되어 태블릿을 침대 머리맡에 놓고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요리할 줄 아는 연하를 찾을 수 있겠어?”강유리가 대답했다. “요즘 남자들은 사실 요리할 줄 아는 사람이 많아요!”“많다고?”“당연하죠! 또 연예계는 말할 것도 없죠. 이미지 메이킹을 해야 하니까요. 요리 잘하는 남자는 가산점이 높잖아요! 생각해 보세
강유리는 온몸에 전율을 느껴 무의식적으로 육시준의 품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목소리도 부드러워졌다. “아무 생각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어. 됐지?”“전혀.”달팽이관을 뚫고 들어오는 저음의 목소리와 뜨거운 숨결.강유리는 두 손을 그의 가슴에 대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름다운 눈동자는 사슴처럼 맑았고 약간의 순수함과 막연함도 있었다.육시준의 눈동자는 더 어두워지더니 그는 고개를 숙이고 강유리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살짝 건드리고 떨어지고 바로 다시 키스하고 절제하면서도 도발적이었다.강유리는 키스 세례를 받고 팔을 그의 목에 두르며 화답했다. 온몸이 나른해졌다. 강유리는 그저 조용히 그의 품에 기대어 있었다.한참 뒤에 육시준은 강유리를 놓아주었다.“여보.”나지막한 목소리와 치명적인 유혹에 휩싸인 강유리는 가뜩이나 혼란스럽던 머리가 더 혼란스러워졌다.“다음 주에 신혼여행도 가고 겸사겸사 아이도 가질까?”“???”멀리 떠돌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강유리는 눈을 깜빡이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아이를 가지는 게 겸사겸사 할 수 있는 일인가?’그러나 그녀가 묻기도 전에 뜨거운 키스가 느껴졌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자제하는 대신 다소 다급하고 침략적이었다.여름밤, 별들이 온 하늘을 수놓아 찬란하고 고요했다.릴리도 별장에 남았다.강미연은 딸이 마음에 걸려 잠시 릴리와 함께 침실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밤이 깊어졌다.강미연은 하품을 하고 자연스럽게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졸리니까 일찍 쉬자. 오늘은 너에게 나와 함께 잘 기회를 주지.”“???”릴리는 고민했다.강미연의 동작을 보고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예전에는 모녀가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면 늘 한 침대에서 잠을 잤다. 강미연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릴리는 고마운 시늉을 했다.하지만 오늘 밤 릴리는 왠지 혼자 자고 싶다.익숙한 대답을 듣지 못한 탓인지 강미연도 반응을 보였다. “왜? 싫어?”릴리는 활짝 웃으며 앞으로 나가 그녀의 팔을 붙잡고 자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