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도 긴장감이 역력한 기색으로 따라붙어 상황을 지켜봤다.한 무리의 사람들이 입구를 막고 있었고 시선에 따라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보던 고정남은 침묵에 빠지고 말았다.박지연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이걸 어찌하면 좋냐며 계속하여 중얼거렸고 이연정도 곁에서 그들 집안의 아가씨는 비록 평소에 함부로 굴곤 했지만 절대 여자들을 괴롭히는 사람이 아니기에 김옥을 어떻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위로해주었다...겉으로는 모두가 김옥이 괴롭힘을 당할까 봐 걱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 다들 이 연극을 알고 있다.고정남은 뒤에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며 매의 눈을 날카롭게 번쩍이더니 경호원에게 분부했다.“문을 뜯어주세요.”“네.”경호원이 폭력을 휘두르자 문은 곧장 열렸다.방안은 캄캄했고 이연정이 먼저 다가가 불을 켰다.이윽고 눈 앞에 펼쳐진 화면은 모두를 얼어붙게 하고 말았다.거의 벌거벗은 두 사람의 모습이 카펫에 매달려 있었고 남자는 눈 밑이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얼굴은 온통 흥분되어 있었다. 반면, 여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하얀 피부는 붉은 자국으로 가득했다.그녀는 악마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몇 걸음 기어 나오자마자 다른 사람에게 머리채를 잡혀 다시 끌려오게 되었다.그 순간, 갑작스러운 눈 부신 불빛에 방 안의 두 사람은 모두 시선을 보내왔다.고주영은 낭패한 몰골과 멍든 얼굴까지 하고 마치 구원자를 보는 듯 입구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아버지,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예상치 못한 장면에 비주얼 쇼크는 어마어마했고 이는 고정남의 머릿속을 뒤집어 놓고 말았다.이윽고 그는 몇 걸음 달려가더니 김재운을 걷어찼다.이연정은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자 서둘러 작은 담요를 들고 앞으로 가서 훤히 드러난 고주영의 몸을 가려주었다...“어머, 이게 다 무슨 일이래?”“고주영 이 바보 도련님은 어쩌다가 저 여자와 같이 있게 된 거지?”“이 꼴을 보니 저 바보는 맞아 죽어야 할 것 같은데? 고씨 가문의
오랜 침묵이 흐르고 역시 박지연이 옆에서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주었다.간단히 말해서 고우신이 김옥과 뒹굴게 되었고 김재운은 고주영과 몸을 뒤섞은 것이다.그리고 그들 계획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현재 종적을 감추었다.“장난하나!”김철용이 탁자를 탁 치며 언성을 높였다.“당신 고씨 가문은 뭐 이런 자식을 낳은 건가? 염치도 모르고 볼품이 없군. 이렇게 많은 어른들 앞에서 이런 추잡한 일을 저지르다니!”순식간에 뒤바뀐 얼굴에 미처 반응할 틈도 주지 않았다.방금까지만 해도 후배들을 나무라더니 지금은 화살을 돌려 고씨 가문을 향해 내리밟고 있다.한편, 고정남은 자신이 망할 계집애에게 속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고우신은 인품이 손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고주영도 체면을 잃게 되었다.“이 늙은이가 정말, 당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리 주영이의 상처는 모두 이 짐승에 의한 것이라고. 그런데 지금 모든 것을 다 우리 고씨 가문 탓으로 돌려?”고태규도 화가 치밀어올라 덩달아 말을 가리지 못했다.“당신들이 갑자기 우리를 이 무슨 가족 연회에 초대하지 않았다면 우리 집 옥이가 그 피해를 받았겠어? 김재운의 머리가 잘못되었다고 당신 집안 후손들도 전부 미쳐버린 거야? 애초에 침실에 같이 들어가서 뭘 하려는 건데?”“허. 자네가 직접 들어보게. 그게 사람이 할 소린가? 우리가 당신들을 초청한 탓이라고? 난 아직 당신이 이 병신을 우리 집에 데려온 것을 탓하지도 않았네.”“병신? 누굴 병신이라고 욕해? 이 늙은이가!”“...”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맞지 않는 두 어르신이 싸우니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결국, 고정남이 먼저 나서 소리 내어 그들을 제지했다.“자, 두 분 먼저 진정하세요.”두 어르신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지만 그 누구도 상대방을 보려 하지 않고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한쪽으로 돌려버렸다.지금의 상황은 확실히 고씨 가문의 실수이다.하지만 원래 잘 계획했던 것이 이렇게 엉망이 된 것도 그 망할 계집애의 책임이 분명 있다. 그래서
