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웅을 룸 안을 둘러보았지만 장선명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그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물었다.“장선명은?”‘장선명? 날 찾으러 온 거 아니었어?’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태웅이 바보도 아니고 이번 일을 장선명이 계획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이제는 그녀까지 모자라 장선명에게 난리를 칠 생각인 걸까?안지영은 화를 내며 말했다.“선명 씨를 왜 찾아요?”그동안 그녀는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너무 바빴었다. 오늘 어렵게 시간을 내서 여유를 즐기러 왔는데 지금 나태웅 때문에 아주 기분이 안 좋았다.나태웅은 그녀가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고 더욱 화가 나서 머리가 울릴 정도였다.“장선명이 어떤 인간인지 너 몰라? 그런데도 감히 장선명을 따라 이곳에 와?”이제야 안지영은 깨달았다.전에도 나태웅과 이런 이유로 싸웠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이런 문제로 싸울 필요가 있을까?그녀는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게 그쪽하고 무슨 상관인데요? 너무 많이 참견한다는 생각 안 해봤어요?”“네 아버지가 아직 병원에 누워계셔.”“네. 그쪽 때문에요.”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화를 뿐어냈다.순간 나태웅은 할 말을 잃고서는 호흡이 가빠졌다.‘그래 맞아. 모두 나 때문이야. 하지만 내가 혼자 그런 건 아닌데? 내가 계획하긴 했지만 그건 장선명이 나를 너무 쫓아왔기 때문이야. 지금 안지영의 뜻은 모든 잘못이 나 때문이라는 건가?’안지영의 눈이 분노로 타오르는 것을 본 나태웅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넌 나만 탓하는 거야?”“나태웅 씨가 저지른 이리니까 나태웅 씨를 탓하지 그럼 누굴 탓해요?”“그때 너희 차 뒤를 쫓아간 것도 나야?”나태웅은 화를 내며 반박했다.순간 룸 안의 공기는 확 불타오를 것만 같았다.안지영은 이를 악물며 나태우을 바라보았다. 그가 너무 미워 그를 물어뜯어도 시원치 않을 것 같았다.나태웅이 말했다.“장선명이 쫓아간 거야. 장선명이 너희 아버지를 병원에 누워있게 만들었다고.”“내가 그랬다고?”장선
안지영의 말이 끝나자 나태웅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밖으로 끌고 나갔다.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안지영은 소리를 질렀다.“야 이 개자식아. 이거 놔.”장선명도 나태웅이 말로서는 뜻대로 안 되자 이렇게 거친 행동을 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더 이상 장선명도 나태웅을 봐줄 필요가 없었다.나태웅이 안지영을 끌고 장션명의 앞을 지나갈 때 장선명은 바로 나태웅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원래도 긴급했던 상황이 바로 폭발했다.나태현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오늘 밤 장선명과 나태웅이 얼마나 치고받고 싸웠을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다행히도 나태현이 두 사람을 더 데리고 나타났다.그러지 않았다면 오늘 밤 나태웅의 미친 정도로 봤을 때 나태현 혼자로는 도저히 그를 끌고 갈 수 없었을 것이다.모든 사람이 떠난 뒤 안지영과 장선명은 서로를 바라보았다.안지영은 떨리는 입꼬리로 말했다.“정말 미쳤나 봐요.”장선명도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정말 미쳤어.”안지영은 한숨을 쉬었다. 정말 미친놈을 자극한 것이 얼마나 힘든지 깨달았다.하지만 그녀가 도대체 어디서 그를 자극한 건지 지금까지도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안열은 서류를 갖고 오면서 길을 잘 몰라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것은 잡혀서 차에 타는 나태웅이었다.안열은 그 장면을 보고 입술을 삐쭉였다.‘저 사람은 아까 회사에서 기다려도 안 오니까 여기까지 쫓아온 건가? 근데 왜 나태현 대표님까지 있는 거지?’나태웅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을 때 안열은 무의식적으로 똑바로 섰다.안열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외쳤다.“나태웅 대표님 안녕하세요.”그 한마디에 나태웅은 더욱더 화가 났다.다음 순간 나태웅은 강제로 차에 올랐고 나태현은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빠르게 떠나는 차를 바라보며 안열은 그 자리에 서서 코를 쓱 닦으며 쯧쯧 혀를 찼다. 돈 많은 사람들은 모두 패배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전에 나태웅은 하늘 그룹을 난감하게 만들려고
