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집사는 비록 배씨 가문에 상대적으로 늦게 왔지만 소문만 들어도 그 시절 배항준과 유청이 어떤 부부였는지 알 수 있었다.두 사람의 불행한 결혼 생활 속에서 두 사람의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라 집사는 갑자기 마음이 조금 슬퍼졌지만 마음을 다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바로 어머님께 전화하겠습니다.”비록 라 집사는 나이가 많은 세대였지만 배준우의 방법에 동의했다.부모로서 자기 자식에게 100퍼센트의 사랑을 주진 못해도 이렇게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만약 배준우와 고은영의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면 그들이 아이의 일에 참견하는 것은 당연히 괜찮은 일이지만 지금 배준우와 고은영의 결혼 생활은 아주 행복했다. 그런데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유청과 배항준은 이미 결혼 생활이 불행한데 왜 그들은 젊은 세대에게 그런 불행이 일어나길 바라는 걸까?라 집사는 고은영이 운이 좋아서 배준우의 적극적인 보호를 받아 누구에게도 상처를 받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량천옥은 집 안으로 들어오며 배준우를 보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방금 네 엄마가 와서 뭐라고 한 거니?”배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손으로 담뱃재를 털었다.량천옥이 말했다.“너희들이 날 원망하는 거 알아. 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바라는 건 오직 은영이가 상처를 받지 않는 것뿐이야.”량천옥은 유청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배준우에 대해서는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이제 두 사람에게 아이까지 생겼지만 량천옥은 여전히 염려했다.배준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사실 이럴 필요 없어요.”“배준우 난 은영이가 조금의 상처도 받지 않았으면 해. 너든 너희 엄마든 은영이한테 상처 주지 마.”“그쪽은 무슨 근거로 은영이를 자기 딸이라고 생각하는 거죠?”배준우는 량천옥의 말에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고은영은 당연히 그가 알아서 잘 보호할 것이다.그에게 문제가 없는 한 그는 아무런 후회도 없이 죽을 때까지 고은영을 지켜줄 것이다.그 누구도 그녀를
예전에 량천옥이 배씨 가문에 있을 때 다들 그녀를 과소평가했다.하지만 그들의 원한을 제쳐두고 생각한다면 량천옥은 확실히 정말 뛰어난 비즈니스 재능을 갖고 있었다.천의는 현재 영화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게다가 그녀는 패션 사업도 확장했고 심지어 패션 업계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예전이었다면 배준우는 량천옥의 손에서 모든 것을 빼앗고 싶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배준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혼수는 은영이가 원하지 않을 거예요.”“배준우.”“내가 은영이한테 잘해주는 건 그쪽 때문이 아니에요.”배준우는 바로 량천옥의 말을 끊었다.고은영은 배준우의 여자였고 그만의 것이었다. 그 누구와도 관련이 없었고 누군가 그의 앞에서 고은영을 위해 대가를 지급할 필요가 없었다.배준우의 말을 들은 량천옥은 급격히 말이 적어졌다. 하려던 말이 모두 그녀의 목에 걸려 더 이상 말할 수가 없었다.량천옥은 배준우가 고은영에게 잘해줄 것이라는 말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위층에 고은영은 계속 불안에 떨고 있었다.혜나가 그녀의 옆에서 그녀를 다독였다.“괜찮아요 사모님. 걱정하지 마시고 대표님을 믿으세요.”“그 여자는 준우 씨의 어머니야.”고은영은 혼란스러워하며 중얼거렸다.예로부터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천적이라고 했고 게다가 전에 배지영과 트러블까지 있었기에 분명 배준우의 어머니는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량천옥은 결국 고은영을 만나지 않았다. 전에 있었던 일들 때문에 그녀는 고은영의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량천옥은 배준우에게 모든 것을 확인하고서는 돌아갔다.배준우가 위층으로 올라왔을 때 고은영이 이불 안에서 뒹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혜나는 배준우가 올라온 것을 보고 얼른 아기를 데리고 나갔다.배준우는 앞으로 다가가 고은영의 엉덩이를 때렸다.“감기 걸리면 안 되는 거 알지?”방의 온도는 일정했지만 배준우는 고은영이 혹시라도 산후증후군에 걸릴까 봐 아주 조심했다.갑자기 들려오는 배준우의 목소리에 고
