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썼는데요?”“선물을 주는 것만 해도 이만큼은 썼어.”장선명은 그녀에게 숫자를 보여주었다.순간 안지영은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너무 많은데? 하늘 그룹 매출의 10퍼센트야.’원래부터 장선명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더 많은 신세를 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럼 내가 더욱 감사해야겠네요.”안지영은 헛기침을 두 번 하며 웃었다.“뭘 원해요?”“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줄 거야?”“당연하죠. 선명 씨가 원하는 건 내가 다 해줄게요.”그녀는 장선명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나태웅은 정말 미친개가 따로 없었고 그동안 그녀를 물고 늘어졌다. 이제 마침내 그것을 해결했으니 그녀는 당연히 장선명에게 고마웠다.장선명이 말했다.“진짜?”“당연히 진짜죠.”장선명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깊어졌다.빨간 신호등에 걸렸을 때 그는 별처럼 빛나는 두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며 달콤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난 널 갖고 싶어.”순간 안지영은 할 말을 잃었다. 머리가 윙하고 울리면서 작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다음 순간 장선명은 이어서 말했다.“넌 내 약혼녀야. 미래에도 넌 내 것인데 내가 또 너한테 뭘 더 달라고 하겠어?”이 말은 듣기에는 다소 장난스러웠지만 장선명이 지금까지 한 말 중 가장 진지한 말이었다.안지영은 이 말을 듣고 호흡이 가빠졌다.한편 하늘 그룹.안지영과 장선명이 방금 떠났을 때 나태웅이 무거운 얼굴로 찾아왔다.프론트 데스크에서 그를 막았지만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곧바로 사장실로 향했다.마침 퇴근 준비를 하고 있던 안열은 나태웅을 발견하고 눈썹을 꿈틀거렸다.나태웅이 안지영의 사무실로 곧장 들어가려는 것을 본 안열은 다급하게 그를 말렸다.“나 대표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안지영은?”나태웅은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안열은 정중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귀여운 얼굴이니 사뭇 정중한 표정을 지어도 엄숙해 보이지 않았다.이 순간 두 사람의 표정은 선명하
나태웅은 안지영을 만나지 않고서는 떠나기를 거부했기에 결국 하늘 그룹에 남아 기다리기로 했다. 그는 심지어 계속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때 안지영은 장선명과 함께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있었다.장선명은 그녀가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아주 세심하게 스테이크를 한입 크기로 잘라주었다.안지영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나태웅에게서 전화가 온 것을 보고 바로 핸드폰을 뒤집었다.장선명은 앞에 놓인 와인을 마시며 물었다.“나태웅의 전화야?”“네. 벌써 미쳤어요.”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였다.“미칠 때가 되긴 했지. 동지운 손에서 지분을 매수할 때 꽤 많은 돈을 썼을 거야.”그런데 지금은 휴지 조각이 되었으니 나태웅이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안지영이 말했다.“안열 씨 정말 똑똑한 것 같아요. 계속 나한테 남겨두면 안 돼요?”“아주 욕심쟁이야.”장선명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가 직접적으로 거절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을 들은 안지영은 그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눈치챘다.그녀는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선명 씨 주변에는 능력 있는 사람 많으면서.”“그렇게 갖고 싶어?”“갖고 싶어요.”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안열이 내일부터 하늘 그룹에 출근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그녀는 많이 아쉬웠다.장선명의 입가에 미소가 더 짙어졌다. “이걸 네가 나한테 의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 건가?”안지영의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장선명한테 의지한다고? 생각해 보니 좀 그런 것 같기도 하네.’피그스에서 돌아온 후 그녀의 아버지가 쓰러지고 하늘 그룹에는 정말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녀를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 준 것은 모두 장선명이었다.장선명이 아니었다면 하늘 그룹은 이미 그녀의 손을 떠났을 것이다.안지영은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안열은 장선명의 사람이었기에 안열에게 의지한 것은 결국 장선명에게 의지한 것과 같았다.그녀의 대답은 장선명에게 아주 효과가 좋았다.“그럼 네가 직접 안열에게 말해 봐.
