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영은 입술을 오므리며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아기가 아주 많이 보고 싶었다.아기의 생각을 하던 그녀는 호흡이 점점 평온해졌다.하지만 그녀를 안고 눈을 감고 있던 배준우는 갑자기 눈을 떴다.어둠 속에서도 배준우의 눈빛은 독수리처럼 날카로웠다. 그는 고은영의 목덜미를 손으로 만져봤고 예전부터 느꼈던 울퉁불퉁한 흉터가 만져졌다.처음에 이 흉터를 발견했을 때 그는 어떤 독한 사람이 그녀에게 이런 화상을 입혔는지 생각했다.배준우는 조보은인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이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러나 지금은 량천옥이든 조씨 가문이든 모두 이 흉터 때문에 고은영을 그들의 혈육이라고 생각했다.그럼 고은영은 도대체 량천옥의 딸인 것일까? 아니면 진윤의 여동생인 것일까?솔직히 말해서 그는 량천옥이든 진씨 가문이든 어느 쪽도 원하지 않았다.진윤이 본인의 아버지를 원망하며 집에도 돌아가지 않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고은영이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배준우는 배항준과 유청에게 전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3일 뒤에 모두 알게 되었다.하지만 두 사람 모두 란완리조트에 찾아오진 않았다.먼저 전화를 걸어온 것은 배항준이었다. 그는 전화로 얘기를 꺼냈다.“아기 데리고 본가에 좀 오너라.”그리고 고민하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그 아이도 데리고 와.”여기서 말하는 그 아이는 고은영을 가리키는 것이었지만 핸드폰으로도 배준우는 배항준이 얼마나 그녀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지 느낄 수 있었다.고은영이 아이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배항준은 여전히 그녀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물론 배준우는 그 누구도 고은영을 받아줄 필요가 없었다. 그가 받아들이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배준우가 말했다.“안 가요.”“배준우.”“은영이는 지금 산후조리하고 있어요. 제가 그런 사람을 데려가길 바라세요?”“그럼 아기만 데리고 와.”“아기도 마음대로 밖에 데려갈 수 없어요.”배준우는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배항준은 바로 화를 냈다.‘이 자식이.’“내가 그 아이의 신분
배항준은 배준우에 대한 분노가 풀리지 않아 바로 량천옥에게 전화를 걸었다.량천옥이 R국에서 돌아온 뒤로 그들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배지영이 이 소식을 배항준에게 전했을 때 그가 얼마나 크게 분노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배항준은 오랫동안 참아온 분노를 이 순간 전화로 모두 뿜어냈다“량천옥. 내가 널 너무 과소평가했어. 너 얌전한 아가씨인 척하면서 심지어 아이까지 낳았었어? 넌 정말 날 바보로 생각한 거야?”그는 너무 격렬하게 말했고 핸드폰 반대편에서는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잠시 뒤 량천옥이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래요. 당신은 바보죠. 이렇게 오랫동안 바보처럼 살아왔잖아요?”예전에 량천옥은 배항준이 그녀의 비밀을 아는 것이 가장 두려웠지만 지금은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사람은 절박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비로소 이 세상에 잃으면 안 되는 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배항준은 원래 모든 화를 량천옥에게 퍼부으려고 했지만 지금 량천옥의 한마디에 그는 더욱더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하지만 배항준이 입을 열기도 전에 량천옥이 이어서 말했다.“지금 화내면 안 돼요. 만약 너무 화를 내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곧 태어날 아이는 어떻게 해요?”그녀는 예전에 배항준을 설득하던 말투로 말했지만 가장 조롱의 뜻이 섞인 말을 살짝 농담처럼 얘기했다.배항준이 입을 열었다.“량천옥 너.”“맞다. 세상에 그 아이의 신분은 어떻게 밝힐 거예요? 당신을 아이의 아빠라고 소개할 거예요? 아니면 할아버지라고 할 거예요?”“너.”“근데 아빠라고 하는 건 좀 적절치 않은 것 같은데. 당신은 늦둥이를 봐서 기쁠지 몰라도 아이가 앞으로 친구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있겠어요? 할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아빠가 있는데.”“너 당장 그 입 닫아.”“할아버지라고 하는 것도 더 이상하겠네요. 