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고은영의 말에서 그녀가 진씨 가문의 사람이라는 걸 믿지 않는 걸 알 수 있었다.그럴 만도 한 것이 량천옥이 그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고은영은 다른 무언가를 믿을 용기가 없었다.“그럼 나와 량천옥의 유전자 검사는 정말 일치한 거예요?”“응 일치해.”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이 말을 들은 고은영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는 걸 정말 믿을 수 없었다.고은영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란완리조트에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은 예상도 하지 못한 유청 배지영과 마주쳤다.라 집사는 유청과 배지영이 강제로 아이를 데려가려 할까 봐 아이를 보여주지도 못했다.이제 배준우와 고은영이 돌아왔으니 유청은 차가운 얼굴로 비꼬듯 말했다.“넌 정말 좋은 아들이야. 내가 내 손자도 못 보는 거니?”유청과 배지영은 오후부터 란완리조트에 와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아이를 보지 못했다.배준우와 고은영의 표정도 그리 좋지 않았다.고은영은 하루 동안 많은 일이 있었기에 지금 유청의 말을 들으니 더욱 화가 났다.그래서 유청과 눈을 마주쳤을 때 어떠한 따뜻함도 없었다.고은영의 이런 태도에 유청은 더욱 화가 나서 이를 악물며 말했다.“왜 나를 그렇게 쳐다보는 거니? 왜? 날 잡아먹기라도 하겠다는 거야?”“사모님 잘못 말씀하신 것 같네요.”“뭐?”“손자가 사모님의 손자인지 아닌지는 제가 결정할 문제 아닌가요?”고은영의 말투는 차가웠다.유청이 이런 태도로 나오는데 고은영이 굳이 아들을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그리고 고은영은 오늘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오늘 하루 동안 너무 낳은 일이 있었는데 이제는 유청의 터무니없는 행동과 과거에 일들까지 떠올라 그녀는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이 말을 듣고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 숨을 들이마셨다. 배준우조차도 미간을 찌푸렸다.모두가 고은영을 쳐다보며 그녀가 이어서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그런데 옆에 있던 배지영은 너무 화가 나서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이 무례한 여자
자리의 분위기는 매우 무거웠다.고은영은 위층으로 올라간 뒤 다시 내려오지 않았다.원래 화가 났던 유청은 여러 번 고민한 끝에 입을 열었다.“난 그저 너희가 요즘 진씨 가문 문제로 바쁠 것 같아서 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을까 봐 도와주려는 마음뿐이었어. 그런데 저 여자의 태도는 도대체 뭐니?”‘그러니까 우리를 도와서 아이를 돌봐주겠다는 거야?’배지영이 말했다.“오빠. 새언니가 엄마한테 방금 그런 태도를 보인 건 정말 잘못한 거야.”새언니라는 한마디에서 배지영이 지금 진씨 가문 문제로 인해 고은영을 배씨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이런 미묘한 변화는 이들 같은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배준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란완리조트에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이 하나를 돌보지 못하겠어?”게다가 지금 아이는 아직 교육을 받을 나이가 아니었기에 유모와 도우미만 있으면 충분했다.교육을 받아야 할 나이가 되면 고은영은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니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를 리가 없었다.유청은 배준우가 이렇게 말하자 핑계를 대려던 말이 결국 무너졌다.“저 여자가 진씨 가문의 딸이라고 해서 내가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지 마.”결국 유청은 속마음을 드러내며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배준우는 이에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진씨 가문이 요즘 영향력이 떨어졌어요? 전에는 진씨 가문의 입양한 딸을 아주 좋아하셨잖아요?”유청이 진유경에게서 선물을 많이 받았다는 걸 배준우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유청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배준우가 말했다.“그리고 은영이는 어머니의 허락을 신경 쓴 적 없어요. 이 문제에 대해서 이미 여러 번 명확하게 말씀드렸는데요.”‘고은영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지금 유청은 고은영이 자기에 대한 태도 때문에 불만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이건 고은영이 어느 가문의 딸이든 신분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유청은 자기 아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무거운 한숨을 내뱉으며 눈빛을