장선명은 미소를 지으며 안지영의 얼굴을 꼬집었다.“왜? 참아주려고?”“나태웅을요? 그럴 리가요.”그녀는 정말로 나태웅이 원망스러워 그를 파산시키고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참아줄 수가 있을까?장선명은 그녀의 화가 난 말투를 듣고 미소를 지었다.비가 내리는 소리에 두 사람은 더는 말하지 않고 긴장을 풀며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두 사람이 묵는 룸은 호텔의 꼭대기 층이었기에 옥상이 툭툭 떨어지는 빗소리가 특히 힐링 되었다.그 소리를 듣다가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스르륵 잠에 빠졌다.나태웅과 안열의 차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플라자 온천 근처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산길은 너무 좁고 구불구불했기에 비가 올 때는 운전을 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속도를 최대한 천천히 하고 운전했다.안열은 집에 도착하면 아침 10시가 될 것 같아 바로 장선명에게 문자로 휴가를 냈다.그동안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오늘은 집에서 푹 쉬고 내일 쇼핑을 할 계획이었는데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아마도 그동안 산에 빗물이 많이 고여 있었는지 시내로 가는 고속도로가 전부 막혔다.차보다 더 큰 돌이 굴러서 도로 중앙에 떨어지고 큰 나무와 흙들이 도로를 전부 막아 버렸다.차 밖에는 비바람이 불고 있었다.차 안에서 안열은 다급하게 신고했고 구조대원을 보내겠다고 답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구조대원을 보낸다고 해도 시공 시간이 있었기에 아마도 내일 아침은 되어야 차가 통할 수 있을 것이다.안열은 우산을 가지고 차에서 내렸다.나태현은 이미 앞으로 가서 상황을 둘러 보고 있다가 안열에게 말했다.“오늘 밤은 통하지 않을 것 같아요. 플라자 온천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겠어요.”비록 지금 돌아가는 것은 좋지 않았지만 그들이 무작정 도로 위에서 구조대원을 기다리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안열은 상황을 보고 머리가 아팠다.하지만 자연재해라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었다. 안열은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몸을 돌려 차로 돌아갔다.그녀의 차가 나태현의 차 뒤에
나태웅은 상황을 살펴보더니 안열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그런 운전 실력으로 지금 이곳으로 온 거예요?”그는 이 한마디에 자신의 기분 나쁜 감정을 다 담은 것 같았다. 거기에 낮에 있었던 분노와 더불어 하늘그룹에서 안열이 계획한 일들까지 알고 있었기에 그는 더욱 화가 났다.안열은 자기를 향해 소리 지르는 나태웅을 바라보며 화가 났다.그녀는 이미 오랫동안 피로감이 쌓여 있었고 이제 마침내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을 얻었는데 이곳에 갇히고 말았으니 그녀의 기분도 지금 엉망이었다.낮에는 나태웅에게 정중하게 말했지만 이 순간 안열은 분노를 폭발하며 말했다.“내 운전 실력이 얼마나 형편없든 그게 나태웅 대표님하고 무슨 상관이에요?”“상관없지. 근데 그쪽 때문에 지금 모든 사람이 이곳에서 갇혔잖아. 그쪽이 모두를 힘들게 만들었다고.”내태웅은 그녀를 째려보았다.‘날 째려봐?’안열은 나태웅의 말에 너무 화가 나서 이제는 화를 숨길 수가 없었다.“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어요? 나도 이런 산길은 처음 와 봤어요. 날 탓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데요? 그렇게 대단하시면 차라리 걸어서 돌아가지 그래요? 아니면 차를 그쪽이 빼내 보던가요.”안열은 나태웅에게 반박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이러니까 안 대표님이 거들떠보지도 않았지. 성격이 도대체 왜 이런 거야? 고작 이런 걸로 미간이나 찌푸리는데 누가 이런 남자를 만나겠어?’안열이 또박또박 쏘아붙이는 모습은 꼭 안지영과 똑같았다. 나태웅은 안열을 바라보며 화를 참을 수밖에 없었다.“그쪽은 정말.”“그만해.”나태현은 두 사람이 싸우는 목소리를 듣자 머리가 아팠다.그는 차에서 내려 무너져 내린 산을 바라보다가 차의 상태를 다시 바라보았다.이 순간에도 비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나태현은 짜증스럽게 금테 안경을 밀어 올리며 심각하게 말했다.“지금 상황에 여기 남아 있는 건 너무 위험해. 차도 움직일 수 없고 도로도 막혔어.”“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나태웅은 짜증이 나서 미칠 것 같았다.나태현은 결