아빠가 누구냐고 물으면 어떻게 말하려고요?”배항준은 모든 화를 량천옥에게 풀려고 했지만 지금 오히려 량천옥에게 당하고 있었다.그는 한참을 참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량일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사람은 말이야 나이 때에 따라 서로 다른 것을 추구해.”만약 옳고 그름을 따져 지금까지 자기의 과거를 되돌아보면 그 시절 했던 짓들은 정말 우스꽝스러웠다.량천옥은 대답하지 않고 대신 주제를 바꿔 말했다.“난 지금 다른 사람들이 은영이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량천옥은 이미 그동안 왜 다들 그렇게 조용했는지 예측했다. 아마도 그들은 고은영이 임신한 것을 고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아기가 태어났으니 그들도 움직일 때가 되었다.이런 상황에서 량천옥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어떻게 하려고?”량일의 질문에 량천옥이 대답했다.“어떻게 하긴? 부숴버려야 할 인간들은 이제부터 전부 부숴버릴 거야.”방금 배항준의 전화는 오히려 량천옥을 상기시켜 주었다.배준우가 전화를 끊자 배지영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배지영이 전화로 말했다.“엄마가 손주 보고 싶으시대. 오늘 오빠한테 아기 데리고 가든 하우스로 오라고 하시네.”배항준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도 전에 지금 배준우는 또다시 이런 전화를 받았다.배준우는 바로 분노하며 핸드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넌 아이를 안 낳아봤다고 해도 그 여자도 아이를 안 낳아 봤어?”“오빠 무슨 뜻이야?”배지영은 배준우가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자 깜짝 놀랐다.배준우가 말했다.“무슨 뜻이냐고? 그 여자한테 물어봐. 그 여자는 산후조리 할 때 아이 데리고 밖에 나갔었는지.”“왜 밖에 못 나와? 지금은 좋은 차 타고 다니잖아. 그게 집에 있는 거 하고 뭐가 다른 데? 오빠 아이는 너무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우면 안 돼.”배지영은 못마땅해하며 말했다.배준우는 배지영이 말을 들으며 유청이 돌아온 이후로 배지영이 점점 더 막무가내로 변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그는 더 대꾸하기도 귀찮아 바로 전화를 끊었다.배지영은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뚜뚜 하는 소리에 화를 참다가 결국 욕설을 뱉어냈다.유청은 그녀의 화가 난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네 오
고은영은 낮에 아가의 옆에 있었다. 배준우가 없을 때도 산후 도우미는 고은영이 힘들까 봐 항상 옆을 지키고 있었다.이때 배준우가 들어오자마자 산후 도우미는 재빨리 침실을 나갔다.“내가 안을게. 자 아빠한테 와.”배준우가 아기를 안는 모습을 본 고은영은 가슴 한구석에 간질거렸다.아기를 안은 배준우는 한마디를 뱉었다.“넌 아기를 보기만 해. 안지 말고.”“왜요?”고은영은 입술을 삐죽거렸다.‘왜 내 아인데 안지 못하게 하는 거야?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배준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눈웃음을 지었다.“여자는 금방 출산했을 때 관절이 가장 약하대. 이때 아이를 계속 안고 있으면 산후증후군이 생기기 쉽대.”“그런 게 있어요?”고은영은 전혀 몰랐다.배준우가 대답했다.“어.”비록 이런 지식은 모두 책에 나온 것이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고 한 달 동안 이런 것들을 지키며 산후조리를 잘 해야 했다.산우 도우미가 있을 때도 고은영이 아기를 안으려고 하면 배준우와 똑같은 말을 하며 안지 못하게 했다.아기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고은영은 고작 한 번밖에 안아보지 못했다.모유 수유를 할 때도 옆으로 누워서 했다.유청과 배지영이 도착했을 때 집사와 혜나가 배준우를 불렀다.두 사람이 왔다는 말에 고은영과 배준우의 얼굴이 굳었다.특히 배준우의 얼굴은 많이 어두웠다.“언제 감옥에서 나온 거예요?”“엊그제요.”라 집사가 대답했다.배준우는 몸을 돌려 아기를 혜나에게 안겨준 뒤 고은영의 뺨을 살짝 잡으며 말했다.“넌 내려오지 마.”“그래도 돼요?”고은영은 고민하며 말했다.배준우의 친엄마를 아직 만나보지 못했지만 아주 강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그녀의 이름만 들어도 고은영은 움츠러들었다.배지영이 고은영을 두 번이나 해고했기에 고은영도 충분히 배지영이 자기를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은영도 더욱 다가가기 힘들어했다.배준우가 말했다.“그래도 되든 안 되든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네?”“네는 뭐가 네야? 넌 쉬고 있어