그래서 고은영은 한동안 거의 고희주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고희주를 보고 싶다는 고은지의 말에 고은영은 얌전히 밥을 먹고 있는 고희주를 한 번 바라보며 말했다.“응 조금 있다가 데려갈게.”전화를 끊자 고희주는 기대에 찬 눈으로 고은영을 바라보았다.고은영은 며칠 동안 고희주가 계속 병원에 가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은영은 고희주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희주야 엄마는 지금 병원에 있어야 해. 이해할 수 있지?”“이모 걱정하지 마. 다시는 엄마가 걱정할 말은 하지 않을게.”고희주는 지난번 자기가 고은지를 걱정시켜 퇴원할 뻔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정말 착하네 우리 희주.”배준우도 고희주를 바라보며 정말 착하고 이해심이 깊다고 느꼈다.배준우는 배지영의 어렸을 때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은 대부분 장난스럽고 걱정이 없었다.하지만 고희주와 고은지는 서로 의지하며 함께 돌보는 사이였다.밥을 다 먹고 나서 배준우는 직접 고은영과 고희주를 병원까지 데려다주었다.배준우는 어제의 일 때문에 병원에 더 많은 사람들을 배치했다.차에서 내릴 때 배준우는 고은영에게 말했다.“정리하고 나서 회사로 돌아와.”“알겠어요.”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고희주를 데리고 병원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침울한 표정으로 있는 나태현과 마주쳤다.나태현을 보자 고희주는 무의식적으로 고은영의 뒤에 숨었지만 여전히 두 눈은 나태현을 몰래 쳐다보고 있었다.두 사람을 본 나태현은 자신의 어두운 분위기를 거두고 고은영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고은영도 똑같이 인사한 뒤 고희주를 안아 올렸다.고은영은 고희주가 나태현을 두려워하는 걸 느꼈다.고희주는 여섯 살이 되었지만 체중은 그리 많이 나가지 않아 가벼웠다. 잘 먹지 못하면 쉽게 마르고 잘 먹어도 크게 살이 찌지 않았다.그동안 란완리조트에서 혜나가 고희주를 잘 보살폈지만 고희주는 별로 살이 찌지 않았다.고희주는
두 명의 간병인은 고은영이 온 것을 보고서는 눈치를 보며 병실을 나갔다. 아무래도 고은지의 구토물을 꺼리는 것 같았다.쓰레기통에 담긴 구토물을 치우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 앞에 놔둔 채로 두 사람은 자리를 피했다.고은영은 그 모습을 보니 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안고 있던 고희주를 내려놓으며 말했다.“희주야 엄마랑 잠깐 얘기 나누고 있어.”“이모 내가 할게.”고희주는 고은영이 쓰레기봉투를 갈아 끼우는 걸 보고서는 고은영을 향해 아주 착하게 말했다.고은영은 아까 그 간병인의 얼굴을 고희주가 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런 행동을 하니 더욱 아픔이 아팠다.고희주는 고희주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이모가 할게. 희주는 며칠 동안 엄마를 못 봤잖아. 엄마도 희주가 많이 보고 싶대.”고은지는 고은영이 손쉽게 병실을 정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쓰레기통뿐만 아니라 병실 곳곳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럽고 어지러웠다.환자는 무엇보다 기분이 가장 중요한데 이런 상태에서는 고은영조차도 불편했다. 그런데 모든 것을 견뎌내야 하는 고은지는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고은지가 말했다.“은영아 나 퇴원하고 싶어.”고은영은 탁자를 닦던 손길을 멈추며 고은지를 바라보았다.그 순간 고은지의 눈가가 붉어졌다.두 사람은 잠시 시선을 마주쳤다가 이내 피했다. 이내 고은지가 입을 열었다.“집에 가고 싶어.”이번에는 고희주가 말한 것이 아니라 고은지 스스로 병원에 더 이상 있을 수 없다고 느낀 것이다.고은영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내가 없을 때 간병인 두 명이 뭐라고 했어?”아까 간병인들의 태도를 고은영은 다 봤기에 직설적으로 물었다.고은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이건 그냥 내 문제일 뿐이야.”“왜 항상 다른 사람들을 먼저 배려하려고만 해? 그 두 사람은 언니와 아무런 관계도 없어. 그런데 언니를 막 대했으면 왜 말을 안 하는 거야?”고은영은 화가 났다.고은지는 어릴 적부터 늘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조보은은 서정우