그녀는 지금 장선명에게 너무 많은 것을 빚진 건 아닐까?회사 이름을 바꾸는 것이었지만 사실 이건 대충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그룹을 지주 회사에서 실업 회사로 변경하는 것이었다.비록 큰 차이는 없지만 전에는 지주 회사이고 이제는 실업 회사가 되어도 상관없는 것일까?장선명이 정말 독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안지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안열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나태웅 손에 있는 지분이 소용 없어지는 거예요?”안열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가치가 사라집니다.”파산을 선포했는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이전 법인과 대표는 모두 교체되었다.그러니 나태웅이 매수한 지분인 이제 휴지 조각이 되는 것이었다.안지영은 차가운 한숨을 쉬었다.그녀는 다시 한번 장선명의 무자비함을 깨달았다.그녀는 왜 이런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이 방법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태웅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는 불같이 화를 낼 것이다.‘그래 나태웅 어디 한번 당해봐. 네가 화가 나서 죽는 걸 보고 싶네.’안지영은 싹수없는 나태웅의 얼굴이 떠오르자 그를 끌고 염라대왕을 만나러 가고 싶었다.이때 안지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하니 장선명의 전화였다.안지영은 바로 받았다.“여보세요?”“아래층으로 내려와. 밥 먹으러 가자.”전에는 너무 바빠서 사무실에서 밥을 먹어야 했다.이제 모든 것이 갑자기 처리되니 안지영은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해져 장선명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3분만 기다려요.”안지영은 전화를 끊은 뒤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이를 본 안열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장 대표님께서 데리러 오셨어요?”“네. 오늘은 내가 맛있는 거 사야죠.”안지영은 눈썹을 씰룩이며 말했다.안열이 하늘 그룹에 입사한 후 안지영이 이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안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참. 저 내일부터 하늘 그룹에 출근 안 합니다.”“네? 출근을 안 한다고요?”안지영은 충격받은 것과 동시에 조금 아쉬워하며 말했
“얼마나 썼는데요?”“선물을 주는 것만 해도 이만큼은 썼어.”장선명은 그녀에게 숫자를 보여주었다.순간 안지영은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너무 많은데? 하늘 그룹 매출의 10퍼센트야.’원래부터 장선명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더 많은 신세를 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럼 내가 더욱 감사해야겠네요.”안지영은 헛기침을 두 번 하며 웃었다.“뭘 원해요?”“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줄 거야?”“당연하죠. 선명 씨가 원하는 건 내가 다 해줄게요.”그녀는 장선명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나태웅은 정말 미친개가 따로 없었고 그동안 그녀를 물고 늘어졌다. 이제 마침내 그것을 해결했으니 그녀는 당연히 장선명에게 고마웠다.장선명이 말했다.“진짜?”“당연히 진짜죠.”장선명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깊어졌다.빨간 신호등에 걸렸을 때 그는 별처럼 빛나는 두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며 달콤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난 널 갖고 싶어.”순간 안지영은 할 말을 잃었다. 머리가 윙하고 울리면서 작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다음 순간 장선명은 이어서 말했다.“넌 내 약혼녀야. 미래에도 넌 내 것인데 내가 또 너한테 뭘 더 달라고 하겠어?”이 말은 듣기에는 다소 장난스러웠지만 장선명이 지금까지 한 말 중 가장 진지한 말이었다.안지영은 이 말을 듣고 호흡이 가빠졌다.한편 하늘 그룹.안지영과 장선명이 방금 떠났을 때 나태웅이 무거운 얼굴로 찾아왔다.프론트 데스크에서 그를 막았지만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곧바로 사장실로 향했다.마침 퇴근 준비를 하고 있던 안열은 나태웅을 발견하고 눈썹을 꿈틀거렸다.나태웅이 안지영의 사무실로 곧장 들어가려는 것을 본 안열은 다급하게 그를 말렸다.“나 대표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안지영은?”나태웅은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안열은 정중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귀여운 얼굴이니 사뭇 정중한 표정을 지어도 엄숙해 보이지 않았다.이 순간 두 사람의 표정은 선명하