의외로 나태웅은 인내심이 아주 대단했다. 이렇게 이 시간까지 기다리다니.비서가 조금 당황한 것을 보고 안열은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나 대표님. 안 대표님께서 오늘 돌아오지 않으실 것 같은데 여기서 기다리셔도 소용없을 겁니다.”안지영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에 나태웅은 안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이미 화가 날 대로 나서 누구라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나가서 밥만 먹고 돌아온다고 하지 않았어요?”안열이 대답했다.“사장님의 일을 어찌 저 같은 개가 자세하게 물어볼 수 있겠어요? 안 그런가요?”개라는 말에 나태웅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지금 이 여자가 나한테 복수하는 거야?’안열이 말을 이었다.“그만 가시는 게 어떨까요? 제가 모셔다드릴까요?”분명 일개 비서일 뿐인데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신감과 오만함은 평범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이로 인호 나태웅은 안열을 다시 보게 되었다.안열이 말했다.“나 대표님께서 필요 없으신가 보네요. 계속 안 대표님을 기다리시려면 회사 문 앞에서 기다려주시겠어요? 계속 여기 계시면 저희 직원들의 퇴근에 피해가 돼서요. 모두 하루 종일 고생했는데 나 대표님 때문에 퇴근이 늦어질 수는 없어서요.”감히 나태웅에게 이 정도로 용감한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장선명 옆에서 일하는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나태웅은 안지영이 오지 않아서 이미 화가 잔뜩 났는데 이미 텅 비어 있는 사무실을 보고 그는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방금 하늘 그룹 건물을 나왔을 때 왕여에게서 전화가 왔다.“대표님. 안지영 아가씨와 장선명 도련님께서 함께 플라자 온천에 가셨습니다. 별다른 일 없으면 아마 오늘 밤에 돌아오지 않으실 거예요.”“돌아오지 않는다고?”“네. 두 분이 호텔 룸을 예약하셨습니다.”왕여는 불안한 말투로 말했다.그가 알아보지 않았다면 몰랐겠지만 조사를 해보니 두 사람의 진도는 이미 거기까지 발전해 있었다.‘이건 정말 대박 사건이네.’나태웅은 그들이 호텔 룸
또 나태웅의 일이라는 말을 듣자 배준우는 별생각 없이 바로 말했다.“와이프가 아기를 낳은 지 얼마 안 돼서 갈 시간 없어요.”피그스에서 있었던 일도 아직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는데 나태웅은 이번에 또 무슨 문제를 일으키려는 것일까?지금 나태웅이 플라자 온천에 가서 무슨 짓을 벌일지 배준우는 말하지 않아도 나태현을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수 있었다.만약 맞아서 나태웅이 정신을 차릴 수 있다면 배준우는 오히려 장선명이 그를 때려주길 바랐다.어떻게 된 일인지 나태웅은 동명그룹을 떠나 낙천그룹으로 돌아가니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았다.배준우는 플라자로 가지 않을 것이다. 고은영의 산후조리가 끝나서 그녀를 데리고 함께 가나면 모를까 지금은 가지 않을 것이다.지금 량천옥과 진씨 가문의 일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에 그는 반드시 조심해야 했다.하지만 그는 전화를 끊은 뒤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장선명과 일행들은 방금 온천에서 나와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가 전화를 받았을 때 배준우에게도 카드 게임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장선명은 배준우의 전화인 것을 보고 바로 받았다.“준우야 올 거야? 플라자 온천인데 요즘 물이 아주 좋네.”배준우가 말했다.“난 안 가. 나태웅이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대.”“뭐?”나태웅이 온다는 말에 장선명은 순간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도 나태웅이 무슨 짓을 하러 이곳에 오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배준우가 말했다.“적당히 때려.”장선명은 바로 쭛하며 혀를 찼다.배준우의 말은 마치 그를 양아치로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어떻게 내가 사람을 때릴 거라고 생각하지? 난 문명한 사람인데.’장선명은 헛기침을 두 번 하더니 입을 열었다.“준우야 아직 문제를 파악하지 못한 것 같은데. 지금 나태웅이 날 때리러 오는 거야.”그러니 배준우는 지금 장선명에게 조심하라고 알려주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왜 지금 그가 나태웅을 때릴까 봐 걱정하는 것일까?배준우가 말했다.“아무도 널 때릴 사람은 없어.”“날 너무 높이
하지만 동영그룹을 떠난 뒤로 왜 사람이 저 모양이 된 걸까?주연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몰랐기에 카드 게임에만 집중했다.안지영이 카드를 내밀었을 때 주연이 외쳤다.“내가 이겼어요.”안지영은 게임을 두 번 연속 패배하자 마음속으로 나태웅에게 욕을 퍼부었다. ‘이 재수 없는 놈 때문에 정말 화가 나네.’하지만 안지영과 장선명은 나태웅이 이렇게 찾아오는 것이 모두 육범수가 룸을 2개 예약했기 때문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밤 10시가 되도록 나태웅은 도착하지 않았고 오랫동안 피곤했던 안지영은 이제 자고 싶었다.그녀는 룸 카드를 받으러 프런트에 가서야 자기가 장선명과 같은 방을 써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그녀는 바로 프런트 직원에게 물었다.“룸을 하나 더 체크인 할 수 있을까요?”“죄송합니다 고객님. 지금은 온천이 성수기라 남은 룸이 없습니다.”안지영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비어있는 룸이 없다니. 그럼 어떻게 하지?’