“근데 너 알아? 매번 항암 치료를 받을 때마다 나는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내가 이 병원에서 살아서 나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은영아 넌 이런 느낌 모르잖아.”이 말을 할 때 고은영을 바라보는 고은지의 눈빛에는 절망이 가득 차 있었다.고은지는 살고 싶었다. 정말 간절히 살고 싶었다.병원에서 살아서 나가고 싶었고 병원 밖의 따뜻한 햇살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병원 안의 햇살은 회색이었기에 그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고은지는 그 차이가 바로 생명과 죽음의 차이라고 생각했다.“나는 저 노란 빛의 햇살을 보고 싶어. 희주와 함께 여기저기 가고 싶어.”고희주와 함께 고은지는 병원만 아니면 어디든 괜찮았다.고은영은 고은지의 말을 듣고 마음이 너무나 아팠고 가슴이 막 답답해졌다.몇 번이고 깊게 숨을 들이쉬며 고은영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근데 언니 지금 퇴원하면 희주와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언니는 희주가 자라는 걸 볼 수도 없고 희주가 결혼하는 것도 볼 수 없을 거야. 그리고 지난번처럼 희주를 지킬 수 없어.”퇴원의 결과가 이렇게 참담해도 고은지는 정말 감당할 수 있을까?고은영이 그런 말을 하자 고은지의 눈빛은 더욱 고통스럽게 변했다.고은영이 이어서 말했다.“사실 언니는 희주 아빠를 믿지 못하지? 그렇지?”그 낯선 남자가 정말 고희주의 아빠라는 이유로 고희주를 보호하며 성장시킬 수 있을까?고은지는 당연히 믿을 수 없었다.이런 수많은 세월 동안 친부모가 자식을 죽였다는 뉴스는 셀 수 없이 많았다. 게다가 계모가 아이를 학대해 죽인 사건도 있었다.고은지는 그런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우리 희주 아직 너무 어린데.’고은지는 고희주의 앞날이 너무나 길다는 걸 생각하며 오열하기 시작했다.“그럼 난 지금 어떻게 해야 해?”고은지는 정말로 너무 두려웠다. 병원에서 살아서 나가지 못할까 봐 마지막 순간조차 고희주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동시에 고은지는 살아남고
한편 병원에서 고은영은 병실에서 나와 주치의의 사무실에 가려고 했다. 화장실을 지나쳤을 때 안에서 고은지의 두 간병인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량천옥 사모님이 손이 참 크더라고. 사모님의 말이 맞긴 해. 어차피 죽을 사람이잖아.”“그러게 말이야. 그리고 그 여동생도 겉보기에는 배씨 가문의 사모님 같아 보이는데 사실 배씨 가문에서 별로 대우도 잘 못 받는 것 같아. 어느 날 배씨 가문의 도련님이 싫어하면 그날로 비참한 신세가 되는 거 아니겠어?”“그래. 당분간은 량천옥 사모님의 뜻대로 하자. 어차피 죽을 사람인데 우리 탓은 아니잖아.”두 사람은 은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고은영은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이 대화를 듣고 화가 치밀어 올랐고 가슴속의 분노는 결국 폭발했다.쾅 하는 소리와 함께 화장실의 문을 열고 나왔다.그리고 두 간병인이 반응하기도 전에 고은영은 한 손으로 한 명씩 붙잡아 바로 옆에 있는 물통에 눌러 넣었다.그 물통의 물은 병원에서 비상용으로 준비한 것이었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간병인 둘은 물속에 들어가자마자 역한 냄새에 바로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으으. 으으.”3초 뒤에 고은영은 그들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다시 그들을 물속에 집어넣었다.고은영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고 이 못된 사람들을 이 자리에서 익사시키고 싶은 마음이었다.고은영의 이성은 점점 타들어 가고 있었다.다행히 이때 화장실에 사람이 들어와 고은영을 말렸다.“사모님 진정하세요.”그 사람은 바로 나태현의 비서 이지훈이었다.어제 의사 사무실에서 량천옥과 크게 싸운 고은영이 오늘은 간병인들을 거의 익사시킬 뻔했다.예전에 누가 배준우의 와이프를 순하고 귀여운 소심한 여자라고 한 걸까?이건 분명...이지훈이 입을 열기도 전에 몸이 자유로워진 두 간병인이 고은영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배씨 가문의 사모님은 무슨. 이런 퉤. 남자한테 기생하는 요망한 년아. 남자한테 기대 사는 건 그렇다 쳐도 언니에 조
고은영은 바빠서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지훈과 몇 마디를 더 나누고서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이지훈은 고은영의 뒷모습을 보며 방금 촬영한 영상을 나태현에게 전송한 뒤 메시지를 보냈다.[지금 병원에서 누군가 고은지 씨를 죽이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메세지를 보낸 뒤 상황은 조용해졌다.바로 이때 나태현은 이미 동영 그룹에 도착해 있었다.배준우는 나태현이 온 것을 보고 회의를 한 시간 정도 미뤘다.나태현은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담배만 피우면서 왜 온 것인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배준우가 말했다.“태현이 형?”나태현은 배준우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서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깊이 한 모금 빨아들였다.나태현은 배준우를 바라보며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다시 삼켰다.이 순간 배준우는 전에 나태현이 고은지와 관련된 일로 찾아왔던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그때는 고은영이 나타났기에 나태현이 찾아온 이유에 대해 듣지 못했었다.