입사 2년 차 고은영은 동영그룹 비서실 직원으로서 매사에 신중하고 성실하게 일해왔다.그런데 어젯밤, 그녀는 거대한 사고를 치고 말았다.고은영은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잡고 살짝 뒤집었다. 알몸 상태를 확인한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남자의 넥타이를 잡고 방탕한 여자처럼 유혹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아직 자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헉!”얕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그 장면이 꿈이 아니라니! 어떻게 직속 상사를 상대로 그런 미친 짓을 벌인 거지?배준우, 동영그룹 대표이자 그녀의 직속 상사였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너무도 큰 충격에 고은영은 자신도 순결을 잃었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재빨리 일어나서 옷부터 입었다.그리고 배준우가 깨기 전에 이 끔찍한 범죄현장에서 도망쳤다.떨리는 다리로 겨우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애써 어젯밤 기억을 지우려고 노력했다.그런데 화장 중이던 안지영이 그녀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어제 대표님 방까지 모셔다드리고 온다고 하지 않았어? 전화해도 안 받던데 어떻게 된 거야?”고은영은 가슴이 철렁해서 말까지 더듬었다.“나? 바람 좀 쐬고 좀 늦게 돌아왔는데 너 자고 있길래 조용히 들어왔어. 아침에 대표님 호출이 있어서 나갔다 이제 들어온 거야!”조금 긴장했지만 군더더기가 없는 대답이었다.대표실 직속 비서로서 수시로 호출을 받는 일도 잦았고 지금은 출장 중이라 밤에 바람 좀 쐰다고 나갔다 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안지영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화장에 집중했다.무사히 넘어갔다는 생각에 고은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화장실로 가서 씻고 출근준비를 했다.두 사람은 식당으로 가서 대충 아침을 먹고 회의실로 바로 직행했다.검은색 정장을 차려 입은 고은영은 평소의 진지하고 성실한 직원으로 돌아왔다.가방에서 핸드폰 진동음이 들리고 발신자에 찍힌 “대표님”이라는 글자를 확인했을 때, 그녀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지금 당
고은영은 어떤 마음으로 휴게실을 빠져 나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녀는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전시회장으로 돌아왔다.그녀를 본 안지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안색이 왜 그래? 어디 아파?”고은영은 중학교 때부터 자신과 함께한 친구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그 모습을 본 안지영은 급히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급히 그녀를 끌고 화장실로 가서 작은 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 대표님한테 혼났어?”안에서 문을 잠그자 고은영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안지영은 다급히 다가가서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 대표님 너 이런 모습 보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날 텐데!”동영그룹 배준우 대표는 매사에 철저하고 냉철한 사람이었다.아무리 예쁜 여직원이라도 일하는 시간에 울거나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절대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과거에 어떤 여직원이 실연 당하고 회사에 와서 몰래 눈물을 흘린 적 있었는데 배 대표는 대차게 그 부서 전체에 징계를 내렸다.여자라서 절대 봐주는 법이 없는 배준우였다.고은영은 숨 넘어갈 듯이 흐느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지영아, 나 이대로 퇴사할지도 몰라! 하지만 난 강성을 떠나기 싫어!”“아니, 도대체 무슨 사고를 쳤길래?”안지영은 앞뒤 잘라먹은 그녀의 말에 조바심이 났다.“내가… 어젯밤에 대표님을… 추행했어!”안지영은 순간 온몸이 굳었다.공기마저 무거워지고 화장실 안에는 고은영의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안지영은 충격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지금… 뭐라고 한 거야?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아?”도저히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어제 대표님 방에 밤새 있었다고!”고은영이 말했다.다시 정적이 찾아왔다.안지영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그러니까 네가, 대표님이랑 억지로 잠자리를 가졌다는 거야?”이게 사실이라면 커다란 재앙이었다.과거 배준우 한번 꼬셔보겠다고 그의 방에 숨어들었던 여자들은 그 결과가 전부 좋지 못했다.애를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크게 들릴만큼 고요했다. 