안지영은 무의식적으로 뒤에 있는 장선명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선명 씨하고 육범수 씨가 한방을 쓰고 나하고 주연 씨가 같이 쓸게요.”오늘 오후에 그녀는 주연과 꽤 재밌게 얘기를 나눴기에 주연과 함께 방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장선명은 이 순간 육범수가 참 일 처리를 잘했다고 생각했다.그는 한지영의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그건 좀 그렇지 않아? 범수는 분명 자기 여자 친구와 쓰고 싶을 텐데. 두 사람도 모처럼 놀러 왔는데 우리 때문에 분위기 깨지는 건 좀 아니지 않아?”“그럼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지금 남은 룸도 없대요.”안지영은 조금 고민하며 말했다.장선명은 프런트 직원을 향해 물었다.“룸에 소파는 있나요?”“있습니다. 저희는 각 룸에 모두 소파가 놓여 있습니다.”안지영은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하지만 육범수도 이제 육씨 그룹을 물려 받기 시작했기에 이렇게 나와서 놀 기회가 적을 것이다.어렵게 여자 친구와 놀러 왔는데 그녀가 분위기를 깨트리는 건 확실히 좋지 않을 것 같았다.그녀는 고민하다
나태웅을 룸 안을 둘러보았지만 장선명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그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물었다.“장선명은?”‘장선명? 날 찾으러 온 거 아니었어?’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태웅이 바보도 아니고 이번 일을 장선명이 계획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이제는 그녀까지 모자라 장선명에게 난리를 칠 생각인 걸까?안지영은 화를 내며 말했다.“선명 씨를 왜 찾아요?”그동안 그녀는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너무 바빴었다. 오늘 어렵게 시간을 내서 여유를 즐기러 왔는데 지금 나태웅 때문에 아주 기분이 안 좋았다.나태웅은 그녀가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고 더욱 화가 나서 머리가 울릴 정도였다.“장선명이 어떤 인간인지 너 몰라? 그런데도 감히 장선명을 따라 이곳에 와?”이제야 안지영은 깨달았다.전에도 나태웅과 이런 이유로 싸웠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이런 문제로 싸울 필요가 있을까?그녀는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게 그쪽하고 무슨 상관인데요? 너무 많이 참견한다는 생각 안 해봤어요?”“네 아버지가 아직 병원에 누워계셔.”“네. 그쪽 때문에요.”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화를 뿐어냈다.순간 나태웅은 할 말을 잃고서는 호흡이 가빠졌다.‘그래 맞아. 모두 나 때문이야. 하지만 내가 혼자 그런 건 아닌데? 내가 계획하긴 했지만 그건 장선명이 나를 너무 쫓아왔기 때문이야. 지금 안지영의 뜻은 모든 잘못이 나 때문이라는 건가?’안지영의 눈이 분노로 타오르는 것을 본 나태웅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넌 나만 탓하는 거야?”“나태웅 씨가 저지른 이리니까 나태웅 씨를 탓하지 그럼 누굴 탓해요?”“그때 너희 차 뒤를 쫓아간 것도 나야?”나태웅은 화를 내며 반박했다.순간 룸 안의 공기는 확 불타오를 것만 같았다.안지영은 이를 악물며 나태우을 바라보았다. 그가 너무 미워 그를 물어뜯어도 시원치 않을 것 같았다.나태웅이 말했다.“장선명이 쫓아간 거야. 장선명이 너희 아버지를 병원에 누워있게 만들었다고.”“내가 그랬다고?”장선
안지영의 말이 끝나자 나태웅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밖으로 끌고 나갔다.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안지영은 소리를 질렀다.“야 이 개자식아. 이거 놔.”장선명도 나태웅이 말로서는 뜻대로 안 되자 이렇게 거친 행동을 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더 이상 장선명도 나태웅을 봐줄 필요가 없었다.나태웅이 안지영을 끌고 장션명의 앞을 지나갈 때 장선명은 바로 나태웅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원래도 긴급했던 상황이 바로 폭발했다.나태현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오늘 밤 장선명과 나태웅이 얼마나 치고받고 싸웠을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다행히도 나태현이 두 사람을 더 데리고 나타났다.그러지 않았다면 오늘 밤 나태웅의 미친 정도로 봤을 때 나태현 혼자로는 도저히 그를 끌고 갈 수 없었을 것이다.모든 사람이 떠난 뒤 안지영과 장선명은 서로를 바라보았다.안지영은 떨리는 입꼬리로 말했다.“정말 미쳤나 봐요.”장선명도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정말 미쳤어.”안지영은 한숨을 쉬었다. 정말 미친놈을 자극한 것이 얼마나 힘든지 깨달았다.하지만 그녀가 도대체 어디서 그를 자극한 건지 지금까지도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안열은 서류를 갖고 오면서 길을 잘 몰라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것은 잡혀서 차에 타는 나태웅이었다.안열은 그 장면을 보고 입술을 삐쭉였다.‘저 사람은 아까 회사에서 기다려도 안 오니까 여기까지 쫓아온 건가? 근데 왜 나태현 대표님까지 있는 거지?’나태웅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을 때 안열은 무의식적으로 똑바로 섰다.안열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외쳤다.“나태웅 대표님 안녕하세요.”그 한마디에 나태웅은 더욱더 화가 났다.다음 순간 나태웅은 강제로 차에 올랐고 나태현은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빠르게 떠나는 차를 바라보며 안열은 그 자리에 서서 코를 쓱 닦으며 쯧쯧 혀를 찼다. 돈 많은 사람들은 모두 패배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전에 나태웅은 하늘 그룹을 난감하게 만들려고