입사 2년 차 고은영은 동영그룹 비서실 직원으로서 매사에 신중하고 성실하게 일해왔다.그런데 어젯밤, 그녀는 거대한 사고를 치고 말았다.고은영은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잡고 살짝 뒤집었다. 알몸 상태를 확인한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남자의 넥타이를 잡고 방탕한 여자처럼 유혹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아직 자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헉!”얕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그 장면이 꿈이 아니라니! 어떻게 직속 상사를 상대로 그런 미친 짓을 벌인 거지?배준우, 동영그룹 대표이자 그녀의 직속 상사였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너무도 큰 충격에 고은영은 자신도 순결을 잃었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재빨리 일어나서 옷부터 입었다.그리고 배준우가 깨기 전에 이 끔찍한 범죄현장에서 도망쳤다.떨리는 다리로 겨우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애써 어젯밤 기억을 지우려고 노력했다.그런데 화장 중이던 안지영이 그녀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어제 대표님 방까지 모셔다드리고 온다고 하지 않았어? 전화해도 안 받던데 어떻게 된 거야?”고은영은 가슴이 철렁해서 말까지 더듬었다.“나? 바람 좀 쐬고 좀 늦게 돌아왔는데 너 자고 있길래 조용히 들어왔어. 아침에 대표님 호출이 있어서 나갔다 이제 들어온 거야!”조금 긴장했지만 군더더기가 없는 대답이었다.대표실 직속 비서로서 수시로 호출을 받는 일도 잦았고 지금은 출장 중이라 밤에 바람 좀 쐰다고 나갔다 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안지영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화장에 집중했다.무사히 넘어갔다는 생각에 고은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화장실로 가서 씻고 출근준비를 했다.두 사람은 식당으로 가서 대충 아침을 먹고 회의실로 바로 직행했다.검은색 정장을 차려 입은 고은영은 평소의 진지하고 성실한 직원으로 돌아왔다.가방에서 핸드폰 진동음이 들리고 발신자에 찍힌 “대표님”이라는 글자를 확인했을 때, 그녀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지금 당
고은영은 어떤 마음으로 휴게실을 빠져 나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녀는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전시회장으로 돌아왔다.그녀를 본 안지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안색이 왜 그래? 어디 아파?”고은영은 중학교 때부터 자신과 함께한 친구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그 모습을 본 안지영은 급히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급히 그녀를 끌고 화장실로 가서 작은 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 대표님한테 혼났어?”안에서 문을 잠그자 고은영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안지영은 다급히 다가가서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 대표님 너 이런 모습 보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날 텐데!”동영그룹 배준우 대표는 매사에 철저하고 냉철한 사람이었다.아무리 예쁜 여직원이라도 일하는 시간에 울거나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절대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과거에 어떤 여직원이 실연 당하고 회사에 와서 몰래 눈물을 흘린 적 있었는데 배 대표는 대차게 그 부서 전체에 징계를 내렸다.여자라서 절대 봐주는 법이 없는 배준우였다.고은영은 숨 넘어갈 듯이 흐느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지영아, 나 이대로 퇴사할지도 몰라! 하지만 난 강성을 떠나기 싫어!”“아니, 도대체 무슨 사고를 쳤길래?”안지영은 앞뒤 잘라먹은 그녀의 말에 조바심이 났다.“내가… 어젯밤에 대표님을… 추행했어!”안지영은 순간 온몸이 굳었다.공기마저 무거워지고 화장실 안에는 고은영의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안지영은 충격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지금… 뭐라고 한 거야?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아?”도저히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어제 대표님 방에 밤새 있었다고!”고은영이 말했다.다시 정적이 찾아왔다.안지영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그러니까 네가, 대표님이랑 억지로 잠자리를 가졌다는 거야?”이게 사실이라면 커다란 재앙이었다.과거 배준우 한번 꼬셔보겠다고 그의 방에 숨어들었던 여자들은 그 결과가 전부 좋지 못했다.애를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크게 들릴만큼 고요했다. 고은영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있었지만 속은 어지러웠다.