그의 차가운 뜻이 꼭 량천옥을 대하는 것과 같게 느껴졌다. 이제는 고은영의 일에서 더욱 배준우의 선을 넘을 수 없었다.배준우는 눈을 차갑게 뜨며 비웃음을 날렸다.“제 태도를 이미 명확하게 표시한 줄 알았는데 아직도 이해를 못 하셨을 줄은 몰랐네요.”“준우야.”유청은 숨이 막힐 듯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더니 흥분하며 말했다.“그동안 해외에서 겪은 고통 너도 다 봤지? 그건 다 량천옥 때문이야.”배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런데 내가 고은영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길 바라는 거니?”“은영이를 받아들이실 필요 없어요.”이때 유청의 말에 배준우는 망설임 없이 대꾸했다.사람들은 모두 유청이 그동안 해외에서 배준우를 키우느라 고생했기에 배준우가 귀국해서 량천옥에게 한 모든 것이 유청을 위해 한 복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오직 배준우만이 유청이 겪은 고통은 사실 자업자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와 배항준은 똑같은 사람이었다.배항준도 좋은 사람이 아니었지만 사실 유청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그렇다면 그녀가 겪은 고통을 누구 때문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인생을 그렇게 살아왔다면 자신의 책임은 얼마일까?유청은 배준우의 말을 듣고 순간 눈빛이 차가워졌다.“네 뜻은 네가 지금 고은영에게 진심이라는 거니? 고은영의 량천옥의 딸이든 아니든 상관없다는 거야?”“네.”배준우는 싸늘하게 한 마디를 뱉어냈다.맞다. 고은영이 량천옥의 딸이든 아니든 두 사람은 함께 할 것이다. 게다가 이제 아이까지 생겼다.때때로 과거에 저지른 실수를 현재 우리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바로잡을 필요가 없다.현재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많은 실수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배준우는 줄곧 고마움과 원망을 확실히 구분해 왔다.량청옥을 극도로 원망하지만 그는 고은영을 진심으로 사랑했다.윤청은 배준우의 단호한 대답을 듣고 얼굴이 더욱 침울해졌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난 허락할 수 없어.”그녀 또한 이 한마디를 아주 단호하게 말했
유청은 돌아온 뒤에 배준우와 깊은 대화를 하지 않았다.배준우도 유청이 란완리조트에 와서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유청은 오늘 배준우를 보고 그가 너무 많이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엄청난 기세로 란완리조트에 왔지만 결국 지금...“엄마 우리 여기까지 해요.”란완리조트에서 나온 배지영의 마음은 아직도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다행히 배준우는 방금 그녀에게 어떻게 감옥에서 나온 것인지 묻지 않았고 그저 꺼림직한 말을 조금 했을 뿐이다배지영은 배준우가 고은영과 량천옥의 일에 대해 이 정도의 태도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량천옥을 죽을 만큼 미워했고 지금은 고은영까지 함께 배씨 가문에서 쫓아내 버리고 싶었다.고은영은 자기가 아들을 낳았으니 배씨 가문에서 더 귀한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고은영 꿈 깨. 네가 량천옥의 딸인 이상 배씨 가문은 널 영원히 배척할 거니까. 근데 오빠는 지금 왜 저런 태도인 거지? 설마 정말로 고은영을 본인의 아내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유청은 눈을 감고 말했다.“그만하라고? 어떻게 이렇게 그만할 수 있겠어?”량천옥이 오랜 세월 그녀의 인생을 빼앗았는데 어떻게 그냥 내버려둘 수가 있을까?‘그만하라고? 여기서 그만할 수 없어.’배지영이 말했다.“그럼 아까는 왜 아이를 엄마가 키우겠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으셨어요?”유청이 아이의 할머니였으니 아주 합리적인 요구였다.“방금 그 상황에서 어떻게 얘기를 꺼내겠니?”유청은 이미 인내심을 상실하고 말했다.방금 배준우가 고은영을 그렇게 보호하는데 그녀가 어떤 얘기를 꺼내든지 받아줄 리가 없었다.배지영이 말했다.“그럼 라 집사한테 왜 그런 말을 남기셨어요?”“그렇게 해야 준우도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게 될 거 아니야?”그래야 배준우도 마음의 준비를 할 것이다.량천옥은 유청이 란완리조트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왔다.량천옥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유청은 경멸과 조롱이 가득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다.유청은 쯧쯧하며 혀를 찼다.“너도 이렇게 다급할 때