배준우는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고은지 때문에 찾아온 거예요?”나태현은 배준우의 말에 담배를 들고 있던 손이 얼어붙었다. 나태현은 아주 깊고 어두운 눈빛으로 배준우를 바라보았고 배준우도 나태현의 눈빛을 보고서는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칠 동안 일들이 하나씩 계속 겹치면서 배준우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아 그날 나태현의 이상한 행동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배준우는 지금 나태현의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확신한 거예요?”나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응.”나태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배준우는 가슴이 철렁했다.‘왜 나씨 가문과 엮이게 된 거지? 이건 절대 좋은 일이 아닌데.’배준우가 말했다.“희주와도 확인을 끝냈나요?”나태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응이라고 대답하자 배준우의 눈꺼풀은 심하게 떨렸다.고은지와 조영수가 결혼했던 호텔은 별로 좋은 호텔도 아니었는데 왜 나태현이 그곳에 있었던 걸까?나태현이 이미 모든 것을 몰래 확인했다면 이유가 무엇이든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배준우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
이제 배준우도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나태현은 담배 한 대를 더 꺼내 불을 붙이고서는 한 모금 빨아들였다.배준우는 그저 차분하게 나태현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결국 두 사람은 회의 시간이 다 될 때까지 아무 말도 없었다.진청아가 급히 들어와 말했다.“배 대표님 저희가 복구 중이던 영상이 도난당했습니다.”“응 알고 있어.”“네? 알고 계신다고요?”진청아는 깜짝 놀랐다.영상을 거의 다 복구했을 때쯤 누군가 영상을 훔쳐 갔다. 이는 누군가가 그들의 조사를 방해하려고 한다는 뜻이었다.이건 즉 그날 밤 고희주와 하룻밤을 보냈던 남자가 그들이 사건을 조사 중이라는 걸 알고 진신이 밝혀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배준우가 대답했다.“응 알고 있었어.”이 일은 의심할 것도 없이 나태현의 짓이었다.그러나 나태현도 영상을 훔쳐 가면 진청아가 더 철저히 조사할 거라는 걸 알기에 차라리 배준우의 앞에 와서 솔직하게 인정한 것이다.진청아는 의아해하며 조급해하지 않는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저희는 이제 어떻게 할까요?”이렇게 중요한 물건이 도난당했는데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배준우가 너무 이상했다.‘사모님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일에는 항상 다급해 하셨는데 왜 이번에는 이렇게 침착하신 거지?’배준우는 손에 들고 있던 물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조사할 필요 없어.”“조사하지 않는다고요?”“응. 나가 봐.”배준우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배준우의 머릿속도 혼란스러웠다. 사건이 계속 하나씩 터져 나왔기에 그도 혼자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진청아는 더 묻고 싶었지만 나가 보라는 배준우의 말에 더 이상 묻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실을 나갔다.문이 닫히고 나서야 사무실은 조용해졌다. 이제 남은 건 배준우의 숨소리뿐이었지만 배준우의 마음은 절대 평온하지 않았다.‘내태현과 고은지라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네.’나태현이 아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건 이 일이 아직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나태현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
안열은 본능적으로 나태웅의 얼굴을 발로 차버리려고 했다.하지만 발을 드는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안열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다리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너 이 새끼...”나태웅에게 욕을 퍼부어주려는데 나태웅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나태웅은 아까 안열의 발을 부숴버리려고 했다.화가 치밀어오른 안열이 나태웅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발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발등은 지방이 적어서 아주 취약한 부분이다. 나태웅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다.