“우신 오빠, 나한테 옷 가져다준다면서 들어와서는 이상한 소리 하고 제 몸에 손대니까 제가 오빠를 내리친 거예요.”김옥은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더니 겁먹은 듯 나약하게 설명했다.그리고 그녀의 설명이 고우신을 곤혹에 휩싸이게 했다.마치 김옥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김옥이 왜 릴리를 위해 말을 하는지 의심하는 것 같기도 했다.박지연은 고우신이 아무런 말도 없이 멍하니 있는 모습과 자기 딸, 김옥을 바라보며 긴장하는 모습에 생각에 잠겼다.그러자 고정남이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그를 몰아세웠다.“정말 옥이가 말한 그대로냐?”고우신이 대답하지 않자 김옥은 더욱 울먹이는 목소리로 캐물었다.“아저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를 못 믿으시겠어요?”순간 고정남이 미간을 찌푸렸다.“아니, 난 그냥...”“지금 아저씨는 아들이 더 믿음직스럽다고만 생각하시는 거예요? 아저씨는 지금 저처럼 결백한 저 여자가 자신의 정조로 장난을 칠 것 같아요?”김옥의 말이 갑자기 날카로워졌다.방금 고우신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때, 그녀는 줄곧 연약한 모습을 보이며 어른들이 자신을 도와 정의를 되찾아주는 것을 바라보았다.하지만 고우신이 깬 후, 그녀는 마치 이 일이 묻힐까 봐 두려운 사람처럼 끝까지 꼬치꼬치 캐물었다.고정남은 잠시 그녀를 쳐다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나는 단지 네가 협박을 받아 본의 아닌 말을 할까 봐 두려웠을 뿐이야.”그를 바라보는 김옥의 눈빛이 묘하게 번쩍였다.“...”‘늙은이가 자기 딸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네.’고정남의 말은 그녀조차도 그의 말에 따라 백기를 들고 싶어졌으니까.하지만 그 아가씨의 말도 일리가 있다. 그는 지금 실권이 전혀 없다. 그러니 그와 협력하면 그녀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제가 누구에게 협박당할 것 같은데요?”김옥은 다시 여린 입을 열었고 곧 뒤를 돌아 고우신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아니면 이 일을 누구의 탓으로 돌리기 위해 부자가 의논한 것입니까?”먼저 기선을
고정남은 화가 폭발하여 고우신을 세게 찼다. 고태규가 나서서 말리고 나서야 고우신을 놔주었다.김옥은 계속 울었다. 연기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니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용서를 할지 말지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말은 이렇게 했으나 고정남은 김씨 가문에서 잠시 약혼을 취소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들어냈다.고정남은 침묵을 했다. 완벽한 계획이 흐트러진 것에 불만을 했다. 고정남은 여전히 아들이 저 여자애를 지킨다고 해도 김씨 가문에 이 여자애가 릴리와 친분이 없으니 지켜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가능하게 무슨 위협을 받았거나 약점이 잡혔다고 생각했다.고정남은 주위를 훑어보며 말했다. “강유리는 어디 있어? 지금 당장 나오라고 해. 그때 걔도 위층에 올라갔으니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있을 거야.”고우신이 허약하게 옆에 있는 소파에 기대앉아 있다가 이 말을 듣고 이맛살을 찌푸렸다.“아빠...”“너 입 닥쳐. 강유리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아. 만일 이 일이 걔하고 상관이 있으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다.”이 말에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의 마음이 흔들렸다.이 일이 마치 반전이 있는 것 같았다.사람들 속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려 나왔다.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보니 청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찾아온 김씨 가문 작은 도련님이었다.이렇게 많은 시선을 받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해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어요. 오늘 고씨 가문 좀 재수가 없네요.”고정남이 차가운 시선으로 보며 말했다.“집안일을 처리하는 중이니 김씨 가문 작은 도련님은 다른 일이 없으면 돌아가시죠. 배웅은 안 할게요.”겉치레도 하지 않고 내쫓는 태도가 분명했다.김찬욱도 화를 내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었다.“아저씨는 왜 제가 고씨 가문이 재수가 없다고 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김찬욱이 말했다.고정남은 말이 없었다.김찬욱이 자문자답을 했다. “고씨 가문 큰 도련님이 술에 취해 다른 사람에게 무례한 짓을 하고 고씨 가문 큰아가씨는 술을 마