장선명은 미소를 지으며 안지영의 얼굴을 꼬집었다.“왜? 참아주려고?”“나태웅을요? 그럴 리가요.”그녀는 정말로 나태웅이 원망스러워 그를 파산시키고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참아줄 수가 있을까?장선명은 그녀의 화가 난 말투를 듣고 미소를 지었다.비가 내리는 소리에 두 사람은 더는 말하지 않고 긴장을 풀며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두 사람이 묵는 룸은 호텔의 꼭대기 층이었기에 옥상이 툭툭 떨어지는 빗소리가 특히 힐링 되었다.그 소리를 듣다가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스르륵 잠에 빠졌다.나태웅과 안열의 차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플라자 온천 근처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산길은 너무 좁고 구불구불했기에 비가 올 때는 운전을 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속도를 최대한 천천히 하고 운전했다.안열은 집에 도착하면 아침 10시가 될 것 같아 바로 장선명에게 문자로 휴가를 냈다.그동안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오늘은 집에서 푹 쉬고 내일 쇼핑을 할 계획이었는데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아마도 그동안 산에 빗물이 많이 고여 있었는지 시내로 가는 고속도로가 전부 막혔다.차보다 더 큰 돌이 굴러서 도로 중앙에 떨어지고 큰 나무와 흙들이 도로를 전부 막아 버렸다.차 밖에는 비바람이 불고 있었다.차 안에서 안열은 다급하게 신고했고 구조대원을 보내겠다고 답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구조대원을 보낸다고 해도 시공 시간이 있었기에 아마도 내일 아침은 되어야 차가 통할 수 있을 것이다.안열은 우산을 가지고 차에서 내렸다.나태현은 이미 앞으로 가서 상황을 둘러 보고 있다가 안열에게 말했다.“오늘 밤은 통하지 않을 것 같아요. 플라자 온천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겠어요.”비록 지금 돌아가는 것은 좋지 않았지만 그들이 무작정 도로 위에서 구조대원을 기다리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안열은 상황을 보고 머리가 아팠다.하지만 자연재해라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었다. 안열은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몸을 돌려 차로 돌아갔다.그녀의 차가 나태현의 차 뒤에
하지만 진성택은 다르다. 결국 그녀와 혈연관계가 있기 때문에 배준우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 시간 후, 배준우는 고은영을 밀크티 가게에 데려다주었다. “내가 같이 들어갈까?” 배준우가 물었다. “준우 씨는 그냥 기다려요. 당신을 보면 아마 바로 저세상으로 갈지도 몰라요.” ‘이 녀석 입이 참!’ 하지만 고은영이 말이 맞았다. 예전에 진성택과 량천옥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면 진성택은 항상 배준우에게 진유경을 미래의 아내로 삼으라고 했었고 그때 배준우는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은영과 결혼했다. 지금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진성택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운명의 미묘함을 탄식할 것인가? 아니면 진유경 때문에 속상해할 것인가? 고은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눈에 보였다. 작은 원탁 옆에 앉아 있는 진성택이. 그는 손에 밀크티를 들고 있었다. 고은영이 두 걸음 내딛자마자 진성택도 그녀를 보았다. “왔니?”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은 확실히 더 노화되어 보였고 얼굴색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나 얼굴이 누렇게 변했고 예전만큼 눈빛도 밝지 않았다. 고은영은 이제 막 기운이 다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진성택은 확실히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날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아마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은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이거 마실 수 있어요?” 진성택은 손에 들고 있던 밀크티를 문득 깨닫고 곧바로 그녀에게 건넸다. “너를 위해 샀어. 여자애들은 다 밀크티 좋아하잖아. 너도 좋아하지?”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밀크티는 그녀의 가장 좋아하는 음료였다. 그런데 배준우와 결혼한 이후로 배준우는 그녀가 밀크티가 몸에 안 좋다며 못 마시게 했다. 진성택은 그녀가 음료를 마시지 않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사실 유경이에게 이런 걸 사준 적이 없었어. 진씨 가문의