확인해보니 발등에는 이미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안열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가 얘기했다.“나태웅은 정말 악질이에요. 반드시 고소해서 승소하고 감옥에 처넣으세요!”안열이 씩씩대면서 얘기했지만 안지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이상함을 눈치챈 안열이 안지영을 쳐다보았다. 안지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요?”안열이 다가가서 물었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안열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안열의 발등이 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누가 때렸어요?”“나태웅이요! 그 개같은 자식...”안열이 울분에 받쳐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약간 놀랐다.“나태웅이 때렸다고요? 안열 씨, 나태웅이랑 싸우면 못 이겨요?”“못 이겨요.”안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저번에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반드시 나태범을 감옥에 넣어주세요.”안열이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의 안열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나태웅을 감옥에 넣으라고요?”“네! 살인미수잖아요. 꼭 승소하고 콩밥을 먹게 해야 해요!”안열은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마치 지금 당장 나태웅을 끌고 교도소에 갈 사람 같았다.“...”나태웅을 감옥에 보낸다니.그것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마주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나태웅에게서 위험을 느꼈다.숨을 깊게 들이쉰 안지영이 시선을 돌리고 얘기했다.“난 너랑 죽도록 싸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도 그렇고, 너희 가문도 그렇고, 정말 선을 넘었어.”그 말에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졌다.나태범이 한 짓들은 자꾸만 안지영을 화나게 했다.나태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알려줬던 거 같은데. 장선명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장선명이 왜 너랑 결혼하려고 하는 것 같아?”“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야.”안지영은 나태웅 같은 사람 앞에서 더욱 굳건해졌다.안지영은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한쪽에 올인하는 쪽이다.그러니 지금 본인이 누구를 원하고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장선명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그리고 성격상으로도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처음부터 장선명과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고 선을 넘지 않고 거리를 잘 유지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지영은 장선명과 정말 한 쌍의 부부가 될 것이다.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나태웅이 차갑게 웃었다.“하,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대체 뭐라는 거야.”안지영은 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태웅이 너무 싫었다. 분명 중요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또 물으니 말이다.나태웅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사무실 위에 올려놓더니 안지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안지영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뭔데...”“직접 확인해봐.”“...”“잘 확인해.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정말 너만의 것인지.”“...”안지영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지금 이간질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제 쓸모없어!”“두려워?”나태웅이 눈썹을 까딱이면서 물었다.안지영은 나태웅을 당장이라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태웅을 노려보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진을 향해 눈짓했다. 안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사진을 들어 확인했다.그 사진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