릴리는 일부러 더 물어보려 했다.“나랑 상관이 된 일이라서 누가 더 주의했는데요? 주어를 생략하지 말고요.”신하균은 입술을 꾹 닫고 침묵을 유지했다.릴리가 웃으며 다가가 더 물으려 했으나 핸드폰이 울렸다.두 사람의 분위기를 삽시에 깨버렸다.신하균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언짢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핸드폰을 꺼내 보고 이어폰을 끼려고 한 순간 릴리가 신하균의 손을 잡았다.“이어폰 끼지 말고 나도 같이 들을래요.”릴리의 낯빛이 좋지 않았고 피곤한 기색이 가득했으나 눈은 반짝거렸고 기대하는 눈빛이었다.이런 시선을 보니 비밀이 있어도 감추기 어려웠다.그리고 원래부터 비밀도 아니었다.신하균이 턱을 들며 전화를 받으라고 했다.릴리가 전화를 받고 확성을 눌렀다.맞은편에서 폭소가 들려왔다.“내가 보낸 영상 봤어요? 너무 재밌잖아요. 그 두 늙은이끼리 서로 물고 뜯고 하는 거 좀 보세요.”“누구요, 누군데요? 고정남하고 그 김씨인 사람 말이에요?”릴리는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전화 맞은편에서 멈칫했다.“강씨 가문 둘째 아가씨?”릴리가 대답했다.“네, 저예요. 계속 얘기해 보세요.”계속 말할 흥미는 잃었고 갑자기 생긴 새로운 일에 흥미가 생겼다.“우리 신 형사님 핸드폰이 왜 아가씨 손에 있는 건가요. 이미 서로 핸드폰을 공용하고 아무런 프라이빗이 없는 정도까지 된 거예요?”릴리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아까까지만 해도 말하던 주제는 오늘 저녁에 있었던 일의 뒷일을 말하는 게 아니었나요?”김찬욱이 말했다.“이런 일은 중요하지 않아요. 결과는 다 예상안이니까요. 그거보다 지금 더 궁금한 건 두 사람...”“김옥하고 고우신은 어떻게 됐어요?”김찬욱은 입장이 확고하지 않고 호기심은 순식간에 전이됐다.“그 허위적인 동생이 누구 말도 듣지 않던 데요. 뭐라고 하셨길래 걔가 아가씨를 도와 고우신을 모함하는 거예요?”릴리는 속에 답이 생겼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꼭 내가 어떻게 한 거인 거예요? 고우신이 그런 사람인 거 일수는 없
신하균은 더 해석하지 않고 그저 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려 부 좌석의 문을 열었다.팔을 차에 지대고 허리를 굽혀 릴리를 바라봤다.“스스로 걸을 수 있어요?”릴리는 넋을 잃고 신하균을 바라봤다.주차장은 조용했고 가로등 빛이 신하균의 몸에 비쳤다.가로등을 등져 릴리는 신하균의 표정을 잘 보지 못했다. 하지만 목소리에서 화가 나지만 어떻게 하지 못하는 어투를 들어낼 수 있었다.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릴리가 아래를 보며 긴 속눈썹이 흔들렸다. 부채마양 눈 안에 있는 모든 정서를 가렸다.릴리가 말했다.“아니요. 다리에 힘이 풀렸어요.” 신하균이 가만히 있다가 허리를 굽혀 한 손은 릴리의 어깨를 감쌌고 다른 한 손은 다리를 감싸고 가볍게 안았다.릴리는 신하균의 목에 두 팔을 감았다. 머리는 가슴팍에 수그리고 신하균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가는 길 조용했다.병원에 이미 연락을 해서 준비를 했으나 검사를 다 하고 나왔을 때는 새벽에 가까운 시간이었다.릴리가 물을 많이 마시고 또 오래 휴식을 해서 약효는 거의 흩어졌다. 그저 시간이 늦어 또 졸렸다.릴리가 맥없어하는 모습을 보고 신하균은 놀랐다.검사 결과를 받고 난 후.송이혁이 하얀 가운을 입고 문 앞에 서서 엄숙한 표정으로 검사 결과를 보고 또 릴리를 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신하균이 긴장을 하며 말했다.“어때?”송이혁이 물었다.“왜 일찍 데리고 오지 않은 거야?”신하균은 긴장한 상태로 송이혁을 바라봤다.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송이혁이 검사 결과를 다시 한번 보고 말했다.“좀만 더 늦었으면 약효가 다 사라졌어.”신하균은 멍해 있었다.송이혁이 말했다. “그래도 안심해. 약효가 다 사라졌다고 해도 혈액검사에서 문제를 검사해 낼 수 있으니까. 이 검사 결과를 가지고 책임을 묻는다고 해도 쓸모가 있을 거야.”신하균은 반응을 하고 검사 결과를 받았다. 표정에는 불만이 있었다.이렇게 엄숙한 일에 이 자식이 장난을 쳤다니.송이혁은 신하균이 불만을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송이혁이 아까 신하균의 말을 간단히 들어보니 고씨 가문이 한 짓이었다.하지만 지금 릴리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을 듣고도 놀라웠다.