전화 너머의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을 듣고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 듯했다.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 전에는 네 감정을 고려하지 못했어.” 그 순간, 진성택은 자신이 고은영에게 대했던 태도가 문제였음을 인정했다. 고은영이 말하기도 전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은영아,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야. 큰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반응이 무뎌지는 법이잖아. 나는 그동안 계속 너를 찾고 있었어. 그런데 네 소식을 듣고 나서 어떻게 너를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네가 이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거란 건 알지만 나도 그런 감정이 싫다.” 감정과 이해라. 처음에는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고 쳐도 그럼 그 후에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진짜 아이러니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오늘 내가 너를 찾은 건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 “그게 진유경의 일 때문인가요?” 고은영은 본능적으로 날카롭게 반문했다. 무슨 일이든 그가 지금까지의 태도를 어떻게 설명하든 고은영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지금 그가 자신을 찾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니, 네 어머니 때문이야.” 이 말은 그가 어쩔 수 없이 털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전화상에서도 고은영은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죄책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될수록 그녀는 더 비웃었다. “내가 이 시간 동안 살 수 있는 건 모두 하늘이 준 기회야. 빼앗은 기회라고 해도 될 정도로. 내가 너를 만날 기회도 얼마 안 남았지.” 그는 매우 허약해 보였다. 고은영은 눈썹을 찌푸렸고 이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진성택이 마치 도덕적으로 자신을 억지로 끌어들여서 그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자신이 그를 만나지 않으면 너무 냉정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예요?” “병원 맞은편의 밀크티 가게에 있어.” 그는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의사들이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현 씨는 량천옥이 언니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 이 일은 병원에서도 크게 떠들썩하게 된 사건이라 나태현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나태현과 고은지의 거래가 량천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맞아요. 언니가 천락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량천옥이 아직도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어요.” 고은영은 고은지의 분노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마음속이 더욱더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나태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은영은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녀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배준우도 지금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준우 씨가 나태현 씨에게 언니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희주가 본인 딸인 걸 알고 지신혜 씨와 약혼도 할 건데 왜 언니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지도 물어봐 줘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은영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은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량천옥에 대해 강한 증오를 느끼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태현 형에게 물어볼게.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 내가 먼저 나태현이랑 얘기하고 나서 말해.”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고은영이 말한 대로 지금은 최소한 나태현이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빨리 물어봐요.” “응, 알았어.”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는 거대한 음모가 고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윤은 밖에서 시간을 확인했고 배준우가 10분 내로 나오지 않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문득 고은영이 대문 쪽에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진윤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은영이 가까워졌고 그녀는 진윤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큰오빠.” ‘큰오빠’라는 단 한 마디에 진윤의 마음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우 찾으러 온 거야?” 고은영은 너무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호흡이 가빠졌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안에 있어요?” “응, 안에 있어. 지금은 들어가지 마.” “왜요?” 고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나태웅이랑 얘기 중이야.” “네? 나태웅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고은영의 말투도 달라졌다. 