고은영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있었지만 속은 어지러웠다.배준우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녀의 작은 얼굴을 힐끗 훑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런 것 같다라는 식의 대답 내가 싫어하는 거 알 텐데?”고은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확실하지 않은 대답을 가장 싫어하는 배준우였다.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어제 제가 대표님을 방까지 모신 뒤로 아무도 그 방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그녀는 아까보다 더 단호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고은영에게는 1분이 1년과 같은 고역의 시간이었다.하지만 이걸 이겨내야 했다.만약 배준우에게 거짓말을 들킨다면 그녀만 인생을 망치는 게 아니라 안지영에게까지 피해가 갈 수 있다.겨우 강성에서 자리를 잡고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수는 없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은영의 등 뒤가 축축해질 때쯤 배준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래, 알았어.”고은영은 스르륵 눈을 감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끝난 건가?“가서 해상그룹 입찰 방안 계획안 좀 가져와 봐.”배준우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고은영은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그 뒤로 한달 간 긴 출장이 이어지는 동안 고은영은 최대한 배준우와 단독으로 접촉하는 상황을 피했다.한달 뒤, 긴 출장을 끝낸 그들은 강성으로 돌아왔다.관례대로 고은영에게는 이틀의 휴가가 주어졌다. 이날, 배준우는 긴급회의가 있어 회사로 향했다.회의를 마치고 나오자 문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태웅이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대표님.”나태웅을 본 배준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고 비서는?”“한달 간 출장을 다녀왔으니 당연히 휴가를 줬죠. 고 비서도 연애해야죠.”배준우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지만 이내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나태웅은 갑자기 싸늘해진 분위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한편, 동영그룹 직원 기숙사.
수화기 너머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고은영은 멈칫하며 다시 발신자를 확인했다.대표님이라는 글자를 확인한 순간, 그녀는 벽에 머리를 박고 자살하고 싶었다!그녀는 바로 태도를 바꾸어 공손한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죄송합니다, 대표님. 다른 사람인 줄 착각했습니다.”“당장 회사로 와.”남자는 차가운 한마디를 끝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고은영은 꺼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입을 삐죽였다. 또 꿀 같은 휴식일에 불러내다니!그녀는 다급히 마트에 들러서 안지영에게 줄 라면 하나 사고 기숙사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바로 돌아온 그녀를 보자 안지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근처에 은행 새로 섰어?”고은영은 뛰어오느라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대표님이 지금 바로 회사로 오래. 일단 라면이나 먹고 있어.”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방으로 돌아가서 오피스룩으로 갈아입었다.배준우는 정말 깐깐한 상사였는데 직원들이 일하는 시간에 편한 복장으로 오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그녀가 다급히 현관으로 다시 나가는데 뒤에서 불만 섞인 안지영의 목소리가 들렸다.“대표님도 참, 한달이나 출장을 다녀왔는데 쉬는 날에 또 불러내? 그럴 줄 알았으면 너 마케팅부서에 추천할걸 그랬어.”“나 말을 잘 못해서 마케팅 부서는 어울리지 않아.”말을 마친 고은영은 바로 문을 열고 나갔다.기숙사에서 회사까지는 10분 거리였다.이런 지리적 우세 때문에 그녀는 자기 집을 두고 기숙사에서 출퇴근했다. 아침에 잠을 더 자고 교통비도 아낄 수 있다는 점이 큰 메리트로 작용했다.회사에 도착한 그녀는 바로 대표 사무실로 직행했다.안에 들어서자 창가에 서 있는 배준우의 뒷모습이 보였다. 햇살을 받으며 서 있는 그는 뒷모습만 봐도 귀티 나고 멋져 보였다.고은영은 공손히 다가가서 고개를 숙여 그에게 인사했다.“대표님, 저 왔어요.”배준우는 고개를 돌리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고은영은 찔리는 게 있어서 그런지 대표가 저런 눈으로 볼 때면 괜히 긴장했다.다행히 배준우는 바로