“속상하지 않아?”릴리는 이상하다는 듯이 송이혁을 쳐다봤다.“뭐가 속상해요?”이 말을 하고 릴리는 요즘에 있었던 속상한 일을 다 생각해 봤다. 심지어 인터넷에서 본 한 강아지가 입양하려고 했을 때 이미 입양해 간 것도 생각했다.좀 안타깝기는 했지만 속상하지는 않았다.“고정남이 널 이렇게 대하는데 어떻게 생각해?”송이혁이 더 명확히 물었다.릴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뭐가 속상하다고 하는가 했잖아요. 이런 작은 일에도 속상해하면 어떻게 살아요.”송이혁은 흐뭇한 표정으로 릴리를 바라봤다. “내가 뭐 도와줄 게 있어?”릴리가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요, 원한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갚는 편이라서요.”이 일은 신하균에게서 들은 적이 없다.송이혁이 의혹스러운 눈빛으로 신하균을 쳐다봤다.신하균은 송이혁이 바라보는 것을 감지하고 대답했다.“그래, 그 자리에서 갚았어.”그리고 지금 이 검사 결과도 있으니 더 유리하다.고씨 가문의 사람들은 오늘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이제 시간 될 때 말해. 먼저 돌아가서 휴식해.”송이혁은 궁금했으나 릴리의 상황이 더 걱정이 됐다.릴리는 벽에 기대고 말했다.진짜 병실 하나만 쓰면 안 돼요?”송이혁은 릴리를 쳐다보다가 신하균을 쳐다봤다.“지금 약효가 다 사라졌지만 그래도 몸은 허약하니까 누군가 보살펴 줘야 해. 병원에 있어도 되긴 한데 보살펴 줄 사람은 있고?”릴리는 그저 잠을 자고 싶어 송이혁의 말 중의 의미를 캐치하지 못했다.“무슨 보살펴요. 몸 엄청 튼튼하니까 괜찮아요.”송이혁은 릴리의 말에 반박했다.“혹시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안돼.”“그 조금에 무슨 후유증까지 생겨요. 지금 회복 상태로는 약 거래처까지도 맞출 수 있다니까요.”송이혁은 할 말이 없었다.릴리를 보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자신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엘리베이터 안.릴리는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어 수자가 내려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볼수록 눈꺼풀이 점점 내려왔다.왜 어떤 사람들이 서서도 잘 수 있는지 이해될 거 같았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릴리가 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천천히 몸을 일으켜 나가려고 했을 때 릴리는 누군가에게 안겼다.릴리가 작게 소리를 치고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의 목을 안았다.잠이 절반은 깬 채로 말했다.“하균 씨, 갑자기 태도가 이렇게 바뀌면 습관이 안 된다고요.”아까 차에서 내릴 때 화를 내고 릴리가 사과를 해도 화를 냈으면서 참 알 수 없는 사람이다.검사하고 기다리는 시간에 릴리는 신하균을 기쁘게 해주려고 해 어색한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했다.하지만 신하균은 계속 무시했다.후에 릴리는 잠이 쏠려와 인내심이 바닥이 나서 신하균을 신경 쓰지 않았다.아까 송이혁의 뜻을 못 알아들은 것이 아니다. 입원을 하겠으면 신하균더러 돌보라는 뜻이 아닌가.저 더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자신을 돌봐라고 하겠는가.제일 큰 선심은 아마도 집에까지 데려다주는 게 아닐까.릴리는 신하균이 자신을 안아서 차에 태울 거라는 망상을 하지 않았다.근데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 건가.신하균이 아무 말 하지 않고 릴리를 안고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뒷좌석의 차 문을 열고 릴리를 가볍게 좌석에 내려놓고 담요를 덮어줬다.이렇게 자상하면 릴리가 졸릴 일이 없다.차 문을 닫고 운전석 차 문을 열고 신하균이 차에 타고 시동을 걸었다.릴리는 담요를 안고 뒷좌석에 누워 신하균의 옆모습을 바라봤다.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잠자기 더 좋은 환경이 마련되었으나 더 잠이 안 왔다.검은 크로스컨트리가 도로 위를 질주했다.지하 주차장에 들어서고 차가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릴리는 뒷좌석에서 아무런 흔들림을 느끼지 못했다.차를 세우고 신하균이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조심스레 뒷좌석의 문을 열었는데 릴리가 이미 앉아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봤다.신하균이 멈칫하다가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