그녀는 전에 나태웅과의 영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최근 동안 안지영을 괴롭힌 일이 떠올랐다. 고은영과 안지영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안지영이 화가 나면 고은영도 같이 화를 내주었다. 진윤은 그녀가 나태웅을 언급할 때의 그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나태웅을 싫어해?” “싫어해요!” 고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전에 그녀가 배준우와의 일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 대부분 나태웅 탓이었다. 정말 그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은영은 그 당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배준우는 이미 안에서 나왔다. 고은영을 보고 잠시 멈칫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바로 왔어?” “준우 씨 찾으려고요. 급한 일이 있는데 전화도 안 받았잖아요.” 고은영은 불만을 섞어 말했다. 배준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주원에게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고?’ 배준우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 항상 사고가 명확하던 배준우가 지금은 나태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태웅인데 지금 그를 보니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이 하주원에게 손을 댄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걸까? 그와 안지영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아직 명확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만 말했다. 배준우는 담배 한 개비를 던져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태웅은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는 아직까지 안지영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이가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리석은 여자...!’ 만약 그때, 그녀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면 그는 결코 그녀가 배준우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준우의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했었다.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뒤 물었다. “너는 안지영과 장선명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하주원 문제에서는 하주원을 도와주고 있잖아?” 그가 잠시 고심한 끝에 결국 핵심을 짚어냈다. “그건 전혀 다른 얘기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르다고?’ 원래는 명확하게 사고하는 배준우였지만 나태웅의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나태웅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주원 문제에서 안지영이 반드시 사과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배준우는 머리가 아팠다. 나태웅은 이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배준우는 담배를 다 피운 후 천천히 말했다. “너는 이걸 두 가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들 세계에서는 이것은 분명히 한 가지 문제야.” “안지영은 도
방금 안열이 장선명더러 처리하라고 했을 때의 그 걱정은 이제 안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든 말든 지금은 나태웅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캘리포니아 반도의 한 장소에서는 배준우와 나태웅이 함께 있었고 진윤과 육범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장선명이 아닌 나태웅을 부른 이유는 사실 그들 모두 나태웅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태웅을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육범수가 패를 내자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끝났어.” 배준우는 그의 얼굴을 보고 찡그리며 물었다. “방금 그 전화, 안지영이었지?” 방금 나태웅은 나가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안지영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너 또 안지영 건드린 거야?” 사실 오늘 배준우가 여기 온 이유는 장선명의 부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나태웅과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태웅이 이렇게 계속 안지영을 괴롭힌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장선명은 본래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태웅의 이 일에 대해서는 배준우를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주원의 문제도 있고 나태웅의 행동이 점점 더 미쳐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컸다. 나태웅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육범수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만 이천 원 줘야 돼.” 배준우는 말문이 막혔다. 육범수도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진윤은 본래 남의 일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다. 본인의 가문 일도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얘기하잖아. 말 좀 해봐. 대체 안지영에 대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육범수는 달랐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이기에