배준우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녀의 작은 얼굴을 힐끗 훑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런 것 같다라는 식의 대답 내가 싫어하는 거 알 텐데?”고은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확실하지 않은 대답을 가장 싫어하는 배준우였다.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어제 제가 대표님을 방까지 모신 뒤로 아무도 그 방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그녀는 아까보다 더 단호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고은영에게는 1분이 1년과 같은 고역의 시간이었다.하지만 이걸 이겨내야 했다.만약 배준우에게 거짓말을 들킨다면 그녀만 인생을 망치는 게 아니라 안지영에게까지 피해가 갈 수 있다.겨우 강성에서 자리를 잡고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수는 없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은영의 등 뒤가 축축해질 때쯤 배준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래, 알았어.”고은영은 스르륵 눈을 감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끝난 건가?“가서 해상그룹 입찰 방안 계획안 좀 가져와 봐.”배준우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고은영은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그 뒤로 한달 간 긴 출장이 이어지는 동안 고은영은 최대한 배준우와 단독으로 접촉하는 상황을 피했다.한달 뒤, 긴 출장을 끝낸 그들은 강성으로 돌아왔다.관례대로 고은영에게는 이틀의 휴가가 주어졌다. 이날, 배준우는 긴급회의가 있어 회사로 향했다.회의를 마치고 나오자 문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태웅이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대표님.”나태웅을 본 배준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고 비서는?”“한달 간 출장을 다녀왔으니 당연히 휴가를 줬죠. 고 비서도 연애해야죠.”배준우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지만 이내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나태웅은 갑자기 싸늘해진 분위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한편, 동영그룹 직원 기숙사.
수화기 너머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고은영은 멈칫하며 다시 발신자를 확인했다.대표님이라는 글자를 확인한 순간, 그녀는 벽에 머리를 박고 자살하고 싶었다!그녀는 바로 태도를 바꾸어 공손한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죄송합니다, 대표님. 다른 사람인 줄 착각했습니다.”“당장 회사로 와.”남자는 차가운 한마디를 끝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고은영은 꺼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입을 삐죽였다. 또 꿀 같은 휴식일에 불러내다니!그녀는 다급히 마트에 들러서 안지영에게 줄 라면 하나 사고 기숙사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바로 돌아온 그녀를 보자 안지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근처에 은행 새로 섰어?”고은영은 뛰어오느라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대표님이 지금 바로 회사로 오래. 일단 라면이나 먹고 있어.”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방으로 돌아가서 오피스룩으로 갈아입었다.배준우는 정말 깐깐한 상사였는데 직원들이 일하는 시간에 편한 복장으로 오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그녀가 다급히 현관으로 다시 나가는데 뒤에서 불만 섞인 안지영의 목소리가 들렸다.“대표님도 참, 한달이나 출장을 다녀왔는데 쉬는 날에 또 불러내? 그럴 줄 알았으면 너 마케팅부서에 추천할걸 그랬어.”“나 말을 잘 못해서 마케팅 부서는 어울리지 않아.”말을 마친 고은영은 바로 문을 열고 나갔다.기숙사에서 회사까지는 10분 거리였다.이런 지리적 우세 때문에 그녀는 자기 집을 두고 기숙사에서 출퇴근했다. 아침에 잠을 더 자고 교통비도 아낄 수 있다는 점이 큰 메리트로 작용했다.회사에 도착한 그녀는 바로 대표 사무실로 직행했다.안에 들어서자 창가에 서 있는 배준우의 뒷모습이 보였다. 햇살을 받으며 서 있는 그는 뒷모습만 봐도 귀티 나고 멋져 보였다.고은영은 공손히 다가가서 고개를 숙여 그에게 인사했다.“대표님, 저 왔어요.”배준우는 고개를 돌리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고은영은 찔리는 게 있어서 그런지 대표가 저런 눈으로 볼 때면 괜히 긴장했다.다행히 배준우는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