량천옥은 눈을 가늘게 뜨며 옆에 있는 배지영에게 비웃음을 날렸다.“맞다. 지영이도 곧 결혼 얘기가 오갈 텐데 걱정해야 할 거야. 남씨 가문 둘째 도련님을 배항준이 아주 마음에 들어 하고 있거든.”남씨 가문 둘째 도련님이라는 말에 유청과 배지영 두 사람의 얼굴은 순식간에 변했다. 모두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량천옥을 바라보았다.“남씨 가문 둘째?”유청은 이를 악물었고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량천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남씨 가문 둘째 말이야. 지능에 조금 문제가 있는 멍청이.”량천옥의 말에 배지영은 눈을 가늘게 떴고 유청의 얼굴에 있던 미소는 굳어졌다.유청은 손을 들어 량천옥의 뺨을 때리려고 했지만 량천옥이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이에 유청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이러는 거야?”“난 당연히 자격이 없지. 하지만 배씨 가문의 사모님 신분이라면 자격은 충분해. 배항준이 이미 동의했어.”“너.”유청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녀는 배항준 그 나쁜 놈이 동의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량천옥이 이어서 말했다.“왜? 지영아 설마 자기 자신을 아직도 명문가의 딸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때 너한테 있었던 일 이미 강성에서 유명해. 비록 수년 동안 아무도 그 일에 관해 얘기를 꺼내진 않았지만 네 이름만 얘기하면 다들 그 일부터 떠올릴 거야.”“량천옥 당신은 죽어야 해.”배지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고서는 앞으로 나서며 량천옥을 때리려고 했지만 량천옥은 아주 가볍게 막았다.량천옥이 말했다.“너도 너무 불만스러워하지 마. 내가 남씨 가문에 네 칭찬을 아주 많이 해줬으니까.”“당신은 정말 비열한 인간이야.”량천옥은 두 사람을 밀어내고 유청을 경멸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네 딸의 일이나 걱정하는 게 좋을 거야. 며느리는 네 아들이 알아서 충분히 걱정하고 있으니까. 너만 무턱대고 참견하지 않으면 돼.”유청과 배지영은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두 사람은 량천옥처럼 뻔뻔한 여자에게 도대체 누가 저런
입사 2년 차 고은영은 동영그룹 비서실 직원으로서 매사에 신중하고 성실하게 일해왔다.그런데 어젯밤, 그녀는 거대한 사고를 치고 말았다.고은영은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잡고 살짝 뒤집었다. 알몸 상태를 확인한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남자의 넥타이를 잡고 방탕한 여자처럼 유혹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아직 자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헉!”얕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그 장면이 꿈이 아니라니! 어떻게 직속 상사를 상대로 그런 미친 짓을 벌인 거지?배준우, 동영그룹 대표이자 그녀의 직속 상사였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너무도 큰 충격에 고은영은 자신도 순결을 잃었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재빨리 일어나서 옷부터 입었다.그리고 배준우가 깨기 전에 이 끔찍한 범죄현장에서 도망쳤다.떨리는 다리로 겨우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애써 어젯밤 기억을 지우려고 노력했다.그런데 화장 중이던 안지영이 그녀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어제 대표님 방까지 모셔다드리고 온다고 하지 않았어? 전화해도 안 받던데 어떻게 된 거야?”고은영은 가슴이 철렁해서 말까지 더듬었다.“나? 바람 좀 쐬고 좀 늦게 돌아왔는데 너 자고 있길래 조용히 들어왔어. 아침에 대표님 호출이 있어서 나갔다 이제 들어온 거야!”조금 긴장했지만 군더더기가 없는 대답이었다.대표실 직속 비서로서 수시로 호출을 받는 일도 잦았고 지금은 출장 중이라 밤에 바람 좀 쐰다고 나갔다 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안지영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화장에 집중했다.무사히 넘어갔다는 생각에 고은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화장실로 가서 씻고 출근준비를 했다.두 사람은 식당으로 가서 대충 아침을 먹고 회의실로 바로 직행했다.검은색 정장을 차려 입은 고은영은 평소의 진지하고 성실한 직원으로 돌아왔다.가방에서 핸드폰 진동음이 들리고 발신자에 찍힌 “대표님”이라는 글자를 확인했을 때, 그녀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지금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