안지영은 화가 나서 전화를 부수고는 바로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안열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앞으로 나가서 잡았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나태웅을 죽여야겠어요!” ‘아, 진짜 더는 참을 수 없어.’ 나태웅은 정말 죽어 마땅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으로 그를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님은 아직 근육도 제대로 안 키우셨잖아요. 나태웅을 찢어낼 힘이 있을까요?” 원래도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안열의 말에 더 화가 나버렸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더는 못 참겠어!’ 안열은 안지영이 방향을 잃고 분노만 가득한 상태를 보고 바로 말했다. “이건 결국 넷째 도련님께 말씀드려야 할 문제예요.” “또 장선명 씨더러 처리하라고요?” 장선명의 수법은 이미 잘 봤다. 그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써서 그녀조차도 반응할 틈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해버린다. 그래서 만약 이 문제를 장선명이 처리하면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일들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건, 안돼요!” 안지영은 손을 휙휙 내저었다. 장선명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밀어붙일 것이다. 그건 안 된다. “왜요?” “그거 기억 안 나요? 지난번에 장선명 씨가 그렇게 처리했을 때 그 몇 억을 가지고 나태웅을 미쳐버리게 만들었잖아요. 이제 나태웅은 진짜 미친 사람이에요.” 특히 지금 그의 행동들은 안지영 마음속에 그가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라, 이 이유가 참 적합하네.’ 안열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안지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번에도 강하게 나가면 그 사람은 진짜 미칠거예요. 그럼 우리 모두 큰일 난다니까요!” “혹시 대표님은 무서운 건가요?” “무섭지 않아요. 그런 문제는 제가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투가 거칠어졌다. 아까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태웅의 집안까지 욕을 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이미 화가 나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해봐, 정말이야?” 다시 입을 열었고 그의 말투에는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전화가 아니라 만약 눈앞에 있었다면 안지영은 나태웅이 자신을 바로 목 졸라 죽일 것 같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안지영!” “난 장선명 씨와 약혼한 상태야.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너는 네 사촌 걱정이나 해. 내가 너희 나씨 가문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보네. 여자는 불여우처럼 순수한 척, 남자는 정신병자에 하나도 좋은 게 없어. 그 뿌리가 다 썩었어!” 그녀는 작은 입술로 욕을 퍼부었다. 안열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이 저절로 떨렸다. 아까는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더니 지금은 완전히 미친 듯이 말하고 있었다. 안지영은 정말로 미친 듯이 화가 난 상태였다. “사과하라고? 대체 누가 누구한테 사과해야 하는 건데! 내 아버지는 아직 병원에 누워 있고 네 사촌은 와서 날 때렸는데 나더러 사과하라고? 너희 나씨 가문 집안 교육이 이 모양이야? 다 멍청이들이야?” 이제는 나태웅의 조상까지 욕을 먹었다. 안지영의 이 폭발적인 성격에 안열은 이제야 제대로 실감했다. 안지영은 욕하는 건 진짜 잘했다. 이제는 나씨 가문이나 하씨 가문, 심지어 그들의 조상까지도 욕을 먹었다. 그녀의 거침없는 욕설을 들으며 나태웅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갔다. 그리고 안지영의 입은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폭풍처럼 계속 퍼부어졌다. 한참 동안 욕을 쏟아내고 겨우 숨을 골랐다. “더 욕할 거야?” 그의 말투는 안지영의 폭발적인 분노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차갑고 차분했다. “하, 왜? 더 듣고 싶은 거야? 너...” “더 욕할 거 없으면 내일 병원에 같이 가자.” 그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냉랭했다. ‘젠장, 이 사람은 정말 사람 말을 못 알아듣나?’ “나더러 사과하라고? 생각도 하지 마! 꿈도 꾸지 마!” 꿈속에서도 사과할 일 없을 것이다. “그럼, 한 가지 말할 게 있어.”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